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6일 월요일

반려암·사문암·석면

감람석 모래를 뿌렸는데, 거기서 석면이 나왔다고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이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10926020026820&p=hani)

배운 게 도둑질이므로 이런 기사가 나오면 찾아본다. 일단 문재의 모래를 공급한 광산이 어디인지 확인했다 안동 풍천의 모 광산. 앵? 안동? 대체로 안동이면 경상 누층군이거나, 거기 관입한 화산암이거나, 그 전에 있던 화성암·변성암 기반암인데? 석면은 초염기성 암석이 물과 (경우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변성되는 과정인 사문암화 작용을 거쳐서 만들어질 때 나올 수 있는 광물의 하나이다. 그런데 안동에 초염기성암이?

지질자원연구원에 들어가서 지질도를 확인하였더니, 정말로 풍천에 반려암 관입암이 있었다. 반려암은 염기성 심성암이다. 오오 신기 신기. 게다가 외가집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곳이네. 학부 때 염기성암을 보러 야외조사를 간 곳은 충남 홍성 일대였다. 역시나 이 일대에서도 석면 때문에 난리가 나 있다. 이들 염기성 암석들이 변성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광산 업체에서 만든 투자설명회 프리젠테이션은 더 신기했다. 채굴된 감람석과 사문암을 이용한 제품과 납품 방향을 간단히 보여주는 프리젠테이션이었다. 반려암에는 감람석이 많이 들어가 있고, 사문암화 작용을 받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했던 곳에서 사문암을 사용하고 있었다. 제철업에서 사문암이나 감람석이 사용되는지는 완전 몰랐다. 충남의 석면 논쟁에서는 현대제철측에서 제철 과정에 사문암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환경단체에서는 외국의 제철소에서는 안전한 감람석을 쓴다고 반론을 펼치고 있다.

골프장 잔디가 잘 자라는 흙 또는 칼라 벙커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역시 대한민국에서 돈 벌려면, 골프장! 골프장! 그리고 이번에 문제가 된 야구장 운동장 모래. 이렇게 새로운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하게 된 데에는 포철로부터의 주문량이 점진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사문암은 실재로 보면 꽤 아름다암운 암석이다. 대체로 띠는 어두운 녹색 빛도 그렇고, 무늬도 아름답게 나 있다. 다음에 외가집에 가게 되면, 근처에 가서 안동에서 나는 반려암을 한 번 찾아봐야 되겠다.

※9월 30일 추가
중학생이 모스 경도계 (활석-석고-방해석-...) 외울 때 나오는 활석은 화장품, 파우더, 분가루를 만드는 데에 이용된다. 이 활석이 사문석의 변성을 통해 형성된다. (다른 경로도 있다.)

※ 이듬해 4월 12일 추가
경상 누층군은, 지각이 얇아진 곳에 호수가 형성되고 거기에 쌓인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아직도 상대적으로 지각이 얇다. 얇은 지각 때문에 염기성암의 관입이 오히려 더 잘 일어날 수 있다고 전공하는 친구에게서 들었다.

횡성을 홍성으로 수정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자연과 문명

학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알펜포어란트를 지나갔다. 숭숭 동그란 구멍이 난 숲이 산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숲의 구멍의 중심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문명이 이르기 전, 유럽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삼림. 유럽의 중세는 숲을 개간하면서 증가하는 인구를 흡수해 온 시기였다. 숲 가운데 정착지가 생기고, 주면의 숲을 벌목하여 농장과 마을을 확장해왔다. 숲은 좀 먹듯이 동그랗게, 정착지에서 동심원을 그리면서 구멍이 숭숭 뚫히게 되었고, 그 원은 인구와 함께 확장한다.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제 거의 모든 숲이 파괴되었다. 알펜 포어란트는 그 동심원상으로 사라지는 숲을 볼 수 있게 남아있는 지역 중의 한 곳이다.

사람이 석탄·석유를 사용하기 전까지 대용량의 발열을 하기 위한 재료는 목재였다. 사람이 콘크리트와 철근을 이용하여 건물을 만들기 전까지는 건축에 반드시 목재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플라스틱이 대체하고 있는 수 많은 생활용품은 나무로 만들어졌었다. 요즘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웠을 때, 그 가장 처음부분은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한 고대 4대문명에서 시작했었다. 그러나 강에만 촛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그 강 유역에 존재했던 대삼림의 존재가 묻혔을 뿐일 것이다. 그래서 마스터 키튼은 도나우 강 문명을 찾으러 다니고, 중국에서는 장강 문명을 열심히 찾고 있다.

