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산행을 했다. 동행했던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임진왜란 이야기가 나왔다.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의견이 있는데, 곧 그 때 조선이라는 왕조가 망했어야 했다는 論이다.
특히나 전쟁 도중에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조선의 최고 권력자였던 선조가 보여준 비열한 행태들, 전후 퇴행으로 치달았던 조선의 지배층들, 그리고 정체되었던 지배층이 초래했던 19세기과 20세기의 끔찍한 결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면, 조선이 그 때 망해서, 그래서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절로 솟아 오른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몇 개의 평행 우주가 16세기 말에 분기되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평행우주가, 조선이 가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였을지 생각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정유재란 때, 남해안에서 농성을 하던 왜군의 일부가 현지화에 성공해서, 17세기를 맞이하지 못한 조선왕조를 대체한 한반도의 지배자는 왜군과의 연합을 해야만 했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들이 수 세기동안 점유상태를 유지했을 수도 있다. 왜군은 물러나고 조선은 망한다는 가정은 지나치게 순진하지 않나? 조선이 망했는데 왜군이 왜 물러나지?
유튜브에서 찾아 본 한명기 교수의 임진왜란 강의 (네 시간짜리 강의였는데, 매우 재미있었다) 마지막 편 질의 응답 시간에도, 비슷한 류의 질문이 나왔는데, 그 때 한명기 교수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아직 조선은 망할 때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 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을 대충 적어보자. 한석봉, 정철, 유성룡, 이순신, 조광조 정도가 개인적으로 떠오르는데, 조광조 말고는 다들 선조 때 사람들이다. 관료의 선발체계는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 의병들 쪽을 보자. 의병장들은 대체로 지역의 儒頭였다. 지방 행정을 담당하거나 조력했던 사람들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의병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조선의 관료와 관료체제는 전면전을 수행하는 데에는 부적합했을지 모르겠으나, 비상시를 어쨌든 관리하고, 인력과 물자를 동원했던 측면에서 보자면 “아직 망할만큼 무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승병의 활약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은 당시 한 세기 반이 넘도록 이어진 격렬한 내전을 마무리하던 시기였다. 개전 당시 일본의 지배자는 豊臣 秀吉였으나, 아직 완전히 국내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힘으로 힘겹게 누르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 유력 다이묘(그러니까 현대식으로는 군벌)들은 독립적이었다. 豊臣의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나자 억지로 출혈을 감수하고 있었던 다이묘들은 원정을 계속할 이유가 사라졌고, 전쟁을 종식되었다.
일단 최고 권력자의 망상 하나로 대규모 원정이 결정되고 실행될 수 있을 만큼, 내부의 의사 결정 시스템은 허술했다. 또 豊臣가 그 권력을 사후에 물려주지 못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 관료, 혹은 이들은 군사집단이니까 막료집단이 갖추어 진 것도 아니었고, 있었다 해도 유능하지 못했다. 결국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豊臣 집단의 집권은 끝나고, 德川네가 일본열도에서의 최고권력을 쥐게 된다. 이들의 행동 양태는 조폭 집단의 이합집산, 그리고 그 내부에서의 의사 결정을 연상시킨다.
국토가 초토화된 임진왜란 시기의 관료가 나름 유능했다고?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조선이 맞이한 두 번째 위기 국면을 살펴보자. 고종의 신하들은 초기에는 민씨네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가면 고종은 그야 말로 온갖 잡놈들에게 고관 대작자리를 마구 던져준다. 고종과 민씨 커플은 조선 말기 전국적 매관매직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뇌물을 가져다 바칠 능력이 우선이지, 조정의 안위 따위는 아예 눈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대신의 능력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잘 빨아 많이 받치는 놈이 장땡인 것이다. 아오, 여기에 대하여서는 매천야록 등에서 읽은 게 좀 있는데, 인상만 남아서 가져다 쓸 만한 사실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하튼 관료의 질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고종의 조선은 이미 “망하지 않으면 이상한” 상태였다. 고종의 유능한 신하가 누가 있었는가? 아마 생각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 관료집단의 선구집단은 조선총독부 2류 관리들의 시다바리였다. 조선총독부에는 일본 내지에서 관료를 할 수 있을 만큼 유능하지는 못한 관리들이 파견되었는데, 조선인은 그 자리 마저도 차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료들은 50년대의 혼란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어떠한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운 교육을 받은 신진 인재들이 관료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60년대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실질적인 운행이 시작되었다.
2008년 이후 대한민국의 관료집단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변화는 쓰레기의 약진이다. 그들은 공적 의무를 행하는 대신, 공적 자산을 자본으로 바꾸어 사유화하는 데 몰두한다. 공기업을 민영화 해서 임원 자리를 내정받는다든지, 전관예우 같은 것들을 초라한 예로 들 수 있겠다. 이전에도 이런 행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08년 이후에는 정부가 이런 행위를 독려하는 느낌이다. 이런 사유화를 소위 공직자의“능력”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
유교는 그 문제제기의 핵심이 관료 계층의 부패를 방지하고, 효율을 유지시키기 위한 고민에 있다. 그것은 법가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은 사실상 전통 동양 사회를 조직하고 떠바쳐 온 두 축이 되어왔다. 한편 서양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수 세기 전에 발견하고 가꾸어왔다. 민주주의는 감시·견제와 균형을 통해 관료의 비행을 예방한다. 자본과의 결탁을 통해 지대를 추구하려는 관료들의 욕구는가, 시민들의 감시와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인사권을 통해 좌절되는 구조이다. 국회가 관료들에 대한 탄핵소추권과 파면권을 쥐고 있는 이유이다.
지난 몇 달간 계속된 인사파동을 보면서, 관료의 질이 그래서 나의 장래가 걱정되는 이유이다. 또한 관료의 실패가 구조적으로 장려되는 시스템이 지난 대선을 통해 추인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감시라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상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관료의 실패가 豊臣의 경우에서 처럼 집권세력의 교체만을 초래해서 더 큰 문제를 초래하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2013년 4월 24일 수요일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기회주의자
※ 경고: 이 글에는 가카를 찬양한다고 볼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지난해 가을, 그러니까 박원순씨가 서울시장이 되는 보궐선거가 있었던 바로 그 때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혜성같이 나타난 안철수 교수. 한참 먼 곳에서 인터넷을 통해서만 듣는 한국소식이었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민국 여론의 거대한 흐름이 휙휙 움직이는 것을 진정한 놀라움으로 바라보았었다. 風林火山이라고 했던가. 안철수 교수는 질풍과 같이 정국을 주도하다 돌연 박원순씨에게 시장후보를 양보한 후, 거짓말처럼 공적 공간에서 사라지고 본업이었던 교수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를 향했던 기대한 지지세는 흩어지지 않았다.
안철수의 지지세는 민주당을 압도했다. 그리고 작년 봄. 총선이 있었다. 의외로 안철수는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 1차 멘붕. 총선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이후 민주당 경선이 있었고, 김두관이 경남지사직을 버리는 최악의 이적질이 있었고, 결선투표를 하네 마네 난리 굿통이 있었고, 결국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이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원장의 단일화는 전국민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안철수 후보는 결국 후보직을 사퇴했고, 한달 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대선에서 석패했다. 2012년 2차 멘붕.
대선 전의 여론조사를 보면, 여느 선거와는 다르게 흔히 부동층, 무당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매우 적게 나타났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기존 정치권에 실만한 사람들이 대거 안철수 후보에게서 희망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중립인데요”
참정권으로 대표되는 시민의 자격을 박탈해야 마땅한 가장 더럽고 비열한 언사이다. 나는 중립이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중립이기 때문에 투표도 하지 않는다. 나는 똥덩어리들만 득시글거리는 정치판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시민의 협치가 보장되는 좋은 정치는 공짜가 아니고, 그냥 성립되지도 않는다. 시민의 관심이 없이는 좋은 정치인도, 좋은 정치 시스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중립적인 시민들이 뽑은 대표들로 입법부가 채워지게 되면, 그들은 우리가 익히 봐 왔던 것처럼, 정부와 국가의 자산과 소득을 사유화해 버린다. 복지라는 시민의 권리를 약탈하여 만들어진 자금을, 공적 자금이나 경기부양책라는 이름으로 자본가에게 선물하는 매일 같은 일상은, 정치인들이 원래부터 개새끼들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개새끼들이 국회에 입성하도록 방조한 그 깨끗하신 중립적인 시민들의 책임이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저는 중립인데요?”라고 당당하게 말해대는 그 훌륭한 면상들이, 공동체의 파괴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공동체 공동의 자산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필요할 때에만 나타나서 그 과실을 따먹으려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주 예전부터 있었다. 바로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들이 많아질수록 소수의 이해가 정치에 과잉투사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시민의 연대가 자발적으로 붕괴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별로 거부감이 들지 않는 다른 말로 이들을 지칭해서 기회주의자들이 창궐하도록 방조·묵인한다. 바로 “무당파”이다.
소위 無黨派라고 하는 자들은 실은 巫堂派와 구별하기 힘든 자들이다. 그들은 평소 정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의 그 본질적 기능이 재화와 용역을 누구에게 얼마나 분배할 지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무당파가 많은 국가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정치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수에게 유리한 분배를 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은 힘들어지도록 정해져 있고, 이 때 앞서 말한 무당파들은 마술적·주술적 사고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든다. 정치 메시아의 강림이다. “MB니미 다 해 주실꺼야.”
