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잡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잡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4월 24일 수요일

관료의 질

지난 주말 산행을 했다. 동행했던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임진왜란 이야기가 나왔다.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의견이 있는데, 곧 그 때 조선이라는 왕조가 망했어야 했다는 論이다.

특히나 전쟁 도중에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조선의 최고 권력자였던 선조가 보여준 비열한 행태들, 전후 퇴행으로 치달았던 조선의 지배층들, 그리고 정체되었던 지배층이 초래했던 19세기과 20세기의 끔찍한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면, 조선이 그 때 망해서, 그래서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절로 솟아 오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몇 개의 평행 우주가 16세기 말에 분기되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평행우주가, 조선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였을지 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정유재란 때, 남해안에서 농성을 하던 왜군의 일부가 현지화에 성공해서, 17세기를 맞이하지 못한 조선왕조를 대체한 한반도의 지배자는 왜군과의 연합을 해야만 했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들이 수 세기동안 점유상태를 유지했을 수도 있다. 왜군은 물러나고 조선은 망한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순진하지 않나? 조선이 망했는데 왜군이 왜 물러나지?

유튜브에서 찾아 본 한명기 교수의 임진왜란 강의 (네 시간짜리 강의였는데, 매우 재미있었다)  마지막 편 질의 응답 시간에도, 비슷한 류의 질문이 나왔는데, 그 때 한명기 교수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아직 조선은 망할 때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을 대충 적어보자. 한석봉, 정철, 유성룡, 이순신, 조광조 정도가 개인적으로 떠오르는데, 조광조 말고는 다들 선조 때 사람들이다. 관료의 선발체계는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 의병들 쪽을 보자. 의병장들은 대체로 지역의 儒頭였다. 지방 행정을 담당하거나 조력했던 사람들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의병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관료와 관료체제는 전면전을 수행하는 데에는 부적합했을지 모르겠으나, 비상시를 어쨌든 관리하고, 인력과 물자를 동원했던 측면에서 보자면 “아직 망할만큼 무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승병의 활약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은 당시 한 세기 반이 넘도록 이어진 격렬한 내전을 마무리하던 시기였다. 개전 당시 일본의 지배자는 豊臣 秀吉였으나, 아직 완전히 국내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힘으로 힘겹게 누르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 유력 다이묘(그러니까 현대식으로는 군벌)들은 독립적이었다. 豊臣의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나자 억지로 출혈을 감수하고 있었던 다이묘들은 원정을 계속할 이유가 사라졌고, 전쟁을 종식되었다.

일단 최고 권력자의 망상 하나로 대규모 원정이 결정되고 실행될 수 있을 만큼, 내부의 의사 결정 시스템은 허술했다. 또 豊臣가 그 권력을 사후에 물려주지 못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관료, 혹은 이들은 군사집단이니까 막료집단이 갖추어 진 것도 아니었고, 있었다 해도 유능하지 못했다. 결국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豊臣 집단의 집권은 끝나고, 德川네가 일본열도에서의 최고권력을 쥐게 된다. 이들의 행동 양태는 조폭 집단의 이합집산, 그리고 그 내부에서의 의사 결정을 연상시킨다.



국토가 초토화된 임진왜란 시기의 관료가 나름 유능했다고?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조선이 맞이한 두 번째 위기 국면을 살펴보자. 고종의 신하들은 초기에는 민씨네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가면 고종은 그야 말로 온갖 잡놈들에게 고관 대작자리를 마구 던져준다. 고종과 민씨 커플은 조선 말기 전국적 매관매직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뇌물을 가져다 바칠 능력이 우선이지, 조정의 안위 따위는 아예 눈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대신의 능력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잘 빨아 많이 받치는 놈이 장땡인 것이다. 아오, 여기에 대하여서는 매천야록 등에서 읽은 게 좀 있는데, 인상만 남아서 가져다 쓸 만한 사실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관료의 질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고종의 조선은 이미 “망하지 않으면 이상한” 상태였다. 고종의 유능한 신하가 누가 있었는가? 아마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 관료집단의 선구집단은 조선총독부 2류 관리들의 시다바리였다. 조선총독부에는 일본 내지에서 관료를 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하지는 못한 관리들이 파견되었는데, 조선인은 그 자리 마저도 차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료들은 50년대의 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어떠한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운 교육을 받은 신진 인재들이 관료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60년대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실질적인 운행이 시작되었다.

2008년 이후 대한민국의 관료집단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변화는 쓰레기의 약진이다.  그들은 공적 의무를 행하는 대신, 공적 자산을 자본으로 바꾸어 사유화하는 데 몰두한다. 공기업을 민영화 해서 임원 자리를 내정받는다든지, 전관예우 같은 것들을 초라한 예로 들 수 있겠다. 이전에도 이런 행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08년 이후에는 정부가 이런 행위를 독려하는 느낌이다. 이런 사유화를 소위 공직자의“능력”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유교는 그 문제제기의 핵심이 관료 계층의 부패를 방지하고, 효율을 유지시키기 위한 고민에 있다. 그것은 법가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은 사실상 전통 동양 사회를 조직하고 떠바쳐 온 두 축이 되어왔다. 한편 서양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수 세기 전에 발견하고 가꾸어왔다. 민주주의는 감시·견제와 균형을 통해 관료의 비행을 예방한다. 자본과의 결탁을 통해 지대를 추구하려는 관료들의 욕구는가, 시민들의 감시와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인사권을 통해 좌절되는 구조이다. 국회가 관료들에 대한 탄핵소추권과 파면권을 쥐고 있는 이유이다.

