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0일 화요일

왜 지금 서양이 지배하는가?


도입

북송 시대를 살았던 심괄(沈括; 1031-1095)은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고위관료였고, 군의 지휘관이기도 했고, 기술에 대한 이해에도 뛰어났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몽계필담(夢溪筆談)》이 있다. 천문학, 수학, 지리, 지질, 물리, 생물, 의학, 약학, 군사, 문학, 역사학, 고고학, 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은 화석의 기원을 다루기도 하고, 범중엄이나 왕안석 같은 당시 인물을 평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UFO목격담을 싣고 있기도 하다.
한편 시간이 좀 흐른 뒤, 그러니까 네덜란드에서 튤립 거품이 꺼지고 난 뒤, 일본인들은 관상용 나팔꽃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돌연변이 나팔꽃은 시장에서 희소가치를 가졌었고, 그 종자의 소유자는 다음 세대 나팔꽃이 이런 돌연변이의 특성을 나타내게 만드는 노하우를 축적했었다. 에도 시대의 나팔꽃 상인들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는 해석도 있다. (일문 위키) 동물도 있다. 심괄이 살던 중국에서는 금붕어의 양식(?)이 이미 확립되었다. 최초의 기록이 진(晉)대로 소급되는 금붕어는 당·송대를 거치면서 확고한 관상어가 된다. 역시 돌연변이 형질을 유지하는 지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전기, 특히 세종대에는 시헌력 같은 정밀한 역법, 정교한 기계가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한글창제라는 굉장한 언어학적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이탈리아 친구에게 한글을 간단히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프랑스 혁명이 떠오른다고 했다. ㄱ-ㄲ-ㅋ이나 ㅏ-ㅑ로 이어지는 원칙이 굉장히 radical하게 보인다고.) 이런 특기할만한 성과가 동양에서도 있었는데, 막상 전근대 기술·과학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을까?
산업혁명으로 영국은 조커카드를 꺼냈다. 18세기에 영국인들은 화석 연료의 에너지를 기계적 동력으로 변환하는 기술적 진보를 인류 최초로 이루어 냈다. 사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화석 연료는 산업혁명 이전에도 열에너지와 빛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꽤 광범위하게 쓰여왔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동력으로 변환하는 데에 성공한 문명은 이전에 없었다. 기계적 동력이 있기 전에는 동물의 근육같이 연약하거나, 바람이나 강물처럼 안정적인 제공이 불가능한 것들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산업혁명은 영국의 자본가와 정치인들에게 사상 유례 없는 능력을 부여했다. "정치력의 전지구적 투사". 산업혁명을 겪고 나서야, 제국주의 열강은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비판적 이성이 질문을 제기한다. "왜 하필 그 곳은 영국이었습니까? 세계의 다른 곳, 특히 중국일 수는 없었나요?" 사실 이 질문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질문과 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왜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는 동안, 조선은 멸망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나요?" 이 책 《왜 지금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사 읽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분문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인류의 진화와 최초의 문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살펴볼 때 척도로 사용할 사회발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2부는 중동에서 농경이 시작된 이후의 세계사를, 저자가 제시한 관점에서 해설한다.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관점이다. 마지막의 짧은 3부에서는, 당연하겠지만, 같은 척도로 바라 본 미래에 대한 예측이 자리한다.
