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행성간 전쟁의 승패

행성간 종족끼리 싸우면, 누가 유리할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타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본진에 미네랄이 한 칸만 더 가까이 있거나 멀거나 한 작은 차이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따라서 행성간 종족 전쟁에서 승리하는 종족은 멀티를 뜨지 않는 한, 보다 큰 행성에서 진화해 나온 종족일 확률이 높다.

행성이 크면, 그 행성의 종족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도 많아질 것이다. 표면적이 넓어지니까. 인류가 태양계에 있는 암석 및 얼음 덩어리(행성이나 위성)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은 여기까지이다. 안타깝게도 태양계에서는 지구가 가장 큰 암석행성이기 때문에, 지구보다 더 큰 암석 덩어리가 어떤 지구조활동을 보일지는 이론적인 예상만 할 수 있다.

지구에서는 인류 같은 지적 능력을 가진 종족이 진화되어 나올 때까지 약 45억 년이 걸렸다. 이 시간이 다른 행성에서는 좀 줄어들 수는 있을까? 지적 생명체가 진화를 통해 나오기 위한 조건으로 당장 생각나는 것들은 진화 속도와 다양성이다. 진화속도는 세대가 바뀌는 속도이므로 그것은 종에 달린 문제이지, 그 생명을 품는 행성이 주는 영향은 적은 것 같다. 그러나 다양성은 행성의 환경과 직접 관련된 문제이다.

지구에서 생명의 다양성이 급속히 빨라지게 된 것은 겨우 5억 4300만 년 전의 일이다. 그 전 지구의 환경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바다는 생명을 품고 있었지만 균질했고, 육지에는 알고 있는 한 아무 생명도 없었다. 식물에 덮히지 않은 육지를 상상해 본다면, 그 경관이 지금의 극단적으로 건조한 사막과 화성의 한 중간 쯤 되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육지가 거의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 지구가 보이는 다양한 경관은, 생물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나는 이것을 `경관공진화(景觀共進化)'라고 부르고 싶다. 식물 없는 상태에서 지표면은, 위·경도 좌표마다 주어지는, 표고와 암석의 종류로 특정할 수 있었다. 토양은 식물이 있어야 만들어 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다에서 진화해 왔던 식물은 육지로 올라와 그 표면을 뒤덮었고, 동물은 식물이 만들어 놓은 환경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특수화했다. 식물은 동물의 파괴적인 영향에 맞서 또 다시 진화했다. 그러한 공진화의 꼭지점에 열대우림이 있다. 열대우림의 남벌은 비단 탄소저장소의 감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의 감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은, 영장류가 숲에서 가지를 잡아 쥐고, 열매를 따먹고, 나무 구멍에서 애벌레들을 후벼파기 위해 진화한 특수한 형태이다.

육지를 뒤덮은 식물은 지표면에서 풍화의 양상을 바꾼다. 화산이 대기중에 뿌려놓은 이산화탄소는 식물에 의해 고정된다. 그러나 이들이 퇴적층으로 완전히 고정되기 전까지는 아직 완전히 대기에서 제거되지 않는다. 나무가 죽으면 탄소는 대기로 돌아간다. 식물은 무엇보다 강력한 산화제인 산소를 만들어 뿌렸다. 식물과 거기 공생하는 미생물이 만드는 유기산과 이산화탄소는 산도를 변화시켜 풍화를 촉진시키고, 킬레이트 리간드를 만들고, 표면 거칠기가 변화하고 일사량이 줄어들면서 광물들이 물에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이산화탄소는 이전보다 더 빨리 고정된다. 지역적으로도 물이 순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사태 같은 작용에 저항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형과 생물의 상호작용에 의해 지역적, 광역적, 전구적 경관이 다듬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작용을 `경관공진화'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자. 지구보다 큰 암석형 행성은 보다 다양한 형태의 경관 공진화가 가능한가? 그래서 더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진화해 나올 여건을 더 빨리 마련해 주는가?

먼저 표고. 요즘은 참 과학이 발달해서 오만 걸 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암석행성이 지탱할 수 있는 산의 높이에 한계가 있는가? 당연히 있다. 암석의 강도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지구보다 큰 어떤 행성이, 이른바 왕지구라고 하자, 규산염 광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암석의 강도는 지구와 비슷한 정도일 것인데, 중력가속도가 지구보다 크므로, 산의 높이가 낮아져야 산 아래의 암석이 그 산의 압력을 지탱할 수 있다. 따라서 큰 행성일수록 표고차는 작아진다. 지구의 가장 높은 산은 9000 m이지만 금성의 맥스웰 산은 11000 m이고, 더 작은 화성의 올림포스 산은 24000 m이다. 비록 이러한 관계가 달까지는 잘 적용되지 않지만, 행성이 충분히 크고, 지사의 영향이 완전히 제거된다면, 앞서의 가정은 잘 적용될 것이다. 왕지구는 지구보다 표고차는 작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경관의 다양성은 지구보다 적을 수 있다.

두번째는 판구조이다. 행성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열을 내부에 감싸쥘 수 있으므로 더 오래동안 지표 표정연기를 지속할 수 있다. 왕지구는 분명 지구보다 더 많은 열을 가지고 있고, 지질학적으로 역동적일 것이다. 그러나 왕지구들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판구조활동을 보일까? 인류는 아직 지구 외에서 판구조활동을 보이는 행성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왕지구가 어떤 판구조활동을 보일지는 잘 모른다. 이론적인 연구들은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를 보여주는데, 내부의 가열찬 에너지 덕에 더 활발한 판구조활동을 보일거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강한 중력때문에 지각이 더 강해져서(왜?) 지각이 판으로 쪼개지지 않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아직까지 행성의 크기와 판구조 사이의 관계를 한 칼에 정리하는 이론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단만 판구조활동은 휘발성 분자들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행성의 대기가 막가파식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를 예방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행성 사냥꾼들의 소위 거주가능영역이라는 주장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한 관점은 행성을 단지 수동적인 암석덩어리로 볼 뿐이기 때문이다. 행성은 암석 덩어리 그 이상이다. 행성이 생명을 품을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는 그 지질학적 역동성과 그 엔진의 지속시간을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세번째는 수륙분포이다. 사실 수륙분포는 판구조론과 강력하게 관련될 것 같은데, 먼저 액화된 대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구조활동이 그 행성의 대기를 안정되게 관리해야 하고, 반대로 광물에 포함되어 암석으로 들어간 물이나 이산화탄소같은 성분들은 암석의 강도를 약화시켜 판구조활동이 일어나기 쉽게 한다. 지구는 상당히 넓은 부분이 바다로 덮혀있는데, 사실 육지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성장한 부분이다. 가장 가라앉기 힘든 가벼운 암석원소들이 지구의 가장 바깥부분에 찌꺼기 같이 모여 쌓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왕지구가 판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면, 같은 원리로 육지가 서서히 자라왔을 것이다. 육지의 면적은 그 행성의 지질학적 나이를 가리키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왕지구가 지적 생명체를 키웠다면, 그 행성의 수륙분포는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행성의 판구조가 내부의 뜨거운 열 때문에 지구보다 활발하다면, 육지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했을 수 있다. 지구에서 식물의 상륙에 육지의 면적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굉장히 우연한 일이 그 행성에서는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 행성의 생물이 식물 비슷한 거랑 동물 비슷한 식으로 진화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뭐라고 쓸 말이 없다.

그러나 어떤 왕지구에 일단 동물형 지적생명체가 발생한다면, 그들은 지구의 인류보다 더 많은 자원을 힘들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그 최고 수준이 지구에서 나타나는 바에 비하여 더 높을 것이다. 누누히 이야기 하지만, 문명이란 소비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종류, 그것을 생산하는 방법, 분배하는 제도, 소비하는 염치에 따라서 그 색깔이 정해진다. 그 피라미드의 높이는 제공 가능한 물질과 에너지의 양에 따라 결정되는다. 만약 지구의 어떤 대도시 상공에 지름 10 km짜리 비행원반이 정지한다면, 그 원반을 만든 자들은 지구보다 큰 행성에서 진화해온 생명체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생각의 확장이다. 우주의 어딘가에는, 한 태양계가 두 개 이상의, 판구조활동을 하는 암석형 행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또는 판구조 활동을 보이는 얼음 행성이거나. 소행성 충돌의 파편을 통해서 양 행성간에 생명체, 적어도 유전물질의 교환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태양계의 행성들은 어쩌면 훨씬 빠른 진화를 보여줄지 모른다.

가장 극적인 경우라면, 쌍행성계이다. 달은 지구에 비하여 매우 큰 위성인데, 그런 정도를 넘어 행성급의 두 천체가 상당히 가까운 거리를 쌍성처럼 서로 회전하고 있는 경우이다. 혹은 궤도가 상당히 이지러진 타원이라면, 한 쪽이 달 정도의 크기라도 충분히 기조력을 통해 행성 내부의 동력을 오랜기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벌충되지?) 그렇다면 그 두 행성간에는 정말로 극적인 생명의 교류가 있지 않을까? 밤에는 태풍 소용돌이가 흐릿하게 보이는 푸르스름한 빛의 달이 뜨고, 가끔은 화석이 박힌 퇴적암질 운석이 떨어지는 어떤 행성에 가 보고 싶다.



지난 주 읽었던 《작전명 충무》에, 전투기 이륙 중량이 18,XXX 톤이라는 오타가 있다는 글을 읽고 망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2012년 9월 26일 수요일

해를 구하다

아플레톤 방정식이라는 공식이 있다. 전파가 전리층 안을 진행할 때, 굴절률을 표현하는 식이다. 수 년동안 그 공식을 기초로 하여 연구를 계속 진행해 왔었다. 그렇지만 그 동안 한 번도 아플레톤 방정식을 뉴턴의 방정식으로부터 직접 스스로 완전히 유도해보지는 못했다. 교과서에 충분히 그 유도과정이 잘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그 유도 과정들이 편광을 서술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3차원에서 세 개의 방정식을 연립해서 푸는 방법인데, 편광을 두 축에 투영한 전기장의 비로 나타내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릇 편광은 벡터로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방성 매질에서 전자기파의 전파는 고유값-고유벡터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정석에 천착하여 아플레톤 방정식을 유도해보고 싶었다.

보통 무선전화 정도 주파수 대역의 전파는 전리층을 거의 무리없이 통과한다. 다만 이 경우에는, 지구 자기장의 영향 때문에, 전리층이 마치 지학시간에 배우는 방해석 같은 복굴절을 일으킨다. 이 때 앞서거니 뒷서거니 통과하는 두 광선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원형편광을 가진다. 자기장 안에 있는 전리층의 유전률 텐서와 전자기파의 진행방향 벡터로부터, 굴절률과 함께 원형편광을 나타내는 깔끔한 벡터를 유도해 내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에 이 문제를 붙잡았던 것이 3년 전이었다. 처음에는 완전 무식하게 그냥 쎄리 3행3열 행렬의 고유방정식의 해를 쌩으로 구하고 그랬는데, 어쩌다가 고유값까지는 정확하게 나왔다. 식 하나 정리하는데 A4용지 막 두 면 나오고 그런 삽질의 결과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식한데다 미쳤다 싶다. 그런데 이걸로 고유벡터를 구하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그렇게 접어놓고 한 1년? 그러다가 최근 순수하게 고유값-고유벡터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유전율 텐서를 대각화하는 좌표계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해결의 핵심 포인트였다.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고유값을 구할 수 있었다. 고유값의 근사치로부터 고유벡터를 구하는 것이 잘 될까 싶었는데, 고유벡터의 의미를 기하학적으로 생각해보니, 그 역시 극한을 통해서 구해졌다. 이렇게 구해진 고유벡터를 원래의 좌표계로 변환하자, 깔끔하게 원형 편광을 지시하는 (0, +-i, 1)이 나왔다.

그냥 자랑하고 싶었다.

오늘은 그 동안 단순히 기하적으로만 고려해 오던 문제를, 스칼라 장과 그 구배를 이용한 벡터해석문제로 만들어 보았다. 사실 내 일은 아닌데, 상사가 시키면 어쨌든 해야 한다. 놀랍게도 그 결과 역시 의외로 깔끔하여, 사실은 좀 들떴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어떤 문제를 보다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조망하여 해결하는 일은, 항상 자극적이다.

2012년 6월 4일 월요일

先 클로비스 문화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오래된 구석기 문명으로 클로비스 문화가 알려져 있다.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낮아졌다. 그러자 얕은 바다였던 베링 해협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이제는 지협이 된 땅을 걸어서, 클로비스 문화를 만든 사람들이 아메리카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들은 알라스카에 머물다가, 동쪽의 로렌시아 빙상과 서쪽의 코디예라 빙상 사이의 통로를 통해 (또는 연안을 따라 배로)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나중에 클로비스 문화라고 이름 붙여질 유적들을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남긴다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빙상 사이의 통로가 열린 것은 13,000년 전이기 때문에 이 시기 이전에는 클로비스 문화를 비롯하여 일체의 유적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그 이전 시기 유적이 미국과 남미에서 발견된다. 최초에는, 이들 유적들에 대한 연대측정의 신뢰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 빙상 사이의 통로가 열리기 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클로비스 문화를 남긴 사람들이 베링 해협을 통해 건너왔다는 가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 유적들을 남긴 사람들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주장이 있어 왔다. 예전에 포스팅을 남겼던 《1491》에서는, 그런 유적들의 존재만 언급되었었다.

