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3일 금요일

누가 짐승일까, 아니 나는 짐승이 아닌가?

지난해 12월 2일 대전에서 여고생이 왕따를 당하다가 집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두 주가 지나고 20일 이번에는 대구에서 남자 중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눈물겨운 유서를 남기고 자신의 집에서 투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수 언론이 뛰어들었다. 그 중 삼류로 여겨지는 동아가 초조함에 선빵을 내질렀다. 한동안 포털 사이트의 메인 기사는 동아의 학원폭력 가해자를 성토하고, 그 실태를 까발리며, 강한 처벌을 주문하는 기사로 채워졌다. 해가 지나자 이제는 조선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틀 전 조선은 학교폭력 가해자들의 사회 계층을 보여주었고, 오늘은 그 원인을 게임 등의 폭력물로 돌렸다.

이들은 청맹과니일 수도 있고, 눈을 가리고 아웅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마주하는 데에는 용기와 지성이 필요하다. 그 두가지를 마음에 품고, 우리 자신의 십대를 뒤돌아보자. 교실이 평등한 우정의 공동체였던 적이 있었는가? 안 그랬잖아. 원래부터 안 그랬잖아.

엄기호의 말을 빌리자면, 교실은 촘촘하게 구축된 위계질서였다. 그 위계의 꼭대기는 돈이 많은 아버지의 자제분들과 특별하게 싸움을 잘하는 자들의 연합 내지는 동맹이었고, 그 위계의 가장 아래에는 위생에 신경쓰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거나, 아무 특징도 없으면서 공부마저 지지리도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씨발, 짜증나게 이상한 것은, 부자면서 싸움도 잘하는 놈들은 대체로 잘생겼고 공부도 잘했다. 가장 아래에 있던 아이들은, 역시 대체로 생긴 것도 비호감이었고, 지금 돌아보자면, 표가 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십대의 마지막 해이던 고3의 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지나가는 듯한 말로 경고했었다.
느그들 이 중에 우리집도 함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놈들 있제? 지금 공부 한하면 평생 우리집도 함 잘 살아봤으면 좋겠다 생각만 하면서 살게 된다.
그 발언이 비교육적이라는 단면적인 인상비판은 사양한다. 그것은 공갈도 협박도 아니었고, 단지 높은 개연성을 가지는 두 사건을 나란히 놓아 그 대비를 선명하게 했을 뿐이었다. 교실은 그냥 사회였다. 사회의 계급이 그대로 투영되고, 그 계급이 거의 변화없이 재생산되게 만들고, 혹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기제였다.



중학교 때의 한 해, 우리반의 정치지형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싸움 잘하고, 공부 잘하고, 잘생기고, 집도 부자인 놈이 나와 한 반이었고, 자연스럽게 반장이 되어 나머지 52명을 장악하는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현명하기까지 했다. 그와 코드를 최소한 맞출 수 있는 정도로 놀 수 있는 대여섯 놈들은 일종의 이너써클을 형성했고, 이들에게 권력의 일부를 떼어 주었다. 예를 들자면 이너써클의 일탈은 담임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다른 5년동안 나는 한 번도 이런 철저한 계급화와 효율적인 권력의 사유화가 학급에서 실현된 경우를 목격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는 함께 중학교를 다니던 3년 동안 교사들 사이에서 능력있는 반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듯 했다. 나는 이너써클에 들어갈 만큼 자원(자본, 운동신경, 외모)이 충분하지 못했고, 부당한 대우에 상황파악 못하고 몇 번 “개념없이” 도전했고, 그 결과 그 존재감 있는 놈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특히나 그 중 한 마름 비슷했던 놈과 빈번히 충돌했으나, 나는 주로 맞는 편이었다.

그 경험은 학원 폭력을 내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을 불러놓고 하는 인터뷰나 토론을 보면, 좀 병신같다. 먼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지 않는댄다. 그래서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요즘 병신과 병신이 아닌 사람들 구분하는 방법은 소통에 있다. 소통을 떠드는 놈들은 십중팔구 병신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소통은 병림픽 데쓰메치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 고주알 부모나 교사한테 말하는 10대 사춘기소년은, 비정상이다. 걔네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센데.

둘째 교사가 반에 더 신경을 써야한댄다. 제발. 빈다. 부탁이다. 걔네들에게 잡무 맡기지 마라. 아니면 교사를 더 뽑아서 둘 중 하나는 생활지도에, 나머지는 행정 처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라. 걔네들 시간 없고, 또 역시나 가정을 가진 생활인이다. 애정과 관심 또한 제한된 자원이다. 피해자가 병신이 되거가 죽고 난 다음에도 자기 책임 없다고 발뺌하는 교사들도 효수감이지만, 감당이 되는 만큼만 책임을 져야 시스템이 돌아간다.

셋째 폭력물 탓 하지마라. 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이 농구부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체육관에서 양아치들과의 피터지게 싸워야 했다. 서태웅은 출혈과다로 쓰러져 죽을 뻔(?) 했으므로, 대단히 위험한 폭력장면이다. 그런데, 그래서 슬램덩크가 쓰레기 폭력물인가? 그 장면이 잘려 나가면 슬램덩크의 정대만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살아날 수 있을까? 내가 체육관 장면을 폭력물과 연관짓는 게 오바 같은가? 천만에. 실재로 1993년 당시 이 장면을 두고 폭력물 시비가 있었다. 게임과 폭력물이 없으면,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는 10대 남자애들이 얌전히 있을 것 같나? 요즘 중학생들이 온라인 게임에서 몹과 몬스터들 때려 잡는다는데, 내가 고만하거나 좀더 어렸을 때도 오락실에서 스트리트파이터II, 철권 따위를 했고, 용돈 떨어지면 개미, 잠자리 잡아서 다리 떼고, 날개 떼고 놀았다. 폭력물을 접해서 폭력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좀 폭력적이기 때문에, 폭력물을 좀 보고 즐기는 것이다. 중학교 생물에 붕어, 개구리 해부는 아직 있나 몰라.

