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1491》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책방의 서가에서 《1491》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자문했다. 거의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읽고 배우자. 그래서 샀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닿은 것은 1492년이다.

서문과 에필로그 및 코다를 뺀 이 책의 본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 1부는 콜럼버스의 도래 이후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났던 종말론적 인구감소현상에 대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유럽으로 납치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17세기 초반 뉴잉글랜드 초기 정착 시기의 한 인디언이, 돌아온 고향에서 보았던 충격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마을이 폐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골이 뒹굴고 있었다. 비단 그의 고향 뿐만 아니라 연안에 수백 킬로미터에 걸져 있던 그의 출신 세력, 그 연합세력, 그 연합세력의 적대세력의 마을들이 모두 그렇게 폐허가 되었고, 그 자신도 결국에는 그의 동포를 몰살시켰던 그 “전염병”으로 죽게 된다. 다음에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은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에서 약 한 세기 정도 먼저 일어났던 장면이다. 피사로와 싸우던 잉카인들이 갑자기 황제부터 병으로 쓰러져 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정복은 쉬워졌다. 전염병에 의한 인구의 감소는 예전부터 지적되던 내용이지만, 근래의 연구에서는 그 파국적이었던 인구감소 추정규모가 이전에 비하여 훨씬 더 커지고 있다. 약 95~97% 정도의 원주민이 전염병으로 죽었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에는 콜럼버스의 도래 이전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한 공동체의 인구가 20분의 1 또는 30분의 1로 줄어들게 되면, 사회는 붕괴된다.

하지만 어떻게 전염병으로 인구의 대부분이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무시무시한던 중세 유럽의 흑사병도, 많이 잡아봐야 겨우 인구의 3분의 1 밖에는 처치하지 못했지 않는가? 20분의 19, 30분의 29가 죽었다는 것은 오바 아닌가? 내가 알고 있던 설명은 이렇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에서 가축화된 동물이 가지고 있던 병원체로부터 발전한 전염병에 대한 항체를 “전혀” 가지지 못했다. 그들은 가축화 이전에 베링해협을 건넜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그런데 베링해협을 건넜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오대호부터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유전적으로 거의 다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라시아-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가장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이다. 17세기 러시아가 모피를 찾아 동진할 때, 이들 역시 전염병으로 인한 엄청난 인구의 감소를 경험했다. 접촉은 필연적으로 전염병의 창궐을 낳을 수 밖에 없었고, 어떤 수를 썼더라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생물학적인 결론이다. 전염병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천연두, 홍역 등의 전염병의 쓰나미가 이 수년을 간격으로 한 세기 넘게 아메리카를 덮친다. 맨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콜럼버스가 열어재친 대륙간의 종 이동으로 어떤 종은 크게 성공하고, 어떤 종은 크게 그 수가 줄었다. 피해를 입은 종 중에 대표는 아마 호모 샤피엔스가 아닐까 한다. 약 20%의 개체가 병으로 죽었으니까.

자, 원래 인구가 그렇게 많았다면, 그들은 분명히 상당히 고차원의 문명을 이루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문명은 어떻게 발전해왔던가? 그 과정은 유라시아와 비교해 어떻게 다른가? 제 2부는 이 부분을 다룬다. 2부는 근래에 밝혀지고 있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로 완전히 도배되어있다시피 하다. 먼저 아메리카로의 인류 이주에 대한 큰 그림이 근래에 와서 바뀌고 있음을 지적한다. 연구자들 중에는 이제 아메리카에 클로비스 문명 이전에 먼저 이주해 온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다음에는 잉카문명의 기원이 해양문명이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 놓았다. 야생식물을 작물화하여 농경이 시작되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가축화가 진행되고,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통치 체계가 발전하고, 무기가 만들어지고, 기록을 위한 문자가 발명되고, 이것이 우리가 유라시아에서 생각하는 문명의 시발이다. 하지만 안데스와 태평양 사이의 극 건조지대에서는 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건조지대를 흐르는 강을 따라 만들어진 좁은 녹지에 살던 사람들이 바다에서 멸치(엔쵸비)를 잡는다. 멸치를 많이 잡기 위한 그물을 만들기 위해 면화를 작물화 하고 상류에서 재배한다. 이것으로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했다. 노르테 치코에서 발견된 이 유적이 만들어 질 때,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있었다. 태평양에서 안데스에 이르는 지역은 겨우 100 킬로미터 사이에서는 고도변화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환경과 생태계가 병존하고 있다. 대역별로 상이한 대역 사이에 교역이 있었고, 이 교역을 통해서 해안에서 발생한 문명이 안데스로 전파되었다. 페루의 엔쵸비 먹는 유적과 잉카 유적에서 나타나는 문양의 모티브가 유사하다는 점이 문명의 전파를 암시한다고 한다.

