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2일 월요일

오바마가 한국 교육 칭찬하면 좋습니까?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열을 예로 들면서 미국민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은 심심치않게 언론에 보도된다. 상국의 황제께서 일개 번국을 기특히 여기며 이를 배워야한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데, 왜 청현직의 인사들이 꺼뻑죽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많이 불편하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오바마의 그런 발언이 불편한 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가 한국의 “지나친” 교육열이 오히려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마당에,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오바마의 인상비평이 한국의 교육현실에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하는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미친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교육을 통한 계층 고착화에 오바마의 설익은 언급이 이용되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난 아직까지 자식이 없다. 말하자면 그 불편함이 사교육이나 경쟁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한국 교육이 괴물이고 기형이라는 의견에는 백번 천번 동감한다. 그러나 오바마의 한국 교육열 운운에 내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그것과는 상관이 없다. 내가 언짢아지는 이유는, 단순히 말하면 자존심 상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쓸 이야기가 범인류적인 상식과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혼자 생각만 하고 있으려고 했던 것들이다.



나는 한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에 대하여 많이 생각한다.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국내에는 크게 두가지 견해가 있는데, 한국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혈통있는 나라라는 견해와, 한국은 그저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신생독립국 중의 하나라는 견해가 있다.

당연히 첫번째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불행히도 두번째 견해는 우리나라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8월 15일을 건국절로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으로부터, 저 두번째 견해란 것이 내가 썰을 풀기 위해 실체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사실 두번째 견해를 뒤바침할 만한 요소는 얼마든지 더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사회 시스템은 실재 일본 것을 많이 복사했고, 요즘은 고급 지식을 얻기 위해, “오로지” 미국에만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공부한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뿐인가, 영어공용화론이 나름 진진하게 논의 되는 모습은 식민지 지식인들이 했던 고뇌들과 많이 비슷해보인다.



12년 전에도 그랬다. 사람들의 자존감이 낮아져서 사회가 동요하는 것을,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불만과 자존감을 투사할 허상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불만을 투사하기위해 외국인 노동자와 빨갱이가(요건 딴지일보 독자불패에서 읽었다), 자존감을 투사하기 위해 국가가 동원된다. 웬만해서는 민족을 동원하는 것이 한단계 더 심원하겠지만, 그러면 빨갱이를 끌어 안아야하기 때문에 민족보다는 국가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따라서 나같이 자존감을 어딘가에 투사해야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1948년에 시작하는 역사를 강요받는 것이다. 극도의 혼란속의 단독정부 수립, 전쟁, 계속되는 혼란, 지수함수적인 경제성장, 민주항쟁, 올림픽,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 부도극복, 월드컵. (어? 뭐가 빠졌네?) 이 모든 과정을 다 지켜 본 사람이 한 둘도 아니고, 국민 중에 예순 넘은 사람 전부다. 캬, 내가 써 놓고 봐도 정말 멋지고 간지철철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면 자문해 볼만하다,

“대한민국 대박친거 아냐?”



이제 내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줄세우기를 해 보겠다. 사실 전쟁 후의 폐허에서 재활한 나라를 성공적인 순서대로 써 보자면, 그 첫번째는 소련이다. 그 다음에 독일과 일본이 있고, 그 다음 등수로 프랑스, 이탈리아를 들 수 있겠다. 소련은 히틀러 때문에 우랄산맥 서쪽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고, 전쟁으로인한 인력손실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종전직후부터 소련은 최소한 본토에는 폭탄하나 떨어지지않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월드투톱이 된다. (아 사실 미국에는 일본이 풍선에 매달아 날려보낸 폭탄이 몇 개 떨어지고, 일본 잠수함에 의해서도 태평양의 항구가 공격받은 적이 있다고는 하네요. 별 의미를 두지는 못할 것들입니다만.) 독일은 어떤가. 독일은 본토가 전쟁으로 사실상 폐허가 되었고, 분단까지 당했다. 서독만 치면 나라가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1938년의 국경선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 상황에서 서독은 금방 세계 수출의 넘버 2가 되었다. 일본은 본토가 공격받지는 않았지만, 패전후의 상황은 정말 참담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국토가 전장이었다. 아, 이따위 순위메기기가 말도 안되는 거고,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많은 정치·경제적 이유들이 있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러나 일단 한국까지는 해야되지 않겠나. 한국은 전쟁이 유럽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한 8년 후에 끝났다는점을 고려해도, 이들에 비하면 좀 늦은 편이다. 그리고 최종적 성취 역시 이들과 비교되기에는 모자란다. 이런 비교를 하면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불공평한 비교라고. 왜? 우리나라는 식민지에서 출발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와 비교를 할 나라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나라들이다. 가까이 아시아의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이라크, 시리아, 사우디. 좀 멀리 아프리카의.. 음.. 여러 나라들. 이들 중에서 최소한 전쟁의 피해를 입었던 나라만을 꺼내 봐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요 두 나라에는 베트남 전쟁때 꽤나 폭탄이 떨어졌었다) 정도가 되겠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상태가 더 좋았네. 전쟁의 참화는 비켜갔으니까. 자, 이들과 비교하는 것은 그렇다면 이제 공정한 비교이겠는가.