넷째, 많은 경우 일대다의 충돌이다. 여럿이서 하나 따돌리는거. 이걸 언급하는 전문가를 본 적이 없다. 개별 행위는 정말 사소하다. 결코 범죄를 성립시켜서 처벌할 수가 없다. 사람 둘 있으면, 하나 바보 만드는 거 식은 죽먹기이다. 이건 직장에서도, 군대에서도, 사회에서도 항상, 늘 존재한다. 대상이 학생일 경우에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걸 적용해서 사회의 많은 문제도 함께 해결할 수 있겠다. 안된다는 말이다. LG 왕따 사건을 보라. 당하는 놈을 바보 만들어야 굴러가도록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걸 법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학원폭력이 계급 문제라는 것을 언제 쯤 인정할텐가? 즉, 학부모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것을 언제 인정할 것이냐는 말이다. 아이의 행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사회생활에 적합하도록 교정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서 다시 가정의 문제도 돌아왔다. 여기서 나는 다시 한 번 지식을 바탕으로 용기를 내어 오해를 사기에 딱 좋은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의 형질은 유전될 수 밖에 없으므로, 비(非)신분제 사회에서마저 관찰되는 계급의 재생산은 그 물리적, 자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고. 그러면 그게 당연한거니까 내버려 두란 말인가? 아니, 오히려 차별과 폭력을 조장하라는 말 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렇지만”을 꺼내 본다. 그것을 통해야만 지식이 아니라 지성이 작용하는 치역으로 사상될 수 있다. 잘난 놈도 있고, 못난 놈도 있지만, 그렇지만, 못난 놈이라서 비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하지 말고, 또 잘난 놈이라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수 없게, 그런 규칙에 모두의 동의를 구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인권을 넘어 모두에게 존엄을 보장할 수 있게 말이다. 구체적 인간은 타고난 능력과 키워진 환경이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만히 놓아 두면 그 차별이 너무나 “비인간적인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더 존엄의 하한선만은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논리이다.

보수언론은 학교폭력 가해자들과 그들의 공범인 폭력물에게 짐승이라는 비유를 가져다 붙였다. 그러나 학교폭력이 결국은 계급의 반영이라는 점을 목도하고 나면, 계급간의 반목과 질시, 동경의 헤게모니와 값싼 동정을 이용하여야만 유지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 온 기존의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의 협력자들이 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리고 어쩌면, 나도 짐승일지 모른다. 남이 짐승임을 확인하는 순간.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1491》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책방의 서가에서 《1491》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자문했다. 거의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읽고 배우자. 그래서 샀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닿은 것은 1492년이다.

서문과 에필로그 및 코다를 뺀 이 책의 본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 1부는 콜럼버스의 도래 이후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났던 종말론적 인구감소현상에 대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유럽으로 납치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17세기 초반 뉴잉글랜드 초기 정착 시기의 한 인디언이, 돌아온 고향에서 보았던 충격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마을이 폐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골이 뒹굴고 있었다. 비단 그의 고향 뿐만 아니라 연안에 수백 킬로미터에 걸져 있던 그의 출신 세력, 그 연합세력, 그 연합세력의 적대세력의 마을들이 모두 그렇게 폐허가 되었고, 그 자신도 결국에는 그의 동포를 몰살시켰던 그 “전염병”으로 죽게 된다. 다음에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은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에서 약 한 세기 정도 먼저 일어났던 장면이다. 피사로와 싸우던 잉카인들이 갑자기 황제부터 병으로 쓰러져 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정복은 쉬워졌다. 전염병에 의한 인구의 감소는 예전부터 지적되던 내용이지만, 근래의 연구에서는 그 파국적이었던 인구감소 추정규모가 이전에 비하여 훨씬 더 커지고 있다. 약 95~97% 정도의 원주민이 전염병으로 죽었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아메리카 대륙에는 콜럼버스의 도래 이전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한 공동체의 인구가 20분의 1 또는 30분의 1로 줄어들게 되면, 사회는 붕괴된다.

하지만 어떻게 전염병으로 인구의 대부분이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무시무시한던 중세 유럽의 흑사병도, 많이 잡아봐야 겨우 인구의 3분의 1 밖에는 처치하지 못했지 않는가? 20분의 19, 30분의 29가 죽었다는 것은 오바 아닌가? 내가 알고 있던 설명은 이렇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에서 가축화된 동물이 가지고 있던 병원체로부터 발전한 전염병에 대한 항체를 “전혀” 가지지 못했다. 그들은 가축화 이전에 베링해협을 건넜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그런데 베링해협을 건넜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오대호부터 파타고니아에 이르기까지 유전적으로 거의 다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라시아-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원주민과 가장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은 시베리아 원주민들이다. 17세기 러시아가 모피를 찾아 동진할 때, 이들 역시 전염병으로 인한 엄청난 인구의 감소를 경험했다. 접촉은 필연적으로 전염병의 창궐을 낳을 수 밖에 없었고, 어떤 수를 썼더라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생물학적인 결론이다. 전염병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천연두, 홍역 등의 전염병의 쓰나미가 이 수년을 간격으로 한 세기 넘게 아메리카를 덮친다. 맨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콜럼버스가 열어재친 대륙간의 종 이동으로 어떤 종은 크게 성공하고, 어떤 종은 크게 그 수가 줄었다. 피해를 입은 종 중에 대표는 아마 호모 샤피엔스가 아닐까 한다. 약 20%의 개체가 병으로 죽었으니까.

