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1일 토요일

대통령 노무현

울었었다. 보고서를 마감하고 기분이 홀가분했던 지난겨울의 어느 날, 형과 동네 술집에서 맥주를 간단히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꼴을 흉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참 웃기더라. 머리 속에서는 수 없이 맴돌던 그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와 다시 그 소리가 귀를 통해서 머리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술을 먹어서인지, 형 앞에서 부끄러움도 잊고,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반복하며, 눈물을 연신 훔쳐가며 철철 울었었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많이 많이 울었었다. 그 때는 정말 많이 울었었다. 억울함과 분노에 그리 울었지만, 사실은, 사실은, 내 자신이 더 많이 부끄러웠다. 배은망덕의 악취로 뒤덮인 개백정 새끼 이인규를 비롯한, 창녀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개쓰레기 검찰 씹새끼들따위가 대통령의 머리끄뎅이를 잡고 동네방네 돌려가며 지 마음대로 개병신킹 인증했다고 낙인을 찍고, 좆밥 병신 만들듯 창피를 주며 가지고 놀 때, 그리고 매국언론들이 그것을 받아쓰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노무현 개새끼라고 핏대 올리며 왱알대며 질러대고 있을 때, 나는 게으르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이명박임을 알고도 대통령으로 만든 개자식들에게는, 가공된 노무현의 더러움이 필요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덤으로 이제는 쓰레기가 되어 똥통에 처박힌 그를 태워 죽일 수까지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었겠지. 그 때 나는 노무현을 논리적으로 변호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에 게을렀고, 검찰의 저열함을 성토하는 내 작은 목소리가 “나의 노무현은 그렇지 않아”라도 강변하는 덕후로 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침묵했고, 그 분은 돌아가셨다.

당연히 내 따위가 덤비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그 분의 선택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내가 그 때 보인 그 비겁한 모습이 항상 부끄럽게 떠오른다. 그래서 한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내가 부끄러워져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분의 떠올리는 것조차 힘이 들어, 사 놓았던 김대중 자서전도 그가 등장하는 곳부터는 읽지 못하고 있고, 노무현 자서전은 용기내서 사기는 했지만 더더욱이나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 날 저녁,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나 역겨웠기 때문인지, 입에서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콧물을 흥흥 거리고, 자꾸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다가, 갑자기 자랑스러워졌다.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미치도록 자랑스러웠다. 그 자랑스러움에 감동받아 또 진정되어가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백색테러단이 빈소에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집기를 깨부수고, 서정갑인가 하는 개는 그 분의 영정사진을 전리품 취급하며 들고 흔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시민들의 분향소는 닭장차들이 둘러쌌고, 이에 대해 주상용은 아늑한 분위기라 시민들도 좋아한다고 개드립을 쳤다. 작년 1주기 때, 정몽준의 축구협회는 생뚱맞게도 그 전날 한일전 축구를 잡았었다. 정부에서는 묘역에 대하여 한 푼의 국고 지원도 하고 있지 않는 판국에 집권 개나라당은 2년 동안 한 번도 묘역을 찾지 않았다가 이제야 가서는 도리니 어쩌니 하면서 짖고 앉아있다. 억울하냐고? 그렇지 않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조선일보는 그의 죽음을 있지도 않는 단어인 “사거”라고까지 표현하며, 사설에서 만평에서 기사에서 그의 삶과 인격을 폄훼했다. 그 때 깨달았다. 조선일보에게서 칭찬받는 죽음이라면, 개털 한 가닥만한 가치도 없는 삶이라는 것을, 5·18 기념식, 4·3 기념식에 이명박이 오는 것이, 영령들에 대한 최악의 모욕이라는 것을, 개나라당이 서민을 입에 올릴 때가 바로 그들의 분열과 멸망이 가까워 온 때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아는 노무현 대통령의 원칙은 이것 하나다. “특권이 통해서는 안 된다.” 특권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억울할 사람은, 실력과 주제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특권에 도전하고 그것을 깨 부실 수 있는 유일한 힘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너무 늦게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노숙행성

