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1491》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책방의 서가에서 《1491》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자문했다. 거의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읽고 배우자. 그래서 샀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닿은 것은 1492년이다.

서문과 에필로그 및 코다를 뺀 이 책의 본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 1부는 콜럼버스의 도래 이후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났던 종말론적 인구감소현상에 대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유럽으로 납치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17세기 초반 뉴잉글랜드 초기 정착 시기의 한 인디언이, 돌아온 고향에서 보았던 충격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마을이 폐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골이 뒹굴고 있었다. 비단 그의 고향 뿐만 아니라 연안에 수백 킬로미터에 걸져 있던 그의 출신 세력, 그 연합세력, 그 연합세력의 적대세력의 마을들이 모두 그렇게 폐허가 되었고, 그 자신도 결국에는 그의 동포를 몰살시켰던 그 “전염병”으로 죽게 된다. 다음에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은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에서 약 한 세기 정도 먼저 일어났던 장면이다. 피사로와 싸우던 잉카인들이 갑자기 황제부터 병으로 쓰러져 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정복은 쉬워졌다. 전염병에 의한 인구의 감소는 예전부터 지적되던 내용이지만, 근래의 연구에서는 그 파국적이었던 인구감소 추정규모가 이전에 비하여 훨씬 더 커지고 있다. 약 95~97% 정도의 원주민이 전염병으로 죽었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에는 콜럼버스의 도래 이전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한 공동체의 인구가 20분의 1 또는 30분의 1로 줄어들게 되면, 사회는 붕괴된다.

하지만 어떻게 전염병으로 인구의 대부분이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무시무시한던 중세 유럽의 흑사병도, 많이 잡아봐야 겨우 인구의 3분의 1 밖에는 처치하지 못했지 않는가? 20분의 19, 30분의 29가 죽었다는 것은 오바 아닌가? 내가 알고 있던 설명은 이렇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에서 가축화된 동물이 가지고 있던 병원체로부터 발전한 전염병에 대한 항체를 “전혀” 가지지 못했다. 그들은 가축화 이전에 베링해협을 건넜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그런데 베링해협을 건넜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오대호부터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유전적으로 거의 다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라시아-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가장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이다. 17세기 러시아가 모피를 찾아 동진할 때, 이들 역시 전염병으로 인한 엄청난 인구의 감소를 경험했다. 접촉은 필연적으로 전염병의 창궐을 낳을 수 밖에 없었고, 어떤 수를 썼더라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생물학적인 결론이다. 전염병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천연두, 홍역 등의 전염병의 쓰나미가 이 수년을 간격으로 한 세기 넘게 아메리카를 덮친다. 맨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콜럼버스가 열어재친 대륙간의 종 이동으로 어떤 종은 크게 성공하고, 어떤 종은 크게 그 수가 줄었다. 피해를 입은 종 중에 대표는 아마 호모 샤피엔스가 아닐까 한다. 약 20%의 개체가 병으로 죽었으니까.

자, 원래 인구가 그렇게 많았다면, 그들은 분명히 상당히 고차원의 문명을 이루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문명은 어떻게 발전해왔던가? 그 과정은 유라시아와 비교해 어떻게 다른가? 제 2부는 이 부분을 다룬다. 2부는 근래에 밝혀지고 있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로 완전히 도배되어있다시피 하다. 먼저 아메리카로의 인류 이주에 대한 큰 그림이 근래에 와서 바뀌고 있음을 지적한다. 연구자들 중에는 이제 아메리카에 클로비스 문명 이전에 먼저 이주해 온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다음에는 잉카문명의 기원이 해양문명이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 놓았다. 야생식물을 작물화하여 농경이 시작되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가축화가 진행되고,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통치 체계가 발전하고, 무기가 만들어지고, 기록을 위한 문자가 발명되고, 이것이 우리가 유라시아에서 생각하는 문명의 시발이다. 하지만 안데스와 태평양 사이의 극 건조지대에서는 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건조지대를 흐르는 강을 따라 만들어진 좁은 녹지에 살던 사람들이 바다에서 멸치(엔쵸비)를 잡는다. 멸치를 많이 잡기 위한 그물을 만들기 위해 면화를 작물화 하고 상류에서 재배한다. 이것으로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했다. 노르테 치코에서 발견된 이 유적이 만들어 질 때,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있었다. 태평양에서 안데스에 이르는 지역은 겨우 100 킬로미터 사이에서는 고도변화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환경과 생태계가 병존하고 있다. 대역별로 상이한 대역 사이에 교역이 있었고, 이 교역을 통해서 해안에서 발생한 문명이 안데스로 전파되었다. 페루의 엔쵸비 먹는 유적과 잉카 유적에서 나타나는 문양의 모티브가 유사하다는 점이 문명의 전파를 암시한다고 한다.

안데스의 잉카문명은 거의 완전히 고립되어 발전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마야 문명과의 교류도 없었던 것 같다. 유일한 예외는 마야로부터 옥수수가 전래된 것이다. 그런데 옥수수는 다른 작물과는 좀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옥수수는 그 야생종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종은, 지금의 옥수수와는 좀 많이 다르게 생겼다. 멕시코의 경사지에서 성공적으로 농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밀파라는 밭 형식을 발명했다. 여러 작물을 함께 키워서 서로 필요한 원소를 교환하게 하는 방법이다. 안데스의 가파른 비탈에서는 햇빛을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는 계단식 밭이 발달했다. 그렇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 발전한 문명이, 왜, 유라시안 스텐다드인 바퀴는 발명 하지 않았지? 적어도 멕시코 남부의 마야인들은 3000년 전에는 바퀴를 알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장난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걸 더 크게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포장된 도로가 없고 수레를 끌 가축이 없다면, 곳곳에 웅덩이가 생기는 열대우림기후 환경에서 수레는 별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작가의 대답이다. 그리고 그 간단해 보이는 기술의 진보가 항상 당연한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 중국에서 배워 오기 전까지 볏이 달린 쟁기를 “몰랐다.” 중국에서 볏 달린 쟁기는 갑골문에 등장한다. 책에는 기원전 3세기에 발명되었다고 인용했다.

제 3부에서는 아메리카의, 생각보다 밀집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환경에 준 영향을 되짚어 본다. 북미에 살던 사람들은 숲은 매해 가을 태워서 잡초를 제거하고, 다음에 나는 풀들이 더 잘 자라게 했다. 초기 정착민들은 불타오르는 숲을 놀라운 눈으로 보았다고 한다. 다음에 나오는 아마존 이야기는 완전히 놀라움 그 자체였다. 피사로를 따라 안데스에 들어갔다가 아마존을 따라 나온 사람이 있다. 그는 그가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본 바를 기록으로 남겼으나, 오랜시간 사장되었다가 겨우 한 세기 전에야 출간되었다. 그는 아마존에서 빽빽하게 밀집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발전된 문명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기록했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구라로 여기고 무시한다. 아마존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그 중에, 아마존의 토양은 그 위의 삼림에 비하면 턱없이 연약하기 때문에 화전식 농업 이상으로 오래 경작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정주를 필요로하는 문명이 발전할 수 없었다는 생태적한계 이론이 있다. 열대우림기후에서는 나무든 뼈든 보존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도기파편 정도가 보존이 된다. 밀림지역에 고고학이 잘 적용되지 않는 이유이다. 최근에는 유전자 생물학과 토양학이 적용된다. 생물학은 아마존에서 유실수가 작물화되었음을 제시한다. 책에 나오는 과일들의 이름이 익숙치가 않아서 다 까먹었는데, 여하튼 굉장히 많은 수의 과일나무가 작물화되고, 관리되었다. 토양학은 아마존에서 테라프레타라고 하는 숯과 유기물, 그리고 도기파편이 풍부하게 포함된 토양을 발견했다. 자연적으로 생성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좀 많이 부자연스러운, 그런 흙이다. 실험을 통해서 농업에 매우 최적화되었음이 입증된 토양이다. 추산에 따라서는 아마존의 약 10%가 이러한 토양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보는 아마존이라는 숲 자체가 인간의 집중적인 관리와 개입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유실수의 작물화와 토양의 최적화는 아마도 현재는 거의 버려진 땅인 볼리비아 북동부 베니 지역과 브라질의 아크레 주에 살던 사람들이 개발한 것이 아닌가 한다. 거기에서는 거대한 흙 구조물들 수 백개가 산재하고 있음이 발견되었고, 약 500년 전에 버려진 것으로 연대추정이 된다.

놀라운 사실과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최신 연구의 놀라운 결론도 결론이지만, 그 연구의 발표 시기도 극 최근이었다. 2008년, 막 이런다. 2010년도 한 군데서 본 것 같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책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식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요약한 내용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거나, 그냥 아직 기억이 나는 내용들이다. 책은 잉카·마야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으며, 그 뉴잉글랜드 개척사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나 기존의 고대 4대문명에 더하여 올멕 문명과 페루 연안의 원시 잉카 문명을 문명의 발상지로 더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은 머리에 쏙쏙 박히는 내용이었다. 이 두 신대륙의 문명에 대한 개관을 서술한 책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관된 책이 몇 가지 떠올랐다. 먼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두 저작 《총·균·쇠》이다. 《총·균·쇠》에서 제시된 내용 중에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유라시아의 축은 횡축이고, 아메리카의 축은 종축이라는 것이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는 통찰이다. 실재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세부사항들은 정확이 다이아몬드의 지적과 일치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의 전신이 되는 와리와 티와나쿠 사이에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두 지역을 잇는 육로는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단 파나마운하 때문에 중간에 끊길 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다리안 밀림지대가 존나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 다리안 밀림지대는 김경진의 《데프콘》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한편 마야 문명이나 멕시코 고원지대의 테오티후아칸 문명이 리오그란데 강 이북으로 잘 전파되지도 않았다. 멕시코 남부에서 작물화된 옥수수만이 남북으로 전파되었다.

한편 총·균·쇠 중에 총에 실리는 무게는 감소된다. 사실 뉴잉글랜드에 침입하려 시도했던 유럽인들은 전염병으로 연안의 원주민들이 몰살당한 이후에나 처음으로 기지를 세울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총은 소음기에 불과했던 시절인 것이다. 남미에서는 좀 다른 살풍경이 연출되었는데, 대 학살 끝에 피사로에게 잡힌 잉카의 황제는 그 전 황제가 갑자기 죽었던 데다가 잉카라는 나라 자체가 황제에 대한 컬트적 숭배로 유지되고 있었던 탓에, 갑작스런 황제의 교체로 정비가 잘 안되었을 수 있다. 게다가 말은 잉카인들의 통신 속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대비를 잘 못했을 수도 있다.

단 균의 역할은 훨씬 중요해졌다. 유럽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상황에서도 전파되어 온 전염병은 원주민들을 몰살시켰다. 이후에 유럽인들은 원래부터 아마존에는 사람이 석기시대 상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애팔래치아 너머의 원주민들은 유목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현대의 유럽인들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 끔찍한 사태에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주장한다. 죄의식은 상속되지 않지만, 책임은 상속되기 때문이다는 표현은 한일관계 그리고 한월관계에 또는 친일파·독재 부역자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이 들린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책은 역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이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 여부가 문명의 성쇠를 결정한다.” 잉카 사람들은 엘니뇨에 시달렸다. 가끔 왕조의 교체가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아마존에서 생태적 한계 이론은 잘 적용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환경에 제한을 받아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서도 또한 환경에 부하를 최소화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러한 예는 안데스 산맥에 집중적인 계단식 밭을 개발한 와리 문명, 숲을 주기적으로 태워서 환경을 관리했던 북미 원주민의 경우, 그리고 밀파라고 하는 밭 양식을 발전시킨 남부 멕시코 원주민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란 거기에 살아야만, 거기서 하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진다. 환경과 지속가능하게 공생하는 이러한 방법들은 바로 토착민에 의해서 발명되고 발달해 온 것이다. 더 욕심을 부릴 수도 있다. 그 때는 앞서 말한 생태적 한계라는 철퇴를 맞게 된다. 《1491》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았지만, 환경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 금기와 제도적 장치와 정서적 규범이, 적용되는 기술과 함께 맞물려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먹고 튀라고 요약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미국식 농업이 가능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미래로부터 ISD 소송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상관있는 책은 주경철 교수 《문명과 바다》, 《대항해시대》이다. 이 두 책은 기본 내용은 비슷하나, 하나는 학술서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인이 보기에 편하게 재구성되어있다. 비록 전염병에 의한 몰살이 거의 대부분의 원주민 사망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유럽인들의 도래 이후에 있었던 지극히 악마적인 원주민들에 대한 학대가 있었음을 까먹으면 안됨을 일깨운다. 또한 아마존의 생태적 한계 이론이 기반하고 있는 아마존의 화전 농업이 사실은 유럽인들에 의해 쇠도끼가 전래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이들 책에서도 또 다른 관점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콜럼버스 이후의 대륙간에 있었던 생물종의 교류에 대하여 더 폭 넓은 사실들이 수록되어 있다. 《1491》의 저자는 신작 《1493》에서 이 주제를 또 다시 다룰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방문 이후에 원주민들에 의한 환경 개입이 없어지면서, 북미 대륙은 재삼림화 되고, 아마존·마야의 많은 부분도 더 빽빽한 숲으로 덮이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혹시 이렇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는 완전히 내 생각인데, 아메리카 대륙의 재삼림화가, 17세기에 맹위를 떨친 소빙하기를 초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일단 이 두 사건은 시기적으로 일치해 보인다. 그리고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가 북·남미의 삼림으로 고정되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마운더 극소기라는, 태양 흑점활동의 약화와 그에 따른 복사에너지의 약화를, 소빙하기의 원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 감소가 매우 적다는 점에서 늘 좀 의심스러웠다. 만약 아메리카의 재삼림화가 그 소빙하기의 이유라면, 인간의 활동에 의한 전 지구적 기후변동의 역사가, 산업혁명에서 콜럼버스까지 약 3세기 가량 연장된다. 또한 엄청난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병원균이 대서양을 건너자, 유럽에서는 멀쩡한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산 채로 불태워졌고, 동아시아에서는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왕조가 바뀌었다. 추워진 기후로 살기 힘들게 된 유라시아의 농민들을 구해 준 것은 아메리카에서 병으로 죽어 간 사람들이 유품으로 남긴 옥수수와 감자였다.

