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자연과 문명

학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알펜포어란트를 지나갔다. 숭숭 동그란 구멍이 난 숲이 산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숲의 구멍의 중심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문명이 이르기 전, 유럽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삼림. 유럽의 중세는 숲을 개간하면서 증가하는 인구를 흡수해 온 시기였다. 숲 가운데 정착지가 생기고, 주면의 숲을 벌목하여 농장과 마을을 확장해왔다. 숲은 좀 먹듯이 동그랗게, 정착지에서 동심원을 그리면서 구멍이 숭숭 뚫히게 되었고, 그 원은 인구와 함께 확장한다.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제 거의 모든 숲이 파괴되었다. 알펜 포어란트는 그 동심원상으로 사라지는 숲을 볼 수 있게 남아있는 지역 중의 한 곳이다.

사람이 석탄·석유를 사용하기 전까지 대용량의 발열을 하기 위한 재료는 목재였다. 사람이 콘크리트와 철근을 이용하여 건물을 만들기 전까지는 건축에 반드시 목재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플라스틱이 대체하고 있는 수 많은 생활용품은 나무로 만들어졌었다. 요즘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웠을 때, 그 가장 처음부분은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한 고대 4대문명에서 시작했었다. 그러나 강에만 촛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그 강 유역에 존재했던 대삼림의 존재가 묻혔을 뿐일 것이다. 그래서 마스터 키튼은 도나우 강 문명을 찾으러 다니고, 중국에서는 장강 문명을 열심히 찾고 있다.

동아시아사를 배울 때, 참고문헌 목록의 책들 가운데, 중국 고대사에 대한 책을 읽고 기말 보고서를 써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은 갑골문·고고학 등의 성취로부터 밝혀 낸, 하·은·주·춘추·전국·한대까지의 자연사와 생활사에 중점을 두고, 주제어 별로 서술되어 있었다. 하·은 시대 이전, 지금의 화북평원에는 대삼림이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거지 주변의 삼림이 벌목과 화전으로 개간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면적은 넓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화북지역에 삼림은 남아있지 않다. 장강 유역과 사천분지의 삼림은 조금 후에 파괴되기 시작했다. 고사에 자주 등장하는 현재 장안 주변의 관중이라는 지역은, 비옥하기 짝이 없는 지역으로 묘사되지만, 내가 아는 현재의 섬서성은 건조한 반사막 내지는 초원 지대이다.

환경이 황폐화되면서 문명이 사그라든 많은 경우들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에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깊이있게 서술하지 않았지만,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고대 그리스의 많은 식민 항구도시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잡지와 《지구대기행》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들이 비슷한 테크트리를 따라간다. 인구가 늘어나면, 자원의 소비 역시 따라서 증가하고, 이를 위해서 주변의 자원(삼림·물·토양·광물)을 과도하게 이용하게 되면서, 그 일대의 자연 환경이 더 이상 문명을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에페수스는 삼림벌채로 인해 토양유실이 일어났고, 그 모래가 바다로 흘러들어와 항구를 매우는 바람에 입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상당한 건조지역이었던 탓에 지나친 관개가 토양의 염화를 불러왔고, 결국 농업은 포기되었다.

사실 흔히들 환경의 역습이라고 말하는 이런 현상들이, (문명의 붕괴에서 이미 제시했듯이) 모든 문명의 붕괴를 설명할 수는 없고, 수백년 단위의 장기적인 기후 변동과 환경의 역습 효과를 분리해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그린란드의 바이킹 정착지나, 화북에서 장강으로 중국 문명의 중심이 이동한 경우가 있겠다.

지구대기행 13편은, 몇몇 문명의 흥망성쇠를 제시한 후, 한가지 예외, 서유럽 문명을 제시한다. 중세가 한계에 다다른 이후 서유럽 문명이 멸망하지 않았던 이유. 그들은 새로운 온대림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대륙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더 이상 처녀림이 펼쳐져 있는 꿀이 흐르는 대지는 남아있지 않다고. 인류의 남아있는 미개척지 우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메마르고 가혹한 곳임을 일깨운다.

한 때, 국민성과 지도자의 자질로 (야매스럽게) 설명되던 문명론을, 이제는 상당한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하여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류 전체의 문명을 떠바치고 있는 지구의 자원 서플라이 혹은 충격흡수 능력을 수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탄소와 질소의 순환, 열이동, 종다양성 따위가 얼마 정도나 인간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는 단계이다. 앞으로는 이런 자연환경적 맥락을 과학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문명론들, 혹은 자연을 언급하더라도 자의적으로 그것을 인간에 가져다 붙여 멋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문명론들은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 날 알펜 포어란트를 비행하던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때, 창 밖을 보니 뒤따라오는 비행기의 항법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비행기가 내릴 활주로의 옆 활주로를 이용할 비행기가 다가오는 것 역시 보였다. 엄청난 양의 석유를 태워 수십톤이 넘는 금속 통을 공중에 띄우고, 그를 위해서 그 무거운 금속 통을 1 초에 300 미터의 속력으로 날리는 것도 놀랍기 그지 없지만, 그러면서도 그토록 정교하게 이들을 제어하고 관리하여,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곳으로 유도하는 모습에 또한 경이로움을 느꼈었다. 인류는 행성 지구에 대한 인간충격 역시 그 정도 이상으로 정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오늘은 전국적인 산발적 정전이 있었다. 전력 사용량이 64 GW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64 GW는 일인당 1280 W이고, 약 1.7 마력이다. 한 사람이 말 두 마리가 달라 붙어야 만들어 낼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보통 사람이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일은 약 0.1 마력이라고 하므로, 현대 한국인은 17 명의 노예를 부리고 있는 샘이다. 한 가정으로 치면 노예가 한 50 명 붙어 있는 샘이므로, 100 년 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더 할 수 없는 호사이다. 그런데 과연 이 정도의 소비가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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