항성에 중력으로 구속되어있지 않는 행성의 존재가 마이크로 중력렌즈효과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관측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http://www.nature.com/news/2011/110518/full/news.2011.303.html) 발광하는 별 앞을 중력을 가진 물체가 지나가면, 통과하는 물체의 중력에 의해 광선이 구부러지기 때문에 뒤에 있는 별의 밝기가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중력렌즈에 의한 밝기 변화는 다른 효과와는 구분되는 특정한 광도변화패턴을 보여주게 되므로, 중력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 특징적인 변화패턴은 http://www.youtube.com/watch?v=yjXK3u7hC5A에서 볼 수 있다. 관측 결과 추산되는 이런 노숙행성의 질량은 10 목성질량 정도, 은하계 내에서의 수는 4000억 개로 주계열성의 수의 두 배 정도라고 한다. 원문에 아직 접근할 수 없으므로, 어떻게 해서 그 수의 추정이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사는 칼텍의 데이비드 스티븐슨의 의견을 소개하며 목성의 경우 태양계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 온도는 15도 밖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서 젠 온도가?) 또한 목성같이 큰 행성은 그 주위에 동반 위성을 가지는 경우 역시 흔할 것이므로, 그런 위성에서는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자연히 더욱 흥미를 끌게 되는 것은 지구 질량의 노숙행성인데, 지구 같은 행성이 성간매질의 차디 찬 영역에 간다 하더라도, 수소대기를 가질 경우, 액체 물로 이루어진 해양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 기사는 어떻게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웹에서 좀 검색을 해 보자, 이런 기사가 나왔다. (http://abcnews.go.com/Technology/story?id=99213&page=1) 또한 논문을 찾아볼 수 있었다. (http://www.gps.caltech.edu/uploads/File/People/djs/interstellar_planets.pdf) 항성의 전자기복사가 닿지 않는 노숙행성에서도 수소로 된 대기가 충분히 짙을 경우 (심해저의 압력정도가 되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안타깝게도 지구의 대기를 이루고 있는 질소와 산소는 수소 정도의 절연효과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이런 행성의 경관은 당연히 매우 어두울 것이고, 게다가 물, 암모니아, 메탄의 구름이 차례로 층을 이루고 있으므로,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단, 화산활동에 의해 지면 가까운 곳의 대기가 어스름한 붉은 빛을 때때로 내비칠 때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마치 지구의 열수분출공에서 그러한 것처럼, 생명이 그 주위에서 번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지구에 비해 5000분의 1 정도의 에너지만이 허락된다.

생명을 보듬는 노숙행성이라도, 그 행성이 완전히 식어버리면 그 희박한 생명의 끈 또한 없어진다. 행성이 오래오래 생명을 보듬으려면 속이 뜨겁게 유지되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행성이 크면 된다. 큰 행성은 더 많은 방사성 원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오래 동안 붕괴하면서 열을 낸다. 또한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가 작으므로 천천히 식는다. 사실 그동안 방사성 원소의 붕괴열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행성을 데우는 또 다른 방법은 외부에서 역학적인 힘이 작용해서 그 에너지가 내부에서 열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예를 목성의 위성 이오에서 볼 수 있다. 이오는 목성의 강한 기조력으로 내부가 왕창 녹아있다고 한다. 얼마나 녹아있냐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건이었는데, 갈릴레오 탐사선의 자기장 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거의 녹아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http://www.cosmosmagazine.com/news/4313/jupiters-moon-has-ocean-molten-rock) 녹은 암석은 전기 전도도가 높아지는가 보네. 몰랐다. 또한 최근에는 원시태양계 형성과정에서 거대기체행성의 중력으로 인해 지구형 행성들이 튕겨 나갈 때, 달 같은 위성을 달고 탈출할 수 있음이 제시되었다. (http://adsabs.harvard.edu/abs/2007ApJ...668L.167D) 그럴 경우 조석력이 계속 작용하게 되어 행성의 지질학적 활동을 강화하고 수명을 연장시켜줄 수 있다.