지난 몇 달간 계속된 인사파동을 보면서, 관료의 질이 그래서 나의 장래가 걱정되는 이유이다. 또한 관료의 실패가 구조적으로 장려되는 시스템이 지난 대선을 통해 추인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감시라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관료의 실패가 豊臣의 경우에서 처럼 집권세력의 교체만을 초래해서 더 큰 문제를 초래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기회주의자

※ 경고: 이 글에는 가카를 찬양한다고 볼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지난해 가을, 그러니까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이 되는 보궐선거가 있었던 바로 그 때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혜성같이 나타난 안철수 교수. 한참 먼 곳에서 인터넷을 통해서만 듣는 한국소식이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민국 여론의 거대한 흐름이 휙휙 움직이는 것을 진정한 놀라움으로 바라보았었다. 風林火山이라고 했던가. 안철수 교수는 질풍과 같이 정국을 주도하다 돌연 박원순씨에게 시장후보를 양보한 후, 거짓말처럼 공적 공간에서 사라지고 본업이었던 교수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를 향했던 기대한 지지세는 흩어지지 않았다.

안철수의 지지세는 민주당을 압도했다. 그리고 작년 봄. 총선이 있었다. 의외로 안철수는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2012 1차 멘붕. 총선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이후 민주당 경선이 있었고, 김두관이 경남지사직을 버리는 최악의 이적질이 있었고, 결선투표를 하네 마네 난리 굿통이 있었고, 결국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이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원장의 단일화는 전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안철수 후보는 결국 후보직을 사퇴했고, 한달 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대선에서 석패했다. 2012 2차 멘붕.

대선 전의 여론조사를 보면, 여느 선거와는 다르게 흔히 부동층, 무당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매우 적게 나타났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기존 정치권에 실만한 사람들이 대거 안철수 후보에게서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중립인데요”

참정권으로 대표되는 시민의 자격을 박탈해야 마땅한 가장 더럽고 비열한 언사이다. 나는 중립이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중립이기 때문에 투표도 하지 않는다. 나는 똥덩어리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판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시민의 협치가 보장되는 좋은 정치는 공짜가 아니고, 그냥 성립되지도 않는다. 시민의 관심이 없이는 좋은 정치인도, 좋은 정치 시스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립적인 시민들이 뽑은 대표들로 입법부가 채워지게 되면, 그들은 우리가 익히 봐 왔던 것처럼, 정부와 국가의 자산과 소득을 사유화해 버린다. 복지라는 시민의 권리를 약탈하여 만들어진 자금을, 공적 자금이나 경기부양책라는 이름으로 자본가에게 선물하는 매일 같은 일상은, 정치인들이 원래부터 개새끼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개새끼들이 국회에 입성하도록 방조한 그 깨끗하신 중립적인 시민들의 책임이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저는 중립인데요?”라고 당당하게 말해대는 그 훌륭한 면상들이, 공동체의 파괴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공동체 공동의 자산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필요할 때에만 나타나서 그 과실을 따먹으려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주 예전부터 있었다. 바로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들이 많아질수록 소수의 이해가 정치에 과잉투사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시민의 연대가 자발적으로 붕괴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별로 거부감이 들지 않는 다른 말로 이들을 지칭해서 기회주의자들이 창궐하도록 방조·묵인한다. 바로 “무당파”이다.

소위 無黨派라고 하는 자들은 실은 巫堂派와 구별하기 힘든 자들이다. 그들은 평소 정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의 그 본질적 기능이 재화와 용역을 누구에게 얼마나 분배할 지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무당파가 많은 국가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정치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에게 유리한 분배를 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은 힘들어지도록 정해져 있고, 이 때 앞서 말한 무당파들은 마술적·주술적 사고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든다. 정치 메시아의 강림이다. MB니미 다 해 주실꺼야.

6년 전의 메시아는 악귀히로였고, 작년의 메시아는 안철수였다. 신도의 질을 따지자면, 나는 차라리 악귀히로의 지지자들이 나았던 것 같다. 교회에 열성적으로 다니는 중년 여성분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그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메시아가 떳떳하지는 못한 사람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를 했었다. 물론 악귀히로의 안티테제였던 노무현이 정치와 경제를 망쳤다는 패러다임을 내면화했다는 것과, 그래서 악귀히로를 지지한다는 심각한 모순을 보일 만큼 도덕성에서도, 지성에서도 심각한 성장지체 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투표율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보다 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2007년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철수의 지지자들은, 높은 투표율이 말해주듯, 더욱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새누리당의 방사능 세슘 같이 지워지지 않은 지지자들이나, 울며 겨자먹기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혹은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진보정의당을 지지해 온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인 우위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라 불렸던 일련의 현상을 다른 말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평소에는 정치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메시아 안철수 후보를 찬양하고, 새정치 주기도문을 외면서, 쓰레기 같은 민주당을 경멸하던 현상이다.

