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0일 화요일

짜장면은 짜장면이다

언어는 개인마다 고유하다. 개인의 내적언어는 인격을 구성하는 큰 부분이다. 반면 내적 언어의 무한한 다양성을 언중이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언어에도 표준이 필요해진다. 대한민국에서는 표준어가 이 역할을 하고, “교양있는 현대 서울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이라고 그 범위가 규정되어있다.

어떤 개인의 언어를 비표준으로 낙인 찍는 것은, 그 개인을 구성하는 인격의 일부분을 비표준으로 규정하는 것이므로 공격적인 행위가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언어의 표준은 엄격한 기준을 통과하여 정해져야하고, 정합적 논리성을 유지해야 하며, 가장 많은 언중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기준으로 언어의 표준이 정해진다면, 저항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표준어를 규정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기준으로 표준어를 정하는 지 알 수 없다. 짜장면은 중국어기 때문에 외국어 표기에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는 원칙 상 짜장면이 될 수 없다? 짜장면이 외래어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럼 자장미엔이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아니면 황허 강 같이 자장미엔 면이 되든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짬뽕은 왜 짬뽕인가. 어원을 살려 적는 것이 원칙이라면, 삭월세는 웨 사글세가 되었는가. 다들 사글세로 발음하기 때문이란다. 좆까. 정말이지 사글세라는 말을 왜 예외적인 표준으로 만들어서, 적어도 내가 살던 지방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것을 받아쓰기 맞추려고 10살짜리가 외워야 했는지 아직도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 이후로도 사글세라는 형태의 주거임대방식을 들어 본 적 없다. 그러면서 어떤 예외없는 원칙이 있길래 언중 대다수가 사용하고 발음하는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쓰지 못하느냔 말이다.

왜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부르는 대다수의 언중을 비표준으로 몰아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예외는 정말로 예외적이어야 한다. 한 번 예외를 허용하면, 이렇게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사글세라는 빌어처먹을 전례만 아니었다면, 자장면이라고 쓰고 짜장면이라고 읽는 부조리한 상황을 받아들였을 것 같다. 왜 그런거 많잖아. 누가 버스를 /버스/라고 읽는가 /뻐스/라고 읽지. 아마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짜장면은 외래어가 아니잖아.

무원칙하게 정해지는 표준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나는 표준에 가까운 경상방언 화자다. 표준어과 사투리가 대립하는 지점에서 표준어가 옳은 것이고, 사투리가 틀린 것이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았다. 경상도 사람들은 ㅓ 랑 ㅡ 구별을 못해, 남도 사람들은 ㅔ 랑 ㅐ 구별을 못해, ㅚ랑 ㅟ는 단모음으로 발음해야 해. 등등 또, `맑은'은 /말근/이라고 읽고, `맑다'는 /막다/로 읽어야 해. 좆까. 각 도마다 각각의 버전이 있겠지. 그런 것을 보면, 이런 식의 표준어 강요는 지방민들에게 무기력을 학습시키고, 자존감을 박탈하며, 향토애를 뿌리부터 제거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못난 언어를 쓰는 못난이들이라고. 대한민국이 얼마나 많은 전통과 뿌리를 부정해 왔던가. 그리고 그 해독이 만연해 있지 않는가.

텔레비전에서 생글생글 웃는 아나운서들이 이건 맞고 저건 틀렸다고 말하는 것 보면, 예전에는 저 사람들이 잘난 사람이니까 맞는 말이려니 했는데, 요즘 보면 이것들 하는 꼴이 웃기지도 않아. `정구지찌짐'이라는 단어를 쓰면 무슨 외계에서 온 사람 보듯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나도 면상에 똥을 싸갈겨주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부추부침개' 난 이 단어를 들으면 아무런 맛도 떠오르지 않는단 말이다. 대체제가 이토록 부실하기 때문에 나는 정구지찌짐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경상방언의 특징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욕도 마찬가지다. 짜파게티 끓일 때, 실수로 스프를 끓는 물에 바로 넣은 직후, 아차 싶지만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 씨발”이라고 외마디 한탄을 하는게, 막되먹은 쌍놈이라 그런가. 아니다. 그 감성은 그 단어가 아니면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런” 정도로 그 상황에 대한 원망이 표현되는가?

나의 언어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나의 언어를 부정해야 할 것으로만 바라보았을 것이다.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르고 쓸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규범에 어긋나지만,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부르고,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쓸' 것이다.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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