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4일 토요일

無題

왜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가? 베스트셀러는 그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온 다음에 읽는 법이라고.

아직 좀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 하지만 나도 이제 벼루어 두고 있던 책을 읽을 때가 슬슬 오는 것 같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내가 좀 취미가 고약해서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꼴 보는 것을 至樂으로 삼는다.

그 책은 비유하자면, 왜 레밍들이 절벽으로 뛰어드는지, 레밍의 관점에서 서술된 책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그 책의 진가는 몇 년 전 그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을 때 발현된 것이 아니다,

지금 혹은 몇 년 후에 잔치의 뒷처리가 끝난 후에야 빛이나기 시작할 것 같다.

그 책의 내용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비슷하다면 말이다.

이렇게 한 발짝 비켜서면, 세상은 호기심과 사건의 절정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언제까지 주변에서 맴돌기만 할 것인가?

이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점차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은하수를 건너는 것은 견우인가 직녀인가?

낚는 제목이다.

은하수가 잘 보이는 계절은 여름이다. 즉, 지구가 태양과 은하 중심 사이에 온다. 그래야 태양 반대쪽을 볼 때, 그러니까 밤에, 은하수가 잘 보일 것이다. 태양계 행성의 공전궤도면은 은하수 평면에 대하여 약 6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적도와 은하가 만나는 곳은 독수리자리(알타이르가 있는 곳)라니까 심플하게 말해서 여름에 달이 은하수를 건널 수 있다. 황도와 백도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여름에 달이 은하수를 지날 때는 보름달 즈음일 것이다. 태양과 마찬가지로 달 역시 천정에서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므로, 달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은하수를 건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달이 밝으면 은하수가 잘 안보인다.

견우와 직녀 중에 서쪽에 있는 것이 직녀성이므로 (천문학 시간에는 베가라고 배웠다. 0등급을 정의하는데 쓰였다고..), 애인 집에 달을 타고 찾아가는 것은 직녀가 된다.

은하수를 건너는 반달 쪽배는, 봄이나 가을이 되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쪽배는 보통 배들이 그러하듯 현에 평행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못하고, 현에 수직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것이다. 마치 배가 가라앉거나 떠오르듯이. 이건 달이  남북으로 공전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천왕성까지 가면 비슷한게 보일지 모르겠다.

문제는 직녀성이나 견우성이나 황도 근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직녀성 근처로 달이 오는 것을 볼 수 없다. 세차운동이 황도를 변화시키는가 싶었는데, 안그렇다. 좀 아쉽네. 더하여 직녀성은 12000년 전에는 북극성이었다고-_-;;

베가 항목을 좀 읽어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베가가 매우 빨리 회전하는 항성이고, 그 회전축의 방향은 거의 지구를 향해 있다고. 얼마나 빨리 회전하냐면 주기가 12시간 반인데, 7%만 더 빨리 회전하면 원심력 때문에 별이 부서진다고 하더라. 더하여 빠른 회전때문에 베가는 넙적둥글한 모양이고, 표면의 중력가속도가 위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표면 온도 또한 다르다고. 극쪽이 더 뜨겁고, 적도는 덜 뜨겁다고 한다. 베가 주위를 둘러싼 콰이퍼 벨트 비슷한 거에는 목성만한 행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후덜덜. 알타이르 역시 엄청 빨리 회전하는 별이라고 한다.



요새는 길거리에서 처맞을까 겁나서 뭔 말을 못하겠다. 이렇게 얌전한 블로깅이나 하다가, 텍큐 없어지기 전에 이사 공지를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

이끼

다음에 들어가서 이끼를 다시 봤다. 거의 1년 반만에 다시 읽었지만, 감동은 여전했다. 단, 끝을 알고 보는 거라 긴장은 좀 덜했던 것 같다.

간혹 웹툰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양영순의 《1001》과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를 추천해왔다. 그리고 단편으로는 《구로막차 오뎅 한 개피》를 추천했었다. 그런데 이끼를 읽고 난 다음부터는 윤태호의 《이끼》가 장편 추천목록에 포함되었다.

나름 뽑아 본 명대사들인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다.

펼쳐두기..


이끼는 뭐랄까 충격적이었다. 인물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펄떡이는 인물들에 빠져 본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인물들은 개성있고 강렬했으며, 그들의 충돌은 치열하고, 처연했다.

그리고 작품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 현실과의 긴장. 후기에서 작가는 지나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는 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것 역시 또 다른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정답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크라잉게임을 하는 그 때부터,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다. 그것을 부인하는 자와 이용하는 자, 그리고 속는 자가 있다. 과거로부터 배울 의무는 모두가 짊어지는 것이다. 누구에 대한 책임이고 의무인가? 미래에 대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끼의 영화판이 나온다는데, 감독이 좀 걱정이긴 하지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