동아시아사를 배울 때, 참고문헌 목록의 책들 가운데, 중국 고대사에 대한 책을 읽고 기말 보고서를 써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은 갑골문·고고학 등의 성취로부터 밝혀 낸, 하·은·주·춘추·전국·한대까지의 자연사와 생활사에 중점을 두고, 주제어 별로 서술되어 있었다. 하·은 시대 이전, 지금의 화북평원에는 대삼림이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거지 주변의 삼림이 벌목과 화전으로 개간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면적은 넓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화북지역에 삼림은 남아있지 않다. 장강 유역과 사천분지의 삼림은 조금 후에 파괴되기 시작했다. 고사에 자주 등장하는 현재 장안 주변의 관중이라는 지역은, 비옥하기 짝이 없는 지역으로 묘사되지만, 내가 아는 현재의 섬서성은 건조한 반사막 내지는 초원 지대이다.

환경이 황폐화되면서 문명이 사그라든 많은 경우들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에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깊이있게 서술하지 않았지만,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고대 그리스의 많은 식민 항구도시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잡지와 《지구대기행》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들이 비슷한 테크트리를 따라간다. 인구가 늘어나면, 자원의 소비 역시 따라서 증가하고, 이를 위해서 주변의 자원(삼림·물·토양·광물)을 과도하게 이용하게 되면서, 그 일대의 자연 환경이 더 이상 문명을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에페수스는 삼림벌채로 인해 토양유실이 일어났고, 그 모래가 바다로 흘러들어와 항구를 매우는 바람에 입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상당한 건조지역이었던 탓에 지나친 관개가 토양의 염화를 불러왔고, 결국 농업은 포기되었다.

사실 흔히들 환경의 역습이라고 말하는 이런 현상들이, (문명의 붕괴에서 이미 제시했듯이) 모든 문명의 붕괴를 설명할 수는 없고, 수백년 단위의 장기적인 기후 변동과 환경의 역습 효과를 분리해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그린란드의 바이킹 정착지나, 화북에서 장강으로 중국 문명의 중심이 이동한 경우가 있겠다.

지구대기행 13편은, 몇몇 문명의 흥망성쇠를 제시한 후, 한가지 예외, 서유럽 문명을 제시한다. 중세가 한계에 다다른 이후 서유럽 문명이 멸망하지 않았던 이유. 그들은 새로운 온대림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대륙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더 이상 처녀림이 펼쳐져 있는 꿀이 흐르는 대지는 남아있지 않다고. 인류의 남아있는 미개척지 우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메마르고 가혹한 곳임을 일깨운다.

한 때, 국민성과 지도자의 자질로 (야매스럽게) 설명되던 문명론을, 이제는 상당한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하여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류 전체의 문명을 떠바치고 있는 지구의 자원 서플라이 혹은 충격흡수 능력을 수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탄소와 질소의 순환, 열이동, 종다양성 따위가 얼마 정도나 인간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는 단계이다. 앞으로는 이런 자연환경적 맥락을 과학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문명론들, 혹은 자연을 언급하더라도 자의적으로 그것을 인간에 가져다 붙여 멋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문명론들은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 날 알펜 포어란트를 비행하던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때, 창 밖을 보니 뒤따라오는 비행기의 항법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비행기가 내릴 활주로의 옆 활주로를 이용할 비행기가 다가오는 것 역시 보였다. 엄청난 양의 석유를 태워 수십톤이 넘는 금속 통을 공중에 띄우고, 그를 위해서 그 무거운 금속 통을 1 초에 300 미터의 속력으로 날리는 것도 놀랍기 그지 없지만, 그러면서도 그토록 정교하게 이들을 제어하고 관리하여,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곳으로 유도하는 모습에 또한 경이로움을 느꼈었다. 인류는 행성 지구에 대한 인간충격 역시 그 정도 이상으로 정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오늘은 전국적인 산발적 정전이 있었다. 전력 사용량이 64 GW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64 GW는 일인당 1280 W이고, 약 1.7 마력이다. 한 사람이 말 두 마리가 달라 붙어야 만들어 낼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보통 사람이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일은 약 0.1 마력이라고 하므로, 현대 한국인은 17 명의 노예를 부리고 있는 샘이다. 한 가정으로 치면 노예가 한 50 명 붙어 있는 샘이므로, 100 년 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더 할 수 없는 호사이다. 그런데 과연 이 정도의 소비가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2011년 9월 13일 화요일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전에 짜장면이 표준어가 아닌 것에 격분해 글을 써갈긴적이 있었는데 (http://jolysses.blogspot.com/2010/04/%EC%A7%9C%EC%9E%A5%EB%A9%B4%EC%9D%80-%EC%A7%9C%EC%9E%A5%EB%A9%B4%EC%9D%B4%EB%8B%A4.html), 근자 비로소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시에 몇 가지 더 많은 단어들이 함께 표준어로 승격하게 되었다.

