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30일 토요일

ALOS PALSAR

일본의 L-밴드 육지관측 위성이었던 ALOS가 지난 주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늦게 들었다. 발전기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www.jaxa.jp/projects/sat/alos/index_e.html)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 L-밴드 영역에서의 지구관측 자료는 수집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인공위성으로는.

ALOS에는 여러 관측장비들이 탑재되어 있었지만, 그 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합성개구레이더(SAR)이다. SAR는 레이더이기 때문에 일사와 구름의 영향에 관계 없이 지표면을 관측할 수 있다. 올해 한국이 발사할 과학기술위성 5호에도 동일한 종류의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 단, 조금 더 짧은 파장인 X-밴드를 이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ALOS PALSAR는 편광관측이 가능했다. 전자기파는 횡파이다. 이 때문에 전기장의 방향에 따라 수직편광과 수평편광을 구분할 수 있다. 지표면의 산란대상은 성질이 서로 다른 이들 두 종류의 전파에 대하여 다른 산란특성을 보여준다. 이 특징들을 연구하면, 지표에 대하여 이전까지 알기 힘들었던 정보를 얻게 된다. 예를 들면, 지표면 거칠기, 토양 수분함량 등이 있다. 이들 변수들은 수문학적 순환을 감시하는데에 주요한 작용을 한다.

SAR의 또 다른 중요한 응용 부문은 간섭법이다. SAR간섭법을 이용하면, 지표 기복을 마치 사진찍듯 얻을 수 있다. 실재로 이미 2000년에 미국의 SRTM 미션이 단 11일 동안만 지구를 선회하여 얻은 자료를 통하여, 북위 60도와 남위 54도 사이 육지 전역의 표고자료를 90m 해상도로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이 자료를 완전히 공개하고 있다. 기술상으로는 30m 해상도까지 가능하지만, 동맹국들이 군사적인 이유로 이 자료를 공개하는 것을 만류했다는 풍문을 들었다. 지금도 미국에 대하여서는 30m 해상도 자료가 재공되고 있다. 현재는 독일의 TANDEM 미션이 새로운 지구 표고자료를 획득하고 있는 중이다. 목표 해상도는 12m이다.

한편 간섭법의 또 다른 응용으로 지표 변위를 마치 사진찍듯 획득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 그 정밀도는 mm수준에 이른다. 실재로 지진과 화산, 사태 같은 재해에 대하여 활발한 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글에서 ALOS를 검색하여 맨 위에 뜨는 페이지로 들어가면, 지난 도호쿠·간토 대지진으로 인한 지표변위를 ALOS를 통해 관측한 결과가 맨 처음에 나온다. (http://www.eorc.jaxa.jp/ALOS/en/index.htm) 이 방법으로 빙하의 흐름 속도를 관측하는 것 역시 가능하고, 특정 조건이 만족될 경우 해류, 자동차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간섭법과 편광법을 동시에 응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경우에는 삼림 생물량을 마치 사진찍듯 구할 수(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고, 빙하나 설원에 대하여서도 응용이 가능하다.

ALOS가 사망하면서 이재 캐나다에서 운용하고 있는 C-밴드 위성 하나랑, 독일에서 운용하고 있는 앞서 말한 X-밴드 TANDEM 세트, 이렇게 해서 세 개 위성이 돌고 있다. L-밴드 이상의 장파 관측은 다시 당분간 암흑기로 들어간 듯 하다. (이탈리아의 코스모스카이메드도 있고, 루페라고 독일의 군사용 SAR도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추가한다. 둘 다 X-밴드. 5월 23일)



일본은 그 이전에도 L-밴드 SAR위성을 운용하고 있었다. JERS라는 위성이었는데, 1992년부터 98년까지 수평편광으로 지구관측을 했었다. L-밴드 인공위성 SAR는 오로지 일본만이 해왔었다. L-밴드는 파장이 길기 때문에 (지구관측에 할당된 파장은 대충 23cm. 반면 X-밴드는 2cm 정도), 안테나가 커야한다. 따라서 위성이 필연적으로 크고 무거워지기 때문에 올리기 힘들다. 왜 일본이 L-밴드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했는지 속내는 잘 모르겠다.

