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8일 일요일

거제역

도시에는 사람의 기억이 밀도있게 스며들어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는 그냥 낯설고 편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리나보다.

어느덧 10년이 넘게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지난 연말, 오랜만에 옛 살던 동네를 들러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넘어지고 뛰어놀던 골목, 국민학교, 중학교 등교길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라진 거제역과 마주했다.

동해남부선의 복선전철화는 이미 1990년대에 결정된 사항이었으나, 매우 천천히 진척되었고, 이제야 그 공사구간이 부전-거제 사이에 다다른 것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도망은 매우 유용한 인프라인데 이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 역시 동해남부선의 복선전철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중의 하나이고 하나였다. 그러나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복선전철화가 되면 거제역은 무사할까하는 것이었다.

내가 거제역 과선교에 다시 올랐던 2009년 12월 31일 오전에, 거제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거제역의 아담한 역사(驛舍)와 쇠 녹이 묻은 시멘트의 낡은 승강장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파헤쳐져 있었다. 아마 장래의 고상 플랫폼의 기반이 될 기둥들이 땅에 가지런히 박혀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옮겨져 보존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동래 방향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부전 방향 저 멀리 보존되고 있지는 않을까. 역시나 헛된 기대였을 뿐이었다.

거제역은 도심에 있지만, 역을 둘러싼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어디 시골역 같은 분위기가 나는 역이었다. 한적한 철길, 딱 시골 간이역만한 역사. 거기서 통근형 열차를 타고 해운대를 가기도 했었고, 또 놀다가 그걸 타고 집으로 오기도 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걸어서 역까지 걸어 가서 기차표를 예매하기도 했다. 봉사활동 확인서를 끊기 위해서 반 친구들이랑 우루루 몰려가서 역 근처에 있던 쓰래기들을 줍기도 했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오후 과선교를 건너면서 거제역을 본 것도, 그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시골역 같은 역에 내가 정이 들게 된 이유일 것이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은 거제역이 나름 좀 특별한 역이라는 것이었다. 플랫폼 위에 역사가 있는 그런 구조는 원래도 드물었고,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그리고 역사 자체의 구조 또한 일제 말기의 역 형태로 이제는 일본에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형태이고, 물론 남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나는 그런 역이 많을 줄 알았다. 거제역이 그렇게 가까이 있었으니까. 어쨌든 거제역은 타지에서 알게된 친구들에게 내가 자라왔던 동네를 구경시킬 때, 빠지지 않는 관광코스였다.

수 년 안에 새로운 거제역이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된다.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광역전철역과 비슷한 역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거제역에 비하면 무척 클 것이고, 그 전에 비하여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다시 찾아간 그 곳에서 나는 이방인의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과외를 소개받고, 처음으로 가 보는 어떤 역에 내렸을 때와 비슷한 느낌말이다. 그리고 좀 서운할 것 같다.

사실 그 건물이 그대로 역사 역할을 수행해 주기 바라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다. 그 역사를 하루에 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인파에 역사가 무너져내리리라. 하지만 옛 건물이 드문 우리나라에 운 좋게 반 세기 넘게 버텨왔던, 나름 유서 깊은 건물이, 또 다시 하루아침에 아마도 포크레인의 삽날에 무너져 내렸을 장면을 상상하니 씁씁하다. 많이 씁쓸하다. 과거의 거제역이 그러했듯이 플랫폼 위의 대합실은 어디에 보존해 놓았다가 나중에 그대로 고상홈 위에 옮겨서 쓸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에 섬식 승강장으로 계획되었다면.

지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이미 고향을 떠나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거제역 보존을 외치며 복선전철화에 태클을 건다면, 그처럼 고약한 훼방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존하면서 나이테 처럼 켜켜히 세월을 보전해 간다면, 그래서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도시들처럼 특색으로 가득찬 도시가 된다면, 결국은 모두에게 좋을 일이 되지 않을까. 비극은 개발과 변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이, 지금 한국에서는 견제받지 않는 자본이라는 먼치킨이라는 점인듯 하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오바마가 한국 교육 칭찬하면 좋습니까?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열을 예로 들면서 미국민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은 심심치않게 언론에 보도된다. 상국의 황제께서 일개 번국을 기특히 여기며 이를 배워야한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데, 왜 청현직의 인사들이 꺼뻑죽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많이 불편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오바마의 그런 발언이 불편한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가 한국의 “지나친” 교육열이 오히려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마당에,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오바마의 인상비평이 한국의 교육현실에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하는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미친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교육을 통한 계층 고착화에 오바마의 설익은 언급이 이용되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난 아직까지 자식이 없다. 말하자면 그 불편함이 사교육이나 경쟁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한국 교육이 괴물이고 기형이라는 의견에는 백번 천번 동감한다. 그러나 오바마의 한국 교육열 운운에 내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내가 언짢아지는 이유는, 단순히 말하면 자존심 상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쓸 이야기가 범인류적인 상식과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혼자 생각만 하고 있으려고 했던 것들이다.