기쁘다. 짜장면은 새로 생긴 개념이므로, 철자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 정체와 기원이 불분명한 자장면이라는 단어가, 대다수 언중의 언어를 비표준, 부적격의 언어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언중이 사용하면, 그것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

작금의 언중들 중에 다수는 한자어를 정확히 쓰지 못한다. `명예훼손'을 `명예회손'으로 쓰는 경우는 양반이다. `무임승차'를 `무인승차'로 써서 도대체 누가 승차하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고, `청와대'를 `청화대'라고 써서 대통과 그 무리를 중국으로 텔레포트 시키기도 한다. 근래 본 최악의 경우는 `인신공격'을 `임신공격'이라고 쓴 경우다. 게시판에서 개 털리는 경우를 강간당했다라고 표현하던데, 그래서 그리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서 어찌 손써볼 도리가 없게 된다면, 그 때는 `명예회손' 역시 표준어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나는 당연히 이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이다. 새롭게 생겨난 단어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한자어들의 경우 형태소들이 완전히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에, 이것 저것 다 된다고 예외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어생활에서 한자를 완전히 배격해야한다는 입장에 선 사람이라면, 저들 중 두 번 째, 형태소 논거는 설득력이 없다. `명예훼손'을 이루는 글자들이 모두 대응되는 한자가 있다는 사실은, 국어순혈주의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사실이다. 현대 한국어 화자들은 `ㅚ'를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런 경우 `ㅞ', `ㅙ'와 구별되게 발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언중이 발음하는 바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어그로가 아니다. 삭월세는 사글세가 되어 표준어로 인정을 받았다. 나는 이 지점이 바로 한자 배격론의 실패가 완전히 까발려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한자교육을 배척한 결과가, 고급어휘의 철자법 좆망이라는 죠낸 아름다운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렇다면, 버스, 서비스, 가스 같은 단어들이 /뻐쓰/, /써비쓰/, /까쓰/로 소리나는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들 단어들도 된소리로 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내 감정은 현행대로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낀다. 왜냐고? 예들은 원래부터 외래어니까, 짜장면에 적용된 것과는 다른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누구도 짜장면을 외래어라고 느끼지 않으니까. 어떠한 외래어가 아닌 단어도, 그 첫 음절의 첫 자음을 예사소리로 적고 된소리로 읽는 경우는 없어. 적어도 당장 그 예가 떠오르지 않아. 심지어 둘 쌍(雙)은, 쌍이라고 소리가 나니까, “심지어” 한자가, 된소리 발음을 가지고 있어. 왜? 상이라고 쓰고 쌍이라고 읽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하나는 喫. 그러니까 짜장면이라고 하는 외래어가 아닌 단어는, 자장면이라고 적힐 수가 없는 거야.

(라고 적었는데, 퇴고하면서 읽어보니, 바로 밑에 반례가... 그래서 그냥, 잘 모르겠다. 난 꽈학을 하진 않거든.)

된소리로 발음되는 경우는 외래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김밥, 과대표는 각각 /김빱/, /꽈대표/로 발음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쌀밥이나 보리밥을 쌀빱이나 보리빱으로 읽는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짬밥이 /짬빱/으로 비빔밥이 /비빔빱/으로 읽히니까 아마도 특정 받침 뒤에 올 경우에는 밥이 된소리가 되지 않는가 가설을 세워보는데, 덮밥은 이게 /밥/인지 /빱/인지 잘 구별이 안된다. 어쨌든 형태소를 살려 적는 원칙에 따라 표기법을 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표준어가 표준 발음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옳은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 표준 경상도화자인 나 더러 책 하나 던져주고 낭독해 보라고 하면, 당연히 표 난다. 딱 들으면 다 안다, 점마 어데서 왔네. 아마도 낭독하는 동안 표준어에 의해 규정된 단어들을 읽었을 것이고, 자음과 모음의 발음 역시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억양이 문제라는 소린데, 표준어가 억양도 규제하는가? 경상도 티가 확 나는 발음은, 표준어가 아니다. 따라서 표준어는 억양의 규범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효과를 /효과/라고 발음하더라도, 억양이 이상하면 표준어가 되지 못한다. 이것은 국어사전 정의 수준을 좀 벗어나는 문제인 것 같다. 서울말에는 억양이 없으니, 억양 없이 말하라고 하는데, 내가 듣기에는 서울말에도 그들 나름의 억양이 있다. 따라서 내가 억양 없이 발음해도, 서울말 같이 들리지는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억양을 학술적으로 어떻게 기술하고 연구하는지 궁금해지네.

