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왜 지금 서양이 지배하는가?


도입

북송 시대를 살았던 심괄(沈括; 1031-1095)은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위관료였고, 군의 지휘관이기도 했고, 기술에 대한 이해에도 뛰어났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몽계필담(夢溪筆談)》이 있다. 천문학, 수학, 지리, 지질, 물리, 생물, 의학, 약학, 군사, 문학, 역사학, 고고학, 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은 화석의 기원을 다루기도 하고, 범중엄이나 왕안석 같은 당시 인물을 평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UFO목격담을 싣고 있기도 하다.
한편 시간이 좀 흐른 뒤, 그러니까 네덜란드에서 튤립 거품이 꺼지고 난 뒤, 일본인들은 관상용 나팔꽃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돌연변이 나팔꽃은 시장에서 희소가치를 가졌었고, 그 종자의 소유자는 다음 세대 나팔꽃이 이런 돌연변이의 특성을 나타내게 만드는 노하우를 축적했었다. 에도 시대의 나팔꽃 상인들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일문 위키) 동물도 있다. 심괄이 살던 중국에서는 금붕어의 양식(?)이 이미 확립되었다. 최초의 기록이 진(晉)대로 소급되는 금붕어는 당·송대를 거치면서 확고한 관상어가 된다. 역시 돌연변이 형질을 유지하는 지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전기, 특히 세종대에는 시헌력 같은 정밀한 역법, 정교한 기계가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한글창제라는 굉장한 언어학적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이탈리아 친구에게 한글을 간단히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프랑스 혁명이 떠오른다고 했다. ㄱ-ㄲ-ㅋ이나 ㅏ-ㅑ로 이어지는 원칙이 굉장히 radical하게 보인다고.) 이런 특기할만한 성과가 동양에서도 있었는데, 막상 전근대 기술·과학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을까?
산업혁명으로 영국은 조커카드를 꺼냈다. 18세기에 영국인들은 화석 연료의 에너지를 기계적 동력으로 변환하는 기술적 진보를 인류 최초로 이루어 냈다. 사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 연료는 산업혁명 이전에도 열에너지와 빛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꽤 광범위하게 쓰여왔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동력으로 변환하는 데에 성공한 문명은 이전에 없었다. 기계적 동력이 있기 전에는 동물의 근육같이 연약하거나, 바람이나 강물처럼 안정적인 제공이 불가능한 것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산업혁명은 영국의 자본가와 정치인들에게 사상 유례 없는 능력을 부여했다. "정치력의 전지구적 투사". 산업혁명을 겪고 나서야, 제국주의 열강은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비판적 이성이 질문을 제기한다. "왜 하필 그 곳은 영국이었습니까? 세계의 다른 곳, 특히 중국일 수는 없었나요?" 사실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질문과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왜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는 동안, 조선은 멸망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나요?" 이 책 《왜 지금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사 읽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분문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인류의 진화와 최초의 문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살펴볼 때 척도로 사용할 사회발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2부는 중동에서 농경이 시작된 이후의 세계사를, 저자가 제시한 관점에서 해설한다.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관점이다. 마지막의 짧은 3부에서는, 당연하겠지만, 같은 척도로 바라 본 미래에 대한 예측이 자리한다.
1부에서는 인류의 진화를 개괄한다. 특히나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를 개괄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시기부터 아프리카를 떠나는 시점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짧게 서술된 글을 아직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했다. 15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로 추정되는 호모 사피엔스들의 유적과 그들이 남긴 유물의 변천을 "개성"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풀어 낸 부분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역사시대에 대한 설명이 따라 나온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비교하는 이 책에서는 비교의 척도로 사회발전 포인트를 제시한다. 사회발전 포인트는 동등한 가중치를 지닌 4개 부문의 총합인데, 최대도시의 인구, 두당 에너지 소비량, 전쟁수행 능력, 정보통신기술이 그 네 가지이다. 각 포인트가 어떻게 할당되는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방법의 수치화에 허점이 많아 보이는데, 예를 들자면 얼마의 최대도시인구가 1 kcal의 에너지 소비량과 동등한 포인트를 가져야 하는가 따위의 질문에 어떻게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의외로 적용된 값들은 동양과 서양의 발전 정도를 잘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의 핵심 부분은 2부이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요약(이라고 해 봐야 수 백 페이지)·비교하였다. 농경이 시작되는 단계, 국가가 형성되는 단계, 제국이 형성되는 단계, 국가나 제국의 위기라는 네 국면은 유라시아의 동쪽과 서쪽 끝 모두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양 끝의 두 서사에서 나타난 유사성들을 나름의 모델을 통해 제시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세계의 독자적 농경 발상지는 메소포타미아, 황하·장강 유역, 파푸아 뉴기니 섬의 고원, 멕시코, 안데스이다. 더불어 동 사하라에서는 목축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고대 4대 문명중의 하나인 인더스 강 유역은 좀 애매한데, 이 지역 농경의 시작 자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나일강의 농경은 확실히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책에서 서양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한 농업 문명의 전통을 계승하는 지역이고, 동양은 황하·장강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을 계승한 지역이다. 같은 논리로 뉴기니 지역, 멕시코 지역, 안데스 지역 등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는 이런 구질구질한 시도를 일축하고 동양과 서양의 비교에만 집중한다. 이미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총·균·쇠》에서 밝혔듯 각지에서 발상한 문명은 그 초기조건이 대등하지 않았다. 길들일 수 있는 야생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이 지역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가장 유리한 환경에서 발상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그보다는 좀 덜 관대하지만 나름 쓸만한 조건에서 출발한 황하·장강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을 계승한 문명들만이 실질적으로 비교할 의미가 있는 사회발전포인트를 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오직 소수의 제안만이 설득력 있는 역사의 법칙으로 인정받았다. 한 세기 반 전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사적 유물론을 제시하면서 역사발전 5단계설을 제시했고 상당한 호응을 받았으나,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 이 가설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특히 4단계에서 5단계로 가는 발전은 세계 어디에서도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나는 왜 서양이 지배하느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제 적어도 동양과 서양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역사에 대한 가설이 제시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감탄을 했었다.
이 책의 미덕은 균형 잡힌 서술이다. 동양사와 서양사를 균형 있게 서술하려고 하고 있다. 적어도 분량 면에서는 양자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서술되고 있다. 더더욱 재미있는 부분은 이러한 균형이 시간 방향으로도 견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밀레니엄, 그리고 그 전의 밀레니엄에 대한 서술의 분량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전 밀레니엄까지를 봐도 그렇다. 이런 서술상의 특징은, 이 책이 저자가 수집한 역사적 사실을 단지 나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저자가 제시한 각 단계의 법칙들이 실재 역사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맞추어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런 서술은 관점에서 벗어나는 사건들을 축소시켜버린다. 강희제, 지못미)
저자는 역사의 추동력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원칙을 제시한다. "게으르고 탐욕스럽고 공포에 질린 사람 무리의 행동"이 역사를 추동한다는 것이다. 여러 코로랄리들이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다. 첫 번째는 역사 발전의 큰 방향성이 동양과 서양에서 다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 인간 집단이 같은 조건에 처하게 된다면, 그들의 반응 역시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통계에 나오는 대수의 원리가 언뜻 연상되는 원리인데, 개개인이 가진 나태, 탐욕의 크기나 공포에 대한 민감성이야 다 다르겠지만, 이들을 집단으로 묶었을 때 나타나는 정도는 평균에 수렴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에 나타났던 사건들을 이 원칙에 엮기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한다. 태·탐·포 원리의 또 다른 코로랄리는 "영웅이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에 영웅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역사의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감상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들을 주관적인 견해와 함께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책 뒷부분에서 앞부분으로 진행된다.
1. 일종의 사고 실험인데, 1800년부터 시계를 한세기 반씩 거슬러 올라가면서, 만약 그 때 그 시점에서 역사가 다시 흐른다면, 그래도 역시 21세기 초반에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까를 묻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서는 찾아볼 자료도 많고, 할 말도 많기 때문에, 나중에 별도의 글을 쎄울 생각이다.
2. 로마와 한나라가 몰락한 후, 동양과 서양의 중심지는 공히 유목민에 의한 문명의 질적 저하를 경험하면서 그 충격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 간다. 동아시아에서 그 극복의 중심지는 장강 이남의 미작전선 확장이었는데 반해, 서양에서는 그러한 농경의 신개척지가 없었다. 서양에서 새로운 문명의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아랍 세계에 세워진다. 이 때문에, 프랑크 왕국은 개무시를 당한다. 서술 분량에서 찬 밥일 뿐만이 아니라, 실재로 샤를마뉴가 이웃 제국들에게 개무시를 당한 일화를 소개한다. 유럽이 이렇게 개무시당하는 세계사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기록해 둔다.
3. 종교와 사상에 대한 설명 역시 인상적이었다. 부처, 예수, 공·맹,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묘하게도 유사하다. 그리고 실재로 이들은 인류의 문화·문명에 결정적 족적을 남겼다. 이 사상을 작가는 추축사상(Axial Thought)라고 명명했다.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해서 동양과 서양에서는 연합체 수준의 국가들 사이에서 중앙집권국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중앙집권국가는 유지비가 많이 드는 체제이다. 단적으로 충성의 대가로 상비관료와 군인에게 끊임없이 지불되어야 할 임금만을 생각해도 그렇다. 하지만 중앙집권국가는 사회 조직이 더 고도화되고, 더 높은 수준의 사회발전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총합이고, 그 관계의 총합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곤란하다. 추축사상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이전 시대와 같이 神인 척 하는 왕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원을 전후하여 동양과 서양에는 漢과 로마라는 인류 최초의 본격제국이 형성된다. 이 두 제국은 스텝 지역을 횡단하는 유목민족을 매개로 하여 교류를 하게 되는데, 이 루트를 통해 전염병의 교류가 시작되고 결국에는 두 제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방아쇠가 된다. 한편, 제국이 망하고 야만스런 유목민이 날뛰는 혼란기(오호십륙국시대의 귀축황제들을 떠올리라)의 정신적 충격을 추축사상이 위무하는 양상 역시 동서양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 책에는 제국 멸망 후 게르만족과 선비족에 각기 시달리던 유럽과 중국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신도 증가, 수도원(절)의 사회적 역할 등이 너무 대칭적으로 비교되어 있어서 그것을 이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내가 멍청해 보일 지경이었다.
4. 농경 문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지역들이 소개되었다. 유럽 본토의 발트해 연안 지역과 한반도이다. 이 지역의 공통점은 풍부한 해산물이 난다는 점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한 듯, 농업 유적이 훨씬 늦은 시기에 발견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소로리 볍씨 같이 한반도에서 이른 시기에 농경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유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자가 오래되거나 편벽한 가설만을 인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 읽었던 《1491》에서 얻은 아이디어인데, 만약 북미에서도 농경의 발견과 전파가 외부의 방해 없이 진행되었다면 브리티쉬콜럼비아의 온대우림지역과 뉴잉글랜드 지역은 농업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한편 아쉬웠던 부분들도 있다.
1. 먼저 동양사에 접근하는 데에 사용된 자료가 제한되었다는 느낌이다. 확실히 당·송 이전까지의 동양사 서술은 충분히 서양사의 서술과 균형을 이루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원대 이후로는 그 밀도가 확실히 떨어진다. 특히나 서양사와 비교하자면 더더욱 그러하다. 저자의 주장을 뒷바침하는 근거 위주로 서술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원·명·청대의 서술은 정치적 상황에 대한 서술이 너무도 빈약하다. 특히 같은 시기 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한 면밀한 고려나 서술과는 확실히 대비된다. 산업혁명 직전의 가장 결정적 순간의 유력한 두 경쟁자를 비교하는데 편파판정 시비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2. 두 번째로 지적될 만한 부분이라면 지나친 색드립이지 않나 싶다. 일단 색드립은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도 했는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처 테오도라가 그런 경우이다. 사회시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배운 기억은 날 테지만, 그의 부인이었던 테오도라는 대부분 생소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일화만으로 충분히 독서를 중단하고 딴 짓을 하게 될 만큼 강렬했다.
책에서 테오도라는 측천무후와 병치되었다. 프로토 페미니즘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두 여인의 통치를 예찬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두 여성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 것은 신선한 관점이지만, 그 시기에 동서양에서 걸출한 여성 통치자가 나온 것은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으로 치부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그 전의 여걸이었던 여황후도, 그녀의 짝패가 될 법한 클레오파트라도, 어쩌면 히미코도, 책에는 언급되지 않은 듯 하다.
한편 과도한 색드립은 중국사의 서술 부분에서 반복해서 나타났다. 포사의 고사를 설명하는 부분에, 벌거벗은 궁녀, 응? 내가 고사를 원전을 읽은 적은 없으니까, 넘어가자. 그런데 송대의 연료난과 석탄 채굴을 묘사하는 한시를 해석하는 부분에서 뜬금없는 매춘드립이 나오는 것은 에러가 아닌가 싶다. (蘇軾의 시에 나오는 "濕薪半束抱衿裯"는 "젖은 땔감 한 꾸러미를 품에 안고"로 《코끼리의 후퇴》에는 번역되어 있다. 요 앞의 문단 1에서 지적한 부분과 상통하는 지적인데, 중세의 중국사에 대한 서술은 《코끼리의 후퇴》에 굉장히 의존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3. 책의 주요 내용과는 매우 상관 없는 내용인데, 先호모샤피엔스 시기, 동과 서의 특징적인 차이를 설명하면서 아슐리안 돌도끼의 분포 한계인 모비우스 선이 나오는데, 전곡리 돌도끼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다.