6년 전의 메시아는 악귀히로였고, 작년의 메시아는 안철수였다. 신도의 질을 따지자면, 나는 차라리 악귀히로의 지지자들이 나았던 것 같다. 교회에 열성적으로 다니는 중년 여성분들을 제외하면, 적어도 그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메시아가 떳떳하지는 못한 사람이라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를 했었다. 물론 악귀히로의 안티테제였던 노무현이 정치와 경제를 망쳤다는 패러다임을 내면화했다는 것과, 그래서 악귀히로를 지지한다는 심각한 모순을 보일 만큼 도덕성에서도, 지성에서도 심각한 성장지체 현상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투표율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보다 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2007년 대선에서 투표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철수의 지지자들은, 높은 투표율이 말해주듯, 더욱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새누리당의 방사능 세슘 같이 지워지지 않은 지지자들이나, 울며 겨자먹기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혹은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진보정의당을 지지해 온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인 우위에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라 불렸던 일련의 현상을 다른 말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평소에는 정치에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메시아 안철수 후보를 찬양하고, 새정치 주기도문을 외면서, 쓰레기 같은 민주당을 경멸하던 현상이다.
안철수 후보의 슬로건이었던 새정치는, 민주당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그 결과 안철수 현상의 가장 희극적인 몸 개그가 나온다. 국회의원 정수 감축 크리! 뭐 복지 쪽 정책은 진보 쪽이 인기가 많고, 안보 쪽은 보수 쪽이 인기가 많으니 둘 섞어찌개하면 되겠네, 국회의원은 밥이나 축내니 줄이자고 하면 인기가 좋아지겠지 수준의 택시기사 따로국밥 정치가 작렬했다. 정치적인 비전은 고사하고, 정치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불충분하다 못해 낙제 수순인 처절한 바닥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정치인의 수준은 그 지지자의 수준이다. (여담이지만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균형발전을, 악귀히로는 한반도 대운하를, 그리고 다카키 마사코(高木 魔邪子)는 서해 철도 페리를 국가의 비전으로 제시했었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사람들에게, 누가 좋은 후보인지 알아보는 감별안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인간이 하는 어떠한 행위도 그 의도적인 개발과정 없이 어떠한 수준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정치인이 하는 정치라는 분과의 기예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일반인의 참정권 역시 관심과 경험의 축적 없이 올바르게 행사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정치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지지자들 중 다수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각성되어있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훈련되지 않았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을, 작년 한 해 동안 새누리당은 철저히 희롱하고 능멸했다. 조직적이고 훈련된 전문적인 여론 조작단이,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둘 중 어느 쪽으로 여론이 쏠릴 조짐이 있을 때마다 반대쪽에 힘을 실어 주면서 단일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양자간의 이간질을 부채질했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이 미숙했을지언정 그들의 열망마저 악용되어도 좋을만큼 무가치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갈구, 선의지만은 진정이었다. 바로 그것을 새누리당은 이용했다. 그 뿐이랴, 안철수 후보 측의 캠프에도 새누리당의 잔여인사들이 참여하지 않았던가?
안철수가 후보 사퇴를 선언하던 날, 대학 선배 중에 한 명이 페북에 이런 비슷한 글을 남겼었다. 아 이제는 심상정이나 찍어야겠다고. 그 며칠 후에 심상정 후보가 사퇴했다. 그만큼 야권은 절실했었다. 얼마 후에는 야권의 구멍이라고 볼 수도 있는 진중권이 트윗을 통해 “사과”라는 걸 했다. 이정희 후보 역시 가타부타 말이 많지만, 나는 N2 폭탄을 한 손에 쥐고 사도 제루엘을 향해 자폭공격을 하던 에바영호기가 떠오른다.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그 어마어마한 기득권의 카르텔에 한 번이라도 맞서 본 자들은, 누구나 단결했다. 지금은 어떤 작은 차이로 편을 가를 때가 아니라, 일단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대선에서는 졌지만, 그 자발적인 동맹의 모습에서, 나는 아름다운 단일화의 진정한 모습을 보았다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그 전선에 나서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기득권 카르텔과 싸울 이유가 없이 살아 온 분이고, 실전에 들어서는 그 싸움 그 자체를 구태로 선언하신 분이다. 작금 문제가 되고 있는 안철수 후보의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그 선배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궁금만 하다.
2012년 3월 1일 목요일
붕락
며칠 전 이외수옹께서 닭도리탕이 일본어에서 기원한 단어가 아님을 트위터로 지적한 적이 있다. 그날 아침나절 동안은 그 트윗에 대한 반응을 폭발적이어서, 미디어 다음의 댓글 많은 기사에 이외수옹의 트윗을 전하는 기사가 계속 자리했었다. 딱 5 일 전이었다. 닭도리탕이라는 단어가 '鳥'字의 일본어 독음 도리에서 유래했다는 국립국어원의 설명은 이미 대세를 넘어 정설로 자리잡힌 마당이었다. 아마 주류 언론들은 이외수옹이 헛소리를 지어내거나, 혹은 가끔은 낚이는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는가보다.
오는 이외수옹께서 또다른 트윗을 했다. 이외수옹의 트윗을 항상 지켜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닭도리탕 트윗보다 훨씬 값어치 있고, 운율의 맛이 있는 트윗을 이외수옹이 삼일절을 맞아 날렸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 트윗은 다음과 같다.
청산되지 않고 이월된 친일파들은 자신의 계급을 미국의 비호 하에서 확대재생산하는데에 성공한다. 인구의 증가, 경제의 성장과 함께, 복잡해지는 사회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 팽창한 하급 관리를 또한 성공적으로 포섭하는 데에 성공한 그 무리는, 스스로를 사회지도층, 주류, 메인스트림, 성골 따위의 시대착오적인 이름으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그 하급관리들과도 구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왔으며, 오히려 25년 전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었던 때보다 더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사상적으로도 극단화되었다. 개신교도가 아니거나, 시장원리주의자가 아닌 자들은 주류로 분류되지 못한다. 시험을 통해 선발되는 그들의 하급관리들은 무능력한 자들이 승진을 하게 되는 모순 속에서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거나,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기능성만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다.
친일파의 후신, 곧, 주류의 논리에 완전히 포섭된 경제신문들은 매일처럼 망하는 기업과 흥하는 기업의 차이점을 자의적으로 대조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을 외면한다, 소통이 막혀있다, 잘못된 곳에 투자를 한다. 정도가 단골로 언급된다. 이미 사람들이 스스로를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심지어 투자자로 등치시켜 생각하도록 세뇌시키는 데에 성공한 주류는, 하급 관리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피지배민들에게 “니 삶이 개같은 것은, 다 니 탓이거나 최소한 니 팔자”라는 논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정치와 결탁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심지어 이들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이미 대한민국의 주류는 망조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하며, 소통마저 막혀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자들은 앞으로 골로가는 장구한 외길을 걸어가게 될 터인데, 주류로 태어나기를 당당히 거부한 우리들은, 적당한 선에서 이들과의 파멸로 가는 동행을 뿌리쳐야 한다. 아마도 지금이 딱 그 때인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죄를 짓게 되면,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든지, 아니면 일정시간의 신성한 노동을 통해 번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을 벌금으로 내게 된다. 어떤 경우든 자유가 제한된다. 만약 타고 난 자신의 몸뚱이 자체가 죄라면 (혹은 죄를 통한 유리함을 얻었다면), 우리는 그 바로 몸뚱이가 아닌 무엇을 제한할 수 있을까. 프랑스혁명때 애 어른 할 것 없이 귀족의 목을 썰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덧. 이덕일은 이들 기생계급의 기원을 조선시대의 노론에서 찾고 있다. 가계도 분석을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분명 이미 누군가는 작업을 해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4월 9일, 문장의 호응이 이상한 부분을 수정)
오는 이외수옹께서 또다른 트윗을 했다. 이외수옹의 트윗을 항상 지켜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닭도리탕 트윗보다 훨씬 값어치 있고, 운율의 맛이 있는 트윗을 이외수옹이 삼일절을 맞아 날렸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 트윗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는 독립했지만, 친일파로부터는 독립하지 못한 나라다.”
청산되지 않고 이월된 친일파들은 자신의 계급을 미국의 비호 하에서 확대재생산하는데에 성공한다. 인구의 증가, 경제의 성장과 함께, 복잡해지는 사회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 팽창한 하급 관리를 또한 성공적으로 포섭하는 데에 성공한 그 무리는, 스스로를 사회지도층, 주류, 메인스트림, 성골 따위의 시대착오적인 이름으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그 하급관리들과도 구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왔으며, 오히려 25년 전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었던 때보다 더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사상적으로도 극단화되었다. 개신교도가 아니거나, 시장원리주의자가 아닌 자들은 주류로 분류되지 못한다. 시험을 통해 선발되는 그들의 하급관리들은 무능력한 자들이 승진을 하게 되는 모순 속에서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거나,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기능성만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다.