나는 한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에 대하여 많이 생각한다.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국내에는 크게 두가지 견해가 있는데, 한국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혈통있는 나라라는 견해와, 한국은 그저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신생독립국 중의 하나라는 견해가 있다.

당연히 첫번째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불행히도 두번째 견해는 우리나라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저 두번째 견해란 것이 내가 썰을 풀기 위해 실체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사실 두번째 견해를 뒤바침할 만한 요소는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은 실재 일본 것을 많이 복사했고, 요즘은 고급 지식을 얻기 위해, “오로지”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공부한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인가, 영어공용화론이 나름 진진하게 논의 되는 모습은 식민지 지식인들이 했던 고뇌들과 많이 비슷해보인다.



12년 전에도 그랬다. 사람들의 자존감이 낮아져서 사회가 동요하는 것을,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불만과 자존감을 투사할 허상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불만을 투사하기위해 외국인 노동자와 빨갱이가(요건 딴지일보 독자불패에서 읽었다), 자존감을 투사하기 위해 국가가 동원된다. 웬만해서는 민족을 동원하는 것이 한단계 더 심원하겠지만, 그러면 빨갱이를 끌어 안아야하기 때문에 민족보다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따라서 나같이 자존감을 어딘가에 투사해야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1948년에 시작하는 역사를 강요받는 것이다. 극도의 혼란속의 단독정부 수립, 전쟁, 계속되는 혼란, 지수함수적인 경제성장, 민주항쟁, 올림픽,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 부도극복, 월드컵. (어? 뭐가 빠졌네?) 이 모든 과정을 다 지켜 본 사람이 한 둘도 아니고, 국민 중에 예순 넘은 사람 전부다. 캬, 내가 써 놓고 봐도 정말 멋지고 간지철철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면 자문해 볼만하다,

“대한민국 대박친거 아냐?”



이제 내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줄세우기를 해 보겠다. 사실 전쟁 후의 폐허에서 재활한 나라를 성공적인 순서대로 써 보자면, 그 첫번째는 소련이다. 그 다음에 독일과 일본이 있고, 그 다음 등수로 프랑스, 이탈리아를 들 수 있겠다. 소련은 히틀러 때문에 우랄산맥 서쪽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고, 전쟁으로인한 인력손실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종전직후부터 소련은 최소한 본토에는 폭탄하나 떨어지지않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월드투톱이 된다. (아 사실 미국에는 일본이 풍선에 매달아 날려보낸 폭탄이 몇 개 떨어지고, 일본 잠수함에 의해서도 태평양의 항구가 공격받은 적이 있다고는 하네요. 별 의미를 두지는 못할 것들입니다만.) 독일은 어떤가. 독일은 본토가 전쟁으로 사실상 폐허가 되었고, 분단까지 당했다. 서독만 치면 나라가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1938년의 국경선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 상황에서 서독은 금방 세계 수출의 넘버 2가 되었다. 일본은 본토가 공격받지는 않았지만, 패전후의 상황은 정말 참담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국토가 전장이었다. 아, 이따위 순위메기기가 말도 안되는 거고,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많은 정치·경제적 이유들이 있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러나 일단 한국까지는 해야되지 않겠나. 한국은 전쟁이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한 8년 후에 끝났다는점을 고려해도, 이들에 비하면 좀 늦은 편이다. 그리고 최종적 성취 역시 이들과 비교되기에는 모자란다. 이런 비교를 하면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불공평한 비교라고. 왜? 우리나라는 식민지에서 출발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와 비교를 할 나라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나라들이다. 가까이 아시아의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이라크, 시리아, 사우디. 좀 멀리 아프리카의.. 음.. 여러 나라들. 이들 중에서 최소한 전쟁의 피해를 입었던 나라만을 꺼내 봐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요 두 나라에는 베트남 전쟁때 꽤나 폭탄이 떨어졌었다) 정도가 되겠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상태가 더 좋았네. 전쟁의 참화는 비켜갔으니까. 자, 이들과 비교하는 것은 그렇다면 이제 공정한 비교이겠는가.