내 생각

1. 기본적으로 어떤 지역의 인간집단이 그 기술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물질과 에너지는, 지리와 지질에 의해 제한된다. 역사에 등장해 온, 인간이 사용했던 물리력의 바탕은 기본적으로 해당 인간 집단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이었다. 그리고 그 물리력을 투사는 주체인 개개인을 적당한 위치에 놓고 자원을 배분하는 방법인 제도와 그 행동을 규제하는 내적 규범인 염치가 앞서 말한 물리력의 투사를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든다.
2. 이 책에서는 코어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코어는 문명의 핵심 지역이다. 동양과 서양의 비교는 사실상 동양의 코어와 서양의 코어의 비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코어라는 지역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서는 코어는 시대에 따라 이동한다는 것을 명시한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코어를 정할 것인가? 코어에 대한 저자의 논리가 가지는 취약점이 명·청 교체기의 동아시아를 서술하면서 노출된다. 놀랍게도 이 시기의 서술에는 중국만큼이나 일본이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서술되어 있고, 또한 도쿠가와보다 도요토미가 더 자주 언급되는데, 그것도 무려 중앙집권과 해외팽창이 그 당시 인구증가에 대처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음을 언급하면서 그 예로 등장한다. 그가 유럽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잦은 전쟁 상황을 동아시아에 적용하려다 보니, 그에 딱 맞는 경우가 전국 시대의 일본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해서, 16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증가하는 인구압을 전쟁으로 해소하려 했다는 전제 하에서 본다면, 조선은 그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단지 조선이 당시 동아시아의 코어가 아니었기 때문인가? 그렇다기 보다는 저자의 의도와 현실이 상응하지 않기 때문 아닌가?
이러한 논리가 수긍되기 위해서는 코어의 정의가 주장과는 독립적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가 선택한 코어와 저자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역사의 패턴은 서로 순환논증의 관계에 있다는 혐의가 짙게 느껴진다. 작가의 관심, 가설, 또는 편견에 따라서 역사의 어떤 특정한 부분만이 과장된 셈이다. 또한 원·명·청대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설을 풀기 위한 무리수이기도 하다.
3. 그리고 이 부분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 대한 완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수학·과학이 오직 유럽에서만 발달했기 때문이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설명은 다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필요로 한다. 첫 째, 동양과 서양에서 발달해 온 수리기술이 실재로 차이가 있었고, 동양에서는 현대의 수학·과학이 기초로 하고 있는 정신활동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는가? 둘 째, 그 차이가 어떻게 서양의 지배를 유도했는가?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면, 세 번째로 어째서 유럽에서만 수학·과학이 발전했는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첫 째 질문의 답은 명쾌하다. 고대 그리스의 "증명"과 같은 정신활동이 동양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한 번도. 다른 말로, 동양의 수리기술은 산수였지 수학은 될 수 없었다. 두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다시 쓸 수 있다. "증기기관은 지식의 축적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실현된 것인가, 아니면 기술적 필요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제작된 것인가?" 증기기관의 발명은 지식의 축적과 기술적 필요가 동시에 필요한 일이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었다. 반면 같은 시기 청나라에서는? 지식의 축적은 둘째 치고, 기술적 필요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의 관측도 가능하다. 건륭제 말년 경에 청나라 산시성 일대에서 석탄을 이용한 원시적인 증기기관이 숙련된 기술자에 의해 탄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그 기계가 관심을 끌 수 이었을까? 심지어 증기기관에서 나오는 동력을 실 잦는 일에 투입할 수 있는 형태로 개량까지 되었다 하더라도, 그 기계장비가 널리 퍼지기에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적대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농민인구가 과밀했던 당시 상황에서 농가의 추가 소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직물 제조가 기계의 힘으로 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신사 계급이 두고 봤을까 싶기도 하다는 말이다.

결론

재미있고 흥미롭고 자극적이고 논란이 있는 책이었다.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인 서양인의 세계관에서 동양을 서양의 대칭점에 두고 양자의 발전을 비교하려는 시도는 참신했다. 비록 그 시도가 완숙기에 들어선 동양 사회의 불충분한 이해에 가로막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초점을 놓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시도는 동양인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 동양인들은 동양사와 서양사를 함께 배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설명의 틀을 제시하는 데에 동양 사람들은 서툰 것 같다. 이런 측면도 혹시 진정한 의미의 수학이 발전하지 못한 동양의 지적 토양이 계승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 때, 그리고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이어령 식, 혹은 이규태 식의 문화론이 횡횡한다. 답을 정해놓고 부합하는 사실만을 몰문맥적으로 가져다 붙이는 설명이다. 이런 식의 이해가 무가치함은 설명을 덧붙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최근 서양의 문명사에 대한 저작에서 볼 수 있는 인상적인 특징은,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는 조건들에 대한 논의를 자연과학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올의 해석에 따르면 도덕경의 "天地不仁"은 자연은 엄연하다는 뜻이다. 자연은 동양인과 서양인을 차별하지 않고, 개별 인간의 삶과 죽음 또한 저어치 않는다. 산소라는 자연적 자원에서 5분 이상 차단되는 어떠한 호모 샤피엔스도 사망한다. 인간은 먹지 않고서 살 수 없으며, 경작 가능한 토지가 없는 상황에서 농경을 발전시킬 수 없으며, 연료 없이 북반구 온대지역의 추운 겨울을 살아낼 수 없고, 천연의 금속자원 없이 청동기·철기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다. 일본이 조선과는 달리 17세기에 세계경제 체제에 편입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특별히 새로운 문화에 열린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땅에서 귀금속이 쉽고 흔하게 채굴되었기 때문이고, 경덕진의 유명한 도자기는 그 지역의 탁월한 고령토 때문이었지 중국인들의 탁월한 미적감각 때문이 아니었다.
16세기 이후의 동양과 서양의 정치적·사회적 발전을,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가용 자원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서술한 저작을 읽어보고 싶다.