사실 베링해협 설이 공격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클로비스 석기와 비슷한 유물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이주해 왔을 시베리아나 빙상이 녹기 전까지 머물렀을 알라스카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만 년 전 프랑스와 이베리아 반도 일대에는 솔뤼트레 문화라는 구석기 문화가 꽃피고 있었다. 이 문화는 특별한 방법으로 얇게 가공된 뗀석기가 특징이다. 유명한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벽화를 남긴 사람들이기도 하다. 몇몇 학자들은 클로비스 석기와 솔뤼트레 석기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하지만 솔뤼트레 문화가 번성했던 프랑스·스페인에서 북아메리카까지는 수 천 킬로미터의 바다가 가로놓여있다. 어떻게 이들이 건너갔겠는가? 그리고 솔뤼트레 문화의 유물 중에는 해양활동에 관련된 것들이 나오지 않는다.

솔뤼트레 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한다. 빙하기의 최전성기 때 해빙은 비스카야 만부터 뉴펀들랜드까지 남하했다. 당시의 사람들은 해빙을 따라서, 지금의 에스키모들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다사자 따위를 사냥하면서 대서양을 건널 수 있었다. 또한 빙하기 당시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낮았기 때문에, 당시 바닷가에서 생활하던 솔뤼트레 문화 당시의 유적은 지금은 물에 잠겨있다. 따라서 해양생활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상승한 해수면에 유적이 잠기는 문제는 아메리카 대륙 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석기의 가공 방법 외의 유사한 특성이 북미의 유적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이주해 간 사람들이 솔뤼트레 문화의 일부만을 자신의 문화적으로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설에 대하여 지구과학자들은 난색을 표한다. 기후모델에 따르면 당시의 북대서양은 지금의 에스키모들이 사냥하는 지역과는 달리 생태적으로 매우 빈약했으리라고 한다. 원양의 생태계는, 풍부한 영양이 공급되는 근해와는 상당히 다른데다가 그 때는 지역에 따라서 온도가 10도 낮은 빙하기였다. 따라서 사냥을 통해 식량을 조달하면서 바다를 건너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빙하기가 극에 달했을 무렵에는 북미대륙의 빙상과 유럽의 빙상이 대서양으로 뻗어나가 연결되면서, 지금 남극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거대한 빙붕을 형성하였을 것이라는 논문도 찾아볼 수 있었다. 춤베르게 빙붕이론인데, 빙붕을 걸어서 건너는 일은 카약 같은 배를 타고 유빙이 떠다니는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안전할 수는 있었겠다. 그러나 이 빙붕이 실존했다 하더라도, 솔뤼트레 사람들이 생태학적으로 사막보다 빈약했을 빙붕을 100일 넘게 걸어서 건널 수 있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솔뤼트레 가설의 가장 큰 취약점은 유전학적 증거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아시아계라는 사실은 반론의 여지가 없이 명확하다. 미토콘드리아 디옥시리보핵산 검사에 따르면, 원주민중의 일부는 비록 좀 계통이 멀긴 하지만 하플로 군 X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플로 군 X는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 그렇다면 이 유전자가 솔뤼트레 인들의 아메리카 상륙 흔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근래의 논문들은 이 하플로군 X가 솔뤼트레 가설을 지지해 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한다.

솔뤼트레 가설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 기사는, 이 가설의 주창자인 데니스 스텐포드와 브루스 브레들리의 새로운 책을 소개하면서, 이 가설을 상당히 설득력 있는 가설로 묘사했지만, 좀 더 찾아본 영미권 자료들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로렌시아 빙상과 코리예라 빙상 사이의 회랑이 열리기 이전 시점으로 소급되는 유적들을 설명하는, 현재로서의 최선의 설명은, 회랑의 개통 이전에 사람들이 배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연안을 따라 이동해 들어갔다는 설명인 듯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클로비스 석기의 조상이랄 만한 석기의 흔적이 시베리아와 알라스카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결론을 내리는데 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2012년 5월 15일 화요일

벌과의 짧은 조우

며칠 전의 일이다. 퇴근하고 방에 들어와 보니 왠 벌 한 마리가 방 안을 맴돌고 있었다. 벌이란 위험한 존재이지 않는가. 나는 얼른 발코니 문을 열고 벌을 밖으로 유인하려 했다.

아, 그런데 이 벌이 한참 전부터 의자 위에 걸쳐놓았던 잠바 위에 앉더니, 접힌 후드 모자 주름 안으로 뽈뽈 기어 들어가는게 아닌가. 아, 이걸 어쩐다... 잠시 고민하다가 벌을 꺼내기 위해 후드 모자를 훽 제꼈다.

그런데 오 이럴 수가. 벌이 걸쳐 놓았던 잠바 주름 안에 둥지를 만들고 있었다. 허.. 그냥 지가 사는 둥지가 아니라, 새끼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주름 양쪽의 천을 벽을 삼고, 그 사이에 손가락 마디만한 둥지가 있었다. 그 둥지의 격벽은 흙을 물어 와 만들었고, 거의 완성되어 가는 그 벽 안 공간은 꽃가루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쌀알 만한 알이 하나 있었다. 꽃가루는 애벌래가 부화하면 먹을 양식인가보다.

벌은 이미 열어 놓았던 발코니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고, 나는 잽싸게 문을 닫았다. 벌이 들어오려고 애쓰는지, 탁 탁 하면서 문 유리에 뭔가 부딧히는 소리가 한동안 들렸다. 이미 옷의 모양이 무너졌기 때문에 벌 둥지 격벽은 개방되었으나, 아직 완전히 박살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 잠바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잠바를 그대로 밖에 놓아두었다. 혹시 그 벌이 미련을 가진다면 밖에서라도 둥지를 완성을 하기 바랐다. 그 때까지는 저녁해가 좀 남아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 부숴진 벌 집은 밖에 내 놓을 때의 상태 그대로였다. 벌은 둥지를 포기했는가보다. 자손을 위해 모든 자원을 투입해 만들었을 둥지가 실패로 끝났으니, 어쩌면 그 벌은 탈진해서 죽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벌 둥지를 방 안에 두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오늘은 오후 늦게 갑자기 비가 쏟아질 것 같아서 조금 일찍 들어왔다. 오늘도 웬 벌 한마리가 블라인드 위에 앉아 있었다. 아 진짜 이것들이... 이번에도 밖으로 유인해 날려버리려고 창문을 열고 옆에서 도발을 했는데, 이상하게 이 놈은 날아오르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 보니, 아마 기력이 다 쇠한 듯 했다. 광고지를 주워 그 위로 벌을 살살 옮긴 후에 조심스럽게 창 밖에 내 놓았는데, 잠시 뒤에 보니 어딘가 다시 구석으로 느릿느릿 기어 들어갔다. 녀석은 아마 거기서 짧았을 생을 마감하겠지.

며칠 전에, 둥지를 만들던 바로 그 벌이었을까? 그 놈은 내가 둥지를 본의 아니게 부숴버리면서 완전히 인생이 꼬였을 것이고, 오늘 본 이 놈은 곧 죽을 놈이다. 괜히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자기 전에 술을 좀 마셔야 될 것 같다.

2012년 5월 12일 토요일

전쟁, 평화, 전쟁

치세와 난세가 교대하고, 융성과 쇠락이 반복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가? 피터 터친의 《War and Peace and War》는 전근대 시대 농업문명권에서 펼쳐젔던 역사에 파장이 다른 세 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영어책을 읽고 말았다. 일단 변명부터 시작하자면, 이 책을 우연히 알게 된게 지난 여름이었는데, 이 책의 우리말 번역인 《제국의 탄생》이 나왔다는 것을 아마존에 주문하는 시점에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1. 책 내용 정리

세 주기

역사를 구성하는 세가지 주기를 저자인 피터 터친은 주장하고 있다. 약 천 년을 주기로 가지는 아싸비야(عصبية‎)주기, 수 세기에 걸쳐서 반복되는 영년주기(secular cycle), 그리고 대체로 두 세대를 통해 반복되는 부자(父子)주기가 그것이다. 아싸비야는 이 책의 핵심 생각이다. 아싸비야는 인간 사이의 연대를 의미한다. 아싸비야라는 개념은 14세기 북아프리카와 티무르 제국에서 활동했던 역사가인 이븐 할둔(ابن خلدون)이 그의 역작 《알무깟디마》(المقدّمة‎)(소개, 서설 정도의 뜻)에서 주장한 개념이다. 이븐 할둔에 따르면 아싸비야야 말로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실재적인 힘을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연대하는 인간집단만이 실재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사소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아싸비야의 'ㅆ'은 아싸라비아의 'ㅆ'과 다르다. 아싸라비아는 “아빠 사우디아라비아 갔다.”의 줄인말인데, 여기서의 'ㅆ'은 아랍어 자음의 'س'으로 보통의 'ㅅ'발음이고, 아싸비야의 'ㅆ'은 아랍어 자음의 'ص'로, 둔탁한 느낌이 드는 'ㅆ'소리이다. 입을 한 발쯤 내 밀고 ㅆㅂ 할 때의 소리랑 비슷한 것 같다.

삼라만상이 성주괴공의 주기를 윤회하듯이 아싸비야 역시 형성과 쇠퇴를 하게 된다. 아싸비야가 형성되는 조건으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초민족전선(metaethnic frontier)이다. 이 경계를 통해 우리와 느그가 구분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 사이의 결속력과 연대가 형성 발전하기 때문이다. 한 편 강한 아싸비야를 통해서 형성된 제국은 초민족전선을 그 제국의 중심지로부터 먼 곳으로 이동시킨다. 아싸비야는 더 이상 자극받지 못하고 점차 쇠퇴하게 된다.

그 다음 주기로 제시되는 것은 영년주기이다. 영년주기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말세다”라고 하는 상황의 주기적 도래를 설명한다. 전근대 농경문명에서 치세는, 토지가 사람 수에 비해 풍부한 시대이다. 사회는 번영을 누리고 인구가 증가한다. 그러나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공급초과에 따른 노동임금의 감소를 초래한다. 인구에 비해 토지는 부족하므로 지대가 상승한다. 토지는 증가하지 않는 반면 수요가 많아지므로 곡물의 가격은 상승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들은 농민의 삶이 고통스럽게 함과 동시에 지배계급으로 부를 이전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지배계급 역시 과잉재생산되기 때문에 이들의 삶의 질 역시 악화되고, 부족한 재화와 용역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투쟁에서 파벌이 형성된다. 위로는 엘리트간의 내전, 아래로는 갈 데까지 내몰린 농민들의 봉기. 더하여 토지를 가지지 못한 유민들의 비위생적인 거주환경은 역병의 창궐을 불러온다. 내전과 기아, 역병을 통해 인구의 공급과잉이 해소되면서 한 번의 영년주기가 마무리된다.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부자주기는 특히 쇠퇴국면에 있는 영년주기에 잘 나타나는데, 엘리트 파벌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전의 폭력성이 약 두 세대를 주기로 강약을 반복한다는 주장이다. 할어버지 대에 피비린내 나는 지독한 내전을 보고 자란 아버지 세대는 상대적으로 약한 폭력성을 보이는 반면, 아들 세대는 할아버지대의 잔혹함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또 다시 내전의 양상이 잔인해진다는 설명이다.


예시들

이 주장을 뒤바침하기 위하여 저자는 수많은 예시를 들이 붓는다. 아싸비야주기를 설명하는 데에는 초민족전선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예들을 보여준다. 킵차크 칸국 및 그의 승계국가들과의 투쟁을 통해 제정 러시아의 아싸비야를 형성하는 과정. 북미 인디언들과의 투쟁을 통해 미국의 아싸비야가 형성되는 과정, 골족과의 투쟁을 통해서 로마의 아싸비야가 형성되는 과정을 그 예시로 든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난 뒤 유럽에서 형성되었던 프랑크 왕국, 스페인, 독일제국, 비잔틴 제국의 형성을 또한 초민족전선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한다.

영년주기의 예시 역시 충분하다. 로마에서 반복된 네 번의 영년주기가 잘 분석되어 있다. 13-14세기 중세의 번영과 쇠락, 뒤이어 르네상스로 시작되고 종교전쟁으로 마무리된 두 영년주기가 프랑스와 영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있다. 부자주기의 예시들은 영년주기를 설명하는 동안 제시된다.