지난 번 글에서도 썼듯이, 언어는 인간 개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잣대로 적격·부적격을 가리기 위해서는 엄밀하고, 정합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이현령비현령의 두루뭉실한 총언 뒤에는, 이를 뒤바침하기 위한 엄밀한 `법칙'이 서술되어야 하며, 이는 법률이 합법과 불법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엄밀하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여지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표준 표기법에 대하여서는 어느 정도 그것이 가능하고, 현재의 규정이 (짜장면이 표준으로 인정되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표준 발음을 그토록 엄밀하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사실 좀 회의적이지만 그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표준 억양이라는 것이 문서와 활자로 기술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한 규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11년 9월 10일 토요일

만주문자 식자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획연재물을 보면, 스크랩해 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TeX을 알게 되고 난 다음에는, 브라우저에서 기사를 긁어서 TeX 형식으로 간단한 편집을 해서 저장을 해 놓게 되었다.

이 주 쯤 전에 지인을 만나, 요즘 모으고 있는 그 연재물에서 읽었던 내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와서 스크랩 한 것을 보내주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신문기사에 난 것이다 보니, 이것 저것 정보를 더 보태고 싶어졌다. 등장하는 역사 인물의 한자 이름과 생몰년도 따위를 추가하고, 간단히 언급된 사실에 대하여 내가 아는 대로 좀 더 보충하고, 뭐 그런 짓을 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하도 좋아져서 어지간한 자료는 인터넷에서 다 찿아졌다. 생몰년을 찾으려고 사람 이름으로 검색하면, 위키로 들어가서 항목을 읽게 되는데, 유명한 인물을 찿을 때 조차도 완전히 처음 알게되는 그런 일화들에 빠져들게 되면서, 작업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또한 그러면서 또 배움이 있어 한편으로는 즐거웠다.

나는 아는 바가 일천하게 그지 없지만, 원전에 대한 욕구는 강한 편이다. 일종의 속물근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물의 생몰년을 찾는 과정과 요 몹쓸 속물근성이 합쳐지면서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빠져들게 되었다. 찾는 인물중에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나왔던 것이다. 생몰년은 크게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이름이다. 이 사람들은 중국사람이 아니니까 오른쪽에 붙은 괄호 안에 음차된 한자를 적어 넣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따라서 만주문자를 붙여 넣어야 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다언어 식자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 XeTeX로 컴파일 할 수 있게 약간의 수정을 했다. 그리고 fontspec 팩키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KTUG에서 배웠다. 그런데 문제는 만주문자 폰트였다. 처음에 찾은 것은 만주문자를 키보를 통해 입력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말하자면 날개셋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딸려 나오게 되어 있는 만주어 폰트를 찾아서 깔고,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주문자는 아랍어와 마찬가지로 단독·어두·어중·어미에서 쓰일 때 그 모습이 변화하는데, 방금 깔았던 그 만주어 폰트는 그 과정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했다. 어두형이 중간에 박히거나 하는 식이었다. 깨끗하게 포기하고, 프로그램과 폰트를 지웠다.

다음에 찾아 낸 프로그램은 중국인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입력창에 로마자로음차된 만주문자를 쳐 넣으면, 그것을 기초로 하여 만주문자를 짜 내 비트맵 형식으로 오른쪽에 출력하였다. 즉 범용으로 만주문자를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따라서 IME 설정을 건드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그 중간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간단계라는 것은 어두·어미·어말형이 각각 어떤 로마자에 할당되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두형은 로마자 I에, 어중형은 i에 각각 대응하도록 만든 것이다. 음차된 만주어를 어두·어중·어말형이 구분된 스크립트로 부호화 하고, 마지막으로 그 부호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는 만주문자를 출력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좀 엉성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얻은 출력물이 훨씬 퀄리티가 좋았다. 이 프로그램이 사용하는 만주어 폰트는 유니코드의 만주·몽골 문자 영역에 할당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자 영역에 할당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 프로그램의 만주어 폰트 이름은 Times New Manchu였다.

아, 나는 당연히 만주어 배운 적도, 할 줄도 모르나, 그 테스트라는 것은 간단히 그 만주어 모양을 (위키를 통해서) 알고 있는 누르하치나, 홍타이지 같은 만주 단어를 표시했을 때 얼마나 비슷하게 나오는가를 비교하는 것으로, 눈만 달려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이 폰트를 TeX에서 사용하는 것인데, 그 결과가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