안철수 후보의 슬로건이었던 새정치는, 민주당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 결과 안철수 현상의 가장 희극적인 몸 개그가 나온다. 국회의원 정수 감축 크리! 뭐 복지 쪽 정책은 진보 쪽이 인기가 많고, 안보 쪽은 보수 쪽이 인기가 많으니 둘 섞어찌개하면 되겠네, 국회의원은 밥이나 축내니 줄이자고 하면 인기가 좋아지겠지 수준의 택시기사 따로국밥 정치가 작렬했다. 정치적인 비전은 고사하고, 정치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불충분하다 못해 낙제 수순인 처절한 바닥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정치인의 수준은 그 지지자의 수준이다. (여담이지만 2007,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균형발전을, 악귀히로는 한반도 대운하를, 그리고 다카키 마사코(高木 魔邪子)는 서해 철도 페리를 국가의 비전으로 제시했었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사람들에게, 누가 좋은 후보인지 알아보는 감별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인간이 하는 어떠한 행위도 그 의도적인 개발과정 없이 어떠한 수준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정치인이 하는 정치라는 분과의 기예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일반인의 참정권 역시 관심과 경험의 축적 없이 올바르게 행사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정치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지지자들 중 다수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각성되어있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훈련되지 않았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을, 작년 한 해 동안 새누리당은 철저히 희롱하고 능멸했다. 조직적이고 훈련된 전문적인 여론 조작단이,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둘 중 어느 쪽으로 여론이 쏠릴 조짐이 있을 때마다 반대쪽에 힘을 실어 주면서 단일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양자간의 이간질을 부채질했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 미숙했을지언정 그들의 열망마저 악용되어도 좋을만큼 무가치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갈구, 선의지만은 진정이었다. 바로 그것을 새누리당은 이용했다. 그 뿐이랴, 안철수 후보 측의 캠프에도 새누리당의 잔여인사들이 참여하지 않았던가?

안철수가 후보 사퇴를 선언하던 날, 대학 선배 중에 한 명이 페북에 이런 비슷한 글을 남겼었다. 아 이제는 심상정이나 찍어야겠다고. 그 며칠 후에 심상정 후보가 사퇴했다. 그만큼 야권은 절실했었다. 얼마 후에는 야권의 구멍이라고 볼 수도 있는 진중권이 트윗을 통해 “사과”라는 걸 했다. 이정희 후보 역시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나는 N2 폭탄을 한 손에 쥐고 사도 제루엘을 향해 자폭공격을 하던 에바영호기가 떠오른다.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그 어마어마한 기득권의 카르텔에 한 번이라도 맞서 본 자들은, 누구나 단결했다. 지금은 어떤 작은 차이로 편을 가를 때가 아니라, 일단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대선에서는 졌지만, 그 자발적인 동맹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단일화의 진정한 모습을 보았다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그 전선에 나서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기득권 카르텔과 싸울 이유가 없이 살아 온 분이고, 실전에 들어서는 그 싸움 그 자체를 구태로 선언하신 분이다. 작금 문제가 되고 있는 안철수 후보의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그 선배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궁금만 하다.

2012년 9월 26일 수요일

해를 구하다

아플레톤 방정식이라는 공식이 있다. 전파가 전리층 안을 진행할 때, 굴절률을 표현하는 식이다. 수 년동안 그 공식을 기초로 하여 연구를 계속 진행해 왔었다. 그렇지만 그 동안 한 번도 아플레톤 방정식을 뉴턴의 방정식으로부터 직접 스스로 완전히 유도해보지는 못했다. 교과서에 충분히 그 유도과정이 잘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그 유도 과정들이 편광을 서술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3차원에서 세 개의 방정식을 연립해서 푸는 방법인데, 편광을 두 축에 투영한 전기장의 비로 나타내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릇 편광은 벡터로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방성 매질에서 전자기파의 전파는 고유값-고유벡터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정석에 천착하여 아플레톤 방정식을 유도해보고 싶었다.

보통 무선전화 정도 주파수 대역의 전파는 전리층을 거의 무리없이 통과한다. 다만 이 경우에는, 지구 자기장의 영향 때문에, 전리층이 마치 지학시간에 배우는 방해석 같은 복굴절을 일으킨다. 이 때 앞서거니 뒷서거니 통과하는 두 광선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원형편광을 가진다. 자기장 안에 있는 전리층의 유전률 텐서와 전자기파의 진행방향 벡터로부터, 굴절률과 함께 원형편광을 나타내는 깔끔한 벡터를 유도해 내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에 이 문제를 붙잡았던 것이 3년 전이었다. 처음에는 완전 무식하게 그냥 쎄리 3행3열 행렬의 고유방정식의 해를 쌩으로 구하고 그랬는데, 어쩌다가 고유값까지는 정확하게 나왔다. 식 하나 정리하는데 A4용지 막 두 면 나오고 그런 삽질의 결과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한데다 미쳤다 싶다. 그런데 이걸로 고유벡터를 구하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그렇게 접어놓고 한 1년? 그러다가 최근 순수하게 고유값-고유벡터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유전율 텐서를 대각화하는 좌표계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해결의 핵심 포인트였다.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고유값을 구할 수 있었다. 고유값의 근사치로부터 고유벡터를 구하는 것이 잘 될까 싶었는데, 고유벡터의 의미를 기하학적으로 생각해보니, 그 역시 극한을 통해서 구해졌다. 이렇게 구해진 고유벡터를 원래의 좌표계로 변환하자, 깔끔하게 원형 편광을 지시하는 (0, +-i, 1)이 나왔다.

그냥 자랑하고 싶었다.

오늘은 그 동안 단순히 기하적으로만 고려해 오던 문제를, 스칼라 장과 그 구배를 이용한 벡터해석문제로 만들어 보았다. 사실 내 일은 아닌데, 상사가 시키면 어쨌든 해야 한다. 놀랍게도 그 결과 역시 의외로 깔끔하여, 사실은 좀 들떴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어떤 문제를 보다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조망하여 해결하는 일은, 항상 자극적이다.

2012년 5월 15일 화요일

벌과의 짧은 조우

며칠 전의 일이다. 퇴근하고 방에 들어와 보니 왠 벌 한 마리가 방 안을 맴돌고 있었다. 벌이란 위험한 존재이지 않는가. 나는 얼른 발코니 문을 열고 벌을 밖으로 유인하려 했다.

