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9일 수요일

매직넘버 543

뿌리와 이파리에서 나온 《눈의 탄생》을 읽었다.

지질시대는 크게 명왕누대, 시생누대, 원생누대, 현생누대. 이렇게 크게 네 시기로 나뉘어진다. 시생누대는 38억년 전부터 25억년 전까지, 원생누대는 25억년 전부터 5억 4200만 년 전까지, 현생누대는 그 이후이다. 38억년 이전 시기의 암석은 지구상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시피하며, 이 시기를 명왕누대라고 한다. 이 책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원생누대와 현생누대의 경계를 전후로 한 시기이다. 이 시기는 지구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되는 시기이다.

현생누대의 가장 오래된 시기는 캄브리아기이다. 캄브리아기의 시작은 삼엽충의 등장 또는 비슷한 시기 특정 종류의 생흔화석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로 결정하며, 앞서 말했듯이 5억 4200만 년 전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100만 년 후의 퇴적암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매우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이와 같은 갑작스런 화석 기록의 “폭발”은 캄브리아기의 폭발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 폭발의 이유를 추적하고, 그 범인으로 “시각”을 제시한다.

다윈은 유명한 《종의 기원》에서, 캄브리아기에 갑자기 화석기록이 많아지는 것은 점진적인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 적이 있고, 더하여 눈과 같은 완벽한 기관이 자연선택을 통해 만들어지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하고 쓰기도 했다. 이 책은 다윈의 두가지 걱정을 풀어준다.

캄브리아기의 극초기에 시각을 가진 삼엽충이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포식이라는 전략이 최초로 가능해졌고, 이는 절대적인 진화압으로 작용하게 된다. 캄브리아기 초반,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이라고 불리는 그 시기동안 여러 전략들이 제시되고 시험받게 된다. 그리고 그 폭발이 끝난 이후에는 포식과 그 방어기제가 다시 균형을 이루며, 이른바 포식자와 피식자간의 평행한 군비경쟁의 시기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소소한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것들을 열거해 본다.

눈은 “여러 번” 완전히 개별적으로 진화했다. 진화 계통수와 현재 눈을 가진 생물, 그리고 화석으로 발견되는 조상 생물들이 눈을 가졌는지 여부를 조사해 보면, 눈의 진화는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예를들면, 절지동물들이 이미 눈을 가지고 으스대고 있을 때, 동시대에 살던 척추동물의 조상 생물은 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척추동물의 눈은, 이후에, 절지동물의 눈과는 별개로 진화했다는 뜻이다.

콩벌레라고 알고 있는, 그 쥐며느리의 가까운 친척뻘 되는 생물이 심해에도 살고 있는데, 이 친척은 좀 크시다. Bathynomus라는 등각류의 일족이신 분인데, 이렇게 생기셨다.
책에 칼라 화보로 있는 것은 이 사진보다 좀 더 인상적인데, 이 사진에는 크기를 비교할 만한 대상이 좀 애매하기 때문에, 좀 더 친숙한 동물인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다시 올려본다.
새끼 고양이가 처음에는 기겁을 하는 눈빛이 역력한데, 나중에는 신기한지 한 번 물어본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생각난다. 여튼 이 생물은 심해저에서 청소부 역할을 하며, 전 세계 어디에서 잡히는 놈이나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 빛이 없는 환경에는 진화압이 작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예로 이 놈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책의 도입부분에서 생명의 역사를 10장으로 나누어 설명한 부분이었다. 생명의 탄생, 무기물을 이용한 에너지 획득, 광합성, 세포핵의 형성, 세포의 합체, 다세포 생물, 조직의 분화, 혈액·내장 공간의 확보, 눈의 등장 등이다. 요런 단계적이고 도식적인  설명은 기억하기 쉽다. 그런데 마지막 10단계가 뭔지는 끝까지 설명한 안한 느낌이다. 性의 탄생 정도인가?

이론상 가장 작은 카메라형 눈의 크기는 1mm정도라고 한다. 그 실재는 Thorius라는 도롱뇽 류인데, 매우 귀엽다. 웹에서 찾은 사진들이 다들 저작권에 엮히는 것 같아, 링크만 걸어놓는다.
http://www.arkive.org/thorius/thorius-macdougalli/
이름도 외우기쉽네.



좀 호들갑스럽게 서술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좀 어려운 주제인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그 정도 오바 정도는 이해할 만했다. 그리고 나름 유머도 드물게나마 있었으니까.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식물 부문에 대하여서는 거의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동물 사이의 포식·피식 관계에 너무 집중을 한 나머지 식물을 포함한 생태환경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두번째로 왜 하필 그 때 시각이 진화되어 나왔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부분은 좀 많이 실망스러웠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외부의 자극에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사실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책에 다 설명이 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몸집이 커져야 하고, 또한 시각 영상을 처리할만한 신경 네트워크가 있어야한다고까지 설명을 했다면, 그 준비가 완성된 시기가 바로 매직넘버 5억 4300만년 전이었음을 보이면 될 일이었다. 실재로 시기가 비슷하다. 태양 광도가 변했을 수 있다는 논증을 위해 성간 물질의 밀도 변화라든지 은하계에서 태양의 위치같은 설명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음은 불확실한 부분인데, 책에서는 캄브리아기 직전의 생물들이 배회하다 우연히 포식을 하거나 죽은 시체에서 영양을 얻었을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음.. 좀 더 사실적이라면, 그 꿈틀거리는 벌레같던 생물들이, 시체가 있으면 냄새를 맡고 거기 우글우글 몰려들어 시체를 뜯어먹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시체에 선캄브리아기의 생물들이 우글우글 달라 붙어있는 화석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뿌리와 이파리에서 나온 또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생명 최초의 30억년》이라는 책인데, 이 책은 《눈의 탄생》이 다루는 시기 바로 직전까지의 생명의 진화를 다룬 책이다. 솔직히 술술 읽히는 교양서는 아니다. 《눈의 탄생》은 《생명 최초의 30억년》이 끝까지 제기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고 있다. 왜 생명은 그 최초의 30억년 동안 그토록 천천히 진화해왔단 말인가. 특히나 그 이후의 5억 4300만년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그 답이 “시각”일 확률은 매우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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