이렇게 눈을 낮춰보면, 대한민국은 대박쳤다. 진짜다. 2차대전후에 독립한 나라들 중에 어데 지금 성한 나라 있더뇨.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경제적으로 번영한 곳도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형식상의 민주주의나마 작동하고 있는 곳도 그다지 많지 않다.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과학·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나라도 없다.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치안이 안전한 곳도 없고, 신생독립국들 가운데 한국만큼 대중문화든 전통문화든 독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별로 없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기적은 2차대전이후의 신생독립국으로서의 “기적”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라면, 이것도 별로 공정하지 못한 비교라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웬지 무시당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내가 오바마의 한국 교육열 운운을 들었을 때 받는 느낌은 그 느낌과 같은 종류의 찝찝함이다.

이들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보면,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면서 가슴벅차했던 것들이 상당한 측면에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들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성공 순위의 우리 앞자리에 있던 나라들이 거기 설 수 밖에 없었던 것 처럼 말이다. 한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행정, 경제, 군사, 문화 등을 발전시키고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였다. 그 말은 그런 시스템을 운영해 본 사람이 있다는 측면보다는, 이미 그 국민이 그러한 조직적 행정의 “피경험인”이었다는 것에 중점이 주어진다. 한국은 필리핀은 할 수 없었던 일사분란한 동원체제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향해 나갈 수 있었고, 시험이라는 미끼를 만들어 학교를 통해 현대국가가 국민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를 철저히 교육할 수 있었다. 과거시험의 전통이 없었던들 이것이 그리 쉬웠을까. 한국에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같이 지역별 호족가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처럼 부족간 갈등이 있는 나라도 아니었다. 한국인이 조선왕조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매우 다른 형태를 보였을 것이다. 그 예를 바로 일본의 타이완 지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나마 베트남이 가장 근접한 형태의 중앙집권을 시도해 본 역사적 경험이 있는 나라고, 그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도 그리고 중국에도 이겨본 적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 외의 나라들은 어떤가. 그렇다면 한국전쟁 이후의 한국은 기적의 발전을 보인 것이 아니라,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보다 공격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의 기적을 강조하는 것은 그 반동력으로 식민지 경험을 정당화한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내가 오바마에게서 느끼는 불만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한국의 성공을 교육만으로 이야기하려는 단순함에 대한 불만이다. 거기에는 한국이 20세기의 쓰디쓴 실패 이전에 성취했던 높은 수준의 사회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있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의 주요한 요인으로 교육열을 본 것은 현명하지만, 그 교육열의 연원이 무엇인지는 찾지 않는 단견(그런데 누구나 다 그렇다)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리고 오바마의 발언을 열렬히 옮겨대는 매체들이 정말 이런 생각을 못해서라기 보다는, 역사의식의 단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계급적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어찌보면 식민지 35년은 짧은 시간이다. 이미 독립 후로 그보다 2배 가까운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많은 식자들은 아직 남아있는 식민지의 해독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 또한 식민지의 해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식민지는 자립적인 성장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는다는 점이 가장 나쁘다. 강점기를 통틀어 조선인의 자본축적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었고, 정치참여 또한 얼마나 제한되어 있었던가. 그런 것에 비하면 신사참배강요나 창씨개명같은 어거지 짓은 악세사리에 불과해 보일 정도이다. (그만큼 질과 수준이 낮은 짓이었다는 뜻임. 마치 금상께서 하시는 짓처럼) 그리고 해방이 되어서도 그 마름들을 죽이지 못한 것은, 어쩌면 오랜 역사동안 한번도 왕의 목을 쳐날린 경험이 없던, 민족의 경험 또는 역량 부족 탓일 것이다. 하지만 조선조동안 국제무역이라는 스킬을 잃어버렸던 한국인이 근래 다시 그런 경험을 익힌 것처럼, 곧 왕목따 스킬을 익히게 될지도 모른다.

더불어 미국에 필요한 것은 한국의 교육열이 아니라 실체에 기반한 계급간의 통합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봐도 미국은 아직도 신화를 만들어야 유지될 수 있는 초기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아직도 사라 페일린을 필요로 했다. 여기서 신화는 거짓말의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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