자, 원래 인구가 그렇게 많았다면, 그들은 분명히 상당히 고차원의 문명을 이루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의 문명은 어떻게 발전해왔던가? 그 과정은 유라시아와 비교해 어떻게 다른가? 제 2부는 이 부분을 다룬다. 2부는 근래에 밝혀지고 있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로 완전히 도배되어있다시피 하다. 먼저 아메리카로의 인류 이주에 대한 큰 그림이 근래에 와서 바뀌고 있음을 지적한다. 연구자들 중에는 이제 아메리카에 클로비스 문명 이전에 먼저 이주해 온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다음에는 잉카문명의 기원이 해양문명이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들을 정리해 놓았다. 야생식물을 작물화하여 농경이 시작되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가축화가 진행되고, 많은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한 통치 체계가 발전하고, 무기가 만들어지고, 기록을 위한 문자가 발명되고, 이것이 우리가 유라시아에서 생각하는 문명의 시발이다. 하지만 안데스와 태평양 사이의 극 건조지대에서는 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건조지대를 흐르는 강을 따라 만들어진 좁은 녹지에 살던 사람들이 바다에서 멸치(엔쵸비)를 잡는다. 멸치를 많이 잡기 위한 그물을 만들기 위해 면화를 작물화 하고 상류에서 재배한다. 이것으로 사람이 모인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했다. 노르테 치코에서 발견된 이 유적이 만들어 질 때,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있었다. 태평양에서 안데스에 이르는 지역은 겨우 100 킬로미터 사이에서는 고도변화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환경과 생태계가 병존하고 있다. 대역별로 상이한 대역 사이에 교역이 있었고, 이 교역을 통해서 해안에서 발생한 문명이 안데스로 전파되었다. 페루의 엔쵸비 먹는 유적과 잉카 유적에서 나타나는 문양의 모티브가 유사하다는 점이 문명의 전파를 암시한다고 한다.

안데스의 잉카문명은 거의 완전히 고립되어 발전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마야 문명과의 교류도 없었던 것 같다. 유일한 예외는 마야로부터 옥수수가 전래된 것이다. 그런데 옥수수는 다른 작물과는 좀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옥수수는 그 야생종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종은, 지금의 옥수수와는 좀 많이 다르게 생겼다. 멕시코의 경사지에서 성공적으로 농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밀파라는 밭 형식을 발명했다. 여러 작물을 함께 키워서 서로 필요한 원소를 교환하게 하는 방법이다. 안데스의 가파른 비탈에서는 햇빛을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는 계단식 밭이 발달했다. 그렇다면 이 정도 수준으로 발전한 문명이, 왜, 유라시안 스텐다드인 바퀴는 발명 하지 않았지? 적어도 멕시코 남부의 마야인들은 3000년 전에는 바퀴를 알고 있었다. 바퀴가 달린 장난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걸 더 크게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포장된 도로가 없고 수레를 끌 가축이 없다면, 곳곳에 웅덩이가 생기는 열대우림기후 환경에서 수레는 별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작가의 대답이다. 그리고 그 간단해 보이는 기술의 진보가 항상 당연한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 중국에서 배워 오기 전까지 볏이 달린 쟁기를 “몰랐다.” 중국에서 볏 달린 쟁기는 갑골문에 등장한다. 책에는 기원전 3세기에 발명되었다고 인용했다.

제 3부에서는 아메리카의, 생각보다 밀집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환경에 준 영향을 되짚어 본다. 북미에 살던 사람들은 숲은 매해 가을 태워서 잡초를 제거하고, 다음에 나는 풀들이 더 잘 자라게 했다. 초기 정착민들은 불타오르는 숲을 놀라운 눈으로 보았다고 한다. 다음에 나오는 아마존 이야기는 완전히 놀라움 그 자체였다. 피사로를 따라 안데스에 들어갔다가 아마존을 따라 나온 사람이 있다. 그는 그가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본 바를 기록으로 남겼으나, 오랜시간 사장되었다가 겨우 한 세기 전에야 출간되었다. 그는 아마존에서 빽빽하게 밀집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발전된 문명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기록했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구라로 여기고 무시한다. 아마존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다. 그 중에, 아마존의 토양은 그 위의 삼림에 비하면 턱없이 연약하기 때문에 화전식 농업 이상으로 오래 경작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정주를 필요로하는 문명이 발전할 수 없었다는 생태적한계 이론이 있다. 열대우림기후에서는 나무든 뼈든 보존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도기파편 정도가 보존이 된다. 밀림지역에 고고학이 잘 적용되지 않는 이유이다. 최근에는 유전자 생물학과 토양학이 적용된다. 생물학은 아마존에서 유실수가 작물화되었음을 제시한다. 책에 나오는 과일들의 이름이 익숙치가 않아서 다 까먹었는데, 여하튼 굉장히 많은 수의 과일나무가 작물화되고, 관리되었다. 토양학은 아마존에서 테라프레타라고 하는 숯과 유기물, 그리고 도기파편이 풍부하게 포함된 토양을 발견했다. 자연적으로 생성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좀 많이 부자연스러운, 그런 흙이다. 실험을 통해서 농업에 매우 최적화되었음이 입증된 토양이다. 추산에 따라서는 아마존의 약 10%가 이러한 토양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가 보는 아마존이라는 숲 자체가 인간의 집중적인 관리와 개입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유실수의 작물화와 토양의 최적화는 아마도 현재는 거의 버려진 땅인 볼리비아 북동부 베니 지역과 브라질의 아크레 주에 살던 사람들이 개발한 것이 아닌가 한다. 거기에서는 거대한 흙 구조물들 수 백개가 산재하고 있음이 발견되었고, 약 500년 전에 버려진 것으로 연대추정이 된다.

