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일 목요일

붕락

며칠 전 이외수옹께서 닭도리탕이 일본어에서 기원한 단어가 아님을 트위터로 지적한 적이 있다. 그날 아침나절 동안은 그 트윗에 대한 반응을 폭발적이어서, 미디어 다음의 댓글 많은 기사에 이외수옹의 트윗을 전하는 기사가 계속 자리했었다. 딱 5 일 전이었다. 닭도리탕이라는 단어가 '鳥'字의 일본어 독음 도리에서 유래했다는 국립국어원의 설명은 이미 대세를 넘어 정설로 자리잡힌 마당이었다. 아마 주류 언론들은 이외수옹이 헛소리를 지어내거나, 혹은 가끔은 낚이는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는가보다.

오는 이외수옹께서 또다른 트윗을 했다. 이외수옹의 트윗을 항상 지켜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닭도리탕 트윗보다 훨씬 값어치 있고, 운율의 맛이 있는 트윗을 이외수옹이 삼일절을 맞아 날렸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 트윗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은, 일본으로부터는 독립했지만, 친일파로부터는 독립하지 못한 나라다.

청산되지 않고 이월된 친일파들은 자신의 계급을 미국의 비호 하에서 확대재생산하는데에 성공한다. 인구의 증가, 경제의 성장과 함께, 복잡해지는 사회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 팽창한 하급 관리를 또한 성공적으로 포섭하는 데에 성공한 그 무리는, 스스로를 사회지도층, 주류, 메인스트림, 성골 따위의 시대착오적인 이름으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그 하급관리들과도 구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왔으며, 오히려 25년 전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었던 때보다 더 이념적으로 경직되고, 사상적으로도 극단화되었다. 개신교도가 아니거나, 시장원리주의자가 아닌 자들은 주류로 분류되지 못한다. 시험을 통해 선발되는 그들의 하급관리들은 무능력한 자들이 승진을 하게 되는 모순 속에서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거나, 이미 심각하게 훼손된 기능성만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다.

친일파의 후신, 곧, 주류의 논리에 완전히 포섭된 경제신문들은 매일처럼 망하는 기업과 흥하는 기업의 차이점을 자의적으로 대조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을 외면한다, 소통이 막혀있다, 잘못된 곳에 투자를 한다. 정도가 단골로 언급된다. 이미 사람들이 스스로를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심지어 투자자로 등치시켜 생각하도록 세뇌시키는 데에 성공한 주류는, 하급 관리에조차 포함되지 않는 피지배민들에게 “니 삶이 개같은 것은, 다 니 탓이거나 최소한 니 팔자”라는 논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가 정치와 결탁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매우 흡사하다.

그런데 심지어 이들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이미 대한민국의 주류는 망조의 길로 들어섰다.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하며, 소통마저 막혀있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 자들은 앞으로 골로가는 장구한 외길을 걸어가게 될 터인데, 주류로 태어나기를 당당히 거부한 우리들은, 적당한 선에서 이들과의 파멸로 가는 동행을 뿌리쳐야 한다. 아마도 지금이 딱 그 때인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죄를 짓게 되면,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든지, 아니면 일정시간의 신성한 노동을 통해 번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을 벌금으로 내게 된다. 어떤 경우든 자유가 제한된다. 만약 타고 난 자신의 몸뚱이 자체가 죄라면 (혹은 죄를 통한 유리함을 얻었다면), 우리는 그 바로 몸뚱이가 아닌 무엇을 제한할 수 있을까. 프랑스혁명때 애 어른 할 것 없이 귀족의 목을 썰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덧. 이덕일은 이들 기생계급의 기원을 조선시대의 노론에서 찾고 있다. 가계도 분석을 통해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분명 이미 누군가는 작업을 해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4월 9일, 문장의 호응이 이상한 부분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