1부에서는 인류의 진화를 개괄한다. 특히나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를 개괄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시기부터 아프리카를 떠나는 시점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짧게 서술된 글을 아직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부분의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했다. 15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로 추정되는 호모 사피엔스들의 유적과 그들이 남긴 유물의 변천을 "개성"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풀어 낸 부분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역사시대에 대한 설명이 따라 나온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비교하는 이 책에서는 비교의 척도로 사회발전 포인트를 제시한다. 사회발전 포인트는 동등한 가중치를 지닌 4개 부문의 총합인데, 최대도시의 인구, 두당 에너지 소비량, 전쟁수행 능력, 정보통신기술이 그 네 가지이다. 각 포인트가 어떻게 할당되는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방법의 수치화에 허점이 많아 보이는데, 예를 들자면 얼마의 최대도시인구가 1 kcal의 에너지 소비량과 동등한 포인트를 가져야 하는가 따위의 질문에 어떻게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의외로 적용된 값들은 동양과 서양의 발전 정도를 잘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의 핵심 부분은 2부이다.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요약(이라고 해 봐야 수 백 페이지)·비교하였다. 농경이 시작되는 단계, 국가가 형성되는 단계, 제국이 형성되는 단계, 국가나 제국의 위기라는 네 국면은 유라시아의 동쪽과 서쪽 끝 모두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양 끝의 두 서사에서 나타난 유사성들을 나름의 모델을 통해 제시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세계의 독자적 농경 발상지는 메소포타미아, 황하·장강 유역, 파푸아 뉴기니 섬의 고원, 멕시코, 안데스이다. 더불어 동 사하라에서는 목축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고대 4대 문명중의 하나인 인더스 강 유역은 좀 애매한데, 이 지역 농경의 시작 자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나일강의 농경은 확실히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 책에서 서양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생한 농업 문명의 전통을 계승하는 지역이고, 동양은 황하·장강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을 계승한 지역이다. 같은 논리로 뉴기니 지역, 멕시코 지역, 안데스 지역 등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는 이런 구질구질한 시도를 일축하고 동양과 서양의 비교에만 집중한다. 이미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총·균·쇠》에서 밝혔듯 각지에서 발상한 문명은 그 초기조건이 대등하지 않았다. 길들일 수 있는 야생 식물과 동물의 다양성이 지역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가장 유리한 환경에서 발상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그보다는 좀 덜 관대하지만 나름 쓸만한 조건에서 출발한 황하·장강 유역에서 발생한 문명을 계승한 문명들만이 실질적으로 비교할 의미가 있는 사회발전포인트를 모으는 데에 성공했다.
오직 소수의 제안만이 설득력 있는 역사의 법칙으로 인정받았다. 한 세기 반 전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사적 유물론을 제시하면서 역사발전 5단계설을 제시했고 상당한 호응을 받았으나, 유럽을 제외한 지역에서 이 가설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특히 4단계에서 5단계로 가는 발전은 세계 어디에서도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나는 왜 서양이 지배하느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제 적어도 동양과 서양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역사에 대한 가설이 제시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감탄을 했었다.
이 책의 미덕은 균형 잡힌 서술이다. 동양사와 서양사를 균형 있게 서술하려고 하고 있다. 적어도 분량 면에서는 양자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서술되고 있다. 더더욱 재미있는 부분은 이러한 균형이 시간 방향으로도 견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밀레니엄, 그리고 그 전의 밀레니엄에 대한 서술의 분량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전 밀레니엄까지를 봐도 그렇다. 이런 서술상의 특징은, 이 책이 저자가 수집한 역사적 사실을 단지 나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저자가 제시한 각 단계의 법칙들이 실재 역사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맞추어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런 서술은 관점에서 벗어나는 사건들을 축소시켜버린다. 강희제, 지못미)
저자는 역사의 추동력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원칙을 제시한다. "게으르고 탐욕스럽고 공포에 질린 사람 무리의 행동"이 역사를 추동한다는 것이다. 여러 코로랄리들이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다. 첫 번째는 역사 발전의 큰 방향성이 동양과 서양에서 다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 인간 집단이 같은 조건에 처하게 된다면, 그들의 반응 역시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통계에 나오는 대수의 원리가 언뜻 연상되는 원리인데, 개개인이 가진 나태, 탐욕의 크기나 공포에 대한 민감성이야 다 다르겠지만, 이들을 집단으로 묶었을 때 나타나는 정도는 평균에 수렴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에 나타났던 사건들을 이 원칙에 엮기 위한 시도를 여러 번 한다. 태·탐·포 원리의 또 다른 코로랄리는 "영웅이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에 영웅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이 역사의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감상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들을 주관적인 견해와 함께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 기억력의 한계 때문에 책 뒷부분에서 앞부분으로 진행된다.