아, 그런데 이 벌이 한참 전부터 의자 위에 걸쳐놓았던 잠바 위에 앉더니, 접힌 후드 모자 주름 안으로 뽈뽈 기어 들어가는게 아닌가. 아, 이걸 어쩐다... 잠시 고민하다가 벌을 꺼내기 위해 후드 모자를 훽 제꼈다.

그런데 오 이럴 수가. 벌이 걸쳐 놓았던 잠바 주름 안에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허.. 그냥 지가 사는 둥지가 아니라, 새끼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주름 양쪽의 천을 벽을 삼고, 그 사이에 손가락 마디만한 둥지가 있었다. 그 둥지의 격벽은 흙을 물어 와 만들었고, 거의 완성되어 가는 그 벽 안 공간은 꽃가루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쌀알 만한 알이 하나 있었다. 꽃가루는 애벌래가 부화하면 먹을 양식인가보다.

벌은 이미 열어 놓았던 발코니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고, 나는 잽싸게 문을 닫았다. 벌이 들어오려고 애쓰는지, 탁 탁 하면서 문 유리에 뭔가 부딧히는 소리가 한동안 들렸다. 이미 옷의 모양이 무너졌기 때문에 벌 둥지 격벽은 개방되었으나, 아직 완전히 박살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 잠바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잠바를 그대로 밖에 놓아두었다. 혹시 그 벌이 미련을 가진다면 밖에서라도 둥지를 완성을 하기 바랐다. 그 때까지는 저녁해가 좀 남아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 부숴진 벌 집은 밖에 내 놓을 때의 상태 그대로였다. 벌은 둥지를 포기했는가보다. 자손을 위해 모든 자원을 투입해 만들었을 둥지가 실패로 끝났으니, 어쩌면 그 벌은 탈진해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벌 둥지를 방 안에 두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오늘은 오후 늦게 갑자기 비가 쏟아질 것 같아서 조금 일찍 들어왔다. 오늘도 웬 벌 한마리가 블라인드 위에 앉아 있었다. 아 진짜 이것들이... 이번에도 밖으로 유인해 날려버리려고 창문을 열고 옆에서 도발을 했는데, 이상하게 이 놈은 날아오르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 보니, 아마 기력이 다 쇠한 듯 했다. 광고지를 주워 그 위로 벌을 살살 옮긴 후에 조심스럽게 창 밖에 내 놓았는데, 잠시 뒤에 보니 어딘가 다시 구석으로 느릿느릿 기어 들어갔다. 녀석은 아마 거기서 짧았을 생을 마감하겠지.

며칠 전에, 둥지를 만들던 바로 그 벌이었을까? 그 놈은 내가 둥지를 본의 아니게 부숴버리면서 완전히 인생이 꼬였을 것이고, 오늘 본 이 놈은 곧 죽을 놈이다. 괜히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자기 전에 술을 좀 마셔야 될 것 같다.

2012년 2월 2일 목요일

의미도 없는 개소리

연말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싼 표를 찾다 보니 암스테르담에서 환승을 해야했다. 유럽연합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으므로, 입국 심사는 그 공항에서 하게 되었다. 내가 입국심사대에 도착했을 때에는 모든 게이트가 잠시 닫혀있는 상황이었다. 잠시 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저 만치에서 입국 심사대 직원이 분명한 젊은 남자들이 제복을 입고 떠들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네덜란드말 특유의 좀 크크 거리는 음색으로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서로 희롱하는 걸 보니, 가히 질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저그들끼리 노닥거리면서 승객은 게이트 앞에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몇 분 있지 않아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고, 망중한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던 이 친구들도 하나 둘 게이트를 열었다.

그 때 바로 내 옆 줄에는 묘령의 젊은 처자들 셋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네들이 들고 있는 여권에 적힌 글자로 보건데, 한국인이 분명했다. 내 여권을 가져 간 그 심사원은 근엄한 표정으로 도장을 찍을 면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옆 줄의 그 처자의 여권을 받은, 그 희한한 목소리로 기괴한 웃음을 짓던 그 직원은, 대뜸 그 처자에게, 멀쩡한 목소리로, 목적지가 어디냐고 영어로 묻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공무상 필요한 질문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질문을 받은 그 처자였다. 눈망울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그 직원을, 죠넨 희한한 목소리로 웃던 그놈을, 바라보며 티롤에 놀러 간다고 기뻐 마지않는 표정으로 대꾸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나는 도장이 찍힌 여권을 넘겨받았고, 심사대를 지나왔기 때문에, 그 좀 왠지 이상하고 부조리해 보이는 그 대화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계속해서 보지 못했다.

슈스케의 크리스가 성추문에 휩싸였다고 한다.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 이유다.

2011년 11월 5일 토요일

집에 들렀다

부모님 댁에 잠시 들렀다. 4년 전 귀농하신 부모님께서는 이제 꽤 규모가 있는 농장을 꾸리셨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 간 그 날은 마침 말리려고 널어 두었던 나락을 정미하러 보내야 하는 날이었다. 마을 입구 들어오는 길에 족히 100 m는 되게 펼쳐 놓은 나락을 포대에 옮겨 담아야 했다. 농협으로 보내는 쌀 자루는 처음 보는 종류였다. 표시 중량 950 kg. 크기도 물론이거니와 형태도 정육면체의 독특한 모양이었다.