놀라운 사실과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최신 연구의 놀라운 결론도 결론이지만, 그 연구의 발표 시기도 극 최근이었다. 2008년, 막 이런다. 2010년도 한 군데서 본 것 같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책 내용이 조금이라도 더 식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요약한 내용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거나, 그냥 아직 기억이 나는 내용들이다. 책은 잉카·마야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으며, 그 뉴잉글랜드 개척사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나 기존의 고대 4대문명에 더하여 올멕 문명과 페루 연안의 원시 잉카 문명을 문명의 발상지로 더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은 머리에 쏙쏙 박히는 내용이었다. 이 두 신대륙의 문명에 대한 개관을 서술한 책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관된 책이 몇 가지 떠올랐다. 먼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두 저작 《총·균·쇠》이다. 《총·균·쇠》에서 제시된 내용 중에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유라시아의 축은 횡축이고, 아메리카의 축은 종축이라는 것이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는 통찰이다. 실재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세부사항들은 정확이 다이아몬드의 지적과 일치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의 전신이 되는 와리와 티와나쿠 사이에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두 지역을 잇는 육로는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단 파나마운하 때문에 중간에 끊길 뿐만 아니라 그 주위의 다리안 밀림지대가 존나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 다리안 밀림지대는 김경진의 《데프콘》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한편 마야 문명이나 멕시코 고원지대의 테오티후아칸 문명이 리오그란데 강 이북으로 잘 전파되지도 않았다. 멕시코 남부에서 작물화된 옥수수만이 남북으로 전파되었다.

한편 총·균·쇠 중에 총에 실리는 무게는 감소된다. 사실 뉴잉글랜드에 침입하려 시도했던 유럽인들은 전염병으로 연안의 원주민들이 몰살당한 이후에나 처음으로 기지를 세울 수 있게 된다. 아직까지 총은 소음기에 불과했던 시절인 것이다. 남미에서는 좀 다른 살풍경이 연출되었는데, 대 학살 끝에 피사로에게 잡힌 잉카의 황제는 그 전 황제가 갑자기 죽었던 데다가 잉카라는 나라 자체가 황제에 대한 컬트적 숭배로 유지되고 있었던 탓에, 갑작스런 황제의 교체로 정비가 잘 안되었을 수 있다. 게다가 말은 잉카인들의 통신 속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대비를 잘 못했을 수도 있다.

단 균의 역할은 훨씬 중요해졌다. 유럽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상황에서도 전파되어 온 전염병은 원주민들을 몰살시켰다. 이후에 유럽인들은 원래부터 아마존에는 사람이 석기시대 상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애팔래치아 너머의 원주민들은 유목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현대의 유럽인들이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 끔찍한 사태에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주장한다. 죄의식은 상속되지 않지만, 책임은 상속되기 때문이다는 표현은 한일관계 그리고 한월관계에 또는 친일파·독재 부역자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이 들린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책은 역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이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 여부가 문명의 성쇠를 결정한다.” 잉카 사람들은 엘니뇨에 시달렸다. 가끔 왕조의 교체가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아마존에서 생태적 한계 이론은 잘 적용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환경에 제한을 받아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서도 또한 환경에 부하를 최소화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러한 예는 안데스 산맥에 집중적인 계단식 밭을 개발한 와리 문명, 숲을 주기적으로 태워서 환경을 관리했던 북미 원주민의 경우, 그리고 밀파라고 하는 밭 양식을 발전시킨 남부 멕시코 원주민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란 거기에 살아야만, 거기서 하는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진다. 환경과 지속가능하게 공생하는 이러한 방법들은 바로 토착민에 의해서 발명되고 발달해 온 것이다. 더 욕심을 부릴 수도 있다. 그 때는 앞서 말한 생태적 한계라는 철퇴를 맞게 된다. 《1491》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았지만, 환경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사회적 금기와 제도적 장치와 정서적 규범이, 적용되는 기술과 함께 맞물려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먹고 튀라고 요약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미국식 농업이 가능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미래로부터 ISD 소송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상관있는 책은 주경철 교수 《문명과 바다》, 《대항해시대》이다. 이 두 책은 기본 내용은 비슷하나, 하나는 학술서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인이 보기에 편하게 재구성되어있다. 비록 전염병에 의한 몰살이 거의 대부분의 원주민 사망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유럽인들의 도래 이후에 있었던 지극히 악마적인 원주민들에 대한 학대가 있었음을 까먹으면 안됨을 일깨운다. 또한 아마존의 생태적 한계 이론이 기반하고 있는 아마존의 화전 농업이 사실은 유럽인들에 의해 쇠도끼가 전래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 이들 책에서도 또 다른 관점에서 등장한다. 그리고 콜럼버스 이후의 대륙간에 있었던 생물종의 교류에 대하여 더 폭 넓은 사실들이 수록되어 있다. 《1491》의 저자는 신작 《1493》에서 이 주제를 또 다시 다룰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콜럼버스의 방문 이후에 원주민들에 의한 환경 개입이 없어지면서, 북미 대륙은 재삼림화 되고, 아마존·마야의 많은 부분도 더 빽빽한 숲으로 덮이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혹시 이렇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는 완전히 내 생각인데, 아메리카 대륙의 재삼림화가, 17세기에 맹위를 떨친 소빙하기를 초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일단 이 두 사건은 시기적으로 일치해 보인다. 그리고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대기중의 이산화탄소가 북·남미의 삼림으로 고정되었다고 생각하면 간단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마운더 극소기라는, 태양 흑점활동의 약화와 그에 따른 복사에너지의 약화를, 소빙하기의 원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 감소가 매우 적다는 점에서 늘 좀 의심스러웠다. 만약 아메리카의 재삼림화가 그 소빙하기의 이유라면, 인간의 활동에 의한 전 지구적 기후변동의 역사가, 산업혁명에서 콜럼버스까지 약 3세기 가량 연장된다. 또한 엄청난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병원균이 대서양을 건너자, 유럽에서는 멀쩡한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산 채로 불태워졌고, 동아시아에서는 영토분쟁이 일어나고 왕조가 바뀌었다. 추워진 기후로 살기 힘들게 된 유라시아의 농민들을 구해 준 것은 아메리카에서 병으로 죽어 간 사람들이 유품으로 남긴 옥수수와 감자였다.

