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일 금요일

씬꿰떼레와 용호마을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블로그를 쉬었다.

지난 주말에는 이탈리아 리구리아에 휴가차 갔다 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유럽과 북미에서 리구리아는 인기 있는 관광지였다. 지중해와 아펜니노 산맥 사이에 있는 이유로 바닷가는 바로 절벽으로 이어지고, 작은 마을들이 절벽 위에 혹은 갯바위 뒤 후미진 곳에 점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 중에서 특별히 다섯 개 어촌이 유명하며, 이를 씬꿰떼레(Cinque Terre)라고 부른다. 지난 주말에는 거기에 갔다 왔다.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바위 절벽을 배경으로 좁은 골목과 역시 폭 좁은 너덧 층짜리 집들과 골목을 가로질러 머리 위로 걸쳐있는 빨랫줄과 어느 골목을 지나면 갑자기 나오는 조금 넓은 광장과 그 옆의 성당, 그리고 푸른 지중해의 바다. 지중해 마을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채워주는, 말 그대로 그림 같은 마을들을 돌아다녔었다. 다음 마을로 걸어갈 때는 깎아지른듯한 계곡을 개간해서 만든 포도밭을 지나갔고, 바닷가에 도착해서는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길 수 있었다.

휴가는 모든 점에서 만족스러웠으며, 그곳에서 본 풍광은 인상적이었다.



2002년인가 3년의 어느 벚꽃이 피는 계절, 나는 부산 용호마을에 있었다. 부산에서 한참을 살아가면서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용호마을. 아니다. 중2 때 한 번 야외수업 비슷한 것을 하면서 이기대에 갔을 때, 그 마을을 지나쳤을 것이다. 용호마을은 나병 촌이었다. 그래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다. 그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들어보지 못했다.

용호동 131번 종점 근처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산 숲으로 들어가 잠시 고갯길을 넘나 싶더니, 바다와 함께 계곡의 품에 안긴 서글픈 회색 마을이 보였다. 드문드문 벚나무가 창 밖으로 지나갔고, 시멘트벽 사이로 난 길을 굽이쳐 내려가자, 오륙도가 눈앞에 보이는 마을 광장 종점에 버스가 도착했다.

한참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이미 주민이주가 마무리단계로 접어든 때였나 보다. 거의 다가 빈집이었다. 나병 촌이라면 연상되는 양계장도 있었다. 이미 닭은 없고, 닭똥 냄새만 강하게 나고 있었다. 마을 위쪽으로 올라갔다가, 우연히 평생 잊지 못한 장면을 목격했다. 마을 가운에 있는 성당에서, 흰 망토를 걸친 소년들이 뛰어나와 다른 편 골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이승과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진 종교적 복장과, 사람이 떠나 비어가는 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적막감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역설적인 것 같기도 했다.

바닷가, 게딱지 같이 붙은 작은 집들, 좁은 골목, 성당. 씬꿰떼레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을 부산에서 보았었다. 용호마을의 집들이 좀 더 알록달록하게 색칠만 되어 있었다면, 지중해의 유명한 휴양지와 꽤 비슷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용호마을은 그 수년 후 지도 상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우뚝 솟은 아파트 단지가 오륙도를 굽어보고 있다. 용호마을에 켜켜이 내려앉았을 나병 인들의 서글픔, 목 좋은 갯바위를 찾아 들렀을 낚시꾼들의 설렘, 좀 더 가꾸었다면 꽤 괜찮은 관광지가 될 가능성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옛 도시의 기억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건축물을 올리는 제로 그라운드 식 뉴타운 형 개발이 여기서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올라가고 있는 고층 건물들은, 솔직히 강간범의 좆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 구역을 정복했어라며 뽐내는 남성계의 덤프트럭이랄까. 이해되지 않는 바는, 그 흉측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지자체 관료와 건축자본이다. 낮은 건물들 사이에 혼자 삐죽이 솟은 건물은 아무리 봐도 예쁘거나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균형도 조화도 없는 그런 건조물을 돈 들여 짓는 것도, 허가를 내 주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형편없는 그 안에서의 삶의 질 역시 차차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더욱 안 좋은 것은 부산의 경우이다. 이제는 해운대를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주상복합들은 해운대를 부산의 다른 곳과 분리했을 뿐 아니라, 해운대의 조망권을 서울의 부자에게 가져다 바친 꼴이 되었다. 부산지역 경기는 계속 내리막인데, 부동산만은 열기가 식질 않으니 그 돈은 다들 누구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들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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