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3일 화요일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전에 짜장면이 표준어가 아닌 것에 격분해 글을 써갈긴적이 있었는데 (http://jolysses.blogspot.com/2010/04/%EC%A7%9C%EC%9E%A5%EB%A9%B4%EC%9D%80-%EC%A7%9C%EC%9E%A5%EB%A9%B4%EC%9D%B4%EB%8B%A4.html), 근자 비로소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시에 몇 가지 더 많은 단어들이 함께 표준어로 승격하게 되었다.

기쁘다. 짜장면은 새로 생긴 개념이므로, 철자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 정체와 기원이 불분명한 자장면이라는 단어가, 대다수 언중의 언어를 비표준, 부적격의 언어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언중이 사용하면, 그것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

작금의 언중들 중에 다수는 한자어를 정확히 쓰지 못한다. `명예훼손'을 `명예회손'으로 쓰는 경우는 양반이다. `무임승차'를 `무인승차'로 써서 도대체 누가 승차하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고, `청와대'를 `청화대'라고 써서 대통과 그 무리를 중국으로 텔레포트 시키기도 한다. 근래 본 최악의 경우는 `인신공격'을 `임신공격'이라고 쓴 경우다. 게시판에서 개 털리는 경우를 강간당했다라고 표현하던데, 그래서 그리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서 어찌 손써볼 도리가 없게 된다면, 그 때는 `명예회손' 역시 표준어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나는 당연히 이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이다. 새롭게 생겨난 단어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한자어들의 경우 형태소들이 완전히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에, 이것 저것 다 된다고 예외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어생활에서 한자를 완전히 배격해야한다는 입장에 선 사람이라면, 저들 중 두 번 째, 형태소 논거는 설득력이 없다. `명예훼손'을 이루는 글자들이 모두 대응되는 한자가 있다는 사실은, 국어순혈주의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사실이다. 현대 한국어 화자들은 `ㅚ'를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런 경우 `ㅞ', `ㅙ'와 구별되게 발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언중이 발음하는 바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어그로가 아니다. 삭월세는 사글세가 되어 표준어로 인정을 받았다. 나는 이 지점이 바로 한자 배격론의 실패가 완전히 까발려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한자교육을 배척한 결과가, 고급어휘의 철자법 좆망이라는 죠낸 아름다운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렇다면, 버스, 서비스, 가스 같은 단어들이 /뻐쓰/, /써비쓰/, /까쓰/로 소리나는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들 단어들도 된소리로 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내 감정은 현행대로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낀다. 왜냐고? 예들은 원래부터 외래어니까, 짜장면에 적용된 것과는 다른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누구도 짜장면을 외래어라고 느끼지 않으니까. 어떠한 외래어가 아닌 단어도, 그 첫 음절의 첫 자음을 예사소리로 적고 된소리로 읽는 경우는 없어. 적어도 당장 그 예가 떠오르지 않아. 심지어 둘 쌍(雙)은, 쌍이라고 소리가 나니까, “심지어” 한자가, 된소리 발음을 가지고 있어. 왜? 상이라고 쓰고 쌍이라고 읽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하나는 喫. 그러니까 짜장면이라고 하는 외래어가 아닌 단어는, 자장면이라고 적힐 수가 없는 거야.

(라고 적었는데, 퇴고하면서 읽어보니, 바로 밑에 반례가... 그래서 그냥, 잘 모르겠다. 난 꽈학을 하진 않거든.)

된소리로 발음되는 경우는 외래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김밥, 과대표는 각각 /김빱/, /꽈대표/로 발음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쌀밥이나 보리밥을 쌀빱이나 보리빱으로 읽는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짬밥이 /짬빱/으로 비빔밥이 /비빔빱/으로 읽히니까 아마도 특정 받침 뒤에 올 경우에는 밥이 된소리가 되지 않는가 가설을 세워보는데, 덮밥은 이게 /밥/인지 /빱/인지 잘 구별이 안된다. 어쨌든 형태소를 살려 적는 원칙에 따라 표기법을 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표준어가 표준 발음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옳은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 표준 경상도화자인 나 더러 책 하나 던져주고 낭독해 보라고 하면, 당연히 표 난다. 딱 들으면 다 안다, 점마 어데서 왔네. 아마도 낭독하는 동안 표준어에 의해 규정된 단어들을 읽었을 것이고, 자음과 모음의 발음 역시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억양이 문제라는 소린데, 표준어가 억양도 규제하는가? 경상도 티가 확 나는 발음은, 표준어가 아니다. 따라서 표준어는 억양의 규범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효과를 /효과/라고 발음하더라도, 억양이 이상하면 표준어가 되지 못한다. 이것은 국어사전 정의 수준을 좀 벗어나는 문제인 것 같다. 서울말에는 억양이 없으니, 억양 없이 말하라고 하는데, 내가 듣기에는 서울말에도 그들 나름의 억양이 있다. 따라서 내가 억양 없이 발음해도, 서울말 같이 들리지는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억양을 학술적으로 어떻게 기술하고 연구하는지 궁금해지네.

지난 번 글에서도 썼듯이, 언어는 인간 개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잣대로 적격·부적격을 가리기 위해서는 엄밀하고, 정합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이현령비현령의 두루뭉실한 총언 뒤에는, 이를 뒤바침하기 위한 엄밀한 `법칙'이 서술되어야 하며, 이는 법률이 합법과 불법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엄밀하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여지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표준 표기법에 대하여서는 어느 정도 그것이 가능하고, 현재의 규정이 (짜장면이 표준으로 인정되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표준 발음을 그토록 엄밀하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사실 좀 회의적이지만 그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표준 억양이라는 것이 문서와 활자로 기술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한 규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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