2013년 8월 21일 수요일

필스너와 헬레스

바이에른 지방을 여행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맥주를 즐길 계획을 세울 것이다. 독일의 맥주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특히나 뮌헨을 위시한 바이에른은 맥주로 한 자부심 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세 종류의 맥주가 특히 많이 소비된다. 밀 맥주로 알려져 있는 상면발효맥주인 바이스비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맥주 종류인 필스너, 그리고 특히 바이에른에서 특히 집중적으로 소비되는 헬레스이다. 사실 바이에른에서는 필스너보다 헬레스가 훨씬 더 대중적이다.

뿌연 색이 특징적인 바이스비어와는 달리 헬레스와 필스너는 둘 다 맑은 색을 띄는 하면발효맥주이다. 그리고 식당에서 주문을 한다면 필스너와 헬레스는 서로 다른 잔에 따라져서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헬레스와 필스너 맥주 그 자체는 어떻게 다른가?

가장 직관적인 답은 맛이 다르다이다. 필스너에는 헬레스보다 홉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씁쓸한 맛이 더 강하다. 반면 홉이 약한 헬레스는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고 할까?

그런데 좀 더 역사적으로 들어가 보면, 물의 차이가 한 몫“했었다”. 석회암·사암지대인 바이에른의 물은 석회질이 많이 함유된 쎈물이 흐른다. 체코 지역의 암석은 변성암인데, 이 곳에 흐르는 물은 단물이다. 물에 염이 많이 함유된 쎈물에서 맥주가 발효되면, 효소가 덜 활성화되고 맥아와 홉의 녹는 성분이 달라지기 때문에 맛이 써지고 색이 어두워진다. 전통적인 뮌헨 맥주가 어두운 색인 이유가 이것이다. 반면 단물이 흐르는 체코에서는 더 맑은 색을 띄는 필스너를 만들 수 있었다. (맥주의 색은 당연히 맥아를 건조하는 과정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필스너는 연한 색을 띄는 맥아를 쓴다.) 현대에는 물의 염을 제거하는 공정이 발달했기 때문에 지역적인 물의 화학적 차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면발효맥주는 낮은 온도에서 양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동안 숙성해야 하며, 냉장기술이 생기기 전에는 제조가 까다로운 반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보존이 가능하다. (한편 홉은 맥주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역할도 한다.) 겨울이 길고, 얼음을 구하기 쉬운 바이에른이나 바덴-뷔르텐부르크 지역에서 15세기 경에 제조가 시작되었다. 1842년 체코의 필젠으로 스카우트 되어 갔던 양조장 요세프 그롤이 연한 색 맥아와 사츠 지방의 홉으로 만든 최초의 필스너 맥주를 만든다. 1872년 냉장기계의 발명으로 저온숙성을 위한 지하실 없이도 필스너 맥주를 만들수 있게 되었다.

바이에른에서 맥주를 마실 기회가 있다면, 필스너와 헬레스를 둘 다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홉이 약한 맥주의 맛을 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2013년 7월 4일 목요일

신고를 고자질로 만드는 자들에 대처하는 방법

고자질 이라는 단어가 있다. 어린 시절 친구사이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어른에게 알리는 행위를 경멸적으로 일컫는 단어였다. 전형적으로 기억나는 게, 여자 애들이 뛰어노는 고무줄을 가위로 끊으면, 그건 매우 적절한 고자질의 대상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고자질쟁이라는 딱지가 붙는 일은 열 살도 되지 않는 어린 애들에게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왜 어리다고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없으랴. 오히려 어린 나이의 놀림은 더 도가 지나친 경우가 많고, 골목의 한 줌 무리 안에서 한·두 살의 발달 차이는 넘지 못할 물리적의 장벽이다. 지나친 놀림은 때때로 울음을 유발했고, 자연히 어른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곤란한 상황을 벗어나게 했다. 한 쪽이 울게되는 싸움질 역시 비슷했다.

학교는 재미있는 곳이었다. 특히나 아직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문교부는 아이들의 백지장처럼 하얀 머리를 반공으로 물들이는 데에 만큼은 사력을 다했다. 문교부에 의하면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공은 “신고”였다. “여러분들 가족 중에 간첩이 있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착한 어린이인가요?”라고 선생이 물으면, 아이들은 너도 나도 고사리손을 뻗어 들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거요”라며 조잘거린다. 그러면 선생은 “맞아요. 우리 n학년 m반 어린이들은 다들 착한 어린이예요.”신고와 고자질의 본질 어떻게 구분할지는, 아직 좀 어려운 문제였다. 아니, 그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어른들을 주위에서 볼 수가 없었다. 학업보다는 신고를 내면화하는 데에 더 성공적이었던 어린이들의 인생을, 정부나 국가가 어떤식으로 책임지고 있는가를 보면 기분이 착찹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학교를 졸업하던 시절까지는, 또래사이에서의 부당한 대우는 고자질에 의해서 시정될 수 있다는 일종의 심리적 안전망을 두르고 있었던 것 같다.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의 일과가 시작된 3월 초의 그 날을 아직까지도 나는 충격으로 기억한다. 다른 국민학교에서 온, 잘 모르는 아이들이 다른 분단에 앉아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학교 아이들은 다들 무섭게 생겼다. 그 중 뒤에 앉아있던 놈이 연필로 앞에 앉아있던 놈 등을 콕콕 찔렀다. 물리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놈에게 가하는 악의적 행동. 나는 그 교실의 첫번째 희생양이 내가 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그 갈등의 진행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20분 가까이 괴롭힘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참지 못한 앞자리 아이가, 자습 감독을 위해 들어 온 교사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그 교사는 대뜸 화를 내며 “그런 걸 왜 나에게 말하나? 니가 아가? '(?a32ga5/)”하고는 신고를 일축했다. 그 때 나는 직감했다. 아, 내 한몸 건사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 지옥에 들어 온 것이다.  아마 그 길로 고자질이라는 단어를 잊었던 것 같다.



이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다른 말 같은 뜻으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어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많을 것을 배워야 했다. 세상에는 구성원들 모두를 잘 알면서 공정무사하게 갈등을 조정할 것으로 기대 되는 국민학교 담임같은 존재는 있을 수 없으며, 설사 있다 하더라도 갈등의 조정이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갈등의 해결은 최악의 경우라도 법에 의거해야 한다... 세상은 나에게 신고나 내부고발 같은 행위를 어떤 측면에서는 장려했던 것 같다. 그들은 범죄행위를 예방하고 싶거나, 최소한 관리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어떤 내부고발자의 끝은 좋지 않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내가 진보계열로 분류되는 매체를 접하기 때문에 알게 된 건지도 모른다. 관료조직, 공기업, 재벌, 사학, 교회. 시민사회는 그 안에서 나왔던 내부고발자를 지켜줬던 적이 있는가? 갈등을 조정한다는 법은, 결국 신고자의 편에 서지 않았다.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시민과 상식은 제어할 수 없었다.

