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들어가서 이끼를 다시 봤다. 거의 1년 반만에 다시 읽었지만, 감동은 여전했다. 단, 끝을 알고 보는 거라 긴장은 좀 덜했던 것 같다.
간혹 웹툰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양영순의 《1001》과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를 추천해왔다. 그리고 단편으로는 《구로막차 오뎅 한 개피》를 추천했었다. 그런데 이끼를 읽고 난 다음부터는 윤태호의 《이끼》가 장편 추천목록에 포함되었다.
나름 뽑아 본 명대사들인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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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류해국, 3화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그 이상의 적대감을 느꼈을 때, 나는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 하지 못하는 소심남 또는 좆병진이다. 이런 대사를 날리는 류해국이 멋있어 보였다. 내 느낌과는 별도로 이 대사에는 모든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말귀가 있으니 이러는 거 아냐”---“확 처넣기 전에 입다물고 있어”--- 류해국·형사 29화
류해국이 부당한 사건에 항의하면서 나눈 대화의 회고이다. 말도 안되는 불공평에 너무 익숙해진 것 아닌가 한다.
“너도 젊어 새끼야.”--- 류해국, 39화
박민욱이 류해국에게 '고마워♡'했다는 (베스트 리플에 따르면) 그 대사이다. 검사가 되면 나이에 관계 없이 영감님 소리를 듣게 되는가보다. 농담이고, 앞의 대사와 함께 회고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요 두 대사는 외워 두었다가 나중에 써먹어야 되겠다.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민욱 47화
류해국이 박민욱에게 무릎을 꿇는다. 두번째로 《이끼》를 보았을 때, 박민욱이 새롭게 보였다.
“토착민을 이길 공권력따윈 없소.”--- 박민욱 57화
전편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토착민을 이길 공권력 따위는 없다. 성문화된 준칙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이 공권력이라면, 나는 박민욱의 말대로 그런 것을 본 경험이 매우 적은 것 같다.
“구원들은 얻으셨습니까.”--- 류목형 63화
류목형이 고초를 겪고 기도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도원 동료들에게 물었다. 어쩌면 이끼의 주제의식을 가장 함축한 대사인지도 모르겠다. 양심을 팔아서, 미래를 팔아서, 자식을 팔아서, 구원들 얻으셨는지.
이끼는 뭐랄까 충격적이었다. 인물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펄떡이는 인물들에 빠져 본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인물들은 개성있고 강렬했으며, 그들의 충돌은 치열하고, 처연했다.
그리고 작품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 현실과의 긴장. 후기에서 작가는 지나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는 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것 역시 또 다른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정답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크라잉게임을 하는 그 때부터,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다. 그것을 부인하는 자와 이용하는 자, 그리고 속는 자가 있다. 과거로부터 배울 의무는 모두가 짊어지는 것이다. 누구에 대한 책임이고 의무인가? 미래에 대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끼의 영화판이 나온다는데, 감독이 좀 걱정이긴 하지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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