비합리적 인간

아싸비야는 인간 간의 상호 신뢰와 희생을 전재로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개체는 수 억 년에 걸쳐 치열하기 짝이 없는 경쟁을 통해 선택되고 연마된 냉철한 생존 머신이지 않는가? 그들이 어떻게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이타적 행동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아싸비야를 기초로 하여 역사를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시도는 허공에 좆질이 된다. 저자는 이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하는 것이다.

실재로는 이타적인 행동은 드문 현상이 아니다. 이 모순에 대한 가장 새로운 생물학적 대답은, “그 '자연스러운 선택'이 일어나는 단위는 개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포부터 군집에 이르는 모든 층위에서 자연스런 선택의 압력이 작용하며, 개체의 이타적인 행동은 이러한 틀에서 이해할 때, 개체의 생존과 모순되지 않는다.”이다.

이기적 인간 개체라는 구시대의 신화는 비단 생물학적 근거뿐만 아니라, 실험 경제학을 통해서도 도전받고 있다. 인간의 이타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여러 실험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가의 이타성을 드러내는 게임들은 피험자가 상반되는 두 유인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한 가지 유인은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이익이 돌아오는, 또는 최소한 손해를 보지는 않는 유인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피험자가 협력해야만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되 더 큰 이익이 돌아오는 유인이다. 이 때는 다른 피험자가 협력하지 않을 경우 손해를 보게 된다. 수인의 딜레마, 공유지의 비극이 모두 같은 조건에서 비롯된다.

많은 중학생들이 세상의 사람을 임마, 점마, 금마의 세 카테고리로 구분하듯이, 이타성을 기준으로 할 때 사람은 성인(saint), 속인(moralist), 악인(knave)의 세 분류로 구분될 수 있다. 성인은 무조건적인 이타성을 보이는 사람으로 약 2할 5푼 정도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악인은 반대로 무조적적인 이기성을 보이는 사람들로 역시 약 2할 5푼 정도의 사람들이 해당된다고 한다. 속인은 그 중간에 속하는 사람들인데 눈치를 보고 행동을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놀라운 점은 이 속인들 중에는 정의맨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은 자신의 자원을 소모하면서까지 악인을 응징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련의 실험들이 보여주는 바는, 정의맨이 존재할 때, 악인의 이기적 성향을 억누를 수 있고, 그결과 피험자군 모두가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인간 무리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 그것이 친족에서 끝난다면 역시나 제국의 탄생은 요원해진다. 한 개인이 밀접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또한 타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까지 헤아릴 수 있는 인간 집단의 최대 크기는 150명 정도라고 한다. 마을의 크기이다. 연대할 수 있는 인간 집단의 크기가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보는 사람도 우리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표시가 필요하고, 그런 이유에서 상징(symbol)이 생긴다. 아마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상징은 두발과 옷차림이었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곰과 호랑이를 원숭이나 팬더와 구분되는 자신들의 상징이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국가는 상징적 사고가 가장 발전된 형태이다.


불평등의 확대 모델

마태원리는 부익부 빈익빈의 기독교식, 혹은 서구식 표현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마태원리가 항상 작용하는 원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구가 적을 때에는, 지주가 스스로 자신의 토지를 모두 경작할 수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수익을 얻기 위해 무자산자에게 (비싼) 임금을 주고 노동을 구매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교환을 통해 부의 재분배가 일어난다. 윈-윈 게임이고, 요새 말로 블루오션이다. 과잉인구가 존재할 경우 노동의 교환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지주에게 수익의 대부분이 돌아가게 되며, 여러 이유로 최저생계조건 이상의 수익을 올리지 못한 자영농이 매각하는 토지를 간단히 구매하게 되면서 부의 집중이 심해진다. 제로썸 게임이고, 레드오션이다.


현대 세계로의 인신 (생산의 확대, 대중매체)

마지막으로 저자는 현재 지구에 있는 제국, 혹은 그 선구체로, 미국, 중국, 유럽, 러시아 네 개를 제시한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인가. 이것을 추측하기 위해서는 세개의 주기 이론을 현대사회에 그냥 적용시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전에 세개의 주기 이론이 현대사회에도 적용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현대는 융성국면에 있는가 쇠락국면에 있는가? 안타깝게도 여러 지표들은 현재가 쇠락국면임을 지시한다. 혹시나 농경사회와 현대사회의 차이가 이 국면을 뒤집을 수 있지 않을까?

전근대 농경사회와 현대산업사회를 구분하는 많은 요소 가운데서도, 아싸비야에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부분은 통신기술의 발달이다. 발전된 통신기술이 아싸비야의 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저자는 추적하고 싶어 하지만, 그 기술의 발달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나머지 예시 이상의 분석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2. 비판

여기까지가 책의 내용을 나름 정리해 본 것이다. 언뜻 보기만 해도 굉장히 설득력있는 주장이 체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부문에서 공격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납득하기 힘들었던 이유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뚯이다. 그 첫번째는 환경결정론과의 충돌이고, 두번째는 샘플링 편차이다.


환경결정론에 대한 도전

이 책은 문명의 흥망을 거의 완전히 내부동력학에 의하여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환경이 문명의 흥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과는 상당한 부분에서 상반된다. 실재로 책에는 두 부분에서 다이아몬드의 주장을 명시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첫번째 부분은 중국과 유럽이 완전히 다른 역사의 궤적을 그려온 사실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유럽은 한 번도 완전히 통일된 적이 없었다. 반대로 중국은 끊임없이 통일제국이 성립되었다. 다이아몬드는 이를 지리적인 차이로 설명한다. 유럽은 네 개의 큰 반도와 전지구적 대조산대의 일부가 육로를 통한 교통을 방해하고 있다. 반면 중국의 핵심지역은 광대한 평원지대로 거의 교통에 방해를 받지 않는다. 다이아몬드의 설명은 명쾌하고 직관적이다. 터친은 이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내어 놓는다. 중국에서 반복되는 대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아싸비야가 로마와는 달리 시간과 함께 고갈되지 않아왔음을 보여야 한다. 아싸비야의 원천은 초민족전선이고, 중국에서 그 전선은 북중국에 놓여있는 유목민족과의 경계선이다. 터친에 따르면 이 전선에서의 충돌은 아싸비야의 화수분이었다. 유럽과는 달리 이 전선은 크게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또한 지리적으로 연속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두번째로 터친이 다이아몬드와 각을 세우는 부분은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을 통해 볼 수 있는, 프랑스와 영국의 쇠락 국면의 시차이다. 프랑스 북부나 영국 남부에서 눈에 띄는 기후변화의 차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히 쇠락압력에 시달리고 있을 때, 영국은 지배계급의 불만을 프랑스라는 외부로 투사함으로써 내전의 막을 수 있었으나, 프랑스는 그러지 못했고 지배계급의 내전과 외부의 침략의 동시에 견뎌내야 했다. 100년이 넘는 외침에 저항하면서 프랑스는 (엄청난 인구감소의 댓가로) 내적 결속력을 회복했고, 영국군을 대륙에서 축출하면서 르네상스 황금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반면 영국에서 지배계급의 내전은 압력을 외부로 투사할 숨구멍이 막히면서 비로소 시작되었고, 그 결과 영년주기가 도버해협의 양쪽에서 위상차를 보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중국

만리장성은 과연 아싸비야의 원천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중국사는 완전히 큰 규모에서 아싸비야주기가 아니라 “胡-漢 인터랙션”이라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호-한 인터랙션이라는 것도 일정 정도의 주기성(약 두 왕조)을 가지는데, 그 주기는 아싸비야주기보다는 짫고 그 주기성의 동력 역시 다르다.

진나라가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전선이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초민족전선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한나라는 농민봉기에 의해서 세워졌다. 그 동기 중에 산시(陝西)성과 후베이성 사이의 문화적 갈등이 존재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최소한 초민족전선은 아니다. 무제 때 북방의 흉노와의 상호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한나라를 구성하는 농경민들의 아싸비야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키예프-카잔 전선에서 유목민에 저항하기 위해 러시아인들이 보여줬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그때 중국의 농민들은 병사로 편입되어, 비록 몇 번의 처절한 실패가 있었지만, 흉노를 정벌해 버렸다.

아마 몽골점령 이후 16세기까지 우크라이나 평원지대에서 벌어졌던 살육사태들과 가장 비슷한 예를 중국에서 고르자면 위진남북조 후기부터 오호십륙국시대일 것 같은데, 그 때도 상황은 사뭇 달랐다. 화북을 점령한 유목민들은 화북평원을 평원으로 두고 들어오는 농민들을 약탈하는 방법을 택하는 대신, 스스로가 한족(의 지배계급)화 되었다. 화북을 통일한 유목민 왕조는 이내 한화되어 버리고, 그러면 다른 유목민이 그 왕조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왕조를 새우고 한화되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이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수, 곧이어 이를 교대한 당의 창업군주들은 둘다 북방민족 출신이다. 수나라 양씨, 당나라 이씨는 둘 다 선비족 출신이다.

당을 계승한 송나라는 북방민족에 밀려 계속하여 남하하였으나, 그 와중에도 아싸비야가 자극받기는 커녕 조정은 계속해서 부패해 들어갔고, 결국은 몽골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만다. 몽골족의 흥기와 쇠퇴는 아싸비야주기로 설명되기에는 너무 급작스럽다.  통일 직전까지 몽골의 분열양상은 딴지일보에서 필독이 연재하는 테무진 투 더 칸에서 잘 볼 수 있다. 몽골족은 다시 몽골로 쫒겨난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만주족에 의해 점령되고 만다. 한족이 북방민족을 몰아내고 세운 왕조는 명나라이고, 명나라 역시 별로 아싸비야를 유지했던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동아시아에 걸쳐 있던 유목민족과 농경민족간의 경계는 적어도 중국 농경민족의 아싸비야를 길러내는 토양으로 작용하지는 못했다. 한족이 단 한번 성공적으로 이민족의 지배를 뿌리쳤던 명은 거기서 천 km는 떨어진 남중국에서 발원했다. 오히려 이 전선의 북쪽에 있던 유목민족들이야 말로 내부적 결속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그들이 중국 대륙을 점령하고 난 이후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버리고 한족화 되어버리고 말았고, 많은 경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하여 중국에도 유럽 못지 않는 지리적 경계가 있다는 터친의 주장에 대하여서도 태클을 걸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중국인을 포함한) 일반적인 동아시아인에게, 역사에 등장하는 중국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지리적 범위는, 현재의 세계지도가 보여주는 중국의 강역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칭하이 포함) 티베트, 위구르, 내몽고, 만주가 포함되지 않는다. 더하여 타이완과 위난, 구이저우, 광시는 아직 반 정도만 중국이고, 광둥, 푸젠 역시 처음부터 “역사적인” 중국의 일부는 아니었다. 이렇게 떼고 나면, 남아있는 전통적인 중국은, 중원이라 불리는, 매우 지리적으로 연속되어 있는 지역이다. 단 하나의 예외는 쓰촨분지가 되겠는데, 왜 이 지역이 중원에 대해 정치적인 독립성을 지니는 데에 그토록 주저해왔는가는, 좀 더 책을 찾아봐야 될 것 같다.



프랑스-영국, 조선-일본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있었던 쇠퇴국면의 시차는 기후변화와 같은 외부적 요인이 문명의 흥망을 결정한다는 주장을 공격하기에 매우 적절한 근거이다. 아마 터친이 맞을 것이다. 나는 영국·프랑스 역사도 잘 모르고, 터친이 제시한 증거가 틀린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영국과 프랑스의 위상차이는 기후 탓으로 설명할 수 없는게 맞아 보인다.

비슷한 위상차가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도 보인다는 점이 재미있다. 한반도는 한반도의 통일과 함께 신라에 의해 8세기 중반까지 융성기를 누리다가 10세기 초반까지 쇠퇴기를 겪는다. 다음에는 고려가 등장하여 12세기 초반까지 요·금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융성하는 기운을 보이다가 12세기동안 엘리트 내전·농민 봉기라는 전형적인 쇠퇴기를 보이고, 무신정권기와 원 침략기를 견뎌 내다가 14세기 후반에는 권문세족으로 상징되는 부의 양극화가 다시 나타나면서 내리막을 걷는다. 다음 번 상승기는 15세기에 조선의 건국과 함께 시작된다. 일본열도에서는 야마토시대 말기 (7세기 말) 정점을 찍고, 나라시대의 좀 혼란해 보이는 시기를 지나 헤이안 시대(794-1185)가 한 번의 영년 주기를 완성한다. 가마쿠라 시대는 13세기 말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다가 그 이후 16세기 중반까지 센고쿠 시대라고 불리는 꾸준한 혼란기를 겪는다. 일본의 경우에는 부자주기로 보이는 잛은 변동이 보이기도 한다. 15세기 초 무로마치막부 안정기가 그 시기이다.