2011년 11월 5일 토요일

집에 들렀다

부모님 댁에 잠시 들렀다. 4년 전 귀농하신 부모님께서는 이제 꽤 규모가 있는 농장을 꾸리셨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 간 그 날은 마침 말리려고 널어 두었던 나락을 정미하러 보내야 하는 날이었다. 마을 입구 들어오는 길에 족히 100 m는 되게 펼쳐 놓은 나락을 포대에 옮겨 담아야 했다. 농협으로 보내는 쌀 자루는 처음 보는 종류였다. 표시 중량 950 kg. 크기도 물론이거니와 형태도 정육면체의 독특한 모양이었다.

농촌의 도구들은, 어떤 공정에 특화된 형태를 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1년에 딱 한 번, 딱 그 때 사용하기 위한 것들이다. 바닥에 펼쳐놓은 쌀을 퍼 담는 데에도 쓰레받이 같이 생긴, 다른 용도로는 도무지 쓰일 데가 없을 것 같은 용구를 사용했다. 950 kg이 들어가는 포대는 인력으로는 옮길 수 없다. 그러면 쌀을 옮기는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할머니와 부모님과 나, 동생 이렇게 5명이 달라붙어 왔다갔다 하면서 포대에 쌀을 모았다.

가족들과 함께 이렇게 육체노동을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는 저 위에서부터 치워라.”, “포대는 이렇게 잡는거다.” 그 자리에서 작전을 세워가면서 부산스레 왔다갔다 하다 보니, 노래 없이도, 술 없이도 흥이 났다. 중간 쯤부터는, 이미 해 치운 일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우리 가족이 일하는게 신나 보였는지, 그 즈음부터는 동네 아버지 친구분도 오셔서 일을 거드셨다. 아저씨는 아버지가 좀 부러우셨던 걸까. “옛날 같았으면, 인제 농사는 자식들 시키고, 가끔 논에 물이나 대고, 소 몰고 풀 먹이고 하면 되는데.”라는 농에 아버지는 허허 웃으셨다.

한참 걸릴 것 같았던 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2시간 만에 끝났다. 그 950 kg짜리 포대는 6개가 나왔다. 트랙터로 포대들을 용달차 두 대에 옮겨 싣고, 아버지와 친구 분은 면 농협으로 가셨다.

고생을 함께 나눈 사람들끼리는 좀처럼 얻기 힘든 연대가 생긴다. 쌀 퍼 담는 건 그다지 힘든 노동이라 할 것도 없지만, 만약 전통사회에서 한 해 농사의 완전한 주기를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힘든 노동을 나누며 평생을 살았다면, 그 관계는 정말 남달랐을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부모님은 삼촌·고모와 그런 관계이시지 않는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하면서 든 작은 아쉬움.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일하면 좋았을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절대 내색하시지 않으셨지만, 은근히 바라지 않으셨을까. 지독한 가부장적 이기주의라고 몰아붙여지고 싶지는 않다. 똑같이, 장인 장모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나락을 퍼 옮기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또 가족을 만들고 싶다.

2011년 9월 26일 월요일

반려암·사문암·석면

감람석 모래를 뿌렸는데, 거기서 석면이 나왔다고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이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10926020026820&p=hani)

배운 게 도둑질이므로 이런 기사가 나오면 찾아본다. 일단 문재의 모래를 공급한 광산이 어디인지 확인했다 안동 풍천의 모 광산. 앵? 안동? 대체로 안동이면 경상 누층군이거나, 거기 관입한 화산암이거나, 그 전에 있던 화성암·변성암 기반암인데? 석면은 초염기성 암석이 물과 (경우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변성되는 과정인 사문암화 작용을 거쳐서 만들어질 때 나올 수 있는 광물의 하나이다. 그런데 안동에 초염기성암이?

지질자원연구원에 들어가서 지질도를 확인하였더니, 정말로 풍천에 반려암 관입암이 있었다. 반려암은 염기성 심성암이다. 오오 신기 신기. 게다가 외가집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곳이네. 학부 때 염기성암을 보러 야외조사를 간 곳은 충남 홍성 일대였다. 역시나 이 일대에서도 석면 때문에 난리가 나 있다. 이들 염기성 암석들이 변성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광산 업체에서 만든 투자설명회 프리젠테이션은 더 신기했다. 채굴된 감람석과 사문암을 이용한 제품과 납품 방향을 간단히 보여주는 프리젠테이션이었다. 반려암에는 감람석이 많이 들어가 있고, 사문암화 작용을 받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했던 곳에서 사문암을 사용하고 있었다. 제철업에서 사문암이나 감람석이 사용되는지는 완전 몰랐다. 충남의 석면 논쟁에서는 현대제철측에서 제철 과정에 사문암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환경단체에서는 외국의 제철소에서는 안전한 감람석을 쓴다고 반론을 펼치고 있다.

골프장 잔디가 잘 자라는 흙 또는 칼라 벙커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역시 대한민국에서 돈 벌려면, 골프장! 골프장! 그리고 이번에 문제가 된 야구장 운동장 모래. 이렇게 새로운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하게 된 데에는 포철로부터의 주문량이 점진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사문암은 실재로 보면 꽤 아름다암운 암석이다. 대체로 띠는 어두운 녹색 빛도 그렇고, 무늬도 아름답게 나 있다. 다음에 외가집에 가게 되면, 근처에 가서 안동에서 나는 반려암을 한 번 찾아봐야 되겠다.

※9월 30일 추가
중학생이 모스 경도계 (활석-석고-방해석-...) 외울 때 나오는 활석은 화장품, 파우더, 분가루를 만드는 데에 이용된다. 이 활석이 사문석의 변성을 통해 형성된다. (다른 경로도 있다.)

※ 이듬해 4월 12일 추가
경상 누층군은, 지각이 얇아진 곳에 호수가 형성되고 거기에 쌓인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아직도 상대적으로 지각이 얇다. 얇은 지각 때문에 염기성암의 관입이 오히려 더 잘 일어날 수 있다고 전공하는 친구에게서 들었다.

횡성을 홍성으로 수정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자연과 문명

학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알펜포어란트를 지나갔다. 숭숭 동그란 구멍이 난 숲이 산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숲의 구멍의 중심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문명이 이르기 전, 유럽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삼림. 유럽의 중세는 숲을 개간하면서 증가하는 인구를 흡수해 온 시기였다. 숲 가운데 정착지가 생기고, 주면의 숲을 벌목하여 농장과 마을을 확장해왔다. 숲은 좀 먹듯이 동그랗게, 정착지에서 동심원을 그리면서 구멍이 숭숭 뚫히게 되었고, 그 원은 인구와 함께 확장한다.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제 거의 모든 숲이 파괴되었다. 알펜 포어란트는 그 동심원상으로 사라지는 숲을 볼 수 있게 남아있는 지역 중의 한 곳이다.

사람이 석탄·석유를 사용하기 전까지 대용량의 발열을 하기 위한 재료는 목재였다. 사람이 콘크리트와 철근을 이용하여 건물을 만들기 전까지는 건축에 반드시 목재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플라스틱이 대체하고 있는 수 많은 생활용품은 나무로 만들어졌었다. 요즘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웠을 때, 그 가장 처음부분은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한 고대 4대문명에서 시작했었다. 그러나 강에만 촛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그 강 유역에 존재했던 대삼림의 존재가 묻혔을 뿐일 것이다. 그래서 마스터 키튼은 도나우 강 문명을 찾으러 다니고, 중국에서는 장강 문명을 열심히 찾고 있다.

동아시아사를 배울 때, 참고문헌 목록의 책들 가운데, 중국 고대사에 대한 책을 읽고 기말 보고서를 써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은 갑골문·고고학 등의 성취로부터 밝혀 낸, 하·은·주·춘추·전국·한대까지의 자연사와 생활사에 중점을 두고, 주제어 별로 서술되어 있었다. 하·은 시대 이전, 지금의 화북평원에는 대삼림이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거지 주변의 삼림이 벌목과 화전으로 개간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면적은 넓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화북지역에 삼림은 남아있지 않다. 장강 유역과 사천분지의 삼림은 조금 후에 파괴되기 시작했다. 고사에 자주 등장하는 현재 장안 주변의 관중이라는 지역은, 비옥하기 짝이 없는 지역으로 묘사되지만, 내가 아는 현재의 섬서성은 건조한 반사막 내지는 초원 지대이다.

환경이 황폐화되면서 문명이 사그라든 많은 경우들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에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깊이있게 서술하지 않았지만,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고대 그리스의 많은 식민 항구도시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잡지와 《지구대기행》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들이 비슷한 테크트리를 따라간다. 인구가 늘어나면, 자원의 소비 역시 따라서 증가하고, 이를 위해서 주변의 자원(삼림·물·토양·광물)을 과도하게 이용하게 되면서, 그 일대의 자연 환경이 더 이상 문명을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에페수스는 삼림벌채로 인해 토양유실이 일어났고, 그 모래가 바다로 흘러들어와 항구를 매우는 바람에 입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상당한 건조지역이었던 탓에 지나친 관개가 토양의 염화를 불러왔고, 결국 농업은 포기되었다.

사실 흔히들 환경의 역습이라고 말하는 이런 현상들이, (문명의 붕괴에서 이미 제시했듯이) 모든 문명의 붕괴를 설명할 수는 없고, 수백년 단위의 장기적인 기후 변동과 환경의 역습 효과를 분리해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그린란드의 바이킹 정착지나, 화북에서 장강으로 중국 문명의 중심이 이동한 경우가 있겠다.

지구대기행 13편은, 몇몇 문명의 흥망성쇠를 제시한 후, 한가지 예외, 서유럽 문명을 제시한다. 중세가 한계에 다다른 이후 서유럽 문명이 멸망하지 않았던 이유. 그들은 새로운 온대림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대륙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더 이상 처녀림이 펼쳐져 있는 꿀이 흐르는 대지는 남아있지 않다고. 인류의 남아있는 미개척지 우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메마르고 가혹한 곳임을 일깨운다.

한 때, 국민성과 지도자의 자질로 (야매스럽게) 설명되던 문명론을, 이제는 상당한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하여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류 전체의 문명을 떠바치고 있는 지구의 자원 서플라이 혹은 충격흡수 능력을 수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탄소와 질소의 순환, 열이동, 종다양성 따위가 얼마 정도나 인간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는 단계이다. 앞으로는 이런 자연환경적 맥락을 과학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문명론들, 혹은 자연을 언급하더라도 자의적으로 그것을 인간에 가져다 붙여 멋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문명론들은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 날 알펜 포어란트를 비행하던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때, 창 밖을 보니 뒤따라오는 비행기의 항법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비행기가 내릴 활주로의 옆 활주로를 이용할 비행기가 다가오는 것 역시 보였다. 엄청난 양의 석유를 태워 수십톤이 넘는 금속 통을 공중에 띄우고, 그를 위해서 그 무거운 금속 통을 1 초에 300 미터의 속력으로 날리는 것도 놀랍기 그지 없지만, 그러면서도 그토록 정교하게 이들을 제어하고 관리하여,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곳으로 유도하는 모습에 또한 경이로움을 느꼈었다. 인류는 행성 지구에 대한 인간충격 역시 그 정도 이상으로 정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오늘은 전국적인 산발적 정전이 있었다. 전력 사용량이 64 GW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64 GW는 일인당 1280 W이고, 약 1.7 마력이다. 한 사람이 말 두 마리가 달라 붙어야 만들어 낼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보통 사람이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일은 약 0.1 마력이라고 하므로, 현대 한국인은 17 명의 노예를 부리고 있는 샘이다. 한 가정으로 치면 노예가 한 50 명 붙어 있는 샘이므로, 100 년 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더 할 수 없는 호사이다. 그런데 과연 이 정도의 소비가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2011년 9월 13일 화요일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전에 짜장면이 표준어가 아닌 것에 격분해 글을 써갈긴적이 있었는데 (http://jolysses.blogspot.com/2010/04/%EC%A7%9C%EC%9E%A5%EB%A9%B4%EC%9D%80-%EC%A7%9C%EC%9E%A5%EB%A9%B4%EC%9D%B4%EB%8B%A4.html), 근자 비로소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시에 몇 가지 더 많은 단어들이 함께 표준어로 승격하게 되었다.

기쁘다. 짜장면은 새로 생긴 개념이므로, 철자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 정체와 기원이 불분명한 자장면이라는 단어가, 대다수 언중의 언어를 비표준, 부적격의 언어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언중이 사용하면, 그것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

작금의 언중들 중에 다수는 한자어를 정확히 쓰지 못한다. `명예훼손'을 `명예회손'으로 쓰는 경우는 양반이다. `무임승차'를 `무인승차'로 써서 도대체 누가 승차하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고, `청와대'를 `청화대'라고 써서 대통과 그 무리를 중국으로 텔레포트 시키기도 한다. 근래 본 최악의 경우는 `인신공격'을 `임신공격'이라고 쓴 경우다. 게시판에서 개 털리는 경우를 강간당했다라고 표현하던데, 그래서 그리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서 어찌 손써볼 도리가 없게 된다면, 그 때는 `명예회손' 역시 표준어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나는 당연히 이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이다. 새롭게 생겨난 단어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한자어들의 경우 형태소들이 완전히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에, 이것 저것 다 된다고 예외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어생활에서 한자를 완전히 배격해야한다는 입장에 선 사람이라면, 저들 중 두 번 째, 형태소 논거는 설득력이 없다. `명예훼손'을 이루는 글자들이 모두 대응되는 한자가 있다는 사실은, 국어순혈주의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사실이다. 현대 한국어 화자들은 `ㅚ'를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런 경우 `ㅞ', `ㅙ'와 구별되게 발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언중이 발음하는 바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어그로가 아니다. 삭월세는 사글세가 되어 표준어로 인정을 받았다. 나는 이 지점이 바로 한자 배격론의 실패가 완전히 까발려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한자교육을 배척한 결과가, 고급어휘의 철자법 좆망이라는 죠낸 아름다운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렇다면, 버스, 서비스, 가스 같은 단어들이 /뻐쓰/, /써비쓰/, /까쓰/로 소리나는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들 단어들도 된소리로 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내 감정은 현행대로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낀다. 왜냐고? 예들은 원래부터 외래어니까, 짜장면에 적용된 것과는 다른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누구도 짜장면을 외래어라고 느끼지 않으니까. 어떠한 외래어가 아닌 단어도, 그 첫 음절의 첫 자음을 예사소리로 적고 된소리로 읽는 경우는 없어. 적어도 당장 그 예가 떠오르지 않아. 심지어 둘 쌍(雙)은, 쌍이라고 소리가 나니까, “심지어” 한자가, 된소리 발음을 가지고 있어. 왜? 상이라고 쓰고 쌍이라고 읽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하나는 喫. 그러니까 짜장면이라고 하는 외래어가 아닌 단어는, 자장면이라고 적힐 수가 없는 거야.