친일파의 후신, 곧, 주류의 논리에 완전히 포섭된 경제신문들은 매일처럼 망하는 기업과 흥하는 기업의 차이점을 자의적으로 대조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을 외면한다, 소통이 막혀있다, 잘못된 곳에 투자를 한다. 정도가 단골로 언급된다. 이미 사람들이 스스로를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심지어 투자자로 등치시켜 생각하도록 세뇌시키는 데에 성공한 주류는, 하급 관리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피지배민들에게 “니 삶이 개같은 것은, 다 니 탓이거나 최소한 니 팔자”라는 논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정치와 결탁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심지어 이들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이미 대한민국의 주류는 망조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하며, 소통마저 막혀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자들은 앞으로 골로가는 장구한 외길을 걸어가게 될 터인데, 주류로 태어나기를 당당히 거부한 우리들은, 적당한 선에서 이들과의 파멸로 가는 동행을 뿌리쳐야 한다. 아마도 지금이 딱 그 때인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죄를 짓게 되면,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든지, 아니면 일정시간의 신성한 노동을 통해 번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을 벌금으로 내게 된다. 어떤 경우든 자유가 제한된다. 만약 타고 난 자신의 몸뚱이 자체가 죄라면 (혹은 죄를 통한 유리함을 얻었다면), 우리는 그 바로 몸뚱이가 아닌 무엇을 제한할 수 있을까. 프랑스혁명때 애 어른 할 것 없이 귀족의 목을 썰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덧. 이덕일은 이들 기생계급의 기원을 조선시대의 노론에서 찾고 있다. 가계도 분석을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분명 이미 누군가는 작업을 해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4월 9일, 문장의 호응이 이상한 부분을 수정)
2012년 1월 21일 토요일
疎外
신문에서 노동의 소외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201836345&code=900308)
사실 소외라는 단어를 철학 쪽에서 배우기 전까지는 따돌림의 뜻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도 정확히 뭐를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일부의 사람들을 국외자로 만들 때, 소외시킨다는 정도로 자주 쓰인다.
사실 저 링크의 기사 중간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인용문의 주술관계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문을 찾아보았다. 마르크스는 죽은 지 한 세기도 넘었기 때문에 그의 저작들은 더 이상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여기서 원문을 찾아 볼 수 있었다. (http://www.marxists.org/deutsch/archiv/marx-engels/1844/oek-phil/1-4_frem.htm) 외국어로 된 이 긴 글을 읽을만한 역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용된 부분만 찾아보았다.
사실 소외라는 단어를 철학 쪽에서 배우기 전까지는 따돌림의 뜻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도 정확히 뭐를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일부의 사람들을 국외자로 만들 때, 소외시킨다는 정도로 자주 쓰인다.
사실 저 링크의 기사 중간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인용문의 주술관계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문을 찾아보았다. 마르크스는 죽은 지 한 세기도 넘었기 때문에 그의 저작들은 더 이상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여기서 원문을 찾아 볼 수 있었다. (http://www.marxists.org/deutsch/archiv/marx-engels/1844/oek-phil/1-4_frem.htm) 외국어로 된 이 긴 글을 읽을만한 역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용된 부분만 찾아보았다.
Worin besteht nun die Entäußerung der Arbeit?문장의 주술관계가 어긋나는 것은, 그 앞의 질문을 인용에서 소외시켰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맨 마지막 단어는 Hans가 아니라 Hause인 것 같다.
Erstens, daß die Arbeit dem Arbeiter äußerlich ist, d.h. nicht zu seinem Wesen gehört, daß er sich daher in seiner Arbeit nicht bejaht, sondern verneint, nicht wohl, sondern unglücklich fühlt, keine freie physische und geistige Energie entwickelt, sondern seine Physis abkasteit und seinen Geist ruiniert. Der Arbeiter fühlt sich daher erst außer der Arbeit bei sich und in der Arbeit außer sich. zu Hause ist er, wenn er nicht arbeitet, und wenn er arbeitet, ist er nicht zu Hans.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누가 짐승일까, 아니 나는 짐승이 아닌가?
지난해 12월 2일 대전에서 여고생이 왕따를 당하다가 집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두 주가 지나고 20일 이번에는 대구에서 남자 중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눈물겨운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집에서 투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수 언론이 뛰어들었다. 그 중 삼류로 여겨지는 동아가 초조함에 선빵을 내질렀다. 한동안 포털 사이트의 메인 기사는 동아의 학원폭력 가해자를 성토하고, 그 실태를 까발리며, 강한 처벌을 주문하는 기사로 채워졌다. 해가 지나자 이제는 조선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틀 전 조선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사회 계층을 보여주었고, 오늘은 그 원인을 게임 등의 폭력물로 돌렸다.
이들은 청맹과니일 수도 있고, 눈을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마주하는 데에는 용기와 지성이 필요하다. 그 두가지를 마음에 품고, 우리 자신의 십대를 뒤돌아보자. 교실이 평등한 우정의 공동체였던 적이 있었는가? 안 그랬잖아. 원래부터 안 그랬잖아.
엄기호의 말을 빌리자면, 교실은 촘촘하게 구축된 위계질서였다. 그 위계의 꼭대기는 돈이 많은 아버지의 자제분들과 특별하게 싸움을 잘하는 자들의 연합 내지는 동맹이었고, 그 위계의 가장 아래에는 위생에 신경쓰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거나, 아무 특징도 없으면서 공부마저 지지리도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씨발, 짜증나게 이상한 것은, 부자면서 싸움도 잘하는 놈들은 대체로 잘생겼고 공부도 잘했다. 가장 아래에 있던 아이들은, 역시 대체로 생긴 것도 비호감이었고, 지금 돌아보자면, 표가 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십대의 마지막 해이던 고3의 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경고했었다.
중학교 때의 한 해, 우리반의 정치지형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싸움 잘하고, 공부 잘하고, 잘생기고, 집도 부자인 놈이 나와 한 반이었고, 자연스럽게 반장이 되어 나머지 52명을 장악하는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현명하기까지 했다. 그와 코드를 최소한 맞출 수 있는 정도로 놀 수 있는 대여섯 놈들은 일종의 이너써클을 형성했고, 이들에게 권력의 일부를 떼어 주었다. 예를 들자면 이너써클의 일탈은 담임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다른 5년동안 나는 한 번도 이런 철저한 계급화와 효율적인 권력의 사유화가 학급에서 실현된 경우를 목격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는 함께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동안 교사들 사이에서 능력있는 반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듯 했다. 나는 이너써클에 들어갈 만큼 자원(자본, 운동신경, 외모)이 충분하지 못했고, 부당한 대우에 상황파악 못하고 몇 번 “개념없이” 도전했고, 그 결과 그 존재감 있는 놈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특히나 그 중 한 마름 비슷했던 놈과 빈번히 충돌했으나, 나는 주로 맞는 편이었다.
그 경험은 학원 폭력을 내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하는 인터뷰나 토론을 보면, 좀 병신같다. 먼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는댄다. 그래서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요즘 병신과 병신이 아닌 사람들 구분하는 방법은 소통에 있다. 소통을 떠드는 놈들은 십중팔구 병신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소통은 병림픽 데쓰메치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부모나 교사한테 말하는 10대 사춘기소년은, 비정상이다. 걔네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센데.
둘째 교사가 반에 더 신경을 써야한댄다. 제발. 빈다. 부탁이다. 걔네들에게 잡무 맡기지 마라. 아니면 교사를 더 뽑아서 둘 중 하나는 생활지도에, 나머지는 행정 처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라. 걔네들 시간 없고, 또 역시나 가정을 가진 생활인이다. 애정과 관심 또한 제한된 자원이다. 피해자가 병신이 되거가 죽고 난 다음에도 자기 책임 없다고 발뺌하는 교사들도 효수감이지만, 감당이 되는 만큼만 책임을 져야 시스템이 돌아간다.
셋째 폭력물 탓 하지마라.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농구부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체육관에서 양아치들과의 피터지게 싸워야 했다. 서태웅은 출혈과다로 쓰러져 죽을 뻔(?) 했으므로, 대단히 위험한 폭력장면이다. 그런데, 그래서 슬램덩크가 쓰레기 폭력물인가? 그 장면이 잘려 나가면 슬램덩크의 정대만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살아날 수 있을까? 내가 체육관 장면을 폭력물과 연관짓는 게 오바 같은가? 천만에. 실재로 1993년 당시 이 장면을 두고 폭력물 시비가 있었다. 게임과 폭력물이 없으면,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는 10대 남자애들이 얌전히 있을 것 같나? 요즘 중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에서 몹과 몬스터들 때려 잡는다는데, 내가 고만하거나 좀더 어렸을 때도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II, 철권 따위를 했고, 용돈 떨어지면 개미, 잠자리 잡아서 다리 떼고, 날개 떼고 놀았다. 폭력물을 접해서 폭력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좀 폭력적이기 때문에, 폭력물을 좀 보고 즐기는 것이다. 중학교 생물에 붕어, 개구리 해부는 아직 있나 몰라.
넷째, 많은 경우 일대다의 충돌이다. 여럿이서 하나 따돌리는거. 이걸 언급하는 전문가를 본 적이 없다. 개별 행위는 정말 사소하다. 결코 범죄를 성립시켜서 처벌할 수가 없다. 사람 둘 있으면, 하나 바보 만드는 거 식은 죽먹기이다. 이건 직장에서도, 군대에서도, 사회에서도 항상, 늘 존재한다. 대상이 학생일 경우에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적용해서 사회의 많은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겠다. 안된다는 말이다. LG 왕따 사건을 보라. 당하는 놈을 바보 만들어야 굴러가도록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걸 법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학원폭력이 계급 문제라는 것을 언제 쯤 인정할텐가? 즉, 학부모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언제 인정할 것이냐는 말이다. 아이의 행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사회생활에 적합하도록 교정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서 다시 가정의 문제도 돌아왔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지식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어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의 형질은 유전될 수 밖에 없으므로, 비(非)신분제 사회에서마저 관찰되는 계급의 재생산은 그 물리적, 자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면 그게 당연한거니까 내버려 두란 말인가? 아니, 오히려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라는 말 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렇지만”을 꺼내 본다. 그것을 통해야만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 작용하는 치역으로 사상될 수 있다. 잘난 놈도 있고, 못난 놈도 있지만, 그렇지만, 못난 놈이라서 비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하지 말고, 또 잘난 놈이라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수 없게, 그런 규칙에 모두의 동의를 구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인권을 넘어 모두에게 존엄을 보장할 수 있게 말이다. 구체적 인간은 타고난 능력과 키워진 환경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만히 놓아 두면 그 차별이 너무나 “비인간적인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더 존엄의 하한선만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보수언론은 학교폭력 가해자들과 그들의 공범인 폭력물에게 짐승이라는 비유를 가져다 붙였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결국은 계급의 반영이라는 점을 목도하고 나면, 계급간의 반목과 질시, 동경의 헤게모니와 값싼 동정을 이용하여야만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 온 기존의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의 협력자들이 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리고 어쩌면, 나도 짐승일지 모른다. 남이 짐승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러자 이번에는 보수 언론이 뛰어들었다. 그 중 삼류로 여겨지는 동아가 초조함에 선빵을 내질렀다. 한동안 포털 사이트의 메인 기사는 동아의 학원폭력 가해자를 성토하고, 그 실태를 까발리며, 강한 처벌을 주문하는 기사로 채워졌다. 해가 지나자 이제는 조선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틀 전 조선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사회 계층을 보여주었고, 오늘은 그 원인을 게임 등의 폭력물로 돌렸다.