2011년 11월 5일 토요일

집에 들렀다

부모님 댁에 잠시 들렀다. 4년 전 귀농하신 부모님께서는 이제 꽤 규모가 있는 농장을 꾸리셨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 간 그 날은 마침 말리려고 널어 두었던 나락을 정미하러 보내야 하는 날이었다. 마을 입구 들어오는 길에 족히 100 m는 되게 펼쳐 놓은 나락을 포대에 옮겨 담아야 했다. 농협으로 보내는 쌀 자루는 처음 보는 종류였다. 표시 중량 950 kg. 크기도 물론이거니와 형태도 정육면체의 독특한 모양이었다.

농촌의 도구들은, 어떤 공정에 특화된 형태를 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1년에 딱 한 번, 딱 그 때 사용하기 위한 것들이다. 바닥에 펼쳐놓은 쌀을 퍼 담는 데에도 쓰레받이 같이 생긴, 다른 용도로는 도무지 쓰일 데가 없을 것 같은 용구를 사용했다. 950 kg이 들어가는 포대는 인력으로는 옮길 수 없다. 그러면 쌀을 옮기는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할머니와 부모님과 나, 동생 이렇게 5명이 달라붙어 왔다갔다 하면서 포대에 쌀을 모았다.

가족들과 함께 이렇게 육체노동을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는 저 위에서부터 치워라.”, “포대는 이렇게 잡는거다.” 그 자리에서 작전을 세워가면서 부산스레 왔다갔다 하다 보니, 노래 없이도, 술 없이도 흥이 났다. 중간 쯤부터는, 이미 해 치운 일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우리 가족이 일하는게 신나 보였는지, 그 즈음부터는 동네 아버지 친구분도 오셔서 일을 거드셨다. 아저씨는 아버지가 좀 부러우셨던 걸까. “옛날 같았으면, 인제 농사는 자식들 시키고, 가끔 논에 물이나 대고, 소 몰고 풀 먹이고 하면 되는데.”라는 농에 아버지는 허허 웃으셨다.

한참 걸릴 것 같았던 작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2시간 만에 끝났다. 그 950 kg짜리 포대는 6개가 나왔다. 트랙터로 포대들을 용달차 두 대에 옮겨 싣고, 아버지와 친구 분은 면 농협으로 가셨다.

고생을 함께 나눈 사람들끼리는 좀처럼 얻기 힘든 연대가 생긴다. 쌀 퍼 담는 건 그다지 힘든 노동이라 할 것도 없지만, 만약 전통사회에서 한 해 농사의 완전한 주기를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힘든 노동을 나누며 평생을 살았다면, 그 관계는 정말 남달랐을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우리 부모님은 삼촌·고모와 그런 관계이시지 않는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하면서 든 작은 아쉬움.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일하면 좋았을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절대 내색하시지 않으셨지만, 은근히 바라지 않으셨을까. 지독한 가부장적 이기주의라고 몰아붙여지고 싶지는 않다. 똑같이, 장인 장모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나락을 퍼 옮기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또 가족을 만들고 싶다.

2011년 9월 26일 월요일

반려암·사문암·석면

감람석 모래를 뿌렸는데, 거기서 석면이 나왔다고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이다.)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10926020026820&p=hani)

배운 게 도둑질이므로 이런 기사가 나오면 찾아본다. 일단 문재의 모래를 공급한 광산이 어디인지 확인했다 안동 풍천의 모 광산. 앵? 안동? 대체로 안동이면 경상 누층군이거나, 거기 관입한 화산암이거나, 그 전에 있던 화성암·변성암 기반암인데? 석면은 초염기성 암석이 물과 (경우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반응하여 변성되는 과정인 사문암화 작용을 거쳐서 만들어질 때 나올 수 있는 광물의 하나이다. 그런데 안동에 초염기성암이?

지질자원연구원에 들어가서 지질도를 확인하였더니, 정말로 풍천에 반려암 관입암이 있었다. 반려암은 염기성 심성암이다. 오오 신기 신기. 게다가 외가집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곳이네. 학부 때 염기성암을 보러 야외조사를 간 곳은 충남 홍성 일대였다. 역시나 이 일대에서도 석면 때문에 난리가 나 있다. 이들 염기성 암석들이 변성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광산 업체에서 만든 투자설명회 프리젠테이션은 더 신기했다. 채굴된 감람석과 사문암을 이용한 제품과 납품 방향을 간단히 보여주는 프리젠테이션이었다. 반려암에는 감람석이 많이 들어가 있고, 사문암화 작용을 받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생각치도 못했던 곳에서 사문암을 사용하고 있었다. 제철업에서 사문암이나 감람석이 사용되는지는 완전 몰랐다. 충남의 석면 논쟁에서는 현대제철측에서 제철 과정에 사문암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주장하는데 대해, 환경단체에서는 외국의 제철소에서는 안전한 감람석을 쓴다고 반론을 펼치고 있다.