1. 일종의 사고 실험인데, 1800년부터 시계를 한세기 반씩 거슬러 올라가면서, 만약 그 때 그 시점에서 역사가 다시 흐른다면, 그래도 역시 21세기 초반에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까를 묻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서는 찾아볼 자료도 많고, 할 말도 많기 때문에, 나중에 별도의 글을 쎄울 생각이다.
2. 로마와 한나라가 몰락한 후, 동양과 서양의 중심지는 공히 유목민에 의한 문명의 질적 저하를 경험하면서 그 충격을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 간다. 동아시아에서 그 극복의 중심지는 장강 이남의 미작전선 확장이었는데 반해, 서양에서는 그러한 농경의 신개척지가 없었다. 서양에서 새로운 문명의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아랍 세계에 세워진다. 이 때문에, 프랑크 왕국은 개무시를 당한다. 서술 분량에서 찬 밥일 뿐만이 아니라, 실재로 샤를마뉴가 이웃 제국들에게 개무시를 당한 일화를 소개한다. 유럽이 이렇게 개무시당하는 세계사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기록해 둔다.
3. 종교와 사상에 대한 설명 역시 인상적이었다. 부처, 예수, 공·맹,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묘하게도 유사하다. 그리고 실재로 이들은 인류의 문화·문명에 결정적 족적을 남겼다. 이 사상을 작가는 추축사상(Axial Thought)라고 명명했다.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해서 동양과 서양에서는 연합체 수준의 국가들 사이에서 중앙집권국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중앙집권국가는 유지비가 많이 드는 체제이다. 단적으로 충성의 대가로 상비관료와 군인에게 끊임없이 지불되어야 할 임금만을 생각해도 그렇다. 하지만 중앙집권국가는 사회 조직이 더 고도화되고, 더 높은 수준의 사회발전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총합이고, 그 관계의 총합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곤란하다. 추축사상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이전 시대와 같이 神인 척 하는 왕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원을 전후하여 동양과 서양에는 漢과 로마라는 인류 최초의 본격제국이 형성된다. 이 두 제국은 스텝 지역을 횡단하는 유목민족을 매개로 하여 교류를 하게 되는데, 이 루트를 통해 전염병의 교류가 시작되고 결국에는 두 제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방아쇠가 된다. 한편, 제국이 망하고 야만스런 유목민이 날뛰는 혼란기(오호십륙국시대의 귀축황제들을 떠올리라)의 정신적 충격을 추축사상이 위무하는 양상 역시 동서양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 책에는 제국 멸망 후 게르만족과 선비족에 각기 시달리던 유럽과 중국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신도 증가, 수도원(절)의 사회적 역할 등이 너무 대칭적으로 비교되어 있어서 그것을 이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내가 멍청해 보일 지경이었다.
4. 농경 문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지역들이 소개되었다. 유럽 본토의 발트해 연안 지역과 한반도이다. 이 지역의 공통점은 풍부한 해산물이 난다는 점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한 듯, 농업 유적이 훨씬 늦은 시기에 발견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소로리 볍씨 같이 한반도에서 이른 시기에 농경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유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자가 오래되거나 편벽한 가설만을 인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에 읽었던 《1491》에서 얻은 아이디어인데, 만약 북미에서도 농경의 발견과 전파가 외부의 방해 없이 진행되었다면 브리티쉬콜럼비아의 온대우림지역과 뉴잉글랜드 지역은 농업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한편 아쉬웠던 부분들도 있다.
1. 먼저 동양사에 접근하는 데에 사용된 자료가 제한되었다는 느낌이다. 확실히 당·송 이전까지의 동양사 서술은 충분히 서양사의 서술과 균형을 이루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원대 이후로는 그 밀도가 확실히 떨어진다. 특히나 서양사와 비교하자면 더더욱 그러하다. 저자의 주장을 뒷바침하는 근거 위주로 서술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원·명·청대의 서술은 정치적 상황에 대한 서술이 너무도 빈약하다. 특히 같은 시기 유럽의 정치 상황에 대한 면밀한 고려나 서술과는 확실히 대비된다. 산업혁명 직전의 가장 결정적 순간의 유력한 두 경쟁자를 비교하는데 편파판정 시비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2. 두 번째로 지적될 만한 부분이라면 지나친 색드립이지 않나 싶다. 일단 색드립은 긍정적인 인상을 주기도 했는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처 테오도라가 그런 경우이다. 사회시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배운 기억은 날 테지만, 그의 부인이었던 테오도라는 대부분 생소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에 소개된 몇 가지 일화만으로 충분히 독서를 중단하고 딴 짓을 하게 될 만큼 강렬했다.
