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4일 목요일

이변

이탈리아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Cheer up.

답장이 왔다.

The good players played ten minutes and scored three goals! Ahh.. See you tomorrow

1.
이변이라 하는 것들이 가끔 벌어진다. 그 때, 그것을 목도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놀라운 일들 말이다. 가끔은 기적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16강에 못 오른 것 정도가 그런 일이 되지는 않을테다. 한국이 4강에 오르는 정도는 되어야지.

사람이 요즘은 평균 80까지 산다고 한다. 그 중에 그런 이변이나 기적을 피부로 느끼고, 그것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기는 그보다 더 짧을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 있을 때, 전두환이 항복선언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10년 후의 IMF는 좀 달랐다. 그 일을 경계로 가세는 기울었고, 정치적 성향이 바뀌었고, 꽃집 주인은 친구들의 장래희망 목록에서 사라졌다. 5년 후에, 나는 이변들 일어나는 곳에 있었고, 그 이변들의 의미들을 상당히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이변들이 앞으로의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 역시 머리에 앞서 피부가 느끼고 있었다. 다시 5년 후에도.

앞으로 한 2·30년일까. 이변이나 기적 혹은 격변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시간이. 그 후에는, 어찌되든 상관 없는 삶을 살게 되지 않나? 그 나이가 되면, 이변을 받아들이는 호들갑은 주책이 되고, 흐름을 조절하려는 뻔한 시도는 노욕이 되는 것 같다. 꽤나 노련하지 않으면 말이다.

유튜브에서 찾아 본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는 적절한 나레이션이 있다.
일정부분 포기하고, 일정부분 인정하고 그러면서 지내다 보면 나이에 “ㄴ”자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그때 즈음 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하게 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그러지도 못합니다. 뭐 그런 답답함이나 재미없음이나 그런 것들이 그 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저 뿐만이 아니라 또 그 후배 뿐만이 아니라 다들 친구들도 그렇고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노래 찾아 듣다가 괜히 센티해져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2.
문자를 보낸 그 친구와 얼마 전에 이야기를 하다가 2002년 월드컵 이야기가 나왔다. 밀라노 출신으로, 나폴리 출신에 비해 보면 천양지차로 젊잖은 그 친구도, 심판 이야기를 하더라. ㅎㅎ 그 심판 존나 유명해졌다고. 대놓고 말은 못해서 그렇지, 승부조작이 있덨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2002년 여름이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혹시 호로 몽이라면 어쩌면, ...  차마 누가 될 것 같아서, 그 심판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발설하지는 않았다.



실의에 빠져있을 그 친구에게 답문자를 보냈다.

I agree. Se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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