이렇게 눈을 낮춰보면, 대한민국은 대박쳤다. 진짜다. 2차대전후에 독립한 나라들 중에 어데 지금 성한 나라 있더뇨.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경제적으로 번영한 곳도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형식상의 민주주의나마 작동하고 있는 곳도 그다지 많지 않다.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과학·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나라도 없다.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치안이 안전한 곳도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대중문화든 전통문화든 독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기적은 2차대전이후의 신생독립국으로서의 “기적”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라면, 이것도 별로 공정하지 못한 비교라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웬지 무시당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내가 오바마의 한국 교육열 운운을 들었을 때 받는 느낌은 그 느낌과 같은 종류의 찝찝함이다.

이들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보면,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면서 가슴벅차했던 것들이 상당한 측면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성공 순위의 우리 앞자리에 있던 나라들이 거기 설 수 밖에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한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행정, 경제, 군사, 문화 등을 발전시키고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였다. 그 말은 그런 시스템을 운영해 본 사람이 있다는 측면보다는, 이미 그 국민이 그러한 조직적 행정의 “피경험인”이었다는 것에 중점이 주어진다. 한국은 필리핀은 할 수 없었던 일사분란한 동원체제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향해 나갈 수 있었고, 시험이라는 미끼를 만들어 학교를 통해 현대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철저히 교육할 수 있었다. 과거시험의 전통이 없었던들 이것이 그리 쉬웠을까. 한국에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같이 지역별 호족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처럼 부족간 갈등이 있는 나라도 아니었다. 한국인이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매우 다른 형태를 보였을 것이다. 그 예를 바로 일본의 타이완 지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나마 베트남이 가장 근접한 형태의 중앙집권을 시도해 본 역사적 경험이 있는 나라고, 그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도 그리고 중국에도 이겨본 적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 외의 나라들은 어떤가. 그렇다면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은 기적의 발전을 보인 것이 아니라,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보다 공격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의 기적을 강조하는 것은 그 반동력으로 식민지 경험을 정당화한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내가 오바마에게서 느끼는 불만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한국의 성공을 교육만으로 이야기하려는 단순함에 대한 불만이다. 거기에는 한국이 20세기의 쓰디쓴 실패 이전에 성취했던 높은 수준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의 주요한 요인으로 교육열을 본 것은 현명하지만, 그 교육열의 연원이 무엇인지는 찾지 않는 단견(그런데 누구나 다 그렇다)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리고 오바마의 발언을 열렬히 옮겨대는 매체들이 정말 이런 생각을 못해서라기 보다는, 역사의식의 단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계급적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어찌보면 식민지 35년은 짧은 시간이다. 이미 독립 후로 그보다 2배 가까운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많은 식자들은 아직 남아있는 식민지의 해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 또한 식민지의 해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식민지는 자립적인 성장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는다는 점이 가장 나쁘다. 강점기를 통틀어 조선인의 자본축적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었고, 정치참여 또한 얼마나 제한되어 있었던가. 그런 것에 비하면 신사참배강요나 창씨개명같은 어거지 짓은 악세사리에 불과해 보일 정도이다. (그만큼 질과 수준이 낮은 짓이었다는 뜻임. 마치 금상께서 하시는 짓처럼) 그리고 해방이 되어서도 그 마름들을 죽이지 못한 것은, 어쩌면 오랜 역사동안 한번도 왕의 목을 쳐날린 경험이 없던, 민족의 경험 또는 역량 부족 탓일 것이다. 하지만 조선조동안 국제무역이라는 스킬을 잃어버렸던 한국인이 근래 다시 그런 경험을 익힌 것처럼, 곧 왕목따 스킬을 익히게 될지도 모른다.

더불어 미국에 필요한 것은 한국의 교육열이 아니라 실체에 기반한 계급간의 통합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봐도 미국은 아직도 신화를 만들어야 유지될 수 있는 초기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아직도 사라 페일린을 필요로 했다. 여기서 신화는 거짓말의 은유이다.