내부고발을 고자질로 만들어 고발자를 좆되게 만들지, 아니면 신고로 만들어 고발자를 포상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위는 법보다 더 상위계층에 있다. 그들은 기존의 법을 무시할 수 있고, 혹은 없던 법을 만들 수도 있다. 그들은 자의적으로 합법적 권위를 휘두른다. 어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배웠던 대한민국에는, 서로 긴밀하게 서로 협조하는 소수의 무리가 그 권위와 권능을 폐쇄적으로 독점하며 세습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권위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었다. 어리석은 나는 얼마 전에야 겨우 나름의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그들의 권위는 실용주의에서 나온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실현한다.  그러면 그들의 그 능력은 다시금 그들의 권위를 강화한다. 직접적으로는 그들이 차지한 자원의 지대로부터, 그리고 부차적으로는 강화된 대중적인 지지로부터이다. 그들의 성공을 볼 수록 그 권위를 공유하지 못하는 소외되 자들은  놀랍게도 그 권위에 대한 경외와 복종을 내면화하면서 권위의 자의적 전횡에 더 순응한다. 피지배자들은 복종할 수 있는 권위에 목말라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해방직후 그들의 최급선무는 생존이었다. 그들은 교육받은 관료, 교양있는 자본가임을 미군정에 어필하면서 그들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독립운동 세력을 척결하고, 생존이라는 퀘스트를 높은 점수로 클리어한다. 한국전쟁을 기회로 삼아 남아있던 반대세력을 절멸시키면서 명실상부한 지배계급으로서의 지위를 구축한다. 그들의 권위는 도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살아남고 권력을 탈취한, 그 “능력”이 그들의 권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자유당 시절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고 선거에서 이겼었다. 4·19로 빼앗겼던 권위는 5·16으로 되찾았고, 다시금 그들의 능력을 보여줬다. 한·일협정도 유신도 그들의 의지대로 실현시켰고, 10·26이나 6월항쟁 같은 고비가 있어도, 12·12 쿠데타나 87년 총선 등을 이용해 결국은 그들은 그들의 능력을 실현시킴으로서, 권위를 시전하고 자발적 복종에 대한 유혹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그들을 약화시키는 유일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그들의 의지가 현실이 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일단 그들의 의지가 분쇄되면, 먼저 지엽적으로는 피지배민들의 자율적으로 권위에 복종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약화된다. 그들의 전리품이었던 마름들은 서서히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그들은 타락한다. 그런 일이 실재로 있어났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6년 반동안 그랬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보수는 조롱의 단어가 되어 갔다. 매체·기관·자본은 제 살길을 각자 찾았다. 방송은 정권과의 연을 끊어갔고, 매체들은 자기의 컬러를 보이기 시작했다. 기관의 장들은 능력에 따라 임명되었고, 대통령은 국정원장과의 독대를 중단했고, IT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 대두했다. 반면 주류의 질은 추락했다. 그 전까지 조선일보는 시정잡배의 언어를 언어를 빌어가면서까지 분노할 이유가 없었다. 보수진영이 내 놓는 대권후보는 어쨌든 민주화운동을 했던 김영삼에서 보수의 꼭두각시 이회창으로 전락했다가 종국에 가서는 꾼 이명박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4대 개혁입법의 좌절은 그들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었다. 뉴라이트라는 신생의 마름집단이 생기고, 매체들은 다시 주류의 의지에 복무하기 시작했다. 흐름이 바뀌고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어지자 추는 원래부터 기울어져 있던 방향으로 급속히 쏠려가면서 이명박 씨발놈(이하 악귀히로)을 꺼리낌 없이 개통령으로 밀어올렸다. 그는 모든 그의 의지를 현실에 투사할 준비가 되어있었으나, 초반에 터진 촛불시위로 겁을 먹고 비열한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악귀히로의 시대에 그들은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그러지 못했다. 악귀히로의 가장 큰 실패는 후계정립의 실패이다. 개구더기당 계열의 차기 주자 쌍두마차였던 서울시장 오세훈, 미디어법 마녀 나경원은 나꼼수에 차례 차례 정치적으로 사살당했다. 그랬는데도 이명박은 겨우 정봉주 하나 1년 감옥에 집어넣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여담이지만 핵심 경력을 쌓고 있는 정우택도 그 음모 때문에 뜻대로 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게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다른 악귀히로의 의지 역시 위태위태하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매개로 활활 타오르고 있고, 4대강 건은 박근혜(이하 마사꼬)가 쥐고 있다.

따라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는 명확하다. 그들의 의지를 꺾는 것이다. 그들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덮고 싶어한다. 그것을 분쇄시키는 것이 지금 시민이 해야 할 일이다. 진선미 의원, 박범계 의원같은 분들이 사력을 다 했기 때문에, 그리고 한겨레와 경향, 시사인 같은 언론이 끊임없이 보도해 왔기 때문에 그나마 이 건들이 알려질 수나 있었던 것이다. (무분별하게 민주당을 욕하면서 새정치 주술 외시는 분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지요? 그거에 침묵하면서 새정치 주장하신다면, 그런 새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닌 겁니다.) 보수라는 거적을 뒤집어 쓴 반 헌정무리를 패퇴시킴으로서 시민은 자신감을 얻게 되고 그 자신감은 진보진영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현 민주당 지도부는 시민의 힘을 두려워한다.

《이끼》에 나오는 말이다. “시간의 밀도는 같지 않다.” 김어준이 말했다. “타이밍이 모든 것이다.” 국정원 정치개입건이 마사꼬의 정당성에 닿아있는 일인만큼, 지금의 싸움은 향후 5년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싸움이다. 그런데 지금, 8년 전 열린우리당에게서 맡았던 안이함의 비릿한 냄새가 흐릿하게 나는 것 같다. 민주당의 지도부가 지금 뭘 해야하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여서 걱정이다.

2013년 4월 30일 화요일

亡兆 풀 콜렉션 by 韓非子

전에 읽었던 《중국고대사회》라는 책에는 법가에 대한 설명이 짧게 나와있다. 사실 고등학교때까지 배우는 법가는, 진시황, 가차없는 형벌, 한비자 정도로 정형화 되어있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 더 알게되는 사실이라야, “사실 전통 동양 사회에서 유가는 당의정 역할을 했을 뿐이고, 알맹이는 법가야.” 정도에 불과했다. 흐흐 손자가 전쟁은 속임수라 했거늘, 사실은 통치 역시 속임수.

《중국고대사회》 흥미로웠던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법가는 과거의 인치철학에 동의하지않고 법으로서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며, 그렇게 하면 백성이 믿고 죽는다 해도 원망하지않게 된다고 하였다. 만일 백성들로 하여금 행사준칙의 소재를 알도록 한다면, 심지어 관리가 위법을 하였다 해도 백성 또한 군주를 대신하여 감독하고 그 위법은 저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같이 하면 속이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군주를 기만할 수가 없게 된다.

내가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관리의 위법을 백성들이 저지할 수 있다는 이상이다. 나는 여기서 민주주의가 떠올랐거든. 백성이 죽는다 하더라도 억울해 하지 않는다는 것은 법 앞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작동하는 감시와 견제는 법률로 보장되는 것들 아니던가? 결국 법가의 문제제기 역시 관료들의 비행을 방지해서 나라를 유지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다.

사실 법가가 문득 떠오른 이유는 한비자가 말한 망국의 10가지 징조라는 게시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검색해 보면 흔하게 나오는 자료라 링크를 걸지는 않는다. 뭐 속이 시원한 소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2300년 전의 사람이 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적확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헌데 모든 게시물들이 《한비자》의 원문을 병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심이 들었다. 위키문헌 중국어판에서 한비자를 찾아 들어갔다가, 그 내용이 한비자 15 亡徵편에 나오는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키문헌의 망징편에 설명된 10개의 망조를 한글로 된 게시물의 항목들과 상응시킬 수가 없었다. 한문을 읽을 능력은 되지 않지만, 해석을 따라가면서 한자와 단어를 연결시킬 수준은 되거든.

운 좋게 발견한 위키문헌 한비자 항목의 맨 아래에 있던 링크를 타고 전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비자 15 망징편은 모두 47개의 나라가 망할 징조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글로 돌아다니는 버젼은, 그 중에서 취사 선택 및 편집된 것이다. 한글판의 몇몇 항목은 원문에 비슷한 내용이 없거나 짧은 망조들이 합쳐진 듯 보인다. 그런데 구지 10개를 추려냈으나, 거의 다 조금씩은 해당 사항이 있긴 해 보인다. 중요한 것은, 한비자는 망한다(亡也)고 단정하지 않고 망할 수 있다(可亡也)라고 하고 있으며 특히 맨 마지막에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어떤가. 희망이 솟아나지 않는가?

전문과 해석 그리고 링크를 아래에 轉載한다. 앞에 별표된 항목은 인터넷 초이스이다.

凡人主之國小而家大,權輕而臣重者,可亡也。
무릇 임금이 다스리는 나라는 작은데 대부들이 차지한 영토는 크며, 임금의 권위는 가볍고 대신들의 세도가 무거우면 그나라는 망한다.

簡法禁而務謀慮,荒封內而恃交援者,可亡也。
*법률과 금령은 등한히 하면서 모략과 사사로운 꾀에만 힘쓰고,나라 안의 정치는 거칠게 하면서 나라밖의 외교와 원조에만 의지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群臣為學,門子好辯,商賈外積,小民右仗者,可亡也。
*여러 신하들이 쓸데없는 학문을 익히고 귀족의 자식들은 공허한 변설을 즐기며, 장사치들은 재화를 나라 밖으로 빼돌려 쌓아놓고 서민들은 나라 안에서 곤궁하게 지내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好宮室臺榭陂池,事車服器玩好,罷露百姓,煎靡貨財者,可亡也。
*임금이 화려한 궁전과 높은 누각, 정원의 연못만들기를 즐기고, 아름다운 수레와 옷입기를 좋아하며, 편리한 기구나 노리개 같은 사치 때문에 민중을 괴롭히고 재화를 지나치게 쓰면 그나라는 망한다.

用時日,事鬼神,信卜筮,而好祭祀者,可亡也。
임금이 때와 날을 받아 길흉을 정하고, 귀신을 섬기며, 점을 믿고, 제사지내는 것을 즐기면 그 나라는 망한다.

聽以爵不待參驗,用一人為門戶者,可亡也。
나라의 관직이 몇 사람의 중신의 힘에 의해 좌우되고, 벼슬과 봉록을 재화로써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

官職可以重求,爵祿可以貨得者,可亡也。
중신의 알선으로 관직이 주어지고, 뇌물을 바쳐 작록을 얻을 수 있는 나라는 망한다.