근의 공식

일과 관계되는 일로 4차 방정식의 근을 해석적인 방법으로 구해야 했다.

4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방법은 어디든지 나와있으므로 그것을 구현하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답이 이상할 때 찾아온다. 정확하지 않은 속도는 쓸모가 없는 법이다.

4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입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맨 먼저 수평이동을 시켜서 3차항의 계수가 0이 되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에 좌변을 x제곱에 대한 완전제곱식을 만들어 주는 성분만 남기도 나머지는 다 우변으로 이항한다. x의 1차항은 우변으로 이동한다.

이제 새로운 변수 z를 도입한다. 양 변에 2z(루트좌변) + z제곱을 더하면, 새 좌변은 (루트좌변 + z)제곱의 형태가 되어 완전제곱을 유지한다. 아까 좌변을 완전제곱으로 만들었으므로, 루트좌변은 x에 대한 2차식이다. (말하자면 a제곱에 2az +z제곱을 더해서 (a+z)제곱으로 만든거다.) 새 우변은 (우변) + 2z(루트좌변) + z제곱의 모양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x에 대한 완전제곱의 형태가 되게 하는 z의 값을 구하면, 원래의 방정식을 완전제곱끼리의 등식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

어떤 식이 완전제곱이 되는 조건은 판별식이 0인 경우이다. 새 우변은 (우변)이 x의 1차식, (루트좌변)이 x의 2차식이다. 결과적으로 새 우변의 판별식은 z에 대한 3차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x에 관한 4차 방정식을 풀기 위해 z에 대한 3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3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과정 역시 맨 먼저 수평이동을 통해 2차항을 계수를 0으로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방정식의 해를 (a+b) 의 형태로 분해하고, 항등식( (a+b)세제곱 = a세제곱 + 3ab(a+b) + b세제곱)과 비교하면, (a세제곱+b세제곱)과 3ab가 가져야 할 값이 결정된다. 아까 2차항을 0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2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실재로 a세제곱과 b세제곱을 두 근으로 하는 2차방정식을 만들고, 2차 방정식의 공식을 통해 구할 수 있다. 그런 다음에 각각에 세제곱근을 씌워서 더하면 그것은 3차방정식의 한 해가 된다. 단, 맨 처음 했던 수평이동만큼 되돌려 놓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렇게 z를 구하면, 우리는 맨 처음 주어졌던 4차방정식을 완전제곱 = 완전제곱의 형태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부호를 달리 해서 두개의 방정식을 만들 수 있다. 단 좌변은 x제곱에 대한 완전제곱식이고, 우변은 x에 대한 완전제곱식이므로, 각각의 방정식은 x에 대한 2차 방정식이 되고, 해가 다시 2개씩 있으므로, 우리는 모두 4개의 해를 얻게 된다.

이로서 4차방정식을 풀 수 있다. 도저히 간단하게는 설명이 되지 않는구나.

이 과정 어디에선가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전개하는 과정에서 계수를 구하는 데에 실수를 하지 않았나 꼼꼼하게 다시 계산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범인을 추적한 결과, 3차 방정식의 근을 정확히 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앞서 본 대로 두 세제곱근을 더한 것이 해인데, 이것이 잘못 구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각각의 세제곱근은 완전히 정확했다. 최소한 최종결과에서 볼 수 있는 오차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위키에는 3차방정식의 근을 이루는 두 성분, 앞에서 말한 a와 b를 구하는 방법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었다. 일단 하나의 세제곱을 구하면, 나머지는 별도의 세제곱근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두 근의 곱이 가져야 할 조건으로부터 간단하게 나누기를 통해 값을 구했다. 이 방법을 적용하자, 결과가 정확하게 나왔다.

