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매직넘버 543

뿌리와 이파리에서 나온 《눈의 탄생》을 읽었다.

지질시대는 크게 명왕누대, 시생누대, 원생누대, 현생누대. 이렇게 크게 네 시기로 나뉘어진다. 시생누대는 38억년 전부터 25억년 전까지, 원생누대는 25억년 전부터 5억 4200만 년 전까지, 현생누대는 그 이후이다. 38억년 이전 시기의 암석은 지구상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시피하며, 이 시기를 명왕누대라고 한다. 이 책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원생누대와 현생누대의 경계를 전후로 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지구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되는 시기이다.

현생누대의 가장 오래된 시기는 캄브리아기이다. 캄브리아기의 시작은 삼엽충의 등장 또는 비슷한 시기 특정 종류의 생흔화석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로 결정하며, 앞서 말했듯이 5억 4200만 년 전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100만 년 후의 퇴적암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매우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이와 같은 갑작스런 화석 기록의 “폭발”은 캄브리아기의 폭발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 폭발의 이유를 추적하고, 그 범인으로 “시각”을 제시한다.

다윈은 유명한 《종의 기원》에서, 캄브리아기에 갑자기 화석기록이 많아지는 것은 점진적인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 적이 있고, 더하여 눈과 같은 완벽한 기관이 자연선택을 통해 만들어지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하고 쓰기도 했다. 이 책은 다윈의 두가지 걱정을 풀어준다.

캄브리아기의 극초기에 시각을 가진 삼엽충이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포식이라는 전략이 최초로 가능해졌고, 이는 절대적인 진화압으로 작용하게 된다. 캄브리아기 초반,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고 불리는 그 시기동안 여러 전략들이 제시되고 시험받게 된다. 그리고 그 폭발이 끝난 이후에는 포식과 그 방어기제가 다시 균형을 이루며, 이른바 포식자와 피식자간의 평행한 군비경쟁의 시기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소소한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것들을 열거해 본다.

눈은 “여러 번” 완전히 개별적으로 진화했다. 진화 계통수와 현재 눈을 가진 생물, 그리고 화석으로 발견되는 조상 생물들이 눈을 가졌는지 여부를 조사해 보면, 눈의 진화는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예를들면, 절지동물들이 이미 눈을 가지고 으스대고 있을 때, 동시대에 살던 척추동물의 조상 생물은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척추동물의 눈은, 이후에, 절지동물의 눈과는 별개로 진화했다는 뜻이다.

콩벌레라고 알고 있는, 그 쥐며느리의 가까운 친척뻘 되는 생물이 심해에도 살고 있는데, 이 친척은 좀 크시다. Bathynomus라는 등각류의 일족이신 분인데, 이렇게 생기셨다.
책에 칼라 화보로 있는 것은 이 사진보다 좀 더 인상적인데, 이 사진에는 크기를 비교할 만한 대상이 좀 애매하기 때문에, 좀 더 친숙한 동물인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다시 올려본다.
새끼 고양이가 처음에는 기겁을 하는 눈빛이 역력한데, 나중에는 신기한지 한 번 물어본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생각난다. 여튼 이 생물은 심해저에서 청소부 역할을 하며, 전 세계 어디에서 잡히는 놈이나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 빛이 없는 환경에는 진화압이 작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예로 이 놈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책의 도입부분에서 생명의 역사를 10장으로 나누어 설명한 부분이었다. 생명의 탄생, 무기물을 이용한 에너지 획득, 광합성, 세포핵의 형성, 세포의 합체, 다세포 생물, 조직의 분화, 혈액·내장 공간의 확보, 눈의 등장 등이다. 요런 단계적이고 도식적인  설명은 기억하기 쉽다. 그런데 마지막 10단계가 뭔지는 끝까지 설명한 안한 느낌이다. 性의 탄생 정도인가?

이론상 가장 작은 카메라형 눈의 크기는 1mm정도라고 한다. 그 실재는 Thorius라는 도롱뇽 류인데, 매우 귀엽다. 웹에서 찾은 사진들이 다들 저작권에 엮히는 것 같아, 링크만 걸어놓는다.
http://www.arkive.org/thorius/thorius-macdougalli/
이름도 외우기쉽네.



좀 호들갑스럽게 서술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좀 어려운 주제인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그 정도 오바 정도는 이해할 만했다. 그리고 나름 유머도 드물게나마 있었으니까.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식물 부문에 대하여서는 거의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동물 사이의 포식·피식 관계에 너무 집중을 한 나머지 식물을 포함한 생태환경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두번째로 왜 하필 그 때 시각이 진화되어 나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부분은 좀 많이 실망스러웠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외부의 자극에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사실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책에 다 설명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몸집이 커져야 하고, 또한 시각 영상을 처리할만한 신경 네트워크가 있어야한다고까지 설명을 했다면, 그 준비가 완성된 시기가 바로 매직넘버 5억 4300만년 전이었음을 보이면 될 일이었다. 실재로 시기가 비슷하다. 태양 광도가 변했을 수 있다는 논증을 위해 성간 물질의 밀도 변화라든지 은하계에서 태양의 위치같은 설명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음은 불확실한 부분인데, 책에서는 캄브리아기 직전의 생물들이 배회하다 우연히 포식을 하거나 죽은 시체에서 영양을 얻었을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음.. 좀 더 사실적이라면, 그 꿈틀거리는 벌레같던 생물들이, 시체가 있으면 냄새를 맡고 거기 우글우글 몰려들어 시체를 뜯어먹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시체에 선캄브리아기의 생물들이 우글우글 달라 붙어있는 화석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뿌리와 이파리에서 나온 또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생명 최초의 30억년》이라는 책인데, 이 책은 《눈의 탄생》이 다루는 시기 바로 직전까지의 생명의 진화를 다룬 책이다. 솔직히 술술 읽히는 교양서는 아니다. 《눈의 탄생》은 《생명 최초의 30억년》이 끝까지 제기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고 있다. 왜 생명은 그 최초의 30억년 동안 그토록 천천히 진화해왔단 말인가. 특히나 그 이후의 5억 4300만년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그 답이 “시각”일 확률은 매우 높아 보인다.

2010년 12월 27일 월요일

이주

일단은 텍스트큐브에서 권장(?)하는 대로 블로거로 옮기도록 신청을 했다.

겁나게 후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꺼렸었는데,

국내 서비스제공자로 옮기는 것은 더더욱 내키지 않아서리.

10일날 옮겨준다고 했으니, 기다리고 있다.

2010년 12월 22일 수요일

충격과 공포

http://media.daum.net/digital/view.html?cateid=100031&newsid=20101222083025905&p=hani

폭풍 댓글을 자석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핫한 기사다.

그 분의 목표는 결국에는 종신통령인 것인가.



이탈리아 친구에게 물어봤다.
언론을 장악한 것이 베를루스코니에게 큰 유리함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느냐?

답하되,
매체를 장악하는 것은 부수적이다. 베를루스코니가 계속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야당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도무지 신뢰가 가지 못하는 짓만을 하고 있다. 둘째로, 국민들이 자기중심적이다. 세금을 깎아주기만 한다면, 베를루스코니를 뽑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무리 나라가 빚더미 위에 있어도.



인터넷의 글을 자의적으로 마음대로 삭제하겠다는 생각이 누구의 어깨 위에서 나왔는지는 대충 알 법하다. 하급 관리는 징계를 먹고, 상급 관리는 탄핵을 당한다는데, 방통위는 당췌 어떤 기관이길래, 걸래같은 인간이 계속 거기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이들에 대한 탄핵소추는 법리적으로 불가능한가?



그리고
이명박이 자신의 자산과 부를 불려 줄 것이라고 믿을 만큼 지성이 모자랐다면,
최소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할 도덕성은 지녀야 했지 않았을까.


텍스트큐브가 세상 접는다는데, 외국에 서버를 두는, 외국계 회사의 블로그 서비스를 알아봐야겠다.
이렇게 심한 상심을 느끼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PS. 구글 어스에 바이칼호 측심 자료가 얹혀졌다.

2010년 12월 21일 화요일

잡담들

1. 두달 정도 됐나? ASS가 한나라당 인터넷 청년전위대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요즘들어 어디든 게시판 분위기들이 묘해 보인다.



2. 한나라당이 하는 말이라면 아무리 앞뒤가 안 맞아도 무조건 믿기로 작정한 사람이 아니라면,

요즘 매체에서 나오는 내용들을 새겨 들을 사람은 몇 없을 것같다.



3. 선형대수를 공부하다가 듀얼스페이스를 마주쳤다.

1주일 정도 낑낑거리다가 이제 대충 감을 잡은 것 같다.



4. 왜 국사를 배울 때, 정부의 재정상황에 대하여는 별로 가르쳐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고종 당시의 꼴을 보면 가관일텐데.

돈이 어디서 생기고, 어디에 쓰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단체의 거의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5. 핵 연료봉은 어디로?



6. 어제 소호대의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들었다.

오늘도 계속 들었다.



7. 제육볶음을 만들었는데, 양파가 없어서 파만 넣고 했다.

먹기는 하겠는데, 맛이 좀 빈다.



8. 중화제국쇠망사.. 언론사의 책선전 플레이에 낚인 느낌이다.

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몽턴 경을 신문에서 읽었다

예전에 프레시안에서 지구온난화 구라설을 발바닥에 땀나게 소개한 적이 있다. 그 때 좀 당황해 하며 쓴 포스팅이 있는데(http://jolysses.textcube.com/8), 그 때 몽턴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프레시안의 기사에 언급된 내용을 인용하면서 몽턴을 소개하게 되었다. 지금은 시스템 에러라고 그 기사가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 기사를 처음 읽고 몽턴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철자를 몰라서 못 찾았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기사를 주의 깊게 읽지 않았던가.

금요일에 차이트紙에서 자칭 지구온난화회의론자들이 칸쿤 근교의 슬럼가에 가서 무슨 썰을 풀었는지 써 놓은 르뽀 기사 비슷한거를 읽었다. (http://www.zeit.de/politik/ausland/2010-12/cancun-skeptiker) 아하, 거기에 몽턴 경이 나왔다. 그런데 거기 나온 몽턴 경이 좀 우스꽝스러웠다. 그 몽턴경이 라리베르다드라는 칸쿤 근교의 슬럼가에 있는 한 학교에서 했던 행동들을 옮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몽턴 경이라는 사람이 기후변화 문제에서 진지하게 언급되기에는 객관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내가 읽은 기사가 충분히 객관적이라면, 그의 주장이 합리적 사고의 결과라고 이야기 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자, 진보매체 프레시안이, 기후변화라는 주제가 자본권력과 과학권력의 결합이 만들어 낸 거짓임을 주장하는데 사용하였던, 몽턴이란 사람의 의견을 잘 보도록 하자.



번쩍이는 흰색 셔틀버스 세대가 칸쿤에서 20km떨어진 슬럼가의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달랑 건물 둘이 서 있는 허름한 초등학교에 차들이 섰다. 수백명의 학생들과 몇몇 부모들이 대표단들을 환영했다. 그 대표단은 영국자작 한명, 방금 칸쿤에서도 보았던 카자흐스탄의 UN 기후회의 대표 두명, 티파티운동 편에 서 있다고 밝힌 미국 여자 2명, 대표단 몇 명 더, 그리고 비정부기구 대표 몇 명인데, 이 비정부기구의 이름은 CFACT이다. 독일 기자도 하나 있었다. (아마 기자 자신을 말하는 듯)

질문: 작금의 기후변화에 대하여 무엇을 해야 하나?

CFACT가 뭔지 안다면,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쉽다. CFACT는 워싱턴에 본부를 둔 단체로, 스스로 “건설적인 내일을 위해” 일하는 단체임을 표방하면서, 석유산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기후 변화에 맞서 싸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될 수 있는 한 화석연료의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한줌의 좌파환경주의자들의 황당한 주장만큼 건설적인 미래의 도래를 방해하는 것이 없다고.

버스가 라리베르다드의 학교에 도착했을 때, 함께 여행을 온 사람들은 여러 질문을 통해 이미 몽턴 경이 기후 변화와 세계 정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CFACT는 때때로 석유산업과의 협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명확하지 않았다. 몽턴 경은 자신이 일행 중에서는 사실상의 대변임임을 숨기려하지 않았다.

몽턴 경이 자신의 세계관을 이상하게 언급할 때 말고는, 그가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는 마르크주의 주류 매체들이 마르크스주의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과학자들을 부패시켜서 거대한 기후음모를 계획했다, 그 목적은 세계정복 이하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몽턴 경에 따르면, 가난한 나라들의 모든 기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라는 것은, 사실은 나이브한 동시대 개인들이 정말로 지원이 필요한 곳에 쓸 수도 있는 그런 지원들은, 사실은 비민주적인 UN이라는 기구의 손이 쓸 수 있는 폭력적인 한 장의 카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가 발견하고 영구사회주의라고 이름붙인 이런 현상은 거대하게 자라버렸고, 합법화할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는 지배기구이다. 전형적인 예로 그가 독제자라고 이름붙인 EU를 들 수 있겠다.

이보시오, 몽턴 경! EU는 민주적인 국가들의 자발적인 연합이오. 그리고 칸쿤에는 선거로 뽑힌 정부들의 대표들이 어떤 경우에도 민주주의 이름으로 토론을 하고 있소. 자작님은 이런 반대의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기 기후회의에 오는 대표들 중 누구 하나라도 선거를 통해 뽑혔나? 아니요.

그러나 슬럼가 라리베르다드에 있는 허름한 초등학교가 기후변화에 대하여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기후변화문제에 있어서도 몽턴 경의 의견은 그의 정치적인 발언들과 비슷한 수준에 머무른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일군의 과학자들이 노력을 했지만, 그를 고치기 위한 모든 노력들이 별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라리베르다드로 발을 옮겼고, 한편 세명의 기타연주자들이 관타나메라를 연주하는 동안 몽턴 경이 운동장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 왜 아이들이 그를 환영했을까? CFACT가 학교에 조명을 달아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럼 왜 CFACT가 그런 짓을 하지? 기후보호에너지는 불필요하게 비싸지고, 그러면 전기에너지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전원을 끌 수 밖에 없어진다는 것이 그 단체의 의견이다. 그리고 CFACT의 사람들은 이런 관계를 UN-기후변화 화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란다.

CFACT가 학교에 태양판넬을 달려고 계획했다는 이론은 잘 맞지 않는다. 그들에 따르면 태양판넬은 혐오스러운 녹색기술로 전기료를 올릴 뿐이기 때문이다. 혹은, 유럽 나라들의 기후보호정책은 이 기술들을 값싸게 만드는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 결과 전력망에 포함되지 못한 라리베르다드 같은 곳에는 다른 어떤 전기조명방법보다 값이 싸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불이 들어올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운동장을 떠나는 동안 CFACT의장 데이비드 로트바드에게 물었다. 학교에 다는 태양광 조명은 단지 작은 계획일 뿐이라고 했는데, 다른 무엇을 할 계획은 무엇인지. 라리베르다드에 대한 해법은 CFACT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CFACT가 기후변화회의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동네에서의 쇼를 위해 적절한 연결고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돕고싶다면, 구호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회사를 세워야한다.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이 연출의 결과는 무엇인가. 티파티운동을 한다던 그 여자 둘은 이미 전부터 CFACT쪽에 서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두 대표는 스페인어는 전혀, 영어는 거의 못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불쌍한 사람들인 라리베르다드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줘야 한다고, 나중에 말했다.



여기가 기사의 끝이다. 고백하는데, 몽턴 경의 개그콘서트 이후 부분은 번역이 힘겨웠고, 무슨 이야기 하려는지 감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돈 많으면 뻘짓도 참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다.

전에 누군가 캡춰해서 올려 놓았던, Climate Swindle을 본 적이 있었다. 끝까지 보고 있기에 힘들었음을 미리 일러둔다. 그 다큐멘터리의 맨 마지막 쯔음에 캐냐였던가? 아프리카 모처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한 이야기가 나왔다. 불안정해서 별 도움이 안된다고. 그 연출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환경과 기후를 들먹이며 아프리카의 꿈을 짖밟는 저주스러운 것들. 누가 정말로 아프리카의 꿈을 갉아먹는지는 구지 여기서 따지지 않겠다. 다만 여기서 보이는 모순. 칸쿤에 다는 태양전지는 지구온난화구라론자들의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짜증. 기업의 사회봉사. 여기 나오는 CFACT는 명목상 비정부기구이지만 사실은 석유회사의 수족이듯 하다. 조그마한 마을의 학교에 조명시설을 달아주고는 생색을 낸다. 이런 거 많이 본다. 광고든 뭐든. 어릴적에 선행은 남 모르게 하라 그랬는데. 기업의 사회봉사 광고를 볼 때마다, 아침에 지하철 계단의 거지한테 500원 던져줬다고 생생내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자랑하고 다니는 모습을 나에게 뒤집어 씌워보고는, 수치심에 몸을 떤다. 이것이 바른 삶의 태도에 비추어 보는것이라면, 다른 측면의 질문도 가능하다.

기업입장에서라면 사회봉사는 기업의 홍보를 위한 수단이고, 같은 돈을 쓴다면 광고효과가 높은 사람에게 쏟아붙는 편이 이익이다. 불쌍한 사람들 중에서도, 광고효과가 뛰어난 사람들이 구호를 받는다면, 그것이 무슨 구호냐, 미친. 예전에 한 번 어디서 봤다. 사랑의 리퀘스트인가, 거기서 출연자를 모집할 때, 심사를 받고 그 중에 가장 불쌍한 경우만 출연이 가능하다고. 그래서 출연희망자 중에는 구라를 치는 경우도 있다고. 불행한 운명 또는 상황이 상품이 되어 거래되는 것이 정의로운가? (ㅎㅎ 책좀 읽었다.) 혹은 불쌍한 사람들 중 일부만 구호를 받는것이 공정한가?

불운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도움은 ARS 띡띡 눌러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추구할 대표에게 선관위 도장을 꾸욱 찍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더욱 확실해지는 요즘이다.

잠시 이야기가 샜지만, 어쨌든 기후변화구라설이 요즘들어 많이 잠잠해진 것 같아서 참으로 다행이다.

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책을 읽다

요 근래에 책을 좀 많이 읽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제야 다 읽었고, 그 전에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을 읽었다. 물론 다른 책도 더 읽었다. 2권 읽고 많이 읽었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고등학교때 배웠던 윤리과목 내용이 많이 기억났다. 공리주의를 한참 설명하고, 또 그 원칙이 적용되는 예시들과, 이들 원칙들의 명백한 한계를 제시하였다. 그 때 제시되는 예들이 생각을 많이 자극했다. 특히나 사고 팔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고 공리가 증가하는가 하는 질문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읽었던, 자유시장이 자유로운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하는 내용과 연관되어 있었다. 덕분에 좀 더 풍부한 예를 떠올리면서 막가파식 공리주의자나 시장원리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생각을 비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 등장하는 사람이 유명한 임마뉴엘 칸트. 고등학교 윤리책에서 배운 칸트에 대한 설명이 뭔가를 왜곡하거나, 빠뜨린 부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당연히 서술의 깊이가 달랐다. 오랜만에 수능 이후 묻어두었던 지식을 꺼내어 확인해 보고, 또한 칸트의 생각을 한층 더 음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윤리책에서 배우지 못했던 사람이 등장했다. 존 롤스. 저자는 칸트와 롤스를 같은 범주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이 아리스토텔레스. 뭥미? 어리둥절하며 그의 목적론에 대한 설명을 뒤따라 읽었다. 그 뒤를 잇는, 그의 목적론만이 가장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예시들. 가끔 맞는듯 하지만, 사실은 이런 예들은 소가 뒷걸음치다 개구리잡는 격 아닌가. 화성에서 생명을 찾느니 하는 시대에 웬 아리스토텔레스?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은, 나의 선입견 이상이였으며,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집단책임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모든 인간이 가져야 할 보편적인 책임 외에,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존재한다. 그것을 설득력있게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의 문맥상에서, 이야기의 주체로서 살아있다. 가족·공동체·국가 같은. 그리고 이런 시각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읽은지 며칠 되서 까먹었다. 다시 읽어야 한다.