농촌의 도구들은, 어떤 공정에 특화된 형태를 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1년에 딱 한 번, 딱 그 때 사용하기 위한 것들이다. 바닥에 펼쳐놓은 쌀을 퍼 담는 데에도 쓰레받이 같이 생긴, 다른 용도로는 도무지 쓰일 데가 없을 것 같은 용구를 사용했다. 950 kg이 들어가는 포대는 인력으로는 옮길 수 없다. 그러면 쌀을 옮기는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할머니와 부모님과 나, 동생 이렇게 5명이 달라붙어 왔다갔다 하면서 포대에 쌀을 모았다.

가족들과 함께 이렇게 육체노동을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는 저 위에서부터 치워라.”, “포대는 이렇게 잡는거다.” 그 자리에서 작전을 세워가면서 부산스레 왔다갔다 하다 보니, 노래 없이도, 술 없이도 흥이 났다. 중간 쯤부터는, 이미 해 치운 일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우리 가족이 일하는게 신나 보였는지, 그 즈음부터는 동네 아버지 친구분도 오셔서 일을 거드셨다. 아저씨는 아버지가 좀 부러우셨던 걸까. “옛날 같았으면, 인제 농사는 자식들 시키고, 가끔 논에 물이나 대고, 소 몰고 풀 먹이고 하면 되는데.”라는 농에 아버지는 허허 웃으셨다.

한참 걸릴 것 같았던 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2시간 만에 끝났다. 그 950 kg짜리 포대는 6개가 나왔다. 트랙터로 포대들을 용달차 두 대에 옮겨 싣고, 아버지와 친구 분은 면 농협으로 가셨다.

고생을 함께 나눈 사람들끼리는 좀처럼 얻기 힘든 연대가 생긴다. 쌀 퍼 담는 건 그다지 힘든 노동이라 할 것도 없지만, 만약 전통사회에서 한 해 농사의 완전한 주기를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힘든 노동을 나누며 평생을 살았다면, 그 관계는 정말 남달랐을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부모님은 삼촌·고모와 그런 관계이시지 않는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하면서 든 작은 아쉬움.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일하면 좋았을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절대 내색하시지 않으셨지만, 은근히 바라지 않으셨을까. 지독한 가부장적 이기주의라고 몰아붙여지고 싶지는 않다. 똑같이, 장인 장모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나락을 퍼 옮기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또 가족을 만들고 싶다.

2011년 7월 3일 일요일

잡담

1. 자려고 술을 먹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단게 땡기네. 누네띠네 같은 그런 맛.

2. 오늘은 생각보다 한시간 늦게 시계가 가고 있었다. 기분이 내내 좋았다.

3. 누구는 도둑같이 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가보다. 그래 10·26!

2011년 4월 3일 일요일

4월 3일이네요. 희생자들을 깊이 애도하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슬퍼합니다.

친일파 정치군인으로 4·3 민간인 학살 명령을 내렸던 유재흥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살아있더군요. (모든 문서에 49년에 제주도 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데, 4·3은 그 전 아닌가) 한국전에서 인민군에게 혁혁한 무공을 세워주었는데도, 이후 정치판에서는 승승장구하여서, 유신 때는 석유공사 사장까지 해 먹었네요. 찾아보니 가관입니다. 애국할 맛이 싹 달아나네.


아래에 독도 포스팅은 하느니 못한 짓이었다. 섬과 암석에 대한 구분도 없이 나오는 대로 지껄이느라 말같지도 않는 비유를 했다. 역시 모르면 씨불질 말아야 한다. 윤승환씨의 블로그(http://blog.daum.net/yongha36/)에 글들을 보고 몰랐던 사실들을 좀 더 알 수 있었다.


짜장을 해 먹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춘장이 안 풀렸다. 좆망. 그냥 라면 먹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요리까지 잘 못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2011년 3월 27일 일요일

방문자가 늘었다.

텍스트큐브에서 블로거로 옮긴 후에 원래부터 인기가 없던 블로그에 사람들 발길이 뚝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후쿠시마 원전을 보고 상념을 적은 글이 네이버 검색결과 상단에 뜨는 모양인지, 근래 들어 방문자 수가 많아졌다. 한켠으로는,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 더 읽어보고 더 깔끔하게 쓸 걸 하고 후회를 하지만, 다른 한켠으로는 게을러서 수정을 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사실관계가 잘못된 치명적인 오류도 있는데 말이다. 독일에서 가동을 일단 멈춘 원전은 9기가 아니라 7기이다.

사실 더 정성을 들여 쓴 글은 그 다음에 있는 메신저 수성 도착에 대한 글인데, 이 놈은 별로 인기가 없네. 아마 그 포스팅을 이틀 전에 썼다면, 방문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낚시는 타이밍이라는 말도 있다.

과학은 반복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재현가능성이라는 척도가 따라 붙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몇 달 안에 큰 여진이 있을 확률이 높다. 큰 지진 이후에는 또 상당한 크기의 여진이 수 개월 내에 발생한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성 발사 스케쥴은 대충 잡혀 있으므로, 그 때 적절하게 포스팅을 한다면, 방문자를 늘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블로그가 되지는 못하리라.

전에 어디에선가 방문자가 많은 블로그가 되려면, 꾸준히 게시물을 올리고, 다른 블로그들을 방문해 트랙백을 걸고, 등등의 조언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게으르고 숫기도 없고 게다가 불친절하고 무책임한 블로거이기 때문에, 그런 조언을 실천하지는 못한다. 단지 넘쳐나는 오류로 점철된 포스팅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소소하게는 ㅐ 와 ㅔ 를 구별 못하는 철자 잘못부터, 용어를 잘못 쓰는 예들, 게다가 아까 본 것처럼 사실 관계가 잘못된 것과 논리적이지 못한 구성까지.

