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책을 읽다

요 근래에 책을 좀 많이 읽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제야 다 읽었고, 그 전에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을 읽었다. 물론 다른 책도 더 읽었다. 2권 읽고 많이 읽었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앞부분을 읽을 때는, 고등학교때 배웠던 윤리과목 내용이 많이 기억났다. 공리주의를 한참 설명하고, 또 그 원칙이 적용되는 예시들과, 이들 원칙들의 명백한 한계를 제시하였다. 그 때 제시되는 예들이 생각을 많이 자극했다. 특히나 사고 팔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고 공리가 증가하는가 하는 질문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읽었던, 자유시장이 자유로운 정도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하는 내용과 연관되어 있었다. 덕분에 좀 더 풍부한 예를 떠올리면서 막가파식 공리주의자나 시장원리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생각을 비판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 등장하는 사람이 유명한 임마뉴엘 칸트. 고등학교 윤리책에서 배운 칸트에 대한 설명이 뭔가를 왜곡하거나, 빠뜨린 부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당연히 서술의 깊이가 달랐다. 오랜만에 수능 이후 묻어두었던 지식을 꺼내어 확인해 보고, 또한 칸트의 생각을 한층 더 음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윤리책에서 배우지 못했던 사람이 등장했다. 존 롤스. 저자는 칸트와 롤스를 같은 범주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이 아리스토텔레스. 뭥미? 어리둥절하며 그의 목적론에 대한 설명을 뒤따라 읽었다. 그 뒤를 잇는, 그의 목적론만이 가장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예시들. 가끔 맞는듯 하지만, 사실은 이런 예들은 소가 뒷걸음치다 개구리잡는 격 아닌가. 화성에서 생명을 찾느니 하는 시대에 웬 아리스토텔레스?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관은, 나의 선입견 이상이였으며,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집단책임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모든 인간이 가져야 할 보편적인 책임 외에,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 존재한다. 그것을 설득력있게 설명해 주었다. 이야기의 문맥상에서, 이야기의 주체로서 살아있다. 가족·공동체·국가 같은. 그리고 이런 시각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연결이 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읽은지 며칠 되서 까먹었다. 다시 읽어야 한다.

칸트나 롤스가 이야기 한 자유로운 개인. 그리고 23가지에서 읽었던, 자유시장 원리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개인. 요 두가지가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뜨끔해 보였다. 아, 아니다. 원리주의자들의 합리적인 개인은 공리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바와 부합하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아 보인다.

《정의란 무엇인가》나 《그들이 이야기하지 않는 23가지》는, 정치·도덕분야나 경제 분야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의 한계들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정의란 무엇인가》는 영향력이 컸다. 아마도 앞으로 계속 영향을 줄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유로운 개인”에 초점을 두고 생각하고, 행동해왔다. 내가 속해있는 문맥보다는, 내가 써 내려가고 싶은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소극적인 내 성품에 더 부합했다. 그런 맥락에서 “용기”라는 덕목은 “만용”이라는 악덕과 본질적으로는 구별되지 않는 것이었다. 단지 그 결과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는 덕목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맥 속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리고 결코 그 문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는, 아마 내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짊어져야 할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이 때까지 이 점을 납득할 수 없었고 (정말로), 최대한 이런 문제를 회피하려고 했었다.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 책은, 그 지점을 납득시켜줬다. 더 분명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회피하려고 했던 그 책임을 지는가 여부를, 타인을 평가할 때, 내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가혹한, 관점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매우 부끄러웠고, 또한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지”하는 생각과 욕구가 생겼다.

책장수는 아니지만 일독을 권하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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