칸트나 롤스가 이야기 한 자유로운 개인. 그리고 23가지에서 읽었던, 자유시장 원리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개인. 요 두가지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뜨끔해 보였다. 아, 아니다. 원리주의자들의 합리적인 개인은 공리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바와 부합하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아 보인다.

《정의란 무엇인가》나 《그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23가지》는, 정치·도덕분야나 경제 분야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의 한계들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정의란 무엇인가》는 영향력이 컸다. 아마도 앞으로 계속 영향을 줄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유로운 개인”에 초점을 두고 생각하고, 행동해왔다. 내가 속해있는 문맥보다는, 내가 써 내려가고 싶은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소극적인 내 성품에 더 부합했다. 그런 맥락에서 “용기”라는 덕목은 “만용”이라는 악덕과 본질적으로는 구별되지 않는 것이었다. 단지 그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는 덕목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맥 속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리고 결코 그 문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는, 아마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짊어져야 할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이 때까지 이 점을 납득할 수 없었고 (정말로), 최대한 이런 문제를 회피하려고 했었다.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 책은, 그 지점을 납득시켜줬다.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회피하려고 했던 그 책임을 지는가 여부를, 타인을 평가할 때, 내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가혹한, 관점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매우 부끄러웠고, 또한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지”하는 생각과 욕구가 생겼다.

책장수는 아니지만 일독을 권하는 책들이다.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떼거지 적색왜성들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적생왜성들이 존재한다는 관측 보고가 발표되었다. (http://media.daum.net/digital/view.html?cateid=1043&newsid=20101202213916253&p=khan)

적색왜성은 크기가 작아서 어두운 별들이다. 별의 특성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질량이다. 질량이 큰 별은, 일단 크기가 크고,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영역이 크다. 따라서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고 방출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별이 단위시간당 만들어 내는 에너지의 양은 질량이 커질수록 더 빨리 증가한다. 그 결과 큰 별은 더 빨리 연료를 소모하게 되고, 수명은 더 짧다. 무거운 별은 밝고, 수명이 짧지만, 겨우 불이 붙은 정도인 적색왜성들은 아주 오래 빛날 수 있다. 비록 희미하지만 말이다.

적색왜성은 어둡기 때문에 관측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는 다른 은하에 얼마나 많은 적색왜성이 있을까 하는 질문에, 단지 우리 은하의 관측값을 적용해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우리은하보다 더 많은 적색왜성이 외부은하에 있고, 특히나 타원은하에는 10배는 많은 적색왜성들이 있음을 관측을 통해 보여준다.

연구 결과로부터 두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첫번째는 적색왜성들이 암흑물질중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거는 잘 모르니까 넘어간다.

두번째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행성들이 존재하리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별들이 훨씬 더 많으니까. 더하여 적색왜성들은 가늘지만 오래간다. 그 말은, 이런 별들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에 생명이 깃든다면, 이 생명들은 긴 시간동안 진화할 수 있고, 지성을 갖춘 생명을 키울 가능성도 높아진다.

소년아, 얼굴을 들어 하늘을 봐라. 요새 밤하늘에 밝게 보이는 별들 역시, 행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에는 환경이 적절하여, 암석 덩어리를 둘러싸는 얇은 휘발성 물질이 만들어 놓은 연약한 공간에서, 대사와 유전을 통해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 우리와 통신을 할만큼 발달하지는 못할 것이다. 밝은 별들은 겨우 몇 억 년 존재해 왔었고, 역시 겨우 몇 억 년 더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지구가 인간을 키워내기까지 46억년이 걸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억년만에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여, 망해가는 모항성을 탈출할 능력을 가진 지적 생명체가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적색왜성들은 다르다. 태양이 100억년 쯤 살고, 지금은 중간쯤 왔는데, 적색왜성들은 당연히 훨씬 더 오래 빛날 수 있다. 지난 번 떠들석했던 글리제 581역시 적색왜성이다.

오늘은 또 다른 재미있는 소식이 있었다. 미국에서 인 대신 비소를 사용할 수 있는 박테리아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 박테리아는 단백질, 지방 뿐만 아니라 핵산에 들어가는 인도 비소로 치환하여 살 수 있다. 이런 생명체 확장형들(alternative biochemistry라고 하는 것 같던데, 적절하게 우리말로 쓸려면 어찌해야할 지 모르겠다.)은 SF에 단골 소재로 사용되다가, 이론적인 확장형들에 대한 과학적인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http://en.wikipedia.org/wiki/Hypothetical_types_of_biochemistry에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탄소 대신 규소, 산소 대신 황이라든지, 물을 대신하는 여러 용매 같은 다양한 가정들이 이론적으로 제시된 적이 있었는데, 그런 실제가, 그것도 외계도 아닌 지구에서 발견되었다. (그것도 미국에서. 역시 천조국.)

생명 작용과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외계 생명의 존재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ps. 어느날 갑자기 지구의 주요 대도시 위에 외계에서 온 원반이 자리잡고, 지구는 혼란에 빠진다. 어떠한 커뮤니케이션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음파나 전자기파를 통한 교섭 요청이 적대적으로 묵살되고, 무력으로 출입구를 여는 시도마저 좌절되어, 전 인류가 공포에 빠진 순간, 외계인들이 지구의 방송 전파를 장악하고 최초로 그들의 의사를 전달한다.

예수믿으세요.



그럴까봐 겁난다.

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

한참 예전에 김경진의 본격 밀리터리 소설들을 즐겨 읽었었다. 수능 끝나고 읽었던 《남북》은, 가상의 남북전쟁을 다루고 있었다. 분명 최소 두 번은 읽었는데, 막상 그걸로 썰을 풀려고 하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에서 어떻게 전쟁이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사라졌다.

전쟁을 다루는 소설이 그 전쟁이 시작되는 이유를 어떻게 그럴듯하게 꾸며댈 것인가. 배후도 없는 어느 엑스트라 청년이 황태자를 암살한다? (1차대전) 정의의 우리편 나라가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 피격사건을 날조한다? (베트남 전) 테러단체가 비행기를 납치해 제국의 좆에 꼴아 박는다? (2차 이라크 전) 실재 일어났던 전쟁 중의 몇몇은 그 시작이 탄탄한 시나리오를 구성하지는 못할 것 같다. 다는 아니지만. 그리고 어쩌면 왕위선양을 위한 업적쌓기의 일환이었던 불장난이 손아귀를 벗어났다는, 별로 아름다워보이지 못하는 시나리오가 목록에 추가될지 모르겠다.

전쟁소설을 읽으면서 확고해진 생각 중의 하나는 전쟁은 무조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죽어가는 사람들은 그냥 보통 사람이다. 전장에서 고통스럽게 싸우다가 더 고통스럽게 죽어갈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들은, 대체로 하필 그 때 20대가 되는 불운을 타고 태어난 남자들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전쟁이 나면 언제든 “방금 전까지 졸리시스였던 단백질들이 흩어져 땅에 널부러졌다.” 같은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특히나 수도권에 있다면, 20대 남자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된 김에 전쟁을 통해서라도 저 악마 김정일 왕조를 작살내고 압제에 신음하는 북한 동포를 구해야 한다고. 희생이 따르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옳은 이야기이다. 단, 그것이 개인의 일이라서 희생도 개인이 하고, 그 영광도 개인이 차지하는 일이라면, 옳다. 저런 주장은, 아주 잔인한 사실을 교묘하게 위장한다. 희생은 니가하고, 영광은 내가 챙긴다는 사실. 죽어갈 젊은 남자들은 병역에서 면제받지 못한, 아무런 권력도 부도 연줄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운 좋게 전쟁이 성공한다면, 무고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어간 전쟁을 결정한 사람들은, 60년에 걸친 민족의 분열 상황을 일거에 종식시킨 용기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이건 구라가 아니다. 바로잡지 못했다면, 역사는 되풀이 될것이다. 35년 동안 계속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몸을 바쳐 희생했던 독립운동가, 민족지도자들의 가문은 그야말로 “완전히 몰락했다.” 그리고 그 동안 일제에 협력해 통치의 작은 톱니바퀴벌레 역할을하던 친일파충류의 사생아들은, 아예 국부의 영광을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폄훼하고 축소하고 부정하고 있다. 되풀이된 역사의 축적. 그것이 문화 아니던가.

우리는 이런 몹쓸 객관식 문제를 강요받고 있다.

1. 누구의 영광을 위해 당신은 당신을 이루고 있는 단백질과 지방을 해체시켜 땅바닥에 흩트릴텐가.---(    )
① 쥐
② (일본과)한 나라당
③ 삼성
④ 순볶음교회
⑤ 미국

당연히 여기에 정답은 없지만, 시험에 임했다면, 혹은 전쟁을 시작했다면, 답을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따위 좆같은 시험을 강요하는 놈의 아가리에 시험지를 구겨 처넣는 것이다. 지난 60년간 우리는 민족이라는 답안을 이미 지워버렸지 않는가? 전쟁을 하면서 인류니 정의니 하는 헛소리를 입에 담을 수는 없다.

김대통령이 아직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하셨을지 상상해본다. 민간인을 사살한 북한을 강력히 비난하겠지만, 또한 역시 평화를 강조하시지 않았을까. 또 다시 찌라시들이 용공분자라고 끝도 없이 빨갱이칠을 하고, 검창은 나서서 있지도 않는 혐의를 덮어씌우겠지만, 그래도 평화밖에 없다고 강조하시지 않았을까. 2010년의 국회에는 딱 한 사람 있었다. 그리고 그는 민주당이 아니었다. 슬프다.

나는 3년 전에 사람들이 크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속았는지는 앞에 선택지로 제시되어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왜 거짓말을 했냐고 따져 묻기 시작하면, 그는 곧 다른 소리를 횡설수설 지껄이면서 또 다시 나를 속이려고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그는 부와 안보와 자유를 약속했는데 지금은 그 세 가지가 모두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러자 “북한이 우웩웩......” 거리며 지랄병을 또시작하고 있다. 김무성이가 정신나간 사람들이 대화를 이야기한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 거짓말쟁이들의 설레발이에 또 속아넘어가면서 얼씨구 맞장구 치는 인간들이, 정신이 나간 것 처럼 보인다.

자신의 능력으로 이 문제를 수습할 수 없음을 동물적 직감으로 느낀 우리의 쥐통령은 이제 불장난을 형님이 허용하는 최대한으로 벌릴 생각이다. 당연히 국민은 좋게 봐줘야 부차적 고려대상이다. 그의 주인은 오직 미국이니까. 불장난을 용인하는 댓가로 미국은 FTA를 요구하고 있다. 민동석이나 김종훈 같은 폐기물을 탄핵하지 못한 국회는, 아니 감히 그런 짓을 못하는 국회를 만들어 준 국민들은, 그 청구서를 결제하기 위해 자식들을 노비로 내몰아야 할 것이다. 200년 전에 양민이 자매문기를 쓰며 몰락해 가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말이다.

사기꾼이 들끓는 이유는, 바보들이 들끓기 때문이다.

흉탄에 희생된 네 분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 생에는 안전한 곳에서 태어나십시오.

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타원 궤도

얼마전에 모 회의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런 시간들은 사적인 일들을 생각하기에 좋은 시간들이다.

뜬금없이, 내가 아직도 뉴튼에서 캐플러법칙을 유도할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회의 내용을 메모하는척 하며 식을 좀 끄적거리다 보니, 역시나, 다 까먹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 공부를 하여 정리하였다.

맨 마지막의 2계 미분방정식을 푸는 과정을 학부 때는 애초에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까먹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계속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데, 왜 할 줄 알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2010년 11월 8일 월요일

무상급식

의무교육에 준비물과 급식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무상급식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복지 자체를 좌경시(라고 쓰고 '죄악시'라고 읽는다)하는 사람들도 대놓고 반대하기가 눈치보이는 상황인듯 싶다. 그래서 꺼내 든 카드가 부자급식이다. 왜 부자들 도련님들 밥값을 세금으로 내느냐. (예전에 고액권 발행할 때, 비슷한 수법이 먹혔다. 신사임당이 5만원권에 올라가는 것을 반대하셨던 분들, 기실은 김구가 싫으셨죠? 뭐,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굉장히 낯간지러운 주장이지만, 그나마 사람들의 시기심에 호소할 수 있는 주장이라 계속 깃발을 들고 있는 듯하다. 왜 일본 속담에 있지 않는가. 100번 우기면 거짓말도 정말이 된다고. 또 있다. 원래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는 설득력 있는 주장보다는, 호소력있는 주장이 더 잘 먹히는 법이다.

역지사지를 해보았다. 나는 존경받는 부자인데, 자녀들 급식을 국가에서 보조해 준다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렇다. 방법이 있다. 덕분에 굳는 돈은 기부하면 된다.

대상 자녀들의 5%는 대한민국 5%의 자녀일 것이다. 요즘은 저소득층의 출산률이 상대적으로 더 낮으므로, 그 비율은 점차 올라갈 것이다. 요즘 한 학년 학생수가 전국 40만 정도인가? 그럼 6개학년 대상으로 친다면 240만 명. 그 중에 5%는 12만명 가량이다. 얘들이 한달에 20일 등교해서 2500원치 밥을 먹으면 한달에 1인당 5만원. 따라서 한달에 대한민국 5%자녀의 밥값은 60에 10의 8승. 60억원. 이 돈을 기부로 돌릴 수 있다.

급식기금을 만들어서 한달에 60억원, 방학빼면 1년에 600억원의 돈이 들어오는 복지재단을 만들어서 운용하면 된다. 이런 재단은 세금보다 메리트를 가지는게, 대한민국 5%의 의도대로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가 좀 메리트가 있지 않는가? 나름 윈-윈 전략인 것 같아서 적어본다.

2010년 11월 6일 토요일

회사

(대)기업의 합이 국가인가?

적어도 지금 정부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세금을 걷고, 행정권을 행사한다고 다 정부가 아니다.

동인도회사도 인도에서 세금을 걷고 행정권을 행사했다.



복지는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맡는 것이라고 국무총리가 일갈했다.
원전수출의 대가로 군이 파견된다.
오직 대기업의 입맛에만 맞는 무역협상 때문에 쫒겨났던 자가,
자신은 국가를 위해 일한 공직자라고 내뱉고 다닌다.
기업을 위해 주권을 제한하는 무역협정을 비준만 남겨두고 있다.



그러다가 사업은 부진해지고 직원들은 부패했다.
동인도회사 이야기다.
회사를 통한 지배가 한계에 다다르자, 영국은 인도를 직접지배체제하에 둔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그 잘난 민영화는, 이미 19세기에 끝장났었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무게

소득과 행복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항상 나오는 나라가 방글라데시이다. 솔직하게 까놓고 이야기해서, 나의 소득과 방글라데시의 행복을 교환하라고 하면, 나는 쥐꼬리만한 지금 나의 소득을 계속 고집할거다. 나는 아닌척 하지만 속물이고, 방글라데시인의 행복은 동굴에서 느끼는 편안함이라고 확신한다.

비슷하게 자유와 행복 역시 비례하지 않는다. 무한한 자유가 주어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대신에, 폼나게는 고독, 찌질하게는 외로움이라는 반대 급부를 지불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도 그에 따른 책임도 오로지 자신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쥐면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되고, 또한 출세를 바라 우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외로울 새가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다른 더 큰 힘이나 권위에 코가 꿰는 것 아니던가. 그것이 자유겠는가.

오늘은 뭘 해야할지 몰라서 무기력한 날이었다. 이런 날이 제일 싫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에, 막상 무얼 해야할지 몰라서 멍청하게 시간을 보냈다.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느끼는 무력감과는 좀 다르다. “나는 결국 주체적일 능력이 없는 인간인가” 하는 의심은, “넌 왜 이것 밖에 못했어” 하는 질책보다 더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후회를 담은 하루가 지나갔다. 비슷하게, 감당하지도 못할 자유를 찾아 사소한 행복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면서, 한 번 뿐인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맞이하지 않을까. 무섭다. 그리고 두렵다.

그렇지만 나는 확신한다. 부자유스러움이 주는 편안함은 마약이다. 그 왜 유명한 말 있지 않는가, Die Religion ist das Opium des Volks.라고. 종교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도, 여전히 이 유명한 문구는 유효하다. 종교를 믿는다고 죽고 나서 불지옥에서 고통스럽게 그슬릴지 모른다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 종교처럼 헌신한다고 해서 최소한 일신의 안녕이 보장되는 시기도 지난 것 같아 보인다. 주변사람들과 잘 지내고 항상 착하게 살면 해코지 안받는다는 말만큼 어린 나이에 부정하게 되는 문구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살면서 뭔가 잘못 되었을 때, 그 책임을 뒤집어 씌울 내가 아닌 대상들이다. 신이건 직장이건 이웃·가족들이건. (그것에 복수를 할 수 있든 없든) 그것이 우상 아닌가 한다.

나는 자유롭게도 살고 싶지만, 행복하게도 살고 싶다. 책임이라는 무거운 족쇄가, 자유라는 날개와 함께 주어질 수 밖에 것이라면, 역시 어쨌든 족쇄와 함께 날아오르는 수 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자유와 책임은 그 크기가 항상 같아야 한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게 당위라는 생각을 깨세요. 사고의 틀을 깨고, 자신을 둘러싸는 굴레를 벗어나는 거지요.)
(네이버에는 굴레를 한참 벗어나신 분들 뉴스가 항상 톱이랍니다.-_-)

2010년 10월 14일 목요일

신뢰는 돈이나 힘으로 살 수 있는게 아닐텐데.

몇 달의 시간차를 두고 두 분이 좀 믿어 달라고 읍소를 했다.

먼저 분은 국방장관이고,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5324

나중 분은 “공인” 스텐포드 출신 힙합가수이다.

http://www.vop.co.kr/A00000322395.html

(구글에서 찾아보니까 가장 먼저 나오는 매체들이 각각 요 둘이었다.)



흥정을 하면서 물건을 사야 할 때, 뻔히 보이는 구라를 치는 상인에게서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
당연하다.

허풍이 세고 구라를 잘 까거나, 핑계나 구실이 늘 따라 붙는 친구는 자동적으로 乙種이나 丙種으로 분류된다.
당연하다.



내가 자라온 문화적 배경에서는, 가정과 학교·지역사회들을 포함해서, 남들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면, 남탓을 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 평소 믿을 만한 행실을 해 왔는지 되돌아 보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것이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국적과 계급을 막론하고, 이런 비슷한 인성 교육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걸걸한 목소리로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 라는 말을 남긴 노태우를 마지막으로, 믿음과 신뢰를 강요하는 세상은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찌질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믿으라고 협박을 하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매우 유감스럽다.