(라고 적었는데, 퇴고하면서 읽어보니, 바로 밑에 반례가... 그래서 그냥, 잘 모르겠다. 난 꽈학을 하진 않거든.)

된소리로 발음되는 경우는 외래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김밥, 과대표는 각각 /김빱/, /꽈대표/로 발음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쌀밥이나 보리밥을 쌀빱이나 보리빱으로 읽는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짬밥이 /짬빱/으로 비빔밥이 /비빔빱/으로 읽히니까 아마도 특정 받침 뒤에 올 경우에는 밥이 된소리가 되지 않는가 가설을 세워보는데, 덮밥은 이게 /밥/인지 /빱/인지 잘 구별이 안된다. 어쨌든 형태소를 살려 적는 원칙에 따라 표기법을 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표준어가 표준 발음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옳은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 표준 경상도화자인 나 더러 책 하나 던져주고 낭독해 보라고 하면, 당연히 표 난다. 딱 들으면 다 안다, 점마 어데서 왔네. 아마도 낭독하는 동안 표준어에 의해 규정된 단어들을 읽었을 것이고, 자음과 모음의 발음 역시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억양이 문제라는 소린데, 표준어가 억양도 규제하는가? 경상도 티가 확 나는 발음은, 표준어가 아니다. 따라서 표준어는 억양의 규범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효과를 /효과/라고 발음하더라도, 억양이 이상하면 표준어가 되지 못한다. 이것은 국어사전 정의 수준을 좀 벗어나는 문제인 것 같다. 서울말에는 억양이 없으니, 억양 없이 말하라고 하는데, 내가 듣기에는 서울말에도 그들 나름의 억양이 있다. 따라서 내가 억양 없이 발음해도, 서울말 같이 들리지는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억양을 학술적으로 어떻게 기술하고 연구하는지 궁금해지네.

지난 번 글에서도 썼듯이, 언어는 인간 개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잣대로 적격·부적격을 가리기 위해서는 엄밀하고, 정합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이현령비현령의 두루뭉실한 총언 뒤에는, 이를 뒤바침하기 위한 엄밀한 `법칙'이 서술되어야 하며, 이는 법률이 합법과 불법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엄밀하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여지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표준 표기법에 대하여서는 어느 정도 그것이 가능하고, 현재의 규정이 (짜장면이 표준으로 인정되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표준 발음을 그토록 엄밀하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사실 좀 회의적이지만 그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표준 억양이라는 것이 문서와 활자로 기술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한 규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11년 9월 10일 토요일

만주문자 식자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획연재물을 보면, 스크랩해 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TeX을 알게 되고 난 다음에는, 브라우저에서 기사를 긁어서 TeX 형식으로 간단한 편집을 해서 저장을 해 놓게 되었다.

이 주 쯤 전에 지인을 만나, 요즘 모으고 있는 그 연재물에서 읽었던 내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와서 스크랩 한 것을 보내주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신문기사에 난 것이다 보니, 이것 저것 정보를 더 보태고 싶어졌다. 등장하는 역사 인물의 한자 이름과 생몰년도 따위를 추가하고, 간단히 언급된 사실에 대하여 내가 아는 대로 좀 더 보충하고, 뭐 그런 짓을 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하도 좋아져서 어지간한 자료는 인터넷에서 다 찿아졌다. 생몰년을 찾으려고 사람 이름으로 검색하면, 위키로 들어가서 항목을 읽게 되는데, 유명한 인물을 찿을 때 조차도 완전히 처음 알게되는 그런 일화들에 빠져들게 되면서, 작업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또한 그러면서 또 배움이 있어 한편으로는 즐거웠다.

나는 아는 바가 일천하게 그지 없지만, 원전에 대한 욕구는 강한 편이다. 일종의 속물근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물의 생몰년을 찾는 과정과 요 몹쓸 속물근성이 합쳐지면서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빠져들게 되었다. 찾는 인물중에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나왔던 것이다. 생몰년은 크게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이름이다. 이 사람들은 중국사람이 아니니까 오른쪽에 붙은 괄호 안에 음차된 한자를 적어 넣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따라서 만주문자를 붙여 넣어야 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다언어 식자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 XeTeX로 컴파일 할 수 있게 약간의 수정을 했다. 그리고 fontspec 팩키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KTUG에서 배웠다. 그런데 문제는 만주문자 폰트였다. 처음에 찾은 것은 만주문자를 키보를 통해 입력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말하자면 날개셋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딸려 나오게 되어 있는 만주어 폰트를 찾아서 깔고,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주문자는 아랍어와 마찬가지로 단독·어두·어중·어미에서 쓰일 때 그 모습이 변화하는데, 방금 깔았던 그 만주어 폰트는 그 과정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했다. 어두형이 중간에 박히거나 하는 식이었다. 깨끗하게 포기하고, 프로그램과 폰트를 지웠다.

다음에 찾아 낸 프로그램은 중국인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입력창에 로마자로음차된 만주문자를 쳐 넣으면, 그것을 기초로 하여 만주문자를 짜 내 비트맵 형식으로 오른쪽에 출력하였다. 즉 범용으로 만주문자를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따라서 IME 설정을 건드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그 중간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간단계라는 것은 어두·어미·어말형이 각각 어떤 로마자에 할당되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두형은 로마자 I에, 어중형은 i에 각각 대응하도록 만든 것이다. 음차된 만주어를 어두·어중·어말형이 구분된 스크립트로 부호화 하고, 마지막으로 그 부호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는 만주문자를 출력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좀 엉성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얻은 출력물이 훨씬 퀄리티가 좋았다. 이 프로그램이 사용하는 만주어 폰트는 유니코드의 만주·몽골 문자 영역에 할당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자 영역에 할당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 프로그램의 만주어 폰트 이름은 Times New Manchu였다.

아, 나는 당연히 만주어 배운 적도, 할 줄도 모르나, 그 테스트라는 것은 간단히 그 만주어 모양을 (위키를 통해서) 알고 있는 누르하치나, 홍타이지 같은 만주 단어를 표시했을 때 얼마나 비슷하게 나오는가를 비교하는 것으로, 눈만 달려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이 폰트를 TeX에서 사용하는 것인데, 그 결과가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기뻤다.

2011년 7월 9일 토요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2005년 연천 GP 총기난사사건

그 때 언론은 그 전 8년간의 좌파정부가 주적개념의 약화와 군기강해이를 불러 온 것이 그 원인이라 했다.

이제는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2011년 7월 6일 수요일

경제효과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그 경제효과가 20조원이 될 것이란다. 너무 큰 돈이다. 감이 안온다. per Capita로 환산하자. 남한 인구 대충 5천만 = 5 곱하기 10의 7승. 20조원= 2 곱하기 10의 13승. 나누면, 0.4 곱하기 10의 6승 = 40만원. 앞으로 올림픽까지 7년. 이자 쳐서 한 해에 5만원. 한국인의 한 해 근로시간 2500시간. 시간당 20원. 아. 얼마 안되네. 천만 비정규직으로 한정할 경우 시급 100원.

G20회의 경제효과 정부발표대로라면 400조. 아까의 20배. 두당 800만원. 1달러 1200원으로 계산 시 6667 달러. 향후 3년 간, 국민소득 2222달러 증가. 국민소득이 20000달러에서 제자리이므로, 실질 성장률은 -11%?

가계부채 1000조 시대. 아까의 50배. 두당 2000만원. 4인가구 기준 8000만 원. 연리 5% 적용 시 하루에 0.13356/1000 씩 불어나므로, 2만원의 0.13356배= 2670원. 4인가족 기준 하루 이자만 10680원부담. 하루 8시간 노동할 경우 가장의 시급에서 1336원이 이자로 지출. 은행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하루에 이자만 1336억원.

이자거치 만기가 다가오므로 원금도 함께 상환해야 함. 지금 원리합계 8000만원을 향후 10년동안 연리 5%를 적용해 상환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한 해에 1051만원씩을 상환해야 한다. 한달에 87만 6천원, 하루에 28800원이고, 8시간 일할 경우 시급에서 3600원이 이자로 지출된다. 15년이라고 가정해도, 일년에 818만원, 한달에 68만 2천원, 하루에 22400원, 시급에서 2800원씩이 이자로 나간다. 15년 동안. (방정식 풀이가 만만치 않군) 어쨌든 복리의 마술.

G20의 부풀릴대로 부풀린 경제효과를 짜장면 그릇으로 환산하던 노예방송 KBS이 문득 생각이 나서, 그렇다면 나는 시급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하는 발상이 떠올라, 나눗셈을 해 보았다. 맨 마지막의 원금 상환은 좀 복잡했다. 1계미분방정식을 풀어야 했는데, 초등함수가 아닌 함수가 등장해서 계산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2011년 7월 3일 일요일

잡담

1. 자려고 술을 먹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단게 땡기네. 누네띠네 같은 그런 맛.

2. 오늘은 생각보다 한시간 늦게 시계가 가고 있었다. 기분이 내내 좋았다.

3. 누구는 도둑같이 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가보다. 그래 10·26!

2011년 7월 1일 금요일

씬꿰떼레와 용호마을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블로그를 쉬었다.

지난 주말에는 이탈리아 리구리아에 휴가차 갔다 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유럽과 북미에서 리구리아는 인기 있는 관광지였다. 지중해와 아펜니노 산맥 사이에 있는 이유로 바닷가는 바로 절벽으로 이어지고, 작은 마을들이 절벽 위에 혹은 갯바위 뒤 후미진 곳에 점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 중에서 특별히 다섯 개 어촌이 유명하며, 이를 씬꿰떼레(Cinque Terre)라고 부른다. 지난 주말에는 거기에 갔다 왔다.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바위 절벽을 배경으로 좁은 골목과 역시 폭 좁은 너덧 층짜리 집들과 골목을 가로질러 머리 위로 걸쳐있는 빨랫줄과 어느 골목을 지나면 갑자기 나오는 조금 넓은 광장과 그 옆의 성당, 그리고 푸른 지중해의 바다. 지중해 마을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채워주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마을들을 돌아다녔었다. 다음 마을로 걸어갈 때는 깎아지른듯한 계곡을 개간해서 만든 포도밭을 지나갔고, 바닷가에 도착해서는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길 수 있었다.

휴가는 모든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그곳에서 본 풍광은 인상적이었다.



2002년인가 3년의 어느 벚꽃이 피는 계절, 나는 부산 용호마을에 있었다. 부산에서 한참을 살아가면서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용호마을. 아니다. 중2 때 한 번 야외수업 비슷한 것을 하면서 이기대에 갔을 때, 그 마을을 지나쳤을 것이다. 용호마을은 나병 촌이었다. 그래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다. 그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들어보지 못했다.

용호동 131번 종점 근처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산 숲으로 들어가 잠시 고갯길을 넘나 싶더니, 바다와 함께 계곡의 품에 안긴 서글픈 회색 마을이 보였다. 드문드문 벚나무가 창 밖으로 지나갔고, 시멘트벽 사이로 난 길을 굽이쳐 내려가자, 오륙도가 눈앞에 보이는 마을 광장 종점에 버스가 도착했다.

한참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이미 주민이주가 마무리단계로 접어든 때였나 보다. 거의 다가 빈집이었다. 나병 촌이라면 연상되는 양계장도 있었다. 이미 닭은 없고, 닭똥 냄새만 강하게 나고 있었다. 마을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우연히 평생 잊지 못한 장면을 목격했다. 마을 가운에 있는 성당에서, 흰 망토를 걸친 소년들이 뛰어나와 다른 편 골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이승과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진 종교적 복장과, 사람이 떠나 비어가는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적막감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역설적인 것 같기도 했다.

바닷가, 게딱지 같이 붙은 작은 집들, 좁은 골목, 성당. 씬꿰떼레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을 부산에서 보았었다. 용호마을의 집들이 좀 더 알록달록하게 색칠만 되어 있었다면, 지중해의 유명한 휴양지와 꽤 비슷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용호마을은 그 수년 후 지도 상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가 오륙도를 굽어보고 있다. 용호마을에 켜켜이 내려앉았을 나병 인들의 서글픔, 목 좋은 갯바위를 찾아 들렀을 낚시꾼들의 설렘, 좀 더 가꾸었다면 꽤 괜찮은 관광지가 될 가능성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옛 도시의 기억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건축물을 올리는 제로 그라운드 식 뉴타운 형 개발이 여기서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올라가고 있는 고층 건물들은, 솔직히 강간범의 좆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 구역을 정복했어라며 뽐내는 남성계의 덤프트럭이랄까. 이해되지 않는 바는, 그 흉측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자체 관료와 건축자본이다. 낮은 건물들 사이에 혼자 삐죽이 솟은 건물은 아무리 봐도 예쁘거나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균형도 조화도 없는 그런 건조물을 돈 들여 짓는 것도, 허가를 내 주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형편없는 그 안에서의 삶의 질 역시 차차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더욱 안 좋은 것은 부산의 경우이다. 이제는 해운대를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주상복합들은 해운대를 부산의 다른 곳과 분리했을 뿐 아니라, 해운대의 조망권을 서울의 부자에게 가져다 바친 꼴이 되었다. 부산지역 경기는 계속 내리막인데, 부동산만은 열기가 식질 않으니 그 돈은 다들 누구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들이겠는가.

2011년 6월 14일 화요일

Il referandum

지난 금요일 그룹 사람들과 회식이 있었다. 그룹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당연히 이탈리아 국민투표가 그리고 더욱 당연히 베를루스코니가 화재가 되었다. 적어도 직장에 있는 이탈리아사람들끼리 모이면, 베를루스코니 욕 내지는 조롱이 거의 항상 나오는 것 같다.

듣고 있던 과장이 말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한 번, 두 번 실수(베를루스코니의 정당에 투표하는 것)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계속 그런다면, 그것은 그들이 (베를루스코니를) 용인 한 것이라고.

이탈리아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갑자기 재외 유권자 신고를 위한 서류 양식이 바뀌는 바람에 예전 서류를 가지고 있는 재외국민들은 이번에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베를루스코니가 장악하고 있는 방송들에서는 투표일자를 허위로 방송했다고도 한다. 실수를 과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원전은 물 건너 갔고, 베를루스코니는 성추문과 관련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게 되었다.





만약 이명박 망국정권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처벌 및 연금과 전직 공무원 자격박탈에 대한 국민투표를 쟁취해 내었다고 가정하자. 이들과 한 패였던 항문들이 뀌어 댈 방구들은 뻔하다.

“국민투표는 위험하다. 국민투표는 국론을 통합하기는 커녕 분열시킨다.”