골프장 잔디가 잘 자라는 흙 또는 칼라 벙커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역시 대한민국에서 돈 벌려면, 골프장! 골프장! 그리고 이번에 문제가 된 야구장 운동장 모래. 이렇게 새로운 방향으로 제품을 개발하게 된 데에는 포철로부터의 주문량이 점진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사문암은 실재로 보면 꽤 아름다암운 암석이다. 대체로 띠는 어두운 녹색 빛도 그렇고, 무늬도 아름답게 나 있다. 다음에 외가집에 가게 되면, 근처에 가서 안동에서 나는 반려암을 한 번 찾아봐야 되겠다.

※9월 30일 추가
중학생이 모스 경도계 (활석-석고-방해석-...) 외울 때 나오는 활석은 화장품, 파우더, 분가루를 만드는 데에 이용된다. 이 활석이 사문석의 변성을 통해 형성된다. (다른 경로도 있다.)

※ 이듬해 4월 12일 추가
경상 누층군은, 지각이 얇아진 곳에 호수가 형성되고 거기에 쌓인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아직도 상대적으로 지각이 얇다. 얇은 지각 때문에 염기성암의 관입이 오히려 더 잘 일어날 수 있다고 전공하는 친구에게서 들었다.

횡성을 홍성으로 수정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자연과 문명

학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알펜포어란트를 지나갔다. 숭숭 동그란 구멍이 난 숲이 산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숲의 구멍의 중심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문명이 이르기 전, 유럽은 숲으로 덮여 있었다. 삼림. 유럽의 중세는 숲을 개간하면서 증가하는 인구를 흡수해 온 시기였다. 숲 가운데 정착지가 생기고, 주면의 숲을 벌목하여 농장과 마을을 확장해왔다. 숲은 좀 먹듯이 동그랗게, 정착지에서 동심원을 그리면서 구멍이 숭숭 뚫히게 되었고, 그 원은 인구와 함께 확장한다. 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제 거의 모든 숲이 파괴되었다. 알펜 포어란트는 그 동심원상으로 사라지는 숲을 볼 수 있게 남아있는 지역 중의 한 곳이다.

사람이 석탄·석유를 사용하기 전까지 대용량의 발열을 하기 위한 재료는 목재였다. 사람이 콘크리트와 철근을 이용하여 건물을 만들기 전까지는 건축에 반드시 목재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플라스틱이 대체하고 있는 수 많은 생활용품은 나무로 만들어졌었다. 요즘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웠을 때, 그 가장 처음부분은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한 고대 4대문명에서 시작했었다. 그러나 강에만 촛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그 강 유역에 존재했던 대삼림의 존재가 묻혔을 뿐일 것이다. 그래서 마스터 키튼은 도나우 강 문명을 찾으러 다니고, 중국에서는 장강 문명을 열심히 찾고 있다.

동아시아사를 배울 때, 참고문헌 목록의 책들 가운데, 중국 고대사에 대한 책을 읽고 기말 보고서를 써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은 갑골문·고고학 등의 성취로부터 밝혀 낸, 하·은·주·춘추·전국·한대까지의 자연사와 생활사에 중점을 두고, 주제어 별로 서술되어 있었다. 하·은 시대 이전, 지금의 화북평원에는 대삼림이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거지 주변의 삼림이 벌목과 화전으로 개간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면적은 넓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화북지역에 삼림은 남아있지 않다. 장강 유역과 사천분지의 삼림은 조금 후에 파괴되기 시작했다. 고사에 자주 등장하는 현재 장안 주변의 관중이라는 지역은, 비옥하기 짝이 없는 지역으로 묘사되지만, 내가 아는 현재의 섬서성은 건조한 반사막 내지는 초원 지대이다.

환경이 황폐화되면서 문명이 사그라든 많은 경우들이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문명의 붕괴》에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깊이있게 서술하지 않았지만,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고대 그리스의 많은 식민 항구도시들이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잡지와 《지구대기행》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들이 비슷한 테크트리를 따라간다. 인구가 늘어나면, 자원의 소비 역시 따라서 증가하고, 이를 위해서 주변의 자원(삼림·물·토양·광물)을 과도하게 이용하게 되면서, 그 일대의 자연 환경이 더 이상 문명을 지탱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에페수스는 삼림벌채로 인해 토양유실이 일어났고, 그 모래가 바다로 흘러들어와 항구를 매우는 바람에 입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상당한 건조지역이었던 탓에 지나친 관개가 토양의 염화를 불러왔고, 결국 농업은 포기되었다.

사실 흔히들 환경의 역습이라고 말하는 이런 현상들이, (문명의 붕괴에서 이미 제시했듯이) 모든 문명의 붕괴를 설명할 수는 없고, 수백년 단위의 장기적인 기후 변동과 환경의 역습 효과를 분리해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그린란드의 바이킹 정착지나, 화북에서 장강으로 중국 문명의 중심이 이동한 경우가 있겠다.

지구대기행 13편은, 몇몇 문명의 흥망성쇠를 제시한 후, 한가지 예외, 서유럽 문명을 제시한다. 중세가 한계에 다다른 이후 서유럽 문명이 멸망하지 않았던 이유. 그들은 새로운 온대림이 펼쳐져 있는 거대한 대륙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더 이상 처녀림이 펼쳐져 있는 꿀이 흐르는 대지는 남아있지 않다고. 인류의 남아있는 미개척지 우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메마르고 가혹한 곳임을 일깨운다.