이들은 청맹과니일 수도 있고, 눈을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마주하는 데에는 용기와 지성이 필요하다. 그 두가지를 마음에 품고, 우리 자신의 십대를 뒤돌아보자. 교실이 평등한 우정의 공동체였던 적이 있었는가? 안 그랬잖아. 원래부터 안 그랬잖아.
엄기호의 말을 빌리자면, 교실은 촘촘하게 구축된 위계질서였다. 그 위계의 꼭대기는 돈이 많은 아버지의 자제분들과 특별하게 싸움을 잘하는 자들의 연합 내지는 동맹이었고, 그 위계의 가장 아래에는 위생에 신경쓰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거나, 아무 특징도 없으면서 공부마저 지지리도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씨발, 짜증나게 이상한 것은, 부자면서 싸움도 잘하는 놈들은 대체로 잘생겼고 공부도 잘했다. 가장 아래에 있던 아이들은, 역시 대체로 생긴 것도 비호감이었고, 지금 돌아보자면, 표가 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십대의 마지막 해이던 고3의 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경고했었다.
느그들 이 중에 우리집도 함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놈들 있제? 지금 공부 한하면 평생 우리집도 함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생각만 하면서 살게 된다.그 발언이 비교육적이라는 단면적인 인상비판은 사양한다. 그것은 공갈도 협박도 아니었고, 단지 높은 개연성을 가지는 두 사건을 나란히 놓아 그 대비를 선명하게 했을 뿐이었다. 교실은 그냥 사회였다. 사회의 계급이 그대로 투영되고, 그 계급이 거의 변화없이 재생산되게 만들고, 혹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기제였다.
중학교 때의 한 해, 우리반의 정치지형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싸움 잘하고, 공부 잘하고, 잘생기고, 집도 부자인 놈이 나와 한 반이었고, 자연스럽게 반장이 되어 나머지 52명을 장악하는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현명하기까지 했다. 그와 코드를 최소한 맞출 수 있는 정도로 놀 수 있는 대여섯 놈들은 일종의 이너써클을 형성했고, 이들에게 권력의 일부를 떼어 주었다. 예를 들자면 이너써클의 일탈은 담임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다른 5년동안 나는 한 번도 이런 철저한 계급화와 효율적인 권력의 사유화가 학급에서 실현된 경우를 목격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는 함께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동안 교사들 사이에서 능력있는 반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듯 했다. 나는 이너써클에 들어갈 만큼 자원(자본, 운동신경, 외모)이 충분하지 못했고, 부당한 대우에 상황파악 못하고 몇 번 “개념없이” 도전했고, 그 결과 그 존재감 있는 놈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특히나 그 중 한 마름 비슷했던 놈과 빈번히 충돌했으나, 나는 주로 맞는 편이었다.
그 경험은 학원 폭력을 내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하는 인터뷰나 토론을 보면, 좀 병신같다. 먼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는댄다. 그래서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요즘 병신과 병신이 아닌 사람들 구분하는 방법은 소통에 있다. 소통을 떠드는 놈들은 십중팔구 병신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소통은 병림픽 데쓰메치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부모나 교사한테 말하는 10대 사춘기소년은, 비정상이다. 걔네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센데.
둘째 교사가 반에 더 신경을 써야한댄다. 제발. 빈다. 부탁이다. 걔네들에게 잡무 맡기지 마라. 아니면 교사를 더 뽑아서 둘 중 하나는 생활지도에, 나머지는 행정 처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라. 걔네들 시간 없고, 또 역시나 가정을 가진 생활인이다. 애정과 관심 또한 제한된 자원이다. 피해자가 병신이 되거가 죽고 난 다음에도 자기 책임 없다고 발뺌하는 교사들도 효수감이지만, 감당이 되는 만큼만 책임을 져야 시스템이 돌아간다.
셋째 폭력물 탓 하지마라.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농구부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체육관에서 양아치들과의 피터지게 싸워야 했다. 서태웅은 출혈과다로 쓰러져 죽을 뻔(?) 했으므로, 대단히 위험한 폭력장면이다. 그런데, 그래서 슬램덩크가 쓰레기 폭력물인가? 그 장면이 잘려 나가면 슬램덩크의 정대만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살아날 수 있을까? 내가 체육관 장면을 폭력물과 연관짓는 게 오바 같은가? 천만에. 실재로 1993년 당시 이 장면을 두고 폭력물 시비가 있었다. 게임과 폭력물이 없으면,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는 10대 남자애들이 얌전히 있을 것 같나? 요즘 중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에서 몹과 몬스터들 때려 잡는다는데, 내가 고만하거나 좀더 어렸을 때도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II, 철권 따위를 했고, 용돈 떨어지면 개미, 잠자리 잡아서 다리 떼고, 날개 떼고 놀았다. 폭력물을 접해서 폭력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좀 폭력적이기 때문에, 폭력물을 좀 보고 즐기는 것이다. 중학교 생물에 붕어, 개구리 해부는 아직 있나 몰라.
넷째, 많은 경우 일대다의 충돌이다. 여럿이서 하나 따돌리는거. 이걸 언급하는 전문가를 본 적이 없다. 개별 행위는 정말 사소하다. 결코 범죄를 성립시켜서 처벌할 수가 없다. 사람 둘 있으면, 하나 바보 만드는 거 식은 죽먹기이다. 이건 직장에서도, 군대에서도, 사회에서도 항상, 늘 존재한다. 대상이 학생일 경우에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적용해서 사회의 많은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겠다. 안된다는 말이다. LG 왕따 사건을 보라. 당하는 놈을 바보 만들어야 굴러가도록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걸 법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학원폭력이 계급 문제라는 것을 언제 쯤 인정할텐가? 즉, 학부모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언제 인정할 것이냐는 말이다. 아이의 행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사회생활에 적합하도록 교정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서 다시 가정의 문제도 돌아왔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지식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어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의 형질은 유전될 수 밖에 없으므로, 비(非)신분제 사회에서마저 관찰되는 계급의 재생산은 그 물리적, 자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면 그게 당연한거니까 내버려 두란 말인가? 아니, 오히려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라는 말 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렇지만”을 꺼내 본다. 그것을 통해야만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 작용하는 치역으로 사상될 수 있다. 잘난 놈도 있고, 못난 놈도 있지만, 그렇지만, 못난 놈이라서 비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하지 말고, 또 잘난 놈이라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수 없게, 그런 규칙에 모두의 동의를 구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인권을 넘어 모두에게 존엄을 보장할 수 있게 말이다. 구체적 인간은 타고난 능력과 키워진 환경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만히 놓아 두면 그 차별이 너무나 “비인간적인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더 존엄의 하한선만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보수언론은 학교폭력 가해자들과 그들의 공범인 폭력물에게 짐승이라는 비유를 가져다 붙였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결국은 계급의 반영이라는 점을 목도하고 나면, 계급간의 반목과 질시, 동경의 헤게모니와 값싼 동정을 이용하여야만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 온 기존의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의 협력자들이 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리고 어쩌면, 나도 짐승일지 모른다. 남이 짐승임을 확인하는 순간.
2011년 5월 15일 일요일
꿈의 택배편이 떠올랐다
2000년의 여름, 나는 신림동의 어느 고시원 쪽방에서 더위에 쩔어 있었다. 외지에서 난생 처음 격어 보는 지독한 외로움에 심신이 지쳐있었다. 만약 그 해 농활을 가지 않았더라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죽었을 것 같다.
나는 그 때 실재로 약간은 미쳐있었다. 건물 5층이었지만 비가 오기 전에는 꿉꿉한 하수구 냄새가 실내에 꽉 차 있었고, 어딘가 항상 불결한 느낌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둔 유월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방에 도착해 자려고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짜부작 짜부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구석을 들여다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 전날 방구석에 버려두었던 초코파이 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봉지를 조심스레 눌러 바퀴벌레를 제거했지만, 잠시 후 이번에는 방향을 특정할 수 없게 방 안의 온 벽에서 끊임없이 아까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내가 미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미치지 않았음을 확인해야 했다. 소리의 근원을 특정하기 위해 한동안 방 안을 초조하게 뒤적였다. 소리의 근원을 확인해야 내가 미치지 않은 것이니까. 혹시 또 다른 바퀴벌레인가. 그리고 잠시 후 깨달았다. 그 소리는 때마침 창 밖에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안도해 하며 끈적이는 불쾌함을 느끼며 잠이 들었었다. 수 년 뒤에 깨달았다. 상황이 조금 더 악화될 수 있었으며, 그럴 경우 많이 위험했을 거라는 것을.
