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5일 목요일

방제에 관하여

방제 كتب 는 he wrote라는 뜻이다. 아랍어는 삼인칭 과거형이 동사원형이다. 내가 쓰는 글들은 독자 입장에서는 그가 이전에 쓴 글일 것이다.

아랍어를 쓸 때, 빨리 쓰기 어렵지 않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대답은

“모음을 쓸 필요가 없어서 더 빠르다.”

였다.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巫·士·民·奴

1.
노대통령이 재임 중일 때였다. ㅜㅜ 유난히도 국가 정체성을 들먹이고, 민생을 이야기하던 인기좋던 정치인이 있었다. (오해할까봐 그러는데, 아직 살아있다.) 그가 대한민국을 들먹일 때, 그의 대한민국과 나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다른지 느끼고는, 참담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지금 “선진”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7·80년대에 선진국이었다가 2000년대에는 쓰레기나라로 추락한 것 같다.

우연히 세종시 수정안 때문에 거의 처음으로 상식의 편에 서 있는 것 처럼 보였던, 그 정치인이, 요즘은 왜 민생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지 모를 노릇이라고 생각했었다. 살림은 더 혹독해졌는데 말이다. 한 2년 쯤 된 것 같다. 신물나게 들었던 그 단어를 못 들어본게. 근래 깨달은 것은 그 민생의 민이 되려면, 집 한채는 가지고 있어야 되는것이였다. 그렇게 정의를 하고 나면, 확실히 민생이 더 나빠지지는 않지 않았나. 그리고 민생을 위해 집값을 어떤 댓가를 치르게 하고서라도 (그래 지가 댓가를 치르는 건 아니다.) 지탱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민생은 잘 챙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 民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은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丈奴, 또는 制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奴에 대하여서는 生을 쓸 수 없다. 자유로워야 生 아닌가? 奴와 生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丈은 측정한다는 뜻이 있다. (토지검사를 丈量이라고 했다.) 이들의 상태는 단지 통계의 숫자에 지나지 않다. 10년 전 스스로를 메인스트림이라고 칭하던 그들에게 숫자에 불과한 건 나이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人·民·奴의 구분에 따르면 人정도가 되지 않겠나. 民도 되지 못하는 奴나 婢의 실업률이 얼마인가 역시 숫자에 불과하다. 쿠폰으로 월급을 받는 형편 없는 일자리를 줘서 그 숫자가 작아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奴나 婢 주제에 그마저도 안하려고 하니, 죽든 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이 뭉쳐서 작당을 하지 못하도록 制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丈에는 몽둥이라는 뜻도 있다. (賊反荷丈) 制奴의 방법이 또한 丈奴인 것이다. 다만 奴婢는 대가 끊어지면 곤란하니, 婢의 질과 자궁을 잘 감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 보스니아 내전의 집단강간을 찾아보길. 그르바비차를 찾으면 된다. 발음도 비슷하네 /제노/, /제노사이드/)

현종 때의 대기근 때, 부잣집에서 노비를 내 쫓았다. 입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기록에 따르면 쫓겨난 노비는 열에 아홉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노비인구의 감소에는 사회적인 격동 뿐만 아니라 준엄한 자연법칙 역시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굶어죽은 자들이 350년 후에 환생해 비정규직이 되었다.ㅜㅜ


2.
내가 알기로 그분은 독실한 교인이다. 그래서 아마도 YHWH가 그분과 그 나라를 보우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돈을 아무리 헛짓꺼리에 쏟아부어도 YHWH가 보우하시기 때문에 부도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국방을 내팽겨쳐도 YHWH가 보우하시기 때문에 외적이 쳐들어 오지 않는다. (요건 팬더의 글에 달린 댓글에서 본 내용이다.) 의심하면 믿음이 약한 거잖아. 그 분의 믿음은 강해. 혹시나 그런 일이 벌어져도 YHWH가 보우하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어. 아, 또한 그분이 그런 오해를 하도록 방조 내지는 협조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奴였다는 것, 또 人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어쨌든 그분은 YHWH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고, 또 그렇게 상당히 살아오면서, 실재로 이 땅에서 YHWH의 사역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지 않는가. 이쯤하면 자신이 YHWH의 유능한 심부름꾼이라고 확신해도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死대강 운하화에 반대하고, 언론 장악에 반대하고,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고, 의료보험 민영화에 반대하고, 인천공항 매각에 반대하고, 마구잡이 재개발에 반대하고, 경쟁교육강화에 반대하고, 독도할양에 반대하고, 남북관계청산 및 미수복영토의 중국귀속공정에 반대하고, 사법부 장악시도에 반대하고, 무상급식 실행불가 방침에 반대하고, 등록금 현행 유지에 반대하고, 미분양 아파트 정부매입에 반대하고, 守狗꼴통낙하산인사에 반대하는 이런 모든 상식적인 행동을, 그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믿음이 강한 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렇다. 이런 장애들은 그 분의 믿음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탄의 방해를 YHWH의 방식으로 처단하는 것이, 그 분께서 세상을 살아온 방식이고, YHWH의 유능한 심부름꾼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그 사안들은, 그분의 의지이기에 또한 당연히 YHWH의 의지이다. 그러니 또 다시 당연히 타협이라는게 있을 수가 없지 않는가. YHWH의 시험에 지는 것은 YHWH의 종으로서의 자격이 없는것 아닌가. YHWH 앞에 타협이라니!

이런 우려는 그분의 임기 초기에 이미 나왔던 말이다. 오래되서 이름을 잊었는데, 꽤 유명한 원로 인사가 그런 것 같아 걱정이라고 신문에 컬럼을 쓴 적이 있다.

여하튼 그분은 人 중에서도 최고의 품위인 巫의 位에 있는 것이다. (원래 人에는 접신을 담당하는 巫와 싸움을 담당하는 士가 있었는데, 요즘은 정치만 담당하는 人이나 돈이 억수로 많은 人도 생겼다. 아, 돈이 억수로 많으면 巫를 넘어서 아예 그 자체로 神이 되는 시대인가) 巫의 位에서 최고의 영예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사족
처음에는 그냥 민생이라는 말 자체가 좋지 않다 뭐 이런 소리를 쓸려고 했는데, 쓰다보니까 좀 웃기게 성직자·무사·평민·노예로 구성된 고대의 신분제에 빗대게 되었다. 아리안족이나 인도에나 그런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상응되는 한자들이 있어서 놀랐다. 한자시간에 士가 지금이야 벼슬이지만, 원래는 도끼의 상형문자였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도끼에 날을 두개나 더 달아서 무력 +2가 되면 王이 된다고.

쓰다 보니 조만간 진화론·창조론 논쟁을 해야 될 날이 올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처럼 과학 교과과정에 창조론을 넣어야 한다는 것으로! 지구온난화만 해도 골치아픈데.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新報道指針時代

지금 어떤 세상을 사는지 똑바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법정의 죽음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검찰의 생사람잡기 수사도.. 여기엔 없다.

이런걸 보도하기에는,


지금은 곤란한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가?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간첩과 성범죄자

20년 전에 간첩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성범죄자가 있다.

장자연과 방가방가 한 놈들은 아직도, 쳇. 길태는 골로, 고고씽.

잊지 마라, 한일전은 노대통령 1주기 다음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