억울해서 이유를 좀 더 따져봤다. 새 방법은 정확한데다가 계산도 적게하기 때문이었다. 고생은 더 했는데, 결과는 별로일 때 처량해지는 법이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어떤 수의 세제곱근은 세 개 있기 때문이었다. 2의 제곱근은 둘일지라도, 루트 2는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쓰는 프로그램은 세제곱근을 계산하는 cbrt()같은 함수는 없다. 그래서 (숫자)^(1.0/3.0)을 이용했다. 세제곱근은 3개이지만, 컴퓨터는 지가 편한 것 하나만 출력한다.

a의 세제곱근은 사실 a1, a2, a3 세 개가 있고, b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앞서 설명했지만 이렇게 구한 a세제곱근과 b세제곱근의 곱은 어떤 값과 같아야 한다. 그런데 예를 들자면, a1과 b2의 곱은 그러지 못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1의 세제곱근은 1, -1/2+루트3/2i, -1/2-루트3/2i 가 있다. 1 곱하기 1의 세제곱근이 1이라고 해서, 세제곱근 끼리의 곱인 ((-1/2+i루트3/2) 곱하기 (-1/2-i루트3/2))가 1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컴퓨터가 편한대로 출력하는 값들이 이러한 조합이었던 것이다.

고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 근을 구할 때 조심해야 할 바를 배울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결과가 향상되어 기분이 좋았다. 또한 (숫자)^(1.0/3.0) 과정에 수치계산상의 오차 때문에 결과가 이상하다고 여겨왔던 내 오해가 풀렸다.

2011년 4월 23일 토요일

한글전용도 좋지만, 인·지명 정도는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다 보면, 개인적으로 그에 대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기자들의 수준이 대체로 엉망인 경우도 있고, 혹은 그들 업계의 업계 표준이 소비자의 수준을 상당히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인 듯한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검색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글전용의 맹점이 드러난다.

내 같은 경우에, 추가조사의 대상이 되는 검색어들은 주로 인명, 지명, (기사에 소개된) 기술·기법의 명칭 정도이다. 그런데 한글로 표시된 이들 검색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방금 읽었던 기사만 뜨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그리고 그 다음 순위로 올라오는 검색 결과들은 검색 단어의 일부만 일치하는 경우들이다.

한글전용으로 쓰여진 기사에는 한자나 로마자가 일절 병기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검색을 통해서 검색어에 해당하는 한자표기나 로마자 표기를 찾을 수 있으나, 기자가 정확한 외래어 표기 규정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옮긴 경우에는 그마저 여의치 않다. 한자병기가 안 된 중국이나 일본 인명·지명 역시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다.

성격이 지랄같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기사를 보면, 기자의 몰상식과 무례함에 화가 난다. 애초에 기사를 검색할 필요가 없게 상세하게 쓰던지, 자기 실력으로 그게 안되면 독자들이 좀 더 찾아볼 수 있게 추가 정보를 함께 표시해야 되는 것 아닌가?

이런 불쾌한 경험들이 좀 쌓이다 보니까 한글 전용론자들을 좀 편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한글전용이되,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괄호안에 병기”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한글전용에 대한 태도이다. 가끔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 괄호안에 병기”조차 허용하지 못하는 한글 전용론자들이 있다. 이들은 애매함이 없도록 문장을 다시 쓰면 된다고 주장한다. 당연하다. “구축하다” 같은 동사는 驅逐하다 일 수도 있고, 構築하다 일 수도 있으니까, 의미가 불명확한 경우에는 쓰면 안된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래도, 그래도, 고유명사마저 우리말로 풀어 쓸 수는 없지 않는가? 그것이 독자에게도, 그리고 또 언급되는 대상에게도 예의이지 않는가? 그런데도 한글전용 때문에 이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는 무례함이 요즘들어서 지나치게 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서는 로마자에 대하여서는 그나마 관대하지만, 한자에 대하여서는 중국·일본 인·지명인 경우마저도 보이지를 않아, 어쩜 이리 한자를 배척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괴하다.