질문이 떠올랐다. 10 목성질량의 노숙행성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는 갈색왜성과는 어떻게 다른가. 위키피디아의 갈색왜성 항목은 이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수소 핵융합을 위한 최소질량은 75에서 80 목성질량이다. 반면 13 목성질량 이상만 돼도 중수소 핵융합은 가능하고, 65 목성질량에서는 리튬 핵융합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한편, 리튬과 메탄의 흡수선은 갈색왜성과 주계열성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주계열성의 온도에서 메탄은 존재하지 않고, 리튬은 주계열성에서는 최대 1억년 안에 모두 타버리기 때문이다, 라고는 하는데 사례별로 애매한 경우가 있어서 좀 논란의 여지는 있는 것 같다.

좋다. 그러면, 작은 갈색왜성과 어딘가 있을 왕목성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갈색왜성의 크기(부피)는 질량의 상한선 근처에서는 전자축퇴압에 의해 거의 결정되는 반면 하한선 근처에서는 그냥 보통 기체의 짜부되는 정도로 결정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갈색왜성의 반지름은 무거운 놈이나 가벼운 놈이나 할 것 없이 10%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크기로는 둘을 구분하기 힘들므로, 중수소 핵융합이 일어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로 낙착을 보자는 것이 아직까지는 대세인 것 같다. 그 질량이 13 목성질량 정도인데, 이 경우 역시, 질량뿐만 아니라 중수소화 헬륨의 성분에 따라 그 값이 변한다고 한다.



큰 지구형 행성이 생명을 키우기에 유리하다는 것은 노숙행성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앞서 나온 스티븐슨의 견해를 따를 때, 질량이 큰 행성은 더 빨리 보온에 충분한 수소를 성간공간에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 동안 지질활동을 통해 지표에 에너지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역시 큰 행성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 사는 생명들은 광합성이 불가능하므로, 화학합성을 고도로 발달시키며 진화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들에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이들도 지구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세포핵의 형성, 세포의 종속적·수평적 합체와 기능에 따른 조직의 분화라는 테크트리를 타는 다세포 생물군이 생길까. 광합성이 빠졌다 뿐이지, 나머지들은 화학합성을 하는 생물에게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꽤 풍부하게 존재할 수소는 빛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것 같은데. 또한 포식이라는 전략은 어디에서나 충분히 경쟁력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행성에서 육지는 무엇일까. 분명 물을 통한 물질의 순환이 있겠지만, 그 순환이 너무 느릴 것이다. 액체 상태의 물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일사가 없는 환경에서 과연 비는 얼마나 올까. 그 공간도 결국에는 진화한 생명에게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수도 없이 매우 효율적인 생명으로의 진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결국 그들의 효율성이란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생태적 물질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고갈시킬 뿐이었기 때문에, 혁신적 도약들은 번번히 파국적인 깽판으로 끝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중간정도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을지도.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인간의 문명의 효율성이 비슷하게 작용하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들었다.



번역에 대한 변백
항성에 중력으로 구속되어 있지 않은 행성질량의 천체를 영어로는 rogue planet이니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광폭한 행성이라 하는 것 같다. 독일어로 된 신문 기사에서는 고유명사로 쓰인 경우는 보지 못했고, verw6aister Planet이니까 고아행성, 또는 einsamer extrasolarer Planet이니까 단독외계행성 정도로, 프랑스어는 Objet libre de masse planétaire이니까 행성질량 자유물체, 이탈리아어는 Pianeta interstellare 이니까 성간행성, 일본어는 자유부유혹성, 중국어는 성제행성이라고 칭하는 것 같다. 독일어 말고는 위키피디아의 인터위키를 참조했다. 한국어 인터위키는 떠돌이 행성으로 표제어가 달려있는데, 행성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떠돌아다니는 별이라는 뜻이므로 썩 훌륭해 보이지는 않는다. 자유행성이나 독립행성은 결코 혼동되는 의미로 실재 쓰일 일은 없겠지만, 왠지 정치적인 느낌이 들고, 방랑행성은 무슨 판타지 세계관에나 등장할 것 같다.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신세지만, 떠돌아다닌다는 뜻이 중복되지 않게 표현하기에는 노숙만한 게 없겠다 싶어서 이 글에는 노숙행성이라고 옮겨 적었다. 순수한 사견이다. 글을 완성하고 나니, 가출행성이나 출가행성도 그럴듯 해 보인다.