천안함 검증단의 발표 내용은 거의 모든 언론에 기사화되지 못했다. 타구라의 학력이 사실로 입증되었지만, 그의 나머지 미심쩍은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발언들마저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타구라 사건을 통해 여론을 몰아가려는 냄새가 나는데, 아마도 정부의 “의견”에 대하여 의문이 제기되면, 그 의문이 아무리 합리적이라 하더라도,  “열등감에 쩐 사회부적응자들의 불만”으로 매도할 수 있는 기초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두환 때, 기자 생활을 시작해서 받아쓰기 기사질로 커리어를 시작한 기자들이 지금은 언론의 중추가 되었는데, 이들은 정부의 발표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공식적인 단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견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사회에 불만있냐” ---요거는 걸작이다.

단계1. 첨예한 이성을 통한 비판적 사고의 결과가 정제된 언어로 표출된다.

단계2. “사회에 불만있냐?”

단계3.  비판을 제기한 사람의 인격이 사회부적응자로 매도된다.

여기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좀 더 이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면 상대는 좀 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단계4 (옵션). “억울하면 출세하든가.”

한 번 더 가면 빨갱이 드립이 나온다. 세번째에서 빨갱이 드립이 나오는 것은 굉장히 효과적인데, 직접적으로는 더 이상의 반론을 봉쇄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나는 벌써 두 번이나 관용을 배풀었다는 “나는 관대하다”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런 일이 두 세번 반복되면, 자기검열효과도 누릴 수 있다.

사회에 불만있냐, 억울하면 출세해라, 너 빨갱이냐, 넌 왜 그렇게 정치적이냐, 니 일이나 잘 하세요 따위의 상투는 “그 사회가 적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회인가”에 대한 판단을 은폐하고, “그러면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라는 논의를 봉쇄한다. 더 나쁜 것은 제기된 문제의 원인을 (대체로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 개인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결론을 내자면 다음과 같다. 평소에 구라충만한 그런 새끼를 믿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거다. 그런데 요새 보니 그걸 못하게 하겠다는 거다. “나는 평소 해왔던 대로 계속 구라칠테니, 너흰 그런 줄 믿어. 그렇지 않을 거면 혼나게 될테야.” 그런 협박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살아있다. 생물학적 해결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의문의 제기를 막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2010년 10월 13일 수요일

좋아하는 노래들의 발표시기분포와 잡설

세벌식 자판을 익힐 무렵, 노래 가사를 들으면서 따라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몇 곡을 시간 날 때 연습했다. 그러다가 목적이 변질되어 좋아하는 노래들 가사를 텍스트로 모아두게 되었다. 가사집에 들어가서 카피 페이스트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들으면서 따라쳤다. 그렇게 모은 곡들이 시간이 흐르다 보니 142곡이나 되었다.

요 며칠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던 프로그래스 미팅이 끝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와서 가요들을 찾아 듣다가 문득 뻘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 노래들의 발표시기의 분포를 도시해 보자.”

검색을 해서 곡 발표년도를 찾는 것이 간단하지만은 않았지만, 어쨌든 끝을 볼 수 있었다.

짜잔


ㅋㅋ, 아 x발, x축 제목이 이상하네.

이렇게 그리고 나니까 뻔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들었던 곡들이 남은 인생과 함께 가지 않겠는가.



1997년 봄은 맑은 날이 많았다.
그 해 토요일 시간표는 예술이었는데, 1교시 교육학, 2교시 기술, 3교시 음악/한문 격주, 4교시 체육. 이랬었다. 담임선생님이 체육선생님이라서 운동장에서 종례하고 끝. 아예 교복을 넣은 가방을 운동장 구석에 숨겨놓고, 축구 뛰고, 체육 끝나면 교실에 들르지 않고, 운동장에서 옷 갈아입고 바로 귀가하곤 했었다. 조용한 오전 수업시간에 들려오던 부산항의 뱃고동 소리가 아직도 기억나고, 그렇게 토요일에 귀가하면서 서면에 들러, 번화가를 기웃거리다가 동보서적에 가서 책들을 구경하다가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강렬한 기억을 남긴 주말들이 많아 봐야, 12번이었다니. 세번 이상이면 그냥 많다라고 느끼는 것이 인간인가보다.

야자를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승환의 《가족》을 들으면 마음이 울컥했고, 넥스트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들으면서, 천사같은 첫사랑 그녀에게 고백을 거절당했을 뿐만 아니라, 심한 모욕을 받았던 기억들을 곱씹었다. 《뿌요뿌요》가 5월께 히트곡이었던가? 웃지못해 이 부분 따라하면서 키득거렸었다. 젝스키스가 데뷔해서 HOT와의 더비가 시작되기도 했었고, 가을에는 자우림 1집 (지금은 이선규가 부른 《예뻐》만 찾아 듣는다.), 임창정《결혼해줘》, 태사자 《타임》, 영턱스의 《타인》(이거 둘 꽤 흥했더랬다) 등이, 그리고 겨울에는 터보의 《회상》, 박지윤의 《하늘색 꿈》. ㅎㅎ 이거 여자랑 노래방 갈 일이 없었겠지만, 다들 랩은 꿰고 있었던 듯하다.

그냥 그 때는 그랬다. 꽃집 주인이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었던 친구들이 있었던... 딱 그 때까지. 그 해 봄에 DJDOC가 세상 좆같다고 《삐걱삐걱》을 목놓아 불러재꼈었는데, 그 해 겨울 IMF가 왔고, 에디아카라의 낙원은 끝났다. 마침 《거위의 꿈》이 발표된 해도 이 해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더 와닿았다. 아, 그리고 《삐걱삐걱》 이후로 사회비판 내용의 가요가 히트하는 것은 씨가 마른 것 같다. 내가 잘못알았나요?



이제는 저 그래프의 긴 꼬랑지처럼 열정과 감수성이 사그라들어간 들고, 뭔가 남긴 남았는데, 2009의 빈도수 3중에 하나를 《뽀삐뽀삐》로 채우게 하는 그 뭔가가 남았다. 젠장.

어쨌거나 나는 90년대 가요를 좋아한다.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냥 내 감수성이 90년대에 거의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직업도 그런 감수성을 연마할 필요가 있는 직업군이 아니고, 감수성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 정치적·도덕적 당위가 아닌 이상, 나는 지금 상태로 만족한다. 비론 존나 촌스럽다는 지적을 자주 받곤 하지만. 뭐 따지고 보면 촌스러울 것도 없잖아. 리메이크 자주 되는데 뭐. 당연히 그래도 원곡을 찾아 듣지만.



아, 그리고 서면 동보가 폐점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부산은 왜 부산인가. 동보서적이 없고, 해운대에 솔밭이 없고, 영도다리가 철거된 부산은, 또 거제역이 박살나고 없는 부산은, 좀 많이 부산답지 않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2010년 10월 4일 월요일

글리제581

무식한 소리를 지껄여 보았다. 따끔한 지적을 기다린다.

2010년 9월 26일 일요일

해자대기를 서쪽으로 달아야겠네.

일본이 중국에 굴했다. 놀랍다기 보다는 중요한 일이다. 요 근래 1달동안 나온 뉴스 중에 100년 후에 역사책에 언급될만한 유일한 사건이지 싶다.

두 가지가 걱정된다. 먼저 이어도. 중국은 예전부터 여기에 관심이 많았다. 언론에서 남중국해를 언급하는데, 글쎄. 일본을 건드려 욕을 보인 상황에서, 다음 타자가 만만한 동남아 나라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두번째는 그냥 망상인데, 일본이 구로후네로 당했던 치욕을 조선에 운요호로 되돌렸던 것이 기억난다. 일본이 센가쿠(우리는 어쨌거나 실효지배 여부가 중요한 입장이다)에서 당했던 바를 독도에서 재현하려할지 모른다.

조선의 역관들은 신분이 세습되는 중인이었다. 전통은 낙동강의 흐름처럼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듯하다.

2010년 9월 22일 수요일

얼마전부터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코리아타임즈(헤럴드라고 썼다가 27일 수정)에 천문 내지는 행성 관련 기사가 계속해서 뜨고 있다. 담당 자가 바뀐 것일까. 썰을 풀 생각만 하고, 게을러서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그 노랗고 파랗다는 그 태양계 천문학 책을 아마존에 주문해서 받았다. 일이 바빠 내용을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을 산다고 그 지식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10년 9월 7일 화요일

메타물질

신문 기사에 메타물질이 나왔다. 예전에 세미나에서 메타물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놀란 바 있어, 까먹기 전에 정리한 pdf가 있다. 다시 읽어 보니 좀 엉성하게 정리한 듯하지만, 수정하지 않고 올린다. 내용에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것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좀 부끄럽지만, 지적받으면 나중에 고치면 된다.


사족
LaTeX을 이용하여 문서를 만들었다. TeX는 다른 문서작성기에 비하여 장점이 여럿 있는데, 1. 수식이 들어간 미려한 문서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2. 상호참조를 하기에 좋다. 3. pdf가 잘 만들어진다.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페이지 수가 중요한 학생들에게는, TeX문서는 한글이나 워드에 비해 (default일 때) 여백이 많아서 쪽 수가 불어난다는 것도 장점이 될 지 모르겠다.

사족2
세 경제신문의 헤드라인 뽑는 개성이 잘 대비되는 하루였다.

短想

저 밑에 조선 망한거랑 관련하여 생각이 떠올랐는데,

임진왜란 때 도공들 납치당했던 게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크리티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 아이템을 도둑맞았어요. ㅜ.ㅜ



단지, 그냥,, 망상일 뿐이다.

2010년 9월 2일 목요일

勿辱수행 오늘도 이어간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생명을 초월한 사유화의 연장: 세습

욕 안하는 것도 수행은 수행이구나.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예능 프로를 보지 않는 이유

나는 예능을 보지 않는다. 전혀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식당에서 밥먹을 때는, 낄낄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찾아서 보지는 못하겠더라. 그것을 보고 있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중년 초입에 들어서셨던 한 선생님께서, 학교에 갓 부임했을 때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선생님은 수도권에서 자랐다가 우리학교로 부임하면서 처음으로 경상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처음에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학교 시설이나 말투도 이상하다고 느꼈으나, 결정적으로는 촌놈들이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꼴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드랬다. 부임 첫 해 봄소풍을 갔다. 선생님들끼리 모여 점심을 드시는데, 학생들이 우 둘러싸서는 밥 먹는 꼴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놀 줄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 불쌍하여 다음 소풍부터는 씨름대회 같은 프로그램을 힘써 준비하셨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나는 남들 노는 것을 멍하게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즈그들끼리, 즈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즈그들끼리 웃고 떠드는 것을, 보고 듣고 따라 웃는다? 버스에서 가끔 옆사람들의 대화에 피식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떤 다른 점을 내 삶에 줄 수 있는가? 누가 재미있는 남들의 대화를 듣을 목적으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가? 그런데 주말 저녁마다 그걸 듣기 위해서 테레비 앞에 앉아 있는다라. 구지 연관성을 찾자면, 그 사람들도 한국 사람이니까...

별스러운가? 덕분에 대화가 잘 안된다는 불편한 점은 있는데, 가끔은 내가 정상의 범위 밖에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잡설을 덧붙이자면, 고등학교 때 그런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에 가서는, 그 대학생들 특유의 대동 문화에 적응하기에 시간이 걸렸었다. 1학년 3월, 촌놈의 눈에는 대학생들이 노는 꼴이 닭살 돋고 유치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 이 놈들 골까네. 내가 서울 처음 올라와서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렇지, 좀만 있어봐라 이 짓을 또 하는가.” 하는 반항청년이었는데,,, 뭐, 졸업할 때까지 계속 그러고 놀았었다. 그리고 그런 어쨌든 “우리 모두 다 함께”가 좀 답답해 보이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게 놀면 나름 진짜 재미있다. “끼리끼리”(또는 우리가 남이가)보다야 훨씬 낫지 않는가. 이게 지역색인지, 연령이 달라져서 생기는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이끼의 그 마을

국무회의를 하는 청와대가,

바로 그 마을이었구나.

대통령, 총리, 문광부 장관, 국세청장, 경찰청장...

그리고

천용택, 김덕천, 하성규, 전석만, 천용택 양아들...



수괴, 어벙, 입장사, 백화점, 경찰...

좀 닮았다.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망국 100년, 나만의 핑계

500년을 지속했던,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조선이 망하고, 백성들은 망국노로 전락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났다. 오늘은 광복절이다.

대학에 와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짬밥이 오를만큼 오른 4학년 때, 나는 동양사학과 과목이었던 개관일본사를 신청해 들었다. 수업 첫날 받은, 손으로 흘겨 쓴 수업소개 프린터에 쓰인 수업 제목은 개판일본사처럼 보였지만, 수업은 흥미로웠고, 일본사는 개판수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개판. ㅋ

수업시간에 딱히 교과서가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읽어볼 책 목록의 많은 책 중에 피터 두으스의 일본근대사를 사서 읽었다. 일본의 고대사나 중세사에는 그 때까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 수업을 들은 이유도, 근대사를 읽은 이유도, 단 하나의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왜  조선이 망하는 동안 일본은 안 망했지?'

문명의 발상지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청동기·철기의 전래도, 농업의 시작도 늦었던 일본, 율령국가를 세우기까지 한반도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던 일본,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제대로 경영해 본 경혐이 일천했던 일본이, 어떻게 근대 질서에는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고, 그에 비하여 앞서 말한 조건들에서는 우위에 있었던 조선은 왜 멸망할 수 밖에 없었는지.

혹시 땅의 문제일까?

한양과 에도를 비교하면서 볼 수 있었던 많은 차이점 중에 솔깃하게 보였던 것 중 하나는 외국과의 교역에 대한 태도였다. 분명하다. 양 쪽 모두 쇄국을 기반으로 하였다. 그러나 에도 쪽이 좀 더 열려있었던 것 같다. 나가사키의 데시마에 해당하는 것은 조선에는 없었다. 그래서 데시마에서 시작된 난학,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하여 얻은, 신문물을 이용할 수 있는 태도가, 흑선 이후 일본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지 않는가.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쇄국은 기조로 했던 에도 막부가 데시마를 열었던 것은, 네덜란드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는가. 왜 유럽세력은 조선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가. 그리고 또 다른 의문이다. 그렇다면 서양 문물에 훨씬 더 열려있었던 청조는 결국 서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가.

첫 번째에 대하여 생각해야 할 요소는 판구조론이다. 일본은 새로운 대지이다. 활발한 화산활동은 필연적으로 많은 무거운 원소들을 지각에 쌓아두게 된다. 금속이다. 전통적으로 교역에 이용되는 금속원소 금·은·동이 조선보다는 일본에서 흔하게 채취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유럽세력이 조선 보다는 일본과의 접촉에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좀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 바에 의하면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에도 막부시대의 일본은 멕시코에 이은 세계 제 2의 은 수출국이었다. 일본의 구리는 동남아시아로 흘러들어갔다.

그렇다면 조선은? 조선에도 은광·동광이 있다. 일본의 은 채취가 에도시대에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 데에서는 조선에서 개발되었다고 하는 회취법의 전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재 조선 후기에는 금·은광이 사적으로 많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조선은 정책적으로 금·은광의 개발을 막아왔었다. 귀금속의 생산이 늘어나면 그만큼 조공으로 바쳐야 할 것이 많아져서 힘들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문제는 부존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공 바치기 싫다고 중국과 맞장을 뜰 유인 동기가, 귀금속을 매개로 한 서양과의 교역에 있었을까. 지나친 흑백논리인가. 조선 후기 청과의 관계는 적대적이었고, 서양과의 교역에서 얻을 것은 조총 뿐이라고 생각했을 당시의 사대부들, 그리고 사치를 배격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는 충분히 귀금속 광산의 개발을 저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하여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농민을 있는 대로 쥐어 짜기만 하면 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체제를 완성한 조선 후기에는 은의 개발이 정책적으로 뒤바침되기에는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더하여 왜란과 호란 양란으로 외국에 대한 피해의식에 쩔어있었을 사대부들이지 않는가.

하지만 조선 후기에도 국제무역은 중요한 경제적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인삼은 조선의 주요 수출품이었고, 인삼을 팔아서 얻어진 부가 조선 후기 영·정조 때의 르네상스를 가능하게 한 기반이라고 한다. 일본의 은은 서양의 범선 뿐만이 아니라 조선을 통해서도 중국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선의 인삼조차도 서양 세력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조선도 이에 대하여 결코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까 언급했듯이 이들은 피해의식과 두려움에 쩔어있었을 것이다. 동아시아 질서의 큰 변동이 있었던, 그래서 서양세력이 침입해 들어 올 작은 틈이 생겼던 16세기에, 조선은 양란의 충격을 가까스로 수습하는데 그쳤던 것 같다. 서양 세력이 함께하는 새로운 질서는 동아시아의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들에 영향을 줄 만큼 아직 강한 힘을 가지지 못했고 (그래서 분열되어 있던 전국시대의 일본은 그 이후의 에도 막부에 비하면 서양에 활짝 열려있었다.), 내부적으로도 그닥 웰컴은 아니었다. 조선에게 있어 중국을 너머서는 작은 창을 열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 첫 번째 기회는 그렇게 지나 간 것으로 보인다.

풍토가 문제일까?

석유(플라스틱 포함)·철강·콘크리트가 없는 현대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가. 전근대사회에서 이 세 가지 자원은 모두 목재에 대응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목재는 많은 경우 문명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원이었다. 조선 후기에 목재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은 명확하다. 18·19세기는 산송의 시대이다. 일반적으로는 유교사상의 확산으로 조상의 무덤자리를 차지하고 지키기 위하여 산송이 활발해졌다고 이야기하지만, 아마도 산소에 딸린 숲에 대한 배타적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가 있었음이 근래에 밝혀지고 있다. 목재의 부족은 가옥의 구조와 크기를 축소시켰다. 곧게 뻗은 큰 목재는 서까래를 위해서 중요하다. 이런 목재가 희귀해지면서 집의 크기가 작아지거나, 나무를 잇대어 만들 수 있도록 구조가 변화하였다. 조선 정부는 금산령을 내리거나 불법적인 벌목을 단속하려 하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삼림자원의 관리는 성공적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일본에서도 에도시대의 인구증가는 목재 수요의 급증을 가져왔고, 삼림자원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조선의 경우만큼 구체적인 사례는 알기 어렵지만, 약탈적 삼림 이용에서 관리형 삼림 이용으로의 전환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 받는다. 조선과는 달리 지방분권적이었던 에도 시대에는 각 번에게 삼림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관리에 대한 책임이 돌아가는 것도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 차이에 대하여 재미있는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수 년 전에 일본인 친구와 함께 서귀포에 간 적이 있다. 천지연 폭포 아래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숲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짧은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가 일본의 숲이라고 말하는 그 숲이 내 눈에는 이국적인 난대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봄에 벗꽃구경을 간다는 일본의 삼림은 한국의 삼림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본인이 느끼는 한국의 숲은 좀 더 건조하고, 추운 지방의 숲이었던 것이다. 그의 고향은 가나자와이므로 일본에서도 위도상으로 보자면 딱 중간 즈음이다. 지형적으로도 강우가 많았으면 많았지, 기온은 한국의 평균과 다르지 않은 곳이다. 전에 한 번 나리타에서 도쿄로 들어갈 때 보았던 숲이, 심지어 부산에서 자란 내가 보기에도 좀 열대스러워 보였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났다. 그 때가 여름이라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일본과 한국의 숲의 차이가 개인적인 느낌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노노케히메》에 묘사된 일본의 수해(樹海)를 떠올려 보라.