한자와 로마자 병기가 충분히 된 친절한 기사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2011년 4월 8일 금요일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2학년 1학기 교양수업으로 나는 동아시아 문명의 사적 전개라는 수업을 들었다. 금요일 오후 수업이었으므로 전체 16강 중에, 첫 수업, 중간고사, 기말고사, 휴일 겹치는 거 빼고 하니까 11강인가 12강인가가 남았다. 그 중 8시간 중국사, 나머지 한일월 한 주씩. 이렇게 수업을 했다. 아, 중국사의 비중이 엄청나구나, 그것을 배웠다. 그 다음 3학년 1학기에는 외대 교수님께서 출강하신 교양 아랍어 수업을 들었고, 그 다다음 학기에는 개관 일본사, 그 다음에는 중화민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1학년 때는 문화인류학을 듣기도 했었네. 내 전공과는 아무 상관없는 수업이었지만, 배우고 싶었고, 실재로 재미있었고, 또 그 때가 아니면 결코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결과는 보통이었다. 전공과목들과 별 차이 없는 점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개관 일본사는 평균보다 좀 많이 떨어지게 받았다. 일반 교양과목이 아니라 동양사학과 핵심교양과목이라서 그랬는가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존나 재미있었거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전인적 교양에 한 발작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선택과목의 자유도가 높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습량이 많았지만, 전반적인 지식의 범위는 꽤 넓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학의 공기는, 춥다고 창문 닫아 놓은 겨울철 남자 고등학교 교실의 공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스스로 박식하다고 여겼던 내가 아는 수준이란, 단지 그 세계의 베이스일 뿐이었다. 내가 전공으로 선택한 지구에 대한 이해를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은 대학 입학 전부터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대학은 그것만 하고 있기에는 너무나 많은 기회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조금 한눈을 팔면서, 내가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하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수업들을 찾아 들었다.

사실에 대한 지식, 원리에 대한 이해, 합리적인 사고방식, 선입견과 반대되는 사실을 마주쳤을 때 가져야할 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런 것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인문·사회·자연·예술 모든 측면을 망라한) 세상을 바라보는 오직 그 사람만의 관점. 이런 것들이 바로 전인적 교양교육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추에 대한 기호, 선·악에 대한 판별은 개성의 문제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므로 제외했다. 그리고 이런 전인적 교양에 덧붙여, 혹은 더불어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하나의 사회인이 완성되고, 이에 추가로 행동하는 용기가 더해지면, 그 때야말로 그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치기 어렸지만, 자연과학을 공부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었다. 인문대 수업을 들으면서 전혀 생소한 방법론들을 접할 때도,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반드시 이 이질적인 요소들이 수렴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지금 역시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 때보다는 많이 게을러졌고, 사실 시간이 지난만큼 쌓인 것도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학점 잘 주는 수업을 골라 듣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았다. 수강편람을 뒤지며 수업을 찾을 때, 누구 수업이 재미있다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어디서 들었는지 누구 교수가 학점을 잘 준다고 하니 그 수업을 듣겠다는 말에는 언짢게 반응했었다. 비례물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포카페이스가 아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하려했지만, 정색하는 내 표정을 상대는 분명히 봤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앞서 말한 그 단 한 부분에서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학점좆망가능”이라는 경고는 무섭지도 않았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고, 그래서 나는 굶어야 할 만큼 돈이 없었지만, 그런데도 심지어 행복했었다.