힘을 가진 자들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쉽고, 재미있다. 그들이 이기면 반대파를 철저히 말려 죽일 수 있고, 그들이 지면 국론분열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울 수 있다. 힘이 있는 자들이 왜 양보를 한단 말인가? 어떻게 힘도 없는 주제에, 강한 힘을 가진 상대가, 고작 투표에 졌다는 이유로 순순히 양보를 할 것이라고, 혹은 약속을 했으니 지킬 거라고, 뻔뻔스럽게 기대하고 있단 말인가?

치열한 경쟁 끝에 경쟁의 도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정작 그 경쟁의 룰을 만드는 자와의 계약에 너무 서툴러 보여 속이 탄다.

2011년 6월 3일 금요일

Obsidian

흑요석은 영어로 obsidian이라고 한다. 흑요석은 고등학교 다닐 때 지구과학 시간에 책에서 접한 것이 처음이었고, 나중에 그 영어명을 알게 되었다. 그게 학부때였으니, Obsidian statue보다는 좀 일찍 알게 된 샘이다. 흑요석은 화산학에서도 중요하고, 또한 고고학에서도 중요하다. 흑요석은 인류가 금속을 다루기 전의 이른 시기에 접할 수 있었던 가장 날카로운 물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출지 마저 흔치 않아 교역을 통해 전파되었는데, 산지마다 화학성분이 다른 연유로 그 전파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인류는 이미 그 기억을 잊었지만, 물건은 그 길을 기억하고 있으니, 이것도 일종의 싸이코메트리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건 개소리다.

수 년 전, Notepad++이라는 편집기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텍스트 편집기를 따로 쓰는 것이 그 때까지만 해도 별 쓸모 있는 일은 아니라 그냥 깔아 놓고만 있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쓸모가 가끔 있었으니, 물건은 물건이었다. 그러다가 KoTeX 2009 버전의 공식 배포판에서 기본 설정 편집기로 포함된 이후, 자주 쓰게 되었다. 그냥 기본 설정 상태로 계속해서 쓰고 있었는데, 어제 작업 중 뻘클릭을 계기로 테마 설정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obsidian이라는 매력적인 테마를 알게 되었다.

IDL 언어 지원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일터에서 쓰는 편집기 테마도 obsidian에 맞출 참이다. 애도 아닌데, 이런 거에 설레이는 게 참 오랜만이다.

2011년 5월 21일 토요일

대통령 노무현

울었었다. 보고서를 마감하고 기분이 홀가분했던 지난겨울의 어느 날, 형과 동네 술집에서 맥주를 간단히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꼴을 흉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참 웃기더라. 머리 속에서는 수 없이 맴돌던 그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와 다시 그 소리가 귀를 통해서 머리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술을 먹어서인지, 형 앞에서 부끄러움도 잊고,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반복하며, 눈물을 연신 훔쳐가며 철철 울었었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많이 많이 울었었다. 그 때는 정말 많이 울었었다. 억울함과 분노에 그리 울었지만, 사실은, 사실은, 내 자신이 더 많이 부끄러웠다. 배은망덕의 악취로 뒤덮인 개백정 새끼 이인규를 비롯한, 창녀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개쓰레기 검찰 씹새끼들따위가 대통령의 머리끄뎅이를 잡고 동네방네 돌려가며 지 마음대로 개병신킹 인증했다고 낙인을 찍고, 좆밥 병신 만들듯 창피를 주며 가지고 놀 때, 그리고 매국언론들이 그것을 받아쓰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노무현 개새끼라고 핏대 올리며 왱알대며 질러대고 있을 때, 나는 게으르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이명박임을 알고도 대통령으로 만든 개자식들에게는, 가공된 노무현의 더러움이 필요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덤으로 이제는 쓰레기가 되어 똥통에 처박힌 그를 태워 죽일 수까지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었겠지. 그 때 나는 노무현을 논리적으로 변호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에 게을렀고, 검찰의 저열함을 성토하는 내 작은 목소리가 “나의 노무현은 그렇지 않아”라도 강변하는 덕후로 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침묵했고, 그 분은 돌아가셨다.

당연히 내 따위가 덤비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그 분의 선택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내가 그 때 보인 그 비겁한 모습이 항상 부끄럽게 떠오른다. 그래서 한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내가 부끄러워져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분의 떠올리는 것조차 힘이 들어, 사 놓았던 김대중 자서전도 그가 등장하는 곳부터는 읽지 못하고 있고, 노무현 자서전은 용기내서 사기는 했지만 더더욱이나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 날 저녁,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나 역겨웠기 때문인지, 입에서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콧물을 흥흥 거리고, 자꾸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다가, 갑자기 자랑스러워졌다.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미치도록 자랑스러웠다. 그 자랑스러움에 감동받아 또 진정되어가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백색테러단이 빈소에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집기를 깨부수고, 서정갑인가 하는 개는 그 분의 영정사진을 전리품 취급하며 들고 흔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시민들의 분향소는 닭장차들이 둘러쌌고, 이에 대해 주상용은 아늑한 분위기라 시민들도 좋아한다고 개드립을 쳤다. 작년 1주기 때, 정몽준의 축구협회는 생뚱맞게도 그 전날 한일전 축구를 잡았었다. 정부에서는 묘역에 대하여 한 푼의 국고 지원도 하고 있지 않는 판국에 집권 개나라당은 2년 동안 한 번도 묘역을 찾지 않았다가 이제야 가서는 도리니 어쩌니 하면서 짖고 앉아있다. 억울하냐고? 그렇지 않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조선일보는 그의 죽음을 있지도 않는 단어인 “사거”라고까지 표현하며, 사설에서 만평에서 기사에서 그의 삶과 인격을 폄훼했다. 그 때 깨달았다. 조선일보에게서 칭찬받는 죽음이라면, 개털 한 가닥만한 가치도 없는 삶이라는 것을, 5·18 기념식, 4·3 기념식에 이명박이 오는 것이, 영령들에 대한 최악의 모욕이라는 것을, 개나라당이 서민을 입에 올릴 때가 바로 그들의 분열과 멸망이 가까워 온 때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아는 노무현 대통령의 원칙은 이것 하나다. “특권이 통해서는 안 된다.” 특권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억울할 사람은, 실력과 주제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특권에 도전하고 그것을 깨 부실 수 있는 유일한 힘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너무 늦게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노숙행성

항성에 중력으로 구속되어있지 않는 행성의 존재가 마이크로 중력렌즈효과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관측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http://www.nature.com/news/2011/110518/full/news.2011.303.html) 발광하는 별 앞을 중력을 가진 물체가 지나가면, 통과하는 물체의 중력에 의해 광선이 구부러지기 때문에 뒤에 있는 별의 밝기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중력렌즈에 의한 밝기 변화는 다른 효과와는 구분되는 특정한 광도변화패턴을 보여주게 되므로, 중력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특징적인 변화패턴은 http://www.youtube.com/watch?v=yjXK3u7hC5A에서 볼 수 있다. 관측 결과 추산되는 이런 노숙행성의 질량은 10 목성질량 정도, 은하계 내에서의 수는 4000억 개로 주계열성의 수의 두 배 정도라고 한다. 원문에 아직 접근할 수 없으므로, 어떻게 해서 그 수의 추정이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사는 칼텍의 데이비드 스티븐슨의 의견을 소개하며 목성의 경우 태양계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 온도는 15도 밖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젠 온도가?) 또한 목성같이 큰 행성은 그 주위에 동반 위성을 가지는 경우 역시 흔할 것이므로, 그런 위성에서는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자연히 더욱 흥미를 끌게 되는 것은 지구 질량의 노숙행성인데, 지구 같은 행성이 성간매질의 차디 찬 영역에 간다 하더라도, 수소대기를 가질 경우, 액체 물로 이루어진 해양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기사는 어떻게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웹에서 좀 검색을 해 보자, 이런 기사가 나왔다. (http://abcnews.go.com/Technology/story?id=99213&page=1) 또한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http://www.gps.caltech.edu/uploads/File/People/djs/interstellar_planets.pdf) 항성의 전자기복사가 닿지 않는 노숙행성에서도 수소로 된 대기가 충분히 짙을 경우 (심해저의 압력정도가 되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지구의 대기를 이루고 있는 질소와 산소는 수소 정도의 절연효과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이런 행성의 경관은 당연히 매우 어두울 것이고, 게다가 물, 암모니아, 메탄의 구름이 차례로 층을 이루고 있으므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단, 화산활동에 의해 지면 가까운 곳의 대기가 어스름한 붉은 빛을 때때로 내비칠 때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마치 지구의 열수분출공에서 그러한 것처럼, 생명이 그 주위에서 번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지구에 비해 5000분의 1 정도의 에너지만이 허락된다.

생명을 보듬는 노숙행성이라도, 그 행성이 완전히 식어버리면 그 희박한 생명의 끈 또한 없어진다. 행성이 오래오래 생명을 보듬으려면 속이 뜨겁게 유지되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행성이 크면 된다. 큰 행성은 더 많은 방사성 원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오래 동안 붕괴하면서 열을 낸다. 또한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가 작으므로 천천히 식는다. 사실 그동안 방사성 원소의 붕괴열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행성을 데우는 또 다른 방법은 외부에서 역학적인 힘이 작용해서 그 에너지가 내부에서 열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예를 목성의 위성 이오에서 볼 수 있다. 이오는 목성의 강한 기조력으로 내부가 왕창 녹아있다고 한다. 얼마나 녹아있냐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건이었는데, 갈릴레오 탐사선의 자기장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거의 녹아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http://www.cosmosmagazine.com/news/4313/jupiters-moon-has-ocean-molten-rock) 녹은 암석은 전기 전도도가 높아지는가 보네. 몰랐다. 또한 최근에는 원시태양계 형성과정에서 거대기체행성의 중력으로 인해 지구형 행성들이 튕겨 나갈 때, 달 같은 위성을 달고 탈출할 수 있음이 제시되었다. (http://adsabs.harvard.edu/abs/2007ApJ...668L.167D) 그럴 경우 조석력이 계속 작용하게 되어 행성의 지질학적 활동을 강화하고 수명을 연장시켜줄 수 있다.

질문이 떠올랐다. 10 목성질량의 노숙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는 갈색왜성과는 어떻게 다른가. 위키피디아의 갈색왜성 항목은 이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수소 핵융합을 위한 최소질량은 75에서 80 목성질량이다. 반면 13 목성질량 이상만 돼도 중수소 핵융합은 가능하고, 65 목성질량에서는 리튬 핵융합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한편, 리튬과 메탄의 흡수선은 갈색왜성과 주계열성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주계열성의 온도에서 메탄은 존재하지 않고, 리튬은 주계열성에서는 최대 1억년 안에 모두 타버리기 때문이다, 라고는 하는데 사례별로 애매한 경우가 있어서 좀 논란의 여지는 있는 것 같다.

좋다. 그러면, 작은 갈색왜성과 어딘가 있을 왕목성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갈색왜성의 크기(부피)는 질량의 상한선 근처에서는 전자축퇴압에 의해 거의 결정되는 반면 하한선 근처에서는 그냥 보통 기체의 짜부되는 정도로 결정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갈색왜성의 반지름은 무거운 놈이나 가벼운 놈이나 할 것 없이 10%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크기로는 둘을 구분하기 힘들므로, 중수소 핵융합이 일어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로 낙착을 보자는 것이 아직까지는 대세인 것 같다. 그 질량이 13 목성질량 정도인데, 이 경우 역시, 질량뿐만 아니라 중수소화 헬륨의 성분에 따라 그 값이 변한다고 한다.



큰 지구형 행성이 생명을 키우기에 유리하다는 것은 노숙행성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앞서 나온 스티븐슨의 견해를 따를 때, 질량이 큰 행성은 더 빨리 보온에 충분한 수소를 성간공간에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 동안 지질활동을 통해 지표에 에너지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역시 큰 행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 사는 생명들은 광합성이 불가능하므로, 화학합성을 고도로 발달시키며 진화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들에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이들도 지구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세포핵의 형성, 세포의 종속적·수평적 합체와 기능에 따른 조직의 분화라는 테크트리를 타는 다세포 생물군이 생길까. 광합성이 빠졌다 뿐이지, 나머지들은 화학합성을 하는 생물에게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꽤 풍부하게 존재할 수소는 빛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것 같은데. 또한 포식이라는 전략은 어디에서나 충분히 경쟁력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행성에서 육지는 무엇일까. 분명 물을 통한 물질의 순환이 있겠지만, 그 순환이 너무 느릴 것이다. 액체 상태의 물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일사가 없는 환경에서 과연 비는 얼마나 올까. 그 공간도 결국에는 진화한 생명에게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수도 없이 매우 효율적인 생명으로의 진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결국 그들의 효율성이란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생태적 물질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고갈시킬 뿐이었기 때문에, 혁신적 도약들은 번번히 파국적인 깽판으로 끝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중간정도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을지도.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인간의 문명의 효율성이 비슷하게 작용하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들었다.



번역에 대한 변백
항성에 중력으로 구속되어 있지 않은 행성질량의 천체를 영어로는 rogue planet이니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광폭한 행성이라 하는 것 같다. 독일어로 된 신문 기사에서는 고유명사로 쓰인 경우는 보지 못했고, verw6aister Planet이니까 고아행성, 또는 einsamer extrasolarer Planet이니까 단독외계행성 정도로, 프랑스어는 Objet libre de masse planétaire이니까 행성질량 자유물체, 이탈리아어는 Pianeta interstellare 이니까 성간행성, 일본어는 자유부유혹성, 중국어는 성제행성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 독일어 말고는 위키피디아의 인터위키를 참조했다. 한국어 인터위키는 떠돌이 행성으로 표제어가 달려있는데, 행성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떠돌아다니는 별이라는 뜻이므로 썩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 자유행성이나 독립행성은 결코 혼동되는 의미로 실재 쓰일 일은 없겠지만, 왠지 정치적인 느낌이 들고, 방랑행성은 무슨 판타지 세계관에나 등장할 것 같다.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신세지만, 떠돌아다닌다는 뜻이 중복되지 않게 표현하기에는 노숙만한 게 없겠다 싶어서 이 글에는 노숙행성이라고 옮겨 적었다. 순수한 사견이다. 글을 완성하고 나니, 가출행성이나 출가행성도 그럴듯 해 보인다.

2011년 5월 15일 일요일

꿈의 택배편이 떠올랐다

2000년의 여름, 나는 신림동의 어느 고시원 쪽방에서 더위에 쩔어 있었다. 외지에서 난생 처음 격어 보는 지독한 외로움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만약 그 해 농활을 가지 않았더라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죽었을 것 같다.