緩心而無成,柔茹而寡斷,好惡無決,而無所定立者,可亡也。
임금이 나태하여 이루는 일이 없고, 유약하여 무슨 일이든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옳은 일과 그릇된 일을 결정짓지 못해 확고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옳은 일과 그릇된 일을 결정짓지 못해 황고한 자립의 태도가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饕貪而無饜,近利而好得者,可亡也。
임금이 탐욕스러워 항상 만족함이 없고, 이익을 가까이하여 소유함을 즐기면 그 나라는 망한다.

喜淫而不周於法,好辯說而不求其用,濫於文麗而不顧其功者,可亡也,
임금이 형벌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여 법률에 용의주도하지 않고, 변설을 즐겨 그 실용에 마음을 두지 않으며 꾸며낸 글에 홀려 그 공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淺薄而易見,漏泄而無藏,不能周密,而通群臣之語者,可亡也。
군주의 사람됨이 천박하고, 밖에서 쉽게 엿볼 수 있으며, 비밀을 가슴속에 간직해 두지 못하고 바로 누설시키며, 주의는 산만하고 신하들의 말을 밖에 알리는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很剛而不和,愎諫而好勝,不顧社稷而輕為自信者,可亡也。
*임금의 성품이 너무 강해 남과 화합할줄 모르고 간언을 물리치고 남에게 이기기를 즐기며 나라의 이익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스스로의 믿음에만 의존할 경우 그 나라는 망한다.

恃交援而簡近鄰,怙強大之救,而侮所迫之國者,可亡也。
*임금이 다른 나라와의 동맹이나 원조만 믿고 이웃나라를 얕보고, 강대국의 도움에 의지하여 가까운 나라를 멸시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羈旅僑士,重帑在外,上閒謀計,下與民事者,可亡也。
다른 나라에서 옮겨와 더부살이 하는 선비가 처자나 재산은 나라밖에 두고, 위로는 임금의 모사에 관여하며 아래로는 민정에 관계하는 경우 그 나라는 망한다.

民信其相,下不能其上,主愛信之而弗能廢者,可亡也。
신하와 백성은 재상을 믿고 있지만, 군주에게는 심복할 수 없다고 하는데도 군주는 그러한 재상을 신임 총애하고 있으면 권력은 아래로 옮아 가므로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境內之傑不事,而求封外之士,不以功伐課試,而好以名問舉錯,羈旅起貴以陵故常者,可亡也。
*임금이 나라 안의 뛰어난 선비를 기용하지 않고 나라 밖에서 선비를 모셔와 관직에 앉히며, 공로로써 시험해 보지도 않고 명성으로 진퇴를 결정하는 바탕으로 삼으며, 외국 사람만 믿어 그 지위를 귀하게 하여 기존의 신하보다 귀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輕其適正,庶子稱衡,太子未定而主即世者,可亡也。
적출의 공자는 경시되고 서자가 세력이 있으며, 태자를 아직 책봉하기도 전에 군주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大心而無悔,國亂而自多,不料境內之資而易其鄰敵者,可亡也。
군주가 소탈하여 과실을 후회하지 않고 나라가 혼란한데도 자기 재능만을 믿고, 제 나라의 실력도 모르고 이웃 나라를 경시하는 나라는 망한다.

國小而不處卑,力少而不畏強,無禮而侮大鄰,貪愎而拙交者,可亡也。
자기 나라가 소국인데도 대국에 대하여 겸손하지 않고, 무력하면서 강대국을 경계하지 않고 탐욕적인 서투른 외교를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太子已置,而娶於強敵以為后妻,則太子危,如是,則群臣易慮,群臣易慮者,可亡也。
태자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부왕이 강대국의 공주를 정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되면 태자의 지위가 위태해진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은 마음이 변하여 부인 편에 서게 되는데 그런 나라는 망한다.

怯懾而弱守,蚤見而心柔懦,知有謂可,斷而弗敢行者,可亡也。
군주가 겁쟁이이며 지조가 없고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고, 단행해야 된다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결행하지 못하는 나라는 망한다.

出君在外而國更置,質太子未反而君易子,如是則國攜,國攜者,可亡也,
군주는 망명하여 다른 나라에 있는데 그 나라에서 다른 군주를 추대하거나, 타국에 인질로 가 있는 태자가 귀국하지 않고 있는데 군주가 다른 자식을 태자로 옹립하거나 하면, 민심이 국가에서 이탈할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挫辱大臣而狎其身,刑戮小民而逆其使,懷怒思恥而專習則賊生,賊生者,可亡也。
군주가 대신을 모욕하면서도 때로는 너무 허물없이 대우하고, 아래 백성에게 함부로 형벌을 가하거나 하면, 그들의 원한은 그칠 줄 모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처에서 난동이 일어나고, 그 나라는 망한다.

大臣兩重,父兄眾強,內黨外援以爭事勢者,可亡也。
두 대신이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군주의 백숙부나 형제가 권력 기구에 참여하여 세력을 펴고, 국내에는 도당이 있어 외국의 원조를 얻어 권력 싸움을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婢妾之言聽,愛玩之智用,外內悲惋而數行不法者,可亡也。
군주가 몸종이나 시녀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총신이나 광대의 계획을 실행하면, 궁정의 안팎에서 원성을 듣게 될 것이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거듭 불법을 행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簡侮大臣,無禮父兄,勞苦百姓,殺戮不辜者,可亡也。
대신을 소홀하게 대우하고 일족의 존장에게 무례를 범하며, 서민을 못살게 굴고 죄 없는 자를 죽이면 그 나라는 망한다.

好以智矯法,時以行集公,法禁變易,號令數下者,可亡也。
군주가 법률을 왜곡하며 사사로운 일을 공적인 일처럼 처리하고, 법령을 함부로 변경하면서 수시로 호령을 내리면 그 나라는 망한다.

無地固,城郭惡,無畜積,財物寡,無守戰之備而輕攻伐者,可亡也。
국토에 요새가 없고 성곽도 형편없으며, 식량의 저장도 없고 물자도 적으며, 방어전의 준비가 없는 나라는 타국이 침공해 오면 곧 망한다.

種類不壽,主數即世,嬰兒為君,大臣專制,樹羈旅以為黨,數割地以待交者,可亡也。
군주와 친족이 장수하는 사람이 없고 잇따라 군주가 죽어 어린애가 군주가 되면 대신이 권력을 자행하여, 타국에서 온 자에게도 벼슬을 주어 패거리를 만들게 하고, 외교를 한답시고 영토까지 잘라 선물하게 되는 나라는 망한다.

太子尊顯,徒屬眾強,多大國之交,而威勢蚤具者,可亡也。
어떤 나라의 태자가 존경을 받고 있으며 그 이름도 널리 알려지고, 그를 중심으로 하여 세력이 구축되고 대국과의 교제가 많아지면, 군주와의 사이는 벌어질 것이며 결국 나라는 망한다.

變褊而心急,輕疾而易動發,心悁忿而不訾前後者,可亡也。
군주가 성미가 급하며, 안정되지 못하고 무슨 일이나 성을 내며, 앞뒤를 가리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主多怒而好用兵,簡本教而輕戰攻者,可亡也。
군주가 자주 성을 내고, 함부로 군대를 동원하여 농사철을 잃으면서까지 전쟁을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貴臣相妒,大臣隆盛,外藉敵國,內困百姓,以攻怨讎,而人主弗誅者,可亡也。
귀족들이 서로 투기를 하며 대신의 세도가 당당하고, 밖으로 외국의 응원을 받아 안으로 서민을 못살게 구는데도 그러한 자를 벌하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君不肖而側室賢,太子輕而庶子伉,官吏弱而人民桀,如此則國躁,國躁者,可亡也。
군주는 우매한데 군주의 백숙부나 형제는 현명하며, 태자의 위력이 약하며 서자가 그에 대항하고, 관리가 힘이 없고 백성이 오만하면, 나라 안이 소란해져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藏怒而弗發,懸罪而弗誅,使群臣陰憎而愈憂懼,而久未可知者,可亡也。
군주가 무엇에 노하고도 그것을 나타내지 않고 죄가 분명한데도 벌하지 않으면, 신하들이 은근히 군주를 미워하거나 걱정을 하여,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 있게 되어 반란 따위가 일어나서 나라는 망한다.

出軍命將太重,邊地任守太尊,專制擅命,徑為而無所請者,可亡也。
원정을 할 때 장군에게 무거운 권력을 주거나, 국경을 수비하는 장수에게 높은 지위를 주어 멋대로 재판을 하고 명령을 하며 독재적이고 군주의 지령을 기다리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后妻淫亂,主母畜穢,外內混通,男女無別,是謂兩主,兩主者,可亡也。
정부인은 음란하고 태후에게는 추행이 있고, 내전과 정부의 구별이 없으면, 정부인의 무리와 태후의 무리가 양립하여 암투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后妻賤而婢妾貴,太子卑而庶子尊,相室輕而典謁重,如此則內外乖,內外乖者,可亡也。
정부인의 권위가 약하고 애첩의 권위가 강하면 태자보다 서자가 존경을 받게 되고, 안으로는 정부인의 당과 애첩의 당이 싸우게 되고, 밖으로는 태자의 당과 서자의 당 및 재상과의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서 그 나라는 망한다.

