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3일 금요일

또 다른 양극화의 양상

총선 결과에 대하여 나도 한 마디 거들고 싶다.

선거 결과를 보고 거의 하루 내 멘탈붕괴상태였다가, 서서히 회복되는 느낌이다. 먼저 총평을 하자면 일단은 참패다. 나는 야권성향이므로,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연대의 입장에서 썰을 풀 것이다. 일차적인 목표였던 영남지역 교두보 마련에 실패했고, 더하여 강원과 충청권에서도 많은 의석을 잃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지만, 경합지역에서 많은 경우 근소한 표 차이로 석패했고,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지역구를 놓쳤다. 조금만 투표률이 높았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금 더 속을 들여다 보면 개털린 것은 또 아니다. 일단 서울에서 어쨌든 무난하게 이겼다. 회자되는 이야기지만, 서울 총선에서 참패한 정권은 “사라졌다.” 물론 새누리당이, 그렇게까지 좆망 수준의 참패를 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긍정적인 부분은 전체 득표는 오히려 야권이 여권을 능가했다는 점이다. 다음 싸움은 대선이다. 더 이길 수 있었지만 못했던 것은 사실이고, 존나 아쉽다. 하루의 멘붕에 충분히 갑할만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158:142라면,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지금까지 야권이 이렇게까지 의석을 먹어 본 적 별로 없지 않는가? 탄핵의 충격 때, 열린우리당이 먹었던 의석의 꽤 많은 수의 퀄리티는, 푸핫, 말을 말자. 의회 상황은 20년래 최선이다. 얻을 수 있었던 맥시멈은 아니지만, 괜찮은 거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120여석으로 칠 수 있는 모든 깽판을 쳤다. 일례를 들자면, 전효숙 대법관 임명무산 파동을 들 수 있겠다. 별로 안좋은 상황에서도 멕시멈 유틸리티를 끌어 내는 저들의 능력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참패했다고 볼 수 있는 요인들은 부정적이다. 아직까지 시뻘겋게 살아있는 지역주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우리에게 위로를 준 요인들은, 장기적으로 미래에 야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요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가. 여기부터 다 내 생각이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났던 두 가지 특징: 1) 전체 야권득표가 여권득표를 앞선 점, 2) SNS와 온라인에서의 뜨거운 정권심판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투표률이 높지 않았던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ㅆㅂ 왜 그렇지? 인구동력학적 관점에서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관찰 1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사람은 다 죽는다.” 87년부터 극명하게 나타났던 지역주의의 볼모 세대들이, 자연사하고 있다. 이들의 투표성향은 재생산률이 생각보다는 높지 않다. 제시했던 관찰 1에서 이와 같은 결론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지역주의의 볼모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선거에서 무조건 여권에 투표하지 않는다라는 가정이 성립되어야 한다.

영남지역에서 지역주의의 재생산을 견제하는 요소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 고등학교 1학년 일반사회 과목에 지역보고 투표하라는 말은 없다. 지역사회를 휩싸고 있는 분위기가 광기에 불과함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을 통해서 익혔는가 하는 부분에서 개인의 교육 수준을 논할 수 있다. 나는 가카의 심판 여론의 원인이 되었던 이번 정권의 비행이, 결코 옹호할 수 없는 수준의 범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교육의 효과가 나오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지역주의 세대보다 어린 세대의 경우, 소수의 세습귀족을 제외하면, 고자산계급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기회가 축소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계급적 이익을 떠나 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이번 선거에서의 투표여부 그리고 투표의 성향을 결정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관찰 2는 SNS 열풍이 제한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트위터, 페북 등의 SNS 서비스는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계정 관리를 위해서는 시간이 든다. 둘째로 할 말이 없으면, 쓸 말이 없다. SNS의 활발한 사용은 시간적 여유가 있음을 뜻하거나, 정렬적인 상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만큼 계속적인 동기부여를 받고 있은 상황을 뜻할 수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회활동을 통해 자극을 받고 있고, 그 자극을 타인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앞서 제시한 교육의 성공 여부가 흔히 말하는 교육 수준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일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SNS는 (경제적∪지적∪사회적 자산이) 있는 놈들의 사치품이다. 어제 나왔던 매일경제의 새장에 갇힌 트위터라는 기사는, 끓어올랐던 가카 심판 분위기가 트위터 안에서 만의 난리굿통이었음을 지적하는 부분까지는 동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 기사에 포함되었던 악의에 찬 인터뷰나 야권에 대한 조롱은 그 신문의 밑바탕과 근본을 잘 보여주었다. 소득수준에 따라 정보접근에 있어서도 격차가 벌어짐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대강의 스케치를 상상해 본다.