나는 그 때 실재로 약간은 미쳐있었다. 건물 5층이었지만 비가 오기 전에는 꿉꿉한 하수구 냄새가 실내에 꽉 차 있었고, 어딘가 항상 불결한 느낌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둔 유월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방에 도착해 자려고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짜부작 짜부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구석을 들여다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 전날 방구석에 버려두었던 초코파이 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봉지를 조심스레 눌러 바퀴벌레를 제거했지만, 잠시 후 이번에는 방향을 특정할 수 없게 방 안의 온 벽에서 끊임없이 아까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내가 미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미치지 않았음을 확인해야 했다. 소리의 근원을 특정하기 위해 한동안 방 안을 초조하게 뒤적였다. 소리의 근원을 확인해야 내가 미치지 않은 것이니까. 혹시 또 다른 바퀴벌레인가. 그리고 잠시 후 깨달았다. 그 소리는 때마침 창 밖에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안도해 하며 끈적이는 불쾌함을 느끼며 잠이 들었었다. 수 년 뒤에 깨달았다. 상황이 조금 더 악화될 수 있었으며, 그럴 경우 많이 위험했을 거라는 것을.

그 때의 나를 지탱해준 건, 사회에 독립해서 첫 발을 내 디뎠다는 데서 느낀 헛된 뿌듯함이었다. 세상은 운 없게도 돈 없이 세상에 나온 18년産 남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상경직후 복덕방에서 소개해 주었던 하숙집은 2달 반 만에 헐렸다. 복덕방에서 그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를 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5월 축제기간, 나는 당장 집을 찾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 앉게 된다는 두려움에 서울 변두리의 복덕방들을 전전했었다. 1학년의 봄 축제는 내게는 남 일이었다. 싼 집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위생환경의 집들만이 내가 정한 원세의 상한 기준을 만족시켰다. 더 이상은 도저히 부모님께 부담드릴 수 없는 금액이었다. 관악구청 앞에서, 복덕방 주인을 따라 방을 보러 갔다가, 낙담하며 구청 앞 신호등을 건너 사방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건물들과 그 건물마다 수십 개씩 붙어 있는 까만 네모난 구멍들, 그 어디에도 내가 몸을 뉘일 곳이 없다는 절망감은 좀 많이 무거웠다. 그 때 어렵게 구했던 방이 빗소리가 바퀴벌레 소리로 들리던 바로 그 방이었다.

외로웠다. 억지로 관계를 맺는 듯 해 보이는 가식적인 대학생들의 만남이 스스러웠다. 난생 처음 만나는 선배들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힘들었고, 동기 수십 명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위해서 하는 과장된 액션들이 보기 싫었다. 더군다나 그 오바질이란 것들은, 나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장기와 재주를 부리는 것들이었기에 나는 질투와 무력감을 함께 느꼈다. 저 인간들은 어떻게 저런 잡기와 성적을 함께 유지할 수 이었지? 그와 더불어 입학 전 모임에서 겨우 말을 텄던 몇몇은, 개학과 동시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종강한 것이다. 수업시간표가 남들과는 다소 달랐고, 컴퓨터가 없었다는 것도 상당한 이유였다. 나는 내부적·외부적 이유들로 인해서 효과적으로 고립되었다.



그 여름의 어느 날, 자우림의 앨범을 샀다. 그리고 한동안 하루 종일 그 곡들을 들었었다. 그 곡들은 내 기억에, 그 여름의 힘든 시기에 달린 태그와 같은 것들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꿈의 택배편”.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가 서너 달의 지독한 인내 끝에 무너졌지만, 그 때 난 아직도 스스로 먼저 다가 갈만큼 용기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것이 그리 비겁한 짓이었을까. 그 날, 그 자우림 3집 테이프를 사러 버스타고 15분이나 걸리는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옆에 있는 음반가게에 갔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우연히 과친구들 한 무리를 만나 식당에 함께 들어갔었다. 아직도 아주 뼈아프게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친구들이 미칠 듯이 부러웠었던 것이. 단지 그들은 외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풍족하고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딱 거기까지만 기억이 난다.

하악, 감동도 재미도 없는 씁쓸했던 기억이다. 왜 이 노래가 기억이 났는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 쓰고 싶었던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빈곤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앞서 이야기했던 내가 외로웠던 이유들을 모두 뒤집어야 한다. 나는 빈곤했기 때문에 외로웠다. 하루 저녁, 만 원을 뿜빠이 해서 내야했던 동기들과의 술자리에 가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던 이유, 부모님께 대학교 들어간 큰아들 컴퓨터 한 대 사 달라고 우길 수 없었던 이유, 그 고립되었던 시간 동안 외로움을 떨쳐 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그리고 내 부모님이 빈곤했기 때문이었다. 지나친 빈곤은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상처이니까. 그 때 날 지탱해 준 것은 어떤 의미에서 뽕이었다. 넌 이제 성인이야, 네 앞가림은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라는 달콤한 속삭임. 세상은 그 헛된 용기들을 도둑질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것 아닐까.

나는 그 때를 스스로의 인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준비해 나가는 시간이라 여기며, 빈곤 속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만큼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아니 없는 행복을 자주 가공해 가며, 살아갔다. 하루는 밤늦게 과외를 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뉘였다. 문득 관악구청 앞에서 절망했던 5월 어느 날의 해질녘이 떠올라, 이제 누울 자리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며 보람 속에 잠이 들었다. 오늘 난, 그 잠자리가 떠올라 그 불쌍한 젊은이를 동정하며 눈물을 훔친다. 그 젊은이는, 나도 저 옷을 입어보고 싶어, 나도 새로 나온 저 핸드폰을 써 보고 싶어, 나도 저 음식점에서 다들 맛있다는 어떤 메뉘를 먹어보고 싶어, 그런 욕심들을 마음에서 하나씩 죽여 갔다. 행복은 물질적인 충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속삭임들은 또한 얼마나 달콤한가. 이제는 내가 정말로 새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차피 못 살걸 알고 포기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죽었으니까 상관은 없다.

그런 생활은 단속적으로 반복되어, 2007년의 어느 날, 나는 그 때보다 해발고도 70m 높은 또 다른 방을 빌려 몸을 누이고 있었다. 2000년, 나 같이 극단의 빈곤 선 바로 위에 있었던 젊은이들은 완전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아마 10%가 조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며칠 전 그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12139085&code=940702)는, 그리고 거기 달린 현실감 있는 많은 의견들은 처절한 절규였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진짜 기사였다. 똥이 질질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사실만을 기술한 기사가 이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는 것은, 사회가 이미 매우 극적인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극의 절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만, 그 젊은이들의 부모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최후에는 징벌을 받는 악역을 맡은 자들이다. 내가 말하는 그들은 내가 빈곤에 고통 받고 있는 동안 가장 열렬히 투기에 뛰어들었던 자들이다. 그 뿐만 아니다. 그들은 내가 인정하는, 특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들을 형편없이 비웃었고, 자본이라는 신이 역사하시는 몰상식과, 법 위에 서 있는 힘의 전횡에 열광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것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동시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죽거나 고통 받는 것 따위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고려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자들이다. 나 같은 대대로 돈 없는 것들이,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결혼과 출산의 축복을 포기한 채, 붙어있는 목숨에 감사해하며, 근근이라도 살아있는 것이, 대체 그들과 무슨 상관이었느냔 말이다. 나는 그들이 빚을 떠안고 몰락하기를 정화수 떠 놓고 빌고 앉아있지는 않아도, 그들의 비참한 몰락을 비웃으며 보아 줄 용의는 있다. 대체 그들이 투자에 실패하고 일가족이 비탄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꿈의 택배편”은 나에게 외로움뿐 만이 아니라, 외로움과 빈곤을 함께 떠올리게 해 준다.

2011년 4월 30일 토요일

ALOS PALSAR

일본의 L-밴드 육지관측 위성이었던 ALOS가 지난 주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늦게 들었다. 발전기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www.jaxa.jp/projects/sat/alos/index_e.html)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 L-밴드 영역에서의 지구관측 자료는 수집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인공위성으로는.

ALOS에는 여러 관측장비들이 탑재되어 있었지만, 그 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합성개구레이더(SAR)이다. SAR는 레이더이기 때문에 일사와 구름의 영향에 관계 없이 지표면을 관측할 수 있다. 올해 한국이 발사할 과학기술위성 5호에도 동일한 종류의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 단, 조금 더 짧은 파장인 X-밴드를 이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ALOS PALSAR는 편광관측이 가능했다. 전자기파는 횡파이다. 이 때문에 전기장의 방향에 따라 수직편광과 수평편광을 구분할 수 있다. 지표면의 산란대상은 성질이 서로 다른 이들 두 종류의 전파에 대하여 다른 산란특성을 보여준다. 이 특징들을 연구하면, 지표에 대하여 이전까지 알기 힘들었던 정보를 얻게 된다. 예를 들면, 지표면 거칠기, 토양 수분함량 등이 있다. 이들 변수들은 수문학적 순환을 감시하는데에 주요한 작용을 한다.

SAR의 또 다른 중요한 응용 부문은 간섭법이다. SAR간섭법을 이용하면, 지표 기복을 마치 사진찍듯 얻을 수 있다. 실재로 이미 2000년에 미국의 SRTM 미션이 단 11일 동안만 지구를 선회하여 얻은 자료를 통하여, 북위 60도와 남위 54도 사이 육지 전역의 표고자료를 90m 해상도로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이 자료를 완전히 공개하고 있다. 기술상으로는 30m 해상도까지 가능하지만, 동맹국들이 군사적인 이유로 이 자료를 공개하는 것을 만류했다는 풍문을 들었다. 지금도 미국에 대하여서는 30m 해상도 자료가 재공되고 있다. 현재는 독일의 TANDEM 미션이 새로운 지구 표고자료를 획득하고 있는 중이다. 목표 해상도는 12m이다.

한편 간섭법의 또 다른 응용으로 지표 변위를 마치 사진찍듯 획득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 그 정밀도는 mm수준에 이른다. 실재로 지진과 화산, 사태 같은 재해에 대하여 활발한 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글에서 ALOS를 검색하여 맨 위에 뜨는 페이지로 들어가면, 지난 도호쿠·간토 대지진으로 인한 지표변위를 ALOS를 통해 관측한 결과가 맨 처음에 나온다. (http://www.eorc.jaxa.jp/ALOS/en/index.htm) 이 방법으로 빙하의 흐름 속도를 관측하는 것 역시 가능하고, 특정 조건이 만족될 경우 해류, 자동차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간섭법과 편광법을 동시에 응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경우에는 삼림 생물량을 마치 사진찍듯 구할 수(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고, 빙하나 설원에 대하여서도 응용이 가능하다.

ALOS가 사망하면서 이재 캐나다에서 운용하고 있는 C-밴드 위성 하나랑, 독일에서 운용하고 있는 앞서 말한 X-밴드 TANDEM 세트, 이렇게 해서 세 개 위성이 돌고 있다. L-밴드 이상의 장파 관측은 다시 당분간 암흑기로 들어간 듯 하다. (이탈리아의 코스모스카이메드도 있고, 루페라고 독일의 군사용 SAR도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추가한다. 둘 다 X-밴드. 5월 23일)



일본은 그 이전에도 L-밴드 SAR위성을 운용하고 있었다. JERS라는 위성이었는데, 1992년부터 98년까지 수평편광으로 지구관측을 했었다. L-밴드 인공위성 SAR는 오로지 일본만이 해왔었다. L-밴드는 파장이 길기 때문에 (지구관측에 할당된 파장은 대충 23cm. 반면 X-밴드는 2cm 정도), 안테나가 커야한다. 따라서 위성이 필연적으로 크고 무거워지기 때문에 올리기 힘들다. 왜 일본이 L-밴드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는지 속내는 잘 모르겠다.

근의 공식

일과 관계되는 일로 4차 방정식의 근을 해석적인 방법으로 구해야 했다.

4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방법은 어디든지 나와있으므로 그것을 구현하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답이 이상할 때 찾아온다. 정확하지 않은 속도는 쓸모가 없는 법이다.

4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입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맨 먼저 수평이동을 시켜서 3차항의 계수가 0이 되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에 좌변을 x제곱에 대한 완전제곱식을 만들어 주는 성분만 남기도 나머지는 다 우변으로 이항한다. x의 1차항은 우변으로 이동한다.

이제 새로운 변수 z를 도입한다. 양 변에 2z(루트좌변) + z제곱을 더하면, 새 좌변은 (루트좌변 + z)제곱의 형태가 되어 완전제곱을 유지한다. 아까 좌변을 완전제곱으로 만들었으므로, 루트좌변은 x에 대한 2차식이다. (말하자면 a제곱에 2az +z제곱을 더해서 (a+z)제곱으로 만든거다.) 새 우변은 (우변) + 2z(루트좌변) + z제곱의 모양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x에 대한 완전제곱의 형태가 되게 하는 z의 값을 구하면, 원래의 방정식을 완전제곱끼리의 등식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

어떤 식이 완전제곱이 되는 조건은 판별식이 0인 경우이다. 새 우변은 (우변)이 x의 1차식, (루트좌변)이 x의 2차식이다. 결과적으로 새 우변의 판별식은 z에 대한 3차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x에 관한 4차 방정식을 풀기 위해 z에 대한 3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3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과정 역시 맨 먼저 수평이동을 통해 2차항을 계수를 0으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방정식의 해를 (a+b) 의 형태로 분해하고, 항등식( (a+b)세제곱 = a세제곱 + 3ab(a+b) + b세제곱)과 비교하면, (a세제곱+b세제곱)과 3ab가 가져야 할 값이 결정된다. 아까 2차항을 0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2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실재로 a세제곱과 b세제곱을 두 근으로 하는 2차방정식을 만들고, 2차 방정식의 공식을 통해 구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각각에 세제곱근을 씌워서 더하면 그것은 3차방정식의 한 해가 된다. 단, 맨 처음 했던 수평이동만큼 되돌려 놓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렇게 z를 구하면, 우리는 맨 처음 주어졌던 4차방정식을 완전제곱 = 완전제곱의 형태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부호를 달리 해서 두개의 방정식을 만들 수 있다. 단 좌변은 x제곱에 대한 완전제곱식이고, 우변은 x에 대한 완전제곱식이므로, 각각의 방정식은 x에 대한 2차 방정식이 되고, 해가 다시 2개씩 있으므로, 우리는 모두 4개의 해를 얻게 된다.

이로서 4차방정식을 풀 수 있다. 도저히 간단하게는 설명이 되지 않는구나.