大臣甚貴,偏黨眾強,壅塞主斷而重擅國者,可亡也。
대신이 극진히 존경을 받고 그들 도당이 강대하고 그 대신이 군주의 판단을 방해하며 국사를 멋대로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私門之官用,馬府之世,鄉曲之善舉,官職之勞廢,貴私行而賤公功者,可亡也。
정실 인사에 의한 관리가 중용되고 공로 있는 자가 배척 당하며, 변두리에서 일어난 작은 선행 따위는 높이 평가되고, 국가에 헌신한 공로를 경시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公家虛而大臣實,正戶貧而寄寓富,耕戰之士困,末作之民利者,可亡也。
*군주의 금고는 비어 있는데 대신의 창고는 가득하며,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 백성은 가난한데 유랑민은 오히려 돈이 많고, 농업과 전투에 종사하고 있는 자들은 천대받고 있는데 대단치 않은 직업에 종사하는 자만이 부자가 되는 나라는 망한다.

見大利而不趨,聞禍端而不備,淺薄於爭守之事,而務以仁義自飾者,可亡也。
군주가 눈앞에 큰 이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물어물 그것을 포착하지 않거나, 화가 미칠 징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만하여 그것을 경계하지 않고, 공격과 방어를 막론하고 군사를 소홀히 하며 오직 인의만을 가지고 외양에만 힘쓰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不為人主之孝,而慕匹夫之孝,不顧社稷之利,而聽主母之令,女子用國,刑餘用事者,可亡也。
군주가 주군으로서의 효도를 하고 싶다 하여 국가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모군의 명령에 따르거나 여자가 국정을 처리하며 내시가 국사에 참견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辭辯而不法,心智而無術,主多能而不以法度從事者,可亡也。
군주가 말을 할 때 달변이긴 하지만 조리가 없고, 마음은 현명하지만 법과 술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으며, 다재다기하나 법규에 의해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

親臣進而故人退,不肖用事而賢良伏,無功貴而勞苦賤,如是則下怨,下怨者,可亡也。
신참의 신하가 진출하고 고참의 신하는 물러서며, 미련한 신하가 국정을 다투고 현명한 신하는 물러서며, 공로가 없는 자에게 높은 작록을 주고 노고가 많은 자를 천대하면 백성의 원한을 얻게 되어 그 나라는 망한다.

父兄大臣祿秩過功,章服侵等,宮室供養太侈,而人主弗禁,則臣心無窮,臣心無窮者,可亡也。
군주의 백숙부, 형제 또는 대신의 봉록과 관작이 그 공로에 비하여 무겁거나 등급을 표시하는 문장이나 복장이 분에 넘치고 그 저택이나 음식물이 사치스러운데도 군주가 금지시키지 않으면, 따라서 신하의 욕망은 한이 없게 되는데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公婿公孫與民同門,暴傲其鄰者,可亡也。
군주의 사위나 손자가 백성과 같은 고을에 살며, 그 위세를 앞세우고 마을에서 설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亡徵者,非曰必亡,言其可亡也。夫兩堯不能相王,兩桀不能相亡,亡王之機,必其治亂、其強弱相踦者也。木之折也必通蠹,牆之壞也必通隙。然木雖蠹,無疾風不折;牆雖隙,無大雨不壞。萬乘之主,有能服術行法以為亡徵之君風雨者,其兼天下不難矣。
본래 망징이라 함은 반드시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아니라 다만 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대저 성왕인 요왕금도 두 사람이 있엇더라면 두 사람 모두 임금이 될 수는 없고 폭군이 걸이 두 사람 있을 경우에도 두 사람 모두 망하는 것은 아니다.

멸망하거나 혹은 임금이 되는 것은 반드시 그 나라의 다스려지는가 어지러운가, 강한가 약한가의 상태가 어느 한쪽으로 편벽되어 나타날 뿐 양립될 수 없는데 그 까닭이 있다.

예컨대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벌레가 그 속을 갉아 먹었기 때문이고, 담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어디인가 틈새가 잇기 때문이다. 나무 속을 벌레가 먹었더라도 강풍이 불지 않으면 나무는 부러지지 않을 것이며, 담에 틈새가 있었더라도 큰비가 내리지 않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만승의 큰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술을 잘 쓰고 법을 바르게 행하며 나라 힘을 충분하게 길러두었다가, 멸망의 징조가 있는 나라가 있을 때 그 임금을 향하여 강풍대우 같은 역할을 다한다면 그 나라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천하를 합병하기도 쉬울 것이다.

번역 http://dolba.net/tt/k2club/2523 또는
https://docs.google.com/document/d/1q452wh3csWqN3bVNTKdpr6hiPw1g_zllLArxb9wqgfU/edit?pli=1

한문 원문 http://ctext.org/hanfeizi/wang-zheng/zh

2013년 4월 24일 수요일

관료의 질

지난 주말 산행을 했다. 동행했던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임진왜란 이야기가 나왔다.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의견이 있는데, 곧 그 때 조선이라는 왕조가 망했어야 했다는 論이다.

특히나 전쟁 도중에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조선의 최고 권력자였던 선조가 보여준 비열한 행태들, 전후 퇴행으로 치달았던 조선의 지배층들, 그리고 정체되었던 지배층이 초래했던 19세기과 20세기의 끔찍한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면, 조선이 그 때 망해서, 그래서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절로 솟아 오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몇 개의 평행 우주가 16세기 말에 분기되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평행우주가, 조선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였을지 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정유재란 때, 남해안에서 농성을 하던 왜군의 일부가 현지화에 성공해서, 17세기를 맞이하지 못한 조선왕조를 대체한 한반도의 지배자는 왜군과의 연합을 해야만 했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들이 수 세기동안 점유상태를 유지했을 수도 있다. 왜군은 물러나고 조선은 망한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순진하지 않나? 조선이 망했는데 왜군이 왜 물러나지?

유튜브에서 찾아 본 한명기 교수의 임진왜란 강의 (네 시간짜리 강의였는데, 매우 재미있었다)  마지막 편 질의 응답 시간에도, 비슷한 류의 질문이 나왔는데, 그 때 한명기 교수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아직 조선은 망할 때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을 대충 적어보자. 한석봉, 정철, 유성룡, 이순신, 조광조 정도가 개인적으로 떠오르는데, 조광조 말고는 다들 선조 때 사람들이다. 관료의 선발체계는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 의병들 쪽을 보자. 의병장들은 대체로 지역의 儒頭였다. 지방 행정을 담당하거나 조력했던 사람들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의병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관료와 관료체제는 전면전을 수행하는 데에는 부적합했을지 모르겠으나, 비상시를 어쨌든 관리하고, 인력과 물자를 동원했던 측면에서 보자면 “아직 망할만큼 무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승병의 활약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은 당시 한 세기 반이 넘도록 이어진 격렬한 내전을 마무리하던 시기였다. 개전 당시 일본의 지배자는 豊臣 秀吉였으나, 아직 완전히 국내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힘으로 힘겹게 누르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 유력 다이묘(그러니까 현대식으로는 군벌)들은 독립적이었다. 豊臣의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나자 억지로 출혈을 감수하고 있었던 다이묘들은 원정을 계속할 이유가 사라졌고, 전쟁을 종식되었다.

일단 최고 권력자의 망상 하나로 대규모 원정이 결정되고 실행될 수 있을 만큼, 내부의 의사 결정 시스템은 허술했다. 또 豊臣가 그 권력을 사후에 물려주지 못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관료, 혹은 이들은 군사집단이니까 막료집단이 갖추어 진 것도 아니었고, 있었다 해도 유능하지 못했다. 결국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豊臣 집단의 집권은 끝나고, 德川네가 일본열도에서의 최고권력을 쥐게 된다. 이들의 행동 양태는 조폭 집단의 이합집산, 그리고 그 내부에서의 의사 결정을 연상시킨다.



국토가 초토화된 임진왜란 시기의 관료가 나름 유능했다고?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조선이 맞이한 두 번째 위기 국면을 살펴보자. 고종의 신하들은 초기에는 민씨네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가면 고종은 그야 말로 온갖 잡놈들에게 고관 대작자리를 마구 던져준다. 고종과 민씨 커플은 조선 말기 전국적 매관매직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뇌물을 가져다 바칠 능력이 우선이지, 조정의 안위 따위는 아예 눈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대신의 능력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잘 빨아 많이 받치는 놈이 장땡인 것이다. 아오, 여기에 대하여서는 매천야록 등에서 읽은 게 좀 있는데, 인상만 남아서 가져다 쓸 만한 사실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관료의 질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고종의 조선은 이미 “망하지 않으면 이상한” 상태였다. 고종의 유능한 신하가 누가 있었는가? 아마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 관료집단의 선구집단은 조선총독부 2류 관리들의 시다바리였다. 조선총독부에는 일본 내지에서 관료를 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하지는 못한 관리들이 파견되었는데, 조선인은 그 자리 마저도 차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료들은 50년대의 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어떠한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운 교육을 받은 신진 인재들이 관료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60년대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실질적인 운행이 시작되었다.