위에서 본 관찰로부터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문명의 흥망에는 내적동력학의 영향과 함께 지리나 기후변화 같은 정적·동적 환경의 변수, 둘 다가 중요하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아싸비야 주기는 사실인가?

주기는 반복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 지점에서 만들어진 박동이 그 곳에서 다시 반복되지 않고, 대신 그 이웃한 곳으로 전달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주기가 아니라 자극의 전파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터친이 주장한 아싸비야주기는, 심지어 그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한 지역에서는 반복되지 않았다. 로마에서 고양된 아싸비야는 로마의 멸망과 함께 그 변경지역으로 옮아갔고, 다시 한 번 동쪽으로는 러시아 평원, 서쪽으로는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옮아갔다. 일종의 전파가 일어난 샘이다. 한 편 아싸비야의 한 주기가 끝난 이탈리아, 특히 그 중에서도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고갈된 아싸비야는 매우 오랜 시간동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아싸비야는 측정되기가 매우 힘든 양이다. 어느 곳의 역사가 잘 풀리고 있는 동안에는 아싸비야가 높아서 그렇고, 좆망테크 타고 있는 동안에는 아싸비야가 낮아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설명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전투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물질적이지 않되 승패에 중요한 역할을 미치는 변수를 측정하는 몇가지 방법과 그 성과들이 제시되었지만, 서로 충돌해 보지 않았던 두 문명 사이에서는 어떻게 그러한 변수를 측정할 수 있단 말이가? 결국은 삼국지 최고 무장이 누구인가 같은 헛된 싸움만 남게 될 것이다.

아싸비야가 가지는 또 다른 문제는, 아싸비야를 측정할 집단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주어진 문명권의 어떤 집단이 그 문명권의 아싸비야를 대표할 수 있는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엘리트 집단인가? 어느수준의 하급관리까지가 엘리트 집단에 포함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평민들의 결속력은 그 문명의 아싸비야를 결정하는 데 상관이 없는 요소인가? 아싸비야는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한 변수로 취급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온도나 압력과 같이 퉁계적인 양을 기술하기 위한 변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거니와, 그런 정의가 그리 쉽게 내려질 것 같아 보이는 성격의 양도 아니다.

한 편, 앞의 중국의 예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중국의 경우에는 아싸비야의 주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규칙적인 분열과 통일, 왕조 흥망의 주기에서 호-한 인터랙션 말고 또 다른 어떤 긴 흐름을 찾아 낼 수 있다면, 그것은 11세기 이후에 중국 문명를 선도하는 지역이 황하 유역에서 장강 하구 지역으로 옮겨갔다는 사실이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선도 지역이 광둥으로까지 남하한 단편적 증거가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증거들이 중국에서도 아싸비야의 주기가 있다는 사실을 뒤바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것은 유럽에서 보았던, 아싸비야의 전파와 비슷한 느낌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내가 마치 장기적인 아싸비야의 변화는 인정하는 것 같아 보여서 좀 더 변명을 해야 될 것 같다. 아싸비야는 주기성을 가지고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기 보다는, 한 곳에서 생긴 아싸비야가 주변으로 전파되는 모양을 보인다. 적어도 유럽과, 백 번 양보해서, 중국에서는. 중국과의 비교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는, 심지어 장기적으로 변동하는 아싸비야라는 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형성에 초민족전선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싸비야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등락을 도입하는 것 보다는, 문명의 중심지가 될 만한 최적지가 시간에 따라 서서히 이동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비단 기후의 변동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술의 변화, 그리고 그 기술에 의해 개발될 수 있는 자원의 “지리적 분포”가, 초민족전선에서 형성되는 인간사이의 결속력보다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한다.

더하여 초민족전선은 그 정의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편의에 따라 가져다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효용을 잃었다고 보이는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브랜드에 지나치게 심취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제국의 형성에 초민족전선이 필요하다면, 이집트, 페르시아, 잉카, 마야, 인도에서 제국들의 형성을 또한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보기에 초민족 전선이라는 것은 오히리 이들 (최초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원형제국”이 형성된 후 이들의 국가 구성원리의 전파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2차 전선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변방이었던 유럽에서는 잘 맞아 떨어지나, 다른 곳에서는 별로 그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 나의 썰

영년주기

터친의 이론에서 가장 탁월한 부분은 영년주기 이론이다. 영년주기이론을 뒷바침하는 수치들은 구체적인 숫자들(물건 값, 임금, 계급별 인구구성비율, 내전과 농민봉기의 정확한 시점)이었으며, 그 이론이 지시하는 바 역시 짧은 경제학 지식으로도 이해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을만큼 명쾌했다. 결정적으로 그 이론은 비단 유럽뿐만 아니라, 적어도 동아시아에도 역시 잘 적용되었다. 중국, 한국, 일본에서도 치세와 난세의 교대 양상은, 거의 완벽하게 영년주기의 이론을 따른다. 아싸비야주기라는 것에서 상상의 냄새가 많이 난다면, 영년주기 이론은 매우 사실적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계몽받은 느낌이다.

로마는 에트루리아인과의 투쟁, 중부 이탈리아 평정, 평민과 귀족의 투쟁이라는 한 주기를 귀족정 체제에서 보낸다. 골족과의 투쟁 (포에니 전쟁 포함), 시스알핀 골족 평정, 내전라는 다음 번 주기를 공화정 체제에서 보낸다. 영토 팽창과 함께 5현제로 대표되는 한 번의 영년주기를 약 2세기 동안 뛰고, 마지막 영년주기는 뚜렸한 상승기를 보이지는 않는다.

영년주기 이론은 농경문명권 어디에서나 적용되도록 설계되었다. 로마가 끝나고 난 뒤에 세워진 프랑크 제국은 메로빙거, 카롤링거 왕조가 각기 한 번씩의 영년주기를 상징한다. 오토대제의 즉위부터 시작된 중세성기는 흑사병으로 한 주기를 끝내고, 르네상스는 종교전쟁으로, 중상주의 시대는 혁명의 시대로 각기 자신의 주기를 마무리했다.

동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한 통일왕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영년주기이다. 양상은 한반도에서도 비슷해서 통일신라, 고려전기, 고려후기, 조선전기, 조선후기가 각기 영년주기를 보인다.

재미있는 부분은, 늘 영년주기 자체는 비슷하게 반복되면서, 그 주기를 대표하는 지배계급, 그들의 통치이념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진골귀족, 문벌귀족, 무신-권문세족, 훈구파, 사대부. 농경사회의 한계 때문에 인간에게 공급하는 물질과 에너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매 새로운 주기들은 그 이전 주기때 물질과 에너지를 분배하는 방법과 소비하는 염치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제도와 사상·도덕을 제시해 온 것이다. 도식화라는 것이 대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이러한 도식이 있으면, 대강을 이해하고, 새로운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이제는 인도의 역사를 좀 공부를 해서, 아싸비야주기 내지는 환경변화와 문명의 이동 같은 이론이 거기에도 적용되는지 확인을 해 보고 싶다.


현대사회로의 인신

터친은 농업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영년주기 이론을 현대사회에까지 적용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살펴보자. 우리가 전근대 농업사회라고 말하는 시기에도 끊임없는 기술발전이 있어왔고, 농업생산성은 꾸준히 도약해왔다. 기술이 발달하는 것은 기후가 온화해지거나, 영토가 팽창하는 것과 비슷하게 더 많은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과 일차적으로는 같은 말이다. 기술의 발달은 토지에서 더 많은 물질(농작물, 임산물, 광물)과 에너지(가축, 태양, 수력·풍력, 석탄·석유)를 인간이 사용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도록 했고, 이러한 일반적인 법칙은 산업혁명 이후에도 변화하지 않았다. 부가가치를 생산해 내는 토대가 농업사회에서는 거의 대부분 농토에 한정되어있었다고 한다면, 현대사회는 보다 추상적인 부분이 많아졌을 뿐 인간에게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일이 한계에 부딧히게 되었을 때, 문명의 쇠퇴가 시작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물질과 에너지의 공급이 끊어졌을 때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산업혁명이 바꾸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근복적으로 에너지 혁명이었다. 그 전까지 그저 일부 지역에서 난방용으로 사용되며 흩어졌던 태고의 태양에너지를,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기계적인 힘의 원천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힘을 통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개인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포함해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졌고 여러 번의 공황이 찾아왔지만, 20세기까지는 상승국면이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긴 상승기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인구의 증가보다 빠르게 물질과 에너지의 공급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전근대사회에서 끊임없이 영토가 확장되었던 것과 비슷한 효과이다. 그 동안이 상승국면이었다는 것은 인구의 끊임없는 증가를 통해서도 뒷바침된다.

그런데 그 놀라운 에너지원이었던 석유의 생산 정점이 얼마전에 지나갔다. 또한 현대 사회는 이미 쇠퇴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영년주기 쇠퇴기의 기본적인 기작을 살펴보자. 먼저 인구가 증가해서 임금이 감소하는가? 예.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로 나타나고 있고, 선진국에서도 특히 신자유주의를 반갑게 받아들인 곳에서는 노동자의 실질소득이 정체한지 수십년이 흘렀다. 지대가 증가하는가? 농업사회에서 토지는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산업사회에서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는지 애매하므로 패스. 곡물가격이 상승했는가? 아직은 아니오. 농업에 투입되는 물질과 에너지의 가격이 (기술발전 덕에) 기적적으로 낮아진 데에 기인하는 바가 크나, 아직도 악기후에 의한 변동 가능성은 여전하다. 부의 편중이 심해지고 있는가? 예. 이 부분에 대하여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쇠퇴국면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폭력의 보편화가 다시 나타나는 조짐도 보인다. 현대사회가 쇠퇴국면이라는 진단은 터친 역시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쇠퇴국면의 클라이막스는 인간의 대량죽음이다. 기근과 역병 따위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고, 전쟁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늘어나는 현대에도 전근대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극적인 인구감소가 일어날 수 있는가? 현대사회에서 인구 감소는 저출산의 양상을 통해 실현될 것 같다. 죽지 않는다. 다만 태어나지 않을 뿐이다. 또한 저출산으로 고령화된 사회가 외부의 편차에 대한 탄력성을 상실한다면, 질병에 취약한 노인인구가 가장 첨예한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맨과 공동체, 공동체주의

아싸비야의 현대적 표현은 사회적 자본이다. 아싸비야가 긴 시간동안 상승과 쇠퇴를 반복하면서 제국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양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이 높은 아싸비야를 가지고 있다는 명제는 참이 아니기 때문이다. 터친이 제시한 실험 결과들은, 인간 집단이 서로간의 높은 신뢰를 유지하는 데에 정의맨의 존재가, 그리고 그 존재가 행위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놓는 일이 불가결함을 보여준다. 나는 어떤 사회가 높은 아싸비야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초민족전선의 이동이 아니라.

인간 집단의 사회적 신뢰를 가장 좀먹는 행위는 사기와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아싸비야가 낮고, 사회적 자본이 결여된 사회는, 사기와 배신행위에 대한 인센티브가 작용하고 있다. 친일파를 죽이지 못했고, 그 댓가로 그 부역자들을 핵심 정책결정자로 모시게 된 한국 사회는 그런 이유 때문에 아싸비야 고양에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신뢰가 어떤 수준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규모에서 아싸비야의 한계가 있다고 해서, 그보다 작은 단위인, 지역, 문중, 학벌, 재벌 수준에서의 아싸비:가 낮으라는 법은 없다. 국가 단위에서 보았을 때의 정의맨들은, 이들 하위 단위에서 보았을 때의 배신자일 수 있다. 국가나 민족 수준에서의 배신자들이 세계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또한 국가 단위에서의 정의맨들이, 이를테면 내부고발자가, 받는 처우는, 우리나라의 구성 원리가 국민국가 공동체라기 보다는, 그 하위단위들인 지역, 문중, 학벌, 재벌들의 연합체임을 방증한다고 보여지기도 하다. 그들의 국가의 보호의무를 훨씬 뛰어넘는, 하위단위의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가는 이들의 압박을 무력화시키지 못한다. 주권의 원천이 하위단위이기 때문일 수 있다.



좀 엉뚱한 생각

문명의 흥망이 외부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는 세상이 망해갈 때 나타나는 파국적 현상에 대해 환멸을 느낄지언정, 도덕적 책무에서는 거의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영년주기는 문명의 융성과 쇠퇴가 외부적 요인보다는 내적 동력학에 의해 좌우됨을 보여준다. 인구증가, 임금하락, 지대상승, 곡가상승, 부의 집중은, 개별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나타나는, 어찌보면 불가항력이다. 그러므로 영년주기에 우리는 개입할 수 없고, 그 진폭을 누그려트리려는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인가? 그러므로 망해가는 세상에 대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도덕적 책무를 느낄 필요가 없는가? 파레토의 원리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잘 조직되고 유능한 정부는, 심지어는 오히려 부패한 정부가 더 잘, 산아제한을 실시한다.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때에만 신뢰할 필요가 있는 것이고, 더하여 어디까지가 시장의 영역이 될 것인지는 문화와 정치가 판단할 문제이다. 임금과 지대와 곡가가 시장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될 수 있다는 상상은 사실과는 좀 다르다. 한 개인이 시장의 원리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정치에 참여함으로서 시장의 범위를 정하는 일에 참여할 수는 있다. 더하여 시장이 잘 한다는 자원의 효율적 분배라는 것도, 공동체 전체의 효용을 최대화하지는 않음을 공유지의 비극을 통해서 우리는 알고 있다.

