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6일 수요일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견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사태가 차차 손아귀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현대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환경문제는 지구온난화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 다급하게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에너지의 부족은 아쉬우나마 원자력발전으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에 반대하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방사능에 대한 비정상적인 공포 유발에서부터 시작하는 그들의 주장은 감성에 호소하는 면이 많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 나오는 여러 주장 역시 신뢰하기 어려웠다. 특히나 2000년를 전후하여 초반에 원자력폐기물 저장소의 입지 선정이 문제가 되었을 때, 지질이나 단층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에서 비롯된 주장을 펼쳐나간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국내 환경론자들을 일종의 극단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해왔다. 더군다나 현대의 미친듯한 에너지 소비를 충족시킬 수 있는,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현실적인 대안은 원자력 말고는 아직 생각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있다. 시버트 단위로 표시되는 방사선량이 얼마만큼이나 뛰어오르는지 확인하면서 굉장히 놀랐다. 평소에는 시간당 나노 단위에서 놀고, 엑스레이를 찍을 때 마이크로 시버트 이러는데, 시간당 밀리 시버트가 파괴된 원전 근처에서 검출된다고 하니,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세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1-2 시버트를 받으면 한 달 내에 사망률 10%라고 한다. 일단 이정도 수준에서 대참사만은 면한다고 하더라도, 흩뿌려진 방사선 물질들 때문에 태평양에서 잡은 고기들을 마음 편히 먹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태평양은 넓고, 사실은 그동안 많은 방사성 폐기물들이 버려져왔지만 말이다.

유럽은 원자력발전에 대하여 동아시아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아마도 체르노빌 참사를 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참사가 일본에서 발생한 것은 어떤 점에서는 행운인지 모르겠다. 중국에서 발생했다면, 그것은 원자력발전소가 위험해서라기 보다는, 중국이라서 그렇다는 쪽으로 해석되었을 공산이 크다. 한국이나 일본의 시민들은 보다 강력한 주장으로 원자력 발전에 반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 년 내에 중국 기원의 원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에는 중국 정부의 공식적 언급보다 한국이나 일본의 방사능 관측대가 먼저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원자력발전이 선택 가능한 해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 알려진 이상, 다른 대체 에너지원을 활발히 개발하든가 아니면 에너지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 중국같은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 또는 한국처럼 성장중독에 있는 나라가 선택하기에 후자는 너무나도 비싼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청정에너지의 모범사례로 손꼽히는 독일. 나는 한달에 60kWh정도를 소비하는 댓가로 25 유로를 매달 지불한다. 세금은 30% 정도가 붙어 있다. 한국이라면 사용료 56.2원/kWh, 기본료 380원이 적용되므로 3752원이 나오는데 여기에 부가세와 기금을 곱하면 4280원이 되고, 이를 유로로 환산하면 2.75유로 정도가 나온다. (전기요금 계산은 http://jjangfree.tistory.com/865을 참조) (처음에 30kWh라고 썼다가 정확한 통계를 찾게 되어 4월 21일에 고쳤다. 고치기 전에는 각각 2066, 2360, 1.5 였다.) 나는 혼자 살고 있으므로 이는 아주 극단적인 예시일 수 있다. 일반적인 가정을 비교할 경우 그 차이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그래도 독일의 전기요금이 한국에 비해 훨씬 비쌀 것임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댓가는 이 정도로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원자력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며칠 전 독일 정부가 오래된 원전 7기(처음에 9기라고 썼다가 4월 8일 수정)의 임시가동중단을 결정하였으므로, 전기요금은 더 비싸질 것이다.

다시 한국의 경우로 돌아가 보자. 지난 겨울 전기 사용량이 공급을 턱 밑까지 따라 붙자 정부에서 전기요금 현실화 카드를 살짝 꺼냈서 간을 봤다가 사람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일단 물밑으로 접어 놓은 적이 있음을 기억하자. 그런데 원전을 폐쇄하자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짧은 인생을 돌아보건데, 국민학교·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전등 스위치 위에는 절전 스티커가 붙어 있고, 물자절약 에너지절약 포스터 그리기 표어 짓기 따위를 했다. 절약이 미덕이 사회였던 것이다. 그랬는데 대학교 다닐 때는 이미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되어 있었다. 그 빌어먹을 1997년 외환위기가 사회를 완전히 그리고 급속히 재편성해 버렸다. 한국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소득에 비하여 높은 편이다. 소득에 비하여 소비량이 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온돌이 건강에 좋은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에너지 효율이 높은 시스템인지는 잘 모르겠다. 비슷하게 배달시켜 먹는 문화는 확실히 에너지 과소비 측면이 있고, 승용차 같은 것도 다른 나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대형이다. 한국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내수용 차량을 튼튼하게 만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전철망은 일본과 비교할 경우 형편 없는 수준인데, 땅값이 너무 올라버려 네트워크를 더 이상 확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 지진은 확실히 인류의 역사를 바꿀 지진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일본 경제의 침체 이런 정도가 아니라,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 어떤 제한을 걸어버린 마법같은 지진으로 기록될 것 같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성장엔진들이 얼마만큼 원자력의 유혹을 떨쳐버릴지는 미지수이다. 아니 개인적으로는 좀 부정적이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에서는 거의 확실히 원자력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것 같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나라나 다른 중간보스 급의 나라들에서도 원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리라 예상한다.

사회적 비용이 그냥 웃기고 자빠진 소리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의 인터뷰에서 읽은 이야기다. 자기는 조상 대대로 거기서 살아 왔다고. 그런데 정부가 그 근처에 원전을 지었고, 이제는 위험하다고 밖으로 나가랜다. 어디로? 그리고 그가 살아왔던 땅과 마을에서 계속해 살아갈 당연한 권리는 어디로? 우리나라에서도 보상금으로 땅투기 해서 부자되라는 속삭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다들 좀 불편하게 살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 아니,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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