2008년 이후 대한민국의 관료집단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변화는 쓰레기의 약진이다.  그들은 공적 의무를 행하는 대신, 공적 자산을 자본으로 바꾸어 사유화하는 데 몰두한다. 공기업을 민영화 해서 임원 자리를 내정받는다든지, 전관예우 같은 것들을 초라한 예로 들 수 있겠다. 이전에도 이런 행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08년 이후에는 정부가 이런 행위를 독려하는 느낌이다. 이런 사유화를 소위 공직자의“능력”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유교는 그 문제제기의 핵심이 관료 계층의 부패를 방지하고, 효율을 유지시키기 위한 고민에 있다. 그것은 법가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은 사실상 전통 동양 사회를 조직하고 떠바쳐 온 두 축이 되어왔다. 한편 서양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수 세기 전에 발견하고 가꾸어왔다. 민주주의는 감시·견제와 균형을 통해 관료의 비행을 예방한다. 자본과의 결탁을 통해 지대를 추구하려는 관료들의 욕구는가, 시민들의 감시와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인사권을 통해 좌절되는 구조이다. 국회가 관료들에 대한 탄핵소추권과 파면권을 쥐고 있는 이유이다.

지난 몇 달간 계속된 인사파동을 보면서, 관료의 질이 그래서 나의 장래가 걱정되는 이유이다. 또한 관료의 실패가 구조적으로 장려되는 시스템이 지난 대선을 통해 추인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감시라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관료의 실패가 豊臣의 경우에서 처럼 집권세력의 교체만을 초래해서 더 큰 문제를 초래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었을 수 있는 조건을 확인

화성의 과거 기후가 생명체를 지탱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나사의 발표를 전하는 신문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읽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수소, 탄소, 산소등이 검출되었으므로 과거 화성환경은 생명체 서식에 적당했다.”정도일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게 기사냐? 두 문장으로 된 기사는 근거-결론의 구성인데, 각 문장 자체는 흠잡을 데 없다. 하지만 논리의 구성을 비유하자면 마치 “오늘은 날씨가 좋으므로, 나는 남자다.”라는 식으로, 근거에서 결론을 추론하는 내용이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 얼토당토않은 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이 문제다.

외신을 번역하는 많은 과학기사들의 함량미달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특히나 오늘 읽었던 그 기사는 성질 깊숙한 곳의 어떤 민감한 곳을 긁는 느낌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밀려오는 느낌이랄까. 이런 기사들의 소스는 뻔하다. 프레스 릴리즈. 역시나 홈페이지에는 바로 링크가 걸려 있었다 (2013-092). 예상대로 한국어로 번역된 그 기사는 그 프레스 릴리즈의 첫 세 문장을 번역한 것이었다. 첫 문장은 제목으로 갔고, 둘째 셋째 문장을 번역해서 기사로 올렸다. 원문의 나머지 4/5는 번역과정에서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번역된 부분 역시, 난데 없는 무기물 같은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봐서 썩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

프레스 릴리즈를 내 나름 옮기자면 이렇다. 큐리오시티가 화성의 퇴적암에 구멍을 파서 만든 돌가루에서 황, 질소, 수소, 산소, , 탄소와 같은 생명 구성의 필수성분들을 확인했는데, 이것은 과거 화성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미션 관계자가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와 해석 사이의 단차를 설명하는 부분이 버려진 4/5이다.

프레스 릴리즈의 버려진 부분은 먼저 샘플이 채집된 지역의 지질학적 셋팅을 설명한다. 큐리오시티가 샘플을 채집한 지역은 과거 하천의 말단부였거나 단속적인 호수들의 바닥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지역으로, 미생물들이 좋아할 만한 화학에너지 같은 조건들을 제공했었을 수 있었다. 이 내용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꽤나 당연한 일인데, 외계인이 지구에 탐사선을 날려서 지적 생명체가 있는지 확인을 하고 싶어하는데, 그 탐사선이 바다 위를 열심히 찾아 다닌다면 목적을 완수하기 힘들 것이다. 큐리오시티는 물이 흘렀을 만한 곳을 찾아가 샘플을 땄다.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용매로 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샘플을 채집한 암석에 관한 설명이다. 그 암석은 세립질 이암으로, 점토광물, 황산염광물을 비롯한 다른 화학물질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러한 구성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과거의 습윤했던 환경은, 화성 다른 곳에서 발견된 바 있는, 심하게 산화시킨다거나, 산성이라던가, 혹은 매우 고염분의 환경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그 암석의 기반암은 과거의 수로망에 위치해 있었으며, 역시 세립질 이암임을 설명하면서, 지질학적 셋팅에서 예상되는 암석이 샘플로 쓰였음을 다시 설명한다. , 그렇다면, 큐리오시티의 관찰 결과, 즉 암석의 광물 구성이, 어떤 환경을 지시하길래 화성에서 이미 관찰되었었던 다른 환경과는 다르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다음에 설명되어 있다.

일단 그 암석 샘플의 최소한 20%는 점토광물로 되어있다고 한다. 점토광물은 상대적으로 맑은 물이, 예를 들자면, 감람석 같이 화성암에서 나타나는 광물과 반응하여 생기는 광물이다. 점토광물의 존재는 흘렀던 물이 뭐가 많이 녹아 들어 있는 짠 물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짠 물에 노출된 화성암의 광물은 용질과 우선적으로 반응하여 점토광물이 아닌 다른 광물을 만들 것이다. 또한 암석 샘플에서는 황산칼슘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중성 또는 약 알칼리성 환경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로서 산성이 아닌 환경, 고염분이 아닌 환경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물질의 상태는 대체로 온도와 압력으로 기술된다. 똑같은 화학 구성을 가지는 혼합물이라도, 그것이 온도 1700도에 압력 1억 파스칼의 환경에서 안정되게 존재할 수 있는 모습과 지표 환경에서 안정되게 존재할 수 있는 모습은 전혀 다를 것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점토광물은,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커먼 현무암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 습한 지구표면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점토광물은 지구상에 매우 흔하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흙이, 유기물과 미립질 석영 및 장석이 좀 포함되어 있는 점토광물의 혼합물이라고 생각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점토광물이 화성의 표면에서 확인된 것이다. 또한 황산칼슘은 다른 말로 석고라고도 하는데, 물이 산성일 때에는 침전되지 않는가 보다. 인터넷을 뒤져 봤는데, 명확한 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매우 흥미로운 부분은 산화 환경의 화합물과 환원 환경의 화합물들이 섞여 나왔다는 데에 있다. 처음 드릴을 박을 때부터 산화를 나타내는 붉은 색이 아니라, 회색이 나왔다는 데에서 예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환원성 환경은 색을 통해서도 이미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화합물의 성분 또한 인상적인데, 황산염 광물과 황화광물이 섞여 나오고 있다는 점은, 미생물들이 화학에너지를 이용했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지구에 살고 있는 시아노박테리아는 물(H20)을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데,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황화수소(H2S)를 이용해 광합성에 필요한 전자를 공급받고, 황과 황산염을 부산물로 내 놓는다.

큐리오시티는 과거의 하천에서의 작업을 끝내고 나면, 게일 크레이터의 센트럴피크인 몽 샤프로 이동할 계획인데, 거기에서도 점토광물과 황산염광물이 확인된 바 있다. 보다 다양한 생존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을 지도 모른다. 센트럴피크는 충돌구의 중앙부가 충돌 시의 압력에 대한 역작용으로 불룩 솟아오른 곳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화성의 크레이터들은 상대적으로 큰 센트럴피크를 가지고 있다.

이 정도가 프레스 릴리즈를 나름 번역·해석·보충한 것이다. 비록 그 첫 부분이 매우 압축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납득하기 힘들었던 논리의 비약은 그 나머지 부분에 차근차근 설명되어 있었다. 한국어로 기사를 쓴 사람은 그 논리의 흐름 또한 한국어로 옮겼어야 했다.

마무리 짓기 전에 강조하고 싶은 한 가지는 광물은 환경을 지시한다는 점이다. 지구과학 II를 배우는 누구나 접하게 되는, 남정석·규선석·홍주석이 보여주는 산화알루미늄의 상태도는, 광물을 통해 환경을 유추하는 방법의 대표적인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다. 화성의 과거 환경이 점토광물과 석고를 통해서 유추하는 것을 나사의 프레스 릴리즈에서 볼 수 있었다. 광물을 통해 환경을 유추하는 방법은, 인류 지식의 최전선에서 똑같은 원리에 입각하여 응용되고 있다.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기회주의자

※ 경고: 이 글에는 가카를 찬양한다고 볼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지난해 가을, 그러니까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이 되는 보궐선거가 있었던 바로 그 때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혜성같이 나타난 안철수 교수. 한참 먼 곳에서 인터넷을 통해서만 듣는 한국소식이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민국 여론의 거대한 흐름이 휙휙 움직이는 것을 진정한 놀라움으로 바라보았었다. 風林火山이라고 했던가. 안철수 교수는 질풍과 같이 정국을 주도하다 돌연 박원순씨에게 시장후보를 양보한 후, 거짓말처럼 공적 공간에서 사라지고 본업이었던 교수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를 향했던 기대한 지지세는 흩어지지 않았다.