그 때의 나를 지탱해준 건, 사회에 독립해서 첫 발을 내 디뎠다는 데서 느낀 헛된 뿌듯함이었다. 세상은 운 없게도 돈 없이 세상에 나온 18년産 남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상경직후 복덕방에서 소개해 주었던 하숙집은 2달 반 만에 헐렸다. 복덕방에서 그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를 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5월 축제기간, 나는 당장 집을 찾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 앉게 된다는 두려움에 서울 변두리의 복덕방들을 전전했었다. 1학년의 봄 축제는 내게는 남 일이었다. 싼 집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위생환경의 집들만이 내가 정한 원세의 상한 기준을 만족시켰다. 더 이상은 도저히 부모님께 부담드릴 수 없는 금액이었다. 관악구청 앞에서, 복덕방 주인을 따라 방을 보러 갔다가, 낙담하며 구청 앞 신호등을 건너 사방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건물들과 그 건물마다 수십 개씩 붙어 있는 까만 네모난 구멍들, 그 어디에도 내가 몸을 뉘일 곳이 없다는 절망감은 좀 많이 무거웠다. 그 때 어렵게 구했던 방이 빗소리가 바퀴벌레 소리로 들리던 바로 그 방이었다.
외로웠다. 억지로 관계를 맺는 듯 해 보이는 가식적인 대학생들의 만남이 스스러웠다. 난생 처음 만나는 선배들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힘들었고, 동기 수십 명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위해서 하는 과장된 액션들이 보기 싫었다. 더군다나 그 오바질이란 것들은, 나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장기와 재주를 부리는 것들이었기에 나는 질투와 무력감을 함께 느꼈다. 저 인간들은 어떻게 저런 잡기와 성적을 함께 유지할 수 이었지? 그와 더불어 입학 전 모임에서 겨우 말을 텄던 몇몇은, 개학과 동시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종강한 것이다. 수업시간표가 남들과는 다소 달랐고, 컴퓨터가 없었다는 것도 상당한 이유였다. 나는 내부적·외부적 이유들로 인해서 효과적으로 고립되었다.
그 여름의 어느 날, 자우림의 앨범을 샀다. 그리고 한동안 하루 종일 그 곡들을 들었었다. 그 곡들은 내 기억에, 그 여름의 힘든 시기에 달린 태그와 같은 것들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꿈의 택배편”.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가 서너 달의 지독한 인내 끝에 무너졌지만, 그 때 난 아직도 스스로 먼저 다가 갈만큼 용기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것이 그리 비겁한 짓이었을까. 그 날, 그 자우림 3집 테이프를 사러 버스타고 15분이나 걸리는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옆에 있는 음반가게에 갔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우연히 과친구들 한 무리를 만나 식당에 함께 들어갔었다. 아직도 아주 뼈아프게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친구들이 미칠 듯이 부러웠었던 것이. 단지 그들은 외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풍족하고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딱 거기까지만 기억이 난다.
하악, 감동도 재미도 없는 씁쓸했던 기억이다. 왜 이 노래가 기억이 났는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 쓰고 싶었던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빈곤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앞서 이야기했던 내가 외로웠던 이유들을 모두 뒤집어야 한다. 나는 빈곤했기 때문에 외로웠다. 하루 저녁, 만 원을 뿜빠이 해서 내야했던 동기들과의 술자리에 가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던 이유, 부모님께 대학교 들어간 큰아들 컴퓨터 한 대 사 달라고 우길 수 없었던 이유, 그 고립되었던 시간 동안 외로움을 떨쳐 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그리고 내 부모님이 빈곤했기 때문이었다. 지나친 빈곤은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상처이니까. 그 때 날 지탱해 준 것은 어떤 의미에서 뽕이었다. 넌 이제 성인이야, 네 앞가림은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라는 달콤한 속삭임. 세상은 그 헛된 용기들을 도둑질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것 아닐까.
나는 그 때를 스스로의 인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준비해 나가는 시간이라 여기며, 빈곤 속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만큼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아니 없는 행복을 자주 가공해 가며, 살아갔다. 하루는 밤늦게 과외를 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뉘였다. 문득 관악구청 앞에서 절망했던 5월 어느 날의 해질녘이 떠올라, 이제 누울 자리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며 보람 속에 잠이 들었다. 오늘 난, 그 잠자리가 떠올라 그 불쌍한 젊은이를 동정하며 눈물을 훔친다. 그 젊은이는, 나도 저 옷을 입어보고 싶어, 나도 새로 나온 저 핸드폰을 써 보고 싶어, 나도 저 음식점에서 다들 맛있다는 어떤 메뉘를 먹어보고 싶어, 그런 욕심들을 마음에서 하나씩 죽여 갔다. 행복은 물질적인 충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속삭임들은 또한 얼마나 달콤한가. 이제는 내가 정말로 새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차피 못 살걸 알고 포기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죽었으니까 상관은 없다.
그런 생활은 단속적으로 반복되어, 2007년의 어느 날, 나는 그 때보다 해발고도 70m 높은 또 다른 방을 빌려 몸을 누이고 있었다. 2000년, 나 같이 극단의 빈곤 선 바로 위에 있었던 젊은이들은 완전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아마 10%가 조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며칠 전 그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12139085&code=940702)는, 그리고 거기 달린 현실감 있는 많은 의견들은 처절한 절규였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진짜 기사였다. 똥이 질질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사실만을 기술한 기사가 이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는 것은, 사회가 이미 매우 극적인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극의 절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만, 그 젊은이들의 부모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최후에는 징벌을 받는 악역을 맡은 자들이다. 내가 말하는 그들은 내가 빈곤에 고통 받고 있는 동안 가장 열렬히 투기에 뛰어들었던 자들이다. 그 뿐만 아니다. 그들은 내가 인정하는, 특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들을 형편없이 비웃었고, 자본이라는 신이 역사하시는 몰상식과, 법 위에 서 있는 힘의 전횡에 열광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것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동시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죽거나 고통 받는 것 따위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고려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자들이다. 나 같은 대대로 돈 없는 것들이,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결혼과 출산의 축복을 포기한 채, 붙어있는 목숨에 감사해하며, 근근이라도 살아있는 것이, 대체 그들과 무슨 상관이었느냔 말이다. 나는 그들이 빚을 떠안고 몰락하기를 정화수 떠 놓고 빌고 앉아있지는 않아도, 그들의 비참한 몰락을 비웃으며 보아 줄 용의는 있다. 대체 그들이 투자에 실패하고 일가족이 비탄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꿈의 택배편”은 나에게 외로움뿐 만이 아니라, 외로움과 빈곤을 함께 떠올리게 해 준다.
나는 그 때 실재로 약간은 미쳐있었다. 건물 5층이었지만 비가 오기 전에는 꿉꿉한 하수구 냄새가 실내에 꽉 차 있었고, 어딘가 항상 불결한 느낌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둔 유월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방에 도착해 자려고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짜부작 짜부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구석을 들여다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 전날 방구석에 버려두었던 초코파이 봉지를 뒤지고 있었다. 봉지를 조심스레 눌러 바퀴벌레를 제거했지만, 잠시 후 이번에는 방향을 특정할 수 없게 방 안의 온 벽에서 끊임없이 아까의 그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내가 미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미치지 않았음을 확인해야 했다. 소리의 근원을 특정하기 위해 한동안 방 안을 초조하게 뒤적였다. 소리의 근원을 확인해야 내가 미치지 않은 것이니까. 혹시 또 다른 바퀴벌레인가. 그리고 잠시 후 깨달았다. 그 소리는 때마침 창 밖에 내리기 시작하던 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안도해 하며 끈적이는 불쾌함을 느끼며 잠이 들었었다. 수 년 뒤에 깨달았다. 상황이 조금 더 악화될 수 있었으며, 그럴 경우 많이 위험했을 거라는 것을.
그 때의 나를 지탱해준 건, 사회에 독립해서 첫 발을 내 디뎠다는 데서 느낀 헛된 뿌듯함이었다. 세상은 운 없게도 돈 없이 세상에 나온 18년産 남자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상경직후 복덕방에서 소개해 주었던 하숙집은 2달 반 만에 헐렸다. 복덕방에서 그에 대한 아무런 사전정보를 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5월 축제기간, 나는 당장 집을 찾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 앉게 된다는 두려움에 서울 변두리의 복덕방들을 전전했었다. 1학년의 봄 축제는 내게는 남 일이었다. 싼 집은 좀처럼 찾아지지 않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위생환경의 집들만이 내가 정한 원세의 상한 기준을 만족시켰다. 더 이상은 도저히 부모님께 부담드릴 수 없는 금액이었다. 관악구청 앞에서, 복덕방 주인을 따라 방을 보러 갔다가, 낙담하며 구청 앞 신호등을 건너 사방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건물들과 그 건물마다 수십 개씩 붙어 있는 까만 네모난 구멍들, 그 어디에도 내가 몸을 뉘일 곳이 없다는 절망감은 좀 많이 무거웠다. 그 때 어렵게 구했던 방이 빗소리가 바퀴벌레 소리로 들리던 바로 그 방이었다.
외로웠다. 억지로 관계를 맺는 듯 해 보이는 가식적인 대학생들의 만남이 스스러웠다. 난생 처음 만나는 선배들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힘들었고, 동기 수십 명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위해서 하는 과장된 액션들이 보기 싫었다. 더군다나 그 오바질이란 것들은, 나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장기와 재주를 부리는 것들이었기에 나는 질투와 무력감을 함께 느꼈다. 저 인간들은 어떻게 저런 잡기와 성적을 함께 유지할 수 이었지? 그와 더불어 입학 전 모임에서 겨우 말을 텄던 몇몇은, 개학과 동시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종강한 것이다. 수업시간표가 남들과는 다소 달랐고, 컴퓨터가 없었다는 것도 상당한 이유였다. 나는 내부적·외부적 이유들로 인해서 효과적으로 고립되었다.