장기추세 1) 87년에 유권자였던 사람들을 지역주의 세대라고 하기로 한다. 이들은 투표률이 높고, 또한 투표 성향이 균질하다. 이들보다 어린 세대는 투표률이 이들 보다 낮고, 투표 성향도 균질하지 않다. 시간이 가면서 지역주의 세대는 자연사하고, 이에 따라 전체 투표률은 점차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의 지역주의적 성향은 자식세대에게 전해지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경우를 교육의 성공이라고 이름붙이겠다. 지역주의 성향 역시 시간과 함께 서서히 희석된다.

장기추세 2) 97년 이후로는 영남의 젊은이들 마저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 만큼 지역경기의 장기적 하강추세(이라고 쓰고 좆망이라고 읽는다)가 계속된다. 더불어 수도권의 여권성향이 짙어진다. 고자산계급에 진입하는 인구의 증가와 영남출신 인구의 유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자리 질의 악화로 인해 지방출신 젊은이들에 대한 자연선택이 강요된다. 일자리 찾기 경쟁에 성공한 출신 젊은이들은 수도권에 남고, 그러지 못한 젊은이들은 귀향한다.

단기추세) 2010년대 들어 SNS가 등장했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인터넷 및 통신기술 발달의 연장선 상에 있는 현상이다. SNS는 그 동안의 어떤 온라인 통신서비스보다 계급차별성이 짙다. 따라서 교육에 성공한 사람들이 이 기술을 향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총선에서) SNS상에 불었던 정권심판 바람은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그 주변에서만 제한적인 투표률 상승을 가져왔다. 수도권에서는 그 역할을 했지만, 영남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가설은 완전히 검증될 수는 없으므로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교육의 성공이라는 표현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이고, SNS가 가진 자들 만의 장난감이라는 부분도 나의 추정 이상의 근거는 없다. 지방출신 젊은이들의 분별이 일어났다는 가정 역시 개인적 경험 이상의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또한 선거전에서 사용된 전술이라는 변수를 완전히 무시하였기 때문에, 편차가 포함되었다.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죠.) 단, 한 달 정도 후에 나온다는 투표률 통계에서 영남지역 젊은이들의 투표률이 수도권 젊은이들의 투표률보다 낮게 나온다면, 위 가설이 어느 정도 모델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한 가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부분은, 이번 선거에서 투표를 하고 싶었으나, 생업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SNS 차별가설은 투표불참을 자발적 행위로 설명하게 된다. 이런 분석은 투표권을 박탈당했던 사람들에게 모욕을 더할 뿐이다. 양자의 영향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

덧) 보다 감성적인 언어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4월 16일 추가)

2012년 4월 6일 금요일

《코끼리의 후퇴》

문명의 흥망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공급 여부에 달려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종류, 물질과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과 그것을 분배하는 제도,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염치는 그 문명의 성격을 결정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 그리고 최근에 읽었던 찰스 만의 《1491》을 통해서 나름 정리할 수 있었던 결론이다. 하지만 이 책들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서 일어났던 긴 서사에 대하여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책은 마크 앨빈의 《코끼리의 후퇴》이다. 이 책의 부제는 3000년에 걸친 장대한 중국 환경사이다.