이 과정 어디에선가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전개하는 과정에서 계수를 구하는 데에 실수를 하지 않았나 꼼꼼하게 다시 계산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범인을 추적한 결과, 3차 방정식의 근을 정확히 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앞서 본 대로 두 세제곱근을 더한 것이 해인데, 이것이 잘못 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각각의 세제곱근은 완전히 정확했다. 최소한 최종결과에서 볼 수 있는 오차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위키에는 3차방정식의 근을 이루는 두 성분, 앞에서 말한 a와 b를 구하는 방법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었다. 일단 하나의 세제곱을 구하면, 나머지는 별도의 세제곱근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두 근의 곱이 가져야 할 조건으로부터 간단하게 나누기를 통해 값을 구했다. 이 방법을 적용하자, 결과가 정확하게 나왔다.

억울해서 이유를 좀 더 따져봤다. 새 방법은 정확한데다가 계산도 적게하기 때문이었다. 고생은 더 했는데, 결과는 별로일 때 처량해지는 법이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어떤 수의 세제곱근은 세 개 있기 때문이었다. 2의 제곱근은 둘일지라도, 루트 2는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쓰는 프로그램은 세제곱근을 계산하는 cbrt()같은 함수는 없다. 그래서 (숫자)^(1.0/3.0)을 이용했다. 세제곱근은 3개이지만, 컴퓨터는 지가 편한 것 하나만 출력한다.

a의 세제곱근은 사실 a1, a2, a3 세 개가 있고, b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설명했지만 이렇게 구한 a세제곱근과 b세제곱근의 곱은 어떤 값과 같아야 한다. 그런데 예를 들자면, a1과 b2의 곱은 그러지 못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의 세제곱근은 1, -1/2+루트3/2i, -1/2-루트3/2i 가 있다. 1 곱하기 1의 세제곱근이 1이라고 해서, 세제곱근 끼리의 곱인 ((-1/2+i루트3/2) 곱하기 (-1/2-i루트3/2))가 1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컴퓨터가 편한대로 출력하는 값들이 이러한 조합이었던 것이다.

고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 근을 구할 때 조심해야 할 바를 배울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결과가 향상되어 기분이 좋았다. 또한 (숫자)^(1.0/3.0) 과정에 수치계산상의 오차 때문에 결과가 이상하다고 여겨왔던 내 오해가 풀렸다.

2011년 4월 23일 토요일

한글전용도 좋지만, 인·지명 정도는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다 보면, 개인적으로 그에 대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기자들의 수준이 대체로 엉망인 경우도 있고, 혹은 그들 업계의 업계 표준이 소비자의 수준을 상당히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인 듯한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검색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글전용의 맹점이 드러난다.

내 같은 경우에, 추가조사의 대상이 되는 검색어들은 주로 인명, 지명, (기사에 소개된) 기술·기법의 명칭 정도이다. 그런데 한글로 표시된 이들 검색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방금 읽었던 기사만 뜨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그리고 그 다음 순위로 올라오는 검색 결과들은 검색 단어의 일부만 일치하는 경우들이다.

한글전용으로 쓰여진 기사에는 한자나 로마자가 일절 병기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검색을 통해서 검색어에 해당하는 한자표기나 로마자 표기를 찾을 수 있으나, 기자가 정확한 외래어 표기 규정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옮긴 경우에는 그마저 여의치 않다. 한자병기가 안 된 중국이나 일본 인명·지명 역시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다.

성격이 지랄같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기사를 보면, 기자의 몰상식과 무례함에 화가 난다. 애초에 기사를 검색할 필요가 없게 상세하게 쓰던지, 자기 실력으로 그게 안되면 독자들이 좀 더 찾아볼 수 있게 추가 정보를 함께 표시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런 불쾌한 경험들이 좀 쌓이다 보니까 한글 전용론자들을 좀 편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한글전용이되,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괄호안에 병기”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한글전용에 대한 태도이다. 가끔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괄호안에 병기”조차 허용하지 못하는 한글 전용론자들이 있다. 이들은 애매함이 없도록 문장을 다시 쓰면 된다고 주장한다. 당연하다. “구축하다” 같은 동사는 驅逐하다 일 수도 있고, 構築하다 일 수도 있으니까, 의미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쓰면 안된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래도, 그래도, 고유명사마저 우리말로 풀어 쓸 수는 없지 않는가? 그것이 독자에게도, 그리고 또 언급되는 대상에게도 예의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한글전용 때문에 이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 무례함이 요즘들어서 지나치게 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서는 로마자에 대하여서는 그나마 관대하지만, 한자에 대하여서는 중국·일본 인·지명인 경우마저도 보이지를 않아, 어쩜 이리 한자를 배척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괴하다.

한자와 로마자 병기가 충분히 된 친절한 기사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2011년 4월 8일 금요일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2학년 1학기 교양수업으로 나는 동아시아 문명의 사적 전개라는 수업을 들었다. 금요일 오후 수업이었으므로 전체 16강 중에, 첫 수업, 중간고사, 기말고사, 휴일 겹치는 거 빼고 하니까 11강인가 12강인가가 남았다. 그 중 8시간 중국사, 나머지 한일월 한 주씩. 이렇게 수업을 했다. 아, 중국사의 비중이 엄청나구나, 그것을 배웠다. 그 다음 3학년 1학기에는 외대 교수님께서 출강하신 교양 아랍어 수업을 들었고, 그 다다음 학기에는 개관 일본사, 그 다음에는 중화민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1학년 때는 문화인류학을 듣기도 했었네. 내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수업이었지만, 배우고 싶었고, 실재로 재미있었고, 또 그 때가 아니면 결코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결과는 보통이었다. 전공과목들과 별 차이 없는 점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개관 일본사는 평균보다 좀 많이 떨어지게 받았다. 일반 교양과목이 아니라 동양사학과 핵심교양과목이라서 그랬는가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존나 재미있었거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전인적 교양에 한 발작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선택과목의 자유도가 높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습량이 많았지만, 전반적인 지식의 범위는 꽤 넓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학의 공기는, 춥다고 창문 닫아 놓은 겨울철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공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스스로 박식하다고 여겼던 내가 아는 수준이란, 단지 그 세계의 베이스일 뿐이었다. 내가 전공으로 선택한 지구에 대한 이해를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은 대학 입학 전부터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은 그것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기회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조금 한눈을 팔면서, 내가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하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수업들을 찾아 들었다.

사실에 대한 지식, 원리에 대한 이해, 합리적인 사고방식, 선입견과 반대되는 사실을 마주쳤을 때 가져야할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것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인문·사회·자연·예술 모든 측면을 망라한) 세상을 바라보는 오직 그 사람만의 관점. 이런 것들이 바로 전인적 교양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추에 대한 기호, 선·악에 대한 판별은 개성의 문제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므로 제외했다. 그리고 이런 전인적 교양에 덧붙여, 혹은 더불어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사회인이 완성되고, 이에 추가로 행동하는 용기가 더해지면, 그 때야말로 그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치기 어렸지만,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었다. 인문대 수업을 들으면서 전혀 생소한 방법론들을 접할 때도,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이 이질적인 요소들이 수렴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지금 역시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 때보다는 많이 게을러졌고, 사실 시간이 지난만큼 쌓인 것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학점 잘 주는 수업을 골라 듣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았다. 수강편람을 뒤지며 수업을 찾을 때, 누구 수업이 재미있다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 교수가 학점을 잘 준다고 하니 그 수업을 듣겠다는 말에는 언짢게 반응했었다. 비례물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포카페이스가 아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려했지만, 정색하는 내 표정을 상대는 분명히 봤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앞서 말한 그 단 한 부분에서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학점좆망가능”이라는 경고는 무섭지도 않았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고, 그래서 나는 굶어야 할 만큼 돈이 없었지만, 그런데도 심지어 행복했었다.



언론을 통해 보이는 지금 대학의 공기는, 내가 느꼈던 공기와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어느 학교에서건, 학생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자유는 학점과 스펙의 경쟁뿐인 듯하다. 대한민국은 빚을 강요함으로서 전 국민을 거대자본권력에게 인신적으로 종속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국민들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 얻어내자마자, 그 자유로 빚을 내어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자본에게 가져다 바쳤다. 빚을 내는 순간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현재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 빚을 진 사람은 정말로 노예가 된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학자금 융자 빚과는 관계없이, 이미 미래가 자본권력에 손에 저당 잡혔다. 그들이 채권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할 자유 따위는 이미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전인적 교양교육을 강요할 수 있는가? 기성세대가? 그럴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내가 이명박에게 주는 경멸을 보낸다. 단 지금의 대학생들은 용기라는 고귀한 가치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나와 내 또래는 배울 수 없었던 그 용기라는 가치 말이다.

또 다시 최고수준의 이공계 학생이 자살했다. 올해 들어서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만 벌써 네 번째다. 징벌적 등록금제 때문에 생긴 심리적 압박이 그 원인이라고 하는데에, 동의한다.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학점으로 사람들 들들 볶으면, 전인적 교양교육은 불가능하다. 물론 대학의 존재 가치에서 전인적 교양인을 양성하는 측면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하고, 전적으로 전문적인 기능인을 양성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 지점에서는 논리를 맞추겠지만, 그렇다면 대학과 직업학교는 어떻게 다르며, 직업인을 육성하는데 드는 비용을 왜 기업이 아닌 가계가 부담하느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다음 질문이다. 징벌적 등록금을 도입한 사람을 과연 교육자로 볼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현명한 채권자는 채무자들에게 자신이 주인임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채무자들을 경쟁시킬 뿐이다. 그 대학교의 총장이라는 서남표라는 작자도, 채권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 역시 다른 대학총장들과 경쟁을 하는 채무자에 불과하다. 채권자가 왜 경쟁을 하겠는가? 대가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따라서 총장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교육자라는 것은 의복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공기업에 낙하산을 타고 가면 경영자가 될 것 아닌가. 옷을 갈아입는다고 채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경쟁이라지만 도라는 게 있다. 점수나 등수는 어쨌든 한 개 스칼라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혹은 요새 유행하는 말로는, 모든 비용이나 편익을 표현할 수 없다. 잔인한 학점·등록금 경쟁을 붙여 학교 평가등수가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그 향상된 어떤 가상의 지표는 그 경쟁 때문에 작아져 버린 학생들의 행복도는 포함하고 있지 않은 지표이다. 여기에서 매우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학교 평가등수 상승이라는 이익은 총장에게 가고, 행복도의 하락이라는 손실은 학생에게 돌아간다. 요새는 그 말도 유행하데. “이익의 사유화, 손일의 사회화”라고.

어떤 문제에서 고려하지 않는 변수라는 말은, 그것이 실재로는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2011년 4월 3일 일요일

4월 3일이네요. 희생자들을 깊이 애도하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슬퍼합니다.

친일파 정치군인으로 4·3 민간인 학살 명령을 내렸던 유재흥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살아있더군요. (모든 문서에 49년에 제주도 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데, 4·3은 그 전 아닌가) 한국전에서 인민군에게 혁혁한 무공을 세워주었는데도, 이후 정치판에서는 승승장구하여서, 유신 때는 석유공사 사장까지 해 먹었네요. 찾아보니 가관입니다. 애국할 맛이 싹 달아나네.


아래에 독도 포스팅은 하느니 못한 짓이었다. 섬과 암석에 대한 구분도 없이 나오는 대로 지껄이느라 말같지도 않는 비유를 했다. 역시 모르면 씨불질 말아야 한다. 윤승환씨의 블로그(http://blog.daum.net/yongha36/)에 글들을 보고 몰랐던 사실들을 좀 더 알 수 있었다.


짜장을 해 먹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춘장이 안 풀렸다. 좆망. 그냥 라면 먹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요리까지 잘 못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2011년 3월 31일 목요일

독도

독도가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들이 독도가 일본의 영토이지만 한국측에 의해 점거당해있다는 식의 서술을 검정했다고 한다.

일본측의 주장은 별로 경청할 가치가 없는 주장이다. 손쉽게 반박가능한 주장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팽창야욕은 꽤나 깊은, 그리고 건전하지 못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말 메이지정부는 영토확장에 대한 심각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영토확장이라면 닥치는 대로 먹어댔다는 비유가 적절한 것 같다. 심지어 확인되지 않은 신뢰할 수 없는 주장에 기대어 있지도 않은 섬을 자국 영토라고 고시를 내렸으니, 이 섬이 나카노도리시마이다.

그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이미 2005년에 경향신문과 무려 국정브리핑에 기사화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철두철미한 역사지우기공정 때문인지 참여정부의 국정브리핑 페이지는 현재 존재하지 않고, 네이버 뉴스아카이브에서 검색이 된다. 구글 검색에서 맨 앞에 나온 것은 네이버 독도블로그이다.

네이버 독도 블로그의 국정브리핑 기사 펌(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o2sky0&logNo=110025865200&viewDate=&currentPage=1&listtype=0)

경향신문의 나카노도리시마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3221806251&code=960201)



메이지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구세력의 정치적인 희생이 필요했다. 그 중 한 무리가 하급무사계층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신정부에 대하여 무장항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진압당한 후, 자유민권운동이라는 방법으로 메이지 과두정부세력에 대항했다. 입헌체제가 성립되고 의회가 만들어진 후, 이들은 정부의 외교방침을 문제 삼는 것이 좋은 효과를 거둠을 알게 되었다. (피터 두으스, 김용덕역, 일본근대사, p.136) 그러나 이들의 원대한 꿈에 비해, 실현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별로 였다. (p.137)

이런 서술을 한다고 내가 이명박 정부의 외교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외교문제가 국내 정치의 이슈가 되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하여 사회 내부에 합의 된 목표나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한 세기 전 일보의 예를 든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의도 명백하더라도, 국민적 합의에 거슬러 외교정책을 비판하기란 쉽지 않다. 메이지 후기 일본의 외교방침에 대한 일본 내 정치인들 사이의 알력은,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에 대하여 메이지 과두정부 측과 민권운동파 측 사이에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독도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국민들은 정부가 더 일본에 강력하게 대응하기를 바란다. 특히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일본에 대하여 보이는 태도는 조롱을 넘어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현 정부의 외교는 대미굴종이 기본전제로 깔려있다. 그걸 외교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일단 별개의 논의로 치자. 그런데 대일외교는 (대북문제와 마찬가지로) 대미굴종이라는 전제에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는 주제이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느낌이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정신은 없는데, 손발은 아직 움직이고 있어서 척추반사 수준의, 건드리면 꿈틀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2년 전 요미우리 신문에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기사가 났는데, 일본은 정말로 조금만 기다려 준 건지도 모른다. 현 이명박 정부는 메이지 정부와는 달리, 일단 맛탱이가 가 있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국민들은 실현 가능성에 촛점을 두지 않고 강경한 대응만을 주문하는 것일까? 글쎄, 사실 더 강경하게 뭔가를 할 수도 없다. 지금 독도는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데, 뭘 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완전한 대한민국의 영토로서, 군인도 아닌 경찰이 그 섬을 지키고 있다. 독도 앞바다에 시멘트와 공구리를 부어 길이 3 km의 활주로를 만들어 동해에 떠 있는 불침항모를 만들면 될까? 더더욱 자위대가 그 곳을 점령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꼴이다.