그 여름의 어느 날, 자우림의 앨범을 샀다. 그리고 한동안 하루 종일 그 곡들을 들었었다. 그 곡들은 내 기억에, 그 여름의 힘든 시기에 달린 태그와 같은 것들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꿈의 택배편”.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가 서너 달의 지독한 인내 끝에 무너졌지만, 그 때 난 아직도 스스로 먼저 다가 갈만큼 용기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것이 그리 비겁한 짓이었을까. 그 날, 그 자우림 3집 테이프를 사러 버스타고 15분이나 걸리는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 옆에 있는 음반가게에 갔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우연히 과친구들 한 무리를 만나 식당에 함께 들어갔었다. 아직도 아주 뼈아프게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친구들이 미칠 듯이 부러웠었던 것이. 단지 그들은 외롭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풍족하고 여유로워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은, 딱 거기까지만 기억이 난다.
하악, 감동도 재미도 없는 씁쓸했던 기억이다. 왜 이 노래가 기억이 났는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 쓰고 싶었던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빈곤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앞서 이야기했던 내가 외로웠던 이유들을 모두 뒤집어야 한다. 나는 빈곤했기 때문에 외로웠다. 하루 저녁, 만 원을 뿜빠이 해서 내야했던 동기들과의 술자리에 가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던 이유, 부모님께 대학교 들어간 큰아들 컴퓨터 한 대 사 달라고 우길 수 없었던 이유, 그 고립되었던 시간 동안 외로움을 떨쳐 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그리고 내 부모님이 빈곤했기 때문이었다. 지나친 빈곤은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상처이니까. 그 때 날 지탱해 준 것은 어떤 의미에서 뽕이었다. 넌 이제 성인이야, 네 앞가림은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라는 달콤한 속삭임. 세상은 그 헛된 용기들을 도둑질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것 아닐까.
나는 그 때를 스스로의 인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준비해 나가는 시간이라 여기며, 빈곤 속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할 만큼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아니 없는 행복을 자주 가공해 가며, 살아갔다. 하루는 밤늦게 과외를 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뉘였다. 문득 관악구청 앞에서 절망했던 5월 어느 날의 해질녘이 떠올라, 이제 누울 자리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며 보람 속에 잠이 들었다. 오늘 난, 그 잠자리가 떠올라 그 불쌍한 젊은이를 동정하며 눈물을 훔친다. 그 젊은이는, 나도 저 옷을 입어보고 싶어, 나도 새로 나온 저 핸드폰을 써 보고 싶어, 나도 저 음식점에서 다들 맛있다는 어떤 메뉘를 먹어보고 싶어, 그런 욕심들을 마음에서 하나씩 죽여 갔다. 행복은 물질적인 충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속삭임들은 또한 얼마나 달콤한가. 이제는 내가 정말로 새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차피 못 살걸 알고 포기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죽었으니까 상관은 없다.
그런 생활은 단속적으로 반복되어, 2007년의 어느 날, 나는 그 때보다 해발고도 70m 높은 또 다른 방을 빌려 몸을 누이고 있었다. 2000년, 나 같이 극단의 빈곤 선 바로 위에 있었던 젊은이들은 완전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아마 10%가 조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며칠 전 그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12139085&code=940702)는, 그리고 거기 달린 현실감 있는 많은 의견들은 처절한 절규였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진짜 기사였다. 똥이 질질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사실만을 기술한 기사가 이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는 것은, 사회가 이미 매우 극적인 상황이 되었다는 뜻이다. 극의 절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만, 그 젊은이들의 부모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최후에는 징벌을 받는 악역을 맡은 자들이다. 내가 말하는 그들은 내가 빈곤에 고통 받고 있는 동안 가장 열렬히 투기에 뛰어들었던 자들이다. 그 뿐만 아니다. 그들은 내가 인정하는, 특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들을 형편없이 비웃었고, 자본이라는 신이 역사하시는 몰상식과, 법 위에 서 있는 힘의 전횡에 열광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것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동시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죽거나 고통 받는 것 따위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고려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던 자들이다. 나 같은 대대로 돈 없는 것들이,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결혼과 출산의 축복을 포기한 채, 붙어있는 목숨에 감사해하며, 근근이라도 살아있는 것이, 대체 그들과 무슨 상관이었느냔 말이다. 나는 그들이 빚을 떠안고 몰락하기를 정화수 떠 놓고 빌고 앉아있지는 않아도, 그들의 비참한 몰락을 비웃으며 보아 줄 용의는 있다. 대체 그들이 투자에 실패하고 일가족이 비탄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꿈의 택배편”은 나에게 외로움뿐 만이 아니라, 외로움과 빈곤을 함께 떠올리게 해 준다.
2011년 4월 8일 금요일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2학년 1학기 교양수업으로 나는 동아시아 문명의 사적 전개라는 수업을 들었다. 금요일 오후 수업이었으므로 전체 16강 중에, 첫 수업, 중간고사, 기말고사, 휴일 겹치는 거 빼고 하니까 11강인가 12강인가가 남았다. 그 중 8시간 중국사, 나머지 한일월 한 주씩. 이렇게 수업을 했다. 아, 중국사의 비중이 엄청나구나, 그것을 배웠다. 그 다음 3학년 1학기에는 외대 교수님께서 출강하신 교양 아랍어 수업을 들었고, 그 다다음 학기에는 개관 일본사, 그 다음에는 중화민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1학년 때는 문화인류학을 듣기도 했었네. 내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수업이었지만, 배우고 싶었고, 실재로 재미있었고, 또 그 때가 아니면 결코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결과는 보통이었다. 전공과목들과 별 차이 없는 점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개관 일본사는 평균보다 좀 많이 떨어지게 받았다. 일반 교양과목이 아니라 동양사학과 핵심교양과목이라서 그랬는가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존나 재미있었거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전인적 교양에 한 발작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선택과목의 자유도가 높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습량이 많았지만, 전반적인 지식의 범위는 꽤 넓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학의 공기는, 춥다고 창문 닫아 놓은 겨울철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공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스스로 박식하다고 여겼던 내가 아는 수준이란, 단지 그 세계의 베이스일 뿐이었다. 내가 전공으로 선택한 지구에 대한 이해를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은 대학 입학 전부터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은 그것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기회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조금 한눈을 팔면서, 내가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하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수업들을 찾아 들었다.
사실에 대한 지식, 원리에 대한 이해, 합리적인 사고방식, 선입견과 반대되는 사실을 마주쳤을 때 가져야할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것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인문·사회·자연·예술 모든 측면을 망라한) 세상을 바라보는 오직 그 사람만의 관점. 이런 것들이 바로 전인적 교양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추에 대한 기호, 선·악에 대한 판별은 개성의 문제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므로 제외했다. 그리고 이런 전인적 교양에 덧붙여, 혹은 더불어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사회인이 완성되고, 이에 추가로 행동하는 용기가 더해지면, 그 때야말로 그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치기 어렸지만,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었다. 인문대 수업을 들으면서 전혀 생소한 방법론들을 접할 때도,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이 이질적인 요소들이 수렴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지금 역시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 때보다는 많이 게을러졌고, 사실 시간이 지난만큼 쌓인 것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학점 잘 주는 수업을 골라 듣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았다. 수강편람을 뒤지며 수업을 찾을 때, 누구 수업이 재미있다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 교수가 학점을 잘 준다고 하니 그 수업을 듣겠다는 말에는 언짢게 반응했었다. 비례물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포카페이스가 아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려했지만, 정색하는 내 표정을 상대는 분명히 봤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앞서 말한 그 단 한 부분에서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학점좆망가능”이라는 경고는 무섭지도 않았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고, 그래서 나는 굶어야 할 만큼 돈이 없었지만, 그런데도 심지어 행복했었다.
언론을 통해 보이는 지금 대학의 공기는, 내가 느꼈던 공기와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어느 학교에서건, 학생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자유는 학점과 스펙의 경쟁뿐인 듯하다. 대한민국은 빚을 강요함으로서 전 국민을 거대자본권력에게 인신적으로 종속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국민들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 얻어내자마자, 그 자유로 빚을 내어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자본에게 가져다 바쳤다. 빚을 내는 순간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현재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 빚을 진 사람은 정말로 노예가 된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학자금 융자 빚과는 관계없이, 이미 미래가 자본권력에 손에 저당 잡혔다. 그들이 채권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할 자유 따위는 이미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전인적 교양교육을 강요할 수 있는가? 기성세대가? 그럴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내가 이명박에게 주는 경멸을 보낸다. 단 지금의 대학생들은 용기라는 고귀한 가치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나와 내 또래는 배울 수 없었던 그 용기라는 가치 말이다.
