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1일 토요일

대통령 노무현

울었었다. 보고서를 마감하고 기분이 홀가분했던 지난겨울의 어느 날, 형과 동네 술집에서 맥주를 간단히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꼴을 흉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참 웃기더라. 머리 속에서는 수 없이 맴돌던 그 단어가 입에서 튀어나와 다시 그 소리가 귀를 통해서 머리에 들어가자, 이번에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술을 먹어서인지, 형 앞에서 부끄러움도 잊고,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반복하며, 눈물을 연신 훔쳐가며 철철 울었었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도 많이 많이 울었었다. 그 때는 정말 많이 울었었다. 억울함과 분노에 그리 울었지만, 사실은, 사실은, 내 자신이 더 많이 부끄러웠다. 배은망덕의 악취로 뒤덮인 개백정 새끼 이인규를 비롯한, 창녀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개쓰레기 검찰 씹새끼들따위가 대통령의 머리끄뎅이를 잡고 동네방네 돌려가며 지 마음대로 개병신킹 인증했다고 낙인을 찍고, 좆밥 병신 만들듯 창피를 주며 가지고 놀 때, 그리고 매국언론들이 그것을 받아쓰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노무현 개새끼라고 핏대 올리며 왱알대며 질러대고 있을 때, 나는 게으르고, 침묵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이명박임을 알고도 대통령으로 만든 개자식들에게는, 가공된 노무현의 더러움이 필요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덤으로 이제는 쓰레기가 되어 똥통에 처박힌 그를 태워 죽일 수까지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었겠지. 그 때 나는 노무현을 논리적으로 변호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에 게을렀고, 검찰의 저열함을 성토하는 내 작은 목소리가 “나의 노무현은 그렇지 않아”라도 강변하는 덕후로 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침묵했고, 그 분은 돌아가셨다.

당연히 내 따위가 덤비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그 분의 선택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내가 그 때 보인 그 비겁한 모습이 항상 부끄럽게 떠오른다. 그래서 한동안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내가 부끄러워져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분의 떠올리는 것조차 힘이 들어, 사 놓았던 김대중 자서전도 그가 등장하는 곳부터는 읽지 못하고 있고, 노무현 자서전은 용기내서 사기는 했지만 더더욱이나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그러다가 그 날 저녁,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나 역겨웠기 때문인지, 입에서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참을 콧물을 흥흥 거리고, 자꾸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다가, 갑자기 자랑스러워졌다.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미치도록 자랑스러웠다. 그 자랑스러움에 감동받아 또 진정되어가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백색테러단이 빈소에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집기를 깨부수고, 서정갑인가 하는 개는 그 분의 영정사진을 전리품 취급하며 들고 흔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시민들의 분향소는 닭장차들이 둘러쌌고, 이에 대해 주상용은 아늑한 분위기라 시민들도 좋아한다고 개드립을 쳤다. 작년 1주기 때, 정몽준의 축구협회는 생뚱맞게도 그 전날 한일전 축구를 잡았었다. 정부에서는 묘역에 대하여 한 푼의 국고 지원도 하고 있지 않는 판국에 집권 개나라당은 2년 동안 한 번도 묘역을 찾지 않았다가 이제야 가서는 도리니 어쩌니 하면서 짖고 앉아있다. 억울하냐고? 그렇지 않다.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조선일보는 그의 죽음을 있지도 않는 단어인 “사거”라고까지 표현하며, 사설에서 만평에서 기사에서 그의 삶과 인격을 폄훼했다. 그 때 깨달았다. 조선일보에게서 칭찬받는 죽음이라면, 개털 한 가닥만한 가치도 없는 삶이라는 것을, 5·18 기념식, 4·3 기념식에 이명박이 오는 것이, 영령들에 대한 최악의 모욕이라는 것을, 개나라당이 서민을 입에 올릴 때가 바로 그들의 분열과 멸망이 가까워 온 때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아는 노무현 대통령의 원칙은 이것 하나다. “특권이 통해서는 안 된다.” 특권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억울할 사람은, 실력과 주제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특권에 도전하고 그것을 깨 부실 수 있는 유일한 힘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너무 늦게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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