하, 방문자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은 점도 있지만, 바닥이 고스란히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 부담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비록 졸렬한 생각들이되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그런 욕망이, 부끄러움보다는 좀 더 큰 것 같다.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잡담들

1. 두달 정도 됐나? ASS가 한나라당 인터넷 청년전위대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요즘들어 어디든 게시판 분위기들이 묘해 보인다.



2. 한나라당이 하는 말이라면 아무리 앞뒤가 안 맞아도 무조건 믿기로 작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요즘 매체에서 나오는 내용들을 새겨 들을 사람은 몇 없을 것같다.



3. 선형대수를 공부하다가 듀얼스페이스를 마주쳤다.

1주일 정도 낑낑거리다가 이제 대충 감을 잡은 것 같다.



4. 왜 국사를 배울 때, 정부의 재정상황에 대하여는 별로 가르쳐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고종 당시의 꼴을 보면 가관일텐데.

돈이 어디서 생기고, 어디에 쓰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단체의 거의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5. 핵 연료봉은 어디로?



6. 어제 소호대의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들었다.

오늘도 계속 들었다.



7. 제육볶음을 만들었는데, 양파가 없어서 파만 넣고 했다.

먹기는 하겠는데, 맛이 좀 빈다.



8. 중화제국쇠망사.. 언론사의 책선전 플레이에 낚인 느낌이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무게

소득과 행복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항상 나오는 나라가 방글라데시이다.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해서, 나의 소득과 방글라데시의 행복을 교환하라고 하면, 나는 쥐꼬리만한 지금 나의 소득을 계속 고집할거다. 나는 아닌척 하지만 속물이고, 방글라데시인의 행복은 동굴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라고 확신한다.

비슷하게 자유와 행복 역시 비례하지 않는다.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대신에, 폼나게는 고독, 찌질하게는 외로움이라는 반대 급부를 지불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도 그에 따른 책임도 오로지 자신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면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되고, 또한 출세를 바라 우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울 새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다른 더 큰 힘이나 권위에 코가 꿰는 것 아니던가. 그것이 자유겠는가.

오늘은 뭘 해야할지 몰라서 무기력한 날이었다. 이런 날이 제일 싫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에, 막상 무얼 해야할지 몰라서 멍청하게 시간을 보냈다.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느끼는 무력감과는 좀 다르다. “나는 결국 주체적일 능력이 없는 인간인가” 하는 의심은, “넌 왜 이것 밖에 못했어” 하는 질책보다 더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후회를 담은 하루가 지나갔다. 비슷하게, 감당하지도 못할 자유를 찾아 사소한 행복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면서, 한 번 뿐인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맞이하지 않을까. 무섭다. 그리고 두렵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한다. 부자유스러움이 주는 편안함은 마약이다. 그 왜 유명한 말 있지 않는가, Die Religion ist das Opium des Volks.라고. 종교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도, 여전히 이 유명한 문구는 유효하다. 종교를 믿는다고 죽고 나서 불지옥에서 고통스럽게 그슬릴지 모른다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 종교처럼 헌신한다고 해서 최소한 일신의 안녕이 보장되는 시기도 지난 것 같아 보인다. 주변사람들과 잘 지내고 항상 착하게 살면 해코지 안받는다는 말만큼 어린 나이에 부정하게 되는 문구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살면서 뭔가 잘못 되었을 때,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울 내가 아닌 대상들이다. 신이건 직장이건 이웃·가족들이건. (그것에 복수를 할 수 있든 없든) 그것이 우상 아닌가 한다.

나는 자유롭게도 살고 싶지만, 행복하게도 살고 싶다. 책임이라는 무거운 족쇄가, 자유라는 날개와 함께 주어질 수 밖에 것이라면, 역시 어쨌든 족쇄와 함께 날아오르는 수 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자유와 책임은 그 크기가 항상 같아야 한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게 당위라는 생각을 깨세요. 사고의 틀을 깨고, 자신을 둘러싸는 굴레를 벗어나는 거지요.)
(네이버에는 굴레를 한참 벗어나신 분들 뉴스가 항상 톱이랍니다.-_-)

2010년 10월 13일 수요일

좋아하는 노래들의 발표시기분포와 잡설

세벌식 자판을 익힐 무렵, 노래 가사를 들으면서 따라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몇 곡을 시간 날 때 연습했다. 그러다가 목적이 변질되어 좋아하는 노래들 가사를 텍스트로 모아두게 되었다. 가사집에 들어가서 카피 페이스트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들으면서 따라쳤다. 그렇게 모은 곡들이 시간이 흐르다 보니 142곡이나 되었다.

요 며칠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던 프로그래스 미팅이 끝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와서 가요들을 찾아 듣다가 문득 뻘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 노래들의 발표시기의 분포를 도시해 보자.”

검색을 해서 곡 발표년도를 찾는 것이 간단하지만은 않았지만, 어쨌든 끝을 볼 수 있었다.

짜잔


ㅋㅋ, 아 x발, x축 제목이 이상하네.

이렇게 그리고 나니까 뻔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들었던 곡들이 남은 인생과 함께 가지 않겠는가.