2011년 5월 15일 일요일

꿈의 택배편이 떠올랐다

2000년의 여름, 나는 신림동의 어느 고시원 쪽방에서 더위에 쩔어 있었다. 외지에서 난생 처음 격어 보는 지독한 외로움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만약 그 해 농활을 가지 않았더라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죽었을 것 같다.

나는 그 때 실재로 약간은 미쳐있었다. 건물 5층이었지만 비가 오기 전에는 꿉꿉한 하수구 냄새가 실내에 꽉 차 있었고, 어딘가 항상 불결한 느낌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둔 유월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방에 도착해 자려고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짜부작 짜부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구석을 들여다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 전날 방구석에 버려두었던 초코파이 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봉지를 조심스레 눌러 바퀴벌레를 제거했지만, 잠시 후 이번에는 방향을 특정할 수 없게 방 안의 온 벽에서 끊임없이 아까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내가 미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미치지 않았음을 확인해야 했다. 소리의 근원을 특정하기 위해 한동안 방 안을 초조하게 뒤적였다. 소리의 근원을 확인해야 내가 미치지 않은 것이니까. 혹시 또 다른 바퀴벌레인가. 그리고 잠시 후 깨달았다. 그 소리는 때마침 창 밖에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안도해 하며 끈적이는 불쾌함을 느끼며 잠이 들었었다. 수 년 뒤에 깨달았다. 상황이 조금 더 악화될 수 있었으며, 그럴 경우 많이 위험했을 거라는 것을.

그 때의 나를 지탱해준 건, 사회에 독립해서 첫 발을 내 디뎠다는 데서 느낀 헛된 뿌듯함이었다. 세상은 운 없게도 돈 없이 세상에 나온 18년産 남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상경직후 복덕방에서 소개해 주었던 하숙집은 2달 반 만에 헐렸다. 복덕방에서 그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를 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5월 축제기간, 나는 당장 집을 찾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 앉게 된다는 두려움에 서울 변두리의 복덕방들을 전전했었다. 1학년의 봄 축제는 내게는 남 일이었다. 싼 집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위생환경의 집들만이 내가 정한 원세의 상한 기준을 만족시켰다. 더 이상은 도저히 부모님께 부담드릴 수 없는 금액이었다. 관악구청 앞에서, 복덕방 주인을 따라 방을 보러 갔다가, 낙담하며 구청 앞 신호등을 건너 사방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건물들과 그 건물마다 수십 개씩 붙어 있는 까만 네모난 구멍들, 그 어디에도 내가 몸을 뉘일 곳이 없다는 절망감은 좀 많이 무거웠다. 그 때 어렵게 구했던 방이 빗소리가 바퀴벌레 소리로 들리던 바로 그 방이었다.

외로웠다. 억지로 관계를 맺는 듯 해 보이는 가식적인 대학생들의 만남이 스스러웠다. 난생 처음 만나는 선배들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힘들었고, 동기 수십 명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위해서 하는 과장된 액션들이 보기 싫었다. 더군다나 그 오바질이란 것들은, 나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장기와 재주를 부리는 것들이었기에 나는 질투와 무력감을 함께 느꼈다. 저 인간들은 어떻게 저런 잡기와 성적을 함께 유지할 수 이었지? 그와 더불어 입학 전 모임에서 겨우 말을 텄던 몇몇은, 개학과 동시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종강한 것이다. 수업시간표가 남들과는 다소 달랐고, 컴퓨터가 없었다는 것도 상당한 이유였다. 나는 내부적·외부적 이유들로 인해서 효과적으로 고립되었다.



그 여름의 어느 날, 자우림의 앨범을 샀다. 그리고 한동안 하루 종일 그 곡들을 들었었다. 그 곡들은 내 기억에, 그 여름의 힘든 시기에 달린 태그와 같은 것들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꿈의 택배편”.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가 서너 달의 지독한 인내 끝에 무너졌지만, 그 때 난 아직도 스스로 먼저 다가 갈만큼 용기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것이 그리 비겁한 짓이었을까. 그 날, 그 자우림 3집 테이프를 사러 버스타고 15분이나 걸리는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옆에 있는 음반가게에 갔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우연히 과친구들 한 무리를 만나 식당에 함께 들어갔었다. 아직도 아주 뼈아프게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친구들이 미칠 듯이 부러웠었던 것이. 단지 그들은 외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풍족하고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딱 거기까지만 기억이 난다.