이 책은 평이한 책은 아니었다. 앞서 소개했던 책들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쓰인 책으로 보였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번째 부분은 이 책이 다루는 시공간적 배경의 개관과 코끼리(동물군), 남벌(식물군), 전쟁, 치수 분야의 통시적 서술이다. 두번째 부분은 지역별 접근인데, 가장 중국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장강 하류 지역, 2000여년에 걸쳐 한족에 의한 묘족에 대한 식민지화가 진행중인 윈난성, 북방민족과 한족의 경계 지대에 있던 허베이성 준화에 대한 환경사적 접근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부분은 중국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한 태도를 분석한 부분인데, 위·진·남북조 시대에 항주만 주변, 청대에 저장성에 살았던 문인들이 남긴 글들과 청대의 황제들이 남긴 작품들을 주로 분석하였다. 책의 결론에서는 중국에서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가했던 압력의 크기를 기존 연구가 잘 되어 있는 서유럽과 비교하면서 책을 끝마쳤다.

상당히 전문적인 책이었지만, 배경지식의 여부에 따라서 쉽게 읽히고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기도 했다. 반면, 어떤 장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첫번째 부분과 두번째 부분은 대채로 재미있었다. 1장은 중국 환경사의 시간과 공간인데, 특히 눈길을 끌 만한 부분은 중국사를 고대와 초기·중기·후기 제국시대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내가 익숙한 시대 구분과는 좀 달랐다. 코끼리의 점진적 후퇴를 다룬 2장과 삼림 벌채의 진행을 다룬 3, 4장, 농업의 확대가 결코 자발적인 과정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5장은 매우 매우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하지만 수리체제의 이용에 대한 6장에서 제시한 상세사항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개별사례를 다룬 두번째 부분은 전체적으로 흥미로웠다. 그러나 세번째 부분은 썩 정리가 잘 되어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한문문학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었다가 다시 우리말로 번역되어서 그런지 문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이런 경우 보통은 한자 원문을 본문에 나란히 배치하기 마련인데, 미주로 돌려놓고 있어서 또한 더 불편했다.



훑어보기는 이 정도이다. 섹시한 제목과는 달리 코끼리에 대한 내용은 2장에서만 언급된다. 원래 코끼리는 더운 곳을 좋아하는 동물로, 기후가 따뜻할 때에는 북쪽에서도 살 수 있지만, 날이 추워지면 오직 따뜻한 남쪽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 인간과 코끼리는 서로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고, 자고 쉬고 노는 장소가 다르므로, 야생에서는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게 되면 농사를 지을 땅이 필요하며, 인구가 늘어갈수록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 인간에 의한 숲의 파괴는 코끼리들의 서식지를 축소시켰다. 이 싸움의 부차적인 전선은 개별 코끼리의 사냥이다. 인간의 농경지를 파괴하거나 특별히 난폭한 코끼리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사냥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별식으로 먹어치운다거나, 아니면 생포해서 군·운수·의전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인간과의 장기적인 투쟁과 기후변화는 7000년 전 허베이성에서 어슬렁 거렸던 코끼리들을 춘추시대가 시작될 즈음에는 회수로 남하시켰고, 오호십륙국시대에는 이미 다바 산맥를 제외한 장강 이남으로 밀어냈다. 송대에는 난닝산맥 이남에서만 코끼리를 볼 수 있었고, 현재는 윈난성의 서남쪽으로 완전히 밀려났다.