언론을 통해 보이는 지금 대학의 공기는, 내가 느꼈던 공기와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어느 학교에서건, 학생들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자유는 학점과 스펙의 경쟁뿐인 듯하다. 대한민국은 빚을 강요함으로서 전 국민을 거대자본권력에게 인신적으로 종속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국민들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 얻어내자마자, 그 자유로 빚을 내어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자유를 자본에게 가져다 바쳤다. 빚을 내는 순간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현재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 빚을 진 사람은 정말로 노예가 된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학자금 융자 빚과는 관계없이, 이미 미래가 자본권력에 손에 저당 잡혔다. 그들이 채권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할 자유 따위는 이미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전인적 교양교육을 강요할 수 있는가? 기성세대가? 그럴 수 있다면, 그들에게는 내가 이명박에게 주는 경멸을 보낸다. 단 지금의 대학생들은 용기라는 고귀한 가치를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 나와 내 또래는 배울 수 없었던 그 용기라는 가치 말이다.

또 다시 최고수준의 이공계 학생이 자살했다. 올해 들어서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만 벌써 네 번째다. 징벌적 등록금제 때문에 생긴 심리적 압박이 그 원인이라고 하는데에, 동의한다.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학점으로 사람들 들들 볶으면, 전인적 교양교육은 불가능하다. 물론 대학의 존재 가치에서 전인적 교양인을 양성하는 측면은 완전히 배제되어야 하고, 전적으로 전문적인 기능인을 양성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그 지점에서는 논리를 맞추겠지만, 그렇다면 대학과 직업학교는 어떻게 다르며, 직업인을 육성하는데 드는 비용을 왜 기업이 아닌 가계가 부담하느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다음 질문이다. 징벌적 등록금을 도입한 사람을 과연 교육자로 볼 수 있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현명한 채권자는 채무자들에게 자신이 주인임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채무자들을 경쟁시킬 뿐이다. 그 대학교의 총장이라는 서남표라는 작자도, 채권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 역시 다른 대학총장들과 경쟁을 하는 채무자에 불과하다. 채권자가 왜 경쟁을 하겠는가? 대가리에 총 맞지 않은 이상. 따라서 총장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교육자라는 것은 의복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공기업에 낙하산을 타고 가면 경영자가 될 것 아닌가. 옷을 갈아입는다고 채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경쟁이라지만 도라는 게 있다. 점수나 등수는 어쨌든 한 개 스칼라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혹은 요새 유행하는 말로는, 모든 비용이나 편익을 표현할 수 없다. 잔인한 학점·등록금 경쟁을 붙여 학교 평가등수가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그 향상된 어떤 가상의 지표는 그 경쟁 때문에 작아져 버린 학생들의 행복도는 포함하고 있지 않은 지표이다. 여기에서 매우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학교 평가등수 상승이라는 이익은 총장에게 가고, 행복도의 하락이라는 손실은 학생에게 돌아간다. 요새는 그 말도 유행하데. “이익의 사유화, 손일의 사회화”라고.

어떤 문제에서 고려하지 않는 변수라는 말은, 그것이 실재로는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2011년 4월 3일 일요일

4월 3일이네요. 희생자들을 깊이 애도하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슬퍼합니다.

친일파 정치군인으로 4·3 민간인 학살 명령을 내렸던 유재흥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살아있더군요. (모든 문서에 49년에 제주도 전투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데, 4·3은 그 전 아닌가) 한국전에서 인민군에게 혁혁한 무공을 세워주었는데도, 이후 정치판에서는 승승장구하여서, 유신 때는 석유공사 사장까지 해 먹었네요. 찾아보니 가관입니다. 애국할 맛이 싹 달아나네.


아래에 독도 포스팅은 하느니 못한 짓이었다. 섬과 암석에 대한 구분도 없이 나오는 대로 지껄이느라 말같지도 않는 비유를 했다. 역시 모르면 씨불질 말아야 한다. 윤승환씨의 블로그(http://blog.daum.net/yongha36/)에 글들을 보고 몰랐던 사실들을 좀 더 알 수 있었다.


짜장을 해 먹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춘장이 안 풀렸다. 좆망. 그냥 라면 먹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요리까지 잘 못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