이것은 아마 숲의 생장 속도 역시 일본 쪽이 더 빠르거나 월등할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이 숲을 관리하려는 시도의 성패에 꽤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삶의 질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풍요로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더하여 조선 후기는 북반구에 소빙하기가 덮쳤을 때로 조선은 잦은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나는 이러한 경제적 제한이 조선 후기에 새로운 사상, 새로운 문화적 시도의 싹을 말려버렸다고 생각한다. 문화의 부흥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흥을 필요로 한다. 조선이 충분히 풍요로운 사회였다면, 성리학이 제아무리 다른 사상을 배척하고, 그로 인하여 정치적인 통합을 완수했다 하더라도, 경제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상의 대두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정치에서 배제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부유했던 중인계층에서 중국의 신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나, 결국에는 이들도 경제적인 기반을 통하여 성리학 및 기존 질서에 대응할만한 새력으로 대두하지는 못했다. 양명학과 고증학의 영향에 철저한 현실 인식이 더해져 만들어졌던 새로운 학문 경향인 실학은 자립적인 경제적·정치적 기반을 만들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왜 망했다는 말인데?

여러 개선의 기회들이 물리적인 한계로 인하여 도래하지 못했다. 17·18세기에는 희망적으로 보이는 몇 가지의 시도가 있었으나 조선은 완전히 성공하지도, 완전히 실패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조의 급작스런 죽음과 함께 19세기가 도래하였다. 이명래 고약이 한 세기만 일찍 만들어졌더라도, 세도정치라는 악마의 강림을 좀 더 미루거나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정조가 추구했던 탕평책을 통한 붕당정치의 해체가 세도정치가 성립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조가 얼마나 개혁적인 생각을 가졌는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조선이 결정적으로 썩게 된 데에는 세도정치의 탓이 크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세도정치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명분도 사라진, `권력의 사유화'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 쇄도정치를 겪으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백성을 삥뜯는 양아치로 전락했다는 말이다. 관료는 조선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자신 또는 가문을 위해 일할 뿐이다. 붕당정치에서도 관료들은 자기 자신 또는 파당을 위해 일할 뿐이었으나, 최소한 파당의 일원이 되는 문은 조금이나마 열려 있었다. 그러나 세도정치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닫혀버린다. 요즘 명성황후라 불리는 그 사람은 아무리 다시 봐도 민씨 일족의 이익을 위해 조선이라는 국가를 이용했다고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한 나라가 삥뜯는 양아치가 되었다면, 망해야지?

세도정치를 혁파한 흥선대원군은 일단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공포정치를 펼친다. 일단는 나라가 안으로 너무 썩어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문을 걸어잠그고 집안단속을 하기도 한 것이다.  집안단속은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그러나 쑨 죽을 또 다른 돼지새끼들은 민씨 일당이 홀랑 처먹어버렸다. 그리고 때가 너무 늦었다. 그가 집권한 1860년부터 실각했던 1873년까지, 일본은 흑선 이후의 격렬한 내전을 마무리하고, 메이지 유신과 대정봉환을 통해 근대화를 시작하였다.

게다가 그 이후에 권력을 잡은 민씨 일파나 고종이나 개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생각이 이었던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친위군이 신식군대가 되고, 서울에 전기가 통하는 것을 개화라고 여겼던 것 같다. 갑신정변은 어떠했던가. 이들은 일본처럼 되는 것이 개화라고 여긴 것 아니었을까. 1894년 갑오개혁에서야 조선의 현실에 기반한 개혁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일본은 청을 꺾어버렸다. 구르기 시작한 돌은 멈출 수가 없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조선의 멸망에는 물리적 요인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불가항력은 아니었다. 현대적이고 일반적인 언어로 기술하자면, 권력의 사유화, 배타적인 유일사상 숭배, 관념론의 절대화가 조선의 정신력을 약화시켰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권력의 사유화는 아직도 횡횡하고 있고, 배타적인 유일신 사상은 성리학에서 천민자본주의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절대적인 신자유주의가 이 땅에 실현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모두가 예와 의를 지치면서 살게 되면, 이상사회가 실현될것이라는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생각에 이상하게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이 빠져있다. 혹은 이의 반대판으로 통일이 모든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담론도 소수 있기는 하다.

조선은 왜 망했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쇄국을 이야기하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전의 꼬라지를 보면, 흥선대원군이나마 있었기 때문에 19세기에 식민지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세도정치로 나라는 이미 끝장났다고 봐야한다. 쇄국은 아주 맛깔 땡기는 핑계거리이다. 첫째, 간단·명료하다. 둘째, 지배이데올로기에 봉사한다. 자유무역협정에 쇄국망국론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보라.

식민지 이후의 쇄국망국론은 딴지일보에서 읽은 임진왜란 이후의 조총패퇴론과 일맥상통한다. 패전상태에서 신무기에 대한 망상과 광신. 조선은 이를 백성에게 주입하는데에 성공한다. 그럼 병자호란은요?하는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쇄국망국론을 퍼트리는 한 못된 신문에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조총에 각별한 신경을 쓰며 이에 대한 연구를 독려했음을 가지고 선조를 실용적인 인물로 추켜세우며 빨아준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이 제너럴 셔먼호 사건 이후에 기술자들에게 큰 돈을 들여 이 배를 연구하게 하여 결국 나무를 때서 추진하는 조선의 증기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들이 모를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조 역시 성공하지는 못했다. 병자호란을 기억하라.

한일합방 100년의 광복절이다. 100년이 지나도록 왜 망했는지 모른다면, 부끄러운 일 아니겠는가. 조선이 망한 결정적 이유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권력의 사유화=양아치화 때문이다. 그런 배경을 만든 물리적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다른 기회가 없었던 것 같지도 않고,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있었다.

근래 또 다른 양아치들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200년의 양아치들이 권력을 잡고 시작한 일이 천주교 박해를 통해 지지기반을 공고히하고, 관직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개혁적 인사들을 시골로 쫓아보낸 일이다. 우리는권력의 변하지 않는 속성을 똑똑히 보고 있다.


PS. 위의 견해들은 주로 김기협, 김명관, 주경철, 이영훈, 제레드 다이아몬드, 피터 두으스 그리고 아외로워의 책이나 글에서 읽었던 사실이나 견해를 기초로하여 작성되었다.

2010년 8월 8일 일요일

작은 성취감

며칠 전에 설화를 크게 일으키고 자숙을 하겠다 마음먹었다. 당연히 그 첫번째 다짐은 욕을 하지 말자였다.

뜻을 굳힌 지 채 이틀이 되지 않아 뉴스에서 이재오가 사실은 마오이스트임을 커밍아웃하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동아일보 원문은 여기서 http://news.donga.com/3/all/20100806/30363972/

예전같았으면 욕 한 자락 시원하게 뽑았을텐데, 이번에는 참을 수 있었다.

더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자랑을 좀 더 하자면, 오늘 개각 기사를 읽고도 욕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북한의 선박나포기사를 읽고도 욕을 참을 수 있었다. ^^


충동의 제어가 이런 성취감으로 보상받을 수 있어서,

그리고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도 매일 같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매우 기쁘다.

마치 ADHD아동을 교정하기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욕을 하는 사람들이 모자란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단지 그럴 계기가 없었을 뿐이리라.

혹시나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쓰는 건데, 이번 포스팅의 주제는 자기계발이다.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無題

왜 사람들이 그러지 않는가? 베스트셀러는 그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온 다음에 읽는 법이라고.

아직 좀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 하지만 나도 이제 벼루어 두고 있던 책을 읽을 때가 슬슬 오는 것 같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내가 좀 취미가 고약해서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꼴 보는 것을 至樂으로 삼는다.

그 책은 비유하자면, 왜 레밍들이 절벽으로 뛰어드는지, 레밍의 관점에서 서술된 책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그 책의 진가는 몇 년 전 그 책이 베스트셀러에 있을 때 발현된 것이 아니다,

지금 혹은 몇 년 후에 잔치의 뒷처리가 끝난 후에야 빛이나기 시작할 것 같다.

그 책의 내용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비슷하다면 말이다.

이렇게 한 발짝 비켜서면, 세상은 호기심과 사건의 절정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언제까지 주변에서 맴돌기만 할 것인가?

이건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점차 무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2010년 7월 23일 금요일

은하수를 건너는 것은 견우인가 직녀인가?

낚는 제목이다.

은하수가 잘 보이는 계절은 여름이다. 즉, 지구가 태양과 은하 중심 사이에 온다. 그래야 태양 반대쪽을 볼 때, 그러니까 밤에, 은하수가 잘 보일 것이다. 태양계 행성의 공전궤도면은 은하수 평면에 대하여 약 6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적도와 은하가 만나는 곳은 독수리자리(알타이르가 있는 곳)라니까 심플하게 말해서 여름에 달이 은하수를 건널 수 있다. 황도와 백도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여름에 달이 은하수를 지날 때는 보름달 즈음일 것이다. 태양과 마찬가지로 달 역시 천정에서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므로, 달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은하수를 건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달이 밝으면 은하수가 잘 안보인다.

견우와 직녀 중에 서쪽에 있는 것이 직녀성이므로 (천문학 시간에는 베가라고 배웠다. 0등급을 정의하는데 쓰였다고..), 애인 집에 달을 타고 찾아가는 것은 직녀가 된다.

은하수를 건너는 반달 쪽배는, 봄이나 가을이 되야 할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쪽배는 보통 배들이 그러하듯 현에 평행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못하고, 현에 수직한 방향으로만 움직일 것이다. 마치 배가 가라앉거나 떠오르듯이. 이건 달이  남북으로 공전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천왕성까지 가면 비슷한게 보일지 모르겠다.

문제는 직녀성이나 견우성이나 황도 근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직녀성 근처로 달이 오는 것을 볼 수 없다. 세차운동이 황도를 변화시키는가 싶었는데, 안그렇다. 좀 아쉽네. 더하여 직녀성은 12000년 전에는 북극성이었다고-_-;;

베가 항목을 좀 읽어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베가가 매우 빨리 회전하는 항성이고, 그 회전축의 방향은 거의 지구를 향해 있다고. 얼마나 빨리 회전하냐면 주기가 12시간 반인데, 7%만 더 빨리 회전하면 원심력 때문에 별이 부서진다고 하더라. 더하여 빠른 회전때문에 베가는 넙적둥글한 모양이고, 표면의 중력가속도가 위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표면 온도 또한 다르다고. 극쪽이 더 뜨겁고, 적도는 덜 뜨겁다고 한다. 베가 주위를 둘러싼 콰이퍼 벨트 비슷한 거에는 목성만한 행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후덜덜. 알타이르 역시 엄청 빨리 회전하는 별이라고 한다.



요새는 길거리에서 처맞을까 겁나서 뭔 말을 못하겠다. 이렇게 얌전한 블로깅이나 하다가, 텍큐 없어지기 전에 이사 공지를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2010년 7월 1일 목요일

이끼

다음에 들어가서 이끼를 다시 봤다. 거의 1년 반만에 다시 읽었지만, 감동은 여전했다. 단, 끝을 알고 보는 거라 긴장은 좀 덜했던 것 같다.

간혹 웹툰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양영순의 《1001》과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를 추천해왔다. 그리고 단편으로는 《구로막차 오뎅 한 개피》를 추천했었다. 그런데 이끼를 읽고 난 다음부터는 윤태호의 《이끼》가 장편 추천목록에 포함되었다.

나름 뽑아 본 명대사들인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다.

펼쳐두기..


이끼는 뭐랄까 충격적이었다. 인물들 때문이었다. 이렇게 살아서 펄떡이는 인물들에 빠져 본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인물들은 개성있고 강렬했으며, 그들의 충돌은 치열하고, 처연했다.

그리고 작품이라면 빠질 수 없는 것. 현실과의 긴장. 후기에서 작가는 지나친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는 의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것 역시 또 다른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정답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크라잉게임을 하는 그 때부터,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다. 그것을 부인하는 자와 이용하는 자, 그리고 속는 자가 있다. 과거로부터 배울 의무는 모두가 짊어지는 것이다. 누구에 대한 책임이고 의무인가? 미래에 대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끼의 영화판이 나온다는데, 감독이 좀 걱정이긴 하지만, 기대된다.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Tandem-X 첫 사진

독일의 X-band 레이더 지구관측 위성 Tandem-X가 발사된 지 3일이 채 지나지 않아, 첫번째 영상을 지상에 송신했다. 놀랍다.

http://www.dlr.de/DesktopDefault.aspx/tabid-1/117_read-25278/

Tandem-X의 주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전 지구에 대한 고해상도 표고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미국이 SRTM을 통해 만들어진 수치표고자료가 사용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해상도가 90m에 불과하고, 기본적으로 우주왕복선을 이용했기 때문에 궤도의 제한이 있어서 북위 60도 이북, 남위 54도 이남의 지역에 대하여서는 자료를 얻지 못했다. 극지의 빙하를 연구하는 데에 현실적으로 큰 장애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어쨌든 NASA느님께서는 이 자료를 공짜로 배포하고 계신다.

Tandem-X는 이미 운용중인 TerraSAR-X와 함께 합성개구레이더간섭기법을 이용하여 전 지구적으로 10m 해상도 수준의 수치표고자료를 만드는 것을 목표중의 하나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편대비행을 이용하여 다양한 과학·민간 응용기법들을 시험할 것이다. 누추한 예를 들자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개별 차량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링크에 걸려있는 마가다스카르 섬의 레이더 영상에는 해파가 항만에서 회절하고 굴절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위쪽. 그리고 바다 표면의 무늬로부터 바람이 동남쪽에서 북서쪽으로 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학영상에 비하면, 직관성도 떨어지고, 좀 많이 구리게 보일 수도 있는데, 밤에도 똑같은 영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도 조만간 X-band 레이더 지구관측 위성을 발사한다. Kompsat-5이다. 광범위한 활용을 기대해 본다.

2010년 6월 24일 목요일

이변

이탈리아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Cheer up.

답장이 왔다.

The good players played ten minutes and scored three goals! Ahh.. See you tomorrow

1.
이변이라 하는 것들이 가끔 벌어진다. 그 때, 그것을 목도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놀라운 일들 말이다. 가끔은 기적이라고도 한다.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16강에 못 오른 것 정도가 그런 일이 되지는 않을테다. 한국이 4강에 오르는 정도는 되어야지.

사람이 요즘은 평균 80까지 산다고 한다. 그 중에 그런 이변이나 기적을 피부로 느끼고, 그것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기는 그보다 더 짧을 것이다. 내가 유치원에 있을 때, 전두환이 항복선언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10년 후의 IMF는 좀 달랐다. 그 일을 경계로 가세는 기울었고, 정치적 성향이 바뀌었고, 꽃집 주인은 친구들의 장래희망 목록에서 사라졌다. 5년 후에, 나는 이변들 일어나는 곳에 있었고, 그 이변들의 의미들을 상당히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이변들이 앞으로의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 역시 머리에 앞서 피부가 느끼고 있었다. 다시 5년 후에도.

앞으로 한 2·30년일까. 이변이나 기적 혹은 격변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시간이. 그 후에는, 어찌되든 상관 없는 삶을 살게 되지 않나? 그 나이가 되면, 이변을 받아들이는 호들갑은 주책이 되고, 흐름을 조절하려는 뻔한 시도는 노욕이 되는 것 같다. 꽤나 노련하지 않으면 말이다.

유튜브에서 찾아 본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는 적절한 나레이션이 있다.
일정부분 포기하고, 일정부분 인정하고 그러면서 지내다 보면 나이에 “ㄴ”자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그때 즈음 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하게 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그러지도 못합니다. 뭐 그런 답답함이나 재미없음이나 그런 것들이 그 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저 뿐만이 아니라 또 그 후배 뿐만이 아니라 다들 친구들도 그렇고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노래 찾아 듣다가 괜히 센티해져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2.
문자를 보낸 그 친구와 얼마 전에 이야기를 하다가 2002년 월드컵 이야기가 나왔다. 밀라노 출신으로, 나폴리 출신에 비해 보면 천양지차로 젊잖은 그 친구도, 심판 이야기를 하더라. ㅎㅎ 그 심판 존나 유명해졌다고. 대놓고 말은 못해서 그렇지, 승부조작이 있덨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2002년 여름이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혹시 호로 몽이라면 어쩌면, ...  차마 누가 될 것 같아서, 그 심판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발설하지는 않았다.



실의에 빠져있을 그 친구에게 답문자를 보냈다.

I agree. See you.

2010년 6월 14일 월요일

매, 먹이를 가지고 둥지로 돌아오다.

일본의 소행성 샘플리턴미션이었던 하야부사(隼, はやぶさ)가 지구로 귀환했다. 하야부사는 매라는 뜻이다. JAXA는 하야부사의 샘플캡슐이 한국·일본 시간으로 6월 13일 저녁 7시 51분 분리되었으며 밤 10시 51분 대기권으로 재진입했다고 밝혔다. 하야부사는 2003년 5월 9일 M-V로켓에 실려 발사되었다. 하야부사는 소행성 이토카와에 착륙하여 표면의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귀환하는 목적으로 제작·발사되었으며, 7년여에 걸친 여행 끝에 임무를 완수했다. 하야부사의 샘플캡슐은 계획되었던대로 호주의 우메라에 떨어졌다. 우메라는 아들레이드에서 500km 북쪽에 있는 사막지대이다. 헬리콥터가 동원되어 농구공 크기, 20kg 무게의 캡슐을 수색했는데, 첫번째 헬기에는 그 지역 원주민이 탑승하여 캡슐이 성지를 훼손하지 않았는지 확인하였다. 캡슐은 나 여기있소 하는 신호를 발생시켰다.

캡슐의 최종 돌입시 속도는 초속 12km에 달하며, 이 때 대기와의 마찰로 인하여 생기는 열을 차단하기 위해 캡슐은 하나의 냉장고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낙하 예상지점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어야 한다. 마지막에는 낙하산이 펼쳐져 착지시의 충격을 줄이게 된다.

과학자들은 소행성에 태양계 형성 시기의 물질이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나 달과 같은 큰 행성·위성에서는 그 물질들이 화성 작용을 받으면서 화학적으로 분화되고, 뒤섞여 버렸기 때문에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광학관측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그 성분을 조사할 수는 있고, 운석을 통해서 성분을 조사할수도 있지만, 역시 간접적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직접 가서 가져오는 것이다. 하야부사의 샘플은, 태양계 초기의 물질이 어떤 것이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캡슐은 일본에서 열리게 된다.

하야부사는 5년 전인 2005년 9월 중순 이토카와에 도착해 선회하면서 소행성 전체에 대한 탐사를 하였고, 11월에는 이토카와에 착륙해 샘플을 채취했다. 하야부사가 이토카와의 표면에 머문 시간은 45분 가량에 불과했다. 그리고 즉시 지구로의 귀환 일정을 시작했다. 귀환일정에는 여러 문제점들이 생겨 원래 3년으로 예정되었던 일정이 5년 반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하야부사의 귀환 역시 쉽지 않았다. 이온 엔진에서는 연료의 누출이 있었고, 한동안 지구와의 교신이 끊어지기도 했다. 또한 탐사선의 자세를 제어하는 자이로 3개 중에 2개가 고장나기도 했다.