1997년 봄은 맑은 날이 많았다.
그 해 토요일 시간표는 예술이었는데, 1교시 교육학, 2교시 기술, 3교시 음악/한문 격주, 4교시 체육. 이랬었다. 담임선생님이 체육선생님이라서 운동장에서 종례하고 끝. 아예 교복을 넣은 가방을 운동장 구석에 숨겨놓고, 축구 뛰고, 체육 끝나면 교실에 들르지 않고, 운동장에서 옷 갈아입고 바로 귀가하곤 했었다. 조용한 오전 수업시간에 들려오던 부산항의 뱃고동 소리가 아직도 기억나고, 그렇게 토요일에 귀가하면서 서면에 들러, 번화가를 기웃거리다가 동보서적에 가서 책들을 구경하다가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주말들이 많아 봐야, 12번이었다니. 세번 이상이면 그냥 많다라고 느끼는 것이 인간인가보다.

야자를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승환의 《가족》을 들으면 마음이 울컥했고,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들으면서, 천사같은 첫사랑 그녀에게 고백을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심한 모욕을 받았던 기억들을 곱씹었다. 《뿌요뿌요》가 5월께 히트곡이었던가? 웃지못해 이 부분 따라하면서 키득거렸었다. 젝스키스가 데뷔해서 HOT와의 더비가 시작되기도 했었고, 가을에는 자우림 1집 (지금은 이선규가 부른 《예뻐》만 찾아 듣는다.), 임창정《결혼해줘》, 태사자 《타임》, 영턱스의 《타인》(이거 둘 꽤 흥했더랬다) 등이, 그리고 겨울에는 터보의 《회상》, 박지윤의 《하늘색 꿈》. ㅎㅎ 이거 여자랑 노래방 갈 일이 없었겠지만, 다들 랩은 꿰고 있었던 듯하다.

그냥 그 때는 그랬다. 꽃집 주인이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었던 친구들이 있었던... 딱 그 때까지. 그 해 봄에 DJDOC가 세상 좆같다고 《삐걱삐걱》을 목놓아 불러재꼈었는데, 그 해 겨울 IMF가 왔고, 에디아카라의 낙원은 끝났다. 마침 《거위의 꿈》이 발표된 해도 이 해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더 와닿았다. 아, 그리고 《삐걱삐걱》 이후로 사회비판 내용의 가요가 히트하는 것은 씨가 마른 것 같다. 내가 잘못알았나요?



이제는 저 그래프의 긴 꼬랑지처럼 열정과 감수성이 사그라들어간 들고, 뭔가 남긴 남았는데, 2009의 빈도수 3중에 하나를 《뽀삐뽀삐》로 채우게 하는 그 뭔가가 남았다. 젠장.

어쨌거나 나는 90년대 가요를 좋아한다.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냥 내 감수성이 90년대에 거의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직업도 그런 감수성을 연마할 필요가 있는 직업군이 아니고, 감수성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 정치적·도덕적 당위가 아닌 이상, 나는 지금 상태로 만족한다. 비론 존나 촌스럽다는 지적을 자주 받곤 하지만. 뭐 따지고 보면 촌스러울 것도 없잖아. 리메이크 자주 되는데 뭐. 당연히 그래도 원곡을 찾아 듣지만.



아, 그리고 서면 동보가 폐점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부산은 왜 부산인가. 동보서적이 없고, 해운대에 솔밭이 없고, 영도다리가 철거된 부산은, 또 거제역이 박살나고 없는 부산은, 좀 많이 부산답지 않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2010년 9월 22일 수요일

얼마전부터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코리아타임즈(헤럴드라고 썼다가 27일 수정)에 천문 내지는 행성 관련 기사가 계속해서 뜨고 있다. 담당 자가 바뀐 것일까. 썰을 풀 생각만 하고, 게을러서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그 노랗고 파랗다는 그 태양계 천문학 책을 아마존에 주문해서 받았다. 일이 바빠 내용을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을 산다고 그 지식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9월 7일 화요일

短想

저 밑에 조선 망한거랑 관련하여 생각이 떠올랐는데,

임진왜란 때 도공들 납치당했던 게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크리티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 아이템을 도둑맞았어요. ㅜ.ㅜ



단지, 그냥,, 망상일 뿐이다.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이끼의 그 마을

국무회의를 하는 청와대가,

바로 그 마을이었구나.

대통령, 총리, 문광부 장관, 국세청장, 경찰청장...

그리고

천용택, 김덕천, 하성규, 전석만, 천용택 양아들...



수괴, 어벙, 입장사, 백화점, 경찰...

좀 닮았다.

2010년 8월 8일 일요일

작은 성취감

며칠 전에 설화를 크게 일으키고 자숙을 하겠다 마음먹었다. 당연히 그 첫번째 다짐은 욕을 하지 말자였다.

뜻을 굳힌 지 채 이틀이 되지 않아 뉴스에서 이재오가 사실은 마오이스트임을 커밍아웃하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동아일보 원문은 여기서 http://news.donga.com/3/all/20100806/30363972/

예전같았으면 욕 한 자락 시원하게 뽑았을텐데, 이번에는 참을 수 있었다.

더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자랑을 좀 더 하자면, 오늘 개각 기사를 읽고도 욕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북한의 선박나포기사를 읽고도 욕을 참을 수 있었다. ^^


충동의 제어가 이런 성취감으로 보상받을 수 있어서,

그리고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도 매일 같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매우 기쁘다.

마치 ADHD아동을 교정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욕을 하는 사람들이 모자란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단지 그럴 계기가 없었을 뿐이리라.

혹시나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쓰는 건데,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자기계발이다.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無題

왜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가? 베스트셀러는 그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온 다음에 읽는 법이라고.

아직 좀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 하지만 나도 이제 벼루어 두고 있던 책을 읽을 때가 슬슬 오는 것 같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내가 좀 취미가 고약해서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꼴 보는 것을 至樂으로 삼는다.

