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행성간 전쟁의 승패

행성간 종족끼리 싸우면, 누가 유리할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타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본진에 미네랄이 한 칸만 더 가까이 있거나 멀거나 한 작은 차이가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따라서 행성간 종족 전쟁에서 승리하는 종족은 멀티를 뜨지 않는 한, 보다 큰 행성에서 진화해 나온 종족일 확률이 높다.

행성이 크면, 그 행성의 종족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도 많아질 것이다. 표면적이 넓어지니까. 인류가 태양계에 있는 암석 및 얼음 덩어리(행성이나 위성)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은 여기까지이다. 안타깝게도 태양계에서는 지구가 가장 큰 암석행성이기 때문에, 지구보다 더 큰 암석 덩어리가 어떤 지구조활동을 보일지는 이론적인 예상만 할 수 있다.

지구에서는 인류 같은 지적 능력을 가진 종족이 진화되어 나올 때까지 약 45억 년이 걸렸다. 이 시간이 다른 행성에서는 좀 줄어들 수는 있을까? 지적 생명체가 진화를 통해 나오기 위한 조건으로 당장 생각나는 것들은 진화 속도와 다양성이다. 진화속도는 세대가 바뀌는 속도이므로 그것은 종에 달린 문제이지, 그 생명을 품는 행성이 주는 영향은 적은 것 같다. 그러나 다양성은 행성의 환경과 직접 관련된 문제이다.

지구에서 생명의 다양성이 급속히 빨라지게 된 것은 겨우 5억 4300만 년 전의 일이다. 그 전 지구의 환경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바다는 생명을 품고 있었지만 균질했고, 육지에는 알고 있는 한 아무 생명도 없었다. 식물에 덮히지 않은 육지를 상상해 본다면, 그 경관이 지금의 극단적으로 건조한 사막과 화성의 한 중간 쯤 되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 육지가 거의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 지구가 보이는 다양한 경관은, 생물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나는 이것을 `경관공진화(景觀共進化)'라고 부르고 싶다. 식물 없는 상태에서 지표면은, 위·경도 좌표마다 주어지는, 표고와 암석의 종류로 특정할 수 있었다. 토양은 식물이 있어야 만들어 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다에서 진화해 왔던 식물은 육지로 올라와 그 표면을 뒤덮었고, 동물은 식물이 만들어 놓은 환경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특수화했다. 식물은 동물의 파괴적인 영향에 맞서 또 다시 진화했다. 그러한 공진화의 꼭지점에 열대우림이 있다. 열대우림의 남벌은 비단 탄소저장소의 감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의 감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은, 영장류가 숲에서 가지를 잡아 쥐고, 열매를 따먹고, 나무 구멍에서 애벌레들을 후벼파기 위해 진화한 특수한 형태이다.

육지를 뒤덮은 식물은 지표면에서 풍화의 양상을 바꾼다. 화산이 대기중에 뿌려놓은 이산화탄소는 식물에 의해 고정된다. 그러나 이들이 퇴적층으로 완전히 고정되기 전까지는 아직 완전히 대기에서 제거되지 않는다. 나무가 죽으면 탄소는 대기로 돌아간다. 식물은 무엇보다 강력한 산화제인 산소를 만들어 뿌렸다. 식물과 거기 공생하는 미생물이 만드는 유기산과 이산화탄소는 산도를 변화시켜 풍화를 촉진시키고, 킬레이트 리간드를 만들고, 표면 거칠기가 변화하고 일사량이 줄어들면서 광물들이 물에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이산화탄소는 이전보다 더 빨리 고정된다. 지역적으로도 물이 순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사태 같은 작용에 저항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형과 생물의 상호작용에 의해 지역적, 광역적, 전구적 경관이 다듬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작용을 `경관공진화'라고 부르고 싶은 것이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자. 지구보다 큰 암석형 행성은 보다 다양한 형태의 경관 공진화가 가능한가? 그래서 더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진화해 나올 여건을 더 빨리 마련해 주는가?

먼저 표고. 요즘은 참 과학이 발달해서 오만 걸 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 암석행성이 지탱할 수 있는 산의 높이에 한계가 있는가? 당연히 있다. 암석의 강도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지구보다 큰 어떤 행성이, 이른바 왕지구라고 하자, 규산염 광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암석의 강도는 지구와 비슷한 정도일 것인데, 중력가속도가 지구보다 크므로, 산의 높이가 낮아져야 산 아래의 암석이 그 산의 압력을 지탱할 수 있다. 따라서 큰 행성일수록 표고차는 작아진다. 지구의 가장 높은 산은 9000 m이지만 금성의 맥스웰 산은 11000 m이고, 더 작은 화성의 올림포스 산은 24000 m이다. 비록 이러한 관계가 달까지는 잘 적용되지 않지만, 행성이 충분히 크고, 지사의 영향이 완전히 제거된다면, 앞서의 가정은 잘 적용될 것이다. 왕지구는 지구보다 표고차는 작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경관의 다양성은 지구보다 적을 수 있다.