영년주기 이론이 마음에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은 원래부터 불공평한 것이라고 짖어대는 한 줌 좌좀주의자(새누리당의 여집합은 좌빨 좀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들의 근시안적 프레임을 부숴버리기에 적절한 논거로 보이기 때문이다. 쇠퇴기가 끝나고 상승기가 시작될 때는 계급과 자산에 관계 없이 소득이 매우 평등하다. 쇠퇴기의 가난과 부는 그들 조상의 가난과 부 때문이다. 세상이 원래부터 불공평하지도 않았거니와, 원래부터 불공평하면, 그냥 참고 닥치고 살란 말인가? 이북에서 당원의 자식으로 태어났어도 똑같은 소리를 했을 쓰레기들이다. 세상이 원래부터 불공평하다면, 자본주의는 생겨날 수도 없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다르다. 자본주의는 교환 쌍방의 평등을 전재로 하는 것이다. 교환 양층이 평등하지 않을 때에는, 자본주의의 최대 미덕인 자원의 효율적 분배가 달성되지 않는다. 어디 산골짜기의 18세기 무덤에 들어가 뒹굴고 있어야 할 뼈다귀들이 좀비처럼 살아 돌아다니며 트인 입이라고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있는 꼴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역겨운 꼴 중에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그렇다면 지금의 경제불평등은, 영년주기의 자연스러운 결과인가? 아니면 흔히 말해지는 대로 신자유주의의 폐해인가? 예전에 여기(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15781.html)서 본 건데, 2차대전 이후의 통화팽창은 크게 세 단계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맨 처음은 인플레, 그 다음은 공공부채, 그리고 민간부채. 이런 설명은 영년주기의 설명과 합치하는 설명이다. 경제주체의 역학관계에 따라 자연히 흘러간 결과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 영년주기 이론은 그 결과 아마 망할 수 밖에 없을거야 라고 친절하게 예언까지 해 준다. 그런데 맨 첫 댓글에도 볼 수 있듯이 이런 상황에서 돈 먹는 놈은 따로 있다. 그들이 우연히 이득을 볼 수 있는 위치에 가게 된 것일까? 누구도 그리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2년 4월 13일 금요일

또 다른 양극화의 양상

총선 결과에 대하여 나도 한 마디 거들고 싶다.

선거 결과를 보고 거의 하루 내 멘탈붕괴상태였다가, 서서히 회복되는 느낌이다. 먼저 총평을 하자면 일단은 참패다. 나는 야권성향이므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연대의 입장에서 썰을 풀 것이다. 일차적인 목표였던 영남지역 교두보 마련에 실패했고, 더하여 강원과 충청권에서도 많은 의석을 잃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지만, 경합지역에서 많은 경우 근소한 표 차이로 석패했고,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지역구를 놓쳤다. 조금만 투표률이 높았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금 더 속을 들여다 보면 개털린 것은 또 아니다. 일단 서울에서 어쨌든 무난하게 이겼다. 회자되는 이야기지만, 서울 총선에서 참패한 정권은 “사라졌다.” 물론 새누리당이, 그렇게까지 좆망 수준의 참패를 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긍정적인 부분은 전체 득표는 오히려 야권이 여권을 능가했다는 점이다. 다음 싸움은 대선이다. 더 이길 수 있었지만 못했던 것은 사실이고, 존나 아쉽다. 하루의 멘붕에 충분히 갑할만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158:142라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지금까지 야권이 이렇게까지 의석을 먹어 본 적 별로 없지 않는가? 탄핵의 충격 때, 열린우리당이 먹었던 의석의 꽤 많은 수의 퀄리티는, 푸핫, 말을 말자. 의회 상황은 20년래 최선이다. 얻을 수 있었던 맥시멈은 아니지만, 괜찮은 거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120여석으로 칠 수 있는 모든 깽판을 쳤다. 일례를 들자면, 전효숙 대법관 임명무산 파동을 들 수 있겠다. 별로 안좋은 상황에서도 멕시멈 유틸리티를 끌어 내는 저들의 능력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참패했다고 볼 수 있는 요인들은 부정적이다. 아직까지 시뻘겋게 살아있는 지역주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에게 위로를 준 요인들은, 장기적으로 미래에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요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여기부터 다 내 생각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던 두 가지 특징: 1) 전체 야권득표가 여권득표를 앞선 점, 2) SNS와 온라인에서의 뜨거운 정권심판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투표률이 높지 않았던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ㅆㅂ 왜 그렇지? 인구동력학적 관점에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관찰 1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사람은 다 죽는다.” 87년부터 극명하게 나타났던 지역주의의 볼모 세대들이, 자연사하고 있다. 이들의 투표성향은 재생산률이 생각보다는 높지 않다. 제시했던 관찰 1에서 이와 같은 결론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지역주의의 볼모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선거에서 무조건 여권에 투표하지 않는다라는 가정이 성립되어야 한다.

영남지역에서 지역주의의 재생산을 견제하는 요소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 고등학교 1학년 일반사회 과목에 지역보고 투표하라는 말은 없다. 지역사회를 휩싸고 있는 분위기가 광기에 불과함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을 통해서 익혔는가 하는 부분에서 개인의 교육 수준을 논할 수 있다. 나는 가카의 심판 여론의 원인이 되었던 이번 정권의 비행이, 결코 옹호할 수 없는 수준의 범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교육의 효과가 나오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지역주의 세대보다 어린 세대의 경우, 소수의 세습귀족을 제외하면, 고자산계급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기회가 축소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계급적 이익을 떠나 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이번 선거에서의 투표여부 그리고 투표의 성향을 결정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관찰 2는 SNS 열풍이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트위터, 페북 등의 SNS 서비스는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계정 관리를 위해서는 시간이 든다. 둘째로 할 말이 없으면, 쓸 말이 없다. SNS의 활발한 사용은 시간적 여유가 있음을 뜻하거나, 정렬적인 상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계속적인 동기부여를 받고 있은 상황을 뜻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회활동을 통해 자극을 받고 있고, 그 자극을 타인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교육의 성공 여부가 흔히 말하는 교육 수준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일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SNS는 (경제적∪지적∪사회적 자산이) 있는 놈들의 사치품이다. 어제 나왔던 매일경제의 새장에 갇힌 트위터라는 기사는, 끓어올랐던 가카 심판 분위기가 트위터 안에서 만의 난리굿통이었음을 지적하는 부분까지는 동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 기사에 포함되었던 악의에 찬 인터뷰나 야권에 대한 조롱은 그 신문의 밑바탕과 근본을 잘 보여주었다. 소득수준에 따라 정보접근에 있어서도 격차가 벌어짐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대강의 스케치를 상상해 본다.

장기추세 1) 87년에 유권자였던 사람들을 지역주의 세대라고 하기로 한다. 이들은 투표률이 높고, 또한 투표 성향이 균질하다. 이들보다 어린 세대는 투표률이 이들 보다 낮고, 투표 성향도 균질하지 않다. 시간이 가면서 지역주의 세대는 자연사하고, 이에 따라 전체 투표률은 점차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의 지역주의적 성향은 자식세대에게 전해지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경우를 교육의 성공이라고 이름붙이겠다. 지역주의 성향 역시 시간과 함께 서서히 희석된다.

장기추세 2) 97년 이후로는 영남의 젊은이들 마저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 만큼 지역경기의 장기적 하강추세(이라고 쓰고 좆망이라고 읽는다)가 계속된다. 더불어 수도권의 여권성향이 짙어진다. 고자산계급에 진입하는 인구의 증가와 영남출신 인구의 유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자리 질의 악화로 인해 지방출신 젊은이들에 대한 자연선택이 강요된다. 일자리 찾기 경쟁에 성공한 출신 젊은이들은 수도권에 남고, 그러지 못한 젊은이들은 귀향한다.

단기추세) 2010년대 들어 SNS가 등장했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및 통신기술 발달의 연장선 상에 있는 현상이다. SNS는 그 동안의 어떤 온라인 통신서비스보다 계급차별성이 짙다. 따라서 교육에 성공한 사람들이 이 기술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총선에서) SNS상에 불었던 정권심판 바람은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그 주변에서만 제한적인 투표률 상승을 가져왔다. 수도권에서는 그 역할을 했지만, 영남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가설은 완전히 검증될 수는 없으므로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교육의 성공이라는 표현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이고, SNS가 가진 자들 만의 장난감이라는 부분도 나의 추정 이상의 근거는 없다. 지방출신 젊은이들의 분별이 일어났다는 가정 역시 개인적 경험 이상의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또한 선거전에서 사용된 전술이라는 변수를 완전히 무시하였기 때문에, 편차가 포함되었다.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죠.) 단, 한 달 정도 후에 나온다는 투표률 통계에서 영남지역 젊은이들의 투표률이 수도권 젊은이들의 투표률보다 낮게 나온다면, 위 가설이 어느 정도 모델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 가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부분은, 이번 선거에서 투표를 하고 싶었으나, 생업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SNS 차별가설은 투표불참을 자발적 행위로 설명하게 된다. 이런 분석은 투표권을 박탈당했던 사람들에게 모욕을 더할 뿐이다. 양자의 영향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

덧) 보다 감성적인 언어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4월 16일 추가)

2012년 4월 6일 금요일

《코끼리의 후퇴》

문명의 흥망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공급 여부에 달려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종류, 물질과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과 그것을 분배하는 제도,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염치는 그 문명의 성격을 결정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찰스 만의 《1491》을 통해서 나름 정리할 수 있었던 결론이다. 하지만 이 책들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서 일어났던 긴 서사에 대하여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책은 마크 앨빈의 《코끼리의 후퇴》이다. 이 책의 부제는 3000년에 걸친 장대한 중국 환경사이다.

이 책은 평이한 책은 아니었다. 앞서 소개했던 책들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쓰인 책으로 보였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 부분은 이 책이 다루는 시공간적 배경의 개관과 코끼리(동물군), 남벌(식물군), 전쟁, 치수 분야의 통시적 서술이다. 두번째 부분은 지역별 접근인데, 가장 중국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강 하류 지역, 2000여년에 걸쳐 한족에 의한 묘족에 대한 식민지화가 진행중인 윈난성, 북방민족과 한족의 경계 지대에 있던 허베이성 준화에 대한 환경사적 접근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부분은 중국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 부분인데, 위·진·남북조 시대에 항주만 주변, 청대에 저장성에 살았던 문인들이 남긴 글들과 청대의 황제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분석하였다. 책의 결론에서는 중국에서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가했던 압력의 크기를 기존 연구가 잘 되어 있는 서유럽과 비교하면서 책을 끝마쳤다.

상당히 전문적인 책이었지만, 배경지식의 여부에 따라서 쉽게 읽히고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기도 했다. 반면, 어떤 장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첫번째 부분과 두번째 부분은 대채로 재미있었다. 1장은 중국 환경사의 시간과 공간인데, 특히 눈길을 끌 만한 부분은 중국사를 고대와 초기·중기·후기 제국시대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내가 익숙한 시대 구분과는 좀 달랐다. 코끼리의 점진적 후퇴를 다룬 2장과 삼림 벌채의 진행을 다룬 3, 4장, 농업의 확대가 결코 자발적인 과정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5장은 매우 매우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하지만 수리체제의 이용에 대한 6장에서 제시한 상세사항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개별사례를 다룬 두번째 부분은 전체적으로 흥미로웠다. 그러나 세번째 부분은 썩 정리가 잘 되어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한문문학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었다가 다시 우리말로 번역되어서 그런지 문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이런 경우 보통은 한자 원문을 본문에 나란히 배치하기 마련인데, 미주로 돌려놓고 있어서 또한 더 불편했다.