이토카와는 폭 250m, 길이 500m에 불과한 땅콩 모양의 소행성이다. 궤도장반경은 1억 9800만 km이고, 주기는 556.4일이다. 궤도 이심률은 0.28로 큰편이고, 근일점은 지구궤도 안, 원일점은 화성궤도 바깥에 위치한다. 이토카와라는 이름은 원래부터 붙어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본이 하야부사 임무의 목적지를 이 소행성으로 정하면서 붙여진 것이다. 일본의 로켓 과학자 糸川英夫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이토카와의 중력이 작기 때문에 샘플을 채취하는데는 충돌을 이용하는 방법이 계획되었다. 매우 낮은 고도로 선회하면서 작은 물체를 표면에 쏘고 그 충격으로 튀어 나오는 것들을 채집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실재로는 탐사선이 표면에 착륙을 해버렸다! 계획대로는 아니지만 어쨌든 샘플캡슐이 닫혔기 때문에, 캡슐 안에 이토카와의 물질이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인지는 뚜껑을 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또한 계획되었던 착륙로봇인 미네르바가 투하 이후 사라진 것도 이토카와의 중력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었다. 우주로 날아간 듯하다.

하야부사의 샘플회수 여부에 관계없이 JAXA는 후속임무를 출범시킨다. 하야부사-2로 명명된 이 임무는 내년 11월에 발사될 예정이다. 사실 하야부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마이크로웨이브 추진 이온엔진 우주선이었고, 그 점에서는 이미 성공했다. 하야부사-2는 소행성 1999JU3을 목표로 할 것이다. 또한 하야부사-2에도 미네르바 같은 착륙로봇이 실려 가게 될 것이다.

JAXA는 캡슐에서 유기물이 발견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근년들어 유기물의 기원이 우주공간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소행성 이토카와에서 유기물이 발견된다면, 이것은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될 수 있다. 우주에 정말 우리 혼자인가 하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대답의 불확실성을 줄일 것이다. 또한 실재로 유기물이 발견된다면, 그 유기물을 지구의 생명과 연관시키는 연구, 그리고 그 유기물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또 다시 필요할 것이다. 항성이 폭발하고 난 희박한 성간물질에서 유기물이 합성되는 과정 말이다.

소행성의 화학. 정말 궁금하다. 지구와 어떻게 다를지. 그리고 그것이 지구나 다른 지구형 행성 또는 위성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할지 말이다.



출처
관심있는 사항이기도 하고, 이상하게 국내 포털에는 없는 것같아,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가며 정리했다. 개요는 die Zeit의 기사 http://www.zeit.de/wissen/2010-06/Sonde-Hayabusa-Japan와 http://www.zeit.de/wissen/2010-06/sonde-hayabusa-rueckkehr를 따랐고, 하야부사의 착륙에 대한 설명은 위키백과의 하야부사 항목, http://en.wikipedia.org/wiki/Hayabusa, 소행성 이토카와에 대하여서는 http://en.wikipedia.org/wiki/25143_Itokawa를 참고했다. 또한 JAXA의 프레스 릴리즈 http://www.jaxa.jp/press/2010/06/20100614_hayabusa_e.html와 최종접근상황 http://hayabusa.jaxa.jp/e/index.html등을 참고하였다.

2010년 6월 13일 일요일

58년부터 82년까지 무슨 일이?

한국이 월드컵에 진출한 것이 54년에 한 번 있었고, 86년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이르기까지 긴 공백이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늦게 태어난 나는 잘 몰랐는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좀 뒤졌다.

58년 월드컵 예선
58년 월드컵 지역예선(아시아·아프리카 통합)에 한국과 에티오피아는 FIFA가 엔트리를 거부했다. 이유는 찾지 못했다.

원래는 아시아에 1장이 배정되어 이스라엘이 진출하게 되었으나, 상대팀의 기권에만 기대어 올라 온 것이 규정위반이 되었다. 피파는 유럽의 웨일스와 이스라엘이 플레이오프를 하게 하여 그 승자가 월드컵에 진출하게 하였다. 웨일스가 홈·원정방식의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여 아시아에서는 한 팀도 출전하지 못했다.

62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 예선의 승자는 유럽 팀과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하게 된다.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세 팀이 참여하였으나, 인도네시아는 기권하였다. 두 팀이 남은 상황에서 한국은 60년 11월 6일 서울에서 일본과 2:1로 이겼고, 61년 6월 11일 도쿄에서 2:0으로 승리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의 상대는 유고슬라비아였다. 61년 10월 8일 베오그라드에서의 경기에서 유고슬라비아가 5:1로 이겼고, 같은해 11월 26일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 다시 유고슬라비아가 3:1로 승리를 거두어 한국의 월드컵 진출은 좌절되었다.

66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에 1장이 배정되었다.

아프리카 팀들은 경기장소에 대한 항의로 모두 기권했다.

아시아·호주에서는 남·북한 호주가 출전했는데, 한국은 경기장소가 일본에서 캄보디아로 변경되자 기권했다. 1965년 11월 21일과 24일 양일에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있었던 호주와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은 차례로 6:1, 3:1로 승리하여 월드컵에 진출한다.

70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오세아니아에 1장이 배정되었다.

1차전과 2차전 두 단계로 나누어졌다. 1차전에서는 한국·일본·북한·호주 중의 우승팀이 2차전에 올라간다. 2차전에서는 1차전에서 올라온 한 팀과 이스라엘, 뉴질랜드,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각 그룹의 승자가 최종 라운드에서 맞붙는다.

북한은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기권하여 1차전은 호주, 한국, 일본이 맞붙었다. 모두 여섯 경기가 열렸고, 장소는 모두 서울이었다. 1969년 10월 10일부터 20일 사이의 짝수날에 열린 여섯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1승 1무, 호주를 상대로 1무 1패를 기록했다. 호주는 일본과 1승 1무, 한국과 1승 1무를 기록하여, 호주가 2차전에 진출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월드컵에 진출한다.

74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오세아니아에 1장이 배정되었다.

룰이 복잡하다. 아시아·오세아니아가 A존과 B존으로 나누어서 경기를 치루었다. 모두 15개국이 출전하였다. A존은 7개 팀이 2개 조로 나누어져 조별리그를 통해 1·2위가 준결승에 올라간다. 준결승은 1조의 우승팀과 2조의 준우승팀, 1조의 준우승팀과 2조의 우승팀 경기, 이렇게 두번의 경기가 있고 각 경기의 승자끼리의 경기를 하여 승자가 상위 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B조는 8개 팀이 2개 조로 나누어져 조별 리그를 진행하고, 각 조의 우승팀이 홈·원정 방식으로 승부를 겨루어 A조의 우승팀과 붙는다.

남한은 A존의 2조에 속하였다. A존의 경기는 1973년 5월동안 모두 서울에서 열렸다. 남한은 이스라엘과 함께 준결승에 올랐다. 5월 26일, 한국은 홍콩을 맞아 3:1로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같은날 열린 일본과 이스라엘의 경기에서 이스라엘이 1:0으로 이겨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28일의 결승전에서 한국은 이스라엘을 1:0으로 이기고 A조의 우승팀이 된다.

북한은 B존 1조에 속하였는데, 1조에서는 이란이 B존 결승전에 진출한다. 2조에서는 호주가 진출하였고, 73년 8월 18일에 시드니에서 열린 결승 1차전에서 호주가 3:0으로 이란을 이기고, 24일에 시드니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호주가 0:2로 2점밖에 실점하지 않아 호주가 B존 우승팀으로 진출한다.

73년 10월 28일 시드니에서 열린 한국과 호주의 경기는 득점없이 무승부로 끝난다. 11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 양팀은 또다시 2:2 무승부를 기록한다. 11월 13일 중립지역인 홍콩에서 열린 경기에서 호주가 1:0으로 승리하면서, 한국의 월드컵 진출은 좌절된다.

78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오세아니아에 1장이 배정된다.

21개 팀이 5개조로 나누어서 예선이 진행되고, 각 조의 승자가 다시 홈·원정 방식의 리그전을 하여 1개 팀이 진출하게 된다. 각 조마다 팀 수와 경기 조직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한국과 북한은 이스라엘, 일본과 함께 2조에 속했다. 북한이 기권했기 때문에 3개 팀만으로 리그가 진행되었다. 한국은 77년 2월 27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과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다. 3월 20일 서울에서 다시 맞붙은 경기에서는 3:1로 승리한다. 일본과는 3월 26일 도쿄에서 첫 경기를 가졌는데, 역시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하고, 4월 3일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1:0으로 승리하여 최종 5개 팀 리그에 한국이 진출하게 된다.

최종 예선에는 홍콩, 한국, 이란, 쿠웨이트, 호주가 진출하였다. 77년 6월부터 12월까지 홈·원정 방식으로 진행된 리그에서 한국은 3승 4무 1패를 기록하여 6승 2무를 기록한 이란에 뒤져 월드컵 진출이 좌절된다.

82년 월드컵 예선
월드컵 티켓이 24장이 되었다. 아시아·오세아니아에는 2장이 배정되었다.

20개 팀이 4개 조로 나뉘어져 예선이 진행되었다. 각 조의 승자는 홈·원정 방식의 리그를 통해 순위가 매겨지며, 우승과 준우승팀이 월드컵에 진출한다.

조마다 경기조직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한국이 속한 3조에는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태국이 있었다. 3조는 모든 경기를 쿠웨이트에서 한번씩만 치르게 되어있었다. 리그는 81년 4월 21일부터 29일 사이에 있었으며 한국은 2승 1무를 기록해 3승을 기록한 쿠웨이트에 밀려 최종 예선에 탈락했다.

북한, 일본, 중국 등이 속한 4조는 3개 팀씩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었다. A그룹에는 중국, 일본, 마카오 중에 중국과 일본이 진출하였고, B그룹에는 북한, 홍콩, 싱가포르 중에 북한과 홍콩이 진출하였다. 80년 12월 30일 홍콩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일본과 북한이 맞붙어 북한이 1:0으로 승리하였고, 다음날 열린 중국과 홍콩의 경기는 무득점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중국이 홍콩을 이겼다. 81년 1월 4일 열린 4조 결승전에서 북한은 아쉽게 중국에 4:2로 져서 중국이 최종 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최종예선에는 뉴질랜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중국이 진출하였다, 쿠웨이트는 리그 1위로 월드컵 진출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중국과 뉴질랜드는 승점과 골득실이 동률이 되었다. 81년 12월 2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경기에서 뉴질랜드가 2:1로 승리하면서 뉴질랜드가 월드컵에 진출한다. (리그가 종료되었을 때, 승수는 중국이 3승 뉴질랜드가 2승으로 중국이 앞섰다.)



점차 참여하는 팀의 수가 많아지고, 서술이 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은 대부분의 경우 월드컵 진출 직전에 좌절하고 마는 경우가 좀 있었다. 북한은 이스라엘과 정말 사이가 나빴나보다.

58년에 피파는 왜 우리나라를 먹어주지 않았을까. 그 전에 너무 못해서 그런거였을까?

2010년 6월 6일 일요일

선진국은 투표율이 낮다

내가 국민학교 고학년 시기를 보내며 사춘기를 준비하고 있을 시기, 당시 내가 살던 지역 국민학생들의 사상계에는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지 않은 자 함부로 똑똑한 척 씨불지 말지어다.”정도의 룰이 있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만화라지만 꽤 두꺼웠고, 글자도 작았다.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를 유럽 역사에 할애한 책이 당연히 쉬운 책일 수만은 없었다. 요거 읽고 나불나불 거리는 정도면, 그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꽤 먹어줬었던 기억이 난다. “어, 임마 뭐 좀 아네”하면서.

어느덧 시간도 벌써 20년이, 쒯, 흘렀고, 늙은 유럽이라 하던 유럽도, 사람이 변하는데 가만히 있을 방도가 없다. 그 책이 역사를 제외한 나머지 반을 할애해 서술했던 많은 내용들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독일은 통일 된지가 하 세월이고, 스위스는 더 이상 산중의 조용한 나라가 아니다. 프랑스의 자존심도, 영국의 똥폼도 이제는 그때와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네덜란드사람이 외국어 잘한다는 거랑 이탈리아사람들이 개판이라는 것만 아직까지 유효한 듯 보인다. (이번 우에파 결승 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줄을 잘 맞춰 서는 곳은 페널티킥 박스 앞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 책이 사람들에게 심어준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은 실체가 변하는 만큼 빨리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에는 독소라고 불려도 과장이 아닐 치명적인 오해도 있었다. “선진국은 투표율이 낮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조차 보통선거가 정착된 것이 20세기 전반이었던 것을 되새겨보면, 1980년대에 저술된 이 책이 얼마나 최신의 경향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참고로 지난 5월 9일 있었던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원선거의 투표율은 59.3%였다. 대한민국의 17대 총선은 60.6%, 18대 총선은 46.1%였다. 선거 보도를 보면 투표율을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데, 거의 대부분은 시계열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반면 외국 사례와의 비교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기자들이 알면서 보도를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비교대상이 될 만한 외국은 다들 투표율이 낮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미국의 투표율 밖에 알아내지 못해서 유럽은 스킵된 것일까?

각설하고, 나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강하게 던져졌던 그 메시지 “선진국은 투표율이 낮다”가 대한민국의 낮은 투표율을 일정 부분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젊은 세대일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람은 책잡힐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직시하는 것보다는, 합리화하는 방향을 선호한다. 잘못을 직시하는 것은 앞으로 내가 변해야 하고, 그 만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합리화하는 쪽은 자기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 “선진국은 투표율이 낮다”는 기똥찬 합리화 이유를 대준다. 나는 편하고, 나라는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죽으나 사나 선진화 4만 불을 외치던 지난 대선의 투표율은 사상 최악이었다. 그래서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인과의 순서가 반대가 되었으니 그리 될 턱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수사로 고초를 겪고 있었을 때, 한 지인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검찰이 저렇게 수사를 하는 것은, “거 봐라, 저 새끼도 저렇게 썩었다니까. 니가 이명박 더러운 줄 알고 뽑은 거, 미안해 할 필요 없어.”라는 합리화 제공 팬서비스 차원도 좀 있다고. 뭐 나는 그 쪽 사람들의 맨탈리티에 대하여 거의 모르기 때문에 그런 해석이 얼마나 일반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그걸 좀 더 넘어서, “비천하고 더러운 위선자 새끼다! 더 저주해라!”라는 선동에 가까워 보였지만 말이다.

사실대로 고백을 하자면,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은 다음에 사춘기를 넘기 전 같은 저자의 책을 두 권 더 읽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와 《한국 한국인 한국경제》였다. 중학교시절 나는 때늦은 반공소년이었다. 다행히 올바른 국사선생님께 국사를 배웠고, 또 집에 있던 또 다른 세계사학습만화(다행히 요거는 이교수가 그린 책이 아니었네요.)를 읽으면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이번 대선에서는 김대중이 당선되어야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방패막이를 하자면, 중학교 때의 반공소년은 거의 컨셉이었다. “빨갱이 때려잡아 민주평화 이룩하자”라고 미친 척 내지르는, 딱 중2병. 그 두 책은, 특히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꽤 중립적이었다고 여겨진다. 원작이 다른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혹은 작가 자신이 아직까지 이념적으로 경도되기 전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에 나왔던, 1830년 영국 노동자의 평균 수명 28세, 일요일 없는 日14시간 노동이라는 서술, 이미 얼굴에 주름이 진 12세의 소년 노동자의 초상은, 단지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부질없는 마음 밖에는 일으키지 않았다. 지금의 이교수라면, 아마 그 장면, 편집했을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았던 사람이다. 사춘기 이후에도 배울 수 있었고, 대학에 가서도 또 한 번 더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지 못한 채 나에게 강요 내지 주입되었던 사고의 틀들을 반성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만약 내가 부산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과 같이 맹렬히 여당을 비판할만큼 성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는 2010년 6월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사춘기 시절에 더 이상 배울 수 없게되었다면, 아마 몸은 막노동 일을 하면서, 입으로는 주둥이만 산 좌파놈들 혹은 전라디언 개새끼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며 아름다운 욕들을 민주당에 퍼붓고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난 반공소년이었으니까. 사춘기때 공부를 멈추게 되는 것, 친구 잘못 만나면 한 방이다. 결코 어렵거나 운이 나빠서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선진국이 투표율이 낮다는 주장을 언제부터 완전히 기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1997년에 의심이 시작되었고, 2002년에 완전히 기각하게 되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똑 같은 것을 보아온 동시대의 다른 사람들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이번 선거를 기화로 해서, 저런 어처구니 없는 자기합리화가 배척당하는 흐름이 생겨난 것 아닐까? 그래도 55%는 아직 높지는 않다. 어느 기사에서 읽었던 것처럼 “예전에는 정치에 무관심한 걸 쿨하다고 여겼는데, 요새 들어서는 개념없다 쪽으로 바뀐것 같아요.”라는 흐름이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한국의 낮은 투표율에는 《먼나라 이웃나라》가 기여했을지 모른다. 2000년대 학생운동의 소멸 및 대학생문화 막장화의 배후에 《남자 셋, 여자 셋》이 서있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2010년 6월 3일 목요일

지키고 싶다.

1.

유시민과 한명숙을 지키고 싶다.

71년의 辛勝, 72년의 維新.

그리고 김대중.

같은가, 혹은 다른가.


2.

부산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생각이 떠올랐다.

민주당, 정말 이겼다고 생각하는가?


3.

서울.

씨비매스는 좋은 그룹이다.




자, 이제 또 누구를 드시겠습니까?



잠시 후에 추가.

아마 앞으로 내가 PD계열에 투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 기분은 그렇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씩 벽을 쌓다가 결국 그들도 طالب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생각하니, 스스로 두려워진다.

2010년 6월 1일 화요일

읭?

텍스트큐브의 공지를 꼼꼼하게 읽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공지를 읽고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돼서 댓글을 참조했다. 아, 통합된다는게 그런 뜻이었구나, 그렇다면 엿된거네.

티스토리는 초대장 달라고 사정해야된다면서? 그리고 검열도 한다면서?

블로거는 구리다며?

나머지는 잘 몰라.. 은둔형 미니홈피로 백?

음. 심란해졌다. 뭐가 not to be evil이라는 건지.
이런식이라면 “not to be evil의 대상은 전역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엔 없다.



어쨌든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기 전에 대처를 해야 할 듯하다.

2010년 5월 31일 월요일

외래어의 수용과 세벌식 자판

세벌식으로 타자를 치면서 느끼는 점이 있어서 적어 둔다.

세벌식 자판은 한글을 치기에 최적화되어있다고들 한다. 두벌식에 비하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이런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ㅠ 나 ㅛ 등 치기 좀 불편한 위치에 있는 낱자들이 자주 나오더라는 것이다. 아마 공병우 박사가 세벌식 자판을 배열할 때에는 당시 문어체에서 사용되는 낱자들의 출현빈도가 그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에는 쓰이지 않던 외래어가 많이 유입되면서 공병우 박사의 시절에는 잘 출현하지 않던 낱자들이 점차 그 출현 빈도를 높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이것은 가설일 뿐이고, 이것을 확증하려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한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한가지 더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새로운 개념이 처음 생기거나 유입되었을 때, 이것을 지시하는 여러 단어들이 제시된다면, 이들 사이의 경쟁이 붙을 것이고, 그 중에서 가장 대중의 구미를 충족할 수 있는 것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혹시 그 과정에서 타자를 치기에 수월한 놈이 보다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만약 이러한 가정이 사실이라면, 두벌식을 사용하는 집단과 세벌식을 사용하는 집단에서 외래어 수용 경향의 차이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2010년 5월 26일 수요일

외신 이상해...