안데스의 잉카문명은 거의 완전히 고립되어 발전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마야 문명과의 교류도 없었던 것 같다. 유일한 예외는 마야로부터 옥수수가 전래된 것이다. 그런데 옥수수는 다른 작물과는 좀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옥수수는 그 야생종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종은, 지금의 옥수수와는 좀 많이 다르게 생겼다. 멕시코의 경사지에서 성공적으로 농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밀파라는 밭 형식을 발명했다. 여러 작물을 함께 키워서 서로 필요한 원소를 교환하게 하는 방법이다. 안데스의 가파른 비탈에서는 햇빛을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는 계단식 밭이 발달했다. 그렇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 발전한 문명이, 왜, 유라시안 스텐다드인 바퀴는 발명 하지 않았지? 적어도 멕시코 남부의 마야인들은 3000년 전에는 바퀴를 알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장난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걸 더 크게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포장된 도로가 없고 수레를 끌 가축이 없다면, 곳곳에 웅덩이가 생기는 열대우림기후 환경에서 수레는 별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작가의 대답이다. 그리고 그 간단해 보이는 기술의 진보가 항상 당연한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 중국에서 배워 오기 전까지 볏이 달린 쟁기를 “몰랐다.” 중국에서 볏 달린 쟁기는 갑골문에 등장한다. 책에는 기원전 3세기에 발명되었다고 인용했다.

제 3부에서는 아메리카의, 생각보다 밀집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환경에 준 영향을 되짚어 본다. 북미에 살던 사람들은 숲은 매해 가을 태워서 잡초를 제거하고, 다음에 나는 풀들이 더 잘 자라게 했다. 초기 정착민들은 불타오르는 숲을 놀라운 눈으로 보았다고 한다. 다음에 나오는 아마존 이야기는 완전히 놀라움 그 자체였다. 피사로를 따라 안데스에 들어갔다가 아마존을 따라 나온 사람이 있다. 그는 그가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본 바를 기록으로 남겼으나, 오랜시간 사장되었다가 겨우 한 세기 전에야 출간되었다. 그는 아마존에서 빽빽하게 밀집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발전된 문명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기록했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구라로 여기고 무시한다. 아마존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그 중에, 아마존의 토양은 그 위의 삼림에 비하면 턱없이 연약하기 때문에 화전식 농업 이상으로 오래 경작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정주를 필요로하는 문명이 발전할 수 없었다는 생태적한계 이론이 있다. 열대우림기후에서는 나무든 뼈든 보존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도기파편 정도가 보존이 된다. 밀림지역에 고고학이 잘 적용되지 않는 이유이다. 최근에는 유전자 생물학과 토양학이 적용된다. 생물학은 아마존에서 유실수가 작물화되었음을 제시한다. 책에 나오는 과일들의 이름이 익숙치가 않아서 다 까먹었는데, 여하튼 굉장히 많은 수의 과일나무가 작물화되고, 관리되었다. 토양학은 아마존에서 테라프레타라고 하는 숯과 유기물, 그리고 도기파편이 풍부하게 포함된 토양을 발견했다. 자연적으로 생성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좀 많이 부자연스러운, 그런 흙이다. 실험을 통해서 농업에 매우 최적화되었음이 입증된 토양이다. 추산에 따라서는 아마존의 약 10%가 이러한 토양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보는 아마존이라는 숲 자체가 인간의 집중적인 관리와 개입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유실수의 작물화와 토양의 최적화는 아마도 현재는 거의 버려진 땅인 볼리비아 북동부 베니 지역과 브라질의 아크레 주에 살던 사람들이 개발한 것이 아닌가 한다. 거기에서는 거대한 흙 구조물들 수 백개가 산재하고 있음이 발견되었고, 약 500년 전에 버려진 것으로 연대추정이 된다.

놀라운 사실과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최신 연구의 놀라운 결론도 결론이지만, 그 연구의 발표 시기도 극 최근이었다. 2008년, 막 이런다. 2010년도 한 군데서 본 것 같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책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식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요약한 내용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거나, 그냥 아직 기억이 나는 내용들이다. 책은 잉카·마야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으며, 그 뉴잉글랜드 개척사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나 기존의 고대 4대문명에 더하여 올멕 문명과 페루 연안의 원시 잉카 문명을 문명의 발상지로 더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은 머리에 쏙쏙 박히는 내용이었다. 이 두 신대륙의 문명에 대한 개관을 서술한 책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관된 책이 몇 가지 떠올랐다. 먼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두 저작 《총·균·쇠》이다. 《총·균·쇠》에서 제시된 내용 중에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유라시아의 축은 횡축이고, 아메리카의 축은 종축이라는 것이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는 통찰이다. 실재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세부사항들은 정확이 다이아몬드의 지적과 일치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의 전신이 되는 와리와 티와나쿠 사이에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두 지역을 잇는 육로는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단 파나마운하 때문에 중간에 끊길 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다리안 밀림지대가 존나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 다리안 밀림지대는 김경진의 《데프콘》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한편 마야 문명이나 멕시코 고원지대의 테오티후아칸 문명이 리오그란데 강 이북으로 잘 전파되지도 않았다. 멕시코 남부에서 작물화된 옥수수만이 남북으로 전파되었다.