우리가 일본에 강한 대응을 하면, 일본이 꼬리를 내릴 거라는 희망섞인 분석도 있다. 그런데 강한 대응은 뭔가 자극이 있을 때 하면 된다. 허공에 좆질은 하는 놈만 우스워 질 뿐이다. 어차피 해자대가 독도를 점령할꺼라고 독도에 상륙해 점령전을 벌일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지스함을 진수하고, 해군력 증강사업하고, F-15K를 도입하고 하는 것이, 만에 모를 그런 상황에 대비해서이지 않는가. 보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란, 그냥 찍 해봐야 꼴통 극우 말종들이 통통배 비슷한 거 타고 근처에 와서 배 위에서 현수막 펼치고 깝죽거리든지, 연구선이랍시고 침몰되도 상관 없는 배가 근처에 와서 바닷물 샘플이나 떠 가고 수심이나 제고 그러고 말 것이다. 그럴 때, 그들이 선을 넘으면, 일본 영해로 도망치기 전에 나포해서는 출입국 관리법 위반 같은 거로 망신 좀 주거나 하면 되지 않나? 서해에서 불법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은 많이들 잡아오지 않는가.

물론 모든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기술을 하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 굉장히 도발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입장을 바꿔 보는거다. 부산 앞바다에 남형군도라는 작은 바위섬이 있다. 완전한 상상이지만, 그 섬이 전후처리과정에 이상하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이를테면 일본군이 최후 방어선 비슷하게 시설을 만든 게 연합군이 보기에는 확실한 일본영토의 인증으로 보여서), 일본 영토가 되었고, 거기 지금은 자위대 레이더 기지가 건설되어 있는 상황을 상상을 해 보는 거다. 당연히 우리 교과서에는 그 섬이 우리땅이라고 서술되어있겠지만, 실재로는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내가 교과서에서 그 서술을 배운다면? 일본에 대한 증오와 함께, 자기 땅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굴욕감을 동시에 느낄 것 같다. 한국이 점령하고 있는 땅이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교과서를 본 일본 애들은 좀 다를까? 선진국이니까? 오히려 저따위 춍들한테 땅을 빼앗기고, 얼씬도 못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오히려 더 심각한 자존심의 상처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왜곡된 적대감을 가진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것은 동아시아의 평화에 위협이 된다. 일본의 관료들이 굉장히 위험한 불장난을 한 것 같다. 그 뒤에서 아마 정치인이 손을 썼을게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국권회복의 상징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두고두고 곱씹을수록 울컥해지는 문장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게 독도는 나카노도리시마처럼, 있으면 (되면) 요행, 없어도 (안 되도) 그만 정도인 섬일테다. 단지 만만한 춍들이니 건드려보는 것이고, 곰같은 로스케들은 화나면 무서우니까 그냥 잠잠. 이병맛 정부는 정말 전 정부랑 비교된다. 지지리도 못났다.

2011년 3월 27일 일요일

방문자가 늘었다.

텍스트큐브에서 블로거로 옮긴 후에 원래부터 인기가 없던 블로그에 사람들 발길이 뚝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후쿠시마 원전을 보고 상념을 적은 글이 네이버 검색결과 상단에 뜨는 모양인지, 근래 들어 방문자 수가 많아졌다. 한켠으로는,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 더 읽어보고 더 깔끔하게 쓸 걸 하고 후회를 하지만, 다른 한켠으로는 게을러서 수정을 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사실관계가 잘못된 치명적인 오류도 있는데 말이다. 독일에서 가동을 일단 멈춘 원전은 9기가 아니라 7기이다.

사실 더 정성을 들여 쓴 글은 그 다음에 있는 메신저 수성 도착에 대한 글인데, 이 놈은 별로 인기가 없네. 아마 그 포스팅을 이틀 전에 썼다면, 방문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낚시는 타이밍이라는 말도 있다.

과학은 반복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재현가능성이라는 척도가 따라 붙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몇 달 안에 큰 여진이 있을 확률이 높다. 큰 지진 이후에는 또 상당한 크기의 여진이 수 개월 내에 발생한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성 발사 스케쥴은 대충 잡혀 있으므로, 그 때 적절하게 포스팅을 한다면, 방문자를 늘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블로그가 되지는 못하리라.

전에 어디에선가 방문자가 많은 블로그가 되려면, 꾸준히 게시물을 올리고, 다른 블로그들을 방문해 트랙백을 걸고, 등등의 조언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게으르고 숫기도 없고 게다가 불친절하고 무책임한 블로거이기 때문에, 그런 조언을 실천하지는 못한다. 단지 넘쳐나는 오류로 점철된 포스팅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소소하게는 ㅐ 와 ㅔ 를 구별 못하는 철자 잘못부터, 용어를 잘못 쓰는 예들, 게다가 아까 본 것처럼 사실 관계가 잘못된 것과 논리적이지 못한 구성까지.

하, 방문자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은 점도 있지만, 바닥이 고스란히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 부담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비록 졸렬한 생각들이되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그런 욕망이, 부끄러움보다는 좀 더 큰 것 같다.

2011년 3월 23일 수요일

사람의 능력

어떤 사람을 더러 능력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평을 가끔 들을 때가 있다. 능력.

인간의 능력을 제한하는 요소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신체적인 능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유전자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결정되고, 사회적인 인간관계 역시 어릴 적에는 거주 지역,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상당부분이 결정된다. 그리고 재산의 상속이 있다. 여기까지가 기본 베이스고, 그에 더하여 게으름·부지런함, 신중한가 즉각적인가, 인색한가 방탕한가, 자폐끼가 있는가 푼수끼가 있는가 따위의 개인적인 성향이 나머지 부분들을 결정한다. 요즘에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 아이의 제로 베이스는 부모의 교양이라고.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자기의 능력이고, 어디까지가 부모를 잘 만난 덕일까. 세상의 많은 모순들의 근원은,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 있다. 어쩌면 모든 모순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어떤 인간도 그 둘이 분리되어서 평가될 수 없다. 원래부터 클래스가 달랐다는 말. 무한경쟁·무한책임·적자생존·약육강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차라리 위안을 주는 말이다.

최근 능력이 대비되는 두 분을 봤다. 두 분 다 같은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국회의원이었던 한 분은 무혐의로 결정이 났고, 다른 한 사람은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먼저 번의 사람은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능력, 혹은 죄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능력자였고, 불행히도 두번째 사람은 그런 능력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있다. 부자아빠 거지아빠 열풍이 나라를 휩쓸던 시기였다. 그 열풍이 몰아치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부동산 폭등의 진원지에서 새로 주택을 구입하는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그만큼 큰 재미를 보지 못했거나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는 두 층위가 있다. 관대한 층과 서든데쓰 층이다. 관대한 층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경쟁 보다는 담합을 한다. 그것이 장려된다. 한 두번의 실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 동안은 쉬면서 취미를 즐기고 특기를 가다듬을 수 있다.

그 아래에 서든데쓰 층이 있다. 이들에게는 연대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연대는 실정법 상의 범죄이거나, 경쟁에서의 탈락 둘 중의 하나이다. 이들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나 패배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들은 쉴 수 없다. 더 나쁜 조건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 경쟁을 이긴 자들에게는 경쟁한 시간만큼의 생존이라는 망극한 댓가가 주어진다. 그리고 이제는 태어날 때부터 관대한 층, 서든데쓰 층이 결정되어 있다. 드문 역전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것을 더러 아직 우리 사회가 계층간 출입이 일어나는 건전한 사회라는 증거라고 하는 이도 있고, 그게 뉴스거리가 되는게 이미 우리 사회가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이라는 게 있다. 법이라고도 하더라. 그 규칙 어디에도 관대한 층과 서든데쓰층을 구별하라는 말은 없다. 공평하다. 법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지 않던가. 어디에 관대한 층이 있고, 서든데쓰 층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관직을 통해서 자신의 음주 뺑소니 치사 같은 죄를 씼을 기회가 서든데쓰 층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보면서 배운다. 나에게는 추상같은 규칙인데 그 위에 빽과 힘이라는 게 존재하더라는 것을. 이제는 사람들이 그 힘과 빽을 사람의 능력이라 부르더라.

1월 말 쯤에 쓰다가 정리가 되지 않아 놓아 두다가, 김형을 보고 마음에 스치는 바가 있어 급하게 나머지를 체웠다.

2011년 3월 21일 월요일

메신저 수성도착

미국의 수성탐사선이 수성에 도착했다. 18일의 일이다. 발사되기는 2004년 8월에 발사되었는데, 이제야 수성선회궤도에 들어올 수 있었다. 수성의 중력은 약하기 때문에, 탐사선이 수성의 중력권에 잡히기 위해서는 속도를 충분히 줄여야 한다. 그런데 수성은 태양에 더 가깝기 때문에 지구에서 수성으로 탐사선을 보내는 것은 높은 곳에서 물건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당연히 속도가 빨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금성이나 화성에 대하여서는 에어브레이크 방법을 쓸 수 있지만, 수성의 박약한 대기에 대하여서는 그런 방법을 쓸 수 없다. 대신 행성들의 중력을 이용하여 속도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메신저는 발사 후 그 동안 지구를 한 번, 금성을 두 번, 수성을 세 번 지나면서 속도를 줄여왔고 (그 동안 태양 주위는 15번 공전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수성선회궤도에 들어가기 위해서 600kg의 연료를 역분사 해야 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수성에 대한 지식에는 모순이 있다. 수성의 표면은, 검버섯 같은 바다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달과 비슷하다. 충돌구로 뒤덮힌 이 작고 뜨거운 행성의 표면은, 이미 이 행성이 열적 진화가 끝난 죽은 행성임을 암시하는 것 처럼 보인다. 속이 아직 뜨거운 지구형 행성은 껍데기가 햐땩햐땩 디비지기 때문에 충돌구를 그렇게 오래동안 모을 수 없다. 그런데 반면에, 이 행성은 자기권을 가지고 있다. 지구의 자기권은 아직 식지 않은 액체상태의 핵이 대류를 하는 이유로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유를 하자면 이 죽은 것 같은 행성을 가까이 가서 보니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수성에 대한 다른 두가지 관전 포인트는 밀도와 얼음이다. 먼저 수성은 지나치게 밀도가 높다. 금속으로 된 핵이 다른 지구형 행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크다는 이야기인데, 수성은 암석질 성분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다음 포인트는 수성의 극지에 생긴 충돌구 분지에서 발견된 얼음의 흔적이다.

메신저에는 여러 관측장비들이 붙어있다. 일련의 감마선, X-선, 중성자,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까지를 포함하는 몇개의 분광기들이 달려있고, 자기장을 매핑하기 위한 기구, 레이저 고도계, 지표와의 상대속도를 제기 위한 레이더 (이를 통해 중력장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마지막으로 지표기복을 얻기 위한 입체시 카메라가 달려 있다.

수성을 향한 다음 미션은 ESA와 JAXA가 공동으로 2014년 발사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BepiColombo라는 미션이다. 이 미션은 당연히 메신저의 결과를 토대로 설계된다. 베피콜롬보는 수성 표면에서 200 km 고도의 원형궤도를 돌면서 고해상도 자료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메신저는 이지러진 타원궤도를 돌고 있는데, 가까울 때는 수성 표면에서 20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멀 때는 15000 km까지 멀어진다. 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케플러의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을 기억하라)

메신저가 이렇게 긴 타원궤도을 돌게 된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빠른 속도로 진입하면서도 수성 중력권에 들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도 있지만, 덕분에 수성에서 멀어질 때에는 태양풍에 대한 관측이 가능해지고, 또한 태양과 수성 표면 양쪽 사이에서 가열된 선체를 식히는 시간을 벌어주기도 한다.

2011년 3월 19일 토요일

안심하고 싶다!!!

인터넷에서 “원전이란 어떤 것인지 알기 바란다”라는, 원전 건설에 참여했던 일본인 平井憲夫씨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3255) 일본어 제목은 “原発がどんなものか知ってほしい”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문에 모두가 초조해하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맨 처음 히라이씨의 편지를 접한 곳은 목요일 저녁 프레시안에서 였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316171600&section=05) 이 기사는 편지의 내용을 요약 발췌하여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두려웠으나, 안심하고 싶었다. 다행히 그 아래 댓글 중에서, 히라이씨의 이 편지가 이미 DC발 낚시라는 의견을 보았다. (2페이지 댓글의 Hans8501의 댓글) 하지만 글쓴이의 신상이 이미 명확하기 때문에 웹상에서 검색을 통해 진위여부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지는 사실이었다. 한스는 무슨 근거로 그것이 DC의 낚시라고 한 것일까.

그러다가 다음 까페에서 (http://cafe.daum.net/kicha?t__nil_cafemy=item) 다시 한 번 이 글의 또 다른 링크를 보게 되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3255) 뷰스앤뉴스의 기사는 일본어 전문을 번역해 놓았기 때문에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다음 까페에서도 이 글이 이미 반박당한지 하세월이라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어디서 어떤 내용이 반박당했는지는 제시되어있지 않았다.

뷰스앤뉴스 기사에도 댓글이 많이 달려있었다. 히라이씨의 편지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설득력있는 글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댓글들은 원자력발전을 우려하는 글들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댓글들도 눈에 띄였다. 특히 푸쿠라는 사람의 댓글이 히라이씨의 편지를 반박하는 내용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를 안심시켜주지는 못했다. 푸쿠는 “우리나라는 다른데요” 수준의, 혹은 말꼬리 잡기 식의 반박은 하지만, 히라이씨의 주장을 기초에서부터 허물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우리나라의 원전은 시공때부터 잘못이 생길 수 없는 구조가 어떠어떠한 이유로 갖추어 져 있고, 그 증거로 어떤 것을 들 수 있다 같은 반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냥 우리는 안전하니까 안심하세요의 그냥 좀 긴 변주랄까.