음.. 독일어 공부한다고 들르는 사이트(http://www.dw-world.de/dw/article/0,,5605068,00.html)에 이런 뉴스가 떴다. 가뭄에 콩나듯 한국 소식이 들리는데, 어제가 그날이었다.

SEOUL
: Im Konflikt um das Versenken eines südkoreanischen Kriegsschiffs hat Nordkorea nach Angaben einer Dissidentengruppe seine Truppen in Kampfbereitschaft versetzt. Nordkoreas Machthaber Kim Jong Il habe den entsprechenden Befehl bereits in der vergangenen Woche erteilt, berichtet die in Südkoreas Hauptstadt Seoul ansässige Gruppe "Solidarität Nordkoreanischer Intellektueller" unter Berufung auf Informanten in Nordkorea. Eine internationale Untersuchungskommission war zu dem Ergebnis gekommen, dass der Untergang der "Cheonan" im März durch einen nordkoreanischen Torpedo verursacht worden war.

내용상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525221511238&p=hankooki 을 기사화한 것 같다.

곧 여당에게 불리할 것 같은 선거가 있고, 그 동안 천안함이 어떤식으로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철저하게 이용되어왔는지는 전혀 언급이 없다. 아마도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모범생 역할을 해서, 지금도 헌법적 가치에 기반하여 민주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가정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모양이다. 죽을 쒀서 개에게 가져다 바쳤다는 더러운 기분 밖에는 들지 않는다.

반대로 혹시 외신 기자들은 보다 확실한 정보원에 연이 닿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소행임을 의심치 않는 것일까? 같은 선 상에서, 선거 직전에 TOD가 공개되는 것일까? 모르겠다. 김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중심을 잡고 있을 사람이 없는 느낌이다.

2010년 5월 25일 화요일

사람이 자원인 나라

사람이 자원인 나라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었던 장학퀴즈에는 당시로는 상당히 선진적이었던 PR광고가 항상 나왔다. 선경그룹의 광고였는데, 가브리엘의 오보에에 맞추어 나뭇가지에 걸린 동네 꼬맹이들 연을 꺼내주는 할아버지 에피소드도 기억이 나고,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로 시작하는 백범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출간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사람이 자원인 나라라는 카피가 그 때쯤부터 시작되었는지를 확실하게 기억하기에는 그 때는 좀 어렸다. 하지만 석유가 부존되어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정유라는 업종까지 소화해 나는 기업이 내걸기에 적절한 카피라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다.

사람이 무한정으로 공급되는 자원인 나라

1990년대 초반 KBS에서 한차례 방송되었던 국민방위군사건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51년 겨울 100일 동안 자그마치 10여만 명이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다. 소심한 소년에 불과했던 나는 군대에 끌려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끔찍한 일 아닌가. 방송에는 또한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던 그 시점에 부산에서는 정치인들이 횡령을 저질러 국민방위군에게 갈 물자가 정치인(?)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있었고, 또 문제가 되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빨갱이 드립을 쳤다는 것이 대비되어 나왔던 것 같다. 이장로가 대통령인 시절이 형편없는 시절이었다는 것을 다시 이야기하여 무엇 하랴. 세월이 흘러 한홍구 선생의 《대한민국사》에서 국민방위군사건을 다룬 글을 읽게 되었다. 거기에는 “사람이 무한정으로 공급되는 자원으로 분류될 때 사람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다.”라는 구절이 적혀있었다.



뭐 괴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공계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큰 회사에 들어가면 적당한 월급을 주면서 젊었을 때 뼈 빠지게 부려먹다가, 시간이 지나 그들이 가진 기술이 생산성 경쟁이 뒤쳐지게 되면 해고된다는 말이 떠돌았었다. 확실하지도 않는 예전 기억을 들먹일 것도 없고, 이공계 졸업생이라는 특별한 경우를 예로 들 것도 없다. IMF사태 다음으로는 해고가 얼마나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1950년대 대한민국은 사람이 무한정으로 공급되는 자원이었던 나라였고, 1990년대 대한민국에는 사람이 자원이라는 카피가 받아들여지는 사회였다. 그러나 40년이 지나도록 사람이 무한정으로 공급되는 자원이었던 나라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2000년대가 되자 사람이 무한정으로 공급되는 자원인 나라가 백색테러단체의 옷을 벗고, 보다 세련된 경쟁이데올로기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다시 나타났을 뿐이다.

진정 사람이 귀중한 자원이라면, 노동·토지·자본 중에서 오로지 사람만이 생산 가능한 노동에 가장 큰 가치를 뒀어야 하지 않았을까? 진정 사람이 귀중한 자원이라면, 오로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활동에 보다 더 투자를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진정 사람이 귀중한 자원이라면, 인간의 노동이 최적화될 수 있는 삶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서 복지에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지 않았을까? 혹시 진심은 토지가 자원인 나라 아니었을까?

하지만 사람이 자원인 나라에서는, 불행하게도 사람자원이 다른 사람자원으로 대체 가능했다. 누구도 숙련된 노동에 대하여 추가적인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 작은 차이가 만든다는 명품이 탄생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언제나 똑같은 예비품으로 교체 가능한, 균질한 집단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안타깝게 그 집단 안에서 사람자원의 공급이 수요보다 좀 더 많이 제공되고 있다.

사람이 무한정으로 제공되는 자원인 나라가 나빴듯이, 사람이 자원인 나라도 나쁘다. 게다가 사람이 자원이라는 말에는 그 자원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에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자원을 잘 쓰겠다는 생각에서 발전하여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사람을 키운다는 말이 지금과 같이 미친 것 같은 경쟁교육을 통해서라면, 그래서 유휴자원을 가지는 특정 계급에서만 자원이 재생산되는 구조라면, 그런 인재육성에 동의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게다가 자원이 될 기회를 가지지도 못한 채, 자원이 되지 못했다고 버림받아야 한다면, 만약 그런 의미의 사람이 자원인 나라라면, 그것이 왜 나라이겠는가? 맹자의 민본주의적인 가치고, 서구의 공화국의 가치도 여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도적떼의 위계질서 말고 다른 어떤 것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사람이 자원인 나라라는 말은 더 이상 달콤하게 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자원인 나라에서는 사람이 목적이 된다는 원칙적인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그 카피는 달콤하지 않다. 그 자원이 제품의 원료와 같이 균질한 자원을 뜻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혹시나 기업의 입장에서 유능하고 특별한 인재를 뜻하는 자원이라 하더라도, 그런 자원이 될 기회가 특히나 불균등하게 제공되어 키워진 자원이라면,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건 쓰레기다.



국민학교 4학년 때, 국민교육헌장 대신, 김구선생의 그 글을 외웠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좀 더 나은 모습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U와 V 그리고 에반겔리온

그리스 문자에는 영어의 v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없다. 고대 라틴어의 명문에는 U를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에는 대신 V가 들어가 있다. 아랍어에는 f에 해당하는 ف는 있지만, v에 해당하는 글자는 없다. 대신 아랍어에는 b는 있지만 p는 없다.

그리스어에는 좋다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
ευ- 가 있다. 당장 기억나는 eu로 시작하는 단어라면, 진핵생물을 뜻하는 eukaryote.... 밖에 생각이 안나네. 사전을 찾아보니, eulogize, euphemism, eyphoria (양심상 예전에 외우는 노력이라도 해 봤던 단어들만) 등이 있다. 사람 살기 좋다는 Eurasia 대륙은 당연히 포함이 안될것이다.

여기에 전령을 뜻하는
ἄγγελος가 합쳐지면서 evangel- 이라는 어근을 낳았다. u와 v가 왔다갔다 하니까 가능하다. 이 단어는 좋다라는 뜻을 福으로, 전령을 전령이 전하는 말에 집중하여 音으로 옮겨 복음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놀라워라.

1990년대 후반,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전령은 사도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어 EUrasia 대륙의 동쪽 끝에서 피를 튀기며 싸움박질을 하게 되었다. 전편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양산형 에바들이 2호기를 섭취하는 장면이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라는 뜻의 기의가 2500여년에 걸쳐 변화되어, 토사물에 섞인 라면가닥을 두고 다투는 관악산 공원 앞 비둘기 떼보다 더 혐오스러운 모습이 되었다는데까지 생각이 이르자, 마치 토사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 이상 글을 쓸 마음이 없어졌다.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閑談

오늘까지 프로젝트의 중간 발표 준비를 끝냈다. 원래 뭔가 이렇게 중간이든 끝이든 매듭지어야 할 때가 오면, 똥줄이 타기 마련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주제의 특성상, 그럴싸한 그림이 전부터 좀 나와 있었기 때문에, 포멧을 변환하고, 예쁘게 모아서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수준에서 끝이 났다. 그래도 마감은 마감이니까 정신없었다. 이번에 갈무리한 것을 바탕으로 논문이 한 편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만의 생각인 것일까. 그래서 아직 학생인가보다.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2주 후에 또 학회가 있어서, 그거 준비 때문에 또 바쁠 것 같다. 빨리 8월이 와야 쉴 수 있다. 7월 말에 또 학회다. 가지도 못할 학회지만, 프리젠테이션은 만들어야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마지막 사랑》을 박기영이 불렀는지 몰랐다. 그 멜로디가 갑자기 생각나서 가사를 검색해 보니까 그거 제목이 《마지막 사랑》이었고, 가수는 박기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작》과 같은 엘범에 실렸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찾아 듣고 난 다음으로는 계속하여 듣고 있다. 그렇다고 가사에 감정이 몰입되는 상태는 아니고, 그냥 멜로디가 너무 좋으니까. 낮에 발표자료 준비할 때도, 속으로 흥얼거리며서 일했다.

그렇지만 1999년 봄은 역시 핑클 2집의 계절이었다. 7교시와 8교시 사이의 쉬는 시간, 서쪽으로 난 교실 창문에 쳐 놓은 블라인드 사이로 나른한 햇볕이 들어왔다. 서쪽으로 뉘였뉘였하는 해에서 나오는 광선은 긴 대기를 통과하면서 단파장 성분이 꽤나 흡수되기 때문에 조금 노랗게 보이고, 그래서 나른해 보인다. 다음 시간 책을 빌리러 갔는지 화장실에 갔는지 자리를 비운 옆자리 놈의 의자까지 차지하고 누워서, 영어듣기하라고 사주신 카세트에 핑클 2집 테이프를 넣고, 교실 뒤의 소란으로 여신들의 목소리가 차마 침식당할까 이어폰을 귀에 꽉 꼽고 소리를 높여 듣고 있으면, 나른함은 사라지고, 그저 정신이 아찔해 올 따름이었다. 핑클 2집의 속지는 하얀색 바탕에 각 멤버의 여신 컨셉 2등신 커리커쳐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걸 보면 존슨이 기립했다. 다분히 제작자의 의도가 아니었던가 한다. 그 때가 5월이었다.

5월은 참 좋은 계절이다. 5월의 또 다른 기억은 중학교 때이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동래 분지의 시가지를 굽어볼 수 있었다. 머리 위 높이 떠 있는 태양에 회색 도시조차 하얗게 비치고, 황령산, 배산의 푸르름이 짙어지고, 하늘은 새파랗고, 뭉개구름이 조금씩 피어오르는, 상큼한 오전의 3교시 국어시간이었다. 나는 6반이었고, 국어선생님은 4반이었다. 국어시간에 어쩌다 보니까 “바르고 고운말을 써야 합니다.”라고 국어선생님이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는 그 순간, 4반에서 난생 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욕설의 고성이 창문 밖에서 들려왔다. 고환과 자식을 찾는 내용이었는데, 너무나 생소한 나머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자기 반 학생임을 아는 국어선생님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미친놈입니다.”라고 하시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반사회적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펼쳐두기..


그러니까 결론은 일이 하나 마무리되어서 기분이 좋고, 한가로운 여유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페스토를 만들어 먹다.

페스토를 만들어 먹어 보았다.

포크로 먹어야 하겠지만, 혼자 먹는 거라서 편한 젓가락으로 먹었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필수 재료: 스파게티 면, 페스토 소스, 소금

1. 소금으로 약하게 간을 한 물을 끓인다. 물은 라면 먹는 만큼보다 조금 많은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2. 스파게티 면을 먹을만큼 넣는다. 80g이면 밥먹고 후식으로 먹을 만큼 되는 것 같다.

3. 면의 굵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6분 정도 더 끓인다.

4. 물을 버리고 면을 접시에 담는다.

5. 면이 마르거나 식기 전에 페스토 소스를 적당히 (건조면 무게의 반 정도?) 뿌린다.

6. 비벼 먹는다. 기분에 따라 올리브 기름이나 후추나 바실리쿰이나 고추가루 이런 걸 뿌려 먹을 수도 있다.

짜파게티나 매 한가지다.

날개

뉴스를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새는 진짜 날마다 개소리, 날마다 개지랄이구나.

오늘도 해가 떴으니, 곧 시작되겠지.

이명박은 날개다.



오늘은 518이다.

올해는 특히나 더 서럽다. ㅜㅜ

2010년 5월 16일 일요일

정치성향과 수능성적의 상관관계? (지역별)


자료출처: http://www.vop.co.kr/A00000294891.html

전국 16개 시도의 수능 1·2등급 비율과 지난 대선에서의 鼠さん 득표율을 비교했다. 상관계수는 -0.2가 나왔고, 실선은 최소제곱 근사선이다.

이 그래프를 기초로 해서, 정당과 교육 수월성의 관계, 지능의 유전 등등 같은 이상한 가설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모두 옳지 않은 소리이다.

일단, 수능을 친 사람이 투표를 한 것이 아닌데다가, 각 시·도의 인구가 다르므로 이런 식의 그래프를 만드는 것이 의미가 없고, 다음으로 분산이 심하기 때문에 명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어느 분의 분탕질을 보고 나는 못할쏘냐 싶어서 시각적으로 보다 돋보이는 그래프를 만들어 보았다.

2010년 5월 13일 목요일

사랑니

왼쪽 턱에서 조금씩 발달해오던 사랑니가 드디어 탈을 만들고 말았다. 월요일날 잠에서 깨었을 때, 감기에 걸린 듯 왼쪽 목이 붓고, 침을 삼킬 때마다 통증이 있기 시작했는데, 월요일 아침에는 아파서 잠에서 깼다.

병원에 예약을 하고 찾아가 진찰을 받고, 뢴트겐을 찍었다. 목이 아픈건 림프가 부었기 때문이고, 사랑니의 위치도 좋지 않다고. 이는 다음주가 되어야 뽑을 수 있을 듯하다. 가그린 같이 생긴 구강 살균제가 아침의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련하지만, 진통제 처방도, 항생제 처방도 그리 달갑진 않아 모두 거부했다.

다행히 깨어있는 동안에는 통증이 심하지 않다.

2010년 5월 7일 금요일

중심력 운동

궁금한 것이 생겨, 교과서를 꺼내놓고 찾아 읽고 계산을 했다. 태양동주기 궤도를 만들기 위한 조건에 대한 것이었는데, 맨 처음에 나오는 vis-viva 방정식이 어떻게 유도되는지를 까먹어서 책을 좀 뒤적였다.

역학 책은 이해하기 쉬우라고(?) 그랬는지, 벡터도 쓰지 않고, 차근차근 미분방정식을 풀어 놓았는데, 나는 분명히 천문학 시간에 적분하지 않고 백터를 사용해서 그 관계식을 유도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노트는 저 멀리 어딘가에, 찾기 힘든 어딘가에 있다.

분모에 제곱근이 들어가고, 제곱근 안에 2차식이 있는 형태의 적분은, 제곱근 안을 완전제곱식으로 만들어서 해결한다. 그러면 삼각함수로 치환이 가능한 모양이 나온다. 그런데 그걸 정작 역학 수업을 들을 때는 몰랐었다. 그 때는 wolfram alpha같은 것도 없었고,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한들, 내가 그걸 알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런 기법들을 가르쳐 주나 싶어서 미분방정식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왠걸, 미분방정식 시간에 배웠던 것은 정말 수학이었다. 물론 이해하지 못했다. 수학과 수업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하지만 역시 그 때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수학과 수업들을 몇 개 더 들었었다. 미분방정식 보다는 이해하기 수월했지만, 역시 수학적인 사고라는 것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머리임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손에 잡히거나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최소한 나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단 시간이 갈수록 이런 잡기가 매우 느린 속도로 늘긴 하는 것 같다.

지구는 볼록해서 섭동이 생긴다. 그래서 지구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들의 공전궤도면은 자전축을 축으로 해서 회전한다. 궤도를 적당한 고도, 적당한 궤도경사각에 올려 놓으면, 그 궤도면이 회전하는 각속도가 지구의 공전각속도와 같아져서, 위성이 태양에 대하여 같은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 이것이 기가 찬 우연인지, 아니면 왠만해서는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좀 계산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 사실은 그래 봐야 지구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었서 그림자 길이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덜 중요하긴 하지만 지구 궤도가 살짝 타원인 것도 그림자를 조금씩 삐뚤어지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구름 크리가 있기 때문에,, 대세는 SAR... Van der SAR인 것이다.

다시 읽어본 역학책은, 생각보다.... 쉬웠다. 아마도 그 동안 영어에 훨씬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리라. 번역서가 있었다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시간을 들여 책을 읽었더라면, 이해하는 수준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타원궤도에서 시간에 따른 위치를 구할 때, 역학책에 소개된 반지름과 각도 사이의 관계식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노말리라는 것을 이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방법이 설명되어 있던 노랗고 파란 그 때의 그 태양계 역학 책을 좀 더 열심히 읽었다면, 아니, 그 때 조금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서 배고픔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자지만 않았더라면, 뭔가 조금은 바뀌어 있을까? 아니, 가난과 배고픔 전에, 웬지 이상한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이질감과 거부감을 버렸더라면, 그 다음 단원도 최소한 함 시익 볼 수는 있었지 않았을까.

남아있는 계산은 내일 더 봐야지 할려다가 잡상이 떠올랐다.


익일 추가:
vis-viva 방정식의 유도는 적분도 필요 없고 심지어 벡터도 필요 없었다. 단지 각운동량 보존법칙과 에너지 보존법칙을 이용하여 구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총에너지에 대한 매우 기하학적인 기술을 얻고, 거기서 운동에너지를 매우 동력학적으로 기술하여 빼면, 기하학과 동력학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vis-viva방정식을 얻게 된다. 천문학 시간에 이렇게 배웠었다.

2010년 4월 30일 금요일

흥, 대한민국이 누구껀데, 누구더러 법을 지키라는거야?

국가기구가 사유화되면, 누구도 손을 델 수 없어. 우리가 조선 말의 시궁창에서 배워할 건, 개화니 뭐니 하는 것 이전에 나라가 그짝이 된 이유, 국가기구의 사유화, 그거야.

하물며 개인의 작은 권리에도 책임이 따르는데, 어찌 권력을 잡고서는 책임에서 이리도 쉽게 벗어나는가. 또한 어려서부터 그런 특권이 내면화된 자들에게 대체 무슨 책임을 기대하겠는가.

특권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신 대통령이 우리 곁에 있었다. 그리고 국민은 그를 죽였다. 당해 싸지 않는가.

잊지 마라, 한일전 축구 전날은 그 분의 1주기이다.


사족: 선거·선거·선거를 통해 심판합시다.

