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3일 일요일

58년부터 82년까지 무슨 일이?

한국이 월드컵에 진출한 것이 54년에 한 번 있었고, 86년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이르기까지 긴 공백이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늦게 태어난 나는 잘 몰랐는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인터넷을 좀 뒤졌다.

58년 월드컵 예선
58년 월드컵 지역예선(아시아·아프리카 통합)에 한국과 에티오피아는 FIFA가 엔트리를 거부했다. 이유는 찾지 못했다.

원래는 아시아에 1장이 배정되어 이스라엘이 진출하게 되었으나, 상대팀의 기권에만 기대어 올라 온 것이 규정위반이 되었다. 피파는 유럽의 웨일스와 이스라엘이 플레이오프를 하게 하여 그 승자가 월드컵에 진출하게 하였다. 웨일스가 홈·원정방식의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여 아시아에서는 한 팀도 출전하지 못했다.

62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 예선의 승자는 유럽 팀과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하게 된다.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세 팀이 참여하였으나, 인도네시아는 기권하였다. 두 팀이 남은 상황에서 한국은 60년 11월 6일 서울에서 일본과 2:1로 이겼고, 61년 6월 11일 도쿄에서 2:0으로 승리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의 상대는 유고슬라비아였다. 61년 10월 8일 베오그라드에서의 경기에서 유고슬라비아가 5:1로 이겼고, 같은해 11월 26일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 다시 유고슬라비아가 3:1로 승리를 거두어 한국의 월드컵 진출은 좌절되었다.

66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에 1장이 배정되었다.

아프리카 팀들은 경기장소에 대한 항의로 모두 기권했다.

아시아·호주에서는 남·북한 호주가 출전했는데, 한국은 경기장소가 일본에서 캄보디아로 변경되자 기권했다. 1965년 11월 21일과 24일 양일에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있었던 호주와 북한의 경기에서 북한은 차례로 6:1, 3:1로 승리하여 월드컵에 진출한다.

70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오세아니아에 1장이 배정되었다.

1차전과 2차전 두 단계로 나누어졌다. 1차전에서는 한국·일본·북한·호주 중의 우승팀이 2차전에 올라간다. 2차전에서는 1차전에서 올라온 한 팀과 이스라엘, 뉴질랜드,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각 그룹의 승자가 최종 라운드에서 맞붙는다.

북한은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기권하여 1차전은 호주, 한국, 일본이 맞붙었다. 모두 여섯 경기가 열렸고, 장소는 모두 서울이었다. 1969년 10월 10일부터 20일 사이의 짝수날에 열린 여섯 경기에서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1승 1무, 호주를 상대로 1무 1패를 기록했다. 호주는 일본과 1승 1무, 한국과 1승 1무를 기록하여, 호주가 2차전에 진출하였다.

최종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월드컵에 진출한다.

74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오세아니아에 1장이 배정되었다.

룰이 복잡하다. 아시아·오세아니아가 A존과 B존으로 나누어서 경기를 치루었다. 모두 15개국이 출전하였다. A존은 7개 팀이 2개 조로 나누어져 조별리그를 통해 1·2위가 준결승에 올라간다. 준결승은 1조의 우승팀과 2조의 준우승팀, 1조의 준우승팀과 2조의 우승팀 경기, 이렇게 두번의 경기가 있고 각 경기의 승자끼리의 경기를 하여 승자가 상위 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B조는 8개 팀이 2개 조로 나누어져 조별 리그를 진행하고, 각 조의 우승팀이 홈·원정 방식으로 승부를 겨루어 A조의 우승팀과 붙는다.

남한은 A존의 2조에 속하였다. A존의 경기는 1973년 5월동안 모두 서울에서 열렸다. 남한은 이스라엘과 함께 준결승에 올랐다. 5월 26일, 한국은 홍콩을 맞아 3:1로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같은날 열린 일본과 이스라엘의 경기에서 이스라엘이 1:0으로 이겨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28일의 결승전에서 한국은 이스라엘을 1:0으로 이기고 A조의 우승팀이 된다.