훑어보기는 이 정도이다. 섹시한 제목과는 달리 코끼리에 대한 내용은 2장에서만 언급된다. 원래 코끼리는 더운 곳을 좋아하는 동물로, 기후가 따뜻할 때에는 북쪽에서도 살 수 있지만, 날이 추워지면 오직 따뜻한 남쪽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 인간과 코끼리는 서로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고, 자고 쉬고 노는 장소가 다르므로, 야생에서는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게 되면 농사를 지을 땅이 필요하며, 인구가 늘어갈수록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 인간에 의한 숲의 파괴는 코끼리들의 서식지를 축소시켰다. 이 싸움의 부차적인 전선은 개별 코끼리의 사냥이다. 인간의 농경지를 파괴하거나 특별히 난폭한 코끼리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사냥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별식으로 먹어치운다거나, 아니면 생포해서 군·운수·의전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인간과의 장기적인 투쟁과 기후변화는 7000년 전 허베이성에서 어슬렁 거렸던 코끼리들을 춘추시대가 시작될 즈음에는 회수로 남하시켰고, 오호십륙국시대에는 이미 다바 산맥를 제외한 장강 이남으로 밀어냈다. 송대에는 난닝산맥 이남에서만 코끼리를 볼 수 있었고, 현재는 윈난성의 서남쪽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삼림벌채는 인간이 중국대륙에서 코끼리와의 싸움에 사용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동시에 삼림벌채는 결국 인간의 생활을 제약하는 요소가 된다. 지나친 삼림벌채는 크게 세 종류의 역효과를 불러왔는데, 첫번째가 토양유실이고, 두번째가 목재부족, 그리고 세번째가 환경적 완충지대의 상실이다. 경사지에서 유실된 토양은, 한편으로는 산록과 같은 한계지에서의 농업 생산성을 약화시키거나 상실시키고, 하류에서는 하천에 퇴적물을 침전시켜 수리체계를 무력화시키거나, 높은 유지비용을 강요했다. 수리체계를 유지하는데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6장에 상세하게 나와있다. 저자는 중국의 수리체계는 별로 효율적이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사실 수리체계에 대한 설명은 지나치게 상세한 바람에 잘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번역도 좀 이상했다. 6장 부분은 처음부터 정말 이해하기가 곤란해서 내가 무식해서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248쪽에는 “유속의 네번째 힘”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아마도 “유속의 4승”의 의미일 것이다. 아, 출판사가 사계절인데... 이것이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라면, 구성 자체가 이해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강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수리체계와, 바닷물에 의한 침식을 막는 구조물을 같은 장 안에 넣었다는 점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 아닌가? 특히 바다와의 투쟁을 다루는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던 “조수”라는 단어가 밀물과 썰물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파도에 의한 침식을 의미하는지 그도 아니면 longshore current를 의미하는지 도저히 문맥에서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고, 그 부분은 아직도 완전히 블랙박스다.

삼림벌채의 두번째 부작용인 목재부족은 인간의 삶의 질을 충분히 악화시켰다. 누누히 (자연과 문명, 망국 100년, 나만의 핑계) 이야기하지만, 목재는 지금의 석유, 콘크리트, 플라스틱의 역할을 했다. 이들 셋 없이 현대사회가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목재가 부족한 전통사회는 그냥 가난한 사회일 뿐이다. 인구가 밀집된 평지는 계속되는 삼림벌채로 땔감을 구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베이징의 목재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장강 상류 계곡의 삼림이 벌채되어 수운을 통해 운송되었다. 목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마을 공동체가 공동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목재를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입장에서 볼 때, 나무를 벌목할 시기를 결정하는 문제는 시장의 이자률에 따라 결정되었다. 이런 정도가 목재와 관련하여 중국 전통사회에서 있었던 일들로, 책을 통해 새로 배우게 된 것들이다.

삼림의 벌채는 인간을 더욱 농경에 속박시켰다. 양의 길항작용이 작용한 것이다. 상나라 주나라 때나, 춘추 전국시대까지만 해도 아직은 숲도 많고 노는 땅도 많았다. 이 말은 사람이 구지 고된 농업 노동에 종사하지 않아도, 사냥이나 어로활동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는 말이다. 5장 전쟁과 단기이익의 논리는, 왜 인간이 이런 천국같은 상황을 스스로 벗어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듯이, 전쟁이 그 마중물 역할을 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승·패가 갈리므로 노예를 만들어내고, (기술의 혁신과 함께) “생산이 확대된다.”  사회가 차례차례 계층화되고,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에게 생산을 강제한다. 저자는 이 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나온 《관자》를 인용하면서 지배계급이 어떤 식으로 생산을 강요했는지를 보여준다. 관자는 제나라 환공의 관중이다. 거기보면, 농민이 농토를 떠나거나, 농사 안 짓고 숲에서 사냥하거나 강에서 고기잡는 행위는 때려잡으라고 한다. 성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서로 다른 계급이나 직업의 사람들이 섞여살지 못하도록 했다. 춘추전국시대에도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농민이 농토를 버리고, 환경적 완충장치로 도망가 호구하는 짓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후 중국의 환경이 완전히 개조된 이후에는, 흉년이 닥쳤을 때 농민들이 그 자리에서 굶어죽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사냥할 숲이 사라졌고, 강과 저수지에서 나는 고기는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예속시켰다.



수리체계와 삼림벌채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중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예시를 현재 항저우 만에 위치한 가흥현을 통해 보여준다. 이 지역은 처음부터 문명의 중심은 아니었다. 당 이전에 이 지역에 대한 기록들은, 사는 사람도 적고, 곳곳에 습지가 있고, 야생동물이 뛰어놀고, 개발도 안 되어 있는 상황을 말해준다. 그러다가 송·원대에 한 번의 인구 버프와 개간을 겪게 된다.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농지를 개간해야 했고, 하천들은 관개를 위한 수리체계로 개조되고, 그 전까지 홍수에 대한 완충장치 역할을 하던 호수가 매워진다. 수리체계는 끊임없는 엄청난 유지관리를 필요로 했다. 매워진 호수에서 예상할 수 있듯, 개조된 환경은 더더욱 탄력성을 잃고, 편차에 대한 적응력을 상실했다. 그럴수록 인간의 노력에 의한 상태의 유지가 필요해지는데,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명·청대 동안 그런 노력이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증가하게 되는 인구는 토지의 부족을 초래한다. 따라서 이 지역 사람들은 토지를 집약적으로 이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토지에 덜 의존하는 생산방법을 찾아야 했다. 연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목재를 시장에서 구입해야 했다. 명·청대에는 벼 외에도 보리·밀·콩·면화 등을 돌려짓기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고, 부업으로 또한 누에를 쳤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이들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담은 농서들이 유포되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혹사당하는 땅의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료가 필요했고, 그를 위한 배설물을 이용하기 위해 돼지나 양 같은 가축들을 사육했다. 농민들은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러고도 흉년을 만나면 자식을 팔고, 그마저 안 여의치 않으면 굶어 죽어야 했다. 여성의 평균 수명은 25세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윈난성 묘족의 이야기에서는 환경 개조의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황제와 치우와의 전쟁에서 묘족이 패한 후, 이들은 남서쪽의 무더운 산골짜기로 옮겨와 살게 되었으나, 곧이어 한족은 여기까지 찾아온다. 이 지역에서는 원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한족의 군사적 정복은 성공했으나, 정치적 지배를 영속화하지 못한 채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양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시점은 청대이다. 1629년 이 지역을 토벌하러 온 주섭원(朱燮元)은 현대의 개념으로 볼 때 환경전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전략을 수행한다. 농업을 위해 땅을 개간하는 것이다. 개간된 땅에는 적응한 원주민이나 이주해 온 한족이 거주하게 된다.

식민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 주체에 상관 없고, 또한 시대에도 상관이 없음이 드러난다. 앞서 설명한 전략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에 유럽 본도의 생태계를 이식해 이른바 네오 유럽을 만들었던 것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또한 같은 방법을 현재의 중국이 만주, 내몽고, 위구르, 티벳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진다. 인간이 코끼리를 쫓던 그 방법을 다른 인간을 향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동쪽의 준화는 환경적 완충장치·완중지대의 존재가 얼마만큼 인간을 이롭게 하는 지 보여주는 예로 제시된다. 이 곳은 북방민족과 한족의 판도가 교차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앞서 본 가흥과 같은 지속적인 개발압력에 시달리지 않았다. 자연환경이 개발로 인해서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청대 후기에 가서도 연료가 부족하지 않았다. 농경과 유목이 교차하는 지역적 특징때문에 이 곳 주민들은 유제품과 고기 섭취가 상대적으로 용이했고,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과일의 섭취 역시 많은 편이었다. 이 곳 사람들은 가흥 사람들보다 두 배 오래살았다.



환경에 의한 제약이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문명과 역사의 발전에 작용하는지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손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거대하고 효율적인 통일된 관료조직이 수 천 년동안 거듭해서 등장했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수리체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인 것 같다. 그 덕에 지속적인 삼림파괴에도 불구하고, 중국문명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순전히 물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거대하고 효율적인 관료조직 덕분에, 거대한 자본과 노동력의 투입이 가능했고, 원거리 간에 안정적으로 물질을 교환할 수 있는 체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해야 할 것이다.

2012년 3월 1일 목요일

붕락

며칠 전 이외수옹께서 닭도리탕이 일본어에서 기원한 단어가 아님을 트위터로 지적한 적이 있다. 그날 아침나절 동안은 그 트윗에 대한 반응을 폭발적이어서, 미디어 다음의 댓글 많은 기사에 이외수옹의 트윗을 전하는 기사가 계속 자리했었다. 딱 5 일 전이었다. 닭도리탕이라는 단어가 '鳥'字의 일본어 독음 도리에서 유래했다는 국립국어원의 설명은 이미 대세를 넘어 정설로 자리잡힌 마당이었다. 아마 주류 언론들은 이외수옹이 헛소리를 지어내거나, 혹은 가끔은 낚이는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는가보다.

오는 이외수옹께서 또다른 트윗을 했다. 이외수옹의 트윗을 항상 지켜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닭도리탕 트윗보다 훨씬 값어치 있고, 운율의 맛이 있는 트윗을 이외수옹이 삼일절을 맞아 날렸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 트윗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는 독립했지만, 친일파로부터는 독립하지 못한 나라다.

청산되지 않고 이월된 친일파들은 자신의 계급을 미국의 비호 하에서 확대재생산하는데에 성공한다. 인구의 증가, 경제의 성장과 함께, 복잡해지는 사회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 팽창한 하급 관리를 또한 성공적으로 포섭하는 데에 성공한 그 무리는, 스스로를 사회지도층, 주류, 메인스트림, 성골 따위의 시대착오적인 이름으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그 하급관리들과도 구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왔으며, 오히려 25년 전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었던 때보다 더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사상적으로도 극단화되었다. 개신교도가 아니거나, 시장원리주의자가 아닌 자들은 주류로 분류되지 못한다. 시험을 통해 선발되는 그들의 하급관리들은 무능력한 자들이 승진을 하게 되는 모순 속에서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거나,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기능성만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다.

친일파의 후신, 곧, 주류의 논리에 완전히 포섭된 경제신문들은 매일처럼 망하는 기업과 흥하는 기업의 차이점을 자의적으로 대조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을 외면한다, 소통이 막혀있다, 잘못된 곳에 투자를 한다. 정도가 단골로 언급된다. 이미 사람들이 스스로를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심지어 투자자로 등치시켜 생각하도록 세뇌시키는 데에 성공한 주류는, 하급 관리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피지배민들에게 “니 삶이 개같은 것은, 다 니 탓이거나 최소한 니 팔자”라는 논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정치와 결탁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심지어 이들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이미 대한민국의 주류는 망조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하며, 소통마저 막혀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자들은 앞으로 골로가는 장구한 외길을 걸어가게 될 터인데, 주류로 태어나기를 당당히 거부한 우리들은, 적당한 선에서 이들과의 파멸로 가는 동행을 뿌리쳐야 한다. 아마도 지금이 딱 그 때인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죄를 짓게 되면,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든지, 아니면 일정시간의 신성한 노동을 통해 번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을 벌금으로 내게 된다. 어떤 경우든 자유가 제한된다. 만약 타고 난 자신의 몸뚱이 자체가 죄라면 (혹은 죄를 통한 유리함을 얻었다면), 우리는 그 바로 몸뚱이가 아닌 무엇을 제한할 수 있을까. 프랑스혁명때 애 어른 할 것 없이 귀족의 목을 썰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덧. 이덕일은 이들 기생계급의 기원을 조선시대의 노론에서 찾고 있다. 가계도 분석을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분명 이미 누군가는 작업을 해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4월 9일, 문장의 호응이 이상한 부분을 수정)

2012년 2월 7일 화요일

기시감

아래의 글을 쓴 뒤, 예전에 뭔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개같이 답답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점차 명확해져 갔다. 벌써 7년이 다 되어 간다. 2005년 봄의 일이다.

그 전해 불었던 탄핵의 순풍으로 당시 민노당(현 진보통합당의 민노당 계파와 현 진보신당의 전신)은 10석을 얻은 상태였다. 정당득표율은 13%로, 열린우리당의 38.3%, 한나라당의 35.8%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비록 지역구에서는 두 명의 대표밖에 내지 못했으나, 비례대표에서 8석을 얻는 기염을 토했었다.