한편 총·균·쇠 중에 총에 실리는 무게는 감소된다. 사실 뉴잉글랜드에 침입하려 시도했던 유럽인들은 전염병으로 연안의 원주민들이 몰살당한 이후에나 처음으로 기지를 세울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총은 소음기에 불과했던 시절인 것이다. 남미에서는 좀 다른 살풍경이 연출되었는데, 대 학살 끝에 피사로에게 잡힌 잉카의 황제는 그 전 황제가 갑자기 죽었던 데다가 잉카라는 나라 자체가 황제에 대한 컬트적 숭배로 유지되고 있었던 탓에, 갑작스런 황제의 교체로 정비가 잘 안되었을 수 있다. 게다가 말은 잉카인들의 통신 속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대비를 잘 못했을 수도 있다.

단 균의 역할은 훨씬 중요해졌다. 유럽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상황에서도 전파되어 온 전염병은 원주민들을 몰살시켰다. 이후에 유럽인들은 원래부터 아마존에는 사람이 석기시대 상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애팔래치아 너머의 원주민들은 유목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현대의 유럽인들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 끔찍한 사태에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주장한다. 죄의식은 상속되지 않지만, 책임은 상속되기 때문이다는 표현은 한일관계 그리고 한월관계에 또는 친일파·독재 부역자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이 들린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책은 역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이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 여부가 문명의 성쇠를 결정한다.” 잉카 사람들은 엘니뇨에 시달렸다. 가끔 왕조의 교체가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아마존에서 생태적 한계 이론은 잘 적용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환경에 제한을 받아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서도 또한 환경에 부하를 최소화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러한 예는 안데스 산맥에 집중적인 계단식 밭을 개발한 와리 문명, 숲을 주기적으로 태워서 환경을 관리했던 북미 원주민의 경우, 그리고 밀파라고 하는 밭 양식을 발전시킨 남부 멕시코 원주민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란 거기에 살아야만, 거기서 하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진다. 환경과 지속가능하게 공생하는 이러한 방법들은 바로 토착민에 의해서 발명되고 발달해 온 것이다. 더 욕심을 부릴 수도 있다. 그 때는 앞서 말한 생태적 한계라는 철퇴를 맞게 된다. 《1491》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았지만, 환경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 금기와 제도적 장치와 정서적 규범이, 적용되는 기술과 함께 맞물려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먹고 튀라고 요약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미국식 농업이 가능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미래로부터 ISD 소송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상관있는 책은 주경철 교수 《문명과 바다》, 《대항해시대》이다. 이 두 책은 기본 내용은 비슷하나, 하나는 학술서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인이 보기에 편하게 재구성되어있다. 비록 전염병에 의한 몰살이 거의 대부분의 원주민 사망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유럽인들의 도래 이후에 있었던 지극히 악마적인 원주민들에 대한 학대가 있었음을 까먹으면 안됨을 일깨운다. 또한 아마존의 생태적 한계 이론이 기반하고 있는 아마존의 화전 농업이 사실은 유럽인들에 의해 쇠도끼가 전래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이들 책에서도 또 다른 관점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콜럼버스 이후의 대륙간에 있었던 생물종의 교류에 대하여 더 폭 넓은 사실들이 수록되어 있다. 《1491》의 저자는 신작 《1493》에서 이 주제를 또 다시 다룰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방문 이후에 원주민들에 의한 환경 개입이 없어지면서, 북미 대륙은 재삼림화 되고, 아마존·마야의 많은 부분도 더 빽빽한 숲으로 덮이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혹시 이렇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는 완전히 내 생각인데, 아메리카 대륙의 재삼림화가, 17세기에 맹위를 떨친 소빙하기를 초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일단 이 두 사건은 시기적으로 일치해 보인다. 그리고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가 북·남미의 삼림으로 고정되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마운더 극소기라는, 태양 흑점활동의 약화와 그에 따른 복사에너지의 약화를, 소빙하기의 원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 감소가 매우 적다는 점에서 늘 좀 의심스러웠다. 만약 아메리카의 재삼림화가 그 소빙하기의 이유라면, 인간의 활동에 의한 전 지구적 기후변동의 역사가, 산업혁명에서 콜럼버스까지 약 3세기 가량 연장된다. 또한 엄청난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병원균이 대서양을 건너자, 유럽에서는 멀쩡한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산 채로 불태워졌고, 동아시아에서는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왕조가 바뀌었다. 추워진 기후로 살기 힘들게 된 유라시아의 농민들을 구해 준 것은 아메리카에서 병으로 죽어 간 사람들이 유품으로 남긴 옥수수와 감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