삼림벌채는 인간이 중국대륙에서 코끼리와의 싸움에 사용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동시에 삼림벌채는 결국 인간의 생활을 제약하는 요소가 된다. 지나친 삼림벌채는 크게 세 종류의 역효과를 불러왔는데, 첫번째가 토양유실이고, 두번째가 목재부족, 그리고 세번째가 환경적 완충지대의 상실이다. 경사지에서 유실된 토양은, 한편으로는 산록과 같은 한계지에서의 농업 생산성을 약화시키거나 상실시키고, 하류에서는 하천에 퇴적물을 침전시켜 수리체계를 무력화시키거나, 높은 유지비용을 강요했다. 수리체계를 유지하는데 얼마만큼의 비용이 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6장에 상세하게 나와있다. 저자는 중국의 수리체계는 별로 효율적이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사실 수리체계에 대한 설명은 지나치게 상세한 바람에 잘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번역도 좀 이상했다. 6장 부분은 처음부터 정말 이해하기가 곤란해서 내가 무식해서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248쪽에는 “유속의 네번째 힘”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아마도 “유속의 4승”의 의미일 것이다. 아, 출판사가 사계절인데... 이것이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라면, 구성 자체가 이해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강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수리체계와, 바닷물에 의한 침식을 막는 구조물을 같은 장 안에 넣었다는 점이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 아닌가? 특히 바다와의 투쟁을 다루는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던 “조수”라는 단어가 밀물과 썰물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파도에 의한 침식을 의미하는지 그도 아니면 longshore current를 의미하는지 도저히 문맥에서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고, 그 부분은 아직도 완전히 블랙박스다.

삼림벌채의 두번째 부작용인 목재부족은 인간의 삶의 질을 충분히 악화시켰다. 누누히 (자연과 문명, 망국 100년, 나만의 핑계) 이야기하지만, 목재는 지금의 석유, 콘크리트, 플라스틱의 역할을 했다. 이들 셋 없이 현대사회가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목재가 부족한 전통사회는 그냥 가난한 사회일 뿐이다. 인구가 밀집된 평지는 계속되는 삼림벌채로 땔감을 구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졌다. 베이징의 목재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장강 상류 계곡의 삼림이 벌채되어 수운을 통해 운송되었다. 목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마을 공동체가 공동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목재를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입장에서 볼 때, 나무를 벌목할 시기를 결정하는 문제는 시장의 이자률에 따라 결정되었다. 이런 정도가 목재와 관련하여 중국 전통사회에서 있었던 일들로, 책을 통해 새로 배우게 된 것들이다.

삼림의 벌채는 인간을 더욱 농경에 속박시켰다. 양의 길항작용이 작용한 것이다. 상나라 주나라 때나, 춘추 전국시대까지만 해도 아직은 숲도 많고 노는 땅도 많았다. 이 말은 사람이 구지 고된 농업 노동에 종사하지 않아도, 사냥이나 어로활동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는 말이다. 5장 전쟁과 단기이익의 논리는, 왜 인간이 이런 천국같은 상황을 스스로 벗어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듯이, 전쟁이 그 마중물 역할을 했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승·패가 갈리므로 노예를 만들어내고, (기술의 혁신과 함께) “생산이 확대된다.”  사회가 차례차례 계층화되고,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에게 생산을 강제한다. 저자는 이 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나온 《관자》를 인용하면서 지배계급이 어떤 식으로 생산을 강요했는지를 보여준다. 관자는 제나라 환공의 관중이다. 거기보면, 농민이 농토를 떠나거나, 농사 안 짓고 숲에서 사냥하거나 강에서 고기잡는 행위는 때려잡으라고 한다. 성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서로 다른 계급이나 직업의 사람들이 섞여살지 못하도록 했다. 춘추전국시대에도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농민이 농토를 버리고, 환경적 완충장치로 도망가 호구하는 짓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후 중국의 환경이 완전히 개조된 이후에는, 흉년이 닥쳤을 때 농민들이 그 자리에서 굶어죽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사냥할 숲이 사라졌고, 강과 저수지에서 나는 고기는 사람들을 먹여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예속시켰다.