책에서 테오도라는 측천무후와 병치되었다. 프로토 페미니즘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두 여인의 통치를 예찬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두 여성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 것은 신선한 관점이지만, 그 시기에 동서양에서 걸출한 여성 통치자가 나온 것은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으로 치부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그 전의 여걸이었던 여황후도, 그녀의 짝패가 될 법한 클레오파트라도, 어쩌면 히미코도, 책에는 언급되지 않은 듯 하다.
한편 과도한 색드립은 중국사의 서술 부분에서 반복해서 나타났다. 포사의 고사를 설명하는 부분에, 벌거벗은 궁녀, 응? 내가 고사를 원전을 읽은 적은 없으니까, 넘어가자. 그런데 송대의 연료난과 석탄 채굴을 묘사하는 한시를 해석하는 부분에서 뜬금없는 매춘드립이 나오는 것은 에러가 아닌가 싶다. (蘇軾의 시에 나오는 "濕薪半束抱衿裯"는 "젖은 땔감 한 꾸러미를 품에 안고"로 《코끼리의 후퇴》에는 번역되어 있다. 요 앞의 문단 1에서 지적한 부분과 상통하는 지적인데, 중세의 중국사에 대한 서술은 《코끼리의 후퇴》에 굉장히 의존하고 있는 듯해 보인다.)
3. 책의 주요 내용과는 매우 상관 없는 내용인데, 先호모샤피엔스 시기, 동과 서의 특징적인 차이를 설명하면서 아슐리안 돌도끼의 분포 한계인 모비우스 선이 나오는데, 전곡리 돌도끼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다.

내 생각

1. 기본적으로 어떤 지역의 인간집단이 그 기술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물질과 에너지는, 지리와 지질에 의해 제한된다. 역사에 등장해 온, 인간이 사용했던 물리력의 바탕은 기본적으로 해당 인간 집단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이었다. 그리고 그 물리력을 투사는 주체인 개개인을 적당한 위치에 놓고 자원을 배분하는 방법인 제도와 그 행동을 규제하는 내적 규범인 염치가 앞서 말한 물리력의 투사를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만든다.
2. 이 책에서는 코어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코어는 문명의 핵심 지역이다. 동양과 서양의 비교는 사실상 동양의 코어와 서양의 코어의 비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코어라는 지역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서는 코어는 시대에 따라 이동한다는 것을 명시한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코어를 정할 것인가? 코어에 대한 저자의 논리가 가지는 취약점이 명·청 교체기의 동아시아를 서술하면서 노출된다. 놀랍게도 이 시기의 서술에는 중국만큼이나 일본이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서술되어 있고, 또한 도쿠가와보다 도요토미가 더 자주 언급되는데, 그것도 무려 중앙집권과 해외팽창이 그 당시 인구증가에 대처하는 일반적인 방법이었음을 언급하면서 그 예로 등장한다. 그가 유럽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잦은 전쟁 상황을 동아시아에 적용하려다 보니, 그에 딱 맞는 경우가 전국 시대의 일본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해서, 16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증가하는 인구압을 전쟁으로 해소하려 했다는 전제 하에서 본다면, 조선은 그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단지 조선이 당시 동아시아의 코어가 아니었기 때문인가? 그렇다기 보다는 저자의 의도와 현실이 상응하지 않기 때문 아닌가?
이러한 논리가 수긍되기 위해서는 코어의 정의가 주장과는 독립적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자가 선택한 코어와 저자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역사의 패턴은 서로 순환논증의 관계에 있다는 혐의가 짙게 느껴진다. 작가의 관심, 가설, 또는 편견에 따라서 역사의 어떤 특정한 부분만이 과장된 셈이다. 또한 원·명·청대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설을 풀기 위한 무리수이기도 하다.
