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9일 토요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2005년 연천 GP 총기난사사건

그 때 언론은 그 전 8년간의 좌파정부가 주적개념의 약화와 군기강해이를 불러 온 것이 그 원인이라 했다.

이제는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2011년 7월 6일 수요일

경제효과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그 경제효과가 20조원이 될 것이란다. 너무 큰 돈이다. 감이 안온다. per Capita로 환산하자. 남한 인구 대충 5천만 = 5 곱하기 10의 7승. 20조원= 2 곱하기 10의 13승. 나누면, 0.4 곱하기 10의 6승 = 40만원. 앞으로 올림픽까지 7년. 이자 쳐서 한 해에 5만원. 한국인의 한 해 근로시간 2500시간. 시간당 20원. 아. 얼마 안되네. 천만 비정규직으로 한정할 경우 시급 100원.

G20회의 경제효과 정부발표대로라면 400조. 아까의 20배. 두당 800만원. 1달러 1200원으로 계산 시 6667 달러. 향후 3년 간, 국민소득 2222달러 증가. 국민소득이 20000달러에서 제자리이므로, 실질 성장률은 -11%?

가계부채 1000조 시대. 아까의 50배. 두당 2000만원. 4인가구 기준 8000만 원. 연리 5% 적용 시 하루에 0.13356/1000 씩 불어나므로, 2만원의 0.13356배= 2670원. 4인가족 기준 하루 이자만 10680원부담. 하루 8시간 노동할 경우 가장의 시급에서 1336원이 이자로 지출. 은행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하루에 이자만 1336억원.

이자거치 만기가 다가오므로 원금도 함께 상환해야 함. 지금 원리합계 8000만원을 향후 10년동안 연리 5%를 적용해 상환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한 해에 1051만원씩을 상환해야 한다. 한달에 87만 6천원, 하루에 28800원이고, 8시간 일할 경우 시급에서 3600원이 이자로 지출된다. 15년이라고 가정해도, 일년에 818만원, 한달에 68만 2천원, 하루에 22400원, 시급에서 2800원씩이 이자로 나간다. 15년 동안. (방정식 풀이가 만만치 않군) 어쨌든 복리의 마술.

G20의 부풀릴대로 부풀린 경제효과를 짜장면 그릇으로 환산하던 노예방송 KBS이 문득 생각이 나서, 그렇다면 나는 시급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하는 발상이 떠올라, 나눗셈을 해 보았다. 맨 마지막의 원금 상환은 좀 복잡했다. 1계미분방정식을 풀어야 했는데, 초등함수가 아닌 함수가 등장해서 계산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2011년 7월 3일 일요일

잡담

1. 자려고 술을 먹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단게 땡기네. 누네띠네 같은 그런 맛.

2. 오늘은 생각보다 한시간 늦게 시계가 가고 있었다. 기분이 내내 좋았다.

3. 누구는 도둑같이 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가보다. 그래 10·26!

2011년 7월 1일 금요일

씬꿰떼레와 용호마을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블로그를 쉬었다.

지난 주말에는 이탈리아 리구리아에 휴가차 갔다 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유럽과 북미에서 리구리아는 인기 있는 관광지였다. 지중해와 아펜니노 산맥 사이에 있는 이유로 바닷가는 바로 절벽으로 이어지고, 작은 마을들이 절벽 위에 혹은 갯바위 뒤 후미진 곳에 점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 중에서 특별히 다섯 개 어촌이 유명하며, 이를 씬꿰떼레(Cinque Terre)라고 부른다. 지난 주말에는 거기에 갔다 왔다.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바위 절벽을 배경으로 좁은 골목과 역시 폭 좁은 너덧 층짜리 집들과 골목을 가로질러 머리 위로 걸쳐있는 빨랫줄과 어느 골목을 지나면 갑자기 나오는 조금 넓은 광장과 그 옆의 성당, 그리고 푸른 지중해의 바다. 지중해 마을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채워주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마을들을 돌아다녔었다. 다음 마을로 걸어갈 때는 깎아지른듯한 계곡을 개간해서 만든 포도밭을 지나갔고, 바닷가에 도착해서는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길 수 있었다.

휴가는 모든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그곳에서 본 풍광은 인상적이었다.



2002년인가 3년의 어느 벚꽃이 피는 계절, 나는 부산 용호마을에 있었다. 부산에서 한참을 살아가면서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용호마을. 아니다. 중2 때 한 번 야외수업 비슷한 것을 하면서 이기대에 갔을 때, 그 마을을 지나쳤을 것이다. 용호마을은 나병 촌이었다. 그래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다. 그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들어보지 못했다.

용호동 131번 종점 근처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산 숲으로 들어가 잠시 고갯길을 넘나 싶더니, 바다와 함께 계곡의 품에 안긴 서글픈 회색 마을이 보였다. 드문드문 벚나무가 창 밖으로 지나갔고, 시멘트벽 사이로 난 길을 굽이쳐 내려가자, 오륙도가 눈앞에 보이는 마을 광장 종점에 버스가 도착했다.

한참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이미 주민이주가 마무리단계로 접어든 때였나 보다. 거의 다가 빈집이었다. 나병 촌이라면 연상되는 양계장도 있었다. 이미 닭은 없고, 닭똥 냄새만 강하게 나고 있었다. 마을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우연히 평생 잊지 못한 장면을 목격했다. 마을 가운에 있는 성당에서, 흰 망토를 걸친 소년들이 뛰어나와 다른 편 골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이승과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진 종교적 복장과, 사람이 떠나 비어가는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적막감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역설적인 것 같기도 했다.

바닷가, 게딱지 같이 붙은 작은 집들, 좁은 골목, 성당. 씬꿰떼레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을 부산에서 보았었다. 용호마을의 집들이 좀 더 알록달록하게 색칠만 되어 있었다면, 지중해의 유명한 휴양지와 꽤 비슷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용호마을은 그 수년 후 지도 상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가 오륙도를 굽어보고 있다. 용호마을에 켜켜이 내려앉았을 나병 인들의 서글픔, 목 좋은 갯바위를 찾아 들렀을 낚시꾼들의 설렘, 좀 더 가꾸었다면 꽤 괜찮은 관광지가 될 가능성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옛 도시의 기억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건축물을 올리는 제로 그라운드 식 뉴타운 형 개발이 여기서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올라가고 있는 고층 건물들은, 솔직히 강간범의 좆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 구역을 정복했어라며 뽐내는 남성계의 덤프트럭이랄까. 이해되지 않는 바는, 그 흉측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자체 관료와 건축자본이다. 낮은 건물들 사이에 혼자 삐죽이 솟은 건물은 아무리 봐도 예쁘거나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균형도 조화도 없는 그런 건조물을 돈 들여 짓는 것도, 허가를 내 주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형편없는 그 안에서의 삶의 질 역시 차차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더욱 안 좋은 것은 부산의 경우이다. 이제는 해운대를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주상복합들은 해운대를 부산의 다른 곳과 분리했을 뿐 아니라, 해운대의 조망권을 서울의 부자에게 가져다 바친 꼴이 되었다. 부산지역 경기는 계속 내리막인데, 부동산만은 열기가 식질 않으니 그 돈은 다들 누구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들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