북한은 B존 1조에 속하였는데, 1조에서는 이란이 B존 결승전에 진출한다. 2조에서는 호주가 진출하였고, 73년 8월 18일에 시드니에서 열린 결승 1차전에서 호주가 3:0으로 이란을 이기고, 24일에 시드니에서 열린 2차전에서는 호주가 0:2로 2점밖에 실점하지 않아 호주가 B존 우승팀으로 진출한다.

73년 10월 28일 시드니에서 열린 한국과 호주의 경기는 득점없이 무승부로 끝난다. 11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 양팀은 또다시 2:2 무승부를 기록한다. 11월 13일 중립지역인 홍콩에서 열린 경기에서 호주가 1:0으로 승리하면서, 한국의 월드컵 진출은 좌절된다.

78년 월드컵 예선
아시아·오세아니아에 1장이 배정된다.

21개 팀이 5개조로 나누어서 예선이 진행되고, 각 조의 승자가 다시 홈·원정 방식의 리그전을 하여 1개 팀이 진출하게 된다. 각 조마다 팀 수와 경기 조직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한국과 북한은 이스라엘, 일본과 함께 2조에 속했다. 북한이 기권했기 때문에 3개 팀만으로 리그가 진행되었다. 한국은 77년 2월 27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과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한다. 3월 20일 서울에서 다시 맞붙은 경기에서는 3:1로 승리한다. 일본과는 3월 26일 도쿄에서 첫 경기를 가졌는데, 역시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하고, 4월 3일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1:0으로 승리하여 최종 5개 팀 리그에 한국이 진출하게 된다.

최종 예선에는 홍콩, 한국, 이란, 쿠웨이트, 호주가 진출하였다. 77년 6월부터 12월까지 홈·원정 방식으로 진행된 리그에서 한국은 3승 4무 1패를 기록하여 6승 2무를 기록한 이란에 뒤져 월드컵 진출이 좌절된다.

82년 월드컵 예선
월드컵 티켓이 24장이 되었다. 아시아·오세아니아에는 2장이 배정되었다.

20개 팀이 4개 조로 나뉘어져 예선이 진행되었다. 각 조의 승자는 홈·원정 방식의 리그를 통해 순위가 매겨지며, 우승과 준우승팀이 월드컵에 진출한다.

조마다 경기조직방식이 조금씩 달랐다. 한국이 속한 3조에는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태국이 있었다. 3조는 모든 경기를 쿠웨이트에서 한번씩만 치르게 되어있었다. 리그는 81년 4월 21일부터 29일 사이에 있었으며 한국은 2승 1무를 기록해 3승을 기록한 쿠웨이트에 밀려 최종 예선에 탈락했다.

북한, 일본, 중국 등이 속한 4조는 3개 팀씩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었다. A그룹에는 중국, 일본, 마카오 중에 중국과 일본이 진출하였고, B그룹에는 북한, 홍콩, 싱가포르 중에 북한과 홍콩이 진출하였다. 80년 12월 30일 홍콩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일본과 북한이 맞붙어 북한이 1:0으로 승리하였고, 다음날 열린 중국과 홍콩의 경기는 무득점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중국이 홍콩을 이겼다. 81년 1월 4일 열린 4조 결승전에서 북한은 아쉽게 중국에 4:2로 져서 중국이 최종 예선에 진출하게 된다.

최종예선에는 뉴질랜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중국이 진출하였다, 쿠웨이트는 리그 1위로 월드컵 진출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중국과 뉴질랜드는 승점과 골득실이 동률이 되었다. 81년 12월 2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경기에서 뉴질랜드가 2:1로 승리하면서 뉴질랜드가 월드컵에 진출한다. (리그가 종료되었을 때, 승수는 중국이 3승 뉴질랜드가 2승으로 중국이 앞섰다.)



점차 참여하는 팀의 수가 많아지고, 서술이 길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은 대부분의 경우 월드컵 진출 직전에 좌절하고 마는 경우가 좀 있었다. 북한은 이스라엘과 정말 사이가 나빴나보다.

58년에 피파는 왜 우리나라를 먹어주지 않았을까. 그 전에 너무 못해서 그런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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