하악, 감동도 재미도 없는 씁쓸했던 기억이다. 왜 이 노래가 기억이 났는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 쓰고 싶었던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빈곤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앞서 이야기했던 내가 외로웠던 이유들을 모두 뒤집어야 한다. 나는 빈곤했기 때문에 외로웠다. 하루 저녁, 만 원을 뿜빠이 해서 내야했던 동기들과의 술자리에 가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던 이유, 부모님께 대학교 들어간 큰아들 컴퓨터 한 대 사 달라고 우길 수 없었던 이유, 그 고립되었던 시간 동안 외로움을 떨쳐 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그리고 내 부모님이 빈곤했기 때문이었다. 지나친 빈곤은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상처이니까. 그 때 날 지탱해 준 것은 어떤 의미에서 뽕이었다. 넌 이제 성인이야, 네 앞가림은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라는 달콤한 속삭임. 세상은 그 헛된 용기들을 도둑질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것 아닐까.

나는 그 때를 스스로의 인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준비해 나가는 시간이라 여기며, 빈곤 속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만큼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아니 없는 행복을 자주 가공해 가며, 살아갔다. 하루는 밤늦게 과외를 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뉘였다. 문득 관악구청 앞에서 절망했던 5월 어느 날의 해질녘이 떠올라, 이제 누울 자리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며 보람 속에 잠이 들었다. 오늘 난, 그 잠자리가 떠올라 그 불쌍한 젊은이를 동정하며 눈물을 훔친다. 그 젊은이는, 나도 저 옷을 입어보고 싶어, 나도 새로 나온 저 핸드폰을 써 보고 싶어, 나도 저 음식점에서 다들 맛있다는 어떤 메뉘를 먹어보고 싶어, 그런 욕심들을 마음에서 하나씩 죽여 갔다. 행복은 물질적인 충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속삭임들은 또한 얼마나 달콤한가. 이제는 내가 정말로 새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차피 못 살걸 알고 포기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죽었으니까 상관은 없다.

그런 생활은 단속적으로 반복되어, 2007년의 어느 날, 나는 그 때보다 해발고도 70m 높은 또 다른 방을 빌려 몸을 누이고 있었다. 2000년, 나 같이 극단의 빈곤 선 바로 위에 있었던 젊은이들은 완전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아마 10%가 조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며칠 전 그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12139085&code=940702)는, 그리고 거기 달린 현실감 있는 많은 의견들은 처절한 절규였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진짜 기사였다. 똥이 질질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사실만을 기술한 기사가 이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는 것은, 사회가 이미 매우 극적인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극의 절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만, 그 젊은이들의 부모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최후에는 징벌을 받는 악역을 맡은 자들이다. 내가 말하는 그들은 내가 빈곤에 고통 받고 있는 동안 가장 열렬히 투기에 뛰어들었던 자들이다. 그 뿐만 아니다. 그들은 내가 인정하는, 특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들을 형편없이 비웃었고, 자본이라는 신이 역사하시는 몰상식과, 법 위에 서 있는 힘의 전횡에 열광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것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동시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죽거나 고통 받는 것 따위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고려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자들이다. 나 같은 대대로 돈 없는 것들이,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결혼과 출산의 축복을 포기한 채, 붙어있는 목숨에 감사해하며, 근근이라도 살아있는 것이, 대체 그들과 무슨 상관이었느냔 말이다. 나는 그들이 빚을 떠안고 몰락하기를 정화수 떠 놓고 빌고 앉아있지는 않아도, 그들의 비참한 몰락을 비웃으며 보아 줄 용의는 있다. 대체 그들이 투자에 실패하고 일가족이 비탄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꿈의 택배편”은 나에게 외로움뿐 만이 아니라, 외로움과 빈곤을 함께 떠올리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