문제의 포스터

2005년 초, 놀라운 의석 수의 증가와 과반 의석을 지닌 열린우리당 등 우호적인 정치환경에 힘입어 민노당과 민주노총은 노동계의 숙원이던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고, 선전을 위한 포스터를 만들었었다. 젊은 남녀가 강변 벤치에 앉아있다. 하지만 이들은 불안정한 직장때문에 결혼을 미룰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카피가 등장한다. “우리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 형태와 불평등에 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안착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 포스터는, 7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포인트를 잘 잡았은, 또한 여전히 유효한, 수작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이 포스터는 당 중앙위에서 배포된 즉시 당 여성위원회와 소수자 위원회로부터 맹폭격을 받는다. “결혼한 정규직 노동자만이 정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어 결혼하지 않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며, 사진 역시 남성 이성애자 중심이어서 여성·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최현숙 성소수자위원회 위원) 이 사건에 대하여서는 한겨레 신문 기사를 통해 아직도 검색이 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23242.html)

이 양반들 왜 이러시나. 왜 아직도 이러고들 계시나.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실망감은 커져만 간다.

2012년 2월 6일 월요일

증오를 조장하는 힘

1.

얼마 전 獸狗들이, 김어준의 집이 평창동 6억짜리라고, 그러니까 저들은 무늬만 99%일 뿐 사실은 느그들 편이 아니라고  짖어 댔을 때, 사람들은 쌩깠다.

그 후에 그들이 미국에 갔을 때, 그을은 또 다시 비지니스 석이니, 명품풍 가방이니 설레발이쳤었다. 같은 핑계로. 이번에도 사람들은 생깠다.

눈에 뻔히 보였다. 그들은 결코 99%의 나머지 사람들이, 사악한 양치기의 꾐에 빠져 잘못된 길로 걸어가 스스로 파멸하는 것을 걱정하여서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의도가 명확해 보였다.



2.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비키니. 獸狗들이 먼저 나발을 불었다.

사람들은 광분했다. 당사자가 나섰다. 자신의 자유의지가 그러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마라고.

그런데도 논란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눈에 뻔히 보인다. 그들은 결코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있지 않다. 그들은 여성의 몸이 상품화 된다면 누구보다 좋아한다. 시장이 형성되니까.



3.

논란은 끝나지 않았지만, 결론은 정해졌다.

獸狗의 의제설정능력은 아직 건재하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한 가지 예상을 해 본다면,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는 소위 진보논객 역시 소통의 파도에 수장될 것이다.



PS.

은혜를 모름을 축생이라 한다.

2012년 2월 2일 목요일

의미도 없는 개소리

연말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싼 표를 찾다 보니 암스테르담에서 환승을 해야했다. 유럽연합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으므로, 입국 심사는 그 공항에서 하게 되었다. 내가 입국심사대에 도착했을 때에는 모든 게이트가 잠시 닫혀있는 상황이었다. 잠시 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저 만치에서 입국 심사대 직원이 분명한 젊은 남자들이 제복을 입고 떠들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네덜란드말 특유의 좀 크크 거리는 음색으로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서로 희롱하는 걸 보니, 가히 질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저그들끼리 노닥거리면서 승객은 게이트 앞에 기다리고 있지 않는가?

몇 분 있지 않아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고, 망중한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던 이 친구들도 하나 둘 게이트를 열었다.

그 때 바로 내 옆 줄에는 묘령의 젊은 처자들 셋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네들이 들고 있는 여권에 적힌 글자로 보건데, 한국인이 분명했다. 내 여권을 가져 간 그 심사원은 근엄한 표정으로 도장을 찍을 면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옆 줄의 그 처자의 여권을 받은, 그 희한한 목소리로 기괴한 웃음을 짓던 그 직원은, 대뜸 그 처자에게, 멀쩡한 목소리로, 목적지가 어디냐고 영어로 묻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공무상 필요한 질문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질문을 받은 그 처자였다. 눈망울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그 직원을, 죠넨 희한한 목소리로 웃던 그놈을, 바라보며 티롤에 놀러 간다고 기뻐 마지않는 표정으로 대꾸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나는 도장이 찍힌 여권을 넘겨받았고, 심사대를 지나왔기 때문에, 그 좀 왠지 이상하고 부조리해 보이는 그 대화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계속해서 보지 못했다.

슈스케의 크리스가 성추문에 휩싸였다고 한다.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 이유다.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또 다시 지구온난화 구라설

태양이 말썽이란다. 원래 태양은 11년 주기로 그 활동이 활발해졌다가, 잠잠해졌다가 한다. 태양활동의 마지막 극대기는 2000년, 2001년 사이에 있었다. 그 다음 5-6년 동안 태양활동은 순조롭게 감소했다. 그런데, 그 때 이변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006년 경부터 다시 활발해져야 하는 태양이 좀처럼 그 기력을 회복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태양은 2008년 말까지 계속해서 조용해져갔다. 그리고 2009년이 되어서야 다시 서서히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태양활동의 제 24주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태양주기가 연장되면 다음 번 태양활동은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어제 돈찌라시 머니투데이는 영국 데일리메일의 기사를 받아 미니 빙하기가 임박했다는 기사를 냈다. (http://media.daum.net/digital/view.html?cateid=1046&newsid=20120130182606147&p=moneytoday) 그 원인으로 태양활동이 향후 수십년간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들었다.

태양활동의 세기는 흑점의 수로 대표될 수 있는데, 실재로 흑점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마운더 극소기(1645-1715)는 전세계적인 기후한랭화와 시기가 일치한다. 그 당시 탬즈강이 얼었다, 북해가 얼었다, 독일의 포도 농장이 망했다 이런 것들은 고전적인 이야기고, 동아시아에서 있었던 한랭화의 영향은 부경대 김문기교수가 국제신문에 연재한 기사(http://www.kookje.co.kr/news2011/asp/list.asp?kwd=%B1%E8%B9%AE%B1%E2%C0%C7%20%B3%CE%B6%D9%B4%C2%20%B1%E2%C8%C4%20%C3%E3%C3%DF%B4%C2%20%BF%AA%BB%E7)에서 그 자세한 부분을 알 수 있다. 훌륭한 연재물이고, 매우 흥미롭게 기사들을 찾아 읽었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태도에는 절대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일러둔다.)

태양 활동이 극대기와 극소기를 오가는 동안 태양의 밝기는 대체로 0.1% 정도 변화한다. 그리고 그 밝기의 변화가 정말로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지는, 사실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실재로 머니투데이 기사의 앞부분에는 그것이 별 영향이 없다는, 구라론자로부터 “소위 주류”라고 불리는, 과학계의 컨센서스를 먼저 제시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반론을 보여준다. 덴마크의 스벤스마크는 흑점과 기후의 상관관계를 주장하는 학자로, 이미 그 전부터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그는 현재의 기후모델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는데, 영국 기상청의 2007년 예상(2004년부터 10년 동안 세계 기온이 0.3도 상승, 2009년에서 14년 사이 최고 기온기록 경신)을 제시하고 있다. (마치 봐라 이 예상 틀렸잖아 라고 하듯이.) 그런데 그저께 나온 기사를 보면, 아직까지 기존의 모델은 잘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35년째 더위먹은 지구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20130030606697&p=seoul)

그 다음에는, 태양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수온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환기시키는 주장을 또한 배치시킨다. 즉, 온난화가 이산화탄소 때문만이 아니라 자연적인 주기성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주기성 이론들이 주장하는 그 주기성들이 실재 존재하는 것이라고 입증이나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마치 우주의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대기중 이산화탄소가 온실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은, 이미 완전하게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고 (분자의 구조를 설명하는 물리법칙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다는 뜻이다.), 거시적으로는 복사에너지 평형의 문제에 다름 아니다. 이것을 깨기 위해서는 여러 비선형효과들을 성공적으로 접목시켜야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흑점과의 관계를 주장하는 스벤스마크의 우주선 이론 등은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틀렸다고 확정된 것도 아직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해 댄다. 이산화탄소와 기온과의 관계는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가 아니라고. 이에 대한 반론은 앞 문단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단지 상관관계에 불과한 마운더 극소기의 한랭화를 논거로 인간이 초래하고 있는 지구 온난화를 비난한다. 이전에 <1491> 독후감(http://jolysses.blogspot.com/2011/12/1491.html)에서도 주장했듯이, 그 때의 지구적인 한랭화는 아메리카 대륙의 재삼림화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가 강대국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주장을 “아직도”하거나, 혹은 기사를 읽고 단다는 댓글이 25년 주기의 태양활동 (제 25 주기를 오독한 것이 분명한) 운운.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심지어 스스로를 통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은 설득력 있는 주장보다는, 호소력 있는 주장에 더 공감한다.

혹시나 아닐까봐, 혼자서 “그래도 지구온난화는 이산화탄소 때문이야”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잘 것 없는 글이라도 써 게시하는 것이,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2012년 1월 21일 토요일

疎外

신문에서 노동의 소외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201836345&code=900308)

사실 소외라는 단어를 철학 쪽에서 배우기 전까지는 따돌림의 뜻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도 정확히 뭐를 의미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일부의 사람들을 국외자로 만들 때, 소외시킨다는 정도로 자주 쓰인다.

사실 저 링크의 기사 중간에 나오는 마르크스의 인용문의 주술관계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문을 찾아보았다. 마르크스는 죽은 지 한 세기도 넘었기 때문에 그의 저작들은 더 이상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여기서 원문을 찾아 볼 수 있었다. (http://www.marxists.org/deutsch/archiv/marx-engels/1844/oek-phil/1-4_frem.htm) 외국어로 된 이 긴 글을 읽을만한 역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인용된 부분만 찾아보았다.

Worin besteht nun die Entäußerung der Arbeit?
Erstens, daß die Arbeit dem Arbeiter äußerlich ist, d.h. nicht zu seinem Wesen gehört, daß er sich daher in seiner Arbeit nicht bejaht, sondern verneint, nicht wohl, sondern unglücklich fühlt, keine freie physische und geistige Energie entwickelt, sondern seine Physis abkasteit und seinen Geist ruiniert. Der Arbeiter fühlt sich daher erst außer der Arbeit bei sich und in der Arbeit außer sich. zu Hause ist er, wenn er nicht arbeitet, und wenn er arbeitet, ist er nicht zu Hans.
문장의 주술관계가 어긋나는 것은, 그 앞의 질문을 인용에서 소외시켰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맨 마지막 단어는 Hans가 아니라 Hause인 것 같다.

2012년 1월 15일 일요일

마이웨이?

마이웨이를 봤다. 기대보다 실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고 평가를 내리는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실망스럽게 만든 요소 몇 가지와, 그래도 볼만했던 요소들을 나열해보았다.

경성에서 살고 있던 김준식은 달리기를 잘 한다. 그의 라이벌인 타츠오는 일본군 고관의 손자이다. 경성에서 있었던 마라톤 예선에서 있었던 부정심판으로 인한 소동에 김준식과 그의 친구들이 연루되고, 재판 끝에 이들은 관동군으로 징발된다. 이들은 만-소 국경에 위치한 부대에 투입된다. 한 편 (왠지 모르겠지만) 타츠오는 이 부대의 지휘관으로 새로 부임한다. 타츠오는 (왠지 모르겠지만) 무리한 도강작전을 계획했지만, 도리어 적의 기습을 허용하여, 부대는 소멸하고 생존자들은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벌목장 수용소로 끌려간다. 이들은 결국에는 동사로 끝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졌지만, 독소전 개전으로 병력이 부족하게 된 소련 정부는 이들은 소련군으로 소집해 총알받이로 쓴다. 전향한 포로로 급조된 이 허술한 부대는, 모스크바 공방전의 와중에 데도프스크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증발하지만, 김준식과 타츠오는 그 지옥에서 또 다시 기적적으로 생존한다. 이들은 (왠지 모르겠지만) 독일 진영으로 탈출을 감행하고, 동방부대에 배속되어 노르망디 상륙전에 투입된다. 하지만 준식은 탈출 과정에서 사망한다.

영화에서 가장 크게 보이는 허점은 주인공의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준식은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이데아의 현인신이지, 현실계의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현실계에서의 김준식은 두 가지 상반되는 목표에서 갈등한다. (글을 쓰려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두가지 갈등되는 목표가 나타났다.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일관성 없는 행동들의 연속일 뿐.) 첫 번째는 살아서 돌아가서 달리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상대가 반드시 타츠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상황이 아니라면, 이 두 가지 목표는 별 무리 없이 달성될 수 있었겠지만, 전쟁의 한 가운데 떨어진 김준식에게는 두 목표 중 하나도 힘들거니와, 둘은 서로 모순되기까지 한다. 김준식이 짝사랑하는 타츠오는 경쟁 이런거 필요없고, 그냥 김준식이 사라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김준식의 존재와 타츠오의 존재가 서로 모순되는 상황에 떨어졌고, 김준식은 갈등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갈등 사이에고 고민하지도 않는다. 또한 사실은 갈등의 두 목표 또한 드러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김준식의 행동들은 생뚱맞다. 그는 그저 불사신으로 전장에 떨어졌을 뿐이다. 단지 노르망디에서 죽기 위해서.