또 다시 최고수준의 이공계 학생이 자살했다. 올해 들어서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만 벌써 네 번째다. 징벌적 등록금제 때문에 생긴 심리적 압박이 그 원인이라고 하는데에, 동의한다.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학점으로 사람들 들들 볶으면, 전인적 교양교육은 불가능하다. 물론 대학의 존재 가치에서 전인적 교양인을 양성하는 측면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하고, 전적으로 전문적인 기능인을 양성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 지점에서는 논리를 맞추겠지만, 그렇다면 대학과 직업학교는 어떻게 다르며, 직업인을 육성하는데 드는 비용을 왜 기업이 아닌 가계가 부담하느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다음 질문이다. 징벌적 등록금을 도입한 사람을 과연 교육자로 볼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현명한 채권자는 채무자들에게 자신이 주인임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채무자들을 경쟁시킬 뿐이다. 그 대학교의 총장이라는 서남표라는 작자도, 채권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 역시 다른 대학총장들과 경쟁을 하는 채무자에 불과하다. 채권자가 왜 경쟁을 하겠는가? 대가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따라서 총장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교육자라는 것은 의복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공기업에 낙하산을 타고 가면 경영자가 될 것 아닌가. 옷을 갈아입는다고 채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경쟁이라지만 도라는 게 있다. 점수나 등수는 어쨌든 한 개 스칼라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혹은 요새 유행하는 말로는, 모든 비용이나 편익을 표현할 수 없다. 잔인한 학점·등록금 경쟁을 붙여 학교 평가등수가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그 향상된 어떤 가상의 지표는 그 경쟁 때문에 작아져 버린 학생들의 행복도는 포함하고 있지 않은 지표이다. 여기에서 매우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학교 평가등수 상승이라는 이익은 총장에게 가고, 행복도의 하락이라는 손실은 학생에게 돌아간다. 요새는 그 말도 유행하데. “이익의 사유화, 손일의 사회화”라고.
어떤 문제에서 고려하지 않는 변수라는 말은, 그것이 실재로는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전인적 교양에 한 발작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선택과목의 자유도가 높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습량이 많았지만, 전반적인 지식의 범위는 꽤 넓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학의 공기는, 춥다고 창문 닫아 놓은 겨울철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공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스스로 박식하다고 여겼던 내가 아는 수준이란, 단지 그 세계의 베이스일 뿐이었다. 내가 전공으로 선택한 지구에 대한 이해를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은 대학 입학 전부터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은 그것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기회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조금 한눈을 팔면서, 내가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하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수업들을 찾아 들었다.
사실에 대한 지식, 원리에 대한 이해, 합리적인 사고방식, 선입견과 반대되는 사실을 마주쳤을 때 가져야할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것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인문·사회·자연·예술 모든 측면을 망라한) 세상을 바라보는 오직 그 사람만의 관점. 이런 것들이 바로 전인적 교양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추에 대한 기호, 선·악에 대한 판별은 개성의 문제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므로 제외했다. 그리고 이런 전인적 교양에 덧붙여, 혹은 더불어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사회인이 완성되고, 이에 추가로 행동하는 용기가 더해지면, 그 때야말로 그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치기 어렸지만,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었다. 인문대 수업을 들으면서 전혀 생소한 방법론들을 접할 때도,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이 이질적인 요소들이 수렴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지금 역시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 때보다는 많이 게을러졌고, 사실 시간이 지난만큼 쌓인 것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학점 잘 주는 수업을 골라 듣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았다. 수강편람을 뒤지며 수업을 찾을 때, 누구 수업이 재미있다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 교수가 학점을 잘 준다고 하니 그 수업을 듣겠다는 말에는 언짢게 반응했었다. 비례물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포카페이스가 아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려했지만, 정색하는 내 표정을 상대는 분명히 봤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앞서 말한 그 단 한 부분에서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학점좆망가능”이라는 경고는 무섭지도 않았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고, 그래서 나는 굶어야 할 만큼 돈이 없었지만, 그런데도 심지어 행복했었다.
언론을 통해 보이는 지금 대학의 공기는, 내가 느꼈던 공기와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어느 학교에서건, 학생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자유는 학점과 스펙의 경쟁뿐인 듯하다. 대한민국은 빚을 강요함으로서 전 국민을 거대자본권력에게 인신적으로 종속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국민들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 얻어내자마자, 그 자유로 빚을 내어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자본에게 가져다 바쳤다. 빚을 내는 순간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현재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 빚을 진 사람은 정말로 노예가 된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학자금 융자 빚과는 관계없이, 이미 미래가 자본권력에 손에 저당 잡혔다. 그들이 채권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할 자유 따위는 이미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전인적 교양교육을 강요할 수 있는가? 기성세대가? 그럴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내가 이명박에게 주는 경멸을 보낸다. 단 지금의 대학생들은 용기라는 고귀한 가치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나와 내 또래는 배울 수 없었던 그 용기라는 가치 말이다.
또 다시 최고수준의 이공계 학생이 자살했다. 올해 들어서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만 벌써 네 번째다. 징벌적 등록금제 때문에 생긴 심리적 압박이 그 원인이라고 하는데에, 동의한다.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학점으로 사람들 들들 볶으면, 전인적 교양교육은 불가능하다. 물론 대학의 존재 가치에서 전인적 교양인을 양성하는 측면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하고, 전적으로 전문적인 기능인을 양성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 지점에서는 논리를 맞추겠지만, 그렇다면 대학과 직업학교는 어떻게 다르며, 직업인을 육성하는데 드는 비용을 왜 기업이 아닌 가계가 부담하느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다음 질문이다. 징벌적 등록금을 도입한 사람을 과연 교육자로 볼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현명한 채권자는 채무자들에게 자신이 주인임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채무자들을 경쟁시킬 뿐이다. 그 대학교의 총장이라는 서남표라는 작자도, 채권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 역시 다른 대학총장들과 경쟁을 하는 채무자에 불과하다. 채권자가 왜 경쟁을 하겠는가? 대가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따라서 총장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교육자라는 것은 의복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공기업에 낙하산을 타고 가면 경영자가 될 것 아닌가. 옷을 갈아입는다고 채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경쟁이라지만 도라는 게 있다. 점수나 등수는 어쨌든 한 개 스칼라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혹은 요새 유행하는 말로는, 모든 비용이나 편익을 표현할 수 없다. 잔인한 학점·등록금 경쟁을 붙여 학교 평가등수가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그 향상된 어떤 가상의 지표는 그 경쟁 때문에 작아져 버린 학생들의 행복도는 포함하고 있지 않은 지표이다. 여기에서 매우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학교 평가등수 상승이라는 이익은 총장에게 가고, 행복도의 하락이라는 손실은 학생에게 돌아간다. 요새는 그 말도 유행하데. “이익의 사유화, 손일의 사회화”라고.
어떤 문제에서 고려하지 않는 변수라는 말은, 그것이 실재로는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2011년 3월 23일 수요일
사람의 능력
어떤 사람을 더러 능력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평을 가끔 들을 때가 있다. 능력.
인간의 능력을 제한하는 요소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신체적인 능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유전자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결정되고, 사회적인 인간관계 역시 어릴 적에는 거주 지역,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상당부분이 결정된다. 그리고 재산의 상속이 있다. 여기까지가 기본 베이스고, 그에 더하여 게으름·부지런함, 신중한가 즉각적인가, 인색한가 방탕한가, 자폐끼가 있는가 푼수끼가 있는가 따위의 개인적인 성향이 나머지 부분들을 결정한다. 요즘에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 아이의 제로 베이스는 부모의 교양이라고.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자기의 능력이고, 어디까지가 부모를 잘 만난 덕일까. 세상의 많은 모순들의 근원은,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 있다. 어쩌면 모든 모순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어떤 인간도 그 둘이 분리되어서 평가될 수 없다. 원래부터 클래스가 달랐다는 말. 무한경쟁·무한책임·적자생존·약육강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차라리 위안을 주는 말이다.
최근 능력이 대비되는 두 분을 봤다. 두 분 다 같은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국회의원이었던 한 분은 무혐의로 결정이 났고, 다른 한 사람은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먼저 번의 사람은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능력, 혹은 죄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능력자였고, 불행히도 두번째 사람은 그런 능력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있다. 부자아빠 거지아빠 열풍이 나라를 휩쓸던 시기였다. 그 열풍이 몰아치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부동산 폭등의 진원지에서 새로 주택을 구입하는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그만큼 큰 재미를 보지 못했거나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는 두 층위가 있다. 관대한 층과 서든데쓰 층이다. 관대한 층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경쟁 보다는 담합을 한다. 그것이 장려된다. 한 두번의 실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 동안은 쉬면서 취미를 즐기고 특기를 가다듬을 수 있다.
그 아래에 서든데쓰 층이 있다. 이들에게는 연대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연대는 실정법 상의 범죄이거나, 경쟁에서의 탈락 둘 중의 하나이다. 이들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나 패배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들은 쉴 수 없다. 더 나쁜 조건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 경쟁을 이긴 자들에게는 경쟁한 시간만큼의 생존이라는 망극한 댓가가 주어진다. 그리고 이제는 태어날 때부터 관대한 층, 서든데쓰 층이 결정되어 있다. 드문 역전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것을 더러 아직 우리 사회가 계층간 출입이 일어나는 건전한 사회라는 증거라고 하는 이도 있고, 그게 뉴스거리가 되는게 이미 우리 사회가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이라는 게 있다. 법이라고도 하더라. 그 규칙 어디에도 관대한 층과 서든데쓰층을 구별하라는 말은 없다. 공평하다. 법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지 않던가. 어디에 관대한 층이 있고, 서든데쓰 층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관직을 통해서 자신의 음주 뺑소니 치사 같은 죄를 씼을 기회가 서든데쓰 층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보면서 배운다. 나에게는 추상같은 규칙인데 그 위에 빽과 힘이라는 게 존재하더라는 것을. 이제는 사람들이 그 힘과 빽을 사람의 능력이라 부르더라.
1월 말 쯤에 쓰다가 정리가 되지 않아 놓아 두다가, 김형을 보고 마음에 스치는 바가 있어 급하게 나머지를 체웠다.