댓글 들에 따르면, 히라이씨의 편지는 DC발 낚시이기도 했고, 동시에 이미 반박된 내용이기도 했다. 내용의 진위에 대한 간단한 언급은 결국 “우리는 다르고 안전하다”로 끝맺어졌다. 내가 요 며칠 사이에 보아왔던 것은 (어떤 의견이 괴담으로 덧칠되어져 간다는 의미에서) 괴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1등급 병신들의 향연이었을 수도 있다.

어릴 적에 TV에서 봤던 희미한 기억이다. 1951년 국민방위군사건이 알려져서 착복혐의를 추궁받자, “점마 빨갱인데요”라고 되받아치던 개새끼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내부자의 고발로 비리가 밝혀지면, 고발의 진위 여부보다는 고발자의 인간관계가 먼저 수사된다. 어제는 X파일 기자가 유죄선고를 받았는데, 그 보도를 통해 밝혀진 그 범죄를 모의하고 실연한 사람들에게는 무죄가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거짓은 사람을 안심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2011년 3월 16일 수요일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견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사태가 차차 손아귀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현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환경문제는 지구온난화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 다급하게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에너지의 부족은 아쉬우나마 원자력발전으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에 반대하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방사능에 대한 비정상적인 공포 유발에서부터 시작하는 그들의 주장은 감성에 호소하는 면이 많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나오는 여러 주장 역시 신뢰하기 어려웠다. 특히나 2000년를 전후하여 초반에 원자력폐기물 저장소의 입지 선정이 문제가 되었을 때, 지질이나 단층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에서 비롯된 주장을 펼쳐나간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국내 환경론자들을 일종의 극단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해왔다. 더군다나 현대의 미친듯한 에너지 소비를 충족시킬 수 있는,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현실적인 대안은 원자력 말고는 아직 생각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있다. 시버트 단위로 표시되는 방사선량이 얼마만큼이나 뛰어오르는지 확인하면서 굉장히 놀랐다. 평소에는 시간당 나노 단위에서 놀고, 엑스레이를 찍을 때 마이크로 시버트 이러는데, 시간당 밀리 시버트가 파괴된 원전 근처에서 검출된다고 하니,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세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1-2 시버트를 받으면 한 달 내에 사망률 10%라고 한다. 일단 이정도 수준에서 대참사만은 면한다고 하더라도, 흩뿌려진 방사선 물질들 때문에 태평양에서 잡은 고기들을 마음 편히 먹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태평양은 넓고, 사실은 그동안 많은 방사성 폐기물들이 버려져왔지만 말이다.

유럽은 원자력발전에 대하여 동아시아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아마도 체르노빌 참사를 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참사가 일본에서 발생한 것은 어떤 점에서는 행운인지 모르겠다. 중국에서 발생했다면, 그것은 원자력발전소가 위험해서라기 보다는, 중국이라서 그렇다는 쪽으로 해석되었을 공산이 크다. 한국이나 일본의 시민들은 보다 강력한 주장으로 원자력 발전에 반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 년 내에 중국 기원의 원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에는 중국 정부의 공식적 언급보다 한국이나 일본의 방사능 관측대가 먼저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원자력발전이 선택 가능한 해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 알려진 이상, 다른 대체 에너지원을 활발히 개발하든가 아니면 에너지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 중국같은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 또는 한국처럼 성장중독에 있는 나라가 선택하기에 후자는 너무나도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청정에너지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독일. 나는 한달에 60kWh정도를 소비하는 댓가로 25 유로를 매달 지불한다. 세금은 30% 정도가 붙어 있다. 한국이라면 사용료 56.2원/kWh, 기본료 380원이 적용되므로 3752원이 나오는데 여기에 부가세와 기금을 곱하면 4280원이 되고, 이를 유로로 환산하면 2.75유로 정도가 나온다. (전기요금 계산은 http://jjangfree.tistory.com/865을 참조) (처음에 30kWh라고 썼다가 정확한 통계를 찾게 되어 4월 21일에 고쳤다. 고치기 전에는 각각 2066, 2360, 1.5 였다.) 나는 혼자 살고 있으므로 이는 아주 극단적인 예시일 수 있다. 일반적인 가정을 비교할 경우 그 차이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그래도 독일의 전기요금이 한국에 비해 훨씬 비쌀 것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댓가는 이 정도로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원자력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며칠 전 독일 정부가 오래된 원전 7기(처음에 9기라고 썼다가 4월 8일 수정)의 임시가동중단을 결정하였으므로, 전기요금은 더 비싸질 것이다.

다시 한국의 경우로 돌아가 보자. 지난 겨울 전기 사용량이 공급을 턱 밑까지 따라 붙자 정부에서 전기요금 현실화 카드를 살짝 꺼냈서 간을 봤다가 사람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일단 물밑으로 접어 놓은 적이 있음을 기억하자. 그런데 원전을 폐쇄하자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짧은 인생을 돌아보건데, 국민학교·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전등 스위치 위에는 절전 스티커가 붙어 있고, 물자절약 에너지절약 포스터 그리기 표어 짓기 따위를 했다. 절약이 미덕이 사회였던 것이다. 그랬는데 대학교 다닐 때는 이미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되어 있었다. 그 빌어먹을 1997년 외환위기가 사회를 완전히 그리고 급속히 재편성해 버렸다. 한국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소득에 비하여 높은 편이다. 소득에 비하여 소비량이 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온돌이 건강에 좋은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시스템인지는 잘 모르겠다. 비슷하게 배달시켜 먹는 문화는 확실히 에너지 과소비 측면이 있고, 승용차 같은 것도 다른 나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대형이다.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내수용 차량을 튼튼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전철망은 일본과 비교할 경우 형편 없는 수준인데, 땅값이 너무 올라버려 네트워크를 더 이상 확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지진은 확실히 인류의 역사를 바꿀 지진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일본 경제의 침체 이런 정도가 아니라,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 어떤 제한을 걸어버린 마법같은 지진으로 기록될 것 같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성장엔진들이 얼마만큼 원자력의 유혹을 떨쳐버릴지는 미지수이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좀 부정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에서는 거의 확실히 원자력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것 같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나라나 다른 중간보스 급의 나라들에서도 원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리라 예상한다.

사회적 비용이 그냥 웃기고 자빠진 소리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인터뷰에서 읽은 이야기다. 자기는 조상 대대로 거기서 살아 왔다고. 그런데 정부가 그 근처에 원전을 지었고, 이제는 위험하다고 밖으로 나가랜다. 어디로? 그리고 그가 살아왔던 땅과 마을에서 계속해 살아갈 당연한 권리는 어디로? 우리나라에서도 보상금으로 땅투기 해서 부자되라는 속삭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다들 좀 불편하게 살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 아니,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2011년 2월 8일 화요일

배우고 알게 된다는 것

학회가 끝나고, 로마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일행과 헤어졌다. 학회장 근처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밀라노에 온 또 다른 학회 참석자와 만나게 되어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양반 역시 기차를 타려면 시내까지 가야 하니까.

내가 주제로 잡고 있는 부분은 간단한 행렬로 그 문제가 기술될 수 있다. 즉, 간단한 선형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학회에서 사람들이 그 주제로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나는 이것이 간단한 선형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무엇이 문제이길래 이것이 계속 이야기되는지. 그 사람은 전자 전공이었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고 서툰 부분들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의 대답은 요약해서 이야기하자면, “감지기는 자극에 선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선형성을 줄이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보정계수나 식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진부한 표현으로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풀고 있었던 것은 그렇다면 연습문제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니까. 하하.


수학으로 계산되는 깔끔한 모델에 심취해 이를 좋아했었는데, 그것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끔 쓰는 state of art라는 용어, 기술적 노하우들이 쉽게 전달이 안되는 이유는 그런 비선형성들이 이론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들은 한 사람의 경험자에 의해서 유지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분야의 경력자들을 조화롭게 조직하는 것을 통해서만이 유지될 수도 있다. 외국의 석학을 모셔와 강의를 맡긴다는 기획들은, 재대로 된 기술적·학술적 경험을 해 본 사람의 아이디어는 결코 아닐 것이다. 미국의 연구기관에 많은 외국인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그들이 고국에 돌아가서 같은 수준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단지 기자재가 빈약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기술과 과학은 다르다고. 맞다. 합리적인 의문을 품고, 객관적인 실험과 관찰을 통해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체계적인 지식을 쌓아가는 방법인 과학은, 뭔가 멋진 것을 만들어 내어야 할 것 같은 기술과는 격이 다른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기술은 객관적인 실험과 관찰의 다른 말이다. 실재로 유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의문을 풀기 위해 스스로 기구를 고안하여 실험을 한 이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기구들의 성능은 당대의 기술적 수준에 의해 제한된다. 의문->관측·실험->지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관측과 실험이 빠지게 되면, 의문은 신화가 되고, 종교가 되고, 이데올로기가 된다.

요즘에도 대학에서 실험·실습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언론만 보면 요즘 대학생들은 그저 취업준비에 미쳐서 영어와 쉬운 학점에만 목멘다고들 한다. 그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학은 이미 현장에서 활동할 사람들을 키우는 기관이 아니라, 단지 다시 한 번 젊은이들의 카스트를 파인튜닝 해주는 기관으로 변질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뭔가를 배우고 알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스템의 비선형성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2011년 2월 1일 화요일

難作人間識字人

박노해의 손무덤을 다시 읽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읽고 울어버리련다.



최규석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가 처음 게시판에 올라왔을 때,

예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양성평등을 주장하던 이들이 보여줬던 적대감을 기억한다.

주류가 노무현에게 보여줬던 그 짜릿한 개무시의 싸지르가즘.



네가 결코 내 입장이 될 수 없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인간은 가장 잔인해 질 수 있다.



매천야록을 시간이 걸려 마저 다 읽었다.

難作人間識字人

흉강을 후벼 파 내는 듯 아프다.

2011년 1월 17일 월요일

학회 논문

곧 학회가 있다. 그 준비때문에 무척 바쁘다. 프리젠테이션은 당연히 발표시점까지 준비해야 하는 건데, 문제는 이번 학회는 풀 페이퍼를 학회 마지막 날까지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이 둘이나 되다 보니 바빠지는 것이다.

논문을 쓰는 흉내를 내 보면서 몇 가지 배운 것 중에 요긴한 것이 있다면, 그림을 준비하는 방법이다. 보통 웹상에서 문서를 읽을 때는 jpg나 gif 정도의 그림이면 충분했다. 당연히 처음에 학회 논문을 준비할 때도 그리 하였었다. 문제는 화면에서는 충분해 훌륭해 보이는 해상도의 그림들이 종이에 출력되고 나면 형편없는 품질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불만스러웠지만, 그림의 해상도를 높이는 임기응변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러다가 석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eps포멧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이제, 그래프 따위를 그릴 때, jpg나 gif같은 래스터 형식은 개나 줘버리라지.

일단 흰 바탕에 선이 몇 개 있고, 점이 몇 개 있는 그래프는, eps포멧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래스터 형식은 모든 점에 대한 정보를, 그것이 흰바탕이라도, 저장하고 있어야 하는데, eps는 그런 낭비를 하지 않는다. eps는 벡터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선을 긋고, 좌표 얼마에 점을 찍고, 그 밑에는 내장 폰트에서 글자 아무개를 읽어서 찍어라. 이런 식으로 정보가 저장되므로, 정보의 양에서 훨씬 이득을 본다. 게다가 eps는 아스키 형식으로 되어있어서 사람도 그 내용을 해석할 수 있다. eps는 그래서 (인캡슐래이티드) 포스트스크립트 “언어”이다. 정 급하면, (이론상) 메모장을 열어서 축의 숫자를 바꾼다든지 할 수 있다. 훨씬 적은 용량에도 불구하고, 종이에 출력했을 때, eps형식의 그림은 jpg나 gif에 비해 품질이 탁월하다.

처음에 학회초록을 쓸 때였다. 내가 직접 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영문들을 타임스 뉴 로만으로 폰트만 바꿔주니, 웬지 그럴듯 하게 보여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에게 제출한 다음에는 완전히 빨갛게 되서 돌아왔지만. 한 몇 년 있다가 텍을 알고 난 뒤에는, 역시 멍청한 영문들이지만, 웬지 텍의 article 서식에 맞추어져서, 컴퓨터 모던 폰트로 찍혀 나오는 문서들이 또 역시 그럴듯하게 보여서 한참 우쭐해 하던 적도 있었다. 학회서식은 그보다 좀 더 멋진데, 거기에 샤프한 eps그림들이 박혀 있으면,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미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워진다.

eps의 또 다른 좋은 점은 ppt에서 자유로운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jpg로는 좀 어려울 것이다. eps를 그림 삽입을 통해 불러 들여서 그룹 해제를 하면, eps파일을 이루는 선분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그래프 같은 것을 자동적으로 일단 그리고, 강조해야 할 부분을 편집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MS의 eps 불러오기 루틴이 썩 훌륭하진 않아서, 선분이 지나치게 많은 eps파일을 불러들이면 깨지는 현상이 발생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eps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당연히 없다. 사진 같은 그림이 들어가야 할 경우에는 eps는 그것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각 화소마다 값들을 넣되, 그 저장되는 형식을 아스키로 취하기 때문에, 용량이 엄청나게 불어나게 된다. 요즘이야 컴퓨터 저장장치가 워낙에 방대하다보니, 방만하게 사용하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는데, A4용지 한 구석에 들어갈 8cm x 8cm짜리 그림이 10메가가 된다거나 하는 것은 썩 효율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놈의 학회는 풀 페이퍼를 여덟장이나 써 내야 한다. 글자도 작고. 아, 아주 죽어나겠다.

2011년 1월 11일 화요일

이주

블로그가 옮겨졌다. 텍스트큐브에 익숙해서 그런지, 좀 이상하다.
배경은 처음에 글이 아무 것도 없을 때는 예쁘게 보였는데, 지금 보니까 별로 아닌 것 같다.
텍스트 폭의 설정이 달라서 그런지 예전에 올렸던 사진들이 삐져나간다는 것도 어서 손을 봐야 할 것 같다.

또한 통계가 텍스트큐브와는 다른 방향으로 세분화되어있는 것 같다.
기본 글자 크기가 너무 큰 것 같아서 촌스러워 보인다.
이거 레이아웃 최적화를 위해서 좀 용을 써야 할 것 같은데, 덕분에 html이니 css니 하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것들을 좀 익혀야 가능할 것이다.

블로그의 주제에 대하여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은 이게 제일 큰 문제다.

2011년 1월 9일 일요일

곧 옮겨주나?

텍스트큐브에 올리는 마지막 포스팅이다.



요즘에는 매천야록을 읽고 있다.

서울에는 고자가 많았다는 기사가 흥미로웠다.



요즘에는 슬픈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