김준식의 첫 번째 목표 “살자”, “달리기 위해, 살아남자”는, 명확하다. 누구나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전쟁의 비참함이 생으로 드러나면 날수록, 김준식의 목표설정은 더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 하지만 김준식의 두 번째 목표, “타츠오, 너 뿐이야”는, 이상하다. 김준식에게 타츠오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초반의 경성 장면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경성장면은, 김준식이 훌륭한 달리기 선수였지만, 식민지관리의 필요상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는 민족주의적 의식 고양을 위해 사용되었다. 김준식의 상대는 식민정부였지, 타츠오가 아니었다. 더하여 훌륭한 경쟁자의식은 두 상대가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때 형성되는 것이다. 최소한의 신뢰관계가 전재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타츠오는 경성에서도 별로 그러지 않았고, 만주에서는 더더욱 맛이 간 행태를 보인다. 오직 달리기 실력 하나가, 자신을 개죽음으로 몰아넣는 만주에서의 타츠오를, 훌륭한 라이벌로 인정해야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은 “그러니까”와 “그런데도”가 가지는 설득력의 차이이다.

주인공이 이렇게 망가졌으니, 스토리가 살아날 리가 없고, 영화는 내내 생뚱맞은 풍광을 보여주며 유라시아를 횡단한다.

이제는 영화를 보면서 눈에 거슬리던 부분들이다. 먼저 쉬라이. 단언하건데, 쉬라이는 없어도 되는 캐릭터였다. 제작비가 너무 많지 않아서, 중국시장까지 타겟으로 넣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쉬라이는 극의 나머지 부분과 아무런 유기적 연관성 없이 단지 삽입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 역시 별로 아름답지는 않았다.

다음은 경성에서의 기자회견 장면이다. 1940년 동경 올림픽 육상 예선에서 조선인을 배제한다는 기자회견인데, 이것을 왜 동경이 아닌 경성에서 하는가?

경성 세트는 좋아보였다. 그런데 왜 펼침막들이 굴림체로 찍혀있는가. 매우 눈에 거슬렸다. 현수막 업체 고용할 필요 없이, 차라리 스테프가 그냥 붓으로 쓰는 편이 나을 뻔 했다. 비슷한 예는 둘 사이의 라이벌 관계를 암시하는 신문기사 스냅샷 들인데, 역시 당시의 신문과는 철자도 폰트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리와 관련된 내용이다. 데도프스크에서 살아남은 김준식과 타츠오는 지극히 험한 산을 넘어 독일 진영으로 가는데, 모스크바에서 독일로 가는 길에는 아예 산맥이 없다. “이 산이 아닌 가벼”가 아니라 산이 나오면 안된다. 그래서 그들이 산에서 내려와서 처음 만난 그 마을이 무슨 마을인지는 자막설명 없이 넘어갔다. 아마도 준식과 타츠오가 고난 끝에 우정을 형성하는 개연성을 넣기 위해 어거지로 삽입된 것 같은데, 그런 설정은 만-소 국경충돌 이전에 나왔어야 했다. 김준식은 (왠지 모르겠지만) 부대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하다 부대로 귀환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노르망디에서의 베어마흐트. 여기서 김준식과 타츠오는 자나 깨나 오로지 탈영만을 꿈꾸고 있는 예비 탈영병이다. 거기까지 흘러 들어간 마당에, 부대나 군복에 무슨 애착이 더 있겠냐만은, 어쨌든 졸병인데, 윗선에 대한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마음껏 동료와 함께 독일어로 탈영을 이야기하고, 자리를 자유롭게 이탈하는 모습들이, 몰입에 방해될 정도로 심각하게 보였다.



단, 이 영화에서도 건질만한 부분이 있다. 포로수용소 장면이다. 까레이스키든 야폰스키든 어차피 로스께 눈에는 똑 같은 포로일 뿐, 마지막 노동력까지 쪽쪽 빨리다가 결국에는 연료가 되어 난방에 사용될 뿐인 절망적 상황이, 경성에서와는 다르게 설득력 있게 묘사되었다. 단, 이 부분에서의 주인공은 김준식이 아니라, 안똔이다. 김준식에서는 볼 수 없는 내면의 갈등이 처절하게 드러났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로수용소에서 새로 태어난 인간은 안똔 뿐이 아니다. 타츠오가 자랑스러운 황군장교에서 붉은 군대의 군복을 입은 총알받이로 변신했고 (총은 데도프스크에서 지급된다), 삶이 별로 길게 남지 않은, 노몬한에서의 타츠오 똘마니는, 이제 그의 허물벗기를 빈정거린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인물은 김준식이다. 그는 노몬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점호 전에 달리기를 한다. 죠낸 미치겠다.

전쟁장면도 좋았다. 고증이나 이런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사방에 불타고, 다 뿌사지고. 폭탄 떨어지고 하는 부분은 그럴듯 했다. 단 주인공과 스토리가 워낙 쌩뚱맞아서 감정이입이 잘 되지는 않았다. 엄폐도 안하는 주인공들을 총포가 피해가는데, 무엇에 긴장할 부분이 있겠는가.

추신. 마지막에 제목을 적었다. 그러면서 보니, 제목도 삐꾸다.

2012년 1월 13일 금요일

누가 짐승일까, 아니 나는 짐승이 아닌가?

지난해 12월 2일 대전에서 여고생이 왕따를 당하다가 집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두 주가 지나고 20일 이번에는 대구에서 남자 중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눈물겨운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집에서 투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수 언론이 뛰어들었다. 그 중 삼류로 여겨지는 동아가 초조함에 선빵을 내질렀다. 한동안 포털 사이트의 메인 기사는 동아의 학원폭력 가해자를 성토하고, 그 실태를 까발리며, 강한 처벌을 주문하는 기사로 채워졌다. 해가 지나자 이제는 조선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틀 전 조선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사회 계층을 보여주었고, 오늘은 그 원인을 게임 등의 폭력물로 돌렸다.

이들은 청맹과니일 수도 있고, 눈을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마주하는 데에는 용기와 지성이 필요하다. 그 두가지를 마음에 품고, 우리 자신의 십대를 뒤돌아보자. 교실이 평등한 우정의 공동체였던 적이 있었는가? 안 그랬잖아. 원래부터 안 그랬잖아.

엄기호의 말을 빌리자면, 교실은 촘촘하게 구축된 위계질서였다. 그 위계의 꼭대기는 돈이 많은 아버지의 자제분들과 특별하게 싸움을 잘하는 자들의 연합 내지는 동맹이었고, 그 위계의 가장 아래에는 위생에 신경쓰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거나, 아무 특징도 없으면서 공부마저 지지리도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씨발, 짜증나게 이상한 것은, 부자면서 싸움도 잘하는 놈들은 대체로 잘생겼고 공부도 잘했다. 가장 아래에 있던 아이들은, 역시 대체로 생긴 것도 비호감이었고, 지금 돌아보자면, 표가 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십대의 마지막 해이던 고3의 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경고했었다.
느그들 이 중에 우리집도 함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놈들 있제? 지금 공부 한하면 평생 우리집도 함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생각만 하면서 살게 된다.
그 발언이 비교육적이라는 단면적인 인상비판은 사양한다. 그것은 공갈도 협박도 아니었고, 단지 높은 개연성을 가지는 두 사건을 나란히 놓아 그 대비를 선명하게 했을 뿐이었다. 교실은 그냥 사회였다. 사회의 계급이 그대로 투영되고, 그 계급이 거의 변화없이 재생산되게 만들고, 혹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기제였다.



중학교 때의 한 해, 우리반의 정치지형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싸움 잘하고, 공부 잘하고, 잘생기고, 집도 부자인 놈이 나와 한 반이었고, 자연스럽게 반장이 되어 나머지 52명을 장악하는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현명하기까지 했다. 그와 코드를 최소한 맞출 수 있는 정도로 놀 수 있는 대여섯 놈들은 일종의 이너써클을 형성했고, 이들에게 권력의 일부를 떼어 주었다. 예를 들자면 이너써클의 일탈은 담임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다른 5년동안 나는 한 번도 이런 철저한 계급화와 효율적인 권력의 사유화가 학급에서 실현된 경우를 목격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는 함께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동안 교사들 사이에서 능력있는 반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듯 했다. 나는 이너써클에 들어갈 만큼 자원(자본, 운동신경, 외모)이 충분하지 못했고, 부당한 대우에 상황파악 못하고 몇 번 “개념없이” 도전했고, 그 결과 그 존재감 있는 놈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특히나 그 중 한 마름 비슷했던 놈과 빈번히 충돌했으나, 나는 주로 맞는 편이었다.

그 경험은 학원 폭력을 내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하는 인터뷰나 토론을 보면, 좀 병신같다. 먼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는댄다. 그래서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요즘 병신과 병신이 아닌 사람들 구분하는 방법은 소통에 있다. 소통을 떠드는 놈들은 십중팔구 병신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소통은 병림픽 데쓰메치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부모나 교사한테 말하는 10대 사춘기소년은, 비정상이다. 걔네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센데.

둘째 교사가 반에 더 신경을 써야한댄다. 제발. 빈다. 부탁이다. 걔네들에게 잡무 맡기지 마라. 아니면 교사를 더 뽑아서 둘 중 하나는 생활지도에, 나머지는 행정 처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라. 걔네들 시간 없고, 또 역시나 가정을 가진 생활인이다. 애정과 관심 또한 제한된 자원이다. 피해자가 병신이 되거가 죽고 난 다음에도 자기 책임 없다고 발뺌하는 교사들도 효수감이지만, 감당이 되는 만큼만 책임을 져야 시스템이 돌아간다.

셋째 폭력물 탓 하지마라.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농구부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체육관에서 양아치들과의 피터지게 싸워야 했다. 서태웅은 출혈과다로 쓰러져 죽을 뻔(?) 했으므로, 대단히 위험한 폭력장면이다. 그런데, 그래서 슬램덩크가 쓰레기 폭력물인가? 그 장면이 잘려 나가면 슬램덩크의 정대만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살아날 수 있을까? 내가 체육관 장면을 폭력물과 연관짓는 게 오바 같은가? 천만에. 실재로 1993년 당시 이 장면을 두고 폭력물 시비가 있었다. 게임과 폭력물이 없으면,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는 10대 남자애들이 얌전히 있을 것 같나? 요즘 중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에서 몹과 몬스터들 때려 잡는다는데, 내가 고만하거나 좀더 어렸을 때도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II, 철권 따위를 했고, 용돈 떨어지면 개미, 잠자리 잡아서 다리 떼고, 날개 떼고 놀았다. 폭력물을 접해서 폭력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좀 폭력적이기 때문에, 폭력물을 좀 보고 즐기는 것이다. 중학교 생물에 붕어, 개구리 해부는 아직 있나 몰라.

넷째, 많은 경우 일대다의 충돌이다. 여럿이서 하나 따돌리는거. 이걸 언급하는 전문가를 본 적이 없다. 개별 행위는 정말 사소하다. 결코 범죄를 성립시켜서 처벌할 수가 없다. 사람 둘 있으면, 하나 바보 만드는 거 식은 죽먹기이다. 이건 직장에서도, 군대에서도, 사회에서도 항상, 늘 존재한다. 대상이 학생일 경우에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적용해서 사회의 많은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겠다. 안된다는 말이다. LG 왕따 사건을 보라. 당하는 놈을 바보 만들어야 굴러가도록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걸 법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학원폭력이 계급 문제라는 것을 언제 쯤 인정할텐가? 즉, 학부모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언제 인정할 것이냐는 말이다. 아이의 행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사회생활에 적합하도록 교정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서 다시 가정의 문제도 돌아왔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지식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어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의 형질은 유전될 수 밖에 없으므로, 비(非)신분제 사회에서마저 관찰되는 계급의 재생산은 그 물리적, 자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면 그게 당연한거니까 내버려 두란 말인가? 아니, 오히려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라는 말 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렇지만”을 꺼내 본다. 그것을 통해야만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 작용하는 치역으로 사상될 수 있다. 잘난 놈도 있고, 못난 놈도 있지만, 그렇지만, 못난 놈이라서 비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하지 말고, 또 잘난 놈이라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수 없게, 그런 규칙에 모두의 동의를 구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인권을 넘어 모두에게 존엄을 보장할 수 있게 말이다. 구체적 인간은 타고난 능력과 키워진 환경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만히 놓아 두면 그 차별이 너무나 “비인간적인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더 존엄의 하한선만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보수언론은 학교폭력 가해자들과 그들의 공범인 폭력물에게 짐승이라는 비유를 가져다 붙였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결국은 계급의 반영이라는 점을 목도하고 나면, 계급간의 반목과 질시, 동경의 헤게모니와 값싼 동정을 이용하여야만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 온 기존의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의 협력자들이 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리고 어쩌면, 나도 짐승일지 모른다. 남이 짐승임을 확인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