3. 그리고 이 부분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 대한 완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수학·과학이 오직 유럽에서만 발달했기 때문이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설명은 다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필요로 한다. 첫 째, 동양과 서양에서 발달해 온 수리기술이 실재로 차이가 있었고, 동양에서는 현대의 수학·과학이 기초로 하고 있는 정신활동요소가 결여되어 있었는가? 둘 째, 그 차이가 어떻게 서양의 지배를 유도했는가?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면, 세 번째로 어째서 유럽에서만 수학·과학이 발전했는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첫 째 질문의 답은 명쾌하다. 고대 그리스의 "증명"과 같은 정신활동이 동양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한 번도. 다른 말로, 동양의 수리기술은 산수였지 수학은 될 수 없었다. 두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이 다시 쓸 수 있다. "증기기관은 지식의 축적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실현된 것인가, 아니면 기술적 필요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제작된 것인가?" 증기기관의 발명은 지식의 축적과 기술적 필요가 동시에 필요한 일이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었다. 반면 같은 시기 청나라에서는? 지식의 축적은 둘째 치고, 기술적 필요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의 관측도 가능하다. 건륭제 말년 경에 청나라 산시성 일대에서 석탄을 이용한 원시적인 증기기관이 숙련된 기술자에 의해 탄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그 기계가 관심을 끌 수 이었을까? 심지어 증기기관에서 나오는 동력을 실 잦는 일에 투입할 수 있는 형태로 개량까지 되었다 하더라도, 그 기계장비가 널리 퍼지기에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적대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농민인구가 과밀했던 당시 상황에서 농가의 추가 소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직물 제조가 기계의 힘으로 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신사 계급이 두고 봤을까 싶기도 하다는 말이다.

결론

재미있고 흥미롭고 자극적이고 논란이 있는 책이었다.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인 서양인의 세계관에서 동양을 서양의 대칭점에 두고 양자의 발전을 비교하려는 시도는 참신했다. 비록 그 시도가 완숙기에 들어선 동양 사회의 불충분한 이해에 가로막혀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초점을 놓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시도는 동양인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 동양인들은 동양사와 서양사를 함께 배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설명의 틀을 제시하는 데에 동양 사람들은 서툰 것 같다. 이런 측면도 혹시 진정한 의미의 수학이 발전하지 못한 동양의 지적 토양이 계승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 때, 그리고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이어령 식, 혹은 이규태 식의 문화론이 횡횡한다. 답을 정해놓고 부합하는 사실만을 몰문맥적으로 가져다 붙이는 설명이다. 이런 식의 이해가 무가치함은 설명을 덧붙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최근 서양의 문명사에 대한 저작에서 볼 수 있는 인상적인 특징은,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는 조건들에 대한 논의를 자연과학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올의 해석에 따르면 도덕경의 "天地不仁"은 자연은 엄연하다는 뜻이다. 자연은 동양인과 서양인을 차별하지 않고, 개별 인간의 삶과 죽음 또한 저어치 않는다. 산소라는 자연적 자원에서 5분 이상 차단되는 어떠한 호모 샤피엔스도 사망한다. 인간은 먹지 않고서 살 수 없으며, 경작 가능한 토지가 없는 상황에서 농경을 발전시킬 수 없으며, 연료 없이 북반구 온대지역의 추운 겨울을 살아낼 수 없고, 천연의 금속자원 없이 청동기·철기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다. 일본이 조선과는 달리 17세기에 세계경제 체제에 편입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특별히 새로운 문화에 열린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땅에서 귀금속이 쉽고 흔하게 채굴되었기 때문이고, 경덕진의 유명한 도자기는 그 지역의 탁월한 고령토 때문이었지 중국인들의 탁월한 미적감각 때문이 아니었다.
16세기 이후의 동양과 서양의 정치적·사회적 발전을,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가용 자원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서술한 저작을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