인간의 능력을 제한하는 요소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신체적인 능력은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유전자에 의해서 많은 부분이 결정되고, 사회적인 인간관계 역시 어릴 적에는 거주 지역,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상당부분이 결정된다. 그리고 재산의 상속이 있다. 여기까지가 기본 베이스고, 그에 더하여 게으름·부지런함, 신중한가 즉각적인가, 인색한가 방탕한가, 자폐끼가 있는가 푼수끼가 있는가 따위의 개인적인 성향이 나머지 부분들을 결정한다. 요즘에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 아이의 제로 베이스는 부모의 교양이라고.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자기의 능력이고, 어디까지가 부모를 잘 만난 덕일까. 세상의 많은 모순들의 근원은,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이 있다. 어쩌면 모든 모순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어떤 인간도 그 둘이 분리되어서 평가될 수 없다. 원래부터 클래스가 달랐다는 말. 무한경쟁·무한책임·적자생존·약육강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차라리 위안을 주는 말이다.
최근 능력이 대비되는 두 분을 봤다. 두 분 다 같은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국회의원이었던 한 분은 무혐의로 결정이 났고, 다른 한 사람은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먼저 번의 사람은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능력, 혹은 죄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능력자였고, 불행히도 두번째 사람은 그런 능력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있다. 부자아빠 거지아빠 열풍이 나라를 휩쓸던 시기였다. 그 열풍이 몰아치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부동산 폭등의 진원지에서 새로 주택을 구입하는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더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은 그만큼 큰 재미를 보지 못했거나 큰 빚을 떠안게 되었다.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지금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는 두 층위가 있다. 관대한 층과 서든데쓰 층이다. 관대한 층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경쟁 보다는 담합을 한다. 그것이 장려된다. 한 두번의 실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 동안은 쉬면서 취미를 즐기고 특기를 가다듬을 수 있다.
그 아래에 서든데쓰 층이 있다. 이들에게는 연대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연대는 실정법 상의 범죄이거나, 경쟁에서의 탈락 둘 중의 하나이다. 이들에게는 단 한 번의 실수나 패배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들은 쉴 수 없다. 더 나쁜 조건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 경쟁을 이긴 자들에게는 경쟁한 시간만큼의 생존이라는 망극한 댓가가 주어진다. 그리고 이제는 태어날 때부터 관대한 층, 서든데쓰 층이 결정되어 있다. 드문 역전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것을 더러 아직 우리 사회가 계층간 출입이 일어나는 건전한 사회라는 증거라고 하는 이도 있고, 그게 뉴스거리가 되는게 이미 우리 사회가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이라는 게 있다. 법이라고도 하더라. 그 규칙 어디에도 관대한 층과 서든데쓰층을 구별하라는 말은 없다. 공평하다. 법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지 않던가. 어디에 관대한 층이 있고, 서든데쓰 층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관직을 통해서 자신의 음주 뺑소니 치사 같은 죄를 씼을 기회가 서든데쓰 층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보면서 배운다. 나에게는 추상같은 규칙인데 그 위에 빽과 힘이라는 게 존재하더라는 것을. 이제는 사람들이 그 힘과 빽을 사람의 능력이라 부르더라.
1월 말 쯤에 쓰다가 정리가 되지 않아 놓아 두다가, 김형을 보고 마음에 스치는 바가 있어 급하게 나머지를 체웠다.
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신뢰는 돈이나 힘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닐텐데.
몇 달의 시간차를 두고 두 분이 좀 믿어 달라고 읍소를 했다.
먼저 분은 국방장관이고,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5324
나중 분은 “공인” 스텐포드 출신 힙합가수이다.
http://www.vop.co.kr/A00000322395.html
(구글에서 찾아보니까 가장 먼저 나오는 매체들이 각각 요 둘이었다.)
흥정을 하면서 물건을 사야 할 때, 뻔히 보이는 구라를 치는 상인에게서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
당연하다.
허풍이 세고 구라를 잘 까거나, 핑계나 구실이 늘 따라 붙는 친구는 자동적으로 乙種이나 丙種으로 분류된다.
당연하다.
내가 자라온 문화적 배경에서는, 가정과 학교·지역사회들을 포함해서, 남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면, 남탓을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평소 믿을 만한 행실을 해 왔는지 되돌아 보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것이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국적과 계급을 막론하고, 이런 비슷한 인성 교육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걸걸한 목소리로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 라는 말을 남긴 노태우를 마지막으로, 믿음과 신뢰를 강요하는 세상은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찌질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믿으라고 협박을 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매우 유감스럽다.
천안함 검증단의 발표 내용은 거의 모든 언론에 기사화되지 못했다. 타구라의 학력이 사실로 입증되었지만, 그의 나머지 미심쩍은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발언들마저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타구라 사건을 통해 여론을 몰아가려는 냄새가 나는데, 아마도 정부의 “의견”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면, 그 의문이 아무리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열등감에 쩐 사회부적응자들의 불만”으로 매도할 수 있는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두환 때,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받아쓰기 기사질로 커리어를 시작한 기자들이 지금은 언론의 중추가 되었는데, 이들은 정부의 발표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공식적인 단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견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회에 불만있냐” ---요거는 걸작이다.
단계1. 첨예한 이성을 통한 비판적 사고의 결과가 정제된 언어로 표출된다.
단계2. “사회에 불만있냐?”
단계3. 비판을 제기한 사람의 인격이 사회부적응자로 매도된다.
여기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좀 더 이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면 상대는 좀 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단계4 (옵션). “억울하면 출세하든가.”
한 번 더 가면 빨갱이 드립이 나온다. 세번째에서 빨갱이 드립이 나오는 것은 굉장히 효과적인데, 직접적으로는 더 이상의 반론을 봉쇄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나는 벌써 두 번이나 관용을 배풀었다는 “나는 관대하다”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런 일이 두 세번 반복되면, 자기검열효과도 누릴 수 있다.
사회에 불만있냐, 억울하면 출세해라, 너 빨갱이냐, 넌 왜 그렇게 정치적이냐, 니 일이나 잘 하세요 따위의 상투는 “그 사회가 적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인가”에 대한 판단을 은폐하고, “그러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를 봉쇄한다. 더 나쁜 것은 제기된 문제의 원인을 (대체로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 개인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결론을 내자면 다음과 같다. 평소에 구라충만한 그런 새끼를 믿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거다. 그런데 요새 보니 그걸 못하게 하겠다는 거다. “나는 평소 해왔던 대로 계속 구라칠테니, 너흰 그런 줄 믿어. 그렇지 않을 거면 혼나게 될테야.” 그런 협박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살아있다. 생물학적 해결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의문의 제기를 막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먼저 분은 국방장관이고,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5324
나중 분은 “공인” 스텐포드 출신 힙합가수이다.
http://www.vop.co.kr/A00000322395.html
(구글에서 찾아보니까 가장 먼저 나오는 매체들이 각각 요 둘이었다.)
흥정을 하면서 물건을 사야 할 때, 뻔히 보이는 구라를 치는 상인에게서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
당연하다.
허풍이 세고 구라를 잘 까거나, 핑계나 구실이 늘 따라 붙는 친구는 자동적으로 乙種이나 丙種으로 분류된다.
당연하다.
내가 자라온 문화적 배경에서는, 가정과 학교·지역사회들을 포함해서, 남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면, 남탓을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평소 믿을 만한 행실을 해 왔는지 되돌아 보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것이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국적과 계급을 막론하고, 이런 비슷한 인성 교육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걸걸한 목소리로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 라는 말을 남긴 노태우를 마지막으로, 믿음과 신뢰를 강요하는 세상은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찌질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믿으라고 협박을 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매우 유감스럽다.
천안함 검증단의 발표 내용은 거의 모든 언론에 기사화되지 못했다. 타구라의 학력이 사실로 입증되었지만, 그의 나머지 미심쩍은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발언들마저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타구라 사건을 통해 여론을 몰아가려는 냄새가 나는데, 아마도 정부의 “의견”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면, 그 의문이 아무리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열등감에 쩐 사회부적응자들의 불만”으로 매도할 수 있는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두환 때,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받아쓰기 기사질로 커리어를 시작한 기자들이 지금은 언론의 중추가 되었는데, 이들은 정부의 발표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공식적인 단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견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회에 불만있냐” ---요거는 걸작이다.
단계1. 첨예한 이성을 통한 비판적 사고의 결과가 정제된 언어로 표출된다.
단계2. “사회에 불만있냐?”
단계3. 비판을 제기한 사람의 인격이 사회부적응자로 매도된다.
여기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좀 더 이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면 상대는 좀 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단계4 (옵션). “억울하면 출세하든가.”
한 번 더 가면 빨갱이 드립이 나온다. 세번째에서 빨갱이 드립이 나오는 것은 굉장히 효과적인데, 직접적으로는 더 이상의 반론을 봉쇄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나는 벌써 두 번이나 관용을 배풀었다는 “나는 관대하다”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런 일이 두 세번 반복되면, 자기검열효과도 누릴 수 있다.
사회에 불만있냐, 억울하면 출세해라, 너 빨갱이냐, 넌 왜 그렇게 정치적이냐, 니 일이나 잘 하세요 따위의 상투는 “그 사회가 적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인가”에 대한 판단을 은폐하고, “그러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를 봉쇄한다. 더 나쁜 것은 제기된 문제의 원인을 (대체로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 개인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결론을 내자면 다음과 같다. 평소에 구라충만한 그런 새끼를 믿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거다. 그런데 요새 보니 그걸 못하게 하겠다는 거다. “나는 평소 해왔던 대로 계속 구라칠테니, 너흰 그런 줄 믿어. 그렇지 않을 거면 혼나게 될테야.” 그런 협박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살아있다. 생물학적 해결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의문의 제기를 막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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