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1일 화요일

예능 프로를 보지 않는 이유

나는 예능을 보지 않는다. 전혀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끔 식당에서 밥먹을 때는, 낄낄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찾아서 보지는 못하겠더라. 그것을 보고 있으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중년 초입에 들어서셨던 한 선생님께서, 학교에 갓 부임했을 때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 선생님은 수도권에서 자랐다가 우리학교로 부임하면서 처음으로 경상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처음에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학교 시설이나 말투도 이상하다고 느꼈으나, 결정적으로는 촌놈들이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꼴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드랬다. 부임 첫 해 봄소풍을 갔다. 선생님들끼리 모여 점심을 드시는데, 학생들이 우 둘러싸서는 밥 먹는 꼴을 구경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놀 줄 모르는 학생들이 너무 불쌍하여 다음 소풍부터는 씨름대회 같은 프로그램을 힘써 준비하셨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나는 남들 노는 것을 멍하게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즈그들끼리, 즈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즈그들끼리 웃고 떠드는 것을, 보고 듣고 따라 웃는다? 버스에서 가끔 옆사람들의 대화에 피식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떤 다른 점을 내 삶에 줄 수 있는가? 누가 재미있는 남들의 대화를 듣을 목적으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가? 그런데 주말 저녁마다 그걸 듣기 위해서 테레비 앞에 앉아 있는다라. 구지 연관성을 찾자면, 그 사람들도 한국 사람이니까...

별스러운가? 덕분에 대화가 잘 안된다는 불편한 점은 있는데, 가끔은 내가 정상의 범위 밖에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잡설을 덧붙이자면, 고등학교 때 그런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에 가서는, 그 대학생들 특유의 대동 문화에 적응하기에 시간이 걸렸었다. 1학년 3월, 촌놈의 눈에는 대학생들이 노는 꼴이 닭살 돋고 유치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 이 놈들 골까네. 내가 서울 처음 올라와서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렇지, 좀만 있어봐라 이 짓을 또 하는가.” 하는 반항청년이었는데,,, 뭐, 졸업할 때까지 계속 그러고 놀았었다. 그리고 그런 어쨌든 “우리 모두 다 함께”가 좀 답답해 보이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게 놀면 나름 진짜 재미있다. “끼리끼리”(또는 우리가 남이가)보다야 훨씬 낫지 않는가. 이게 지역색인지, 연령이 달라져서 생기는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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