2010년 2월 15일 월요일

다시 횡횡하는 지구온난화 구라설

북미에서나 횡횡한다고 여겨지던 지구온난화 구라설이 한국에 상륙한지 꽤 된 것 같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은 꽤나 매력적인 설명이다. 그 설명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더하여 처음 들어보는 음모론은 듣는 이로 하여금 고급 정보를 우연히 얻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우쭐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그런 고로 어처구니 없는 음모론적 설명을 확고하게 믿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프레시안》이 지구온난화를 까는 데에 불을 뿜고 있다. 첫 기사의 제목은 “지구온난화 이론, '과학적 사기극'으로 전락하나”였다. 안타깝게도 몇 안되는 진보적 언론으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던 《프레시안》이 “음모론 찌라시로 전락하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깜짝 놀라 이 기자의 다른 기사를 살펴보았으나, 이전에는 과학이나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기사를 찾지 못했다. 그 이후 이어지는 몇 편의 기사들은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논란이 된 사태를 요약하자면, “IPCC의 4차 보고서에 있는 히말라야의 빙하가 2035년이면 모두 없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출처의 신뢰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인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IPCC의 신뢰도가 추락했다.”정도가 되겠다. 나 역시 좀 실망했다.

소위 “기후 게이트”와 “빙하 게이트”로 인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미국민의 신뢰가 낮아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북미의 대중들은 유럽과 비교했을 때 원래부터 지구온난화 대하여 무관심 내지는 무지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을 가장 많이 져야할 집단이, 그들을 유리하게 만드는 논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담론이 유럽에서는 주로 “그러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보다 더 촛점이 가 있었다면, 북미에서는 “그게 진짜냐”에 더 촛점이 가 있었다. 원래부터 교양이 상대적으로 모자라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오늘 올라온 기사에는 편파성과 자기기만이 극에 달했다. 몽턴이라는 사람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기사를 전개하고 있는데, 친절하게도 그가 최고정책고문으로 있는 연구소의 웹사이트에는 "증명됨:기후 위기는 없다"는 타이틀을 내 걸고 있다고 한다. 와우, 마가릿 대처의 고문 출신이라는군요. 그의 웹사이트를 직접 찾아가보지는 않았다. 무려 대처여사의 고문이라는데.

이 기사 처음에는 지구온난화 이론 자체는 믿어주자라고 한다. 아레니우스가 황송해 해야겠다. 믿어주겠다니. 과학적 사실은 권위에 의해 증명되는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이 “이론”을 지지하므로 믿어준다는 것은 자기모순 아닌가? 일부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만이 이를 부정한다(이 기사를 통틀어서 가장 진실에 가까운 명제이다)고 마무리를 해 놓고, 다음 문단에서는 시민들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것은 아무 상관도 없는 사실을 편한대로 가져다 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그 일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부실한 주장을 분수에 맞지 않게 크게 떠들어대는 일부 언론을 접하는 시민들이 “정말 그런가”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고 한다. 기후변화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시민이 아니라 글을 쓴 기자이다.

이산화탄소가 온실기체이고, 대기 중에 증가한 이산화탄소는 기후변화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 히말라야가 2035년까지 녹고 자시고에 달려있는 문제가 아니다.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이 명제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참인 명제이기 때문이다. 별로 어려운 사실도 아니다. 고등학교 때 다 배우는 것들이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있음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관측을 통해 기록되어왔고, 그와는 별도로 동위원소분석을 통해 이것이 인간이 뿜어낸 탄소라는 것도 증명되었다.

지구 대기가 지금보다 더 많은 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만해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지금까지와 같은 평온한 기후를 만끽할 수 있다고 여기고 싶어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수많은 과학적 사실을 무시해야 할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과학적이라는 것들을 잘 보라. 광우병파동, 원전부지의 활성단층, 일기예보. 과학·과학하지만 확률 이상으로 정확한것이 어디있던가. 이렇게 얼마든지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은 불확실성이 내재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물리적인 것들이다. 대기중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온실효과가 강해진다는 것은, 사람을 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리면 중력가속도 만큼 가속을 받으면서 땅에 떨어진다는것 만큼이나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사실이다. 정치적 주장을 위해 가져다 붙이는 수사적인 의미의 “과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IPCC보고서의 오류와 관련되 최근의 보도(기체분자은 전자기파를 흡수한다)들이 가만히 보니까 점술인의 예언(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이나, 예전의 아하에너지 사건(에너지는 보존된다)과 같은 일이라 가만히 있기에는 좀 곤란했다. 그리고 BBC에서 나왔다는 그 이상한 다큐먼터리, Climate Swindle의 캡춰판을 본 사람들이 있다면, 그 다큐에 나온 내용들이 심각한 왜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

2010년 2월 14일 일요일

덴마

나는 《아기공룡 둘리》의 팬이다. 둘리를 매우매우 좋아했고, 또 좋아한다. 특히 보물섬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둘리 7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친구 빌려줬다가 하나 밖에 못 돌려받았다. 어쨌든 지금도 언론에 김수정 화백의 인터뷰가 실리면 꼭 찾아 읽곤 한다.