안철수의 지지세는 민주당을 압도했다. 그리고 작년 봄. 총선이 있었다. 의외로 안철수는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2012 1차 멘붕. 총선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이후 민주당 경선이 있었고, 김두관이 경남지사직을 버리는 최악의 이적질이 있었고, 결선투표를 하네 마네 난리 굿통이 있었고, 결국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이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원장의 단일화는 전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안철수 후보는 결국 후보직을 사퇴했고, 한달 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대선에서 석패했다. 2012 2차 멘붕.

대선 전의 여론조사를 보면, 여느 선거와는 다르게 흔히 부동층, 무당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매우 적게 나타났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기존 정치권에 실만한 사람들이 대거 안철수 후보에게서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중립인데요”

참정권으로 대표되는 시민의 자격을 박탈해야 마땅한 가장 더럽고 비열한 언사이다. 나는 중립이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중립이기 때문에 투표도 하지 않는다. 나는 똥덩어리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판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시민의 협치가 보장되는 좋은 정치는 공짜가 아니고, 그냥 성립되지도 않는다. 시민의 관심이 없이는 좋은 정치인도, 좋은 정치 시스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립적인 시민들이 뽑은 대표들로 입법부가 채워지게 되면, 그들은 우리가 익히 봐 왔던 것처럼, 정부와 국가의 자산과 소득을 사유화해 버린다. 복지라는 시민의 권리를 약탈하여 만들어진 자금을, 공적 자금이나 경기부양책라는 이름으로 자본가에게 선물하는 매일 같은 일상은, 정치인들이 원래부터 개새끼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개새끼들이 국회에 입성하도록 방조한 그 깨끗하신 중립적인 시민들의 책임이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저는 중립인데요?”라고 당당하게 말해대는 그 훌륭한 면상들이, 공동체의 파괴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공동체 공동의 자산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필요할 때에만 나타나서 그 과실을 따먹으려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주 예전부터 있었다. 바로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들이 많아질수록 소수의 이해가 정치에 과잉투사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시민의 연대가 자발적으로 붕괴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별로 거부감이 들지 않는 다른 말로 이들을 지칭해서 기회주의자들이 창궐하도록 방조·묵인한다. 바로 “무당파”이다.

소위 無黨派라고 하는 자들은 실은 巫堂派와 구별하기 힘든 자들이다. 그들은 평소 정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의 그 본질적 기능이 재화와 용역을 누구에게 얼마나 분배할 지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무당파가 많은 국가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정치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에게 유리한 분배를 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은 힘들어지도록 정해져 있고, 이 때 앞서 말한 무당파들은 마술적·주술적 사고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든다. 정치 메시아의 강림이다. MB니미 다 해 주실꺼야.

6년 전의 메시아는 악귀히로였고, 작년의 메시아는 안철수였다. 신도의 질을 따지자면, 나는 차라리 악귀히로의 지지자들이 나았던 것 같다. 교회에 열성적으로 다니는 중년 여성분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그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메시아가 떳떳하지는 못한 사람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를 했었다. 물론 악귀히로의 안티테제였던 노무현이 정치와 경제를 망쳤다는 패러다임을 내면화했다는 것과, 그래서 악귀히로를 지지한다는 심각한 모순을 보일 만큼 도덕성에서도, 지성에서도 심각한 성장지체 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투표율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보다 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2007년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철수의 지지자들은, 높은 투표율이 말해주듯, 더욱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새누리당의 방사능 세슘 같이 지워지지 않은 지지자들이나, 울며 겨자먹기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혹은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진보정의당을 지지해 온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인 우위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라 불렸던 일련의 현상을 다른 말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평소에는 정치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메시아 안철수 후보를 찬양하고, 새정치 주기도문을 외면서, 쓰레기 같은 민주당을 경멸하던 현상이다.

안철수 후보의 슬로건이었던 새정치는, 민주당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 결과 안철수 현상의 가장 희극적인 몸 개그가 나온다. 국회의원 정수 감축 크리! 뭐 복지 쪽 정책은 진보 쪽이 인기가 많고, 안보 쪽은 보수 쪽이 인기가 많으니 둘 섞어찌개하면 되겠네, 국회의원은 밥이나 축내니 줄이자고 하면 인기가 좋아지겠지 수준의 택시기사 따로국밥 정치가 작렬했다. 정치적인 비전은 고사하고, 정치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불충분하다 못해 낙제 수순인 처절한 바닥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정치인의 수준은 그 지지자의 수준이다. (여담이지만 2007,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균형발전을, 악귀히로는 한반도 대운하를, 그리고 다카키 마사코(高木 魔邪子)는 서해 철도 페리를 국가의 비전으로 제시했었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사람들에게, 누가 좋은 후보인지 알아보는 감별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인간이 하는 어떠한 행위도 그 의도적인 개발과정 없이 어떠한 수준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정치인이 하는 정치라는 분과의 기예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일반인의 참정권 역시 관심과 경험의 축적 없이 올바르게 행사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정치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지지자들 중 다수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각성되어있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훈련되지 않았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을, 작년 한 해 동안 새누리당은 철저히 희롱하고 능멸했다. 조직적이고 훈련된 전문적인 여론 조작단이,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둘 중 어느 쪽으로 여론이 쏠릴 조짐이 있을 때마다 반대쪽에 힘을 실어 주면서 단일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양자간의 이간질을 부채질했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 미숙했을지언정 그들의 열망마저 악용되어도 좋을만큼 무가치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갈구, 선의지만은 진정이었다. 바로 그것을 새누리당은 이용했다. 그 뿐이랴, 안철수 후보 측의 캠프에도 새누리당의 잔여인사들이 참여하지 않았던가?

안철수가 후보 사퇴를 선언하던 날, 대학 선배 중에 한 명이 페북에 이런 비슷한 글을 남겼었다. 아 이제는 심상정이나 찍어야겠다고. 그 며칠 후에 심상정 후보가 사퇴했다. 그만큼 야권은 절실했었다. 얼마 후에는 야권의 구멍이라고 볼 수도 있는 진중권이 트윗을 통해 “사과”라는 걸 했다. 이정희 후보 역시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나는 N2 폭탄을 한 손에 쥐고 사도 제루엘을 향해 자폭공격을 하던 에바영호기가 떠오른다.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그 어마어마한 기득권의 카르텔에 한 번이라도 맞서 본 자들은, 누구나 단결했다. 지금은 어떤 작은 차이로 편을 가를 때가 아니라, 일단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대선에서는 졌지만, 그 자발적인 동맹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단일화의 진정한 모습을 보았다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그 전선에 나서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기득권 카르텔과 싸울 이유가 없이 살아 온 분이고, 실전에 들어서는 그 싸움 그 자체를 구태로 선언하신 분이다. 작금 문제가 되고 있는 안철수 후보의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그 선배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궁금만 하다.

2013년 1월 15일 화요일

욕론



많은 사람이 그러할 텐데, 나는 뉴스를 보면 욕이 막 나온다. 욕을 하는 거야 유치원에서 배운 후로 계속되어온 현상인데, 요즘 들어 욕의 발화(發話) 양상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욕으로 서사가 가능해지고 있다.

사실 이전에도 가끔 뭔가에 열 받아서 욕을 하면,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이, 내가 대뜸 랩을 하는지 알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긴 하다. 그런데 요즘은 욕지거리가 나오는 동안 내가 박자를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는 경우가 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일단 가장 자연스러운 이유로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욕들을 접하면서 어휘력이 늘었을 수 있다. 그리고 가요의 깊은 맛을 알아가면서 박자를 맞춘 인간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점차 알아 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 시대적 이유가 욕의 변화에 기여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명박 시대의 정치 뉴스는 이전과는 달리 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이 다양하고 여러 층위에 분포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사의 다양한 측면, 복잡 다단한 연관성을 점점 더 파악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생물학적인 이유인 듯하다. 어리고 젊은 시절, 욕을 하고 싶은 충동은 강렬하지만 짧은 펄스처럼 다가왔다. 그 충동은 심지어 외마디 욕이 발화되는 시간 동안 조차 지속되지 못했다. 그 때는 외마디 욕을 짐승같이 외쳤었다. 그런데 요즘은 늙어가서 그런지 그 충동이 완전한 형태로 조합되고 해체되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일단 발화된 욕은, 발화 후 흩어져가는 충동을 자극하여 다음 번 발화로 이어지고, 다시 그 발화는 다음 발화를 유도하는, 그런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듯하다.

화자의 카타르시스에서 끝나는 욕을 결코 아름다운 욕이 될 수 없다. 아름다운 욕은 옆에서 방관하며 듣는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욕의 공격 대상이 되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계속하여 말싸움을 이끌어 가고 싶어하는 생각을 단념시킬 수 있어야 한다. 2인칭에 대하여서는 욕의 내용이, 3인칭에 대하여서는 욕설의 구조와 발화의 시연(박자, 운율, 고저, 장단), 호소력의 요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호소력 있는 주장에 공감할 뿐, 설득력 있는 주장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서사가 점차 자연스러워 지고 있는 것은, 앞서 말한 두 가지 퍼포먼스를 실을 수 있는 플랫폼이 겨우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직 멀었다. “어떻게 하면 수영(, 달리기, 피아노, 글쓰기, 노래 뭐 든)를 그렇게 잘 할 수 있나요?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욕에 대하여서도 별로 다르지 않은 듯하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