동학 농민운동때, 부적들고 나가면 총 맞아도 안죽는다고 소문이 돌고, 사람들이 부적을 들고 뛰쳐 나갔다. 그리고 기관총에 맞아서 우수수 쓰러져 죽었다. 나는 투표 잘하자는 말이, 동학농민군 사이에 돌았던 그 말과 크게 달라 들리지 않는다. 이미 선거 따위를 통해서는 정상화 될 정부가 아니다. 방송과 언론, 선관위가 중립을 지킬것이라 생각한다면, 지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임을 의심해야하는 상황이다. 투명한 선거. 말 참 좋다. 한나라당이 그 정도 못 되돌릴까? 이미 자유당때부터 해 오던 세살버릇인데? 선거 되돌리면(이걸 현 정부에서는 정상화, 선진화라 부른다는 것을 떠올리자.), 다음은? 고문의 부활이지!

폭력조직으로 거듭나고 있는 신흥 한나라파가 선거에서 크게 지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만약 그렇다 해고, 별별 시나리오가 다 준비 되어 있을 것이다. 당장 월드컵이 있고, G20까지는 시간이 붕 뜨는데, 이북이 미사일 하나만 동해에 발사해도 한달은 우려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야당 당선자 여럿 수사하겠지. 특히 서울·경기. 당선취소형까지 가는게 그리 어려울까? 마음만 먹었다면. 그러면 어쩔건데? 또 선거해야 해?

강도 들었을 때, 안방에 들어오면 보자. 강도가 안방에 들어오면, 서랍 뒤지면 보자. 서랍 뒤지서 털고 있으면, 마누라 건들면 보자. 마누라 자시고 나면?? 그 땐 뭐할껀데? 아마 2012년에 보자고 하겠지. 이미 마누라 자셨잖아, 마누라만 자셔? 딸래미들까지 줄뽕으로 다 꿰고 난 다음인데?

정권심판이라. 참 여유롭구나. 내가 느끼기로는 정권씹판이고, 정권씹창이다.



사족2:
다시 제목이다. 대한민국이 “de facto” 누구꺼냐는 거지. 지껄 지 마음대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이라면, 어떤 짓을 할 건지 헤아리기 그리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정권은 은꼴사가 아니라 대놓고 보여주기로 승부하는 정권이니까. 가끔씩은 얘들이 아예 딴생각이 들지 않게끔 겁을 주려고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자연적 억제, 예방적 억제

낙성경제연구소의 연구논문집인 《수량경제사로 본 조선후기》를 연초를 전후해 읽었다. 첫 논문은 조선후기의 인구변화 시계열적 분석한 것인데, 족보를 이용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참신한 연구라고 했다. 족보를 통해서 추정되는 인구는 19세기 동안 증가하지 않거나 감소한다. 그 이후 논문를에서도 계속해서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19세기는 정체 내지는 퇴보의 시대였다.

인구의 자연적 억제와 예방적 억제라는 개념이 그 첫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제시되었다. 쉽게 말해 자연적 억제는 일단 낳고 난 다음에 살놈은 살고 디질놈은 디지게 놓아 두는 것이다. 식량 생산과 무역을 통해 부양할 수 있는 인구만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생산성이 정체된 사회에서는 인구가 극한값에 수렴하게 된다. 조선 후기처럼. 예방적 억제는 인구를 미리 줄이는 것이다. 만혼화, 피임, 낙태, 영아살해 등이 이용된다. 그 논문은 조선 후기의 인구 억제는 자연적 억제에 머물렀고, 동시기 일본과 유럽에서는 예방적 억제가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고 했다. 내가 과민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조선은 미개했다는 말을 하는 듯 한 뉘앙스가 느껴지는 것 같아 좀 불편했다.

그들이 용을 써서 창출한 신개념(무개념?) 정부는 역설적이게도 선진적 인구조절 기법인 예방적 억제를 불법화하기 시작했다. 그 극단적인 경우를 여기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43763 에서 볼 수 있다. 그 영화를 아직 보지는 않았는데, 찾아서 봐야겠다.

묻는다. 종교적 신념에 도취해 남의 인생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성스로운 분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태어날 아기들의 인생에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시설아동으로 커 간다면 운이 좋은 축에 들 그들에게. 그리고 산모에게도 평생 엄청난 짐을 지울 당신들. 그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의 맨 바닥을 깔아 줄 때, 그들에게 대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으스델 것인가? 불쾌한 인간들 같으니.

난데 없는 바른생활사나이들 때문에 공포와 불안 속에 있을 젊은 산모들과, 또 태어나 고통의 세상을 살아야 할 아이들이 너무너무 불쌍하다. 불쌍해 미치겠다. 왜 원인이 명확한 동정과 안타까움이 분노로 연결되지 않겠는가.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언어는 개인마다 고유하다. 개인의 내적언어는 인격을 구성하는 큰 부분이다. 반면 내적 언어의 무한한 다양성을 언중이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언어에도 표준이 필요해진다. 대한민국에서는 표준어가 이 역할을 하고, “교양있는 현대 서울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라고 그 범위가 규정되어있다.

어떤 개인의 언어를 비표준으로 낙인 찍는 것은, 그 개인을 구성하는 인격의 일부분을 비표준으로 규정하는 것이므로 공격적인 행위가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언어의 표준은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여 정해져야하고, 정합적 논리성을 유지해야 하며, 가장 많은 언중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기준으로 언어의 표준이 정해진다면, 저항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표준어를 규정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기준으로 표준어를 정하는 지 알 수 없다. 짜장면은 중국어기 때문에 외국어 표기에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는 원칙 상 짜장면이 될 수 없다? 짜장면이 외래어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럼 자장미엔이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황허 강 같이 자장미엔 면이 되든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짬뽕은 왜 짬뽕인가. 어원을 살려 적는 것이 원칙이라면, 삭월세는 웨 사글세가 되었는가. 다들 사글세로 발음하기 때문이란다. 좆까. 정말이지 사글세라는 말을 왜 예외적인 표준으로 만들어서, 적어도 내가 살던 지방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것을 받아쓰기 맞추려고 10살짜리가 외워야 했는지 아직도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이후로도 사글세라는 형태의 주거임대방식을 들어 본 적 없다. 그러면서 어떤 예외없는 원칙이 있길래 언중 대다수가 사용하고 발음하는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쓰지 못하느냔 말이다.

왜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부르는 대다수의 언중을 비표준으로 몰아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예외는 정말로 예외적이어야 한다. 한 번 예외를 허용하면, 이렇게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사글세라는 빌어처먹을 전례만 아니었다면, 자장면이라고 쓰고 짜장면이라고 읽는 부조리한 상황을 받아들였을 것 같다. 왜 그런거 많잖아. 누가 버스를 /버스/라고 읽는가 /뻐스/라고 읽지. 아마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짜장면은 외래어가 아니잖아.

무원칙하게 정해지는 표준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나는 표준에 가까운 경상방언 화자다. 표준어과 사투리가 대립하는 지점에서 표준어가 옳은 것이고, 사투리가 틀린 것이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았다. 경상도 사람들은 ㅓ 랑 ㅡ 구별을 못해, 남도 사람들은 ㅔ 랑 ㅐ 구별을 못해, ㅚ랑 ㅟ는 단모음으로 발음해야 해. 등등 또, `맑은'은 /말근/이라고 읽고, `맑다'는 /막다/로 읽어야 해. 좆까. 각 도마다 각각의 버전이 있겠지. 그런 것을 보면, 이런 식의 표준어 강요는 지방민들에게 무기력을 학습시키고, 자존감을 박탈하며, 향토애를 뿌리부터 제거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못난 언어를 쓰는 못난이들이라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은 전통과 뿌리를 부정해 왔던가. 그리고 그 해독이 만연해 있지 않는가.

텔레비전에서 생글생글 웃는 아나운서들이 이건 맞고 저건 틀렸다고 말하는 것 보면, 예전에는 저 사람들이 잘난 사람이니까 맞는 말이려니 했는데, 요즘 보면 이것들 하는 꼴이 웃기지도 않아. `정구지찌짐'이라는 단어를 쓰면 무슨 외계에서 온 사람 보듯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나도 면상에 똥을 싸갈겨주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부추부침개' 난 이 단어를 들으면 아무런 맛도 떠오르지 않는단 말이다. 대체제가 이토록 부실하기 때문에 나는 정구지찌짐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경상방언의 특징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욕도 마찬가지다. 짜파게티 끓일 때, 실수로 스프를 끓는 물에 바로 넣은 직후, 아차 싶지만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 씨발”이라고 외마디 한탄을 하는게, 막되먹은 쌍놈이라 그런가. 아니다. 그 감성은 그 단어가 아니면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정도로 그 상황에 대한 원망이 표현되는가?

나의 언어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나의 언어를 부정해야 할 것으로만 바라보았을 것이다.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르고 쓸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규범에 어긋나지만,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부르고,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쓸' 것이다. ㅆㅂ.

2010년 4월 5일 월요일

크림을 만들었다.

오늘은 크림을 만들었다. 껄쭉한 우유를 계속 치면 크림이 된다는 설명이 적이 괴이쩍었으나, 된다고 하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실은 이전에 이미 수차 도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거품이 둥둥 뜬 껄쭉한 우유를 만들고야 말았다. 다들 버렸다.

오늘도 반신반의 하는 상태에서 시작하였다. 하다 안되면 또 버려야지 하는 심정이었다. 최초 10분이 될 때까지 예전 실패했던 상황이 되풀이되는 느낌이라 많이 속상했다. 팔만 아프고, 또 배리는구나. 기왕 이렇게 된거 정말로 함 쎄리 쳐 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 사발의 공간을 모두 사용하여 퍽퍽쳤다. 잠시 후 전체적으로 점성이 높아지고 성상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아 신이 나서 더세게 쳤더니 결국 크림이 되었다. 하하. 하지만 팔이 많이 아프고, 힘이 든다. 한 20분 정도 쳤던 것 같다.



바닐라 가루를 좀 넣고 더 친 다음에 만들던 티라미수에 올렸다.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방제에 관하여

방제 كتب 는 he wrote라는 뜻이다. 아랍어는 삼인칭 과거형이 동사원형이다. 내가 쓰는 글들은 독자 입장에서는 그가 이전에 쓴 글일 것이다.

아랍어를 쓸 때, 빨리 쓰기 어렵지 않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대답은

“모음을 쓸 필요가 없어서 더 빠르다.”

였다.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巫·士·民·奴

1.
노대통령이 재임 중일 때였다. ㅜㅜ 유난히도 국가 정체성을 들먹이고, 민생을 이야기하던 인기좋던 정치인이 있었다. (오해할까봐 그러는데, 아직 살아있다.) 그가 대한민국을 들먹일 때, 그의 대한민국과 나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다른지 느끼고는, 참담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지금 “선진”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7·80년대에 선진국이었다가 2000년대에는 쓰레기나라로 추락한 것 같다.

우연히 세종시 수정안 때문에 거의 처음으로 상식의 편에 서 있는 것 처럼 보였던, 그 정치인이, 요즘은 왜 민생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지 모를 노릇이라고 생각했었다. 살림은 더 혹독해졌는데 말이다. 한 2년 쯤 된 것 같다. 신물나게 들었던 그 단어를 못 들어본게. 근래 깨달은 것은 그 민생의 민이 되려면, 집 한채는 가지고 있어야 되는것이였다. 그렇게 정의를 하고 나면, 확실히 민생이 더 나빠지지는 않지 않았나. 그리고 민생을 위해 집값을 어떤 댓가를 치르게 하고서라도 (그래 지가 댓가를 치르는 건 아니다.) 지탱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민생은 잘 챙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 民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은 무엇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 丈奴, 또는 制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奴에 대하여서는 生을 쓸 수 없다. 자유로워야 生 아닌가? 奴와 生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丈은 측정한다는 뜻이 있다. (토지검사를 丈量이라고 했다.) 이들의 상태는 단지 통계의 숫자에 지나지 않다. 10년 전 스스로를 메인스트림이라고 칭하던 그들에게 숫자에 불과한 건 나이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人·民·奴의 구분에 따르면 人정도가 되지 않겠나. 民도 되지 못하는 奴나 婢의 실업률이 얼마인가 역시 숫자에 불과하다. 쿠폰으로 월급을 받는 형편 없는 일자리를 줘서 그 숫자가 작아지면 그만이다. 그런데 奴나 婢 주제에 그마저도 안하려고 하니, 죽든 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들이 뭉쳐서 작당을 하지 못하도록 制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丈에는 몽둥이라는 뜻도 있다. (賊反荷丈) 制奴의 방법이 또한 丈奴인 것이다. 다만 奴婢는 대가 끊어지면 곤란하니, 婢의 질과 자궁을 잘 감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아, 보스니아 내전의 집단강간을 찾아보길. 그르바비차를 찾으면 된다. 발음도 비슷하네 /제노/, /제노사이드/)

현종 때의 대기근 때, 부잣집에서 노비를 내 쫓았다. 입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기록에 따르면 쫓겨난 노비는 열에 아홉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노비인구의 감소에는 사회적인 격동 뿐만 아니라 준엄한 자연법칙 역시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굶어죽은 자들이 350년 후에 환생해 비정규직이 되었다.ㅜㅜ


2.
내가 알기로 그분은 독실한 교인이다. 그래서 아마도 YHWH가 그분과 그 나라를 보우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돈을 아무리 헛짓꺼리에 쏟아부어도 YHWH가 보우하시기 때문에 부도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국방을 내팽겨쳐도 YHWH가 보우하시기 때문에 외적이 쳐들어 오지 않는다. (요건 팬더의 글에 달린 댓글에서 본 내용이다.) 의심하면 믿음이 약한 거잖아. 그 분의 믿음은 강해. 혹시나 그런 일이 벌어져도 YHWH가 보우하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어. 아, 또한 그분이 그런 오해를 하도록 방조 내지는 협조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奴였다는 것, 또 人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어쨌든 그분은 YHWH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고, 또 그렇게 상당히 살아오면서, 실재로 이 땅에서 YHWH의 사역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지 않는가. 이쯤하면 자신이 YHWH의 유능한 심부름꾼이라고 확신해도 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死대강 운하화에 반대하고, 언론 장악에 반대하고,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고, 의료보험 민영화에 반대하고, 인천공항 매각에 반대하고, 마구잡이 재개발에 반대하고, 경쟁교육강화에 반대하고, 독도할양에 반대하고, 남북관계청산 및 미수복영토의 중국귀속공정에 반대하고, 사법부 장악시도에 반대하고, 무상급식 실행불가 방침에 반대하고, 등록금 현행 유지에 반대하고, 미분양 아파트 정부매입에 반대하고, 守狗꼴통낙하산인사에 반대하는 이런 모든 상식적인 행동을, 그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믿음이 강한 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렇다. 이런 장애들은 그 분의 믿음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탄의 방해를 YHWH의 방식으로 처단하는 것이, 그 분께서 세상을 살아온 방식이고, YHWH의 유능한 심부름꾼이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그 사안들은, 그분의 의지이기에 또한 당연히 YHWH의 의지이다. 그러니 또 다시 당연히 타협이라는게 있을 수가 없지 않는가. YHWH의 시험에 지는 것은 YHWH의 종으로서의 자격이 없는것 아닌가. YHWH 앞에 타협이라니!

이런 우려는 그분의 임기 초기에 이미 나왔던 말이다. 오래되서 이름을 잊었는데, 꽤 유명한 원로 인사가 그런 것 같아 걱정이라고 신문에 컬럼을 쓴 적이 있다.

여하튼 그분은 人 중에서도 최고의 품위인 巫의 位에 있는 것이다. (원래 人에는 접신을 담당하는 巫와 싸움을 담당하는 士가 있었는데, 요즘은 정치만 담당하는 人이나 돈이 억수로 많은 人도 생겼다. 아, 돈이 억수로 많으면 巫를 넘어서 아예 그 자체로 神이 되는 시대인가) 巫의 位에서 최고의 영예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사족
처음에는 그냥 민생이라는 말 자체가 좋지 않다 뭐 이런 소리를 쓸려고 했는데, 쓰다보니까 좀 웃기게 성직자·무사·평민·노예로 구성된 고대의 신분제에 빗대게 되었다. 아리안족이나 인도에나 그런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 상응되는 한자들이 있어서 놀랐다. 한자시간에 士가 지금이야 벼슬이지만, 원래는 도끼의 상형문자였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도끼에 날을 두개나 더 달아서 무력 +2가 되면 王이 된다고.

쓰다 보니 조만간 진화론·창조론 논쟁을 해야 될 날이 올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미국에서처럼 과학 교과과정에 창조론을 넣어야 한다는 것으로! 지구온난화만 해도 골치아픈데.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新報道指針時代

지금 어떤 세상을 사는지 똑바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법정의 죽음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검찰의 생사람잡기 수사도.. 여기엔 없다.

이런걸 보도하기에는,


지금은 곤란한가?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는가?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간첩과 성범죄자

20년 전에 간첩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성범죄자가 있다.

장자연과 방가방가 한 놈들은 아직도, 쳇. 길태는 골로, 고고씽.

잊지 마라, 한일전은 노대통령 1주기 다음날이다.

2010년 2월 28일 일요일

거제역

도시에는 사람의 기억이 밀도있게 스며들어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는 그냥 낯설고 편하지 않은 곳이 되어버리나보다.

어느덧 10년이 넘게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지난 연말, 오랜만에 옛 살던 동네를 들러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넘어지고 뛰어놀던 골목, 국민학교, 중학교 등교길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라진 거제역과 마주했다.

동해남부선의 복선전철화는 이미 1990년대에 결정된 사항이었으나, 매우 천천히 진척되었고, 이제야 그 공사구간이 부전-거제 사이에 다다른 것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도망은 매우 유용한 인프라인데 이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 역시 동해남부선의 복선전철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중의 하나이고 하나였다. 그러나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복선전철화가 되면 거제역은 무사할까하는 것이었다.

내가 거제역 과선교에 다시 올랐던 2009년 12월 31일 오전에, 거제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거제역의 아담한 역사(驛舍)와 쇠 녹이 묻은 시멘트의 낡은 승강장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파헤쳐져 있었다. 아마 장래의 고상 플랫폼의 기반이 될 기둥들이 땅에 가지런히 박혀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옮겨져 보존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동래 방향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부전 방향 저 멀리 보존되고 있지는 않을까. 역시나 헛된 기대였을 뿐이었다.

거제역은 도심에 있지만, 역을 둘러싼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어디 시골역 같은 분위기가 나는 역이었다. 한적한 철길, 딱 시골 간이역만한 역사. 거기서 통근형 열차를 타고 해운대를 가기도 했었고, 또 놀다가 그걸 타고 집으로 오기도 했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걸어서 역까지 걸어 가서 기차표를 예매하기도 했다. 봉사활동 확인서를 끊기 위해서 반 친구들이랑 우루루 몰려가서 역 근처에 있던 쓰래기들을 줍기도 했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오후 과선교를 건너면서 거제역을 본 것도, 그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시골역 같은 역에 내가 정이 들게 된 이유일 것이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은 거제역이 나름 좀 특별한 역이라는 것이었다. 플랫폼 위에 역사가 있는 그런 구조는 원래도 드물었고,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그리고 역사 자체의 구조 또한 일제 말기의 역 형태로 이제는 일본에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형태이고, 물론 남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나는 그런 역이 많을 줄 알았다. 거제역이 그렇게 가까이 있었으니까. 어쨌든 거제역은 타지에서 알게된 친구들에게 내가 자라왔던 동네를 구경시킬 때, 빠지지 않는 관광코스였다.