그 책은 비유하자면, 왜 레밍들이 절벽으로 뛰어드는지, 레밍의 관점에서 서술된 책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그 책의 진가는 몇 년 전 그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을 때 발현된 것이 아니다,

지금 혹은 몇 년 후에 잔치의 뒷처리가 끝난 후에야 빛이나기 시작할 것 같다.

그 책의 내용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비슷하다면 말이다.

이렇게 한 발짝 비켜서면, 세상은 호기심과 사건의 절정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언제까지 주변에서 맴돌기만 할 것인가?

이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점차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2010년 6월 24일 목요일

이변

이탈리아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Cheer up.

답장이 왔다.

The good players played ten minutes and scored three goals! Ahh.. See you tomorrow

1.
이변이라 하는 것들이 가끔 벌어진다. 그 때, 그것을 목도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놀라운 일들 말이다. 가끔은 기적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16강에 못 오른 것 정도가 그런 일이 되지는 않을테다. 한국이 4강에 오르는 정도는 되어야지.

사람이 요즘은 평균 80까지 산다고 한다. 그 중에 그런 이변이나 기적을 피부로 느끼고, 그것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기는 그보다 더 짧을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 있을 때, 전두환이 항복선언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10년 후의 IMF는 좀 달랐다. 그 일을 경계로 가세는 기울었고, 정치적 성향이 바뀌었고, 꽃집 주인은 친구들의 장래희망 목록에서 사라졌다. 5년 후에, 나는 이변들 일어나는 곳에 있었고, 그 이변들의 의미들을 상당히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이변들이 앞으로의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 역시 머리에 앞서 피부가 느끼고 있었다. 다시 5년 후에도.

앞으로 한 2·30년일까. 이변이나 기적 혹은 격변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시간이. 그 후에는, 어찌되든 상관 없는 삶을 살게 되지 않나? 그 나이가 되면, 이변을 받아들이는 호들갑은 주책이 되고, 흐름을 조절하려는 뻔한 시도는 노욕이 되는 것 같다. 꽤나 노련하지 않으면 말이다.

유튜브에서 찾아 본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는 적절한 나레이션이 있다.
일정부분 포기하고, 일정부분 인정하고 그러면서 지내다 보면 나이에 “ㄴ”자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그때 즈음 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하게 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그러지도 못합니다. 뭐 그런 답답함이나 재미없음이나 그런 것들이 그 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저 뿐만이 아니라 또 그 후배 뿐만이 아니라 다들 친구들도 그렇고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노래 찾아 듣다가 괜히 센티해져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2.
문자를 보낸 그 친구와 얼마 전에 이야기를 하다가 2002년 월드컵 이야기가 나왔다. 밀라노 출신으로, 나폴리 출신에 비해 보면 천양지차로 젊잖은 그 친구도, 심판 이야기를 하더라. ㅎㅎ 그 심판 존나 유명해졌다고. 대놓고 말은 못해서 그렇지, 승부조작이 있덨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2002년 여름이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혹시 호로 몽이라면 어쩌면, ...  차마 누가 될 것 같아서, 그 심판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발설하지는 않았다.



실의에 빠져있을 그 친구에게 답문자를 보냈다.

I agree. See you.

2010년 6월 1일 화요일

읭?

텍스트큐브의 공지를 꼼꼼하게 읽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공지를 읽고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돼서 댓글을 참조했다. 아, 통합된다는게 그런 뜻이었구나, 그렇다면 엿된거네.

티스토리는 초대장 달라고 사정해야된다면서? 그리고 검열도 한다면서?

블로거는 구리다며?

나머지는 잘 몰라.. 은둔형 미니홈피로 백?

음. 심란해졌다. 뭐가 not to be evil이라는 건지.
이런식이라면 “not to be evil의 대상은 전역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엔 없다.



어쨌든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기 전에 대처를 해야 할 듯하다.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U와 V 그리고 에반겔리온

그리스 문자에는 영어의 v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없다. 고대 라틴어의 명문에는 U를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에는 대신 V가 들어가 있다. 아랍어에는 f에 해당하는 ف는 있지만, v에 해당하는 글자는 없다. 대신 아랍어에는 b는 있지만 p는 없다.

그리스어에는 좋다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
ευ- 가 있다. 당장 기억나는 eu로 시작하는 단어라면, 진핵생물을 뜻하는 eukaryote.... 밖에 생각이 안나네. 사전을 찾아보니, eulogize, euphemism, eyphoria (양심상 예전에 외우는 노력이라도 해 봤던 단어들만) 등이 있다. 사람 살기 좋다는 Eurasia 대륙은 당연히 포함이 안될것이다.

여기에 전령을 뜻하는
ἄγγελος가 합쳐지면서 evangel- 이라는 어근을 낳았다. u와 v가 왔다갔다 하니까 가능하다. 이 단어는 좋다라는 뜻을 福으로, 전령을 전령이 전하는 말에 집중하여 音으로 옮겨 복음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놀라워라.

1990년대 후반,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전령은 사도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어 EUrasia 대륙의 동쪽 끝에서 피를 튀기며 싸움박질을 하게 되었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양산형 에바들이 2호기를 섭취하는 장면이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라는 뜻의 기의가 2500여년에 걸쳐 변화되어, 토사물에 섞인 라면가닥을 두고 다투는 관악산 공원 앞 비둘기 떼보다 더 혐오스러운 모습이 되었다는데까지 생각이 이르자, 마치 토사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 이상 글을 쓸 마음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