수리체계와 삼림벌채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중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예시를 현재 항저우 만에 위치한 가흥현을 통해 보여준다. 이 지역은 처음부터 문명의 중심은 아니었다. 당 이전에 이 지역에 대한 기록들은, 사는 사람도 적고, 곳곳에 습지가 있고, 야생동물이 뛰어놀고, 개발도 안 되어 있는 상황을 말해준다. 그러다가 송·원대에 한 번의 인구 버프와 개간을 겪게 된다.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농지를 개간해야 했고, 하천들은 관개를 위한 수리체계로 개조되고, 그 전까지 홍수에 대한 완충장치 역할을 하던 호수가 매워진다. 수리체계는 끊임없는 엄청난 유지관리를 필요로 했다. 매워진 호수에서 예상할 수 있듯, 개조된 환경은 더더욱 탄력성을 잃고, 편차에 대한 적응력을 상실했다. 그럴수록 인간의 노력에 의한 상태의 유지가 필요해지는데,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명·청대 동안 그런 노력이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증가하게 되는 인구는 토지의 부족을 초래한다. 따라서 이 지역 사람들은 토지를 집약적으로 이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토지에 덜 의존하는 생산방법을 찾아야 했다. 연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목재를 시장에서 구입해야 했다. 명·청대에는 벼 외에도 보리·밀·콩·면화 등을 돌려짓기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고, 부업으로 또한 누에를 쳤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이들 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담은 농서들이 유포되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혹사당하는 땅의 지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료가 필요했고, 그를 위한 배설물을 이용하기 위해 돼지나 양 같은 가축들을 사육했다. 농민들은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다. 그러고도 흉년을 만나면 자식을 팔고, 그마저 안 여의치 않으면 굶어 죽어야 했다. 여성의 평균 수명은 25세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윈난성 묘족의 이야기에서는 환경 개조의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황제와 치우와의 전쟁에서 묘족이 패한 후, 이들은 남서쪽의 무더운 산골짜기로 옮겨와 살게 되었으나, 곧이어 한족은 여기까지 찾아온다. 이 지역에서는 원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한족의 군사적 정복은 성공했으나, 정치적 지배를 영속화하지 못한 채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양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한 시점은 청대이다. 1629년 이 지역을 토벌하러 온 주섭원(朱燮元)은 현대의 개념으로 볼 때 환경전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전략을 수행한다. 농업을 위해 땅을 개간하는 것이다. 개간된 땅에는 적응한 원주민이나 이주해 온 한족이 거주하게 된다.

식민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그 주체에 상관 없고, 또한 시대에도 상관이 없음이 드러난다. 앞서 설명한 전략은,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에 유럽 본도의 생태계를 이식해 이른바 네오 유럽을 만들었던 것과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또한 같은 방법을 현재의 중국이 만주, 내몽고, 위구르, 티벳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진다. 인간이 코끼리를 쫓던 그 방법을 다른 인간을 향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동쪽의 준화는 환경적 완충장치·완중지대의 존재가 얼마만큼 인간을 이롭게 하는 지 보여주는 예로 제시된다. 이 곳은 북방민족과 한족의 판도가 교차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앞서 본 가흥과 같은 지속적인 개발압력에 시달리지 않았다. 자연환경이 개발로 인해서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청대 후기에 가서도 연료가 부족하지 않았다. 농경과 유목이 교차하는 지역적 특징때문에 이 곳 주민들은 유제품과 고기 섭취가 상대적으로 용이했고,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과일의 섭취 역시 많은 편이었다. 이 곳 사람들은 가흥 사람들보다 두 배 오래살았다.



환경에 의한 제약이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문명과 역사의 발전에 작용하는지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손꼽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거대하고 효율적인 통일된 관료조직이 수 천 년동안 거듭해서 등장했고,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수리체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인 것 같다. 그 덕에 지속적인 삼림파괴에도 불구하고, 중국문명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논리일 것이다. 하지만 순전히 물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거대하고 효율적인 관료조직 덕분에, 거대한 자본과 노동력의 투입이 가능했고, 원거리 간에 안정적으로 물질을 교환할 수 있는 체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