그 중 기억에 나는 인터뷰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주인공이 왜 공룡, 외계인, 조류 이런 거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당시 군부독재시절 검열이 심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어른에게 반말을 하거나 불손하게 구는 행동은 만화로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이런 놈들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은 실재로 그러했다. 어린이날이면 YWCA 아줌마들이 시내 모처에 모여서 만화책 화형식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김수정 화백의 만화는 화형식의 단골 손님이었다. 처참한 풍경이다.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나의 만화적 관심은 명랑만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쯤에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만화가 있었으니, 양영순의 《누들누드》였다. 허.. 소지품 검사를 피해 학교로 반입된 누들누드는, 이 손 저 손을 거치다가, 집에 돌아갈 때 쯤에는 너덜너덜해져있기 일쑤였다. 나는 이 책을 직접 사지는 못하는 소심한 학생에 불과했고, 다른 친구들의 용기과 자비에 의존하여 학교에서 누들누드를 읽었다. 어쨌든 만화가 양영순은 나에게 그렇게 각인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양영순은 레벨업을 거듭했다. 《아색기가》를 보고 정말 숨이 막혀 죽을만큼 웃어 봤고 (진주야! 편을 보면서 그러했다. 정확히 두 명이 죽을 뻔 했다), 《1001》을 보면서, “아, 이 작가가 야시꾸리한 것만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 이런 수준 높은 극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생각했다. 그 후에 뭐 《3반2조》, 《난의 공식》, 그 외 그닥 끌리지 않는 것도 없진 않았지만, 그건 취향의 문제였다. 《란의 공식》에서 “이 사람도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드디어 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서 악마가 강림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생각과는 달리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다. 그리고 충분히 잘 연출된 극 중 긴장감과는 별도로, 이거 연재 무사히 끝났 수 있을까하는 현실과의 긴장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때부터 독자들에게 주었다. 역시나 연재는 중간에서 잘렸다. “이거는 단지 고대 그리스의 영웅담일 뿐인데요”라는 변명은, 그것이 현실 정치의 풍자라는 누군가의 심증을 엎어버리기에는 부족했는가보다. 하긴 사람 사는 일이 어디나 다 똑같지 않겠는가. 연재중단을 알리는 게시글에, 표현의 자유가 왜 튀어나왔겠는가.

노련한 작가는 시대의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는 법이다. 할 말을 못하게 한다면, 좀 더 꼬아서 해야하지 않겠는가. 《덴마》는 이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외계인 별종(퀑)의 이야기이다. 검열을 피해 인간이 아닌 것을 주인공으로 가져와야 하는 비극이 세대를 초월해 또 다시 되풀이되는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덴마 역시 현실의 좆같음을 비추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정치의 영역을 관찰했다면, 《덴마》는 경제의 영역, 그 중에서도 (몇 푼 안되는) 자본을 통해 인간을 통제하는 방법에 더 중점을 두어 관찰한다는 차이가 있겠는데, 사실 근본적으로 그 두가지의 차이는 없다. 그리고 《덴마》에서 볼 수 있는 인신종속화의 방법이 기상천외하다거나, 지금의 기술을 한참 뛰어넘는 하이퍼테크놀로지가 실현되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다. 만약 《덴마》가 연재 중단을 당하지 않는다면, 《플루타르크스 영웅전》을 중단시켰던 자들이 (있다면) 바보라서 그런 것이고, 중단을 당한다면, 그들이 (있다면) 역시나 개새끼들이라서 그런 것이다.

蛇足
오늘 드디어 《덴마》에서 희망고문이 등장했다. 아, 물론 이미 이브라헬 편에서 잘 나타났지만, 이번회에 희망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등장했다.

많은 이들이 희망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나는 그것을 영화 《전우치》에서 보았다. 화담이 초랭이에게 사람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초랭이는 거기에 넘어간다. 희망의 정치는 기만의 정치이다.

결국 희망이 정치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은 그게 하나든 과두든 메시아의 강림이고, 종교적 주술이다. 그 둘이 잘 결합함을 그리고 그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파국을 지금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