두번째는 판구조이다. 행성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열을 내부에 감싸쥘 수 있으므로 더 오래동안 지표 표정연기를 지속할 수 있다. 왕지구는 분명 지구보다 더 많은 열을 가지고 있고, 지질학적으로 역동적일 것이다. 그러나 왕지구들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판구조활동을 보일까? 인류는 아직 지구 외에서 판구조활동을 보이는 행성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왕지구가 어떤 판구조활동을 보일지는 잘 모른다. 이론적인 연구들은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를 보여주는데, 내부의 가열찬 에너지 덕에 더 활발한 판구조활동을 보일거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강한 중력때문에 지각이 더 강해져서(왜?) 지각이 판으로 쪼개지지 않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아직까지 행성의 크기와 판구조 사이의 관계를 한 칼에 정리하는 이론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단만 판구조활동은 휘발성 분자들을 순환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행성의 대기가 막가파식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를 예방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행성 사냥꾼들의 소위 거주가능영역이라는 주장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한 관점은 행성을 단지 수동적인 암석덩어리로 볼 뿐이기 때문이다. 행성은 암석 덩어리 그 이상이다. 행성이 생명을 품을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는 그 지질학적 역동성과 그 엔진의 지속시간을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세번째는 수륙분포이다. 사실 수륙분포는 판구조론과 강력하게 관련될 것 같은데, 먼저 액화된 대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판구조활동이 그 행성의 대기를 안정되게 관리해야 하고, 반대로 광물에 포함되어 암석으로 들어간 물이나 이산화탄소같은 성분들은 암석의 강도를 약화시켜 판구조활동이 일어나기 쉽게 한다. 지구는 상당히 넓은 부분이 바다로 덮혀있는데, 사실 육지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성장한 부분이다. 가장 가라앉기 힘든 가벼운 암석원소들이 지구의 가장 바깥부분에 찌꺼기 같이 모여 쌓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왕지구가 판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면, 같은 원리로 육지가 서서히 자라왔을 것이다. 육지의 면적은 그 행성의 지질학적 나이를 가리키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왕지구가 지적 생명체를 키웠다면, 그 행성의 수륙분포는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행성의 판구조가 내부의 뜨거운 열 때문에 지구보다 활발하다면, 육지가 더 빠른 속도로 성장했을 수 있다. 지구에서 식물의 상륙에 육지의 면적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굉장히 우연한 일이 그 행성에서는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 행성의 생물이 식물 비슷한 거랑 동물 비슷한 식으로 진화한다는 보장이 없어서 뭐라고 쓸 말이 없다.

그러나 어떤 왕지구에 일단 동물형 지적생명체가 발생한다면, 그들은 지구의 인류보다 더 많은 자원을 힘들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 그 최고 수준이 지구에서 나타나는 바에 비하여 더 높을 것이다. 누누히 이야기 하지만, 문명이란 소비하는 물질과 에너지의 종류, 그것을 생산하는 방법, 분배하는 제도, 소비하는 염치에 따라서 그 색깔이 정해진다. 그 피라미드의 높이는 제공 가능한 물질과 에너지의 양에 따라 결정되는다. 만약 지구의 어떤 대도시 상공에 지름 10 km짜리 비행원반이 정지한다면, 그 원반을 만든 자들은 지구보다 큰 행성에서 진화해온 생명체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생각의 확장이다. 우주의 어딘가에는, 한 태양계가 두 개 이상의, 판구조활동을 하는 암석형 행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또는 판구조 활동을 보이는 얼음 행성이거나. 소행성 충돌의 파편을 통해서 양 행성간에 생명체, 적어도 유전물질의 교환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태양계의 행성들은 어쩌면 훨씬 빠른 진화를 보여줄지 모른다.

가장 극적인 경우라면, 쌍행성계이다. 달은 지구에 비하여 매우 큰 위성인데, 그런 정도를 넘어 행성급의 두 천체가 상당히 가까운 거리를 쌍성처럼 서로 회전하고 있는 경우이다. 혹은 궤도가 상당히 이지러진 타원이라면, 한 쪽이 달 정도의 크기라도 충분히 기조력을 통해 행성 내부의 동력을 오랜기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벌충되지?) 그렇다면 그 두 행성간에는 정말로 극적인 생명의 교류가 있지 않을까? 밤에는 태풍 소용돌이가 흐릿하게 보이는 푸르스름한 빛의 달이 뜨고, 가끔은 화석이 박힌 퇴적암질 운석이 떨어지는 어떤 행성에 가 보고 싶다.



지난 주 읽었던 《작전명 충무》에, 전투기 이륙 중량이 18,XXX 톤이라는 오타가 있다는 글을 읽고 망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