한 때, 국민성과 지도자의 자질로 (야매스럽게) 설명되던 문명론을, 이제는 상당한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하여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류 전체의 문명을 떠바치고 있는 지구의 자원 서플라이 혹은 충격흡수 능력을 수치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탄소와 질소의 순환, 열이동, 종다양성 따위가 얼마 정도나 인간충격을 견딜 수 있는지 말할 수 있는 단계이다. 앞으로는 이런 자연환경적 맥락을 과학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문명론들, 혹은 자연을 언급하더라도 자의적으로 그것을 인간에 가져다 붙여 멋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문명론들은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 날 알펜 포어란트를 비행하던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할 때, 창 밖을 보니 뒤따라오는 비행기의 항법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비행기가 내릴 활주로의 옆 활주로를 이용할 비행기가 다가오는 것 역시 보였다. 엄청난 양의 석유를 태워 수십톤이 넘는 금속 통을 공중에 띄우고, 그를 위해서 그 무거운 금속 통을 1 초에 300 미터의 속력으로 날리는 것도 놀랍기 그지 없지만, 그러면서도 그토록 정교하게 이들을 제어하고 관리하여,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곳으로 유도하는 모습에 또한 경이로움을 느꼈었다. 인류는 행성 지구에 대한 인간충격 역시 그 정도 이상으로 정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오늘은 전국적인 산발적 정전이 있었다. 전력 사용량이 64 GW를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64 GW는 일인당 1280 W이고, 약 1.7 마력이다. 한 사람이 말 두 마리가 달라 붙어야 만들어 낼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보통 사람이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일은 약 0.1 마력이라고 하므로, 현대 한국인은 17 명의 노예를 부리고 있는 샘이다. 한 가정으로 치면 노예가 한 50 명 붙어 있는 샘이므로, 100 년 전으로만 돌아가더라도 더 할 수 없는 호사이다. 그런데 과연 이 정도의 소비가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

2011년 9월 13일 화요일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쓸 수 있게 되었다

일전에 짜장면이 표준어가 아닌 것에 격분해 글을 써갈긴적이 있었는데 (http://jolysses.blogspot.com/2010/04/%EC%A7%9C%EC%9E%A5%EB%A9%B4%EC%9D%80-%EC%A7%9C%EC%9E%A5%EB%A9%B4%EC%9D%B4%EB%8B%A4.html), 근자 비로소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시에 몇 가지 더 많은 단어들이 함께 표준어로 승격하게 되었다.

기쁘다. 짜장면은 새로 생긴 개념이므로, 철자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 정체와 기원이 불분명한 자장면이라는 단어가, 대다수 언중의 언어를 비표준, 부적격의 언어로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언중이 사용하면, 그것이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

작금의 언중들 중에 다수는 한자어를 정확히 쓰지 못한다. `명예훼손'을 `명예회손'으로 쓰는 경우는 양반이다. `무임승차'를 `무인승차'로 써서 도대체 누가 승차하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고, `청와대'를 `청화대'라고 써서 대통과 그 무리를 중국으로 텔레포트 시키기도 한다. 근래 본 최악의 경우는 `인신공격'을 `임신공격'이라고 쓴 경우다. 게시판에서 개 털리는 경우를 강간당했다라고 표현하던데, 그래서 그리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들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서 어찌 손써볼 도리가 없게 된다면, 그 때는 `명예회손' 역시 표준어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나는 당연히 이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이다. 새롭게 생겨난 단어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한자어들의 경우 형태소들이 완전히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에, 이것 저것 다 된다고 예외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어생활에서 한자를 완전히 배격해야한다는 입장에 선 사람이라면, 저들 중 두 번 째, 형태소 논거는 설득력이 없다. `명예훼손'을 이루는 글자들이 모두 대응되는 한자가 있다는 사실은, 국어순혈주의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사실이다. 현대 한국어 화자들은 `ㅚ'를 단모음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런 경우 `ㅞ', `ㅙ'와 구별되게 발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다수의 언중이 발음하는 바를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어그로가 아니다. 삭월세는 사글세가 되어 표준어로 인정을 받았다. 나는 이 지점이 바로 한자 배격론의 실패가 완전히 까발려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한자교육을 배척한 결과가, 고급어휘의 철자법 좆망이라는 죠낸 아름다운 결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렇다면, 버스, 서비스, 가스 같은 단어들이 /뻐쓰/, /써비쓰/, /까쓰/로 소리나는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들 단어들도 된소리로 표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내 감정은 현행대로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느낀다. 왜냐고? 예들은 원래부터 외래어니까, 짜장면에 적용된 것과는 다른 원리가 적용되는 것 같다. 누구도 짜장면을 외래어라고 느끼지 않으니까. 어떠한 외래어가 아닌 단어도, 그 첫 음절의 첫 자음을 예사소리로 적고 된소리로 읽는 경우는 없어. 적어도 당장 그 예가 떠오르지 않아. 심지어 둘 쌍(雙)은, 쌍이라고 소리가 나니까, “심지어” 한자가, 된소리 발음을 가지고 있어. 왜? 상이라고 쓰고 쌍이라고 읽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하나는 喫. 그러니까 짜장면이라고 하는 외래어가 아닌 단어는, 자장면이라고 적힐 수가 없는 거야.

(라고 적었는데, 퇴고하면서 읽어보니, 바로 밑에 반례가... 그래서 그냥, 잘 모르겠다. 난 꽈학을 하진 않거든.)