수 년 안에 새로운 거제역이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된다.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광역전철역과 비슷한 역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거제역에 비하면 무척 클 것이고, 그 전에 비하여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다시 찾아간 그 곳에서 나는 이방인의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과외를 소개받고, 처음으로 가 보는 어떤 역에 내렸을 때와 비슷한 느낌말이다. 그리고 좀 서운할 것 같다.

사실 그 건물이 그대로 역사 역할을 수행해 주기 바라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다. 그 역사를 하루에 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인파에 역사가 무너져내리리라. 하지만 옛 건물이 드문 우리나라에 운 좋게 반 세기 넘게 버텨왔던, 나름 유서 깊은 건물이, 또 다시 하루아침에 아마도 포크레인의 삽날에 무너져 내렸을 장면을 상상하니 씁씁하다. 많이 씁쓸하다. 과거의 거제역이 그러했듯이 플랫폼 위의 대합실은 어디에 보존해 놓았다가 나중에 그대로 고상홈 위에 옮겨서 쓸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에 섬식 승강장으로 계획되었다면.

지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이미 고향을 떠나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거제역 보존을 외치며 복선전철화에 태클을 건다면, 그처럼 고약한 훼방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존하면서 나이테 처럼 켜켜히 세월을 보전해 간다면, 그래서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도시들처럼 특색으로 가득찬 도시가 된다면, 결국은 모두에게 좋을 일이 되지 않을까. 비극은 개발과 변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이, 지금 한국에서는 견제받지 않는 자본이라는 먼치킨이라는 점인듯 하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오바마가 한국 교육 칭찬하면 좋습니까?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열을 예로 들면서 미국민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은 심심치않게 언론에 보도된다. 상국의 황제께서 일개 번국을 기특히 여기며 이를 배워야한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데, 왜 청현직의 인사들이 꺼뻑죽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많이 불편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오바마의 그런 발언이 불편한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가 한국의 “지나친” 교육열이 오히려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마당에,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오바마의 인상비평이 한국의 교육현실에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하는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미친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교육을 통한 계층 고착화에 오바마의 설익은 언급이 이용되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난 아직까지 자식이 없다. 말하자면 그 불편함이 사교육이나 경쟁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한국 교육이 괴물이고 기형이라는 의견에는 백번 천번 동감한다. 그러나 오바마의 한국 교육열 운운에 내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내가 언짢아지는 이유는, 단순히 말하면 자존심 상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쓸 이야기가 범인류적인 상식과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혼자 생각만 하고 있으려고 했던 것들이다.



나는 한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에 대하여 많이 생각한다.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국내에는 크게 두가지 견해가 있는데, 한국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혈통있는 나라라는 견해와, 한국은 그저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신생독립국 중의 하나라는 견해가 있다.

당연히 첫번째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불행히도 두번째 견해는 우리나라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저 두번째 견해란 것이 내가 썰을 풀기 위해 실체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사실 두번째 견해를 뒤바침할 만한 요소는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은 실재 일본 것을 많이 복사했고, 요즘은 고급 지식을 얻기 위해, “오로지”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공부한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인가, 영어공용화론이 나름 진진하게 논의 되는 모습은 식민지 지식인들이 했던 고뇌들과 많이 비슷해보인다.



12년 전에도 그랬다. 사람들의 자존감이 낮아져서 사회가 동요하는 것을,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불만과 자존감을 투사할 허상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불만을 투사하기위해 외국인 노동자와 빨갱이가(요건 딴지일보 독자불패에서 읽었다), 자존감을 투사하기 위해 국가가 동원된다. 웬만해서는 민족을 동원하는 것이 한단계 더 심원하겠지만, 그러면 빨갱이를 끌어 안아야하기 때문에 민족보다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따라서 나같이 자존감을 어딘가에 투사해야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1948년에 시작하는 역사를 강요받는 것이다. 극도의 혼란속의 단독정부 수립, 전쟁, 계속되는 혼란, 지수함수적인 경제성장, 민주항쟁, 올림픽,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 부도극복, 월드컵. (어? 뭐가 빠졌네?) 이 모든 과정을 다 지켜 본 사람이 한 둘도 아니고, 국민 중에 예순 넘은 사람 전부다. 캬, 내가 써 놓고 봐도 정말 멋지고 간지철철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면 자문해 볼만하다,

“대한민국 대박친거 아냐?”



이제 내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줄세우기를 해 보겠다. 사실 전쟁 후의 폐허에서 재활한 나라를 성공적인 순서대로 써 보자면, 그 첫번째는 소련이다. 그 다음에 독일과 일본이 있고, 그 다음 등수로 프랑스, 이탈리아를 들 수 있겠다. 소련은 히틀러 때문에 우랄산맥 서쪽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고, 전쟁으로인한 인력손실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종전직후부터 소련은 최소한 본토에는 폭탄하나 떨어지지않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월드투톱이 된다. (아 사실 미국에는 일본이 풍선에 매달아 날려보낸 폭탄이 몇 개 떨어지고, 일본 잠수함에 의해서도 태평양의 항구가 공격받은 적이 있다고는 하네요. 별 의미를 두지는 못할 것들입니다만.) 독일은 어떤가. 독일은 본토가 전쟁으로 사실상 폐허가 되었고, 분단까지 당했다. 서독만 치면 나라가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1938년의 국경선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 상황에서 서독은 금방 세계 수출의 넘버 2가 되었다. 일본은 본토가 공격받지는 않았지만, 패전후의 상황은 정말 참담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국토가 전장이었다. 아, 이따위 순위메기기가 말도 안되는 거고,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많은 정치·경제적 이유들이 있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러나 일단 한국까지는 해야되지 않겠나. 한국은 전쟁이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한 8년 후에 끝났다는점을 고려해도, 이들에 비하면 좀 늦은 편이다. 그리고 최종적 성취 역시 이들과 비교되기에는 모자란다. 이런 비교를 하면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불공평한 비교라고. 왜? 우리나라는 식민지에서 출발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와 비교를 할 나라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나라들이다. 가까이 아시아의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이라크, 시리아, 사우디. 좀 멀리 아프리카의.. 음.. 여러 나라들. 이들 중에서 최소한 전쟁의 피해를 입었던 나라만을 꺼내 봐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요 두 나라에는 베트남 전쟁때 꽤나 폭탄이 떨어졌었다) 정도가 되겠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상태가 더 좋았네. 전쟁의 참화는 비켜갔으니까. 자, 이들과 비교하는 것은 그렇다면 이제 공정한 비교이겠는가.

이렇게 눈을 낮춰보면, 대한민국은 대박쳤다. 진짜다. 2차대전후에 독립한 나라들 중에 어데 지금 성한 나라 있더뇨.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경제적으로 번영한 곳도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형식상의 민주주의나마 작동하고 있는 곳도 그다지 많지 않다.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과학·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나라도 없다.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치안이 안전한 곳도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대중문화든 전통문화든 독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기적은 2차대전이후의 신생독립국으로서의 “기적”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라면, 이것도 별로 공정하지 못한 비교라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웬지 무시당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내가 오바마의 한국 교육열 운운을 들었을 때 받는 느낌은 그 느낌과 같은 종류의 찝찝함이다.

이들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보면,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면서 가슴벅차했던 것들이 상당한 측면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성공 순위의 우리 앞자리에 있던 나라들이 거기 설 수 밖에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한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행정, 경제, 군사, 문화 등을 발전시키고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였다. 그 말은 그런 시스템을 운영해 본 사람이 있다는 측면보다는, 이미 그 국민이 그러한 조직적 행정의 “피경험인”이었다는 것에 중점이 주어진다. 한국은 필리핀은 할 수 없었던 일사분란한 동원체제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향해 나갈 수 있었고, 시험이라는 미끼를 만들어 학교를 통해 현대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철저히 교육할 수 있었다. 과거시험의 전통이 없었던들 이것이 그리 쉬웠을까. 한국에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같이 지역별 호족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처럼 부족간 갈등이 있는 나라도 아니었다. 한국인이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매우 다른 형태를 보였을 것이다. 그 예를 바로 일본의 타이완 지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나마 베트남이 가장 근접한 형태의 중앙집권을 시도해 본 역사적 경험이 있는 나라고, 그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도 그리고 중국에도 이겨본 적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 외의 나라들은 어떤가. 그렇다면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은 기적의 발전을 보인 것이 아니라,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보다 공격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의 기적을 강조하는 것은 그 반동력으로 식민지 경험을 정당화한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내가 오바마에게서 느끼는 불만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한국의 성공을 교육만으로 이야기하려는 단순함에 대한 불만이다. 거기에는 한국이 20세기의 쓰디쓴 실패 이전에 성취했던 높은 수준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의 주요한 요인으로 교육열을 본 것은 현명하지만, 그 교육열의 연원이 무엇인지는 찾지 않는 단견(그런데 누구나 다 그렇다)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리고 오바마의 발언을 열렬히 옮겨대는 매체들이 정말 이런 생각을 못해서라기 보다는, 역사의식의 단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계급적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어찌보면 식민지 35년은 짧은 시간이다. 이미 독립 후로 그보다 2배 가까운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많은 식자들은 아직 남아있는 식민지의 해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 또한 식민지의 해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식민지는 자립적인 성장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는다는 점이 가장 나쁘다. 강점기를 통틀어 조선인의 자본축적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었고, 정치참여 또한 얼마나 제한되어 있었던가. 그런 것에 비하면 신사참배강요나 창씨개명같은 어거지 짓은 악세사리에 불과해 보일 정도이다. (그만큼 질과 수준이 낮은 짓이었다는 뜻임. 마치 금상께서 하시는 짓처럼) 그리고 해방이 되어서도 그 마름들을 죽이지 못한 것은, 어쩌면 오랜 역사동안 한번도 왕의 목을 쳐날린 경험이 없던, 민족의 경험 또는 역량 부족 탓일 것이다. 하지만 조선조동안 국제무역이라는 스킬을 잃어버렸던 한국인이 근래 다시 그런 경험을 익힌 것처럼, 곧 왕목따 스킬을 익히게 될지도 모른다.

더불어 미국에 필요한 것은 한국의 교육열이 아니라 실체에 기반한 계급간의 통합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봐도 미국은 아직도 신화를 만들어야 유지될 수 있는 초기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아직도 사라 페일린을 필요로 했다. 여기서 신화는 거짓말의 은유이다.

2010년 2월 15일 월요일

다시 횡횡하는 지구온난화 구라설

북미에서나 횡횡한다고 여겨지던 지구온난화 구라설이 한국에 상륙한지 꽤 된 것 같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은 꽤나 매력적인 설명이다. 그 설명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더하여 처음 들어보는 음모론은 듣는 이로 하여금 고급 정보를 우연히 얻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우쭐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그런 고로 어처구니 없는 음모론적 설명을 확고하게 믿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프레시안》이 지구온난화를 까는 데에 불을 뿜고 있다. 첫 기사의 제목은 “지구온난화 이론, '과학적 사기극'으로 전락하나”였다. 안타깝게도 몇 안되는 진보적 언론으로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던 《프레시안》이 “음모론 찌라시로 전락하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깜짝 놀라 이 기자의 다른 기사를 살펴보았으나, 이전에는 과학이나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기사를 찾지 못했다. 그 이후 이어지는 몇 편의 기사들은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논란이 된 사태를 요약하자면, “IPCC의 4차 보고서에 있는 히말라야의 빙하가 2035년이면 모두 없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 출처의 신뢰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인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IPCC의 신뢰도가 추락했다.”정도가 되겠다. 나 역시 좀 실망했다.

소위 “기후 게이트”와 “빙하 게이트”로 인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미국민의 신뢰가 낮아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북미의 대중들은 유럽과 비교했을 때 원래부터 지구온난화 대하여 무관심 내지는 무지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을 가장 많이 져야할 집단이, 그들을 유리하게 만드는 논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담론이 유럽에서는 주로 “그러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보다 더 촛점이 가 있었다면, 북미에서는 “그게 진짜냐”에 더 촛점이 가 있었다. 원래부터 교양이 상대적으로 모자라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오늘 올라온 기사에는 편파성과 자기기만이 극에 달했다. 몽턴이라는 사람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기사를 전개하고 있는데, 친절하게도 그가 최고정책고문으로 있는 연구소의 웹사이트에는 "증명됨:기후 위기는 없다"는 타이틀을 내 걸고 있다고 한다. 와우, 마가릿 대처의 고문 출신이라는군요. 그의 웹사이트를 직접 찾아가보지는 않았다. 무려 대처여사의 고문이라는데.

이 기사 처음에는 지구온난화 이론 자체는 믿어주자라고 한다. 아레니우스가 황송해 해야겠다. 믿어주겠다니. 과학적 사실은 권위에 의해 증명되는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이 “이론”을 지지하므로 믿어준다는 것은 자기모순 아닌가? 일부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만이 이를 부정한다(이 기사를 통틀어서 가장 진실에 가까운 명제이다)고 마무리를 해 놓고, 다음 문단에서는 시민들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것은 아무 상관도 없는 사실을 편한대로 가져다 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그 일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부실한 주장을 분수에 맞지 않게 크게 떠들어대는 일부 언론을 접하는 시민들이 “정말 그런가”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자기 실현적 예언이라고 한다. 기후변화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시민이 아니라 글을 쓴 기자이다.

이산화탄소가 온실기체이고, 대기 중에 증가한 이산화탄소는 기후변화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 히말라야가 2035년까지 녹고 자시고에 달려있는 문제가 아니다.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이 명제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참인 명제이기 때문이다. 별로 어려운 사실도 아니다. 고등학교 때 다 배우는 것들이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있음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관측을 통해 기록되어왔고, 그와는 별도로 동위원소분석을 통해 이것이 인간이 뿜어낸 탄소라는 것도 증명되었다.

지구 대기가 지금보다 더 많은 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만해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지금까지와 같은 평온한 기후를 만끽할 수 있다고 여기고 싶어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수많은 과학적 사실을 무시해야 할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과학적이라는 것들을 잘 보라. 광우병파동, 원전부지의 활성단층, 일기예보. 과학·과학하지만 확률 이상으로 정확한것이 어디있던가. 이렇게 얼마든지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은 불확실성이 내재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물리적인 것들이다. 대기중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온실효과가 강해진다는 것은, 사람을 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리면 중력가속도 만큼 가속을 받으면서 땅에 떨어진다는것 만큼이나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사실이다. 정치적 주장을 위해 가져다 붙이는 수사적인 의미의 “과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IPCC보고서의 오류와 관련되 최근의 보도(기체분자은 전자기파를 흡수한다)들이 가만히 보니까 점술인의 예언(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이나, 예전의 아하에너지 사건(에너지는 보존된다)과 같은 일이라 가만히 있기에는 좀 곤란했다. 그리고 BBC에서 나왔다는 그 이상한 다큐먼터리, Climate Swindle의 캡춰판을 본 사람들이 있다면, 그 다큐에 나온 내용들이 심각한 왜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

2010년 2월 14일 일요일

덴마

나는 《아기공룡 둘리》의 팬이다. 둘리를 매우매우 좋아했고, 또 좋아한다. 특히 보물섬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둘리 7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친구 빌려줬다가 하나 밖에 못 돌려받았다. 어쨌든 지금도 언론에 김수정 화백의 인터뷰가 실리면 꼭 찾아 읽곤 한다.

그 중 기억에 나는 인터뷰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주인공이 왜 공룡, 외계인, 조류 이런 거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당시 군부독재시절 검열이 심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어른에게 반말을 하거나 불손하게 구는 행동은 만화로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이런 놈들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은 실재로 그러했다. 어린이날이면 YWCA 아줌마들이 시내 모처에 모여서 만화책 화형식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김수정 화백의 만화는 화형식의 단골 손님이었다. 처참한 풍경이다.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나의 만화적 관심은 명랑만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쯤에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만화가 있었으니, 양영순의 《누들누드》였다. 허.. 소지품 검사를 피해 학교로 반입된 누들누드는, 이 손 저 손을 거치다가, 집에 돌아갈 때 쯤에는 너덜너덜해져있기 일쑤였다. 나는 이 책을 직접 사지는 못하는 소심한 학생에 불과했고, 다른 친구들의 용기과 자비에 의존하여 학교에서 누들누드를 읽었다. 어쨌든 만화가 양영순은 나에게 그렇게 각인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양영순은 레벨업을 거듭했다. 《아색기가》를 보고 정말 숨이 막혀 죽을만큼 웃어 봤고 (진주야! 편을 보면서 그러했다. 정확히 두 명이 죽을 뻔 했다), 《1001》을 보면서, “아, 이 작가가 야시꾸리한 것만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 이런 수준 높은 극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생각했다. 그 후에 뭐 《3반2조》, 《난의 공식》, 그 외 그닥 끌리지 않는 것도 없진 않았지만, 그건 취향의 문제였다. 《란의 공식》에서 “이 사람도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사람이구나”하는 것을 드디어 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늘에서 악마가 강림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생각과는 달리 네이버에서 연재되었다. 그리고 충분히 잘 연출된 극 중 긴장감과는 별도로, 이거 연재 무사히 끝났 수 있을까하는 현실과의 긴장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때부터 독자들에게 주었다. 역시나 연재는 중간에서 잘렸다. “이거는 단지 고대 그리스의 영웅담일 뿐인데요”라는 변명은, 그것이 현실 정치의 풍자라는 누군가의 심증을 엎어버리기에는 부족했는가보다. 하긴 사람 사는 일이 어디나 다 똑같지 않겠는가. 연재중단을 알리는 게시글에, 표현의 자유가 왜 튀어나왔겠는가.

노련한 작가는 시대의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는 법이다. 할 말을 못하게 한다면, 좀 더 꼬아서 해야하지 않겠는가. 《덴마》는 이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외계인 별종(퀑)의 이야기이다. 검열을 피해 인간이 아닌 것을 주인공으로 가져와야 하는 비극이 세대를 초월해 또 다시 되풀이되는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덴마 역시 현실의 좆같음을 비추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정치의 영역을 관찰했다면, 《덴마》는 경제의 영역, 그 중에서도 (몇 푼 안되는) 자본을 통해 인간을 통제하는 방법에 더 중점을 두어 관찰한다는 차이가 있겠는데, 사실 근본적으로 그 두가지의 차이는 없다. 그리고 《덴마》에서 볼 수 있는 인신종속화의 방법이 기상천외하다거나, 지금의 기술을 한참 뛰어넘는 하이퍼테크놀로지가 실현되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다. 만약 《덴마》가 연재 중단을 당하지 않는다면, 《플루타르크스 영웅전》을 중단시켰던 자들이 (있다면) 바보라서 그런 것이고, 중단을 당한다면, 그들이 (있다면) 역시나 개새끼들이라서 그런 것이다.

蛇足
오늘 드디어 《덴마》에서 희망고문이 등장했다. 아, 물론 이미 이브라헬 편에서 잘 나타났지만, 이번회에 희망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등장했다.

많은 이들이 희망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나는 그것을 영화 《전우치》에서 보았다. 화담이 초랭이에게 사람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초랭이는 거기에 넘어간다. 희망의 정치는 기만의 정치이다.

결국 희망이 정치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은 그게 하나든 과두든 메시아의 강림이고, 종교적 주술이다. 그 둘이 잘 결합함을 그리고 그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파국을 지금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