된소리로 발음되는 경우는 외래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김밥, 과대표는 각각 /김빱/, /꽈대표/로 발음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쌀밥이나 보리밥을 쌀빱이나 보리빱으로 읽는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짬밥이 /짬빱/으로 비빔밥이 /비빔빱/으로 읽히니까 아마도 특정 받침 뒤에 올 경우에는 밥이 된소리가 되지 않는가 가설을 세워보는데, 덮밥은 이게 /밥/인지 /빱/인지 잘 구별이 안된다. 어쨌든 형태소를 살려 적는 원칙에 따라 표기법을 정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표준어가 표준 발음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옳은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겠다. 표준 경상도화자인 나 더러 책 하나 던져주고 낭독해 보라고 하면, 당연히 표 난다. 딱 들으면 다 안다, 점마 어데서 왔네. 아마도 낭독하는 동안 표준어에 의해 규정된 단어들을 읽었을 것이고, 자음과 모음의 발음 역시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은 억양이 문제라는 소린데, 표준어가 억양도 규제하는가? 경상도 티가 확 나는 발음은, 표준어가 아니다. 따라서 표준어는 억양의 규범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효과를 /효과/라고 발음하더라도, 억양이 이상하면 표준어가 되지 못한다. 이것은 국어사전 정의 수준을 좀 벗어나는 문제인 것 같다. 서울말에는 억양이 없으니, 억양 없이 말하라고 하는데, 내가 듣기에는 서울말에도 그들 나름의 억양이 있다. 따라서 내가 억양 없이 발음해도, 서울말 같이 들리지는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억양을 학술적으로 어떻게 기술하고 연구하는지 궁금해지네.

지난 번 글에서도 썼듯이, 언어는 인간 개개인의 인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잣대로 적격·부적격을 가리기 위해서는 엄밀하고, 정합적인 규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이현령비현령의 두루뭉실한 총언 뒤에는, 이를 뒤바침하기 위한 엄밀한 `법칙'이 서술되어야 하며, 이는 법률이 합법과 불법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엄밀하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여지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표준 표기법에 대하여서는 어느 정도 그것이 가능하고, 현재의 규정이 (짜장면이 표준으로 인정되면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표준 발음을 그토록 엄밀하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사실 좀 회의적이지만 그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표준 억양이라는 것이 문서와 활자로 기술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한 규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11년 9월 10일 토요일

만주문자 식자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획연재물을 보면, 스크랩해 놓기도 한다. 그러다가 TeX을 알게 되고 난 다음에는, 브라우저에서 기사를 긁어서 TeX 형식으로 간단한 편집을 해서 저장을 해 놓게 되었다.

이 주 쯤 전에 지인을 만나, 요즘 모으고 있는 그 연재물에서 읽었던 내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와서 스크랩 한 것을 보내주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신문기사에 난 것이다 보니, 이것 저것 정보를 더 보태고 싶어졌다. 등장하는 역사 인물의 한자 이름과 생몰년도 따위를 추가하고, 간단히 언급된 사실에 대하여 내가 아는 대로 좀 더 보충하고, 뭐 그런 짓을 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하도 좋아져서 어지간한 자료는 인터넷에서 다 찿아졌다. 생몰년을 찾으려고 사람 이름으로 검색하면, 위키로 들어가서 항목을 읽게 되는데, 유명한 인물을 찿을 때 조차도 완전히 처음 알게되는 그런 일화들에 빠져들게 되면서, 작업이 상당히 지체되었다. 또한 그러면서 또 배움이 있어 한편으로는 즐거웠다.

나는 아는 바가 일천하게 그지 없지만, 원전에 대한 욕구는 강한 편이다. 일종의 속물근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물의 생몰년을 찾는 과정과 요 몹쓸 속물근성이 합쳐지면서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빠져들게 되었다. 찾는 인물중에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나왔던 것이다. 생몰년은 크게 상관이 없다. 문제는 이름이다. 이 사람들은 중국사람이 아니니까 오른쪽에 붙은 괄호 안에 음차된 한자를 적어 넣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따라서 만주문자를 붙여 넣어야 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다언어 식자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는 XeTeX로 컴파일 할 수 있게 약간의 수정을 했다. 그리고 fontspec 팩키지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KTUG에서 배웠다. 그런데 문제는 만주문자 폰트였다. 처음에 찾은 것은 만주문자를 키보를 통해 입력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말하자면 날개셋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딸려 나오게 되어 있는 만주어 폰트를 찾아서 깔고, 테스트를 해 보았는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주문자는 아랍어와 마찬가지로 단독·어두·어중·어미에서 쓰일 때 그 모습이 변화하는데, 방금 깔았던 그 만주어 폰트는 그 과정을 완전히 처리하지 못했다. 어두형이 중간에 박히거나 하는 식이었다. 깨끗하게 포기하고, 프로그램과 폰트를 지웠다.

다음에 찾아 낸 프로그램은 중국인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입력창에 로마자로음차된 만주문자를 쳐 넣으면, 그것을 기초로 하여 만주문자를 짜 내 비트맵 형식으로 오른쪽에 출력하였다. 즉 범용으로 만주문자를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따라서 IME 설정을 건드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그 중간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간단계라는 것은 어두·어미·어말형이 각각 어떤 로마자에 할당되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두형은 로마자 I에, 어중형은 i에 각각 대응하도록 만든 것이다. 음차된 만주어를 어두·어중·어말형이 구분된 스크립트로 부호화 하고, 마지막으로 그 부호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는 만주문자를 출력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좀 엉성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얻은 출력물이 훨씬 퀄리티가 좋았다. 이 프로그램이 사용하는 만주어 폰트는 유니코드의 만주·몽골 문자 영역에 할당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로마자 영역에 할당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 프로그램의 만주어 폰트 이름은 Times New Manchu였다.

아, 나는 당연히 만주어 배운 적도, 할 줄도 모르나, 그 테스트라는 것은 간단히 그 만주어 모양을 (위키를 통해서) 알고 있는 누르하치나, 홍타이지 같은 만주 단어를 표시했을 때 얼마나 비슷하게 나오는가를 비교하는 것으로, 눈만 달려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이 폰트를 TeX에서 사용하는 것인데, 그 결과가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기뻤다.